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이야기 4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4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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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4

2019.12.11.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는 모두 일곱 권이다. 7년에 걸쳐 출간됐다. 수년 전에 3권까지 읽은 줄 모르고 읽다보니 1,2,3,5,6,7,4권의 순으로 읽었다. 중국인 이야기 4는 쑹메이링을 둘러싼 장쉐량과 장제스의 풀리지 않는 삼각관계란 소재로 시작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기까지 국공합작품인 황푸군관학교 출신들의 활약상,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의 수난과 평민화 과정도 소개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과정에서 북한이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가도 알 수 있다. 이 내용은 후일 통일된 이후에 더 정확하게 밝혀질 일이지만, 어느 곳에서도 배운바가 없어 고개를 끄덕이며 중국과 북한의 연결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신중국 수립 초기의 외교부 풍경도 흥미진진하다.

 

장학량(장작림)과 장쉐량(장학량)은 만주를 배경으로 걸출한 삶을 살았다. 장쉐량이 장제스를 시안에 감금하고 국공합작을 이끈 과정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덕분에 장제스가 장쉐량을 50년 넘게 연금시켰고, 연인이었던 쑹메이링의 도움으로 장쉐량이 천명을 다했던 거다. 책 뒤표지에 소개한 장쉐량과 쑹메이링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9361212일 밤, 1,200년 전 양귀비가 온천을 즐기던 시안 교외 화청지에 총성이 울렸다. 정변을 일으킨 중국의 2인자 장쉐량은 최고 통치권자 장제스를 인질로 삼아 2차 국공합작을 요구했다. 쑹메이링은 쟝쉐량이 남편을 인질로 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했지만 그래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시안 공항에 내렸을 때 장쉐량을 발견하자 얼굴이 굳어졌지만 곤 함박웃음을 짓는 사진이 남아 있다. 사지에 빠져 있는 남편을 걱정하는 여자의 모습이 아니다. 마중 나온 장쉐량을 바라보는 모습이 그렇게 정다울 수가 없었다. 반가워하기는 장쉐량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한때 연인 사이였다.”

시안사변은 중국 현대사의 방향을 틀었고 기록을 남기지 않아 기상천외한 이야기와 함께 쑹메이링과 장쉐량의 이야기는 중국인들에게 영원한 얘깃거리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쑹메이링의 기억에 장쉐량은 동북이 일본 관동군의 수중에 들어가자 그간 즐기던 아편과 모르핀을 끊어버렸다. 부관에게 권총을 건네며 내가 다시 아편에 손을 대면 나를 총살하라고 명령했다. 일주일 만에 효과를 보았고, 비행기도 직접 조종하고 자동차도 제 손으로 몰 때가 많았다.

 

1917.7.25. ‘카라한 선언’ : “러시아 제국 시절 중국과 체결한 모든 불평등 조약을 파기하고 만주를 비롯한 모든 지역에서 취했던 이권을 일률적으로 포기한다.” 이 선언은 중국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중공과 북한 : 신중국 수립에 기여한 북한 -

마오쩌둥이 6.25 전쟁이 한창일 무렵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에게 했다는

우리 두 집안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너희가 돕고, 너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가 도와야 되는 그런 사이다. 지금 조선은 위중지난에 처해 있다. 우리가 어찌 수수방관할 수 있겠는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오성홍기에는 조선열사들의 선혈이 배어 있다.”

이외에도 1958년 평양을 방문한 저우언라이, 1963년 북한을 방문한 중국 국가 주석 류사오치, 1972년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의 김일성 60회 생일 축하 전문, 70회 생일 축하전문, 199280회 생일 축하전문, 2014년 시진핑이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김정은에게 보낸 축하전문(p.271~276)에서 북한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그 까닭은 만주 일대에서 장제스의 국민당군과 동북민주연군(중국공산당)간 전투에서 북한은 압록강 인근 초산, 만포, 강계, 후창, 중강진, 나남 등지에 중국공산당의 물자, 무기, 환자, 가족을 피난시키거나 보관할 수 있도록 조치했기 때문이며, 10만 명이 무장할 수 있는 무기(일본군이 남기고 간)와 탄약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중국공산당(동북민주연군)은 만주에서 장세스의 국민당군을 격파하고 중국 대륙을 점령할 수 있었다.

