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서 자유로워지는 시간 - 일생에 한 번 돈 걱정 없는 시스템 만들기
고득성 지음 / 다산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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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부부의 대화는 예비 엄마, 아빠 답게 임신, 출산, 태교, 육아에 대한 얘기뿐이다. 와이프는 배가 조금씩 불러오는 걸 몸소 느끼면서 나름대로 태교에 신경쓰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말과 평소 듣지 않던 클래식도 찾아서 듣고, 무엇보다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치명적이다기에 와이프 스트레스의 근원인 나 역시도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중이다. 그런데 가끔씩 우리 부부 대화에 '돈'이 끼어들때가 있다. 돈이란 놈이 끼어드는 날이면 좋았던 기분도 걱정과 고민으로 끝난다. 산부인과로 검진을 받으러 가는 이날도 여지없이 우리 부부 대화에 돈이란 놈이 눈치 없이 끼어든다.


'산후조리원이 2주에 200만원인데 이게 제일 싼거래. 그리고 출산 도우미 역시 2주에 200만원 정야한다나? 특히 우리는 쌍둥이라 추가비용이 발생하고...'

'쳇! 뭐가 그렇게 비싸! 월급 통채로 나가면 우리 뭐 먹고 살아?'


쌍둥이기에 곱절로 돈이 들거란 예상은 했었지만 2주에 몇백만원이 순식간에 나간다는 말에 애써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웃어넘기고자 했던 나의 말투에는 짜증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와이프에게 스트레스를 안주기 위해서는 (내가 스트레스의 근원이기에) 입을 닫는 수밖에 없었다. 산부인과로 가는 우리 부부는 돈이 끼어드는 순간 말이 없어졌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와 준것은 분명히 감사히 일이며, 행복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것도 한번에 2명의 아이들이라면 행복 역시 2배가 되리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믿고 있다. 하지만 돈이라는 현실에 부딪치면 행복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듯 하다. 특히, 아직 우리 부부에게는 빚도 있었기에 돈에 관해서는 쉽사리 걱정을 떨칠수가 없다. 이런 걱정까지 행복이라 여겨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질수 있을까?


'돈이 부족해서 곤궁에 처할수록 우리 삶에서 돈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점점 커져만 간다네. 원하지 않았어도 돈의 노예가 되는 삶을 선택한 셈이지.' (p 20)


돈이 없으면 불행해질까? 진짜 자신이 원하지 않았는대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돈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건가? 이에 대한 답은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면 맞는 말인 것 같다. 우리 어머니는 한 평생을 돈과 씨름하듯 살아오신 분이다. 모든 생각들의 세포는 돈으로 엮여있다. 가족과 오랜만에 외식을 하자고 해도, 여행을 가자고 해도 외출 자체를 돈으로 생각하시는 분이기에 우리 가족은 남들 하는 외식 한번을 제대로 한적이 없었다. 심지어 아버지가 명절에 어른들께 과일이라도 사들고 가자고 해도 가면 많다며 지갑을 닫아버리신다. 말만 하면 엄마 입에서 먼저 튀어나오는게 돈이란 녀석이었기에 난 돈의 노예로 살지 말아야지 다짐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결국 엄마가 돈에 대해서 집착하신 이유는 우리 때문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돈이 많아져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자신이 한 평생 돈 때문에 살아온 나날들이, 자신의 인생이 후회스럽기에 그렇게 살지 않기도 마음먹으셨단다. 이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고 싶다고... 두 자식 모두 결혼시키고서 찾은 여유이기에 자식으로서 죄송스러웠다. 결국에는 우리 때문에 돈이 필요하셨고, 그래서 돈과 싸워오신 것이 아닌가...


자식에 대한 경제교육에 대해서도 재미있고 유익한 글들이 많다.


'게으름의 유혹에 잠겨버린 자녀는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재산이 자기 재산인 줄 착각하면서 부모의 집과 차, 돈을 자기 것마냥 굴곤 한다. 급기야 자기를 도와주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기는커녕 원망하고 불평하며, 심하면 패악을 부리면서 주변의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재산은 부모의 것이지 자녀의 것이 아님을 정확하게 가르쳐야 한다. 부모의 소유물을 정확히 구분하듯, 자녀의 소유물 또한 마찬가지다. 자녀의 소유물은 분명히 인정해주고,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자녀 스스로 노력해서 성취해나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제대로 교육 시켜줘야겠다. 이 집은 내 집이고, 이 차도 내 차고, 이 tv도 내 꺼다. 그러니깐 아빠부터 먼저 보고 싶은 걸 볼 권리가 있다. 그다음은 너다. 대신 절대로 세벳돈은 뺏지 말아야겠다. 우리 엄마도 명절날 귀성길의 차 안에서 내 세벳돈을 반강제적으로 뺏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돈인데 엄마가 왜 뺏어?'라며 따질 때도 있었지만 내 기억에는 항상 빼앗겼던 것 같다. 그래! 세벳돈은 뺏지 말자.


