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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한국은 - 우리의 절망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박성호 지음 / 로고폴리스 / 2015년 12월
평점 :
'韓 GDP 대비 복지비 비율, OCED 최하위'
'아이들, 삶의 질 꼴찌'
'직장인 유급 휴가 한국이 꼴찌'
'한국 아동복지지출 OECD 최하위'
'성 평등 순위 136개국 중 111위'
'빈부 격차 최대, 한국 노인 빈곤율 1위'
'어려울 때 의지할 사람 없어' 韓, OECD 중 꼴찌'
'한국 정규직, OECD 평균보다 해고 쉬워'
'男女 임금격차 OECD 3배'
'한국 사회자본지수 OECD 최하위권'
'교사 만족도 OCED 국가 중 꼴찌'
'아동 성범죄 절반 집행유예'
'서울 생활비 껑충, 도쿄 제치고 8위'
'최저임금, 두 자녀! 빈곤탈출에 주 62시간 노동'
'한국 '유리천장'지수 OECD 최하위'
이 책의 제목과 아주 자~알 어울리는 내용들이다. 뭔가 비꼬는 듯한 말투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게 된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긍정적 마인드가 중요하다 생각하면서도 '헬조선'에 대한 뉴스를 보거나 이런 대한민국의 더러운 알몸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책들을 읽다보면 대한민국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란 어려운걸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찾아오곤 한다. 내 마음을 다독여주기 위해 하고 있는 독서가 이런 책들을 읽을 땐 내 마음을 삐딱하게 만든다. 심지어 현실을 부정하고 나만의 세상 속에서 살고 싶단 생각이 수도 없이 찾아온다.
어쩌다 한국은 이렇게 절망적인 나라가 되었을까? 박성호 작가는 사회문제의 핵심은 노동문제에 있다고 말한다. 인류가 역사를 기록한 이래 기술은 항상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고, 이로인해 노동자들의 삶을 몹시 열악하게 만들고 극단적인 무력 충돌까지 빚어냈으며, 그의 단편적인 예가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이다. 기술 발전이 노동환경을 좋게 만들어야하는데 오히려 이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
얼마전,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의 생산라인에 견학을 간적이 있다. 정규 방송 마지막 애국가가 나올 때 TV 속의 자동차 생산라인을 본 것 말고는 직접적으로 본적이 없기에 자동차가 실제로 어떻게 조립되어지 궁금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자동차가 어떻게 조립되는지는 나의 관심 밖의 일이 되었다. 나의 관심을 끈 건 공장 안의 분위기였다. 공장 안은 영화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킬 정도로 살벌했고 모든 것들이 자동화되어 있었기에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진격의 거인'에서 나오는 거인의 발소리처럼 무언가를 무섭게 찍어내고 있는 금형설비들, 인간들보다 빠르고 정확하다며 자신있게 일을 수행하는 듯한 로봇팔들, 그리고 이런 로봇들은 누가 더 빠른지 내기하듯이 불꽃 튀기며 서로 싸우고 있는 듯하다.
가끔씩 일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무인도에서 사람을 만난 것 같이 반갑다가도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생각없이 반복되는 일을 수행하는 이들과 로봇들이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관리자가 말하길 이제 자동차 공간은 100% 자동화가 가능하단다. 현재 공장에 남아있는 노동자들은 로봇이 수행하지 못하는 일들만 할뿐 사실상 로봇들이 하는 일보다 더 하찮은 일들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들은 점점 로봇들로 인해 일할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기술은 왜 끊임없이 발전하려고 하는걸까? 박성호 작가는 공동체의 이익, 개인의 이익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경쟁'이라 답한다.
'막상 일을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상황을 지배하는 것은 경쟁입니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고민하지만, 일에 뛰어드는 순간 공동체의 이익이고 개인의 이익이고 다 잊게 된다는 것입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선이 됩니다. 이 시스템이 적나라하게 작동한 것이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과정이었습니다. (...)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일인 동시에 개인적인 이익도 별로 없는 일이었지만, 핵무기 개발은 빠른 속도로 진행됩니다.' (P 29)
자동차든, 핸드폰이든, 부동산이든, 이 세상은 이젠 수요보다 공급이 넘쳐나는 시대다. 자동차 중고차시장에는 온갖 종류의 자동차들로 빽빽히 들어서 있다. 저 많은 차들중에 내 차는 왜 한대밖에 없는 건지, 억지로라도 남는 차 한대만 달라고 싶을 정도로 이 세상에 자동차는 넘쳐난다. 그런데도 자동차회사들은 계속해서 하루에 수천대의 자동차를 찍어내고 있다. 팔지못해 남아있는 재고차량들도 많은데 계속 만든다. 무엇을, 누구를 위해 생산을 하는 걸까? 부동산 역시 아파트들이 계속해서 들어서고 있는 걸 보자면 인구는 계속 줄어든다 하는데 왜 짓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세상은 사람들의 이해보다는 돈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세상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넘어갈 수 밖에 없다.
