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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학교혁명 ㅣ 학교혁명 1
켄 로빈슨.루 애로니카 지음, 정미나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표준화 : 표준이나 기준(규격) 등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으로 제품의 품질, 형상, 치수, 성분, 시험 방법 등으로 이들에 일정한 표준을 정하여 호환성을 높이도록 하는 것. 예)한국 공업 규격(KS)
사전에 나와 있는 표준화의 의미이다. 다시 말하자면, 표준화는 산업화 시대로 오면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표준으로 만들어놓고 조직화된 것을 의미한다. 특히, 생산되어진 제품이 표준화된 품질의 목표치에 벗어나면 폐기처분되어지며, 기업에서는 제품 품질의 목표치를 최대한 좁히고 끌어올리도록 생산라인에 요구한다.
'정규 교육을 구성하는 3대 요소는 커리큘럼, 지도, 평가다. 현재 3대 요소에 대한 기본 전략은 최대한의 표준화다. 수많은 국가들이 학교의 필수적인 교육 내용에 대해 확고한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있다. (...) 표준화 운동이 지도의 측면에서 선호하는 방식은 조별 활동보다는 학급 전체를 모아놓고 사실에 입각한 지식과 기술을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이다. 표준화운동은 창의성, 자기표현, 발견과 상상놀이를 통한 비언어적 비수학적인 공부와 학습 방법에 대해 회의적이며, 심지어 미취학 아동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취한다. 한편 표준화 운동에서는 평가와 관련해 학생들의 답안을 쉽게 취합 할 수 있도록 정형화된 필기시험과 객관식 문제의 포괄적 활용을 중시한다.' (p44~45)
현재 전 세계의 학생들의 위의 말처럼 표준화된 방식으로 인해 교육되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나라에서 정해놓은 가이드라인대로 공부해야 하며 똑같은 커리큘럼과 지식, 기술들을 배우도록 강요당한다. 그리고 결과는 시험을 통한 점수로 평가되어지며, 각 대학, 기업에서 요구하는 점수를 맞지 못했을 경우에는 입학도, 취업도 하지 못한 낙오자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국가는 학생들의 평균점수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학교와 교수에게 표준화된 학문적 공부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공장에서 나오는 표준화된 제품과 학교에서 표준화된 커리큘럽대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 무엇이 다를까? 영화 '메트릭스'의 네오나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비누(배두나)처럼 인간이 공장에서 생산되어지는 것은 (아직은 이른) 공상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현재 학교의 현실은 공장에서 표준화된 제품을 생산하듯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은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던 창의력과 각자 가지고 있던 재능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사회는 창의적이고 적응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요구한다. 빼앗을 것을 다시 내놓으라니... 모순이지 않을가?
최근에 학생들이 교실의 선생님을 폭행하는 동영상이 올라와 화제가 되고 있다. 뉴스에 나온 학생들이 교사에게 대하는 행동은 가히 충격이었다. 학생들은 '폭행'이란 구타 형식의 의미를 넘어서 약한 사람을 괴롭히듯 선생님을 조롱하고 있었다. 다수의 학생들이 선생님을 둘러싸고 선생님의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님의 팔을 툭툭 치는가 하면, 손가락으로 선생님의 머리를 밀며 왕따 놀이하듯 선생님을 대하고 있었다.
그 교실안에는 선생이란 존재는 없었다. 학생들을 가리치기 위해 교실로 들어온 선생이 아니라, 월급을 받기위해 들어온 동네 아저씨에 불과했으며, 학생들 역시 그 사람을 교사가 아닌 힘 없고 늙은 아저씨로 보며, 자신들이 강자인마냥 장난을 위한 대상으로 보았다. 그 교실 안에는 교사의 권위 따위는 잃어버린지 오래되었으며, 학생들 역시 선생에 대한 존경심 따위는 애초부터 갖고 있지 않아 보였다.
