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오래 걸으면... 외로움은 그리움이 된다.`

얼마전 `응답하라 1988`이 막을 내렸다. 그런데 일주일동안 기다렸던 응팔의 마지막회를 야근과 친구 모임으로 인해 본방으로 못 보고 일요일날 재방송으로 보았다. 본방사수를 못해서인지 아님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인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던 정팔이가 덕선이의 남편이 아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응팔의 마지막회에서는 `미생`과 같이 큰 여운과 감동의 쓰나미는 밀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끝날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유행하듯 마지막까지 마지막이 아닌 듯한 분위기의 마지막회였다. 아마도 응팔의 PD는 그동안 응팔이 우리에게 보여줬던 따뜻한 감동과 그리움으로 인해 눈물짓게 만들던 추억 속 장면들처럼 그리고 차가운 도시 인간들에게 사람과 사람간의 정(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처럼 쓰나미보다는 잔잔하면서도 가슴시린 겨울바다 파도와 같은 마무리를 하고 싶어했을거란 추측을 해본다.

응팔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우리 모두가 외로웠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안전을 이유로 가족 외에는 그 누구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겠다 말하며 우리만 아는 비밀번호로 현관문을 걸어잠그지만 어쩌면 우린 우리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고 있는건 아니었을까? 벽을 하나 두고 쌍문동의 골목길 보다도 몇배는 가까이 지내면서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얼굴도 모르고 있는 우리는 옆집의 미소와 따뜻한 손길에 목말라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래서 같이 웃어주고 아파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쌍문동의 가족같은 동네 친구들과 이웃주민들과의 따뜻한 정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외로워지면 과거를 자주 회상하게 된다. 아직까지 여자친구 없이 솔로인 대학교 친구들만 봐도 술마실때마다 옛날 대학생 시절 이야기뿐이다.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이야기들인데도 잊혀질만하도 또 꺼내고 또 깔깔거리며 미친듯이 웃는다. 솔직히 졸업한지 몇년 안되었는데도 그시절이 무척이나 그립다. 돈은 없었지만 돈이 있는 지금보다 훨씬 즐겁고 행복했던 때였다. 그만큼 졸업후에 사회에 나와 외로움을 많이 탔다는 의미인 듯 싶다.

과거를 회상하다보면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도 있지만(많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기억들도 웃음이 되고 실수한 기억마저 추억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순수했고 철없던 시절이었기에 실수는 용서가 되고 추억이 될 수 있었다. 반대로 지금은... 실수라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책임을 질 나이가 됐기에 추억마저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외로워지는 것 같다. (하긴, 난 아직도 술만 처마시면 실수를 하기에 추억을 쌓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사진들 속 김정운 교수는 책 제목과 안어울린다. 왜냐하면 전혀 외로워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는 그의 모습은 `순전히 내 생각이다`라고 마무리하는 그의 글처럼 사는 것도 순전히 자신이 생각한대로 산다. 쓰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렇게 놀기(?)전에는 교수였기에 금전적으로 걱정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살 수 있는 그가 너무나 부럽다. 그리고 이렇게 자~알 살고 있으면서 책 제목처럼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라고 말하는 김정운 교수가 짜증나기도 한다. 그런데 마지막에 김정운 교수가 하는 말은 도끼를 들고 직접 나한테 말하는 듯 가슴에 와닿았다. 김정운 교수 책에서 자기 계발서처럼 이런 글을 보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주체적 삶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인생의 주인이 돼라!`고 무수한 자기계발서들은 한결같이 주장한다. 그러나 구체적 방법론은 제시하지 않는다. 주체적 삶이란 그렇게 주먹 불끈 쥐고 결심한다고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월급쟁이 생활을 때려치우기만 하면 바로 내 삶의 주인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큰 착각이다. 평생 추구해야 할 공부의 목표가 없음을 돈의 문제로 환원시키며 자신의 쫓기는 삶을 정당화하는 것 또한 참으로 비겁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않을 관심의 대상과 목표가 있어야 주체적 삶이다. 우리가 젊어서 했던 `남의 돈 따먹기 위한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다.` (p. 318)