역사책을 보면 전쟁은 왕들의 권력욕과 시기심, 그리고 경쟁심리로 인해 일어나지 않았던가? 나라를 위해서가 아닌 개인적인 욕심으로 인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로 인해 많은 병사들이 무고한 희생을 당했다. 당시의 왕들은 누가 더 땅을 많이 차리했는가로 경쟁을 했다면 현재 21세기의 왕들, 즉, 대기업들의 회장들은 누가 더 돈이 많은가로 경쟁을 하고 있는 듯하다. 돈이 무한히 많은대도 탈세를 하는 걸 보면 공동체의 이익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안하는 것 같고, 평생 쓰고 남을 돈이 현재 있는대도 더 벌고자 하는 걸 보면 개인의 이익을 바라는 것 같지도 않다. 대한민국은 돈으로 인해 권력까지 갖는 세상이지만, 아무튼 이들이 계속해서 생산을 하고 있는 이유는 공동체를 위해서도 아니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아니고 누가 더 돈이 많은지 경쟁을 위해서이지 않을까?
대한민국 근대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을 뽑자면 박정희가 단연코 빠질 수 없다. 박정희 정권의 영향력이 그가 죽은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에 자식으로 인해 행사되어지고 있으니 대한민국 50년 역사가 이 사람의 이름으로 인해 흘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대한민국 역사까지 바꾸고자 하는걸 보면 박정희란 이름이 대한민국에 끼치는 영향력이 어느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기성세대와 박정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꼭 끝이 안 좋다. 나 역시 책을 읽기 시작하고 우리나라 사회, 정치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하나둘씩 알아가기 시작했을 때쯤 명절(추석이었던가?)에 어른들과 정치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다. 우리 집안이 경상도를 고향으로 두고 있었기에 예상대로 나와는 반대 의견들을 말씀하신다. 어른들은 무조건적으로 박정희를 지지한다. 무언가 그 사람에게 빚을 졌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그의 딸이 지금의 대통령이 될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성장을 지상 과제로 생각했던 것도 솔직히 이해는 갑니다. 사람들이 봄마다 굶어 죽는데 역사적 모순이 뭔가 중요하겠습니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무슨 정치를 이야기하고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겠느냐, 경제개발이 급선무다, 이렇게 판단하는 것까지는 크게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p 082)
돈이냐? 정의냐? 가난했을 당시에는 정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는게 중요하지, 정의 그 딴게 뭔가 중요하다고. 해방직구, 그리고 6/25 직후에 못 살았을 당시에는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배고팠던 이들에게 박정희는 이 부분을 해결해주었던 신과같은 존재였던 것이다.그래서 어른들은 박정희를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옹호하는 것이다. 무슨 돈이든, 먹고 살게 해줬으니 그걸로 됐다는 식으로...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들은 모른다. 그때 현실을..' 나 역시 경제성장에 대한 그의 공로는 인정한다. 그런데 이젠 제대로 알고 판단해야 할 시대가 되지 않았는가?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생각해야지 죽은 사람에게 빚을 갚는 심정으로 정치에 임하면 어쩌잔 말인가? 언제까지 박씨 집안에 빚이 있다 생각하면서 후대 세대들을 힘들게 할 것인가? 깊이 생각해 볼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박정희는 오늘날 사회 각 분야, 집단간의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모순을 몇배로 증폭시켰어요. (...) 경제성장의 대가로 사회적 모순을 해결할 기회를 놓쳐버렸고, 그 때문에 모순이 더욱 누적되면서 사회 각 계층 간의 불화가 심화되고 사고방식이 서로 다른 집단들이 아예 대립하는 형세가 돼버린 상황에서 범사회적인 규모의 총론적 대화를 나눌 장이 과연 어디에 존재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 한 나라의 의사결정을 책임지고 있는 최고 책임자가 유권자들에게 1년에 한 번밖에 이야기하지 않는 다는 것, 심각한 소통 부족의 사회라는 반증입니다.' (p 88~91)
'우리 사회는 경제규모는 키웠을지 모르지만 삶의 질은 지극히 나빠졌습니다. (...)나는 열심히 일했고 돈도 많이 벌었는데, 사는게 왜 이렇게 팍팍해지는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거죠.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을 자꾸 당하다 보면 사람은 정신적으로 퇴행합니다.'(p 92)
