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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국가란 무엇인가_유시민
'국가란 국민입니다.'
변호인에서 송강호가 외쳤던 말이다. 국가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국민의 나라인 것이
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국민을 안전으로부터 지키고 국민이 어려움에 처해있으면 도와주어야 하며 법 앞에서는 평등해야 한다. 자유, 경쟁, 평등 등 여러가지 사상들이 이 책에 나와있지만, 모든 사상의 공통점은 국가는 국민을 위한 나라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이런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다시한번 유시민 작가가 말해보고자 이 책을 폈다.
'사람들 사이에 정의가 수립되지 않았고, 국가는 시민을 보호하지 않았다. 정의를 외면하는 국가, 선량한 시민 하나라도 버리는 국가는 결코 훌륭한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이런 국가에서는 시민의 삶도 훌륭하기 어렵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경쟁을 통해 타인을 밟고 생존해야하는 자본주의국가이다. 즉, 시민이 스스로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하며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사람은 최소한의 보호는 해주되 책임은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있다는 주의이다. 그리고 국가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 힘있는 사람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시스템이다. 서두에서 말한 국민을 위한 나라가 국가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은 훌륭한 나라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훌륭한 나라는 어떤 국가일까?
유시민 작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세우고 모든 종류의 위험에서 시민을 보호하며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행동하는 국가'를 훌륭한 국가라고 생각한다 말한다. 정의라고 말하니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생각나는데 일단 정의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여러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고, 정의 뒤에 나오는 말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한다. '시민을 보호하고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행동하는 국가' 역사적으로 평등을 추구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했기 때문에 자본주의 국가가 추구하는 경쟁에 대해서는 크게 부정하고 싶지 않다. 어쩔 수 없는 경우의 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앞의 평등과 경쟁은 서로 다른 말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아 힘이 있다고 해도 법치국가라고 한다면 법 앞에서는 힘있는 자든 힘 없는 자든 평등해야 하며 국가는 이를 정의라 생각하며 지켜야 한다. 즉, 시민을 보호하고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나라가 훌륭한 국가라 생각하는 유시민 작가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국가의 본질과 역할이 무엇인지 역사적으로 다양한 주장을 펼친 철학자들의 이론들로 설명하고자 한다. 크게 네가지 흐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국가주의 국가론이다. 이 이론은 전체주의 성향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는데 국가주의 국가론의 논리체계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세운 인물은 영국의 토마스 홉스였다. 둘째는 자유주의 국가론이다. 존 로크에서 애덤 스미스를 거쳐 하이에크까지 소위 고전적 자유주의자와 신자유주의 철학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 이론을 만들었다. 이것은 오늘날 모든 문명국가의 자유주의자들이 신봉하는 보수적 국가론이다. 셋째는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다. 이 이론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진보주의자들을 끌어당겼지만 역사적으로 실패한 주의라 말할 수 있다. 넷째는 목적론적 국가론이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펄쳤던 가장 오래된 이론이다.
이들이 주장한 이론들이 옳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놓고 봤을 때 이들이 주장한 이유는 당연했다. 이들의 사상들로 인해 현재 가장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이론들을 지금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었고 가장 이상적인 국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유시민은 수 많은 사상가들의 국가론 중에서 '이미 유행이 끝나버렸지만, 그래도 배워야할 것들'을, '모두가 비판하지만, 그래도 배워야 할 것들'을 추출해낸다. 오해와 편견의 늪 속에서 건져 올린 빛나는 통찰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어쩌면 한 번도 제대로 실험되지 않은 보석같은 정치 철학들이다.
국가는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이 질문 또한 중요하다. 국가는 직접 행동하지 않는다. 정부가 행동한다. 더 정확하게는 정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행동한다. 국가의 의지는 정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표현된다. 즉, 국가 권력을 실제로 행사하는 사람이 어떤 생각, 소망, 의지를 지녔는가에 따라 통치는 받는 대중의 삶은 크게 달라진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은 가장 훌륭한 사람을 권력자로 선출하여 많은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사악하거나 거짓말을 잘하거나 권력을 남용하거나 지극히 무능하거나 또는 그 모든 결점을 지니니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이며 강점이다.'
