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 - 빈의 동네 책방 이야기
페트라 하르틀리프 지음, 류동수 옮김 / 솔빛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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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_페트라 하르틀리프

언제부턴가 책을 읽고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책과 관련된 직업을 하고싶다는 욕구가 내 안에서 꿈틀댔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우선 자신이 좋아하는 일부터 하라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책과 관련된 직업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작가, 서평가, 출판사 관련 직업, 그리고 이 책의 제목과 같이 서점주인 등이 있을 것이다. 무슨 직업이든 내가 열심히 한다면 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 등과 같이 전문적인 능력을 요한 직업들은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공대생입니다..)을 보자면 쉽지 않은 길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서점 주인은 밑천과 열정만 있으면(약간의 운도..) 되지 않을까 싶어 지금까지 서점이나 북카페를 꿈꾸며 열심히 밑천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몇몇 주변 사람에게 서점이나 북카페를 하고 싶단 말을 해보았다. `한적한 곳, 풍경 좋은 곳에 커피와 책이 함께 할 수 있는 가게를 갖고 싶다.`라고 말하면 예상한 대로 모두가 만류한다. 돈이 안된다는 것이 주 이유이다. 분명 지금과 같이 인터넷으로 모든 책들을 구매해서 볼 수 있는 시대에 서점이라니... `망하기 딱 좋은 사업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기 때문에 진짜 서점을 한다고 결정하기까지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용기를 이 책의 저자인 펱라 하르틀리프가 보여준다.

어떨결에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허름한 서점을 인수하게 된 그녀는 자신뿐만 아니라 남편까지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고 서점을 운영하기 위해 빈으로 이사하게 된다.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고 잠잘 곳이 없어 친구 집에서 얹혀 지내면서 어떻게 서점을 운영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해주는데 독자로서 글은 쉽게 읽혔지만 그때 당시의 저자였던 당사자에게는 매 순간이 모험이었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수많은 장애물과 벽들을 만나고 고민했을 것이 분명하다. 안정된 삶으로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 멋있어 보이는 말이지만 가정이 있고 현재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존재한는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품을 판매한다. 우리는 이야기를 판다`

이 말이 참으로 멋있었다. 책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품이라..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판다.라는 말을 하는 그녀가 멋있었다. 이 말만으로도 서점을 운영하는 이유를 들기에 충분하다. 비록 돈벌이가 안되고 힘들지라도 이런 자부심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

나에게 서점을 하고 싶은 이유를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냥 책, 커피와 함께 여유를 즐기고 싶어서.... 돈은 삼씨세끼 먹을 만큼만 벌고 잔디밭에서 보더콜리, 골든 리트리버(강아지 종류도 정해놨다.)들을 훈련시키면서 뛰어놀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가 서점을 운영하는 것을 보니 여유가 없어보여 걱정이 든다. 직장생활할 때보다 더 바빠보이니 과연 강아지들과 뛰어놀 수 있는 시간, 커피한잔과 함께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걱정이다. but! 난 언젠가는 사람들이 다시 스마트폰을 버리고 종이책을 찾는 날이 올거라 굳게 믿고 있는 사람 중 한명이기 때문에 좀 바쁘더라도 보람있게 일할 준비가 되어있다.

책과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시대이다. 스마트폰 시대라 불리고 있지만 과연 인간은 스마트해지고 있는가? 나름 스마트하게 책도 전자책으로 읽고 있다지만 과연 얼마나 집중이 될지 의문이다. 종이책은 종이책 나름의 매력이 있으며 인간이 살아온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녀석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따라서, 스마트폰, 전자책 등이이 나날이 발전하더라도 종이책은 영원할 것이며, 앞서 말한대로 사람들은 책을 통해서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바보로부터 진정한 인간이 되고자 스스로 노력할 것이다. 그날들을 믿으며 계속해서 서점 주인을 꿈꾸고자 한다.

그럴려면 밑천부터 모아야 한다. 열심히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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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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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_존 윌리엄스

소설이 이상하다 느낄정도로 일상적이다. 단지 스토너라는 교수의 일대기를 써놓았을 뿐이다. 큰 사건, 사고라 여겨질만한 내용없이 소소한 삶을 담았으며 그의 인생 스토리가 천천히 물흐르듯 진행될 뿐이다. 하지만 빠져든다. 그리고 재미있다. 저자는 스토너라는 한 남자의 인생 스토리를 빗대어 인간의 인생이라는 것이 별거 없는 그저 다 똑같은 인생이지만 모두가 다 의미있는 삶을 살고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기라도 하듯이 단순하지만 찬란한 이야기로 깊이 있는 소설을 썼다.

책의 시작은 이렇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그를 특별히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

책의 주인공 스토너에 대한 첫 이야기다. 스토너는 (그가 남긴 일들에 비해) 살아서도 죽어서도 높이 평가받지 못한 인물이었다. 미주리 대학에서만 46년간 학생을 거쳐 박사학위를 받고 열정을 다해 교수로서 본분을 다했지만 어느 누구 하나 그를 뚜렷히 기억해주는 이 없었다. 어떻게보면 참으로 불쌍하고도 고독했으며 외로웠던 인물이었다.