우리나라는 아직도 경제 성장에 미쳐있다. '앞으로의 경기가 불확실하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라며 여전히 경제의 중요성만 강조한다. 경제가 우선시 되어야 모두가 잘살수 있다는 얘기를 아직도 믿고 있는 지금, 박정희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닌 듯 싶다. 이제 이만큼 나라가 성장했으며, 먹고 살만해졌으면, 행복, 복지란 단어에도 신경 쓸때도 되지 않았나? 밥은 충분히 먹었으니,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걱정없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도 기성세대는 배가 고픈가 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 걸까? 요즘 사람들은 투표철만되면 SNS를 통해 투표했다며 인증샷을 남긴다. '나도 투표에 참여했다'라는 걸 의미하는 것 같은데 투표를 함으로써 '나는 민주주의에 기여했어'라는 참여 정신으로서의 의미인지, '남들 다 하니깐 나도 해야돼'라는 군중심리인지, '나도 성인으로써 투표하러 왔다'라는 성인식 같은 인사치례인지 헷갈린다. 투표가 재미삼아 혹은 남들 다하니깐 다 하는 그런 행사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정확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서도 특정 정파와 정치인을 지지하기 마련이죠. 이런 사람들은 투표일에 놀러 가는 사람들보다는 그래도 정치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 현재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렇게 중요한 선택을 하는데,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이유를 대지 못한다는 것은요. 이건 사실 선택이 아니라 찍는거죠. 우리는 최소한 여기서 한 걸음 정도는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독재자의 딸과 전직 대통령의 비서실장 중에서 상식적으로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해 보여요. 그런데 그러지 않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독재자의 딸을 선택했고, 또 그런 선택이라도 해주는 것을 고마워해야 할 만큼 우리 사회는 정치에 무관심합니다.' (p 108)
'투표만이 민주주의가 아니잖아요. 우리 생활 속에서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아주 소소하게 수도 없이 벌어지는 의사결정 과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해본 사람만이 국가 차원의 의사결정도 민주적으로 잘할 수 있다, 연습 없이는 아무도 못한다, 라는 겁니다. 단순히 투표일이니까 가서 투표만 하자거나 투표했으니까 나는 민주주의에 기여했어, 라고 생각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민주주의가 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p. 121)
요즘은 뉴스나 네이버의 기사들을 보다보면 믿을 수 있는 것들인지 의심부터 든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뭐라도 보고 있긴 하지만, 머리속에서는 혼란이 시작된다. 혼란 속에서 뉴스를 보다보면 앵커나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의해 점점 내 귀는 솔깃해져가져 가는게 사실이다. 권력과 자본에 굴복당한 언론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신뢰란 말은 이젠 언론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되었고, 신뢰할 수 없으니 국민들은 대한민국이란 나라와 소통할 수 없단 느낌이 든다. 언론이 국민들과 소통을 위한 방법으로 예능, 드라마를 선택한 것을 보자면 전두환의 3S 정책과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본다.
'이미 벌어진 사건, 결정된 사안을 사람들에게 알리기만 하는 것은 과거의 언론이다. 민주공화국에서, 그러니까 사회공동체의 의사결정권이 국민들에게 주어졌을 때, 그 의사결정권을 정상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자 책임이다. 언론의 핵심 역할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사회의 주인인 우리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필요한 내용을 전달해주는 것.'(P. 174)
그래도 손석희 기자의 JTBC 뉴스룸이 그나마 제일 신뢰하는 방송이라 자주 보고있다. 왜곡된 방송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지울 수 없지만, 타 방송사의 뉴스보다는 속시원하게 보도해주고 있는 편이라 앞으로도 기대가 되는 뉴스이다. 물론 그 배후에도 거대한 자본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어쩌겠는가. 볼만한 뉴스가 없는데... 누군가 힘 있고, 돈 많은 정의로운 인물이 나와서 방송사를 만들어주는 상상만 하게 되는게 현실이다.