어쩌면 나는 큰 착각 속에 빠져서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열심히 살다보면 어떻게든 길이 생기겠지 하며 실력보다는 운을 더 믿고 의지하며 비겁하게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척!만 하며 연기만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사람의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않을 관심의 대상과 목표를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주체적 삶이라... 조금 더 곰곰히 생각해보자. 생각하는 것 밖에는 답이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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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0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0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거서 2016-01-21 0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답이 없을 지도 … 저도 잘 모릅니다만 ^^;;;;

제시스패로우 2016-01-21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생각만 계속 들어요...ㅋㅋ
 
증폭의 시대 - 소수의 증폭된 개인이 전체를 바꾸는 세상
마리나 고비스 지음, 안진환.박슬라 옮김 / 민음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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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적 네트워크

회사 교육 중에 강사가 간단한 실험을 했다. 1분동안 누구든 상관없으니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 아무나 이름을 적어보란다. 핸드폰의 연락처를 봐도 상관없다며 어떻게든 많은 사람을 적으라고 하기에 사람들은 최대한의 인원을 적으면 좋은 줄 알고 열심히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짧은 1분의 시간이 지나고 강사는 최고 몇명까지 적었는지 물어보았다. 많게는 1초에 한명꼴로 60명 이상의 사람 이름을 적은 사람도 있었고, 아무리 적어도 30명 이상은 되는 듯 했다. 나 역시 50명 가까이 되는 사람 이름들을 보며 `내 인맥이 이 정도야`라는 식으로 자신만만해하고 있었다.

강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각자 적어 넣은 사람 이름들 중에 가족을 지우란다. 5분의 1이 지워졌다. 다음은 친구들이다. 가족을 제외한 3분이 1의 이름들이 지워졌다. 다음은 회사 동료들이나 자신과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빼란다. 다 지우고 나니 남은 인원은 0명이었다. 50명이나 되었던 사람들이 모두 가족, 친구, 회사동료들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내 인맥은 이랬다.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똑같이 가족, 친구, 회사동료들의 이름을 적었고, 마지막까지 남은 이름의 수가 5명 정도? 되는 사람이 우리 교육생들 중 1등이었다. 실험의 총평으로 강사가 말하길, `인적 네트워크라는 것은 가족, 친구, 회사동료들을 제외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안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엄청난 인프라입니다. 내가 어려울 때, 위급할 때, 힘들 때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인적 네트워크를 쌓았냐에 다양한 경로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적네트워크는 다단계처럼 뻗어나가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우연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와 비슷하다. 더 나아가 이 책에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맥을 통해 사회적 인맥과 사회적 보상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를 창출하고 있다 말한다. 즉, 친분과 인맥,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행위가 경제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를 사회적 자본구축이란 의미와 함께 `소셜스트럭팅`이라 부른다.

`소셜스트럭팅은 실제로 새로운 종류의 글로벌 경제뿐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사회도 가능케 하고 있다. 증폭된 개인, 즉 소셜 네트워크의 집단지성과 신기술로 무장한 개인이 전에는 대규모 조직만이 수행할 수 있었던 기능을 떠맡을 수 있는 사회 말이다. 이제는 증폭된 개인이 대형 조직보다 종종 더 효율적으로, 비용을 전혀 들이지 않거나 저비용으로 훨씬 더 접근해서 그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p.13)

우리 나라에서는 혈연, 지연, 학연을 따지며 이런 연줄들이 공공연하게 나쁜 관습과 부패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지만, 사람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어디에 소속되고자 하는 소속감과 그로 인해 만족감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현재 인터넷이라는 막강한 도구를 이용해 이러한 욕구를 해결하고자 소셜 스트럭팅이 형성되고 있으며 미래에는 이러한 소수들로 인해 경제 환경이 형성될 것이라 말한다. 특히, 자동화와 로봇이라는 산업들이 나날이 말전하고 있는 이때, 인간이 기계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개인`이 기업, 혹은 거대 권력 기구처럼 영향을 발산하고 역량을 증폭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알려주고자 한다.

유비쿼터스 무료 콘텐츠로 온 세상이 교육이 된 세상, 엘리트에서 시민으로의 권력이 이양된 뉴아고라 시대의 시민 행정, 폐쇄적이고 비싼 정보에서 공개적이고 폭넓게 접근 가능하게 바뀐 과학 정보의 시대, 정교한 시스템인 인체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협업하는 새로운 의료 보건 모델 등 지금도 이러한 가능성들이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의 미래 사회에서는 더욱 더 많은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종류의 네트워크가 형성될 거라 말한다.