가정에서도 인정받지 못했으며, 심지어 그의 부인 이디스한테도 끌려다니고 무시당했다. 심지어 집에서도 이디스에게 내쫓기다시피 나와 연구소로 피난온 처지가 되었다. 그의 딸 그레이스마저 이디스가 그로부터 일부로 떨어뜨려놓고자 했으며 잘못된 방향으로 딸을 교육시키는대도 스토너는 그저 참고 지켜볼뿐이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본업이었던 교수로서의 일만 열정적으로 할 뿐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빵점이었다.

읽는내내 그가 너무 한심해보였으며, 미치도록 답답했다. 참는 것만이 정답인 것인가. 자신은 그렇다쳐도 그레이스가 잘못된 방향으로 이디스로부터 교육을 받고 웃음이 사라지고 있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지켜만보는 그의 행동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평소 침착하고 신중했던 스토너가 왜 하필 이디스를 자신의 부인으로 선택했을까. 단지 외모때문에? 그리고 아디스는 왜 이토록 스토너를 괴롭히는 것일까? 스토너의 가정생활에 대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가 의문으로 남았다. 스토너가 실제인물이었다면 그에게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면 물어보고 싶었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인터뷰를 한다고 해도 그는 웃고만 있을 것 같지만....

`그의 주위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질질 끌리듯이 흘러갔다. 그는 집에서 아내와 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려고 했지만, 괴상한 강의 시간표 때문에 애매한 시간에만 집에 있을 수 있었으므로, 이디스의 빡빡한 일일 계획표와는 맞지 않았다. (...) 집에 머무르는 동안 그레이스를 자주 볼 수도 없었다. 이디스가 딸의 일정을 세심하게 짜놓았기 때문이었다. 강의가 끝날 무렵이면 대게 그레이스는 잠들어 있었다. 그가 그레이스를 볼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짧은 아침식사 시간뿐이었다.(...) 그는 아이의 몸이 점점 길쭉하게 자라고, 팔다리가 서투르지만 우아하게 변하고, 차분한 눈과 주의 깊은 얼굴에서 지성이 점점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때로는 딸과의 사이에 아직 친밀함이 조금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두 사람 모두 감히 그 친밀함을 인정할 수 없었다.`

스토너의 이런 한심하면서 답답한 모습이 이시대의 흔한 가정의 가장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TV프로 동상이몽을 보면 부모와 자식간에 싸움, 불화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이들과 같이 스토너가 가정에서 느끼는 외로움, 무기력감이 이 시대의 아버지가 느끼는 감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답답하리만치 참고,또 참는 스토너의 모습이 회사에서나 가정에서나 홀로 싸우고 있는 이 시대의 아버지와 닮아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스토너는 이러한 자신의 모습 안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하나의 목적만 보며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 말한다. 그리고 감사하다 말한다.

스토너는 서두에 말한 것과 같이 자신이 맡은 교사로서의 업무에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오로지 일로서만 행복을 느꼈다.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의 몇 년간은 교수로서 그에게 최고의 시절이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기도 했다. (...) 스토너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했다. 나이가 많아서 이상해보이는 학생들은 열렬하고 진지했으며, 시시한 것들을 경멸했다. 유행이나 관습에 무지한 그들이 공부를 대하는 태도는 스토너가 예전에 꿈꾸던 학생의 모습 그대로였다. 공부를 특정한 목적에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로 생각하는 모습. 스토너는 지금 이 시절이 지나고 나면 결코 이렇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녹초가 될 때까지 즐겁게 온몸을 바쳐 일하면서 이 시절이 결코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과거나 미래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실망이나 기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끌어낼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지금 이 순간에 쏟으면서, 이제는 학자로서 자신이 해온 일을 통해 알려지기를 바랐다.`

그의 인생에 대해 실패라거나 성공이라는 단어는 부적절하다 생각한다. 실패도 아니고 성공도 아니다. 그냥 그의 삶이었으며 그가 선택한 인생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가 마지막 죽기 직전에 느낀 감정들이다. 그의 인생에 후회는 없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의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이 질문을 계속 던진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했던 것인가. 기대한 것은 없다. 단지 행복만을 바랬을 뿐. 다른 누군가가 그의 인생에 대해 슬프고 불행했다 할지라도 그의 삶은 그만이 판단할 수 있다. 그는 누구보다도 나은 삶을 살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으므로....

