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학교혁명 학교혁명 1
켄 로빈슨.루 애로니카 지음, 정미나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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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화 : 표준이나 기준(규격) 등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으로 제품의 품질, 형상, 치수, 성분, 시험 방법 등으로 이들에 일정한 표준을 정하여 호환성을 높이도록 하는 것. 예)한국 공업 규격(KS)


사전에 나와 있는 표준화의 의미이다. 다시 말하자면, 표준화는 산업화 시대로 오면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표준으로 만들어놓고 조직화된 것을 의미한다. 특히, 생산되어진 제품이 표준화된 품질의 목표치에 벗어나면 폐기처분되어지며, 기업에서는 제품 품질의 목표치를 최대한 좁히고 끌어올리도록 생산라인에 요구한다.


'정규 교육을 구성하는 3대 요소는 커리큘럼, 지도, 평가다. 현재 3대 요소에 대한 기본 전략은 최대한의 표준화다. 수많은 국가들이 학교의 필수적인 교육 내용에 대해 확고한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있다. (...) 표준화 운동이 지도의 측면에서 선호하는 방식은 조별 활동보다는 학급 전체를 모아놓고 사실에 입각한 지식과 기술을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이다. 표준화운동은 창의성, 자기표현, 발견과 상상놀이를 통한 비언어적 비수학적인 공부와 학습 방법에 대해 회의적이며, 심지어 미취학 아동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취한다. 한편 표준화 운동에서는 평가와 관련해 학생들의 답안을 쉽게 취합 할 수 있도록 정형화된 필기시험과 객관식 문제의 포괄적 활용을 중시한다.' (p44~45)


현재 전 세계의 학생들의 위의 말처럼 표준화된 방식으로 인해 교육되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나라에서 정해놓은 가이드라인대로 공부해야 하며 똑같은 커리큘럼과 지식, 기술들을 배우도록 강요당한다. 그리고 결과는 시험을 통한 점수로 평가되어지며, 각 대학, 기업에서 요구하는 점수를 맞지 못했을 경우에는 입학도, 취업도 하지 못한 낙오자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국가는 학생들의 평균점수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학교와 교수에게 표준화된 학문적 공부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공장에서 나오는 표준화된 제품과 학교에서 표준화된 커리큘럽대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 무엇이 다를까? 영화 '메트릭스'의 네오나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비누(배두나)처럼 인간이 공장에서 생산되어지는 것은 (아직은 이른) 공상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현재 학교의 현실은 공장에서 표준화된 제품을 생산하듯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은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던 창의력과 각자 가지고 있던 재능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사회는 창의적이고 적응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요구한다. 빼앗을 것을 다시 내놓으라니... 모순이지 않을가?


최근에 학생들이 교실의 선생님을 폭행하는 동영상이 올라와 화제가 되고 있다. 뉴스에 나온 학생들이 교사에게 대하는 행동은 가히 충격이었다. 학생들은 '폭행'이란 구타 형식의 의미를 넘어서 약한 사람을 괴롭히듯 선생님을 조롱하고 있었다. 다수의 학생들이 선생님을 둘러싸고 선생님의 회초리를 빼앗아 선생님의 팔을 툭툭 치는가 하면, 손가락으로 선생님의 머리를 밀며 왕따 놀이하듯 선생님을 대하고 있었다.


그 교실안에는 선생이란 존재는 없었다. 학생들을 가리치기 위해 교실로 들어온 선생이 아니라, 월급을 받기위해 들어온 동네 아저씨에 불과했으며, 학생들 역시 그 사람을 교사가 아닌 힘 없고 늙은 아저씨로 보며, 자신들이 강자인마냥 장난을 위한 대상으로 보았다. 그 교실 안에는 교사의 권위 따위는 잃어버린지 오래되었으며, 학생들 역시 선생에 대한 존경심 따위는 애초부터 갖고 있지 않아 보였다.