이렇게 되다보면, 소수만 살아남고 다수는 일자리가 없어 낙오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영화 `엘리시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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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5 0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6-01-15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시스패로우님,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제시스패로우 2016-01-15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감사합니다...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 동네서점의 유쾌한 반란
백창화.김병록 지음 / 남해의봄날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도 시골에서 책방을 하고 싶다.

이 책은 괴산에서 숲속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부부의 이야기다. 얼마 전 시골에서 책방을 하는데 관심이 생겨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던 중 이들의 책방이 사진과 함께 소개된 글을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사진 속 책방이 이 부부의 책방인지 몰랐지만 정말 이쁘고 화사한 책방 분위기에 매료되었고 급기야 내 방의 나의 꿈 게시판에 사진을 오려서 올려놨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 서점이다. 이 책의 저자가 기억 속 책방의 주인들이라니... 반가움에 책을 구입했다.

평소 산책을 할 때마다 와이프에게 서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곤 한다. 시골에서 이 책의 저자들과 같이 시골에서 서점을 내자고... 그리고 돈벌이가 힘들 것이 분명하기에 북카페나 북스테이 얘기 역시 빼놓지 않는다. 이럴 때마다 와이프는 내가 한말에 관심을 가져주면서도 내심 걱정이 되는 모양인지 나중에 생각하자 말한다. 어쩌면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 지도 모른다. 나 역시 지금 당장은 할 생각 없다며 일단은 시골에 가서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것 부터 시작하자는 쪽으로 말을 돌리곤 하지만 여전히 책방이 하고 싶은 소망을 지울 수가 없다.

`공식 계약기간인 2년 동안 거칠게 말하자면, 망하지 않고 무사히 버티는 것이 당장의 목표입니다.`
(p. 120)

서점으로 돈벌이 한다는 것, 특히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어쩌면 로또 1등 당첨될 확률보다 더 적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 소개된 책방 모두가 은행과 친하다고 하니 서점으로 입에 풀칠이라도 할까 모르겠다. 왜 나는 서점을 하고 싶은 걸까? 이 책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가치관과 신념으로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지만 과연 나는 무슨 이유로 서점을 하고 싶은 걸까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고, 특히 시골에서 책방을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 냉정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

나는 어쩌면 한적한 자연을 벚삼아 책과 함께 살고 싶다는, 아이들에겐 도시보다는 자연에서 뛰어노는 것이 좋다는, 꿈이 생겼다며 돈이 없고 힘들어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한다는 등 그럴싸한 이유를 핑계로 그냥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이곳을 도피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확신도 없으면서 말만 번지르하게 떠드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아직 능력도 한참 모자랄 뿐더러 모두가 나와 사업은 맞지 않는다 말한다.

그렇다고 지금의 내 모습이 불행한 상황도 아니다. 다니고 있는 직장도 몇년 간은 짤릴 위험도 없으며 생활을 위해 부족한 것 없이 여유있게 잘 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쁜 와이프와 뱃속에 쌍둥이까지... 정말 남부러울 것 없이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서점이란 미친 짓거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일까? 후회할 수도 있는 일을...

이것에 대해서 내가 지금 내린 결론은 책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아직 책 읽은지 얼마 되지 않은 갖난 아이지만 책과 함께라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내 자신이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것을 느낀는 재미, 글쓰는 재미가 있기에 그러지 않나 싶다. 일단은 지금의 생각일 뿐이다.

`공간은 사람을 닮는다. 한 발짝 들어서면 꿈꾸고 채우고 지켜가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말을 거는 공간이 있다. 작은 책방의 단골들은 단지 책을 사기 위해 책방을 찾는 것이 아니다. 문을 여는 순간 훅 온몸을 감까는 책 특유의 냄새처럼 책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의 향기가 있다. 살아있는 공간에는 언제나 좋은 책방지기가 있다.` (p. 55)