나중에 자식도 낳아보고 더 깊고 힘든 고난들을 겪고 난 후에 다시한번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 그때 나는 나의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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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물건 -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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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물건_김정운

이 시대의 남자들이자 대한민국의 남자들 그리고 나이가 먹어가면서 불안해하는 남자들에 대해서 솔직담백하게 말하고자 `남자의 물건`이라는 약간은 발칙한 제목으로 김정운교수가 책을 썼다. 왜 남자의 물건이냐! 남자들은 나이들어가면서 할 이야기가 없어지기 때문에 불안해하며 힘들어한다 말한다. 그래서 이야기거리를 찾고자 각 남자들만의 물건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는 거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중인 대표적인 열명(이어령, 신영복, 안성기, 차범근, 조영남, 유영구, 이왈종, 박범신, 김문수, 문재인)을 찾아 인터뷰를 하고 이분들 각자가 말하는 물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는 거다. 왜 각자의 물건들이 소중하고 자기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김정운 교수는 책 머릿말에 이렇게 써놨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자신에겐 어떤 물건이 있는가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자기 삶에 관해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ㄴ는지 생각해보자는 거다.`

그래서 나 역시 나의 물건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내 인생에서 나를 대표할 수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없었다. 관심분야는 많아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고 산것들은 많으나 끝까지 간 적이 없기 때문에 고를수가 없었다. 허무하고 부끄러웠다. 꼭 물건이 있어야되는건 아니겠다만, 내가 아끼는 물건도, 이제껏 수집했다거나 나를 대변할 수 없는 물건이 없다. 상실감이 컸지만, 아직 남은 인생이 86살까지 산다는 가정하에(아내가 꼭 86살까지 살으란다. 자기는 85살까지 살거라고) 아직도 50년 이상이나 남았기 때문에 이제부터 나를 이야기할 수 있는 물건을 찾기로 했다. 찾는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조금조금씩 알아가 보기로 했다.

책 내용으로 들어가자면 1부는 남자에게라는 대제목으로서 남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 남자들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놨다. 김정운 교수의 주관적인 내용들이 많다만, 내용도 재미있고 술술 넘어가는게 부담이 없다. 김정운 교수의 책을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쉽게 쉽게 읽히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라서 받아들이기 수월한 느낌을 준다. 장기 기억장치속에 넣기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지만, 가끔씩 재미삼아 보기에는 딱 좋은 책인 듯 싶다. 2부는 처음에 말한 열명의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의 물건과 함께 삶을 들을 수 있다.

재미난 이야기들을 몇가지 풀어보자면,

`우리 삶이 재미없는 이유는 `선택의 자유 freedom of choice`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선택의 자유란, 집의 경우 집값 상승 요인, 애들 교육환경등을 고려해 아내가 결정하고, 내 출퇴근 환경, 내 삶의 즐거움 등은 안중에도 없다. 즉, 결혼하고 살면서 남자 마음대로 선택해서 자유롭게 사거나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몇가지 안된다. ) 그래서 남자들은 모이면 군대 이야기다. 이 선택의 자유를 박달당한 트라우마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꾸 반복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이유는 뭔가 심리적으로 막혀있기 때문이다.(...) 선택의 자유는 인간 존재의 근거다. 내 삶의 의미는 내가 선택하는가, 아닌가에 의해 결정된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남자들은 대부분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로 살기 때문에 뭐라도 하나 정해서 (김정운 교수 같은 경우는 만년필) 수집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자는 거다. 즉, 무언가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행복해하자는 것이다. 끝.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자신의 삶에 감사할 줄 안다. 그래서 가끔은 외로워야 한다. 가슴 저린 그리움이 있어야 내가 이제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기쁨, 내 가족에 대한 사랑, 내가 소유한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가 생기는 까닭이다. 나이 들수록 내 삶이 허전한 이유는 그리움이 없기 때문이다. 도무지 그리운게 없으니 삶에 어떤 기쁨이 있고, 무슨 고마움이 있을까. 삶에 아무런 기쁨이 없을 때는 처절하게 고독해보는 것도 아주 훌륭한 대처방법이다. 혼자 떠나는 거다.`

대학생때 홀로 3개월동안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혼자 있다보면 여러가지 생각들을 많이 할 수 있다. 정리가 되기까지는 좀 시간이 거리겠지만, 일단 가족, 부모, 친구, 직장, 자녀 등등 복잡하고 이상한 상상들을 하게 되지만 이러한 상상들이 매우 유익하다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 정신 나간 사람마냥 혼잣말을 할 때도 있고, 멍 때리고 있을 때도 많지만 혼자 있어야지만 가질 수 있는 유익한 시간들이다. 외롭지만 몇시간, 몇일만 지나면 외로움도 익숙해져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나이 들면서 더 이런 시간이 필요한데 결혼하고 회사생활을 하다보니 혼자 몇일 동안 고독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1년 중 아예 없다고 봐도 된다. 그래서 김정운 교수는 나이를 먹어갈 수록 이런 시간, 홀로 고독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한다. 처절하게 고독해보라고.. 혼자 떠나라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차이에 관대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뜻한다. (...) 지혜롭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면의 시간이 아주 많아지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성공한 어른`이었을지는 몰라도 자신의 내면을 위한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은 아니었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경우를 자주 본다.(...) 아무리 바빠도 삶의 마디를 자주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 삶의 마디를 잘 만들어 `가늘고 길게`아주 잘 사는 것을 뜻한다.`

버트런트 러셀의 `행복의 정복` 서평때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앞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천천히 살고 싶다. 김정운 교수가 말한 것을 빌리자면 이제서야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바빠도 스스로 쉴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 주말이나 휴가에 자주 쉬고 싶다. 삶의 마디를 만들고 싶다. 천천히 어른이 되고 싶다.