대한민국은 '사악하거나 무능한 지배자들이 너무 심한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어느 정도 잘 갖춘 나라이다. 이 제도들을 제대로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어떻게 하면 훌륭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평화적이고 합법적으로 국민이 정부를 교체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한, 그 나라의 정부는 민주정부이다.
그렇다면 현재 미국을 필두로 일본, 대한민국이 채택하고 있는 자유주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현재 실행되고 있는 경쟁에 의한 운영체제인 자유주의 철학에 근접한 철학자라고 하자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일 것이다. 하이에크의 주장에 따르면 자연발싱적인 힘의 핵심은 경쟁이다. 경쟁이 최대한 유익하게 작동하도록 의식적으로 사회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하이에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 그 자체라기 보다는 경쟁이라는 자연적인 힘이다. 하이에크는 한 순간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 냉정한 개인주의자였따. 개인주의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기본적 사실에서 출발한다. 가치의 척도는 각자의 정신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개인주의자는 모든 사람이 타인의 가치나 선호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치와 선호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최고의 선은 개인의 목적체계이며, 이것은 다른 그 누구의 그 어떤 지시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자유주의적 도덕법칙의 핵심은 자유와 책임이다. 물질적 상황이 선택을 강요하는 분야에서 우리 자신의 행위를 결정한 '자유', 그리고 삶을 자신의 양심에 따라 꾸려간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이 토양 위에서만 도덕적 감성이 자라날 수 있다. 따라서 국가가 안정적으로 존속하려면 모든 사람을 하나의 목적체계에 봉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모든 사람이 이 목적체계를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믿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스스로 그 신념을 위해 자발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시민사회와 개인의 삶에서 각자 최고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대상들을 추구할 수 있또록 보장하기 위해 자유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내적 평화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실용적 도구에 불과하다.
개인 각자가 목표의식에 맞춰 생활하도록 자유를 허용하며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은 개인 각자에게 있다.
각 개인의 경쟁을 통해서만 국가가 운영된다면 공정한 분배는 없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이에크는 전체주의로 가는 길을 봉쇄하기 위해 분배정의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모든 정책은 결국 법치를 파괴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결코 특정인에게 이익이나 불이익을 주려고 만든 제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최고의 도덕적 이상인 자유를 지키려면 법의 지배를 확고히 수립해야 하는데 자유와 경쟁이 초래한 불평등을 인위적으로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반드시 법치를 파괴한다고 보았다. 법치가 파괴되면 자유를 지킬 수 없다.
그렇다면 하이에크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국가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경쟁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는 일뿐이다. 목적은 소비자와 힘이 약한 기업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보호하고 복돋우는 것이다. 즉, 축구경기의 심판과 같은 위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편파판정없이 어느 한 팀이 10대 0으로 이기고 있을지라도 공정한 판정을 내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사회에 가장 유익하지만 개인이 그 비용을 보상할 수 있을 만큼 이윤이 나지 않는 종류의 서비스, 공공재를 제공하는 일이다. 이것 말고는 국가가 할 일은 없다.
그러나 하이에크는 자유라는 하나의 가치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라는 하나의 가치가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사회는 정의나 평등이라는 단일가치가 지배하는 다른 전체주의 사회와 무엇이 다를지 의문이다. 자유라고 한다면 좋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나, 하이에크가 말하는 자유란 경쟁을 통한 생존이고 국가는 그 생존 유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다는 주의이기 때문에 국가가 나라를 통치한다는 전체주의와는 자유에서 국가만 바뀌었을 뿐 무엇이 다른 점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또한 자유주의대로 국가가 운영된다고 보면 모든 사람은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해야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을 터인데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만 보더라도 공정한 출발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라면 다시 국가가 개입하거나 국민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사회를 조성해야 하는데 자유로운 경쟁을 추구하는 국가에서는 개입은 불공정한 일이며 각 개인들도 돈과 권력에 빠져 남들보다 앞서려고만 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 문명국가가 걸어야 할 길은 하이에크의 길이 아니다. 잔체주의르르 피하려고 할 때 우리가 무엇보다 우선해서 선택하고 시도해야 하는 것은 '점진적 공학'의 깃발을 들고 국가의 '민주적 개입'을 통해 사회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포퍼의 길일 것이다.