공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은 없지만, 론 프리드먼의 `공간의 재발견`에서 `생산성과 창의성의 발로가 개인의 역량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개인을 둘러싼 공간, 즉 업무 환경과 조직 문화에서 비롯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공간으로 인해 인간의 사고와 심리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3차원적 공간안에서 보고 듣고 말하며 생활하기에 공간이 주는 의미는 우리가 평소 느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바다가 주는 감정, 산이 주는 감정, 도시와 시골이 주는 감정 모두 틀리며, 어느 곳에서 생활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성이 달라질 수 있다. 당연한 말 같지만, 우리는 평소 공간이 주는 감정 변화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어쩌면 항상 스마트폰만 쳐다보느라 자신이 있는 공간이 어떻고, 그로 인해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도시에서의 생활은 답답함의 연속이다. 지하철과 교실 혹은 사무실로 이어지는 일상생활 속의 공간은 항상 사람들로 붐비며 시끄럽고 쾌쾌한 냄새 속에서 살고 있다. 어떨 때는 숨이 막힐 정도다. 내가 매일 출근하는 사무실을 보자면 촘촘하게 쳐져있는 파티션 속에서 쉴틈없이 작동하는 컴퓨터의 열기와 끊임없이 수화기에 대고 얘기하는 사람들의 입김이 합쳐져 뜨거운 공기를 내뿜는다. `네모난 철장 속에서 모이만 쪼아먹는 닭장들과 사무실의 분위기가 무엇이 다를까?`하는 생각도 수시로 든다.

학창 시절 교실의 분위기는 또 어떠한가. 아이들의 땀냄새와 반찬냄새 그리고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 책상 끄는 소리등의 소음이 합쳐져 코와 귀를 마비시킨다. 그리고는 선생님들이 들어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지는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공부가 잘 될 턱이 있을가 싶다. 문득 든 생각이지만, 쉬는 시간의 시끄러웠던 분위기가 선생님의 문소리와 함께 갑자기 조용해지는, 일명 조울증과 같은 양극성의 분위기가 연속되는 답답한 공간 속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자면 오히려 정신이 멀쩡한게 이상한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마지막으로 서울에서의 출근, 퇴근길 지하철이란 공간은... 짜증이란 단어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지하철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은 하루를 짜증에서 시작해서 짜증으로 끝내는 것이다. 더이상 지하철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모두가 공감하리라...

아무튼 이런 도시 속 공간에서 사는 우리들은 행복하지 않은게 어쩌면 당연한 걸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지옥 같은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바다와 산이 있는 시골로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 역시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럴 때 서점이 주는 공간 속 포근함은 시간이 없어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잠시나마 잡아줄 수 있는 대피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도시 속 교보문고와 같이 복잡하고 차가운 느낌이 나는 대형문고가 아닌 자그만하고 편안함을 주는, 그리고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곳 특유의 책 냄새가 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전히 동네의 작은 책방을 찾는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점점 힘들어져 가는 세상 속에서 언젠가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유럽처럼 다시 책을 찾을 거란 믿음이 생긴다. 모두가 스마트폰 대신 책을 손에 쥐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는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과 성장을 꿈꾸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박하고 힘든 세상에서 위로받고 싶어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뿐이며 이 책의 작은 책방 주인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기에 언젠가는 봄이 올 것이라 믿는다.

나도 우리집 거실을 책장을 도배하고 싶은데 먼저 책장 만드는 거나 배워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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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6-01-13 0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울살이 힘들죠..... 저도 늘 시골로 가는 꿈을 꿔요. 제시스패로우님 꿈 살짝 응원할게요^^ 뱃속의 쌍둥이도 미리 축하드립니다. 너무 이쁠것같아요^^

제시스패로우 2016-01-13 0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보니깐.전남에는 아직 이쁜책방이 없나보더라고요..ㅋ간다면 남해로...ㅋㅋ응원해주셔서감사합니다..행복한하루보내세요.^^
 
