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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질문들
김경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8월
평점 :
세상을 바꾼 질문들_김경민
질문들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가능할까? 조금은 과장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의 질문들로 인해 세상은 바뀌었다. 이들의 질문들과 질문을 찾기 위한 노력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연시 여겼던 것들, 의문을 품지 않았던 일들이 해결되었고 그로인해 과학, 의학, 문화가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리고 인간들의 생각, 관념들이 바뀌었다. 아마도 이들은 세상을 바꾸고자 질문을 던지진 않았을 것이다. 단지 당시 사회의 모습과 흐름을 보고 의문을 품게 되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 고정관념들을 탈피해서 질문을 던지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 책속의 15명 위인들은 그 일들을 해냈다. 그래서 이들로 인해 세상이 바뀌었다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 안에서는 16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바꿨다 말할 수 있는 질문들과 그 질문들을 생각해낸 15명의 인문들에 대해서 말한다. 당시에 어떻게 해서 이들이 이런 질문들을 던졌는지, 그리고 그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 어떻게 했고, 그 해답들로 인해 세상과 인류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1.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왜 인체 해부학 연구는 실제 해부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것일까?]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는 우리의 몸, 특히 겉이 아닌 표피의 안쪽을 정확하게 알려준 인물이다. 그의 의문은 '인체 해부학을 연구하는 의사들은 왜 실제 해부를 통해 연구하지 않는 것일까?'이다. 현재 의학을 보자면 이 질문은 너무 당연해서 이상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보면 이해가 된다.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가 살던 당시에는 2세기 로마 시대에 활약했던 갈레노스라는 의사가 유명했다. 당시는 물론이고 의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중 하나로 특히 해부학 분야에서는 베살리우스 이전 가장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갈레노스의 해부학은 주로 원숭이와 같은 동물 해부를 기초에 두고 있었다. 이쯤 되면 왜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가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이해했을 것이다.
당시의 해부란 무의미한 일로 여겨졌다. 이유는 모든 것인 이미 갈레노스의 책에 나와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 강의와 해부를 준비하고 직접 시연하는 과정에서 베살리우스는 갈레노스 해부학에 의구심을 품게 된다. '혹시 갈레노스는 인체를 해부해 본 적이 없는 것이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인체를 해부했다면 틀릴 수 없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갈레노스가 인체를 해부한 적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제 더 이상 학생들에게 이 오류들을 숨기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배살리우스의 이 결심은 의학사를 넘어 과학사 전체의 진보를 가져오는 중대한 한 걸음이었다.
베살리우스는 실제 인간을 해부함으로써 갈레노스의 오류들을 분석하고 정리했고, 그 결과 2백개가 넘는 오류들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파브리카'가 출간되었다. 파브리카의 출간으로 의학은 결정적인 진보를 이루었다. 베살리우스로 인해 건강과 질병의 치료에 관한 설명이 인체 내부의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베살리우스는 당시의 당연한 진리를 가리고 있었던 천 4백년의 어둠을 걷어내고 이후의 의학 발전을 위한 토대를 닦았다.
2.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는 반드시 선하고 도덕적이어야만 하는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우리에게는 [군주론]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어떻게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쓰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의 사상이 어떻게 구축되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이 책에서 묻는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훌륭한 군주의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혹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 쓴 군주의 자질은 어떠한 것들이라고 추측하고 있는가?' 지금 시대의 리더상이랑 리더십이 있고, 소통을 잘하며 정의가 살아있는 인물, 더불어 카리스마까지 있는 사람을 리더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서술했따. '만약 군주가 국가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면,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진실과 자비, 인간애의 종교와 반하여 행동할 필요가 있다.' 마키아벨리가 가졌던 궁극적 문제의식은 단 하나, 나라에 평화와 부강함을 가져다줄 이탈리아의 통일과 그것을 실현해 줄 새로운 지도자상의 모색이었다.
마키아벨리에게는 정치사상으 필요성은 도덕이나 이상이 아닌 권력의 획득, 유지, 팽창이라는 목적을 위한 기술이었다.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군주가 가장 명심해야 할 것은 좋은 상태로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 일에 성공만 하면, 그가 쓴 수단을 누구나 훌륭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칭찬받게 될 것이다.'
