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안의 크기
이희영 지음 / 허블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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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크기 #허블 #서평단

행복의 반대말은 '안 행복' 아닌가?
그즈음 나는 '안'이라는 부정 표현에 제법 익숙 해져 있었다.
안 갈 거야. 안 잘 거야. 안 먹어. 안 놀아. 안 해..
친구들이 곧잘 하던 말이었는데, 자신들 삶의 기준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면 너무 과한 의미 부여일까? 결과만 놓고 보자면 꼬마들이 '네'라 할 때보다 '아니요'라 했을 때, '응'보다는 '싫어'라는 대답을 던졌을 때, 어른들의 반응이 더 구체적이었던 건 사실이다.
P.11

여기, 설우가 있다. 약속된 불행은 한번에 닥치는 건지 서른한 살이 된 설우는 연인과의 이별, 그리고 직장에서의 권고사직을 동시에 겪게 된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흑호동‘으로 이사를 가는 설우. 그곳에서 난생 처음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되고, 뜻하지 않게 새로운 인연을 맞닥뜨리는데..

평생을 더 하지도 덜 하지도 않은 ‘안 행복‘ 상태를 기준점으로 살아온 설우. 그녀가 행복의 문턱에서 늘 발을 멈춘 상태로 살아온 이유에는 ‘조‘ 가 있다. 태어나지 못한 ‘배니싱 트윈’ 조는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푸른 빛의 형체로, 오직 설우 곁을 맴돈다. 설우는 ‘조’의 형체를 감응하며 죄책감을 안고 욕망하지 않는 주체로 살아간다.
그러나 인생의 커다란 변곡점을 겪게 된 서른 하나의 설우에게 조는 이전과는 다르게 살 것을 부추기고, 흑호동에서 설우는 자신이 오랫동안 눌러왔던 감정을 점차 되찾는다.

‘당신도 행복 때문에 불안해야 해요. 욕심 때문에 힘들어지세요.’

상실의 두려움을 비로소 통과해 욕망을 하는 주체가 되는 과정. 작가는 청소년기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설우의 인생 전반에 걸친 사건들을 담담하게 풀어냄으로서 설우의 상처에 새살이 차오르는 과정을 담담히 묘사한다. 극적인 만남과 사건은 없지만 깎아내기만 했던 설우의 내면이 차오르는 과정은 따듯하다.

그 만남들 끝에 부디 설우가 불안해지길. 욕망때문에 떨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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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가고싶다 - 빡센 사회생활 버티기와 행복 찾기 노하우
이동애.이동희 지음 / 말하는나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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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아-집에 가고 싶다!
버릇이 된 듯 입에 붙은 이 문장. 우리는 왜 이렇게 집에 가고 싶은걸까?

우리는 도대체 어떤 스트레스를 견디며 살고 있는 걸까?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다는 역설적인 감정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일상적으로 내뱉는 '집에 가고 싶다'는 말 안에 담긴 실제 의미는 무엇일까?
P.32

책의 저자인 이동애, 이동희 작가는 30년간 MBC 에서 근무한 ‘프로 직장러‘다. 어느 월요일 아침 사무실 입구 화이트보드에 적힌 한 문장으로 시작된 공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월요일 아침,
숨 가쁜 출근 전쟁을 치르고 회사 사무실에 들어섰다.
사무실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화이트보드에 못 보던 글자가 눈에 띄었다.
검은색 매직펜으로 적힌 딱 한 문장.
"집에 가고 싶다."
P.29

저자들은 각자의 회사 생활 에피소드를 통해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깊게 탐구하고 고찰하는것을 넘어, 30년간의 긴 직장생활 끝에 터득한 자신들만의 방식을 공유한다.

'집에 가고 싶다'는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공감 능력' 같은 가치들이 빈약한 조직에 실망한 사람들의 속마음이다.
P.59

워라밸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나에게 이 책은 ‘빡센 사회생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기록처럼 느껴졌다. 30년이라는 긴 사회생활의 기록을 더듬어 가며 그들의 소소한 일상 속 고백은 사소한 감정에 머물지 않고 사회학적, 신경과학적 맥락으로 확장된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집에 가고 싶다‘ 라는 말은 비단 직장인들만 뱉는 문장은 아닐것이다. 학생들은 학교나 학원에서, 또 어떤 이들은 집에 있음에도 집에 가고 싶다-라며 집 안에서 그 문장을 외칠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일상적 외침을 단순한 투정으로 보지 않는다.
이 외침은 끊임없이 온(ON) 상태를 요구받고, 배터리를 소진하며, 저전력 모드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세대의 공유 감각이었다. (출처-교보문고)

나이와 성별 불문 집에 가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나의 안락한 오두막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저자들의 유쾌하지만 지독하게 현실적인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다보면 내가 집을 이토록 간절하게 원하는 이유를 알게 될것이다.