하루관리 - 인생을 바꾸는 하루관리의 기적
이지성.황희철 지음 / 차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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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6년 1월 1일, TV속에는 많은 사람들은 바다 지평선 위에서 떠오르는 해돋이와 함께 새해 소망을 빌며 새해 맞이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새해에는 건강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자신이 바라는 모든 소원들이 이루어지도록 해달라며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하게 기도한다. 하지만 나는 차도 많이 막히고 사람도 미어 터지는데 구지 멀리까지 가서 해돋이를 보겠다고 저 난리들인지, 새해 첫날에 해돋이를 보면 소망이 이루어지리라 정말로 믿고 있는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비난과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 때 나의 모습은 잠에서 덜 깬 눈꼽낀 눈에 머리는 까치집을 하고 있었으며 입에서 나는 냄새를 손바닥을 통해 코로 보내며 배를 긁적이고 있었다. 쉬는 날은 당연 이래야 한다는 직장인 마인드로 여지없이 늦잠을 자주었고, 일어나자마자 TV앞에 앉아 해돋이 구경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헐뜯고 있었다. 나의 2016년 첫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래도 나름 새해 첫날인만큼 새 책들 좀 사자하며, 서점에 가서 책들을 보고 있는데, 이 책이 눈에 딱 띄었다. '하루관리!' 오~ 새해는 다시 시작해보자는 의미로 한번 읽어보자 생각하며 책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저자가 이지성이다. 뒤에 황희철 작가는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이지성 작가를 본 순간 또 인문학, 독서, 논어, 꿈, 사랑.. 등등 같이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로 진행되는 책일 것이란 생각에 잠깐 망설였다. 그래도 제목도 새해 첫날과 어울리고 책 내용도 소설처럼 소설처럼 구성되었기에 쉽게 읽힐 수 있는 책인 것 같아 속고 읽는(?) 셈 치나는 생각에 책을 구매했다.

'목표를 반드시 이루고 말겠다는 의지가 매일 새벽마다 눈을 번쩍 뜨게 만드니까요. 하지만 할 거 다 하고, 만날 사람 다 만나고, 마실 술 다 마시고, 흥청망청 시간을 물쓰듯 쓰면서 삶이 달라질 거라고 믿는다면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더 이상 없어요.(...) 시간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건 인생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시간이 내 통제범위 밖에 있으니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조차 모르겠죠. (...) 통제되지 못하고, 조급하게 흘러가고, 무능력으로 점철된 시간들이 '하루'라는 이름으로 진홍씨 인생에 무수히 쌓여간다면 원하는 성공을 이룰 수 있을까요?' (p 65)

 뻔한 내용, 당연한 말들이지만 당연한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 나의 일상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끔 만드는 말들이었다. 새해 아침부터 늦잠을 자고 TV를 보며 불평, 불만부터 퍼붙는 내 자신이 너무나 한심해보였다. 특히나 새해부터는 꼭 5시 30분에 읽어나서 책을 읽고 글을 쓰리라 했던 나의 다짐은 어디로 갔었던 걸까?

시간을 정말로 우습게 보는 것 같다. 자고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도 남는 시간이 정말로 많은데 그 시간을 허무하게 보낸다. 중간 중간 남는 시간, 1분, 10분, 20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시간처럼 스마트폰을 보거나 TV를 보는 것으로 의미없게 보낸다. 그리고 평소에는 수많은 이유와 핑계를 대며 시간을 허비한다. 주말은 주말이라서, 휴일은 휴일이라서, 일찍 퇴근한 날은 일찍 퇴근했기 때문에, 오늘은 불금이라서... 등등 그리고 이 많은 시간에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자거나 TV를 본다. (물론, 이 생활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할거 다하면서는 꿈을 이룰수 없다는 말이다.)

 

'1초에 대한 절실함이 없으니 시간에 대한 절실함도 없고 시간이 쌓여서 이루어지는 진홍씨의 삶에도 절실함이 없는 거예요. (...) 하루를 우습게 보면 안돼요. 하루가 쌓여 생기는 시간의 무게는 엄청나요.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야말로 성공의 가장 큰 힘이예요.' (p 87)

꼭 이루고 말겠다는 절실함이 부족한 걸까? 간절함이 없어서일까? 내 생각을 행동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확실히 모르겠다.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어, 조급해 하지마'라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왠지 이 책에 강요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네시간만 자고 늦게까지 일하라니, 너무 사람을 몰아세우는 것은 아닐까?

