농암집 - 조선의 학술과 문화를 평하다 한국고전선집
김창협 지음, 송혁기 옮김, 최채기 감수 / 한국고전번역원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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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과 8월에 독서 시간을 줄여야 할 일로 마음이 급하다. 어제까지 마무리하기로 한 책 읽기를 독서 노트로 남기며 매듭을 짓는다. 김창협의 글을 모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내놓은 <농암집>을 이틀에 걸쳐 읽고 새긴다. <농암집>을 통해 조선 시대 사대부가 지녔던 정신의 깊이와 품격을 만날 수 있었다. 김창협은 후학이 정암 조광조, 율곡 이이, 퇴계 이황과 더불어 격을 견줄 수 있다고 평한 17세기 정통 유학자다. 논변, 편지글, 제문, 상소 글, 묘지문, 학문하는 방법에 대한 글 등을 담았다.

하나, 학문하는 방법에 대한 글에서 율곡 이이의 이기일원론과 퇴계의 이기이원론을 조목조목 평가한 글에서 후학들이 김창협의 수준을 율곡과 퇴계 못지않게 평한 까닭을 알 수 있다. “유가의 도를 앞장서서 밝히고 학문이 순수하고 덕을 갖추었으며 성현의 깊고 은미한 뜻을 드러내 후세를 열어 준 공으로 말하자면 정암, 퇴계, 율곡, 농암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p. 322) 이는 18C ~19C초 오희상이 평한 것이다.

, 문장에 대해서 김창협의 시를 읽으면 마음속이 영롱하고 투명해져서 양생 양생할 만할 뿐 아니라 무병장수하기에도 충분하다. 속세의 때가 낀 오장육부를 깨끗이 씻어내어 세속의 명리를 제거해 줌은 말할 나위도 없다.”(p. 325)

 

6개 장으로 편집된 <농암집>김창협은 누구인가로 시작한다. 김창협은 병자호란 척화파 대표인 김상헌의 후손으로 숙종에게 아버지와 스승 송시열을 잃었던 서인 계열의 유학자다. 이후 처사의 삶을 살았으나 정교한 사유와 치밀한 논리, 섬세한 언어 구사로 주자학의 단계를 한 단계 심화시켰다고 평가된다. 일제 이후 근대 학문의 시각에서 사라진 17세기 이후 주자학 발전은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성과라 한다. 또한 문장가였고, 탁월한 비평가이기도 하여 18세기 동아시아의 지적 수준의 최고봉에 있었다고 평가된다. 가족사는 슬픔의 연속이어서 부친과 스승은 사약을 받았고, 두 아들과 두 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굴곡진 김창협의 삶에서 정치적 좌절과 개인적 슬픔을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은 산수와 학문의 즐거움 덕분이었다.”(p.19) 好學했던 공자와 농암의 삶에서 우리가 취할 것은 평생 공부다.

 

덧붙인 雜多 :

장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는 것은 근대 교육에서 상정하지 않는다.

책선해 주는 벗이 있어 : 책선 責善이란 잘못을 지적하고 좋은 일을 권하는 것, 부모와 자식 간에는 해서는 안 되고 절교가 가능한 벗 사이에서나 해야 한다.

시험에 떨어진 동생에게 : 분발은 용기를 끌어 내고 실패는 성공의 계기가 된다. 분발하지 않으면 용기를 북돋을 수 없고, 실패해 보지 않고서는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갖추지 못한다. 백 걸음 떨어진 곳에서 버들잎은 백발백중할 정도로 치밀하게 공부한 이들과 비교한다면 어림없는 실력이다. 평가 기준에 좌우되지 않을 만큼 자신의 실력을 넉넉하게 키우고 결과에 대한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야말로 인을 행하는 자세이며, 과거 시험 공부는 그런 자세를 기르는 과정으로 의미를 지닌다.

성악설 비판 :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맹자를 직접 만나 토론할 기회도 없었고, 또 시대를 내려와 그와 동시대를 살며 설을 듣고 자신의 오류를 철회할 기회도 가지지 못했다.

금강산 유람기 :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건 이내 몸이 이 산 안에 있어서라네. (蘇軾)” 금강산을 보고서 반평생 보아 온 산은 모두 흙무더기나 돌덩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다. 18세기 후반 몇몇 가문을 중심으로 증가한 금강산 유람은 18세기 이후 유행한 풍조였다.

환경을 탓한 것인가 환경을 바꿀 것인가 : 처지를 한탄하고 근심하는 것은 뜻을 어떻게 갖는지 달려 있을 뿐이다.

고관 자제의 곤궁한 은거 : 자신이 선택하고 나서 또 그것 때문에 후회한다면, 목욕하는 자가 젖기를 꺼리고 불 쬐는 자가 뜨거움을 꺼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부귀와 빈천 역시 그저 거기에 맞춰 적절하게 대처하면 되는 일이다. 문제는 이를 편안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이다.

나귀를 빌려주어 고맙네 : ‘건네준 솜옷만도 따스하다’- 범저와 수가의 고사

자신의 깨달음이 없으면 : “사람의 마음은 잠시도 놓아서는 안 되니, 욕심이 일어날 때를 만나면 반드시 철저하게 이겨 내야 한다. 이는 뱃사공이 배를 젓다가 험한 여울을 만나면 반드시 온 힘을 다해 저어 올라가야지 조금도 밀려서는 안 되는 경우와 같다. 조금이라도 밀리면 바로 수백 수천 보를 떠내려가 다시는 위로 올라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이곳을 지나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p. 93)

祭亡妹文 : 네가 오래 살고 복을 누리리라는 것을 마치 어음 가지고 가서 꿔 준 돈 받는 것처럼, 좋은 곡식 심어 두고 가을걷이 기다리는 것처럼 너무도 당연하게만 생각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 : 평소에 제대로 가르치고 양성하지 않으면서 나이가 차기도 전에 관례를 올리고서는 관례만 끝나면 바로 어른으로서의 덕이 완성되기를 바라니 이렇게 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른이 사라지고 어른다움의 의미도 퇴색해 가는 오늘.