 

조선인 정율성(1914~1976)은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를 작곡했다. 중국측 기록에 따르면 한 사람이 두 나라의 군가를 작곡한 사람은 정율성이 유일하다고 한다.(p.317) 부인 딩쉐쑹은 평양이민공사(동국야전군이 승리할 때까지 북한과 중국공산당의 협력을 주관한 기관) 비서장 역할을 했다.

 

일본 패망 직후, 한반도에는 6만 명에 가까운 화교가 살고 있었다. 그 중 2만 명이 북한 지역에 살고 있었다. 일본은 36년간 화교와 조선인을 이간시켰다. 특히 중일전쟁이 본격화된 후에는 조선인들에게 지구상에서 가장 게으르고, 비겁하고, 야비하고, 지저분한 민족이 중국 민족이라고 각인시키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중국인 이야기시리즈 전권을 읽어가며, 학창시절은 냉전기였고, 6.25에 북한을 지원했기에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해 배운 바는 극히 일부분이다. 남과 북이 대치한 현재도 중화인민공화국과 북한 간의 협조와 비난 전체를 알 수 없다. 역사는 훗날 사실을 드러내낼 것이다. 멀리 않은 시기에 한반도가 교류하고 통일을 이루면 더 자세한 사실들이 드러나겠지. 나와 같은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현재의 상황에서 김명호 교수의 책을 통해 과거사의 일부를 알게 된 일이 다행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었다.

 

중국인 이야기 4는 한길사에서 2105년에 본문 360쪽 분량으로 내놓았.

 

 

#노충덕 #독서로말하라 #노충덕인문아카데미 #중국인이야기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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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의 인문 여행
이영민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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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독자로서 지리학자의 인문 여행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생각한다. 메모하며 생각한 것은 전공 책에 가깝게 느낄 수밖에 없다는 거다. 알고 있던 것을 확인하고,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은 메모하며 읽다 보니 독서 노트가 전공 노트가 될 듯하다. 오랜만에 전공 공부하는 태도로 읽는다.

 

1부 여행과 지리학은 같은 것을 바라보고 경험한다.

= 삶의 장소를 연구하는 지리학 삶의 장소를 경험하는 여행

- 지리학자가 해 질 녘에 모뉴먼트밸리를 찾은 이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보고 싶은 만큼 알아야 한다와 같다.

뷰트(butte) : 건조한 지역에 고립적으로 솟아 있는 작은 언덕, 주변 암석이 침식으로 깎여 나가고 상대적으로 침식에 강한 암석 성분이 남아 측면은 수직으로 깎인 절벽으로 구성되고 정상부는 탁자 모양으로 평평하게 남아 있다.

- 알고 떠나면 여행이 그리고 인생이 즐겁다.

극지방에 가까울수록 겨울철 밤이 길어 黑夜라 한다. 고위도 특히 위도 66.5도 이상의 지역이 이런 현상이 극단적으로 나타나 極夜라고도 한다. 여름에는 낮이 길어져 밤 열 시가 다 된 시각에도 해가 완전히 지지 않는 白夜 현상이 나타난다. 오로라는 북위 6633분의 지점 이상 지역에서만 볼 수 있어 겨울철 엄청난 추위를 감수해야만 한다. 캐나다 북쪽 허드슨만 근처 옐로나이프가 오로라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마을이다.

 

= ‘얼마나 멀리가 아니라 얼마나 낯설게

- 장소가 주는 힘이란 무엇인가

장소감(sense of place) : 제자리에 있는 in place 느낌, 제자리를 벗어난 out of place 느낌

아베그웨이트(Abegweit)는 원주민 말로 파도 위의 요람에 넣어진 땅이란 의미다. ‘세인트로렌스 만의 정원(Garden of the Gulf Saint Lawrence)으로 부른다.