이외에도 재미있고 유익한 말들이 많다. 솔직히 택배로 주문한 책들이 도착하기 전이라 쉬어가는 차원에서 읽은 책인데 전에 한번 봤었는데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 당황했다. `역시 이래서 서평을 써야되는구나` 생각도 들었고, 이렇게 재미있고 솔직담백한 말들, 그리고 진정 남자들을 위한 내용들이 많아 앞으로도 대한민국 남자들을 위한 책들을 자주 써줬으면 좋겠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도 몇년전에 봤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걸 보니 다시 한번 읽고 이렇게 글을 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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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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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_버트런드 러셀

사실 서점에서 이 책을 고르려고 했던 것 아니었지만 우연찮게 발견하게 되었다. 책 제목만 보고 `행복을 정복한다고?` 하며 책장에서 책을 꺼내 표지를 본 순간 두번 놀라게 되었는데 이유는 한번은 얼마 전에 버트런드 러셀 교수의 `인기없는 에세이`를 읽었던 터라 저자의 이름을 본 순간 놀랬고, 또 한번은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이란 책에서 소개되었던 책이라서 놀랬다. 나는 버트런드 교수가 이 책을 쓴지도, 그리고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에 이 책이 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책 제목만 보고 이 책을 골랐다는 것, 모두가 우연의 일치고 나보고 꼭 읽어보라는 계시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결국 계산을 하게 되었다.

버드런트 러셀 교수는 행복은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보았기에 이 책에 `행복의 정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복이라는 단어는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에레베스트와 같이 넘기 힘든 산들을 넘었을 때 어울리는 단어다. 즉, 러셀 교수는 행복도 이들과 같이 넘기 힘든 것들이라 봤을 것이 틀림없다. 이 이유가 아니면 구지 행복과 정복이란 단어를 매칭시켰을리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행복을 정복했으면 하는 마음에 썼는지 모르겠지만 행복을 이론으로 배우는 느낌이 강하다. 권태, 걱정, 질투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대 모든 이유가 있다고 설명하지만 모두가 맞다고는 볼 수 없을 듯 싶다. 인간의 감정이란 해석할 수 없는 심오하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이유로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똑같은 일을 경험해도 모두가 느끼는 감정은 저마다 다르다. 행복 역시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인데 러셀 교수는 이론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한 듯 싶다. 누가 철학자 아니랄까봐...

하지만 분명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란 있을 수도 있다. 러셀은 이 보편적인 감정을 설명하고자 했을 것이 분명하고, 따라서 이 책을 읽어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그래서 행복이 내 곁을 왜 떠났는지, 그리고 행복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러셀은 자신있게 말했다. `인간은 충분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이말을 깊이 새기며 책을 읽었다.

`문제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행복의 주요한 원천이라고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다. 성취감이 행복한 삶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젊었을 때 세간의 이목을 끌지 못하던 화가는 사람들로부터 재능을 인정받게 되면 더 행복해질 것이다. 나는 일정한 시점까지는 돈이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일정한 시점을 넘어선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나는 성공은 행복의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에 성공하기 위해서 나머지 요소들을 모두 희생한다면 지나치게 비싼 대가를 치른 셈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 다른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는 것, 성공 하는 것들로 인해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까? 최근에 읽은 행복과 관련된 책들을 보자면 모두 NO라고 말한다. 러셀 역시 일정한 시점까지는 행복을 느끼게 만들어 줄수는 있으나 증진시킬 수 없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모두들 이런 것들을 가지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있다. 왜 벗어날수가 없는 것일까? 누구는 용기가 없어서라고 말하고 혹자는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라 말한다. 인생을 살면서 나 역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모두가 맞는 말일 것이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자신만이 알고 있겠지만, 러셀은 `바로 건전하고 조용한 즐거움을 인생의 균형 잡힌 이상형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며 행복한 인생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다.`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고만 자신감을 가지는 것도 행복하는데 있어 위험할 수 있다 경고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재능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고 있다고 하자.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이라고 지나치게 확신하지 마라. 만약 당신이 그런 확신을 방치하게 되면, 당신의 재능이 인정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음모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런 믿음은 당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이 틀림없다. 당신 자신의 재능이 생각했던 것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이렇게 인정하는것이 당장은 고통스럽겠지만, 결국 그 고통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다. 그 고통의 끝을 넘어서면 다시 행복한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아들러 심리학 책에서 `인정받으려고 노력하지 말라` 라고 자주 말하는데 이와 일맥상통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자신에 대한 우월감은 위험하며 오히려 어느정도의 열등감이 나을 수 있다 말한다. 러셀이나 아들러가 말한대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는 자세가 행복에 있어 중요하다. 그냥 흐르는대로 남들이 나를 욕하면 욕하는 대로 나만 떳떳하면 된다. 자신감,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을수록 실패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좌절감도 클 것이며, 상실감에서 벗어나는 시간도 길 것이다.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실패, 실수는 누구나 하는법. `한번 실수한 실수는 두번 다시 하지 말라`라는 말 역시 위험할 것이다. 인간이기에 망각의 동물이기에 몇번이고 똑같은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사는대로 나 자신을 인정하고 이런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방법이다.