무엇이 학생들을 그리고 선생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현대의 교육제도는 온갖 방해 요소들로 뒤죽박죽 엉켜 있다. 정치적 어젠다, 국가적 우선수위, 노조의 입장, 건축 법규, 고용계약, 부모들의 열망, 또래 간의 경쟁 등 다 열거하기도 힘든 방해 요소들로 어지혀져 있다. 하지만 교육의 핵심은 학생과 교사의 관계다. 다른 모든 것은 이 관계까 얼마나 생산적이고 성공적인가에 좌우된다. 이 관계가 잘 되지 않으면 제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학생들이 이 학습을 하지 않으면 교육도 없다. 무언인가 다른 활동이 일어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니다.' (p128)


우리나라의 교실 현실과 위 이야기를 맞춰보자면 대한민국의 교육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니다. 위에 열거든 모든 방해 요소들, 정치적 어젠다, 국가적 우선순위, 노조의 입장, 건축 법규, 고용 계약, 부모들의 열망, 또래간의 경쟁 등을 봤을 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교사와 학생들간의 관계를 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본질적 과제인 학생과 교사의 관계부터 교육은 시작되어지므로 교사와 학생들 각자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대한민국은 이 관계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표준화 운동을 위해 정해놓은 수업 커리큘럼을 보자면, 국,영,수는 강조되어지는반면에 점점 체육과 음악, 미술과 같이 예술 교육의 비중을 줄이고 있다. 학생들에게 책상 앞에서의 공부만을 시키는 교육을 강요하고 있다. 즉, 표준화 운동은 책상을 떠나 놀이를 통한 공부는 하찮게 취급하고 있다. 놀이를 공부와 시험 통과라는 중요한 본업을 방해하는 요소쯤으로 치부한다.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성공한다'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나가서 놀지 말고 책상에 진득하니 껌딱지처럼 앉아 학습지에 있는 문제만 풀라는 의미이지 않는가.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1년에 한, 두번씩 외부강사를 초빙해 직원들에게 교육을 제공해준다. 교육은 러더십이나 커뮤니케이션, 창의력과 같은 주제로 실시되는데 직원들의 참여도가 상당히 좋다. 바쁜 업무를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교육이 상당히 재미있다. 수업은 게임 위주로 진행되기에 노는 듯한 분위기로 비춰질 수는 있지만, 묵묵히 일만 하던 직원들을 생각했을 때 상당히 교육에 적극적이며, 모두의 얼굴에는 평소에 보지 못했던 기쁨이 묻어있다. 내성적이고 말 없던 동료 역시 이런 교육시간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외향적으로 바뀐다. 교육이 끝나는 마지막 시간에는 아쉬움 속에 교육시간동안 노력해준 강사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주면서 교육장을 떠난다.


우린 20년 넘게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왔지만, 수업, 교실, 학습이란 단어들은 우리게에 즐거움보다는 구속받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받은 교육은 부담도 없을 뿐더러 지루함을 느낄 시간조차도 없을 정도로 재미있었으며, 더욱이 배울 것도 많았다. 우린 왜 이런 교육의 즐거움을 회사 와서 느꼈을까? 놀이는 공부의 방해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이다.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공부는 노동일 뿐이다. 여전히 늦은 시간까지 공부라는 이름의 노동을 하고 귀가하는 학생들을 보면 학생들이 우리 직장인과 무엇이 다를까하는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아이들은 다른 책임들에 얽매이지 않으면 다른 포유동물과 비교해 훨씬 많이 놀며, 이런 놀이로부터 엄청난 혜택을 얻는다. (...) 수렵 채집 문화권의 아이들은 하루 종일 어른의 간섭 없이 놀았고 이곳 어른들은 간섭 없는 놀이를 중요한 학습 기술로 바라보면서 놀이가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성장시켜준다고 여겼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이 관찰했던 이 문화권의 아이들은 그동안 관찰했던 지역을 통틀어 가장 똑똑했고 행복하며 가장 협력적이고 적응력이 좋으며 가장 유연했다고 한다. 따라서 생물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놀이는 인간 아이드을 포함한 어린 포유동물이 획득해야 하는 기술을 습득하게 해주는 자연적 수단이다.' (p161)


'자유로운 놀이는 아이들에게 학습 수단이다. 자유로운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삶을 전반적으로 통제하는 요령을 배운다. 또한 놀이를 통해 자신이 자라는 문화에서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실체적, 지능적 기술을 연습하고 습득하기도 한다.'