중요한 것은 이 책을 통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1초, 1분, 1시간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며, 보람있게 써야한다는 의지가 생겼다. 이걸로 이 책이 주고자 했던 목적, 주어진 임무는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여전히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는 것은 힘들다. 자신의 역할을 여전히 수행하지 못하는 내 알람에게 너무나 미안할 정도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이지성 작가와 황희철 작가가 하고있는 폴레폴레 활동에 대한 설명이다. 주인공인 진홍이 황희철 작가와 이지성 작가를 만나고 이들이 하고 있는 활동에 참여한다는 구성으로서 점점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나 역시 이지성 작가의 '생각하는 인문학'을 통해 이러한 활동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활동을 하고자 할 용기와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책만 읽고 있다. 하지만 나중에는 꼭 한번은 참여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이 책을 통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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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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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인간으로 태어나 처음 만나고 오랫동안 한집에서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을 가족이라 부른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나에 대해서 잘 알고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즉, 우리는 인생을 가족들과 시작하며 인생의 대부분을 가족이란 사람들과 함께 보낸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가족이라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중요하며, 내 목숨보다도 소중한 존재로 여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가족을 병(病)이라 말한다.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아버지, 어머니, 자식이라는 역할을 연기하기에 그 안에서 개인은 매몰되고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는 자식은 골칫덩어리이고 반대로 자식은 부모의 권위와 어른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 사람의 사람으로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말한다.


군인으로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잦은 다툼으로 인해 가족과 오랜기간 등을 돌렸던 저자의 가정사를 봤을 때 가족을 병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해는 되면서도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로서의 존재에 대해 큰 부정을 하는 것 같아 반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으로 인해 가족이라는 사람들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유난히 '가족'이라는 구성원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이 우선이며 어느 누구도 가족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핏줄로 맺어진 혈연관계에 대해서 종교처럼 여겨져왔다. 그래서 혈연이라는 명목하에 불법으로라도 서로 챙겨주고 나눠먹는 사회문화가 형성되었으리라... 그리고 가족이라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대한민국 국민 안에서 지배적인 것 또한 특이한 문화라 할 수 있다.


특히나 대한민국은 한 세대만에 급격한 경제적 발전을 이뤄냈기에 그에 따른 성장통은 가정 안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기성세대들은 못 살았을 적의 춥고 배고픈 시절을 떠올리며 자기의 자식만큼은 힘든 환경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강한 나머지 자식에게 올인하는 경향이 있다. 오로지 자식만을 바라보며 살며 내 목숨보다도 더 귀한 존재이기에 간이며 쓸게든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 하나 아깝지 않은게 없다 말한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 이런 대사가 많이 나온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자식 또한 이런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 없기에 이들이 원하는대로 공부하고 기대한만큼 살아가려 노력한다. 그리고 엄마가 나를 위해 살아준만큼 나역시 보답하려 노력한다. 자식으로 당연하게 해야할 도리라 생각하고 묵묵히 자신의 꿈 같은 건 생각조차 안한다. 그리고 주변에서는 나를 효자라 치켜세운다.결국에는 부모가 원하는 직장에 취직해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부모님이 주변에 아들자랑하기 바쁘다 말씀을 하시면 왠지 효도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왜 행복하지 않은걸까? 하루하루가 왜 이렇게 지겹고 따분한 걸까?


가족을 위해서, 가족이 바라는 대로 산다는 것은 어찌보면 희생과 양보로 인해 뜻깊은 행동일 수 있다. 엄마로서 자식을 위한 희생은 당연한 것이며, 자식 역시 부모님을 깍듯이 모시고 기대한만큼 보답해 드리는 걸 자식의 도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허무함이 드는건 왜일까? 모두가 다 가족이란 울타리를 위해서 열심히 살았건만 남는것은 허무함 뿐이다. 가족을 위한 것이었는데...


'행복한 가족이란 어떤 가족을 말하는 것일까. 부모와 형제가 다투는 일 없이 사이좋고 평화롭게 서로를 이해하며 사는 가족. 경제적으로 웬만큼 풍족하고, 건강해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만약 그런 가족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면 오히려 섬뜩할 것 같다. (...) 대부분 가족은 늘 살얼음판을 디디면서 위태롭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시소처럼 한쪽이 무거워지면 다른 한쪽을 무겁게해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러니 가족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에게 정직하게 사는 사람의 행복도가 더 높지 안을까?' (p 105~106)