모든 관심, 행동은 따뜻하게 해야지 행복할 수 있다 생각한다. 따뜻함을 가지는 것이 행복의 원천이다.
러셀의 말에 의하면

`인간에 대해서 따뜻한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소유하기를 원하며, 언제나 명확한 반응이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랑과는 전혀 다르다. 행복을 가져 오는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하며, 만나는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거나 열광적인 찬사를 받아내려고 하는 대신, 그들의 관심과 기쁨의 폭을 넓혀주려고 하는 사랑이다.(...) 행복의 비결은 되도록 폭넓은 관심을 가지는 것, 그리고 관심을 끄는 사물이나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따뜻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 말 자체에도 따뜻함이 묻어난다. 즉, 인간은 봄, 가을과 같이 따뜻함을 가지고 있어야 행복할 수 있으며, 여름, 겨울과 같은 열정, 냉정은 행복함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계절이 그러하듯 온 계절이 봄, 가을같을 수는 없는 법, 열정과 냉정과 같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어야지 따뜻함을 표현할 수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래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러셀은 열정 역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수단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지난친 열정은 제외하고 평범한 열정에 한에서다.

`어떤 열정이 불행의 원천이 되지 않기 위해서 결코 도를 넘어서는 안 될 몇가지 요소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건강을 유지하는 것, 자신의 능력을 전체적으로 유지하는 것, 생계유지에 충분한 소득을 유지하는 것, 처자식에 대한 의무와 같은 가장 근본적인 사회적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 가지 욕망만 지나치게 추구하는 사람은 대개 심리적으로 깊은 문제를 가지고 있고, 공포의 대상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하는 사람이다.

사랑 역시 행복해질 수 있는 도구이지만 자기중심적인 사랑은 독이될 수 있다. 러셀이 이야기 하는 사랑에 대해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가장 바람직한 사랑은 서로 생명력을 주고 받는 사랑이다. 두 사람은 애쓰지 않고도 기쁨으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둘 다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결국 세상에 대해서도 더 큰 흥미를 느낀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랑, 서로를 단순히 자신의 해옵ㄱ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결합체로 보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자기중심적인 사랑. 자주 아내로부터 듣는 말이다. 오직 나만의 충족을 위해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러셀이 말한 것처럼. 내가 사랑을 줄때나 받을 때나 서로를 위한 마음이 담겨있어야 진정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배푸는 사랑은 양측 모두를 만족할 수 없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특히, 나같이 개인주의적인 사람은 더더욱... 내가 준다고 생각하는 사랑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소개된 내용을 마무리로 하고자 한다.

법정스님은 `삶이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진 행운`이므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지 말라고 권한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간다. 불행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다 같이 바라는 행복은 온갖 생각을 내려놓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데서 움이 튼다. 우리가 이 순간을 사람답게 살 수 있따면 그 안에 행복은 깃들어 있다. 무엇에 쫓기든 살아서는 안된다. 영혼이 미처 따라올 수 없도록 다급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잠재력을 묵혀 두지 말고 마음껏 발휘해서 세상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천천히 걷듯이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자` 왠지 내 행복의 모토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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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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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_유시민


'국가란 국민입니다.'


변호인에서 송강호가 외쳤던 말이다. 국가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국민의 나라인 것이

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국민을 안전으로부터 지키고 국민이 어려움에 처해있으면 도와주어야 하며 법 앞에서는 평등해야 한다. 자유, 경쟁, 평등 등 여러가지 사상들이 이 책에 나와있지만, 모든 사상의 공통점은 국가는 국민을 위한 나라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이런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다시한번 유시민 작가가 말해보고자 이 책을 폈다.


'사람들 사이에 정의가 수립되지 않았고, 국가는 시민을 보호하지 않았다. 정의를 외면하는 국가, 선량한 시민 하나라도 버리는 국가는 결코 훌륭한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이런 국가에서는 시민의 삶도 훌륭하기 어렵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경쟁을 통해 타인을 밟고 생존해야하는 자본주의국가이다. 즉, 시민이 스스로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하며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사람은 최소한의 보호는 해주되 책임은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있다는 주의이다. 그리고 국가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 힘있는 사람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시스템이다. 서두에서 말한 국민을 위한 나라가 국가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은 훌륭한 나라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훌륭한 나라는 어떤 국가일까? 