무엇이 학생들을 그리고 선생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현대의 교육제도는 온갖 방해 요소들로 뒤죽박죽 엉켜 있다. 정치적 어젠다, 국가적 우선수위, 노조의 입장, 건축 법규, 고용계약, 부모들의 열망, 또래 간의 경쟁 등 다 열거하기도 힘든 방해 요소들로 어지혀져 있다. 하지만 교육의 핵심은 학생과 교사의 관계다. 다른 모든 것은 이 관계까 얼마나 생산적이고 성공적인가에 좌우된다. 이 관계가 잘 되지 않으면 제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학생들이 이 학습을 하지 않으면 교육도 없다. 무언인가 다른 활동이 일어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니다.' (p128)
우리나라의 교실 현실과 위 이야기를 맞춰보자면 대한민국의 교육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니다. 위에 열거든 모든 방해 요소들, 정치적 어젠다, 국가적 우선순위, 노조의 입장, 건축 법규, 고용 계약, 부모들의 열망, 또래간의 경쟁 등을 봤을 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교사와 학생들간의 관계를 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본질적 과제인 학생과 교사의 관계부터 교육은 시작되어지므로 교사와 학생들 각자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대한민국은 이 관계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표준화 운동을 위해 정해놓은 수업 커리큘럼을 보자면, 국,영,수는 강조되어지는반면에 점점 체육과 음악, 미술과 같이 예술 교육의 비중을 줄이고 있다. 학생들에게 책상 앞에서의 공부만을 시키는 교육을 강요하고 있다. 즉, 표준화 운동은 책상을 떠나 놀이를 통한 공부는 하찮게 취급하고 있다. 놀이를 공부와 시험 통과라는 중요한 본업을 방해하는 요소쯤으로 치부한다.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성공한다'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나가서 놀지 말고 책상에 진득하니 껌딱지처럼 앉아 학습지에 있는 문제만 풀라는 의미이지 않는가.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1년에 한, 두번씩 외부강사를 초빙해 직원들에게 교육을 제공해준다. 교육은 러더십이나 커뮤니케이션, 창의력과 같은 주제로 실시되는데 직원들의 참여도가 상당히 좋다. 바쁜 업무를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교육이 상당히 재미있다. 수업은 게임 위주로 진행되기에 노는 듯한 분위기로 비춰질 수는 있지만, 묵묵히 일만 하던 직원들을 생각했을 때 상당히 교육에 적극적이며, 모두의 얼굴에는 평소에 보지 못했던 기쁨이 묻어있다. 내성적이고 말 없던 동료 역시 이런 교육시간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외향적으로 바뀐다. 교육이 끝나는 마지막 시간에는 아쉬움 속에 교육시간동안 노력해준 강사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주면서 교육장을 떠난다.
우린 20년 넘게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왔지만, 수업, 교실, 학습이란 단어들은 우리게에 즐거움보다는 구속받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받은 교육은 부담도 없을 뿐더러 지루함을 느낄 시간조차도 없을 정도로 재미있었으며, 더욱이 배울 것도 많았다. 우린 왜 이런 교육의 즐거움을 회사 와서 느꼈을까? 놀이는 공부의 방해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이다.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공부는 노동일 뿐이다. 여전히 늦은 시간까지 공부라는 이름의 노동을 하고 귀가하는 학생들을 보면 학생들이 우리 직장인과 무엇이 다를까하는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아이들은 다른 책임들에 얽매이지 않으면 다른 포유동물과 비교해 훨씬 많이 놀며, 이런 놀이로부터 엄청난 혜택을 얻는다. (...) 수렵 채집 문화권의 아이들은 하루 종일 어른의 간섭 없이 놀았고 이곳 어른들은 간섭 없는 놀이를 중요한 학습 기술로 바라보면서 놀이가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성장시켜준다고 여겼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이 관찰했던 이 문화권의 아이들은 그동안 관찰했던 지역을 통틀어 가장 똑똑했고 행복하며 가장 협력적이고 적응력이 좋으며 가장 유연했다고 한다. 따라서 생물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놀이는 인간 아이드을 포함한 어린 포유동물이 획득해야 하는 기술을 습득하게 해주는 자연적 수단이다.' (p161)
'자유로운 놀이는 아이들에게 학습 수단이다. 자유로운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삶을 전반적으로 통제하는 요령을 배운다. 또한 놀이를 통해 자신이 자라는 문화에서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실체적, 지능적 기술을 연습하고 습득하기도 한다.'