- 여행이란 의도적으로 낯선 장소감을 느끼는 여정

- 일상에서 세우는 오감의 안테나

 

=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넘어가는 시작, 국경

20194월 기준 한국 여권으로 166개국에 자동 입국이 가능하다. 여권지수(여권 파워 순위) 세계 3위 국가다. 1위 아랍에미리트(169개국), 2위 룩셈부르크, 핀란드, 독일, 스페인(167개국)

- 국경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

블리자드(blizzard) : 영미권 용어로 고위도 지역에서 겨울철에 눈보라를 수반하여 강력하게 불어오는 차가운 폭풍(러시아에서 Buran, Purga, 아르헨티나에서 Pampero)

- 여행의 진정한 시작, 마음속 경계 넘기

특정 지역의 정치적 특성이나 사회문화적 특성은 대부분 현실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때로는 외부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 지역 내 아주 작은 문제가 전체의 문제인 양 과도하게 증폭된다. 여행은 갇혀 있는그들과 자유로운내가 조우하는 여행의 현장에서 그들과 나의 위치, 삶의 이유 그리고 상호 간의 관계를 겸손하게 숙고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 관광은 돌아옴을 여행은 떠남을 목적으로 한다.

travel의 라틴어 어원 트라바일travail은 고통, 고생, 위기, 걱정이란 뜻을 담고 있다. 이븐바투타와 마르코폴로의 여정을 생각해 보라.

- 왜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는가

17세기 영국 귀족들의 grand tour가 시초다. 유럽 문화의 원류인 그리스 로마 문화를 동경해 주로 이탈리아를 여행한다. 19세기 산업혁명의 성과로 경제력 향상, 교통수단의 발달이 여가와 견문 확장을 위한 여행을 확산시켰다. 2차 대전 후 산업형 여행, 패키지 관광이 증가했다. 전문 여행사가 등장하고, 1841년 토머스 쿡이 세계 최초로 전문 가이드가 여행을 안내하는 여행사를 꾸렸다.

관광객의 시선(Tourists Gaze) : 관광객들은 전통 유산을 지닌 어떤 지역을 방문할 때 현지인들이 전통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실제는 개조된 타자, ‘발명된 타자인 재현된 퍼포먼스를 본다.

- 여행관광은 어떻게 다른가

패키지 관광은 재현된 퍼포먼스를 경험하는 일정이 포함된다.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어 있다. 예기치 않은 경험을 최대한 막아 안전을 보장하려 한다.

여행은 객지를 두루 돌아다니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 속으로 동참해 들어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대략적인 여정을 짜서 무엇을 보고 체험할지 정하기는 하나 반드시 계획한 것만 수행하고 돌아오지는 않는다. 예기치 않은 경험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만족감을 더 높이려고 한다.

- 관광객과 여행자가 낯섦을 대하는 자세

관광은 경계 넘어 무대에서 활동하지만 편안함과 안전함을 확보하기 위해 마음속의 경계를 유지한다. 여행에도 경계는 존재하지만 차단막이 아닌 연결 통로로서 늘 열려있고 언제든 넘나들 수 있다. 관광은 경계의 이쪽과 저쪽을 견주며 살펴본다. 비교가 지나쳐 문화의 차이우열로 나눌 수 있다. 여행은 비교하지 않고 이해하려 한다. 시간적 지리적 맥락 속에서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한다. 이때 기준은 나가 아닌, 그들이다.

-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를 발견하는 여정

사람과 사물에 대해 따뜻하면서도 해박한 식견은 평생 지구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마크 트웨인 여행기)

 

= 그래도 종이 지도는 필요하다

- 안내서가 추천하는 여행이 즐겁지 않은 이유(론리 플래닛은 서구 중심적이다)

- 주민들은 모르는 호보켄의 명물, <플랜더스의 개> 동상은 일본 T V방송국과 벨기에 지방 정부의 합작품이다.

- 객관적이고도 정확한 여행법, 지도

 

2부 장소에서 의미를 끄집어내면 여행이 즐겁다.

=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경계상의 공간, 공항

- 경계의 안쪽도 바깥쪽도 아닌 전이적 장소, 공항

공항, 기차역, 항구, 버스터미널은 전이적 장소.

- 세계 최강 여권으로도 넘지 못 할 뻔한 프랑스 국경 :카르카손 공항 에피소드

- 해외에서 한국인으로서의 나를 자각하는 아이러니 : 과거 공산권 국가 여행

 

= 교통수단을 넘어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여행, 열차

- 여행지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 (하루키 생각)

- 기차는 일정을 지키도록 도와줄 수단만이 아니다.