진보정치란 무엇일까? 진보는 보수와 어떻게 다르며, 진보정치란 국가를 어떻게 바꾸려고 하는 것일까? 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사회의 진보는 생물의 진화가 그런 것처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자연적 현상이라 '유한계급론'을 쓴 베블런은 말한다. 모든 제도는 본질적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와 기능에 대해 널리 퍼져 있는 사유습성의 산물로서 존재하는 모든 제도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 어느 시기에 사회를 지배했던 관점과 사유습성을 체현한다. 사람들은 그 제도 속에 살면서 과거에서 전승된 정신적 태도에 따라 사유하는 습성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삶의 환경은 지속적으로 변한다. 그 변화는 끊임없이 현실에 더 적합한 관점과 사고방식을 요구한다. 제도를 조정하라는 요구가 제기되고 조정이 실제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진보는 피할 수도 멈출 수도 없다는 것이다.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는 모두 사유습성과 생활방식, 제도의 변화에 대응하는 정신적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주의는 생활환경의 변화가 요구하는 새로운 사유습성과 생활방식, 그에 따르는 제도의 조정 필요성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려는 정신적 태도이다. 보수주의는 새로운 사유습성을 거부하고 변화에 저항하려는 정신적 태도를 가리킨다. 만약 환경의 변화에 의해 강요당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모두 영원히 보수주의자로 살아갈 것이다. 보수주의는 특정한 계급의 독점적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다.
유한계급은 돈과 권력이 있기 때문에 어지간한 생활환경의 변화에는 압력을 느끼지 않는다. 살아가는데 별 지장이 없다. 그들에게 보수주의는 고상하고 품위 있는 것이며, 혁신은 천박하고 나쁜 것이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 역시 보수적이다. 이유는 너무 가난해서이다. 혁신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즉, 풍요로운 사람들은 오늘의 상황에 불만을 느낄 기회가 적어서 보수적인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진보란 무엇일까? 가장 좁은 의미로는 자본주의는 극복하는 것이고, 넓은 의미의 진보는 인간 능력의 지속적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현재의 자본주의 국가를 보자면 재벌 기업에 의해 국가기구가 포위되고 장악되었다. 그 결과 국가가 기업처럼 변질되어 버렸다. '자본의 민주적 통제를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사회제도가 변화되어야 하겠지만, 그 변화의 시작은 가장 전제적이고 폭력적이며 탈법적인 특정 자본을 타도하는 데서 일어나야 할 것이다.
넓은 의미의 진보를 보자면 에드워드 카는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을 의미한다 말한다. 그리고 이런 의미의 진보가 이성적 존재인 인간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이남곡에 따르면 진보는 인간이 행복을 위해 자유를 확대해나가는 과정이며 이를 위해서는 자유를 억압하는 것들에서 인간을 해방시켜야 한다. 인간을 자유롭제 못하게 얽어매는 것이 세가지 있는데 그것은 불합리한 제도, 물질의 결핍, 낡은 생각이 그것이다. 진보는 현재 자신의 사유습성과 생활양식을 객관적으로 보고 그것과 환경의 변화 사이의 불일치나 부조화를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생각이 막히고 닫히는 순간, 기존의 사유습성에 갇히는 순간, 그 사람은 진보와 멀어진다. 중요한 것은 사회관계와 물질, 의식의 모든 면에서 행목을 위해 자유를 확대하고자 하는 진보의 방향을 의식하고 유지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진보를 이렇게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정치를 생각해보자. 과연 정치란 무엇인가? 베버는 정치를 '국가를 운영하거나 국가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이라고 폭넓게 규정했다. 진보정치를 하려면 정치 그 자체를 의미있는 활동으로 인정하는 진취적 국가론이 필요하다. 센델은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되면 정의로운 사회건설에 더 희망찬 기반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라는 인간공동체의 목적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으뜸가는 선을 훌륭하게 추구하는 것이 국가의 목적이라 말했다. 모든 학문과 기술의 으뜸인 정치의 선은 정의이다. 정의는 특정한 사물을 평등하게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텔로스를 실현한 국가, 충분히 발전해 최선의 상태에 도달한 국가는 과연 어떤 국가일까? 행복하고 잘 나가는 국가라 아리스토 텔레스는 전했따. 국가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은 같은 것이다. 최선의 정체는 누구나 가장 훌륭하게 행동할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제도여야 한다. 훌륭한 입법자가 할 일은 국가나 민족이나 공동체가 어떻게 훌륭한 삶과 행복에 참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선의 국가를 만들어 텔로스를 실현하는 길을 어디에서 찾았을까? 