(P. 162)


학교 밖에서도 배울 것이 많다. 교육은 암기하고 맞고 틀린 것들을 구분하는 학습 외에도 성장을 위한, 배움을 위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밖으로 자주 나가야 한다.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되지 말자. 퍼진 엉덩이가 뭐가 좋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밖에서 여러가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학교가 정말로 학생들의 성공적 삶을 돕고 싶다면 다음의 여덟가지 핵심 능력을 개발해주어야 한다 말한다. 호기심(Curiosity), 창의성(Creativity), 비평(Criticism), 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연민(Compassion), 평정(Composure), 시민성(Citizenship). 하지만 이런 8가지 핵심 능력은 학교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학교 밖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결코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은 이러한 능력을 개발하지 못한다.


'모든 PISA 프로그램에서 줄곧 5위권에 들었떤 한국을 예로 살펴보자. 한국은 학생 1인당 약 8,200달러의 비용을 쓴다. 이 정도면 국내총생산(OECD)의 8퍼센트가량으로, OECD 국가 중 두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방과 후 교육에 수천달러씩 쓰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이 국제 테스트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면서 치르고 있는 현실적 대가는 이보다 훨씬 값비싸다. 현재 OECD 산업국을 통틀어 한국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 (p. 60)


이 책에서 소개된 대한민국 교육의 실태다. OECD 청소년 불행지수 1위, 자살률 1위는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일테고,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있는 것 같아 창피할 따름이다. 어른들이 쳐놓은 이분법적 사고 방식 속에서, 그리고 시험과 점수로 평가받는 감옥 속에서 아이들은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찾아볼 시간도, 기회도 가질 수 없으며, 경쟁으로 인해 친구도 잃고,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도 지킬 수 없으며, 가족과 같이 할 시간과 이데 대한 행복한 감정마저 잃어버린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의 목숨까지 잃어버린다. 성적표에 적힌 점수에만 목매다가 마지막에는 점수가 자신의 전부가 되어버리고는 자신이 잘못이라도 한 것 마냥 자신을 목매달아버린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에 대해 반항할 힘도 환경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낙오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어른들에 대한 증오와 불만 표출과 반항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동영상의 아이들처럼 늙고 힘없는 교사에게 자신의 증오심과 힘을 보여주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인 셈이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나서서 변화를 위해 힘을 써야 한다.


'변화를 이루려면 우선 미래의 버전이 필요하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과 변화에 필요한 기술을 갖추고 있다는 믿음 또한 필요하다. 변화를 일으켜야 하는 이유, 지향하는 목적지가 현 상황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신념, 변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일만한 가치에 대해 확신도 있어야 한다. 변화를 일으킬 개인적, 물질적 자원도 중요하다. 그리고 목적지에 이르게 해줄 확실한 실행 계획 역시 없어서는 안된다. 아니면 최소한 도중에 경로가 바뀌더라도 그 목적지를 향해 길을 인도해줄 만한 실행계획이라도 마련되어야 한다.(...) 리더의 역할은 사람들이 적절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확실히 유도해주는 것이다. 이는 교육에서 정책과 정책 입안자들이 맡아야 할 역할이기도 하다.' (P. 385)


대한민국은 무엇보다 국민들이 나서서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현재의 무능한 리더와 정부의 정책,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을 믿고 있을 수는 없기에 국민들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분명히 새로운 미래를 위해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협력과 소통 속에서 국민들이 스스로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는 간디의 말을 빚대어 자신부터 바꾸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것이 운동이 되고 그 운동이 충분한 열정을 끌어낸다면 그것이 혁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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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의 정치 썰전 - 보수와 진보를 향한 촌철살인 돌직구 이철희의 정치 썰전 1
이철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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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 비판서"


왜 자꾸 정치와 사회 이야기를 다룬 책에 관심이 가는지 모르겠다. 특히, 정치도 모르면서 머리 아프게 정치 관련 서적을 읽으려고 하는지... 내 자신이 이해도 안될 뿐더러 요즘 비관적으로 바뀌고 있는 내 인성에 걱정이 되서 관심을 끊으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려고 하는걸 보면 나도 대한민국의 국민이 맞긴 한가보다 하는 생각에 다시 한번 좌절감을 느낀다.