쿠셋에서 만나 마자르족과의 만남, 암트랙, 차창여행

 

= 보는 여행에서 느끼는 여행으로 여행자의 몸

- 내면의 자아와 여행지 사이의 경계, 여행자의 몸

- 보러 가서는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선암사 : 인간은 오감을 통해 장소를 경험한다.

- 사진이 아니라 사람, 이야기, 추억을 생생하게 남기는 여행

인간이 오감을 통해 감지하는 장소의 분위기는 경관land-scape, 청관sound-scape, 후관smell-scape, 미관taste-scape, 촉관tactile-scape으로 구분할 수 있다.

- 자연환경과 문화가 버무려진 음식으로 맛보는 여행

우즈베케스탄 부하라역의 오쉬’osh는 우리 식으로 볶음밥이다. 고려인은 지름밥이라 한다. 영어식으로는 필라프pilaf .

 

= 지리적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최상의 무대, 전망대와 버스

- 맥락을 읽어야 보이는 중국의 이슬람 문화

회족(색목인) 은 과거 실크로드나 대양루트를 통해 중국에 들어온 아라비아 상인들이 시조다. 하얼빈과 선양의 모스크, 이 지역의 모스크는 명, 청시대 사합원四合院형 주택 양식에 미네라트(이슬람 사원의 종탑) 기능을 하는 누각 지붕 꼭대기 위의 초승달 문양 양식이 있어서 알 수 있다.

- 시베리아 평원 한가운데서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를 상상하다.

하바롭스크 주변 유대인 자치주(1920년대 20만 명에서 최근 4,000여 명 거주)

- 도시 전체를 한꺼번에 조망하는 눈, 전망대

홋카이도의 하코다테(1854 일본 최초 개항장), 루마니아 콘스탄차, 바쿠의 메이든 타워, 시칠리아의 에리체,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푸시산, 런던아이, 싱가포르 플라이어

- 지리학자는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버스를 탄다.

 

= 현재가 살아 숨 쉬는 박물관, 시장, 원주민 마을

- 여행할 때 낯선 문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 여행지의 생생한 삶을 보고 싶다면 어디가 좋을까

시장이야말로 세상 모든 삶의 동질성을 집약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삶의 현장이다.

- 직업이 원주민인 사람들 : 퍼포먼스

 

3부 여행자를 위해 존재하는 장소는 없다.

=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여행은 계속된다.

- 언어 자체는 목적이 아닌 의사소통 수단일 뿐이다.

- 여행할 때 언어보다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만난 몽골계 부리야트족과의 만남, 몽골어로 대한민국은 솔롱고스solongos.

 

= 지도 위에 그려진 경계를 허물고 낯설게 바라보기

- 같은 세계, 다양한 지도, 다른 세계 인식

메르카트로 도법(방향), 피터스 도법(면적)

- 대발견시대, 새롭게 만들어진지명들

아메리카, 빅토리아 폭포(모시-오야-툰야, ‘천둥이 치는 연기’) 아이보리 코스트, 필리핀(마할리카, 자유인으로 국명 변경 추진 중), 에베레스트산(초모롱마, 지구의 , 사가르마타, 눈의 여신,) K2, 짐바브웨(로디지아, 세실 로즈의 땅)

- 주변 시각에서 바라본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이분법적 인식, 중심과 주변, 제주도(혼인지 이야기, 목호의 난) 출륙 금지령, 구한말 이재수의 난, 4.3 사건)

 

= 삶터에서의 권리 여행지로서의 행복

- 환상이 아닌 현실 속 삶의 현장, 송네 피오르의 페리호는 관광용이자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완행 시외버스다.

-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오버투어리즘 : 수용 가능한 범위 이상으로 관광객이 몰려와 주민들이 전에 없던 불편함을 겪는다. 관광객 증가로 인한 소음 증가, 쓰레기 증가, 교통 및 주차 혼잡, 환경 파괴, 물가와 주거비 상승, 지역 정체성 혼란으로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ristification 현상 발생

관광객, 당신의 화려한 여행은 내 일상의 고통’ (바르셀로나), 제주도, 북촌한옥마을, 감천문화마을, 동피랑마을- 관광객의 인식 부족과 매너 없는 행동 탓

- 현지인 없이 여행은 이루어질 수 없다.