지금 추구하는 리더의 이상과는 확연히 다르다. 마키아밸리는 좋은 상태의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들이 잘살 수 있는 나라를 위해서라면, 악한 수단이든 상관없다 말한다. 어찌보면 다수의 국민들을 위해서라면 약간의 비겁한 행동들이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마키아밸리가 생각하는 군주에 대한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 생각한다. 정의가 없는 정치는, 국민들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올바르지 못한 행동, 결정을 하는 군주는 언젠가는 독재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군주로서 정치함에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도덕성, 정의는 실현되어 있어야 한다 생각한다.
마키아밸리가 군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대는 당시의 환경적인 요인이 컸다. 이에대해 설명하자면 얘기가 길어지니 간단하게 설명자면 그가 군주의 자질을 분석할 수 있게 된 것은 여러 군주들을 직접 만나 본 경험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 한명이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모델이라고까지 평가되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 체사레 보르자이다. 그는 목적의 빠른 성취를 위한 수단 선택, 필요하다면 잠재적 적과도 동맹하는 현실주의, 공공연히 암살하고 지체 없이 정적을 제거하는 대담한. 이 모든 것은 전통적인 가치와 방식을 따르는 여타의 군주들이나 지식인들에게 기이하고 비도덕적으로 비춰졌지만,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이는 체사레가 아버지의 후광 외에 그토록 빠르게 세력을 키운 독자적 방식이었고 성공의 열쇠라고 보았다.
결론만 말하자면 마키아밸리는 현실을 직시하여 이전의 사상가들이 애써 논하기를 꺼렸던 인간의 도덕적이고 선한 부분 이외의 어두운 단면을 정치라는 특정 영역을 통해 과감하게, 그리고 냉정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선구자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3.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딸은 왜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을까?]
여성의 인권이 많이 올라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남녀 차별은 존재하며 해결해야할 문제점은 많다. 이론적으로는 남녀 차별이 없는 사회라고 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차별은 존재한다. 하지만 불과 백년도 안된 과거에는 여성에게 투표권도 주어지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여성의 인권이 빠른 시간안에 성장해왔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이야기할 인물은 여성의 인권에 대한 선구적인 역할을 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계몽주의 시대의 사상적 혜택을 받아 '이성'을 가진 인간이 가져야 할 '인권'의 중요성을 깨닫고, 더 나아가 그 '이성'을 가질 수 없는 조건에서 성별이 없음을 주장한 인물로 '영혼에는 성별이 없다'고 말한, 그리고 여성 교육이 남녀평등의 첫걸음임을 주창한 선구자이다. 그녀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왜 나는 재산을 상속받을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걸까?'
메리가 살던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옛날과 마찬가지로 아들을 중시 여기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더불어 메리의 친할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상속인을 정하는데 자신을 제외한 친인척 후손들에게만 유언장이 나갔다. 장자 상속제를 기본으로 하는 당시 영국의 재산과 상속에 관한 제도가 가문과 혈통을 중시 여기는 신분 사회에서 딸의 존재를 더욱 보잘것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부모를 통해 당대 여성의 사회적 위치의 부당함을 경험한 메리의 소녀 시절은 그녀를 '근대 여성운동의 선구자'로 만들었따고 할 만큼 이후 메리의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올스턴크래프트는 '인권의 권리 옹호'를 출근하면서 영국 정치 논단의 주목받는 사상가로 오르게 되는데 이 책에서 그녀는 계급 사회의 왕족과 귀족의 세습적 특권에 반대하고, 이성을 가진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천부인권론을 지지하였으며, 억압과 구태에 기초한 영국 정치보다 새롭고 급진적인 이론들이 시려혼되고 있는 프랑스 혁명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나아가 자기비판과 여성 스스로의 각성을 촉구하고 남녀 불평등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남성과 동등한 교육이 여성에게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여성의 문제가 생물학적 성별과 여성의 타고난 내적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 특히 교육의 문제에 있다고 보았다. 제한된 교육과 반강제로 주입된 남성 중심적 가치관이 여성들의 각성을 가로막고 그들을 노예 상태로 가둬두는,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쇠사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여권 운동이 활발해지자 울스턴크래프트의 남녀평등 사상이 주목을 받았고, 관습과 속박에 저항한 여성 투사로서의 이미지는 그녀를 선구자이자 순교자로 만들었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이성, 정신, 도덕성을 갖추고 있다는 그녀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여성의 권리 옹호'의 사상들은 근대 여권 운동의 기본적 전제가 되었다.