불행한 이유는 정직하지 못해서였을까? 가정이라는 무대위에서 부모로서의 역할을 연기하고,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연기한 것은 아니었을까? 싫으면 싫다 말하고 힘들면 힘들다 말해야 하는데 뭔가 내가 불화를 일으키면 이 행복한 가정이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불안감에 가족간에는 오히려 남들보다 더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다. 그래서 가정에서 대화가 없어지는 것일수도 있다. 그냥 자신의 역할만 묵묵히 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로 한번 깨지면 다시 붙을 수 없는 것 또한 가족들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가족들의 불화나 갈등을 주제로 한 내용들이 많은데 이는 작가의 상상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는 현실에 기반을 두었을 것이다. 오히려 드라마나 영화 속 가족들보다 현실에서의 가족이 더 막장인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어느 가정이든 가슴 아픈 가정사는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나 불화를 어떻게 해결해났느냐이다. 사회에서 가끔씩 보는 사람들과의 갈등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차차 수그러지거나 잊게 마련인데 가족은 맨날 마주치고 생활하는 사람이기에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수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짓을 하든간에 가족이라면 용서를 해주리라는 믿음이 있어서일까? 가족들간의 싸움을 보면,특히 최근 가족을 주제로 한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을 보자면, 이들은 하고 싶은 말, 내뱉지 않아야 하는 말까지 다 쏟아붓는다. 상대방의 감정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옛날에는 형이나 누나와 같이 중재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많았기에 위로도 받고 맘을 추스릴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는데, 요즘과 같이 핵가족화된 가정에서는 중재자도 없다. 이러니 충돌이 일어나면 해결은 쉽지 않아진다. 여기서 해결하지 못하면 (이 책의 저자와 같이)혼자 잘 살겠다고 평생 안 볼것처럼 독립하거나 연락을 끊는 경우가 발생한다.


'가족 사이에는 산들산들 미풍이 불게 하는 것이 좋다. 상대가 보이지 않을 만큼 지나치게 밀착하거나 사이가 너무 벌어져 소원해지면 가족만큼 까다로운 것도 없다.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가족을 이해할 수 없다. 혼자임을 즐길 수 없으면 가족이 있어도 고독을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늘 혼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상대의 기분을 가늠하고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이나 사회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p129)


이 책의 저자는 반려(남편을 이렇게 부르는데 왜 자꾸 강아지 생각이 나는걸까?)와 같이 사는데 이러한 갈등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가능하면 타인인 채로, 상대의 영역은 침범하지 않은 채로 산다 말한다. 가족간에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행복할 수 있다는 말도 서슴없이 한다. 이 부분을 읽는 내내 불편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타인처럼 살거면 왜 결혼을 하는건지... 일부분 기대하지 않아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부부로 살기로 했으면 서로 의지하고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갈등이 해결되면서 오히려 돈독해지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 대신 집 안을 정리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난 정말 어머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나봐요.' 그녀는 어머니의 다른 면을 처음 발견하고서, 새삼스럽게 어머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며 알려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가족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p 162~165)


누군가는 온 가족이 나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들을 이해해주고 신경써줄거라 믿는 사람들이 있다. 내 가까운 사람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내 위주로 가족 구성원이 돌아간다는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가족이란 사람들은 언제든지 내가 원하는대로 다 해주리라는 생각, 즉 '가족의 중심은 나다'라는 스타병이나 공주병에 걸린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가족에 대해서 생각을 안하게 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요즘 힘든 일은 없는지...' 


내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그리고 바쁜 일들만 신경쓰기에 다른 가족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기분인지 눈에 안들어오는 듯하다. 공주가 하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척이라도 하는가?  오히려, 가족보다는 회사 동료나 친구들에 대해서는 더 잘 알것이다.


그래도 가족이기에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책의 저자도 가족들과의 불화로 일찍이 독립해서 평생을 보지 않고 살았지마나 책의 마지막, 가족들에게 쓴 편지글을 봤을 때 마음 한켠에는 계속 가족들을 걱정하고 궁금해하고 있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헤어진 연인과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지만, 가족은 핏줄로 맺어진 관계이기에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가족이기에...



가족이기에 행복할 수 있고, 가족이기에 슬퍼할 수 있으며, 가족이기에 의지할 수 있다.

가족이기에 기대할 수 있고, 가족이기에 실망할 수 있으며, 가족이기에 바랄 수 있다.

가족이기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가족이기에 싸울수 있으며, 가족이기에 용서해줄 수 있다.

가족이기에 희생할 수 있고, 가족이기에 양보할 수 있으며, 가족이기에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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