 

= 불편한 응시에서 다름을 이해하는 소통의 눈으로

- 여행자와 현지인 사이에 오가는 시선의 문제

- 응시를 불편하게 만드는 식민주의적 세계관

- 우연한 손님으로서의 갖춰야 할 예의 : 셰르파는 고산족 명칭에서 히말라야 등반 안내인으로 통칭

- 여행자의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발휘하는 공정여행

현지인이 이용하는 교통수단 이용하기

 

= 여행과 현실 간의 간극을 줄이는 세 번째 여행

한국적인 기념품을 가져가 현지인에게 주자

- 일상의 변화를 끌어내는 또 한 번의 여행

여행하며 메모하고 여행을 마치고 다시 정리하고, 사진도 최단 시간 안에 정리해야 느낌을 덜 잊는다.

- 여행을 다녀온 후 지도가 어떻게 달라 보이는가

 

= 에필로그 : 주도적인 여행을 통해 여행력을 계발하자. 세계 0대 자연경관은 없다. 지리적 다양성은 내면의 잠재적 욕망을 점화시킨다.

 

지리학자의 인문 여행은 이화여대 교양과목(여행과 지리 : 글로벌화의 지역 탐색)을 엮어 낸 것이다. 글샘출판사의 아날로그에서 20196월 본문 251쪽 분량으로 초판을 내놓았다. 저자는 이화여대 이영민 교수다.

 

 

#노충덕 #독서로말하라 #노충덕인문아카데미 #지리학자의인문여행 #이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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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7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7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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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7

2019.12.7..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 7에서 격동기 중국 근현대사에 존재했던 많은 인물의 실제 이야기를 듣는다. 영원한 퍼스트레이디 쑹칭링, 33년간 연금생활을 하고도 장제스를 원망하지 않은 전설의 명장 쑨리런, 중국 물리학의 비조 예치쑨의 비극, 혁명도시 광저우, 둔황을 50년간 연구한 창수홍, 장제스가 믿었던 민주주의 신봉자이자 저우언라이의 친구 우궈전, 아들이자 특이한 독재자 장징궈 등 중국 근현대사가 숨 가쁘게 펼쳐진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자들의 이야기. 혁명의 이름으로 인생을 걸고, 사랑의 이름으로 자유를 추구했던 풍운아들이다. 82학번이라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듣도 보도 못한 중국인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쑨원의 부인 쑹칭링 :

학창 시절 읽었던 생활의 발견을 쓴 린위탕(林語堂)이 천유런의 비서였구나. 한 때 쑹칭링과 소문에 휩싸였던 변호사 천유런은 카리브해의 트리니다드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중국 혁명가, 변호사다. 쑹칭링은 중공(상하이)에 남고 여동생 쑹메이링은 장제스의 처로 자매가 중국대륙과 타이완으로 갈라졌다.

 

2의 장쉐량 쑨리런 :

미국은 장제스를 포기(棄蔣保臺)하고 대만을 보위하기로 작정했다. 대륙에서 쫓겨난 장제스가 쑨리런을 통해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미국 버지니아 군관학교에서 교육 받고 장제스의 충성된 부하였던 쑨리런은 1956년 대만 육군총사령관을 하다가 장제스의 명으로 연금생활을 시작한다. 33년 만에 연금에서 풀려난 후 밝힌 소감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누구나 자유는 없다. 영원한 의무만 있을 뿐이다. 총통은 나의 상관이었다. 내겐 하늘같은 존재였다. 허물을 말하는 것은 부하된 도리가 아니다. 내가 어려움을 겪었다고들 하지만 총통의 명령이었다. 개의치 않는다.”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신 이야기 :

시중신도 16년간 연금됐다 풀려났다. 이야기 중 시중신이 필화를 겪게 된 소설을 쓴 작가의 남편에게 아내의 원고 집필을 막아 달라 요청했을 때 남편이 한 중국여인에 대한 평가.