4. 찰스다윈 [인간은 정말 신이 창조했을까?]
'종의 기원'은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인류의 뿌리를 찾고자 다윈의 진화론이 담긴 유명한 책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쓰인 과학책 중 가장 유명한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고, 변형되어 현재의 형태에 이르렀다는 '진화론'을 담은 책으로 이 이론은 찰스 다윈이 살던 당시의 신이 만든 완벽한 세계라는 기독교의 '창조론'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에 대해서 책을 쓰게 된 계기는 5년간 비글호 여행을 통해서이다. 5년의 탐사여행 동안 다윈은 자신이 좋아하는 자연 관찰을 마음껏 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자연 세계의 다양성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많은 위대한 과학자들은 어느 순간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발상의 전환이나 새로운 아이디거가 떠올랐다고 말한다. 다윈의 경우는 꾸준히 동식물을 채집하고 지질학을 공부하며 배경 지식을 쌓고, 비글호 여행을 통해 생물의 진화라는 착상을 얻었다. 그는 특히, 갈라파고스의 새들을 연구하면서 종의 불변성에 의심을 갖게 되었고, 그를 통해 모든 생물 개체는 변이를 겪는다고 확신했고, 그 변이는 우연히 일어난다고 보았다.
다윈의 '종의 기원' 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예상했듯 수많은 논평이 격렬하게 쏟아져나왔다. 종교계는 물론이고 상당히 많은 대중들에게도 다윈의 이론은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적인 것이었다. 자연의 법칙에서 신의 존재를 몰아내고, 모든 동식물의 점진적 변화를 '자연적인 과정'으로 보는 다윈의 이론은 종교적 색채가 일상 깊숙이 새겨져있는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유인원과 같은 동물에서 진화한 것일까?
다윈은 인간과 고등한 포유류 사이의 지능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았으며, 이간도 상황에 따라 야생의 동물 같은 삶을 살 수 있따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피부색과 관계없이 인류는 모두 하나의 종이며, '문명'이라는 것은 덧없는 껍데기와 같다고 느꼈다. 다윈이 보기보단 야생 동물과 가축 사이의 차이보다 문명인과 비문명인 간의 차이가 더 큰 것처럼 보였고, 이는 인간은 신의 창조물이 아닌 유인원에서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인간과 동물들이 다른 것은 인간이 더 뛰어난 개선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따라서 교육을 통해 가장 높은 지적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믿었던 인간의 유인원 진화론은 인간이 스스로와 자연을 보는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다윈의 '종이 기원'이란 책은 많은 사람들게 비판받아 왔고 21세기인 지금까지 끊임없이 논쟁이 되고 있는 주제이지만 그로 인해 최초의 모든 생물학적 현상과 생물의 다양성에 대한 종합적 이론의 가능성이 구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구상의 모든 것의 변화와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다윈의 이론에 현대 생물학은 빚을 지고 있다.
5. 프란츠 파농 [왜 피부색으로 차별당해야 하는가?]