慶筵講義 : 임금이 질문하지 않는 것에 관하여. Q: 왕의 학문이 높아 남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어서? A: 안연의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이에게 질문하고, Q: 신하의 학문이 보잘것없어서 질문할 가치가 없어서? A: 종을 두드리면 두드리는 대로 소리가 나듯 자꾸 던지다 보면 그래도 그것이 촉발하여 깨닫는 실마리가 있을 수도, Q: 애초에 의문점을 보지 못해서? A: 만약에 의문이 없다고 한다면 이는 참으로 의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문점을 아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일 뿐, 만약 이와 같다면 매일 경연을 한다 해도 끝내 학문의 진보가 없을 것.

어리석은 뒷집 부인의 충고 : ~. 그러나 ~. 하지만 ~. 이제 ~.

아버지의 묘표를 스승에게 부탁하다 : 김창협은 사약을 받은 아버지의 묘표를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한양으로 압송 중이던 때에 작성하고, 송시열은 장성에서 묘지문을 지었다. 닷새 뒤 송시열은 정읍에서 사약을 받았으니 김수항의 묘지문이 송시열의 마지막 유작이다. 평상심을 잃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 김수항, 그리고 자신 역시 죽음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먼저 간 동지의 묘지명을 써 주는 송시열의 모습에서 오늘날 쉽게 만나기 힘든 거대한 인간상을 마주한다. (p. 171)

마음을 잠재우다 : 그림자를 없애고 거울에 비친 상을 없애고 싶다면 잠들어서 피하는 방법밖에 없다.

폭포를 찾아서 : 아름다움이란 본디 사람에게 쉽게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 모양이다.

벼슬할 수 없는 이유 : 엄정한 형식과 치밀한 논리를 갖추면서 감정의 절절한 토로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기가 조화를 이룬.

아버지 대신 지은 동생의 묘지명 : 어떤 슬픔은 더 큰 슬픔 앞에서 차라리 즐거움(슬픔이 한없이 증폭된다)

조선의 문장을 평하다 : 구상에 기초하고 구조를 수립하며, 제재를 연결하고 수식을 덧붙이며, 마지막으로 법칙과 규례에 엄격하게 맞추었다.

시 벗 아들을 잃다 : 내 모습이 가지 없는 썩은 나무 같고, 불기 없는 재와 같다. 이런 삶에 무슨 즐거움이 있었겠냐? 그런데도 배고프면 밥을 찾고 추우면 옷을 찾고 병이 들면 약을 찾으면서 구질구질하게 수명을 연장해 왔으니, 나의 무딤이 이다지도 심하단 말인가? 지나치게 슬퍼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생각이야 어찌 안 할 수 있겠느냐? 천명과 인사는 본디 어쩔 수 없는 것

덧붙일 말을 잃을 만큼 슬프다.

퇴계와 율곡을 넘어서 사단과 칠정을 논하다 : p.283~291에서 이이와 이황을 보완하다,

청의 지배와 중화 문명 : 가문이 척화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음에도 청나라가 이적의 나라라고 해서 그 학술 문화마저 무시하고 아예 보지 않으려는 편협하고 경직된 시각을 넘어서서, 오히려 우수한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찾아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의식을 가졌다.

조선의 학자를 평하다 : 허심탄회하게 이치를 보지 않고서 다만 先儒의 설로써 남을 압도하여 입을 열지 못하게 한다면 강학은 해서 무엇하겠는가?

 

<농암집>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20168월에 338쪽 분량으로 새 옷을 입혀 내놓았다

"사람의 마음은 잠시도 놓아서는 안 되니, 욕심이 일어날 때를 만나면 반드시 철저하게 이겨 내야 한다. 이는 뱃사공이 배를 젓다가 험한 여울을 만나면 반드시 온 힘을 다해 저어 올라가야지 조금도 밀려서는 안 되는 경우와 같다. 조금이라도 밀리면 바로 수백 수천 보를 떠내려가 다시는 위로 올라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이곳을 지나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p.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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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 - 세계 질서의 붕괴와 다가올 3개의 전쟁
피터 자이한 지음, 홍지수 옮김 / 김앤김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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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해가 돼 간다. 수업을 끝내라는 종이 울리자, 한 학생이 “미제는 물러가라!”라고 소리치며 복도로 나갔다. 아버지는 농민회 활동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2학년이 무엇을 알아서 미제는 물러가라’라고 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미국, 아메리카...... 오십이 넘어가며 원망과 고마움이 함께 하는 나라다. 가쓰라-데프트 밀약과 분단의 원인이자 두 차례나 쿠데타를 묵인한 점에서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냉전 시기 각종 원조 제공과 군사적 보호막이 돼 주었고 브레튼우즈 체제 덕분에 수출로 이만큼 먹고살게 된 배경을 생각하면 원망보다는 고마움을 생각한다. 앞으로도 뗄 수 없는 관계이자 한반도 통일에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박에 없는 상황이다. 결자해지! 38선을 그었으니 통일에도 제 몫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

한국 보수 진영의 입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라고 한다. 『The Absent Superpower』는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의 입을 통해 미국의 국제외교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지정학은 “결국 선택지들과 제약들 사이의 균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한 나라의 지리적 여건이 대체로 그 나라가 직면하는 취약점들과 그 나라가 쓸 수 있는 방편들을 결정한다.”(p. 406)