'홈쇼핑, 인터넷 광고, 할부 신용카드, 마이너스 대출은 미성숙한 지출 습관을 부추기고 미래 소득까지 끌어당겨 당신을 돈(빚)의 노예로 만든다. (...) 미디어는 지금 경제적 형편에 상관없이 '멋진 옷과 명품 브랜드, 자동차, 스마트폰, 웰빙 제품을 소유해야 당신의 삶이 행복해진다'라며 자극적인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보낸다. (p. 39)


대출 광고가 판을 친다. 전화 한통화면 돈을 입금해 준다니... TV 속 대출 광고를 보고 있으면 이유 없이 그냥 돈을 준다는 말로 들이는 듯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그리고 라디오 속 주식 광고를 들을 때면 누구나 부자가 쉽게 될 수 있다는 듯이 말한다. 무엇보다 어이없는 건 마지막 나오는 대사다. '과도한 빚 고통의 시작입니다.' 난 래퍼인 줄 알았다. 이 얘기만 집어넣으면 누군가 자신의 광고로 인해 빚을 진한들 법적으로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인가? 참으로 무책임하면서 비인간적이다.


세상이 점점 유혹 덩어리로 변해가고 있는 듯하다. TV를 켜도 라디오를 들어도 인터넷을 봐도 대출, 주식, 부동산 등 전부 돈을 쓰라며 유혹하는 광고들 뿐이다. 세상에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란 것은 없다는 것을 모두들 알면서도 많은 이들은 악마의 속삭임에 파우스트에게 자신의 영혼을 넘기듯 자신이 이제까지 고생하며 번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고 있다. 요즘같이 모바일 기기와 인터넷이 발전된 시기에 내 돈을 누군가에게 넘기는 방법이 무척 간단해진 시대에는 돈을 잃은 찰라의 순간마저 너무나 쉽고 빠르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구분을 해야한다. want와 need는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의미에서 같은 단어인 듯 보이지만 엄연히 틀린 의미의 단어다.


최근 회사 동료들이 줄줄이 차를 바꿨다. 연말에 회사에서 나온 보너스 때문인지, 아니면 작년 연말에 할인을 많이 해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들 새차로 바꾸고 나니 나 역시 묶혀두었던 차에 대한 욕망이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더욱이 여름이면 2명의 식구가 더 늘어나니 지금 차는 좀 좁을 것 같다는 타당한(?) 이유를 애써 찾고보니 더 사고 싶어졌다. 그래서 운전할 때면 와이프에게 차 얘기를 일부러 늘어놓곤 하지만 내 자신이 우리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스스로 입을 다문다.


솔직히 지금 차로도 충분히 4식구를 태우고 다닐 수 있다. (카시트 때문에 조금은 비좁을 수 있지만) 그리고 구입한지도 5년 밖에 안되었었기에 아직 바꿀 시기도 아닐 뿐더러 사고난 적도, 고장난 적도 없는 아주 멀쩡한 차다. 그런데 왜 바꾸고 싶어했을까? 아마도 주변에서 하나, 둘 바꾸다 보니 충동적으로 새차를 사고 싶었던 것 같다. 즉, 난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지 원하기만 했을 뿐이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나 역시 가지고 싶다. 홈쇼핑에서 '매진 임박'이란 단어를 보면 왠지 전화해서 구매를 해야할 것만 같은 충동을 자주 느낀다. 충동을 나름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며 필요한 물건이라 자기 합리화 시키는 날이면 그 충동은 구매로 어진다. 하지만 물건을 받고 나면 내가 생각했던 필요한 위치에 그 물건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난 그냥 원했던 거다.


목적 없이 원하기만 하는 경우에는 금방 싫증나기 쉽다. 그리고 싫증난 물건은 쓰레기가 되버리고 만다. 아무리 비싸도 사용하지 않으면 쓰레기나 나름없기에 대부분 사람들의 집에는 쓰레기가 있다고 봐야 하는 건가? 반대로 싸구려라도 필요한 물건이면 그 물건의 가치는 비싼 쓰레기와 비교할 수 없이 크다고 봐야하는 거겠지?