설득해보겠지만 자신은 없습니다. 남편 말 잘 듣는 중국여자 보셨습니까? 오죽하면 중국여자와 결혼하면, 한 날부터 쥐어 산다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기분 좋을 때 눈치 봐가며 말은 하겠습니다. 거절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

 

덩샤오핑 이야기 :

개방정책을 펴다 천안문 사태 이후 물러나있던 덩샤오핑의 발언이다.

평생 무모한 일만 골라서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무모하지 않으면 할 일이 없고, 되는 일도 없다. 가서 내 눈으로 직접 보겠다.”

이 발언은 개방정책 실시 10여 년 이후 부패가 눈에 띄고 여론이 악화된 시기에 한 발언으로 개방정책을 지속하는 힘이 됐다. 흑묘백묘론 못지않은 발언이다.

 

중국 물리학의 비조 예치쑨(企孫)

예치쑨은 시카고 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물리학을 배웠다. 27살에 칭화대학에 초빙받고 평생을 인재 육성과 중국의 과학 사업에 일관하겠다는 일기를 남겼다. 우리나라 장관급에 해당하는 중국과학원 학부 위원 55명이 예치쑨의 제자였다.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인공위성을 개발한 과학자 70명도 제자였다. 중국의 한 역사가는 예치쑨은 이미 공자를 추월했다고 평했다. 그도 중국 정치사에서 국민당 스파이 혐의를 받고 쫓겨났고, 사후 9년 만에 명예를 회복한다. 사후 그에게 쏟아진 찬사 가운데 하나다.

예치쑨은 도도히 흐르는 대하였다. 1925년 예치쑨이 과학인재 양성을 시작한 39년 만에 중국은 핵실험에 성공하고, 45년 만에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중국이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둔황의 수호신 창수홍(常書鴻) :

미술이 재주가 있어 파리 유학을 떠났고, 서양 미술에 빠졌다가 1907년 프랑스출신 동양학자 펠리오가 둔황석굴에서 촬영한 사진첩 둔황도록을 보고 충격 받아 귀국했다. 이후 안내가 떠났어도 50년간 둔황에서 연구한 그는 둔황 50을 완성하고 몇 개월 후 세상을 떠났다.

 

중국인 이야기 1.2.3권은 사서 읽었고, 5.6.7은 세종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아라비안나이트5권보다 스무 배는 더 재미있다. 중국인 이야기 4를 대출받지 않은 것이 실수다. 대만과 대륙, 대륙과 대만이 싸웠어도 서로 칭찬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 제대로 된 사람에 대해서는 공정하게 서로를 평가하는 걸 보니 부럽다. 우리는 왜 그렇게 못하는지. 내 자식 세대에 가면 그저 역사일 뿐인데...... 김유신과 계백을 두고 역사는 비난하지 않는다.

 

#노충덕 #독서로말하라 #노충덕인문아카데미 #중국인이야기 #한길사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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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6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6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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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6

2019.12.6.

200128일 타이중에서 102세의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 저우언라이는 생전에 우리의 적 중에서 가장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천리푸(陳立夫)’로 국민당 총통부 국책고문이었다. 천권푸와 천리푸 현제는 장졔스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도왔다. 돈으로, 특무업무로. 훗날 천리푸는 국민당이 패한 게 아니라 못나게 굴다 정권을 송두리째 마오에게 헌납했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마오쩌둥과 천리푸의 대화다.

전부터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수입품이다. 중국 실정에 적합하지 않다. 쑨원의 삼민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다.” 마오쩌둥은 쑨원이 제창한 연아(聯俄, 소련과의 연합), 연공(聯共, 공산당과의 연합), 부조공농(扶助工農, 노동자 농민과 서로 돕고 의지하자)을 거론 했다. (P.160)

내전에서 패한 장졔스가 천씨 형제를 속죄양으로 삼아 천리푸는 19년간 미국에 있어야 했다. 1969년 대만으로 돌아온 천리푸는 문화부흥운동을 추진했다. 천리푸가 사망하자 대륙의 신화사가 중국의 문화통일에 헌신하던 천리푸 선생이 타이중에서 향년 101세로 서거했다.”고 전 언론 기관에 통보했다.