이 책은 진정한 대한민국 정치 비판서라 말할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통령,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비판으로 시작해서 비판으로 끝난다. 이 책을 보고 최근 10년 간의 대한민국 정치를 평가하자면 그야말로 난장판이였으며, 무능 그 자체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사고와 메르스 사태로 인해 행정 능력의 무능함을 여실히 보여줬으며, 야당은 민주 정부 10년 동안의 정부와는 다른 사회경제적 해법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낡은 민주당'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p에서 35p까지 내 나름대로 요약한 글인데 이런 식의 비판이 책 끝까지 계속 이어진다고 보면 된다.


1장은 '왜 정치는 우리 삶을 바꾸지 못하는가?' 로 시작되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세월호 참사로 본 대한민국 정치의 실체와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제목처럼 정치가 우리 삶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해답으로서는 약간 부족해보인다.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정당들의 무능함이라는게 이 책의 대답이다.


2장 '누가 우리 정치를 죽이는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주제로 나온다. 이말인 즉슨, 이 장의 제목인 '누가?'의 정답은 박근혜란 말이 되는 듯 싶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나뿐만이 아니겠지만...) 2장에 유난히 밑줄이 많은걸로 봤을 때 아마도 내년 구정 때 친박 체제의 어른들과 붙을 배틀(?)을 상상하며 읽은 것 같다. 기성세대와의 소통을 위해서...


3장 '정치가 바뀌어야 삶이 달라진다.'는 제목은 정치이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진보가 맞을 듯 싶다. 3장은 진보 정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야당은 현재 리더의 부재 속에서 정책도 결과도 없는 자신들만의 착각속에 빠져 헤매고 있다 말한다. 이 책의 98%가 비판적인 내용이니 만큼 약간의 긍정적인(?) 아니,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은 내용을 쓰자면 이철희 교수는 진보가 좋은 정치를 해야지 국민들의 삶이 달라진다 말한다.


'선진국의 예를 보더라도 대개는 진보가 유능해서 보수와 '더 좋은 사회 만들기'경쟁을 펼치면 그 사회는 좋아졌다. 유럽의 복지국가가 그런예다. 반면에 진보가 사회경제적 갈등으로 보수와 대결하는 구도를 만드는데 실패하면 그 사회는 보통 사람이 살기 힘든 사회가 되었다.' (p276)


'낡은 야당을 완벽하게 허물어야 한다. 구세주가 나와 당을 정비하는 게 아니라 대중적 열망으로 당의 앙시앵 레짐(낡은 체제)를 허물고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변혁이 답이다. 미국의 민주당이나 영궁의 노동당, 독일의 사민당 등 다른 나라의 패배한 정당이 그랬듯 아주 긴 시간의 고통스런 혼돈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질서가 탄생한다. 당원 대중과 시민이 참여하는 '사회적 재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계파주의도 극복되고, 기율이 바로 선 강한 정당이 세워진다. (p 236)


이 책을 읽는 내내 대통령도, 보수도, 진보도 무능하다 말하면 유권자들은 무엇을 믿고 투표용지를 받아야 할지 생각해보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투표에 임하긴 해야하는데 믿고 찍을 대통령도, 당도 없기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다만,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Democracy si process rather than conclusion.)'라고 말한 벤저민 프랭클린 말처럼 야당이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들어줬음 하는 바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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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의심한다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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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의 흔히 하는 핑계가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일도 해야하고, 운동도 해야하고, 가정도 봐야하고, 대인관계도 가져야 하고 등등의 자신 나름대로의 타당한 이유를 대며 독서를 피하고 있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럼 책 읽는 사람들, 특히 독서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 말하며 독서관련 책을 낸 작가들은 시간이 없다는 걸로는 책을 읽지 못하는 이유가 충분치 못하다 말한다. 하루에 30분씩만 내도 한달에 2,3권은 읽을 수 있다며...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의 내 자신을 보자면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싶을 정도로 독서를 하지 못하고 있다. 전 회사는 지하철로 출근했기에 지하철 안에서라도 책을 봤다 하지만 지금은 직접 운전한다는 이유로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 말하고 있으며, 출근해서는 경력 사원이기에 독서 따위의 개인 시간을 사용하기에는 눈치를 너무 보게된다 말한다. 그렇다면 퇴근 후에는? 회사에서의 과도한(?) 업무로 인해 지친 몸으로는 책만 보면 눈이 감긴다는 생리현상를 핑계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내 나름대로도 책 읽는 시간을 만들고자 노력은 해보았다. 시간이 부족하다 생각이 들기에 자는 시간이라도 줄여가며 읽어보자 다짐하며 핸드폰의 알람을 5시 30분으로 맞췄지만 6시 30분에 일어나는 걸로 익숙해진 내 썩을 몸은 그리고 내 정신상태는 내가 독서하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연말이라 1월 1일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말도안되는 핑계는 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으니 독서가 될 턱이 있을까 생각이 든다.