프란츠 파농은 흑인이다. 하지만 프랑스를 조국으로 알고 프랑스인으로 자랐다. 하지만 정작 프랑스인들은 그를 프랑스인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파농은 그들에게 식민지의 열등한 흑인 원주민일 뿐이었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은 진정한 '프랑스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애초에 프랑스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백인'이 아님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자문했다. '나는 백인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러나 나 같은 흑인의 경우 모든 것이 새로운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우리에겐 아예 어떠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외부 세계에 의해 화석화된 인종이기 때문이다. 우린 타인들이 우리에게 부여한 어떤 '관념'의 노예가 아니다. 우리 자신의 노예, 외관의 노예인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변혁을 꿈꾸지 않는 나 자신에게 익숙해진 채 서서히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나의 전진은 포복의 전진이다. 나란 존재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시선인 백인들의 시선 아래에서 박살 난지 이미 오래다. 나는 고착화된 존재인 것이다. 백인들은 절단기를 사용해 나라는 실체를 냉정하게 절편화했다. 나는 완전히 발가벗겨졌다. 나는 백인들의 얼굴 속에서 보고 느낀다. 새로운 인간의 출현이 아닌 새로운 인종, 새로운 종자의 출현을. 나는 검둥이므로.'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란 책에서 나온 내용이다. 이 내용만으로도 프란츠 파농이 자신이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백인들에게 받은 냉대, 차별 등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들과 자신은 달랐다 말한다. 새로운 인종이라, 새로운 종자라 말한다. 그들과 함께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자신의 모습, 검둥이여서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제국주의 시대에 프랑스는 자신들이 점령함 식민지인들에게 일명 동화정책을 펼쳐 점령 지역의 원주민들을 프랑스식으로 교육시켰다. 따라서, 강자가 점령하고 지배하며, 약자가 패배하고 지배당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정당화하고 강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인종 차별은 여기서 매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프랑스식 교육을 받고 프랑스어를 구하면서 자란 파농은 자신이 당연히 '프랑스인'이며 '백인'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국심에 불타 독일 나치의 마수에서 조국을 구하고자 군에 자원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의 조국 프랑스는 식민지 출신의 흑인이라는 이유로 파농과 그의 친구들을 차별했다. 파농은 비로소 유럽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와 서열을 '객관적'으로 파악했다. 그가 직접 겪은 차별은 그에게 흑과 백, 피지배와 지배자라는 비정한 이분법적 구도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래서 파농은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밖에 없었다. '백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나는 누구인가?', '왜 나는 피부색만으로 차별당해야 하는가?'
파농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책을 쓴다. 이 책에서 파농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우선 그는 왜 식민지 원주민이 자신의 검은 피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얀 가면을 쓰려고 하는지에 대해 분석한다. 파농은 이러한 문제 해결이 어려운 것은 식민지인들이 흑백의 이분법적 차이를 초월한 운명이나 객관적 진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인식이 사회, 경제적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았다. 즉, 원주민들에게 종종 발견되는 백인 의존 콤플렉스나 열등의식은 아프라키아니 고유의 심리적 속성이 아니라, 유럽의 식민 지배가 초래한 사회, 문화적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파농은 후에 알제리 해방을 위해 힘쓴다. 파농이 의사로서 활약하고 있을 때, 알제리는 프랑스에서 독립하기 위한 격렬한 저항을 하고 있었다. 그는 여러 지역을 돌며 의료 활동을 펼쳤다.
인종차별에 대한 그의 심오한 고민은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와 사상가들에게 일종의 '성서'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인종이나 소외, 억압의 문제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현상과 문제에 대한 심리학적, 역사적 분석을 통해 그들이 총체적 시각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지식인지ㅏ 활동가인 그의 삶은 이후의 혁명가들에게 귀감이 되고 그들의 열정에 불을 지폈다.
파농이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개인의 자유와 해방이었따. 파농은 알제리의 해방을 위해 싸우다 죽었다. 하지만 그는 알제리인이 아니다. 프랑스인도 아니다. 그는 백인도, 흑인도 아니었따. 그는 그저 자유와 학문을 사랑한 프란츠 파농이었다.
6. 마거릿 미드 [사회적 통념은 전부 맞는 것일까?]
이 책에서 계속 이야기하는 내용이지만 사회의 통념과 고정관념을 깨기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용기가 필요하고 다른 누가 비판을 하고 심지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해도 나의 신념을 지키고 꿋꿋이 나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마거릿 미드 역시 모두가 '예스'라고 말할 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지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샘솟는 창조력으로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미드는 자신의 생각과 질문을 남겼다. 미드는 그녀가 죽기 전까지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고 끈히없이 세상에 질문을 던진 인물이다. 겅별에 따른 역할 분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진정한 남녀평등이란 무엇인가? 원자로 설치는 필요한가? 세대 간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가능한가? 거대한 변화에 맞선 인류의 생존을 위해 인류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등이다.