바로 시민 각자가 훌륭해짐으로써 인간으로서의 텔로스를 실현하는 것이 해답이다. 따라서 시민 각자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진보정치는 국가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려는 활동이다. 직접 국가를 운영하거나 국가운영에 영향을 줌으로써 국가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진보정치의 목표이다. 그러기 위해선 개인 하나하나가 훌륭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국가의 목표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개인에게는 이타성이 최고의 도덕적 이상인 반면 국가에게는 정의가 최고의 도덕적 이상이다. 니버의 생각이다. 유시민 역시 이 생각에 동의한다 말한다. 이번에는 국가가 실현해야 할 정의는 무엇일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는 각자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었는데 누가 무엇을 얼마나 받는 것이 정의로운지, 국가는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지,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할 경우, 국가는 그 결정을 어떤 방법으로 집행할 수 있을까?
헌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이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것이 국ㄱ가 실현해야 할 정의의 첫번 째 내용이다. 이는 모두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이며 이 권리는 대한민국 국민, 인간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권리들을 묶어 자유권적 기본권이라 한다. 하지만 자유 그 자체가 정의는 아니다. 자유가 있다고 정의가 수립되는 것이나 그러나 자유 없이 수립할 수 있는 정의는 없다.
우리 헌법은 소비자 또는 수요자의 호감을 얻기 위한 자유로운 경쟁을 부와 소득을 배분하는 기본 원리로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자본주의 또는 자유로운 시장경제 체제를 경제적 기본 질서로 규정한 것이다. 자기 책임 아래 전개하는 자유로운 경쟁이 만들어낸 소득과 부의 분배를 정의롭다고 일정하려면 몇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동등한 참여의 기회, 공정한 경쟁,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동등한 주체로서의 경쟁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험하고 목격하는 시장의 자유경쟁은 과연 이런 조건이 충죽된 가운데 벌어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기회 균드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곳곳에서 반칙과 편법이 저질러진다. 우월한 경제권력을 이용한 불공정한 거래관행이 도처에서 통용된다. 자유시장의 경쟁을 통한 소득과 부의 배분은 이론적으로는 정의로울 수 있지만 실제 현실에서 정의로운 것은 결코 아니다. 시장은 정의를 실현하지 않는다. 현실의 시장은 욕망을 충족하는데는 효과적이지만 정의를 실현하는데는 아무 과심이 없다.
그렇다면 국가는 어떻게 이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어려움이 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가가 법류을 정비하고 과정에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물론 완전하게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안다. 그래서 헌법을 만든 이들은 불의를 만드는 근본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헌법에 명시하면서,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할 경우 국가가 결과를 사후적으로 바로잡는 '대중요법'을 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우리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유시민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바라는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는 국깅다. 국민 한 사람 한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국가이다. 국민을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중하는 국가이다. 소로가 말한 것처럼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시민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런 국가를 만들 수 있고, 또 그런 나라에서 살 합당한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나라를 증오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나라에 충성을 맹새하며 애국심을 키우는 것 역시 좋은 것이 아니다. 좋은 지도자가 나타나 우리가 행복하도록 바뀌길 바라는 것 역시 우리의욕심이다. 정의로운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도덕, 양심을 지키며 나 개인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훌륭한 국민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훌륭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