유시민 작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세우고 모든 종류의 위험에서 시민을 보호하며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행동하는 국가'를 훌륭한 국가라고 생각한다 말한다. 정의라고 말하니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생각나는데 일단 정의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여러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고, 정의 뒤에 나오는 말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한다. '시민을 보호하고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행동하는 국가' 역사적으로 평등을 추구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했기 때문에 자본주의 국가가 추구하는 경쟁에 대해서는 크게 부정하고 싶지 않다. 어쩔 수 없는 경우의 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앞의 평등과 경쟁은 서로 다른 말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아 힘이 있다고 해도 법치국가라고 한다면 법 앞에서는 힘있는 자든 힘 없는 자든 평등해야 하며 국가는 이를 정의라 생각하며 지켜야 한다. 즉, 시민을 보호하고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나라가 훌륭한 국가라 생각하는 유시민 작가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국가의 본질과 역할이 무엇인지 역사적으로 다양한 주장을 펼친 철학자들의 이론들로 설명하고자 한다. 크게 네가지 흐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국가주의 국가론이다. 이 이론은 전체주의 성향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는데 국가주의 국가론의 논리체계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세운 인물은 영국의 토마스 홉스였다. 둘째는 자유주의 국가론이다. 존 로크에서 애덤 스미스를 거쳐 하이에크까지 소위 고전적 자유주의자와 신자유주의 철학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 이론을 만들었다. 이것은 오늘날 모든 문명국가의 자유주의자들이 신봉하는 보수적 국가론이다. 셋째는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다. 이 이론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진보주의자들을 끌어당겼지만 역사적으로 실패한 주의라 말할 수 있다. 넷째는 목적론적 국가론이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펄쳤던 가장 오래된 이론이다.


이들이 주장한 이론들이 옳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놓고 봤을 때 이들이 주장한 이유는 당연했다. 이들의 사상들로 인해 현재 가장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이론들을 지금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었고 가장 이상적인 국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유시민은 수 많은 사상가들의 국가론 중에서 '이미 유행이 끝나버렸지만, 그래도 배워야할 것들'을, '모두가 비판하지만, 그래도 배워야 할 것들'을 추출해낸다. 오해와 편견의 늪 속에서 건져 올린 빛나는 통찰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어쩌면 한 번도 제대로 실험되지 않은 보석같은 정치 철학들이다.


국가는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이 질문 또한 중요하다. 국가는 직접 행동하지 않는다. 정부가 행동한다. 더 정확하게는 정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행동한다. 국가의 의지는 정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표현된다. 즉, 국가 권력을 실제로 행사하는 사람이 어떤 생각, 소망, 의지를 지녔는가에 따라 통치는 받는 대중의 삶은 크게 달라진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은 가장 훌륭한 사람을 권력자로 선출하여 많은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사악하거나 거짓말을 잘하거나 권력을 남용하거나 지극히 무능하거나 또는 그 모든 결점을 지니니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이며 강점이다.' 


대한민국은 '사악하거나 무능한 지배자들이 너무 심한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어느 정도 잘 갖춘 나라이다. 이 제도들을 제대로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어떻게 하면 훌륭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평화적이고 합법적으로 국민이 정부를 교체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한, 그 나라의 정부는 민주정부이다.


그렇다면 현재 미국을 필두로 일본, 대한민국이 채택하고 있는 자유주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현재 실행되고 있는 경쟁에 의한 운영체제인 자유주의 철학에 근접한 철학자라고 하자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일 것이다. 하이에크의 주장에 따르면 자연발싱적인 힘의 핵심은 경쟁이다. 경쟁이 최대한 유익하게 작동하도록 의식적으로 사회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하이에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 그 자체라기 보다는 경쟁이라는 자연적인 힘이다. 하이에크는 한 순간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 냉정한 개인주의자였따. 개인주의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기본적 사실에서 출발한다. 가치의 척도는 각자의 정신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개인주의자는 모든 사람이 타인의 가치나 선호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치와 선호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최고의 선은 개인의 목적체계이며, 이것은 다른 그 누구의 그 어떤 지시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자유주의적 도덕법칙의 핵심은 자유와 책임이다. 물질적 상황이 선택을 강요하는 분야에서 우리 자신의 행위를 결정한 '자유', 그리고 삶을 자신의 양심에 따라 꾸려간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이 토양 위에서만 도덕적 감성이 자라날 수 있다. 따라서 국가가 안정적으로 존속하려면 모든 사람을 하나의 목적체계에 봉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모든 사람이 이 목적체계를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믿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스스로 그 신념을 위해 자발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시민사회와 개인의 삶에서 각자 최고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대상들을 추구할 수 있또록 보장하기 위해 자유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내적 평화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실용적 도구에 불과하다.


개인 각자가 목표의식에 맞춰 생활하도록 자유를 허용하며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은 개인 각자에게 있다.