미드의 저작 '사모아의 청소년'은 출간되자마자 인류학의 고전으로 평가될 만큼 큰 반향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을 통해 미드는 사춘기의 심리적 갈등이 특정 문화와 어떤 관계가 있으며 또 성장 단계의 생리적 현상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다.
미드는 사모아에서의 연구를 통해 사춘기, 육아, 성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특징들을 발견했다. 사모아 사회의 특징이란 성장기의 순탄한 전환과 다양한 관계로 맺어진 가족 구성원과의 생활을 통한 지위 변화의 융통성, 그리고 사회와 개개인의 어린 시절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사춘기의 동요가 인간 본연의 특성이 아니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미드는 학창시절 아버지의 모교인 드포 대학에서 최초의 차별 대우를 겪는 아픔을 겪었다. 이 경험은 그녀가 한 문화 안에서 주류와 다른 개인의 특성은 억압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를 낳았고, 인종이나 계급 같은 모든 사회적 차별에 문제를 제기하고 인류학적 해답을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
미드는 그녀의 저서 '세 부족 사회의 성과 기질'을 통해 남녀의 성 역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성 역할을 비판하고 여성 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준 저작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여성스러운' 여성과 '남성스러운' 남성을 만들어 내는 것은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사회의 필요에 의해 임의적으로 선택된 기질들이며, 이는 문화적 차이를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미드에게 중요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아닌, 사회가 만들어낸 특정 문화의 성 역할 강요로 인해 개개인의 다양한 기질과 능력이 억압당하는 것이었다. 사회 구성원의 단위가 성차가 아닌 개인에 있다고 여겼으며, 개인의 선택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사회를 원했다. 그리고 미드는 남녀의 문제에서 더 나아가 개개인의 성향과 자질의 존중이라는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미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개인의 특성과 능력은 사회가 정해 놓은 규칙에 억압받거나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문화 속에서 자유롭게 길러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는 이래야 한다. 여성이 할일이 있고 남성이 할일이 있다. 등의 사회적 획일화는 그녀에게 있어 개인의 개성을 죽이는 억압의 일종이었다. 여전히 사회속에 남아있는 통념들과 고정관념들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미드의 질문을 더욱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7. 에드워드 사이드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세상은 내가 있기에 존재한다. 내가 '설정한' 혹은 '알고 있는'나를 통해 세상을 보고 판단한다. 그러면 우리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에드워드 사이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사람은 그 자신이 사는 세상의 변화와 함께 그리고 관계 맺는 사람들에 따라, 나이가 들어서까지 정체성의 변화를 겪는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란 책을 통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는데 '오리엔탈리즘'은 그의 삶의 전환점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보고자 한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인이다. 그는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에 건국되자 그의 가족은 난민이 되어 이집트의 카이로로 이사를 간다. 학창시절에 학업이 우수했던 사이드는 순수한 유럽인이나 미국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석이나 차석 졸업생 면단에서 제외되는 차별을 겪게 된다. 팔레스타인인 '사이드'에게 가해진 미국 사회의 차별적이고 냉랭한 시선은 사이드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정체성을 다시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오리엔탈리즘'이란 과연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시선이자 관점이다. 그리고 이 시선의 흐름은 수평이 아닌 수직적 흐름으로 우월한 서양이 열등한 동양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궁극적으로 권력이 지식 안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과 담론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하고자 했다. 이 담론은 문학이나 학문을 통해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타적 상상물인 '동양'을 만드어냈다.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은 서양을 '남성적, 이성적, 강인함, 능동적'인 것으로, 동양을 '여성적, 감정적, 나약함, 수동적'인 것으로 구분했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의 성공으로 탈식민주의 이론의 권위자가 되었지만, 그에게 권위는 안주와 정착, 확고함에서 나오는 것으로, 이 모든 것과 반대편에 서 있던 사이드에게 권위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짐이었다. 사이드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침묵당한 팔레스타인인 본인들의 말할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어떠한 정치적 노선도 따르지 않음으로써 서구와 아랍 세계 양쪽에서 확고한 정치적 입지를 갖지 않고 여전히 '불명확한 정체성'성을 정체성으로 가진 인물이었다. 사이즈가 원한 것은 소통과 연결 그리고 평화였다.
8. 일론 머스크 [인간이 화성에 살 수는 없을까?]