‘돌아가면 꽃길만 걸으려 애쓰지 말고, 자갈밭에서도 굴러보세요.’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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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만 년을 사랑하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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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자산가인 우메다 회장은 섬에서 열릴 자신의 생일 파티에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 자리에 초대된 사립 탐정 도갓타 란페이. 회장의 손자로부터 회장이 밤마다 찾는다는 보석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파티에 참석한다.
‘만 년을 사랑하다’ 라는 기이한 이름의 보석에 대한 의문을 품고 참석한 파티. 회장의 가족들과 관리자들과 파티를 즐긴 다음 날. 회장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다. 의문의 유언장만을 남기고.
‘내 유언장은 어젯밤의 내가 갖고 있다.‘
과연 회장은 어디로 사라진것일까. 그리고 의문의 보석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
과연, <국보>의 요시다 슈이치이다. 어딘가 섬뜩하고 아름다운 보석의 이름에 의문을 가질때 즈음 특유의 노련한 전개로 독자들을 바닥이 보이지 않는 미스테리속으로 초대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당했다, 훌룡하게 당했다’ 라는 독자의 후기를 비로소 이해하게 될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추리 소설’ 은 아니다. 추리 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어쩌면 사회파 소설에 포함 될 수 있을 법한 시대와 역사의 아픔에 대한 고민과 고찰이 돋보인다. 개성적이고 입체적인 인물들의 의중을 떠보며 의심하다 보면 어느새 눈물짖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고립된 섬에서 전개되는 만큼, 작품 속 묘사되는 배경은 한정적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요시다 슈이치의 노련함이 드러난다. 한정적인 배경임에도 그녀의 세밀하고 섬세한 필력 덕분에 배경의 환기가 필요하지 않다. 독자들은 그저 작가의 긴 스토리텔링을 따라가며 퍼즐 조각을 맞춰나가면 될 뿐이다.

따듯하면서 선득한 분위기를 동시에 자아내는 요시다 슈이치의 <죄, 만 년을 사랑하다>. 어쩌면 누군가의 처절한 러브스토리. 추운 계절에 당신을 차갑게 그리고 따듯하게 데워줄 소설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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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 분투기 - 청년 주거권 활동가의 10년 현장 기록
지수 지음 / 교양인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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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단언컨대 대한민국 20.30 세대의 가장 큰 불안감은 '집'일것이다.
'그쪽 사정' 들을 헤아릴 줄 모르면 언제든지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청년들은 부당함을 느끼지만 '내가' 돈을 벌고 '내가' 성공해서 안락한 집을 가질 것을 희구한다.
그러나 책의 저자는 반문한다. 애초에 그런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는것은 아니냐고. 법과 제도 사이의 구멍들이 청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대학생인 나 역시 늘 비슷한 불안감을 안고 산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대학 입학 후 시작하게 되었던 자취 생활은 상상과는 아주 많이 달랐다. 닭장같은 15개의 단칸 방, 15인분의 식재료들이 썩어가는 냉장고 한칸, 지켜지지 않는 프라이버시. 대학가에 자취방에 대한 로망은 애초에 없었지만, 기본적인 상식을 파괴하는 일들이 반복되며 나는 지쳐갔다.
그저 멀쩡한 곳에 살고 싶다는 마음까지 아껴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11쪽)
계약 기간이 끝나갈 즈음 나는 이 지옥에서 벗어날 방법을 미친듯이 모색했고, 현제는 청년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빌라에 거주중이다.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집을 찾고 대출을 받기 위해 뛰는 과정 속에서 나는 극도의 외로움을 느꼈고, 요즘도 매일 인터넷에 올라오는 빌라 전세 사기 뉴스를 보면 여전히 불안하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사기를 당하지 않더라도 나는 언젠가 이 집을 떠나야 하기에, 늘 잠재적 ‘전세 대출 피해자‘ 로서 살 수 밖에 없다.
세입자의 삶은 불안정하니 내 집 마련만이 정답이라는 믿음, 빚을 내서 집을 사고 또 빚을 더 내서 강남 같은 소위 '상급지'로 갈아타야 한다는 믿음만이 우리가 의지 할 유일한 버팀목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121쪽)

책을 읽으며 가장 놀랐던 것은, 내가 어느새부터 나의 기본적인 권리를 포기한 채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깐깐하고 싸가지 없는 젊은 세입자’ 가 되지 않기 위해 질문 하는것을 꺼렸고, ‘서울에서 집 구하는게 원래 그렇지 뭐’ 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권리를 져버리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수없이 공감했고 깨우쳤으며, 마지막 부록에 실린 ‘민달팽이를 구하는 14가지 질문’을 읽을때는 감동받았다. 우리는 모두 민달팽이니까. 민달팽이들을 향한 저자의 진심 어린 마음이 독자들을고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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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될지어다 모노스토리 4
이부 지음 / 이스트엔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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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도서지원
주인공 ‘해수’ 에게는 알콜 중독으로 의심되는 남자친구 ‘염’ 이 있다. 술만 마시면 통제력을 잃고 폭력성이 짙어지는 염이지만 어째서인지해수는 그의 곁을 지킨다. 어느 날 창문 밖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로 자신을 응시하는 기괴한 형상을 마주치는 염. 이후도 계속해서 보이는 형상에 정신 착란 상태를 보이는 듯한 염에게 해수는 ‘궤’에 들어가볼 것을 제안하는데..
-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기괴한 일들이 발생한다. 사랑의 정의는 불분명하지만, 그 불분명함에 기대어 일을 저지르는 비겁함. <그렇게 될지어다>는 그 기이한 굴레에 대한 끈질긴 관찰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역사, 신형철). 해수의 남자친구 염 역시 해수와의 관계를 통해 탄생된 자신의 분인에 만족하는 듯 보인다. 여타 다른 여자들과 달리 나의 폭력성을 말끔하게 정리해주는 여자. 이 여자와 있으면 반지하 단칸방에서 하루살이 인생을 전전해도 괜찮다. 그 찌질한 분인에분개할 때 즈음 핏빛 호러가 시작된다.
책의 분량은 길지 않다. 그래서인지 단시간내에 책에 흠뻑 몰입할 수 있었다. 소설의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책을 읽다보면 책 뒷편에 실려 있는 작가의 Q&A를 읽어보지 않을 수 없다. ‘여자’의 형상은 무엇인지, 그의 곁을 지키는 해수의 목적이 무엇인지, ‘궤’는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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