'나는 종종 나 자신에게도 의심이 든다. 내 지난 기억들을 끄집어내 이리저리 돌려 보면서도 이런 생각을 한다. 어디까지가 내가 정말 겪었던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조작되고 미화된 나의 거짓 기억일까. 누군가에게 나의 고민이나 생각들을 털어놓고 있는 순간에도 마음 한편엔 이런 의심이 싹튼다. 어디까지가 진짜 나의 이야기이고, 어디까지가 과장되고 합리화된 나의 거짓일까.' (p 13)


그래서 요즘은 책을 쓰겠다는 나의 목표에 점점 의심이 든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의 제목처럼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과연... 아직 인생의 반도 살지 않은 경험으로? 남들보다 나은 성과도 없는데? 고작 나란 인간이 책을? 무슨 주제로, 뭐를 쓸건데? 등등 책을 쓰고 싶다는 말을 하는 순간 주위 사람들로부터 비꼬는 듯한 의심의 목소리를 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건 내가 내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점점 시간이 없다는 핑계 속에 묻혀 이 길을 포기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혹은 구지 목표를 위해 가지 않더라도 이대로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주변의 기대와 사회의 기준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자기 합리화에 빠져 포기를 바라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점점 내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과연 나란 인간이 할 수 있을까?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 갈수록, 우리는 조금씩 무언가가 되어 갔다. 누군가의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가 되었고, 누군가의 종업원이 되었고, 누군가의 갑이 되었고, 누군가의 을이 되었고, 어떤 이는 또 누군가의 엄마 혹은 아빠가 되었다. 어렸을 땐 누군가의 딸 혹은 아들, 그리고 누군가의 학생, 이 두가지 역할놀이만 잘하면 됐는데, 나이를 먹어 갈수록 우리의 배역은 점점 늘어갔고, 우리의 시간은 점점 모자라졌고, 우리의 어깨 또한 조금씩 더 무거워져 갔다. 너에게 배역을 준 누군가들을 나도 모두 알고 있던 어린 시절이 끝나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너의 누군가들을 모두 알 수도 없을뿐더러 알아갈 시간조차 모자라 알아갈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 어른의 세계로, 우리는 넘어가고 있었다.' (p 132)


이 책에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이다. 최근에 이직을 해서 그런지 새로운 환경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을 느낌과 동시에 경력으로 갔기에 직위에 맞는 업무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렇게 성장하는 거다', '이런 경험을 계기로 한층 성숙해지리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 견디고 있지만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의심 역시 떨쳐낼수가 없다. 특히 와이프가 최근에 임신을 하면서 남편에 이어서 아빠가 된다는 사실에 더욱 이 구절이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와이프로부터 아이가 생겼다는 말에 기분도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도 된다. 내가 아빠가 된다니.. 더군다나 쌍둥이라니... 2명의 아이들이 나에게 와준 고마움에 대한 기쁨도 두배였지만, 주변 친구들의 육아의 고통을 듣고나니 쌍둥이를 어찌키울지 걱정부터 들었다. 그리고 유모차든 카시트든 옷이든 뭐든지 두배씩 든다는 생각에 부담 역시 두배로 찾아왔다. 이런 기분으로 아이를 반기는건 죄라는 생각이 들어 최대한 고마움의 마음으로 미래의 아이들을 생각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벌써부터 입덧으로 고통으로서워하는 와이프를 보고있으면 걱정스런 마음을 훌훌 털어내지 못하는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길이 내가 가야하는 길이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이 대신 해주지도 못할 뿐더러, 이 세상에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내 자신에게 자신감을 갖자. 이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결국, 결론은 내 자신을 의심하지 말자라는게 이 책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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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2-25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시스패로우님,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도 좋은하루되세요^^
 