주변에 보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반면에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 대부분은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어느 집단이든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 꼭 있기에 사회에서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를 했다가는 싸움이라도 생길 걱정에 종교이야기를 나누기란 여간 쉬운일이 아니다. 일반인들조차 교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걸 보면 대한민국에서 교회의 막강한 힘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어떻게해서 교회의 권력이 이렇게 커졌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대부흥의 여파로 주류 교단은 신도 수가 늘고 점점 세력이 커집니다. 일제강점기 초에는 교회 호라동을 굉장히 많이 지원했어요. (...)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면서 본격적인 전시 상태로 들어갑니다. 전시 상황에서 교회라는 집단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일본은 주류 개신교 지도자들에게 일본에 협력할 것을 요구합니다. (...) 개신교 역사나 우리나라 독립운동사,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는 신사참배 문제가 나옵니다.(...) 조선총독부가 종교 지도자들에게 신사참배를 요구하자 개신교 내부에 파란이 일어납니다. 그때 끝까지 거부한 사람들은 가혹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 그러나 주류 개신교는 일제의 요청에 일제히 굴복합니다. 장로회를 필두로 거의 모든 주류 개신교 집단이 다 신사참배에 응합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개신교 집단이 권력을 상대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기들이 믿는 종교적 신념을 위배할지라도 권력과는 타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거죠. (...) 신살참배에 응했던 개신교도들이 해방 후에도 그대로 개신교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들에게 권력에 대항할 필요가 없다는 강력한 교훈을 준 셈이죠.'(P 252~253)
'영락 교회 이외에도 주류 개신교 교단은 권력과 타협해야 한다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교훈과 더불어 자본을 끌어모으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 종교가 권력과 자본을 얻는 방법은 지금 실존하는 권력과 타협하는 것,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교인을 모으는 것. 이 방법을 모두 깨우쳤습니다. '(P 257)
'70년대 와서는 시회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자고 일어나면 건물 생기고, 자고 일어나면 벽돌 만들던 아저씨가 건설사 사장이 되기도 하고, 논에서 소끌던 아저씨가 땅이 개발되면서 벼락부자가 되기도 했고요. 경제 성장이라는 물질적인 가치에 치중한 사람들이 마음 둘 곳, 또는 경제성장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사회에서 부자들과의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해졌죠. 이런 모든 걸 제공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교회였던 겁니다.' (P259)
'우리나라 교회는 권력과 타협하고 자본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스스로 권력의 주인이 됩니다. 목사님이 설교 도중에 누가 출마하느데 그 사람 집안에 문제가 있는 것 같더라, 이러면 낙선인거죠. 엄청난 권력을 가진 겁니다. 요즘 사회에서 누가 겨울 말 한마디로 공직선거에 출마한 사람을 낙선시킬 수 있겠습니까? 대형교회 목사라면 가능합니다.' (P. 263)
개신교의 역사와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해온 온갖 악행들을 여실히 보여준다. 전에 기독교에 대해 비판 글을 올렸던 기자가 기독교 신도들에 의해 칼 맞아서 죽었다는데, 이렇게 기독교를 비판하는 글을 써도 되는지 심히 걱정스럽다. 기독교가 어떻게 한국에서 이만큼 권력과 자본을 가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읽다보면 천주교인으로서 천주교는 상대적으로 아무것도 안한 것에 대한 자부심도 느끼게 된다.
새누리당, 대형 교회 등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권력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머리가 비상하단 생각이 든다. 전쟁 후 돈 되는 곳이면 어느 분야든 그들의 이름이 없는 곳이 없으며, 어떻게든 빼앗기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법을 바꾸어서라도 지키려고 하는 걸 보면 돈과 권력이 정말로 좋긴 한가보다. 문득 웹툰 '송곳'에서 나온 대사가 떠올랐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나 역시 이들의 위치에 있다면 변하지 않을거란 장담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반면 이들에 비해 변화를 원하는 이들은 왜 쉽게 지치는 걸까? 힘들어서? 돈이 없어서? 어떻게 해도 안되기 때문에? 이들의 힘이 너무나도 막상해서? 요즘 박근혜의 행동을 보자면 답이 없긴 하다. 국민들 모두가 들고 일어서 반대를 외치는데도 꿈쩍도 안하는 걸 보자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영화 내부자들 대사중 권력자인 이강희가 말한 말이다. '대중들은 개, 돼지들이다. 적당히 짓어대다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우리 대통령은 개, 돼지라고는 말 안했다. 단지 IS 테러집단이라는 말 정도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