차례를 살펴보면 1부는 ‘셰일이 창조하는 신세계’로 셰일은 너무나 미국적인 에너지라며 석유가 에너지의 지위를 점하는 세계에서 셰일의 가치를 살펴본다. 2부 ‘무질서’에서 셰일의 등장은 ‘구세계의 종언’과 미국의 전략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게 되고, 유럽과 러시아의 가상 전쟁,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가상전쟁, 동북아시아의 중국, 한국, 일본, 타이완의 석유를 둘러싼 각축을 예상한다. 3부 ‘미국의 역할’에서는 미국의 가용 수단을 살펴보고, 동남아시아와 중남미가 여러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개편될 새로운 세계에서 낙관적이라는 미국의 시각을 보여준다. 피터 자이한은 석유를 둘러싼 동북아 각축전에서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 중 어느 한편을 들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일본 편이 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 본다. (피터 자이한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고려하지 않았고, 중국을 과소평가했다. 지정학적 평가는 지리학과 다른 각도에서 내리니 눈여겨 볼만하다. 그럼에도 페르시아 만의 혼란은 석유를 100% 수입해야만 하는 한국의 에너지 구조를 생각할 때 뼈아픈 지적이다.)

제1부 - 세일이 창조하는 신세계
2007년~2014년간에 셰일의 에너지 특성과 미국 셰일 산업의 진화로 미국의 에너지 체계를 변화시켰다. 미국은 더는 페르시아 만에서 석유를 수입하지 않아도 된다. 셰일 생산의 효율성 증대가 셰일 산업의 성공을 이끌어 미국의 산업 기반을 개조하고 있다. 소비지 인근에서 생산하는 세일 유정은 가동에 소요되는 시간이 짧아 낮은 가격, 안정적 가격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게 된다. 셰일 가공 부문과 제조업 일자리가 창출된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되는 세일 덕분에 가정의 소비지출이 절감되고, 풍요로운 소비가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미국은 지질적으로 지리적으로 최대 셰일 매장지역이고, 기술 인력도 풍부하다. 더구나 지하 광물권을 토지 소유 민간인에게 부여하는 나라라 사익 추구를 위해 개발에 노력한다. 세계적 금융대국으로 자본 공급이 수월하고, 트럭 운송비의 1/10 수준인 파이프라인을 100만 마일 이상 깔고 있다. 아직 미국 말고는 셰일 산업을 발달시킬 역량이 있는 나라가 없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할 때 세일 혁명은 지정학적 관점에서 대단히 미국적인 사건이다. 세일 혁명으로 미국은 더는 세계 에너지시장과 엮여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세계에 어떤 모습인가?

제2부 - 무질서
미국은 망하려고 발버둥 쳐도 망하기 힘들다. 미국은 2차대전 후 브레튼우즈 체제를 통해 세계의 경제와 군사동맹을 유지해 왔다. 인구구조의 변화 등의 요인으로 앞으로 미국은 수입국의 지위를 버려 세게 무역 체제의 외곽으로 물러나고 있다. 여기에는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를 자급하게 된 요인의 비중이 크다. 1973년부터 2007년까지 자국의 석유 수입을 위해 석유 시장의 안전과 유통망을 관리하던 미국이 흥미를 잃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세계로부터 손을 떼는 과정에 있다. 그 증거로 해외 주둔 미군의 철수, 타국과의 무역 연관도가 최소 수준이다. 21세기 석유의 주요 소비지는 동북아시아다. 세계 석유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주요인을 셋으로 분석한다. 유럽과 러시아의 대립,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동북아시아의 석유를 둘러싼 각축전인 유조선 전쟁이다.

러시아 국경선은 12,000마일이다. 러시아는 인구구조상 인구 급감이 예상된다. 이 여건에서 유럽과 전쟁을 시작한다면 지구전이 되고 러시아가 이기든 러시아에 저항하는 연합국이 이기든 러시아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피터 자이한이 예상하는 러시아의 유럽 침공은 1단계 우크라이나 침공은 쉽게 달성하고, 2단계로 스칸디나비아를 침공할 것이며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의 필사적 저항은 러시아 해군을 궤멸시키고 영국의 지원을 받아 전쟁을 수행할 것이다. 3단계로 폴란드를 침공하나 독일의 저항에 직면하고 4단계로 코카서스를 침공할 텐데 터키는 저항 능력이 있고, 터키의 지원을 받을 것이다. 러시아는 터키를 잡아 두려고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것이다. 러시아와 유럽 간 지구전에서 미국은 어찌할까? 직접 개입할 명분과 실익은 없지만 저항국에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것이다.

페르시아만은 미국의 전략이 작동하게 하는 핵심지역이었다. 카타르에 미중부사령부가 있다. 미국의 대외 정책과 에너지 자급은 미국을 페르시아만에 엮어 두었던 논리를 구성하는 연결고리를 끊어가고 있다. 미국이 발을 뺀다면 40여 년간 이 지역에 존재해 온 전략적 평형상태는 봄날 강 표면의 얼음 갈라지듯 깨진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대결이 예상된다. 둘 다 문화적 자부심이 높다. 사우디의 전략은 이슬람주의자 전투원을 수출해 저항운동을 양산하고 돈으로 이란의 대리자들을 매수해 동맹을 맺으려 할 것이다. 이란은 페르시아만을 폐쇄할 것이나 장기적으로 봉쇄하기에는 역부족하고 되레 이란의 석유 수출이 곤란해질 것이다. 이란의 페르시아만 봉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나라는 일본, 중국, 한국, 타이완뿐일 거다. 현재 해군 역량의 순위는 미국>일본>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호주>한국>타이완 순이다.
이란은 정보 체계의 우수함을 이용해 사우디내 소수 민족을 부축이고 사우디도 이란의 쿠제스탄 민족봉기나 아제르바이잔 봉기를 유도하거나 지원할 것이다. 두 나라의 전면전을 가상할 때 이란이 승리하려면 사우디로 진격하는 길의 인프라가 부족해 지체될 것이다. 이라크의 바스라를 점령하고 가야만 한다. 쿠웨이트로 점령해야만 사우디로 진입할 수 있다. 여기까지 이란의 병참 능력이 안 된다. 탱크, 공군 등 군사장비가 구식이다. 이란이 지형적으로 침략당하기 어렵지만 침략을 강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미국은 개입을 꺼린다. 이라크 국경에서 이란을 제압하거나 공군력을 동원할 수는 있다. 이란, 사우디 간 전쟁은 지구전으로 교착상태에 빠지고 중동 여러 나라의 산업 기반, 전력 공급 시설, 농업 기반 시설을 망가뜨릴 것이다. 전쟁 후 누가 이기든 중동은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재구성될 것이다.