일론 머스크는 전기자동차를 만드는 테슬라 모터스의 창업자로서 현실에서의 아이언맨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일단 그는 부자다. 젊었을 적부터 억만장자가 되었으며, 뛰어난 사업적 수완과 엔지니어적인 기술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일론 머스크는 돈을 많이 벌어보기도, 잃어버리기도 한 사람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벌었을 때의 모습보다는 잃고 난 후의 일론 머스크가 어떻게 하는지, 그의 삶을 주목해보고자 한다. 일론 머스크의 꿈은 질문에서 나온 것과 같이 인류를 화성에 이주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아마도 모두가 불가능한 일, 미친 짓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봐온 14명의 인물들이 살았던 당시에도 이들의 질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미친 짓, 획기적인 질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질문들로 인해 세상은 변했다. 일론 머스크의 질문 역시 그러리라 확신한다.
일론 머스크는 실리본밸리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큰 기업에 높은 가격으로 매각시킴으로서 31세의 나이에 억만장자 대열에 함류한다. 하지만 인터넷 업계에서의 성공 역시 그의 삶에서 중요한 발판이었지만, 그 이후의 행보를 보자면 시작한 미미할 정도다. 그의 관심 분야는 '우주'였기 때문이다. 그는 우주 산업의 새로운 방식과 가능성을 자신이 세운 새로운 회사 '스페이스엑스'를 통해 우주산업이 NASA만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님을 증명해 보였다.
사실 나사가 화성 연구나 화성 이주 문제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기술적 문제로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기술을 개발하고 화성으로 보낼 유인선을 제작하여 운용하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포기한 것이었다. 머스크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화성행 로켓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머스크는 진지하게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보기에 70억명을 돌파한 인류의 숫자와 그로 인한 지구의 심각한 환경 오염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인류의 조속한 멸종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머스크가 가장 주목했떤 문제는 우주 산업에 왜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사와 같은 국가 기관의 우주 사업에 그렇게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재료비보다는 거대한 조직의 폐해인 비효율적인 관계제적 업무 방식과 너무 거대한 조직 구조가 가장 컸다. 그래서 그는 기존의 10분의 1 비용으로 로켓을 쏘아 올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스페이스엑스를 시작했다.
일론 머스크는 또다른 생각을 했다. 화성으로 인간이 이주할 때까지 지구 환경을 최소한 현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화석 연료의 사용을 크게 줄여야 했고, 그는 그것의 한 방책으로 환경오염의 주원인인 가솔린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바꿔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전기작동차 제조업체인 '테슬라 모터스'를 세운다. 머스크에게 있어 전기 자동차는 환경을 위한 이동 수단의 대책인 것은 맞지만, 마치 사람들이 가끔씩 혹은 생각날 때 친환경적 행위와 기부 같은 행동으로 이용하기 위한 자동차가 아니다. 머스크는 단벌의 혹은 화제성 있는 전기 자동차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가솔린차를 전기차로 완전히 교체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의 사업에 큰 시련도 있었고, 모든 돈을 다 잃게 되는 위기도 있었지만 일론 머스크는 모든 시련을 극복함으로써 그의 도전의 가치를 증명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근거 없는 두려움은 무시해야 한다. 반면에 그 두려움이 합리적이고, 냉정히 생각했을 때 실패할 가능성이 높더라도 도전할 가치가 있따면 그 두려움을 무시하고 전진해야 한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도전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왜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는가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때이다. 그 첫걸음은 머스크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가치 있는 질문을 만들어내는 사고와 상상력을 가진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다. 돈을 모으는 것보다 그 돈을 모을 인재를 키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하며 궁극적으로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한다. 그래서 어쩌면 익숙해져 편안해진 사회의 구조 혹은 관습을 힘들고 어렵게, 불편하고 귀찮게도 바꾸려 하는 자들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걸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15명의 위인들과 같이 역사적으로 천재라고 불리거나 선구자로 불린 이들은 거의 모두가 동시대의 무언가를 거부하거나 깨뜨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 사람들이다. 당시에는 아무리 무시당하고 비난받아도 꿋꿋이 자기만의 길을 가며 결국 언젠가는 그 가치를 인정받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