각 개인의 경쟁을 통해서만 국가가 운영된다면 공정한 분배는 없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이에크는 전체주의로 가는 길을 봉쇄하기 위해 분배정의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모든 정책은 결국 법치를 파괴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결코 특정인에게 이익이나 불이익을 주려고 만든 제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최고의 도덕적 이상인 자유를 지키려면 법의 지배를 확고히 수립해야 하는데 자유와 경쟁이 초래한 불평등을 인위적으로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반드시 법치를 파괴한다고 보았다. 법치가 파괴되면 자유를 지킬 수 없다.


그렇다면 하이에크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국가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경쟁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는 일뿐이다. 목적은 소비자와 힘이 약한 기업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보호하고 복돋우는 것이다. 즉, 축구경기의 심판과 같은 위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편파판정없이 어느 한 팀이 10대 0으로 이기고 있을지라도 공정한 판정을 내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사회에 가장 유익하지만 개인이 그 비용을 보상할 수 있을 만큼 이윤이 나지 않는 종류의 서비스, 공공재를 제공하는 일이다. 이것 말고는 국가가 할 일은 없다.


그러나 하이에크는 자유라는 하나의 가치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라는 하나의 가치가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사회는 정의나 평등이라는 단일가치가 지배하는 다른 전체주의 사회와 무엇이 다를지 의문이다. 자유라고 한다면 좋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나, 하이에크가 말하는 자유란 경쟁을 통한 생존이고 국가는 그 생존 유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다는 주의이기 때문에 국가가 나라를 통치한다는 전체주의와는 자유에서 국가만 바뀌었을 뿐 무엇이 다른 점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또한 자유주의대로 국가가 운영된다고 보면 모든 사람은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해야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을 터인데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만 보더라도 공정한 출발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라면 다시 국가가 개입하거나 국민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사회를 조성해야 하는데 자유로운 경쟁을 추구하는 국가에서는 개입은 불공정한 일이며 각 개인들도 돈과 권력에 빠져 남들보다 앞서려고만 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 문명국가가 걸어야 할 길은 하이에크의 길이 아니다. 잔체주의르르 피하려고 할 때 우리가 무엇보다 우선해서 선택하고 시도해야 하는 것은 '점진적 공학'의 깃발을 들고 국가의 '민주적 개입'을 통해 사회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포퍼의 길일 것이다.


진보정치란 무엇일까? 진보는 보수와 어떻게 다르며, 진보정치란 국가를 어떻게 바꾸려고 하는 것일까? 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사회의 진보는 생물의 진화가 그런 것처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자연적 현상이라 '유한계급론'을 쓴 베블런은 말한다. 모든 제도는 본질적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와 기능에 대해 널리 퍼져 있는 사유습성의 산물로서 존재하는 모든 제도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 어느 시기에 사회를 지배했던 관점과 사유습성을 체현한다. 사람들은 그 제도 속에 살면서 과거에서 전승된 정신적 태도에 따라 사유하는 습성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삶의 환경은 지속적으로 변한다. 그 변화는 끊임없이 현실에 더 적합한 관점과 사고방식을 요구한다. 제도를 조정하라는 요구가 제기되고 조정이 실제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진보는 피할 수도 멈출 수도 없다는 것이다.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는 모두 사유습성과 생활방식, 제도의 변화에 대응하는 정신적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주의는 생활환경의 변화가 요구하는 새로운 사유습성과 생활방식, 그에 따르는 제도의 조정 필요성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려는 정신적 태도이다. 보수주의는 새로운 사유습성을 거부하고 변화에 저항하려는 정신적 태도를 가리킨다. 만약 환경의 변화에 의해 강요당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모두 영원히 보수주의자로 살아갈 것이다. 보수주의는 특정한 계급의 독점적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다.


유한계급은 돈과 권력이 있기 때문에 어지간한 생활환경의 변화에는 압력을 느끼지 않는다. 살아가는데 별 지장이 없다. 그들에게 보수주의는 고상하고 품위 있는 것이며, 혁신은 천박하고 나쁜 것이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 역시 보수적이다. 이유는 너무 가난해서이다. 혁신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즉, 풍요로운 사람들은 오늘의 상황에 불만을 느낄 기회가 적어서 보수적인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진보란 무엇일까? 가장 좁은 의미로는 자본주의는 극복하는 것이고, 넓은 의미의 진보는 인간 능력의 지속적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현재의 자본주의 국가를 보자면 재벌 기업에 의해 국가기구가 포위되고 장악되었다. 그 결과 국가가 기업처럼 변질되어 버렸다. '자본의 민주적 통제를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사회제도가 변화되어야 하겠지만, 그 변화의 시작은 가장 전제적이고 폭력적이며 탈법적인 특정 자본을 타도하는 데서 일어나야 할 것이다.