피터 자이한이 분석하는 일본의 힘은 세다. 2016년 현재 내수 중심 경제를 운영 중이며, 필요한 에너지를 전량 수입해야 하나 바닷길을 구축하고 관리할 해군력을 갖추고 있다. 일본의 해양 능력은 탁월하다. 미국보다 10년 앞선 1922년 세계 최초로 특수 목적용 항공모함을 건조했었다. 일본의 주요 도시는 독립적이다. 도시마다 독립적인 인프라를 갖고 있어 어는 도시의 에너지 문제는 지역의 문제일 뿐이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100일 만에 전력 에너지의 충격을 흡수했다. 사할린이라는 에너지 자원에 접근성이 높다.
이에 비해 중국은 취약하다. 중국의 석유 수입 의존도는 절대량으로 보면 일본의 두 배다. 개방된 바닷길을 이용ㅎ야 한다. 중국은 미국을 대신해 체제를 구축, 유지할 군사적 역량이 없다. 중국은 갇혀있다. 에너지 공급 경로를 열어 줄 해군 역량이 없다. 중국은 답을 석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중국과 일본 간 전쟁이 벌어지면 타이완은 일본 편을 들 것이라고 본다.(한국 독자의 생각과 크게 다른 지점이다) 캄란만, 수빅만, 나투나해가 격전지가 될 것이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타이, 미얀마에게 동북아의 유조선 전쟁은 돈을 벌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자원 부국으로 중국과 일본에 양다리를 걸칠 것이다. 태국도 cash-carry 프로그램(현금 수수후 구매 당사국이 물자 수송을 알아서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돈을 벌 거다. 인도의 사략선(私掠船: 민간무장선, 해적선)도 예상할 수 있다. 피터 자이한이 보기에 한국의 경우 인구구조나 군사력 면에서 걱정스럽다. 한국은 미국 시장 개방 덕분에 성장했는데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지면 가장 잃을 것이 많은 나라다.

슈페메이저(엑손모빌, BP아마코아코, 토탈피나엘프, 코노코필립스, 셰브론텍사코)와 셰일 에너지 기업은 다르다. 슈퍼 메이저의 손익구조는 셰일과 다르다. 셰일 기업은 협력을, 슈퍼 메이져는 담합이라는 관행을 우선한다. 유럽-러시아 간 지구전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비교적 영향을 덜 받을 거다. 아마도 과거 식민지와의 관계를 복원해 지구전의 피해를 줄여가려 할 것이다. 미국이 철수한다고 미국인이 자취를 감춘다는 것은 아니다.

제3부 - 미국의 역할
미 해군은 미국이 고립시키려는 나라나 지역에 경쟁국이 접근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미국은 특수작전단과 드론, 항공모함을 이용해 자국이 관여하고 싶은 어는 경쟁지역이든 원하는 대로 틀을 짤 수 있다. 이는 군사 경쟁에 국한하지 않고, 정치적, 경제적 경쟁 지역에도 해당한다. 미국의 소비 시장은 인구구조상 세계에서 앞으로 유일하게 성장할 대규모 시장이며, 수출 주도 성장을 하려는 나라는 어떤 나라든 미국 시장에 접근해야 한다. 미국은 대체로 세계 에너지 상황에 무관심할 것이나, 미국 기업이 성장할 기회가 있거나, 경쟁 상대를 전략적으로 방해할 필요가 있다면 개입할 것이다. 세계 해양, 세게 무역, 세계 에너지를 장악한 미국은 더 이상 세계 안보에 관심이 없다. 미국의 군사 역량은 국가의 보조 기구이자 기업의 보조 기구도 된다.

동북아시아 유조선 전쟁에서 지리적 약점이 강점을 이길 수 있다. 중국과 일본 중에서 누가 이기든 동남아시아에서 미국에 대항할 경쟁자는 없다.
중남미는 미국이 먼로주의를 적용하는 지역으로 지리적으로나 정치적 조건이 열악하다. 전쟁 걱정이 없고, 미국과 가깝다는 것은 장점이다. 미국이 원하는 쪽으로 협상에 응해야만 할 것이다. 중남미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써먹을 지렛대가 없다. 베네수엘라, 브라질, 트리니다드토바고(천연가스 정제력 우수), 콜롬비아, 페루, 카리브해 연안국의 장단점을 분석한다. “중남미 지역에서 반미 정서가 마연한 까닭은 과거에 미국이 이 지역을 자기 놀이터 취급을 한 적이 있다.”(p. 498)
피터 자이한은 미국은 과연 의도적으로 세계에서 손을 뗄지 아니면 어쩌다 보니 손을 떼게 될지 지켜보라 한다. 자이한은 동남아시아는 전망이 밝지만 중남의 전망은 더 밝다고 본다. “나머지 지역은 어디든 각자도생이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한단다. (앞 문장처럼 본문 544쪽 분량에 번역자 홍지수의 걸쭉한 재치가 보인다.)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The Absent Superpower)는 김앤김북스에서 2019년 1월 초판을 내놓았고, 나는 3월 3쇄 본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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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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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니 나는 어떤 현상이나 사회 문제를 나름의 관점을 갖고 본다. 관점은 내 경험이 이성, 감성이 그때그때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방법으로 결정했던 과거의 기억이 만든 것이다. 직접 경험은 일부일 뿐이고 독서, 인터넷과 TV,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간접 경험이 대부분이다. 인터넷과 TV는 언론이다. 언론은 독자나 시청자, 청취자의 호기심과 흥미를 얻어야 하기에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 사주나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만 않아도 다행일 정도다. 페이크 뉴스도 넘쳐난다. 하인리히 뷜의 <카타리나 블룸의 명예>가 언론의 비도덕적인 폭력이 인간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소설로 알려주었고, JTBC라 국정농단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노력한 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 언론을 탓할 수만은 없다. 나의 의도하지 않은 편향적 사고와 전문가들의 말이라면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는 의존적 사고도 문제다. 현상과 문제를 이해하고 결정하고 해결하는데, 내가 가장 문제인 거다.