시선 - 정운영 선집
정운영 지음 / 생각의힘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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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형, 운영 형!
세상 사람들은 생전의 정 형에게 몇 가지 특징을 부여하고 있었습니다. 글을 가장 책임 있게 쓰는 사람. 책과 독서량이 가장 많은 사람.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경제 이론가이며 평론가. 당대의 대표적인 재사이며 문장가.` (p. 24)

`하나의 명검을 만들어내기 위해 대장장이가 쇠망치질을 수천 번씩 되풀이하는 장인정신처럼 정 형이 윤전기가 돌아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단어 하나하나를 갈고 다듬은 것은 글 쓰는 모든 사람들이 본받고 우러러야 하는 모범이고 사표였습니다.` (p. 25)

이 책은 책 소개글 대신에 조정래 작가의 추도사로 시작된다. 고인이 된 사람이 살아 생전에 쓴 글들을 묶은 책이니만큼 추도사가 책 소개글로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조금은 낯설다. 하지만 추도사를 쓴 사람이 조정래 작가가 아닌가. 분량도 스물 네페이지나 될 정도로 길게 썼다. 솔직히 정운영 교수는 학창시절 책과 정치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심이 없던 나에게는 낯선 사람이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잠깐 본 듯한 인상만이 남아 있을 뿐, 정운영 교수가 무슨 일을 했는지, 무슨 책을 썼는지, 심지어 고인이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아마도 나같은 사람이 대한민국에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에 정운영 교수에 대해서 유려한 글로써 소개해주는 조정래 작가의 추도사는 이 책의 소개글로 딱 맞다는 생각이 든다.

추도사를 읽고 나면 조정래 작가가 이 추도글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나처럼 정운영 교수가 누구였는지 존재 자체도 몰랐던 사람들도 이 추도사를 읽고나면 정운영 교수가 살아생전에 어떤 일들을 했고,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였는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운영 교수의 이야기들이 더욱 빛을 발하고 커질 수 있도록 만든다. 실제로도 이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정운영이란 사람이 글을 쓰는데 얼마나 많은 심여를 기울이고 굳건한 자신만의 신념 속에서 활동을 했는지 알 수 있는데는 조정래 작가의 추도사의 역할을 컸다.

일단, 이 책은 어렵다. 정운영 교수의 노고가 글에 묻어있는 만큼 읽는 사람들도 상당한 집중력과 노력을 요한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 경제적인 배경지식도 갖쳐 있어야지만 글들을 이해할 수 있다. 즉, 나같이 이제 책을 읽기 시작하고 이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은 읽고 이해하는데 힘이 들수밖에 없다. 다 읽고 나서도 수박 겉햝기 정도로 이해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지만 당시의 부패되었고 썩어있던(지금도 변함은 없지만) 정치와 사회를 향해 거침없이 내뱉는 그의 글 속에는 힘이 있고 그의 신념이 묻어있기에 계속 읽고 싶을 뿐만 아니라 나도 정운영 교수처럼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정운영 교수가 쓴 각 이야기속에 묻어있던 사회의 어려움들이 죽은지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기에 정운영 교수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계속된다.

2015년 대한민국은 정말로 시끄러운 한해였다. 최근 뉴스만 보더라도 교과서 국정화부터 두산 인프라코어 명예퇴직, 안철수 탈당까지 수많은 기삿거리가 넘쳐나고 있으며 뉴스에는 나오지 않고 있지만 세월호 청문회도 진행중이다. 뉴스를 보자면 한 시간에 이 모든 걸 보도하기란 짧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한민국은 위태위태하며 다이너마이트에 붙은 불은 심지 끝에 도달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하지만 정부는 경제 예상 성장률이 3%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매년 경제 성장률을 틀리면서도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기성세대은 변하지 않고 있는 지금의 정부를 다음에도 이해할 수 없는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또 쫓아갈 생각인 듯 싶다.