 

중공 5대 영수 중 1인인 런비스와 그의 무학 문맹 아내 천충잉의 이야기 :

런비스는 중공 역사상 최연소 정치국원이 자리에 올랐다. 23살에. 천듀슈는 당시 중공 공산주의 이론가 1위 였다. 런비스는 회의장에서 천듀슈의 호통 속에 의견을 발표했고, 침착하게 발언했다

그간 총서기의 의견을 진리라고 여겼습니다. 역량을 무조건 신뢰했습니다. 의견서를 찢는 것이 역량의 표현입니까? 선동은 더 이상 쓸모가 없습니다. 저들의 무장에 맞서려면 우리도 무장을 갖춰야 합니다. “진리는 별개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천듀슈는 2개월 후 당에서 축출당했다. 런비스는 청렴했다. 그가 46에 사망했다는 것이 독자의 눈에도 안타깝다.

 

마오의 스승 쉬터리(徐特立)의 독서 파산 계획 : 쉬터리는 꽃과 책을 좋아했다. 청년 교사 시절 ‘10년 독서 파산 계획을 세웠다. 매년 받는 봉급 중 생활비를 뺀 나머지로 책을 구입했다. 조상대대로 전해오는 전답도 처분했다. 스물세 살 때 일이었다. 8년 만에 무일푼이 됐다. 쉬터리의 독서관을 옮겨 본다.

꽃과 책처럼 아름다운 것도 없다. 꽃구경하는 사람과 책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뭔지 깨우치려면 독서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꽃 구경은 돈이 안 들지만 책에는 돈이 많이 든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세상 이치가 뭔지 모르는 허황된 사람들이다. 무슨 일이건 결과가 있어야 한다.” “책은 사람과 비슷하다. 세ᅟᅡᆼ에 꼭 필요한 사람과 없어야 될 사람은 극소수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대화를 나누다보면 즐거움보다 재미난 있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책도 흥미만 유발시키는 책이 더 많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건성으로 읽는 것은 시간 낭비다. 그냥 열권을 읽느니 그 시간에 한권 정독하는 편이 났다.”(P229)

 

중공의 5원로 중 한 분인 린보취(와 당찬 귀부인 주밍이야기 :

항일전쟁 승리 5개월 전, 린보취의 60세 생일잔치가 성대했다. 마오쩌둥, 주더, 저우언라이가 축하해 주었다. 그날 밤, 주밍은 제 발로 린보취의 토굴을 찾아갔다. 제지하는 경호원에게 일갈했다.

은사이며 인도자인 분에게 생일 선물을 갖고 왔다.”

린보취의 앞에서도 당당했다.

저의 애정을 선물하러 왔습니다.”

60세 생일날 린보취는 주밍의 예물을 마다하지 않았다. 며칠 후 26세의 주밍과 60세의 신랑의 결혼식이 열렸다. 린보취의 자작시 봄바람 타고 새 한 마리가 품 안으로 들어왔다.”

 

저우언라이가 이런 말을 했다.

중미 대사급 회담은 세계 외교사에 남을 마라톤 회담이었다. 15년간 136차례 열렸다. 실질적인 성과는 없지만, 천쉐썬을 돌려받은 것 하나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천쉐썬은 36세에 MIT 공대 종신교수가 된 중공의 미사일과 로켓의 왕이다.

 

중국 황제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어떤 혼란기라도 청소년 교육만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항일전쟁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다보니 20세기 중국 대륙이 혼란 했을 때, 이름을 날리 던 사람 중에 古典을 깊게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고전을 배운 사람치고 신학문을 배척한 사람이 없더라. 공부는 옛것을 터전으로 새 것을 흡수해야 하는 거지 싶다. 21세기 한국의 청소년 교육은 해방 후 새 것, 서양 것, 미국식만 배웠고 가르쳤다. 전통은 모두 끊어졌다.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6 는 한길사에서 20178월 본문 373쪽 분량으로 초판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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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5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5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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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2019.12.5.

이야기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역사는 수많은 이야기를 품는다. 편년체보다 기전체 정사가 재미있고, 정사보다 야사가 재미있다. 재미있다는 것은 읽기에 부담이 없다는 의미이다.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1.2.3을 읽어가며 20세기 중국현대사를 확인하고 배웠다. 김명호 교수의 중국인 이야기어떤 소설보다 흥미진진하다. 저자의 겸손에 따르면 40년간 중국을 놀이터로 여겼단다. 수많은 이야기를 술술 읽히는 글로 써냈다.