 

사실에 근거해서 이해하고 결정하고 해결하려 노력하자는 책을 만난다. 스웨덴 겝마인더재단 공동설립자인 한스 로슬링과 아들, 며느리의 공동작인 <팩트풀리스>.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근거도 있으나 정확한 사실 파악을 위해 저자가 고안한 물방울 도표 디자인‘Dollar street'는 멋진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특히 좌표의 원점으로 갈수록 수치가 커지는 그래프 방식은 탁월하다. 그래프에서 사실을 파악하는 것 못지않게 미래를 보라 한다.

<팩트풀니스>10가지 본능적 반응을 정의한다. 저자의 실수, 실패한 경험에 알 만한 사람들이 가진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으려 비판적으로 사고하라 제안한다. 데이터를 들이대며 주장하니 설득력이 있다. 독자는 책의 앞부분에서 13개 문항에 답해야 한다.(참고로 나는 6개만 맞추었을 뿐이다. 대부분 응답자가 침팬지의 응답 수준인 정답율 33%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침팬지 수준보다 높았다고 자위할 수 없었다.)

 

한스 로슬링은 사람들이 세상은 둘로 나뉜다는 오해를 한다고 지적한다.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본능 탓이다. 이것이 간극 본능이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나누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간극이란다. 세계는 선진국과 개도국으로 분할하기보다 완만한 다양성을 갖고 있다. 앞표지의 물방울 도표 디자인을 보면 단박에 공감할 수 있다. 왜 그런가? 과거의 지식을 업그레이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 문장이 FACTFULNERR의 제안 출발점이며, 공감한다) 어떤 현상과 문제가 극과 극으로 갈라지지 않는다. 평균 비교를 조심하고, 극단 비교를 조심하며, 위에서 내려다보면 시야가 왜곡된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한다.

 

우리는 나쁜 것에 더 주목하는 부정 본능이 있단다. 세계의 여러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고 하지만, 조용하게 발전한다고 보라 한다. 극빈층의 비율이 1800(85%), 1966(50%), 2017(9%)으로 감소한 데이터를 제시한다. 부정본능을 버리려면 평균은 분산을 숨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대상을 미화한다. 보도는 선별적이다. 긍정적 변화는 훨씬 흔하지만, 그 소식은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세상은 조금씩이라도 긍정적으로 발전한다.

 

인구증가 그래프를 통해 직선 본능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아동 인구는 균형을 이루고 성인 인구 증가가 채움 현상을 통해 더는 폭발적이지 않으리란 거다. 인구 성장을 멈추는 유일하게 증명된 방법은 극빈층을 없애고 교육과 피임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거다. 직선 본능을 억제하려면 세상에 다양한 곡선이 존재함을 기억하라.

 

공포에 떨면 상황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 ‘공포본능을 억제하려면 위험성을 계산하라. 실행하기 전에 공포가 진정될 때까지 결정을 유보하라.

 

어떤 수가 크든 작든 인상적으로 보이지만 달랑 하나뿐이라는 걸 알아봐야 한다. ‘크기본능을 억제하려면 비율을 고려해라. 비교해라. 비교하지 않고는 절대 사실을 알 수 없다. 수치에서 80/20을 구분해 중요성을 판단해라. 수치를 나누어라. 크기가 다른 집단을 비교할 때 1인당 수치를 비교해 보라.

(베트남인들이 느끼는 전쟁의 크기 : 중국 > 프랑스 > 미국)

 

일반화 본능 : 어떤 설명이 범주를 이용한다는 걸 알아보고 범주가 오판일 수 있다고 생각하라. 고정관념을 깨려면, 내부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찾는다. (문화나 종교가 아니라 소득 수준에 따른다) ‘다수에 주의하라. %로 파악해야 한다. 다수는 51%~99%까지다. 예외 사례에 주의해라. 내 경험을 일반화하지 마라.(튀니지의 집짓기) 하나의 집단을 다른 집단으로 일반화할 때 주의하라(아기와 군인을 엎어 재우기). 생생한 사례가 일반사례가 아닐 수 있다.

 

타고난 특성이 사람, 국가, 종교, 문호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운명본능이다. 사회와 문화는 계속 움직인다. 아프리카가 계속 가난할 것이라는 생각은 유럽인의 생각이다. 사회와 경제가 발전하면서 가치는 바뀐다. 가치가 불변하지 않는다. 더딘 변화는 불변이 아니다. (1%의 성장은 75년 후 2배 성장, 2% 성장은 35년 뒤 2배로 성장한다) 지식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많은 기초 지식은 아주 빠르게 낡아 버린다. 우윤 채소처럼 계속 신선도를 유지해야 한다. 할아버지와 이야기해 보라.