정운영 교수의 글 속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사회주의에 대한 아쉬움이 곳곳에 묻어있기 때문에 이런 기성세대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젠 좀 변해야하는 시기가 된 것이 아닐까? 얼마전 `왜 분노해야 하는가`의 저자인 정하성 교수가 뉴스에 나와서 말하길 청년들이 들고 일어서야 한다 말한다.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서`, `인터제도 개선을 위해서`, `알바 고용 처우 개선을 위해서`, `사교육 시장 및 선행 학습 방지를 위해서`, `유치원 추가 개설을 위해서` 등등 기성세대들이 저지른 똥(이렇게 말씀은 안하셨지만..)들을 우리가 나라에 요구해서 치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말한다.

근데 `어떻게?`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이는 나쁜만이 아닐 것 같다. 정하성 교수 역시 뾰족한 답을 내놓진 못했다. 프랑스 혁명 때처럼 무기를 들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촛불 집회와 같이 평화적 시위를 한들 기득권들은 귀를 닫고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만 계속될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과 같이 혼란스러운 이 시지기에 과연 정운영 교수가 지금도 살아있다는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줬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그리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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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금 잔혹사 - 그들은 어떻게 조선의 왕이 되었는가
조민기 지음 / 책비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누구나 한번쯤은 왕이 되고 싶다는 상상을 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으며, 많은 후궁들과 신하들을 거느리며 살았던 임금의 화려한 삶을 누군들 꿈꾸지 않아보았겠는가. 그래서 히틀러나 스탈린 그리고 박정희와 같이 근대에 와서도 꼭 한, 두명씩 독재자를 꿈꾸며 이를 실행한 인물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참고로, 세계 독재자 순위를 조사해 봤는데, 1위 히틀러, 2위 스탈린, 3위 마오쩌둥에 이어 김일성은 10위, 김정일이 16위, 박정희는 17에 랭크되어 있다.) 아직도 북쪽에는 이런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우리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점에 대해서 그 사람을 욕하다가도 내심 부러워하는 우리들 모습을 보자면 우리라고 그 자리에 있으면 똑같아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인간이란 확실히 끊임없이 욕망을 갈구하는 동물인 동시에 환경의 영향에 민감한 동물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우리가 꿈꾸는 모습과는 반대로 임금의 삶이 잔인하고 혹독한 역사를 가졌다 말한다. TV 속 임금의 모습과는 다르게 이 책의 잔인한 제목만큼이나 당시의 왕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치열했고 살기 위해서 몸부림 쳤으며 자기가 살기 위해선 반드시 누군가는 희생되어야만 한다는 현실에 힘들어했으며, 그 누군가가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말한다. 최근 영화 `광해`나 `사도`를 보자면 결코 쉬운 직업은 아니었을거란 생각도 들긴 한다.

조선시대는 1392년 태조가 즉위한 이래로 1920년 마지막 임금인 순종까지 총 27명의 왕들에 의해 500년 넘게 유지되어 온 나라다. 500년 역사동안 조선은 수많은 전쟁과 반정들, 그리고 당파 싸움에 의해 위태롭게 유지되어 왔으며 그 사이 27명만이 왕으로 선택되었다. 이들 중에는 천운에 의해 서열 상 왕이 될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왕이 된 사람이 있었고 많은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왕이 되고 싶었던 사람도 있었으며, 왕의 장남으로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왕이 될 수 없었던 인물들도 있었다. 이 책에서는 조선의 임금 중에 가장 치열하게 인생을 살았던 아홉명의 군주와, 임금이 되지 못했던 세명의 세자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 책에서 나오는 임금, 세자들은 TV에서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자주 소개되었던 인물들이다. 따라서, 사극을 즐겨 보는 분들에게는 그다지 흥미로운 소재거리가 되기에는 내용이 부족하다. 그러나 익숙한 내용이기에 책 읽기에는 부담이 없으며, 영화나 드라마로 인해 왜곡된 임금의 이미지를 제대로 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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