다음은 중국인 이야기5에서 메모한 글이다.

 

중공과 북한 간 서로 할퀴던 문혁시기의 상황이다.

문혁시절, 홍위병들은 소련과 중국에 양다리를 걸친 김일성을 수정주의자라고 비난했다. 베이징 시내 곳곳에 주자파 김일성을 체포하라는 대자보가 덕지덕지 붙었다. 소식을 들은 김일성은 대로했다. 중공군 묘지에 있는 비석들을 모두 때려부수라고 지시했다. 마오안닝의 비석도 산산조각이 났다. (중략) 6.25 전쟁 정전이후 북한은 중국 조선족을 방치하지 않았다. 국경 인근과 동북지역의 조선족 동포들에게 너희들의 조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조국관념과 지도자는 김일성이라는 영수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지하활동을 전개했다. 홍위병들이 보기에는 백두산 천지와 백두봉에 관한 문제도 빼놓을 수 없었다. 당시 홍위병들의 주장을 소개한다.

국경 지역에 위치한 천지와 백두봉은 역사적으로 신성한 우리 영토였다. 조선 쪽에서 우리에게 천지의 일부분을 요구했다. 김일성의 혁명사업의 발원지라는 이유 등을 대며 우리의 이해를 구했다. 우리는 여러 정황을 고려해 천지의 반을 조선쪽에 할애했다. 조선은 괘씸하다. 접수 다음 날 백두봉의 명칭을 장군봉으로 바꿔버렸다.”

며칠이 지나자 북한 쪽은 베이징 주재 대사관을 통해 성명을 발표했다.

헤이룽장 성, 랴오닝 성의 일부분과 지린 성의 대부분은 역사적으로 고구려의 판도에 속했다. 중국 역대 왕조가 이 지역을 침범했지만, 현재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다. 우리에게 귀환 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중국 쪽은 우리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지역은 고구려와 무관하다. 무리한 요구다라며 거절했다.”(p.257~258)

 

마오쩌둥은 북한이 유전 개발에 관심이 많았다.

아직도 석유를 못 찾았느냐? 빨리 찾아라. 석유와 원자탄이 제일 중요하다. 그거 두 개만 있으면 어디 가도 큰소리칠 수 있다. 그게 없으면 아무리 잘난 척해도 국제사회에서 알아주지 않는다.”

아날 마오쩌둥은 김일성에게 덩샤오핑을 정식으로 소개했다. “저 사람이 바로 덩샤오핑이다.” (p.269)

 

외교 달인 구웨이쥔은 국민당 정부와 중국 공산당에서 모두 죽이려 헀지만 죽이지 않았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50여 년간 공직에 있으면서 일관된 원칙을 견지했다. 상부의 지시를 받거나 건의를 할 때마다, 국가에 무슨 이익이 있을지를 스스로 고민했다. 나는 평생 당파나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권력 투쟁에 말려들다 보면 국가의 이익을 생각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외교 문제를 처리할 때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정치적 득실이나 야심을 실현시키려 한다면, 담판은 파열되기 마련이다. 정치와 외교는 구분돼야 한다. 정치적 야심이 있는 사람은 외교관 자격이 없다. 정치가가 외교에 나서는 것도 위험하다.”(p359)

국민당과 공산당은 이념과 학설이 비슷하다. 왜 싸우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중략) “정치적 두뇌가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즐거웠다. 국가 이익과 민족의 존엄을 위해 외교문제를 처리했다. 중국은 재미있는 나라다. 정부의 명령은 통일된 적이 없고, 군벌들은 분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럴 때일수록 무지한 통치자가 편했다. 뇌물로 총통이 된 차오쿤도 외교 문제는 내게 일임했다.”(p.362)

 

우리 땅 독도를 둘러싼 역대 정권의 자세와 유엔에 있다가 정치하려 했던 반모씨가 떠올라 견주게 한다. 중궁인 이야기5 는 한길사에서 20166월 본문 367쪽 분량으로 초판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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