 

단일 관점 본능 : 하나의 관점으로 보면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음을 보고 다각도로 해결책을 찾으려 해야 한다. 특정 생각에 찬성하거나 반대한다면 그 관점에 맞지 않는 정보를 볼 수 없다. 내 전문성의 한계를 늘 의식하라. 전문가는 자기 분야에서만 전문가임을 기억하라.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은 없다. 건강한 나라 중 가장 가난한 쿠바(정부가 모두 해결할 수 없다). 부유한 나라 중 가장 허약한 미국(시장이 모두 해결할 수 없다) 단순한 생각과 단순한 해결책을 조심하라.

 

왜 안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고 단순한 이유를 찾으려는 본능이 비난 본능이다. 지금 희생양이 이용되고 있다는 걸 알아본다면 비난 본능을 이해한 거다. 악당을 찾지 말고 원인을, 영웅보다 시스템을 찾아야 한다. 교황의 지도력이 침실에 이르지 못한다. 사회를 꾸려나가는 것은 그 나라 국민인 대다수의 사람이다. 토크빌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대통령이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요구한다. 사회기반과 기술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다급함 본능에서 사실 충실성이란 어떤 결정이 다급하게 이루어진다는 걸 알아보는 것이고, 다급히 결정해야 할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두려움에 다급함이 더해지면 어리석고 극적인 결정을 내려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난다. 데이터를 신뢰해야 한다. 극적 조치를 경계해라. 우리가 정말 걱정할 일은 세계적 유행병, 금융위기, 3차대전, 기후변화, 극도의 빈곤이다.

 

11장은 사실 충실성을 실천하자며 세계는 계속 변할 것이고 무지한 어른의 문제는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학교에서 배운 세계에 관한 지식은 졸업하고 10~20년이 지나면 낡은 지식이 된다. 그래서 어른의 지식도 계속 업데이트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p. 357)고 말한다.

 

책 앞부분에서 푼 13문항을 다시 푼다고 다 맞힐 자신이 없다. 당장 저자의 제안처럼 내가 변할 수도 없다. 하지만 하나씩 곰곰하게 생각하고 실천해 볼 일이다. 날을 잡아 갭마인더재단을 샅샅이 훑어 자료를 받아두면 여러 프리젠테이션에 도움이 될 듯하다. <팩트풀니스>는 김영사에서 20193월에 초판, 51일에 초판 15쇄를 473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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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말이 좋아서
김준태 지음 / 김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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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란 얼음장을 깨듯이 의식을 깨우치는 것이다. 카프카가 생각하는 책이다. 책이란 독자가 배울 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고르고 글을 쓴다. 서양에서 소논문을 에세이라고 하고, 우리는 에세이를 수필과 구분하지 않는다. 에세이란 것이 대개는 살아가는 이야기라서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내가 책을 고를 때 에세이는 순위에 없거나 슈퍼 베스트셀러가 아니면 사지 않는 까닭이다. 내 생각을 고쳐야 할 책을 읽었다. 김준태의 <나무의 말이 좋아서>를 읽고 든 생각이다.
우리는 산에 간다고 말한다. 나무를 보러 가던, 꽃과 숲을 보러 가던 산에 간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운동 삼아 간다.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으리란 기대로 가기도 한다. 모두 산에 오른다고 한다. 그래서 등산이다.
나는 지형학을 배운 탓에 산을 조산운동이나 침식작용으로 형성 원인을 파악하고 높이가 얼마인가, 몇 시간이면 오르고 내려오는가로 산을 이해한다. 보통 사람들은 경치가 좋다나 나쁘다는 것으로 산을 판단한다. 저자는 산을 말하며 산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 숲으로 본다. 산을 고도의 차이로 보는 사람과 숲으로 보는 사람이 있음을 배운다. 이 책은 산을 숲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저자가 쓴 글이다. 독서가 다양한 관점을 갖게 해야 한다고 할 때, <나무의 말이 좋아서>는 몫을 단단히 해낸다. 그러니 흔한 에세이가 아니다.
식물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면 나올 수 없는 책이다. 식물에 대해 알고 있다고 쓴 전문 서적도 아니다. 한두 해 삶을 담아서 쓸 수 있는 책도 아니다. 식물학에 대한 지식이 15년 이상이라는 시간 쌓음 속에서 저자의 삶에 버무려져 있다. 베이비부머로 살아온 과정의 경험치를 숲과 연결하고 문학에도 연결한다. 생각은 언제나 안으로 나를 향하고, 밖으로는 교육과 미래라는 목표에 맞닿아 있다. 게다가 전문 지식(예: 질소와 광합성, 꽃과 나무 이름, 뿌리의 역할, 수피 분류 등)을 쉽게 풀어 독자가 어렵다고 느낄 수 없다.
사계로 구성한 장을 따라가 본다. (에세이를 카프카의 관점으로 이해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따라가다가 저자에게 혼날지도 모른 생각을 한다. 혼이 나더라도 쉽게 버릴 수 없는 나의 독서법이다.)
사람이 예뻐 보이고 내 마음이 넓어지고 풍경이 아름답게 보이면 봄이 가져다준 선물이란 생각은 공감한다. 겨울과 봄이 함께할 때 생강나무에서 봄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자연에서 생명의 섭리, 존재 이유를 배운다. 벚꽃과 목련, 동백의 마지막을 묘사한 부분은 김훈의 에세이를 보는 듯하다. 검불 사이의 꽃, 키 작은 나무, 키 큰 나무의 순으로 잎눈을 연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꽃은 조르바가 말한 ‘아물지 않는 상처’다. 입 밖으로 내기 어려운 단어가 가장 아름답다.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에서 합스부르크 립을 이어주고 타감 작용에서 계급적 멍에를 연결한다. 역사에 대한 이해와 생활 철학이 있기에 가능한 글이다. 다람쥐와 청설모의 공존을 배우면 여름으로 간다.
참숯의 과학을 배우고, 측백나무와 가로등의 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거둔 저자가 자랑스럽다. 독자에게 올여름을 도토리나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를 구분하지 못한 마지막 해로 만들게 한다. 팽나무의 수관에서 어디서 태어나 누구와 사느냐를 숙명과 연결한다. 덩굴식물, 칡에서 성장과 갈등만이 아니라 멈추기, 나를 바라보기를 배워야 타산지석이다. 숲에서 자신을 만났으니 가을로 간다.
밟히는 도토리 몇 알을 주워 숲속으로 던지는 일은 사소한 일일 수 없다. 알지 못하면 할 수 없다.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철학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독자가 동참하길 저자가 바라지 않을까. 열매에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의 메세지를 골라 부모 수업받지 않아 그렇다는 핑계를 대지 마라 경고한다. 행복을 미끼로 경쟁을 부추기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겨울이다.
뿌리와 곰팡이의 공존을 배우니 숲에서 뿌리를 피해 걸어야 하겠다. 저자는 나를 객체로, 대상으로 보려 시도하는 관점을 갖고 있다. 외부와의 접촉을 일시 끊어내고 나의 내부를 들여다보아야 번 아웃이니 우울을 떨칠 수 있다고 보는 독자의 시각과 연결해 본다. 배려는 선택이 아니고 공존의 원칙이란다. 올겨울에 숲에서 하늘을 배경으로 겨울나무를 올려다보리라.
봄, 여름, 가을의 꽃, 나무, 숲 사진 수십 장. 열매와 수피 사진 수십 장과 상고대 사진의 아름다움을 따로 적지 않는다. 사진 배치와 설명은 둘 곳과 뺄 곳을 알맞게 정해 두고 있다.
사람들이 이 책으로 숲길과 친해지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응원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에게 보탬이 되기를 기대하는 저자의 마음도 응원한다.
숲길에서 저자를 만나고 싶다.
<나무의 말이 좋아서>는 김영사에서 2019년 6월 10일 본문 223쪽 분량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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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록 - 덕성에 기반한 공동체, 그 유교적 구상
한형조 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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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27.()