(P. 162)
학교 밖에서도 배울 것이 많다. 교육은 암기하고 맞고 틀린 것들을 구분하는 학습 외에도 성장을 위한, 배움을 위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밖으로 자주 나가야 한다.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되지 말자. 퍼진 엉덩이가 뭐가 좋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밖에서 여러가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학교가 정말로 학생들의 성공적 삶을 돕고 싶다면 다음의 여덟가지 핵심 능력을 개발해주어야 한다 말한다. 호기심(Curiosity), 창의성(Creativity), 비평(Criticism), 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연민(Compassion), 평정(Composure), 시민성(Citizenship). 하지만 이런 8가지 핵심 능력은 학교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학교 밖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결코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은 이러한 능력을 개발하지 못한다.
'모든 PISA 프로그램에서 줄곧 5위권에 들었떤 한국을 예로 살펴보자. 한국은 학생 1인당 약 8,200달러의 비용을 쓴다. 이 정도면 국내총생산(OECD)의 8퍼센트가량으로, OECD 국가 중 두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방과 후 교육에 수천달러씩 쓰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이 국제 테스트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면서 치르고 있는 현실적 대가는 이보다 훨씬 값비싸다. 현재 OECD 산업국을 통틀어 한국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 (p. 60)
이 책에서 소개된 대한민국 교육의 실태다. OECD 청소년 불행지수 1위, 자살률 1위는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일테고,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있는 것 같아 창피할 따름이다. 어른들이 쳐놓은 이분법적 사고 방식 속에서, 그리고 시험과 점수로 평가받는 감옥 속에서 아이들은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찾아볼 시간도, 기회도 가질 수 없으며, 경쟁으로 인해 친구도 잃고,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도 지킬 수 없으며, 가족과 같이 할 시간과 이데 대한 행복한 감정마저 잃어버린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의 목숨까지 잃어버린다. 성적표에 적힌 점수에만 목매다가 마지막에는 점수가 자신의 전부가 되어버리고는 자신이 잘못이라도 한 것 마냥 자신을 목매달아버린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에 대해 반항할 힘도 환경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낙오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어른들에 대한 증오와 불만 표출과 반항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동영상의 아이들처럼 늙고 힘없는 교사에게 자신의 증오심과 힘을 보여주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인 셈이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나서서 변화를 위해 힘을 써야 한다.
'변화를 이루려면 우선 미래의 버전이 필요하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과 변화에 필요한 기술을 갖추고 있다는 믿음 또한 필요하다. 변화를 일으켜야 하는 이유, 지향하는 목적지가 현 상황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신념, 변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일만한 가치에 대해 확신도 있어야 한다. 변화를 일으킬 개인적, 물질적 자원도 중요하다. 그리고 목적지에 이르게 해줄 확실한 실행 계획 역시 없어서는 안된다. 아니면 최소한 도중에 경로가 바뀌더라도 그 목적지를 향해 길을 인도해줄 만한 실행계획이라도 마련되어야 한다.(...) 리더의 역할은 사람들이 적절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확실히 유도해주는 것이다. 이는 교육에서 정책과 정책 입안자들이 맡아야 할 역할이기도 하다.' (P. 385)
대한민국은 무엇보다 국민들이 나서서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현재의 무능한 리더와 정부의 정책,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을 믿고 있을 수는 없기에 국민들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분명히 새로운 미래를 위해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협력과 소통 속에서 국민들이 스스로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는 간디의 말을 빚대어 자신부터 바꾸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것이 운동이 되고 그 운동이 충분한 열정을 끌어낸다면 그것이 혁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