넓은 의미의 진보를 보자면 에드워드 카는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을 의미한다 말한다. 그리고 이런 의미의 진보가 이성적 존재인 인간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이남곡에 따르면 진보는 인간이 행복을 위해 자유를 확대해나가는 과정이며 이를 위해서는 자유를 억압하는 것들에서 인간을 해방시켜야 한다. 인간을 자유롭제 못하게 얽어매는 것이 세가지 있는데 그것은 불합리한 제도, 물질의 결핍, 낡은 생각이 그것이다. 진보는 현재 자신의 사유습성과 생활양식을 객관적으로 보고 그것과 환경의 변화 사이의 불일치나 부조화를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생각이 막히고 닫히는 순간, 기존의 사유습성에 갇히는 순간, 그 사람은 진보와 멀어진다. 중요한 것은 사회관계와 물질, 의식의 모든 면에서 행목을 위해 자유를 확대하고자 하는 진보의 방향을 의식하고 유지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진보를 이렇게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정치를 생각해보자. 과연 정치란 무엇인가? 베버는 정치를 '국가를 운영하거나 국가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이라고 폭넓게 규정했다. 진보정치를 하려면 정치 그 자체를 의미있는 활동으로 인정하는 진취적 국가론이 필요하다. 센델은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되면 정의로운 사회건설에 더 희망찬 기반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라는 인간공동체의 목적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으뜸가는 선을 훌륭하게 추구하는 것이 국가의 목적이라 말했다. 모든 학문과 기술의 으뜸인 정치의 선은 정의이다. 정의는 특정한 사물을 평등하게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텔로스를 실현한 국가, 충분히 발전해 최선의 상태에 도달한 국가는 과연 어떤 국가일까? 행복하고 잘 나가는 국가라 아리스토 텔레스는 전했따. 국가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은 같은 것이다. 최선의 정체는 누구나 가장 훌륭하게 행동할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제도여야 한다. 훌륭한 입법자가 할 일은 국가나 민족이나 공동체가 어떻게 훌륭한 삶과 행복에 참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선의 국가를 만들어 텔로스를 실현하는 길을 어디에서 찾았을까? 바로 시민 각자가 훌륭해짐으로써 인간으로서의 텔로스를 실현하는 것이 해답이다. 따라서 시민 각자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진보정치는 국가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려는 활동이다. 직접 국가를 운영하거나 국가운영에 영향을 줌으로써 국가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진보정치의 목표이다. 그러기 위해선 개인 하나하나가 훌륭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국가의 목표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개인에게는 이타성이 최고의 도덕적 이상인 반면 국가에게는 정의가 최고의 도덕적 이상이다. 니버의 생각이다. 유시민 역시 이 생각에 동의한다 말한다. 이번에는 국가가 실현해야 할 정의는 무엇일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는 각자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었는데 누가 무엇을 얼마나 받는 것이 정의로운지, 국가는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지,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할 경우, 국가는 그 결정을 어떤 방법으로 집행할 수 있을까?


헌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이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것이 국ㄱ가 실현해야 할 정의의 첫번 째 내용이다. 이는 모두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이며 이 권리는 대한민국 국민, 인간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권리들을 묶어 자유권적 기본권이라 한다. 하지만 자유 그 자체가 정의는 아니다. 자유가 있다고 정의가 수립되는 것이나 그러나 자유 없이 수립할 수 있는 정의는 없다.


우리 헌법은 소비자 또는 수요자의 호감을 얻기 위한 자유로운 경쟁을 부와 소득을 배분하는 기본 원리로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자본주의 또는 자유로운 시장경제 체제를 경제적 기본 질서로 규정한 것이다. 자기 책임 아래 전개하는 자유로운 경쟁이 만들어낸 소득과 부의 분배를 정의롭다고 일정하려면 몇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동등한 참여의 기회, 공정한 경쟁,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동등한 주체로서의 경쟁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험하고 목격하는 시장의 자유경쟁은 과연 이런 조건이 충죽된 가운데 벌어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기회 균드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곳곳에서 반칙과 편법이 저질러진다. 우월한 경제권력을 이용한 불공정한 거래관행이 도처에서 통용된다. 자유시장의 경쟁을 통한 소득과 부의 배분은 이론적으로는 정의로울 수 있지만 실제 현실에서 정의로운 것은 결코 아니다. 시장은 정의를 실현하지 않는다. 현실의 시장은 욕망을 충족하는데는 효과적이지만 정의를 실현하는데는 아무 과심이 없다.


그렇다면 국가는 어떻게 이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어려움이 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가가 법류을 정비하고 과정에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물론 완전하게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안다. 그래서 헌법을 만든 이들은 불의를 만드는 근본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헌법에 명시하면서,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할 경우 국가가 결과를 사후적으로 바로잡는 '대중요법'을 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우리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유시민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바라는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는 국깅다. 국민 한 사람 한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국가이다. 국민을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중하는 국가이다. 소로가 말한 것처럼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시민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런 국가를 만들 수 있고, 또 그런 나라에서 살 합당한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나라를 증오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나라에 충성을 맹새하며 애국심을 키우는 것 역시 좋은 것이 아니다. 좋은 지도자가 나타나 우리가 행복하도록 바뀌길 바라는 것 역시 우리의욕심이다. 정의로운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도덕, 양심을 지키며 나 개인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훌륭한 국민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훌륭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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