좋은 책은 글 속에서 다른 책을 추천한다. 자신이 최고라고 하지 않는다. 꼬리 무는 책 읽기로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으니 독자가 성장하게 돕는다.

오월에 읽자고 사둔 <근사록><심경>을 쉽게 봤다. 실수다. 책을 읽는 순서가 틀렸다. 원문과 해석을 본 후에야 연구물을 보는 것이 좋을 거라는 판단에서 하는 생각이다. 심경을 읽고 근사록을 읽으면 좋을 듯하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심경>을 이해하고 내놓은 책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바른 순서는 진덕수의 <심경부주>를 공부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심경>,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이 내놓은 <근사록>을 공부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가 내놓은 <근사록>을 읽어야 마땅하다. 이걸 거꾸로 하고 있다.

 

<근사록> 4장 공동체에서 이동희의 머리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현대의 기준으로 과거의 사상을 비난하지 말라. 아리스토텔레스를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고 비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 무리한 비판이다. 유교 사상이 가진 시대적 제한을 유교의 결정적 오류로 몰아붙이고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비난하는 것은 무분별한 발상이다. 유교가 가진 시대적 한계가 무엇이고, 유교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초시대적인 보편적인 메시지가 무엇인가 알아야 한다. 이는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Axial Age)’라고 부른 시기에서 영감을 얻으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카렌 암스트롱은 <축의 시대>에서 인류는 한 번도 축의 시대의 통찰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유학에 대한 관점을 바르게 갖게 된 일만으로도 한 권의 <근사록>을 읽은 보람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의 <근사록>은 도(), 공부, 가족, 공동체, 정치라는 5개 장으로 구성한 연구물이다.

1장 도()<근사록>에 담긴 학문의 구상이란 장 제목을 두고 있다. 삶에 의미와 방향을 제시하는 철학이 근대 이후 과학 기술의 영향을 받아 발전해왔으나 근본적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고 시작한다. 반성이란 전통에 대한 무시에서 근대에 맞지 않는 것을 간과하거나 버렸다고 본다.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 새길을 모색할 수 있게 한다. 20세기에 서양을 따라가려 앞만 보던 자세에서 우리의 전통 안에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지혜를 찾는 전환을 시도한다. <근사록>은 주자학의 입문서이자 교과서라는 지위를 가졌었다, 20세기에 잊혀진 <근사록>은 율곡 계통의 기호 학인들이 중시했다. <근사록>에서 말하는 학문이란 자신을 가다듬고 덕성을 키워나가는, 인격을 도야하는 방법과 기술이다. 본격적으로 태극도설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는데, 이 지점에서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이 내놓은 <근사록>을 먼저 공부해야 한다는 판단이 선다.

 

2장 공부는 생명의 의미에 대한 자각과 실천을 다룬다. 학문은 내적 자각에 이르는 길이다. “학문의 기초는 먼저 몸과 마음이 되어야 한다.” ‘학문은 그 자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전 과정과 결합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힘써 도에 가깝도록 자기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근사록>의 이해를 위해서 주역의 괘상(卦象)이 가진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데 독자에겐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학문의 목표와 관련해 기억할 문장은 맛있는 음식이 몸을 해치지 않듯이 공부로 인해 마음의 병이 들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그래서 공부하지 않으면 늙고 쇠약해진다는 말이다. “글을 읽어서 자득함이 없다면 많이 읽어도 소용없으며, 구구하게 알아본들 터득한 것이 없다.”도 와 닿는다. 인식의 수평적 확대 못지않게 수직적 깊이도 중요하다. 학문의 방법으로 욕심을 없애고 마음과 본성을 보존하고 기르며 극기하라 한다. 수양의 목표를 매슬로우의 욕구의 위계 중 자아실현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3장은 가족의 주자학적 구상을 살핀다. 송대이후 20세기 중반까지 아버지 중심의 가족 질서에서 소외된 존재가 있었고 배제된 가치가 있었다. 현대 가족의 개념에 비추어 바람직한 가족의 모습을 그려보려 한다.

<근사록>이 추구한 가족에 대한 구상은 첫째, 자손들을 한곳에 모여 살게 하고 종자(宗子)가 통솔하는 사회조직이었다. 둘째, 가묘(家廟)를 세우고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셋째, 가법(家法)으로 가족 질서를 유지하려고 했다. 구상은 송대의 혼란 속에서 예악이 붕괴하는 국면을 타개하고 내성외왕을 추구하던 송대 사상가들의 이상이 담겨 있다. 가족은 개인과 사회를 이어주는 중요한 마디로 보았다. 송대는 여성의 상황이 약화한 시기였다. 가족 내에서 아버지(남성)와 어머니(여성)를 모시는 도가 달라야 한다고 여겼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질서를 보완하는 존재로 여겼다. 아버지와 군주에게 하늘의 뜻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였고, 주자학에서 가족에겐 결속과 질서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였다. 현대 개인주의와 가족 개념에서 여성으로부터 가장 비판받는 대목이다.

 

4장 공동체 : 공동체주의 윤리를 통해 본 주자학의 <근사록>송대 신유학자들이 극단적인 개인주의 입장을 피해 도덕적 정신적 공동체에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노장사상과 당시 불교가 개인적인 자아를 강조했던 것과 구별된다. <근사록>을 앤솔로지(anthology)로 보는 것은 해석학적 접근이며, 주자가 이것만 공부해서는 안 된다고 한 의미와 통한다.”"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넓게 배우되 뜻을 독실하게 하여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일에서 생각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다)“의 근사(近思)를 책의 표제로 삼았다고 알려준다. 개인의 수양은 내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원리를 반영하는 사회 질서의 구현을 통해 완전하게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불교와 도교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성을 확보하려 했다. <근사록>이 말하는 개인의 수양은 내부적으로 우주적 질서를 구현하고 그것을 공동체적 삶에서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p.149) ”극기복례는 이기적 자아를 억제하고 자아를 도덕적 정신적 공동체에 자발적으로 참가 시키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p.156) 근사록에서 개인의 의미는 공동체에서 완성되는 것으로 본다.

 

5장 무위와 유위 : 주자학은 사서 가운데 <대학>을 중시하는데 근사록도 대학의 팔조목 순서를 따른다. “주자에 따르면 격물·치지·성의·정심은 명명덕(明明德) 계열에 속하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신민(新民) 계열에 속한다.” 명명덕이란 천()이 부여하였으나 인욕에 의해 가려져 있던 마음의 본성인 明德을 다시 밝히는 내적인 자기반성이다.(이제 명명덕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신민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주어져 있는 명덕을 다시 밝혀주는 외적인 교화(敎化) 활동이다. 5장의 연구자 최진덕은 명명덕은 마음의 내면세계 즉 무위의 자연 세계로의 퇴행인 데 반해, 신민은 마음 바깥 타인들의 세계, 작위적인 교육과 정치가 요구되는 유위의 인간세계로의 진취이다.”라고 푼다. 독자는 퇴행이란 표현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만 뺀다면 쉽게 풀어준 것으로 판단한다.

체와 용은 서로 다른 동시에 서로 같다는 것이 체용(體用)론의 핵심논리다. 체에서 용이 나오고 용은 다시 체로 돌아가는 가운데 체와 용은 상호작용한다. “명명덕과 신민이 체용 관계라면, 명명덕은 신민의 체에 해당하므로, 신민을 잘 하려면 앞서 명명덕부터 잘 해야 할 것이고, 명명덕만 잘하면 신민은 저절로 될 것이다. ”(p. 180) 이것이 <대학> 팔조목과 <근사록>의 핵심 가르침이다. 마음 공부 즉 심학(心學)이 천리를 체득하기 위한 이학(理學)이다. "주자학에서 小學禮學이고, 大學心學이다."(p183)

주자학의 본체론은 무위무형(無爲無形)의 이()를 유위유형(有爲有形)의 기()보다 중시하고, 그 공부론은 미발(未發)할 때의 거경함양(居敬涵養)을 이발(已發)할 때의 궁리성찰(窮理省察)보다 중시한다.”(p.187) 다시 말해 머물러 있음()을 나아감()보다 더 주의하고 물러감(退)을 나아감()보다 더 중시한다.(p.187)

보다 를 좇고 를 피하려는 것이 천하의 상정(常情)이다. 천하의 상정은 인욕이다. 소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손해를 극소화하려計較를 일삼는다. 인간 세계를 만들어가는 핵심에는 계교가 있다. 이기심에서 나온 계교야말로 이성(reason)의 본질이다. 무위란 작위 하는 바가 없음이다. 무위에 바탕을 두고 행하면 이고 천리의 이다. 반면 작위하는 바가 있음은 유위다. 유위에 바탕을 두고 행하면 이고 인욕의 이다. 의 문제는 爲己爲人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하면 爲己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그들에게 보여주려고 행위를 하면 爲人이다. 위기와 위인이란 예를 맹자는 망자를 위한 곡에서 본다.

주자학에서 (기미)사이, 未發已發의 사이, 의 사이다. ()는 기()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기와 마찬가지로 때 역시 무위와 유위, 자연과 인간이 애매하게 교차하는 처와 출의 사이, 퇴와 진의 사이이다. (p.211)

이 우주는 음과 양, 정과 동, 미발과 이발, 무위와 유위이 시작도 끝도 없는 교육이다. 인간의 작위도 그런 우주적 교역의 일부일 뿐이다.

 

독자가 읽은 <근사록>덕성에 기반한 공동체, 그 유교적 구상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2012년 발행한 것이다.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이 내놓은 <근사록>을 공부하고 이 <근사록>을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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