물건을 돈으로 바꿔 생각하면 돈을 그냥 모으기만 하는 사람과 돈을 모으는 목적, 필요가 뚜렷한 사람 사람간의 돈의 가치는 무척이나 다를 것이다. 목적없이 돈을 모으기만 하는 사람에게는 재벌들에게 돈이 단지 숫자에 불과하듯 (약간은 다를 수 있겠지만) 이들에게도 숫자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냥 통장 잔고에 있는 숫자만 좋아할 뿐, 그 돈으로 무언가를 사기 전까지는 돈의 가치는 제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그냥 통장 속 숫자를 원하는 것 뿐이다. '0'이 계속 늘어나는 재미로 행복을 느낄 수 있겠지만, 잠깐의 기쁨일 뿐 행복의 여운은 길지 않다. 특히, 로또 1등 당첨자들이 모두 파산하는 경우를 봤을 때, 목적없는 돈은 유혹에 의해 쉽게 잃어버리게 된다.


반대로, 필요에 의해서, 자기 가족을 위해서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위해 돈을 모으는 사람에게 돈의 가치는 분명히 틀릴 것이다. 돈이 이들에게 미래가 될 수 있으며, 가족의 행복이 될 수 있는 가치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돈을 모으는 이유에 대해서 목적을 분명하게 찾아야 한다.

책이 반쯤 넘어가면 무언가 금융 상품을 파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재테크는 노후를 위해서 꼭 필요한 준비이긴 하지만, 인생과 돈의 관계를 해결해줄 것같이 꾸며진, 철학적 느낌을 주는 책 제목과는 다소 상반된 내용이라서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뭐, 그래도 돈에 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에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내 생각을 정리하자면, 돈이 풍족하진 않더라도 남들처럼 여유있게 살진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는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 생각한다. 우리 와이프 출산하고 산후조리원 보내고 도우미 정도는 부를 수 있을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신, 필요한 것들만 사고 욕심을 버리고 지금 이대로만 열심히 일하면서 살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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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쓸모없기를 바란다. 내가 쓸모가 있었더라면 어찌 이처럼 크게 자랐겠느냐.`

`대부분의 경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쓸모없음`이 아니라 `쓸모 있음`이다. 못 우는 닭이 잘 우는 닭보다 먼저 밥상에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쓸모란, 사람의 입장에서 하는 말일 따름이다. 쓸모 있는 나무란 목재로 쓸 수 있는 곧고 단단한 나무겠지만, 그 역시 사람의 입장이다.`

`쓸모란 결국 관점의 문제일 뿐이다. 시선만 바꾸면, 즉 내 자리를 조금만 옮겨서 보면 쓸모가 없다가도 생기고 있다가도 없어진다.`

`쓸모 있다고 무조건 좋은 거 아니고, 쓸모없다고 무조건 나쁜 거 아니다.`

[중간만 해라]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중간만 하라는 말들을 많이 듣는다. 너무 잘하려고도 하지 말고(쓸모있으려고 하지도 말고) 너무 못하려도 하지 말아라(쓸모 없으려고도 하지 말아라). 쓸모 있음과 없음의 중간에서?? 많이들어는 봤는데...

회사에서 일 잘한다며 소문나 있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불쌍하다. 상사의 계속된 부름에 쉴틈없이 의자에서 일어나 달려간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산더미인데 상사의 인정에 여전히 목말라있는지 일을 또 받아온다. 어느새 야근은 일상이 되어버렸고 일을 끝내기 위해서는 주말에도 여지없이 출근해야 한다. 승진을 위해 자기계발까지 하려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일주일에 고작 서너시간? 자신에게 있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그리고 일을 하는 목적 자체가 무엇인지 잊고 산지 오래다.

반대로 열정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며 자신만의 생활 방식을 고수한다. 누가 뭐라하든 나만의 길을 가겠다며 퇴근 시간에 맞춰 컴퓨터를 끄고 당당하게 회사를 나간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몸은 편할지 몰라도 맘이 불편하다. 하긴 해야겠고, 하기는 싫고 갈피를 못잡고 이리저리 빠질 궁리만 하기에 시간만 천천히 갈 뿐이다. 승진은 전혀 신경 안쓰는 척 하지만 먹여살릴 가족이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어른들 말처럼 중간만 하는 것 역시 쉽지가 않다. 오히려 더 어렵다.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선택과 순발력을 잘 발휘해야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할텐데 살다보면 두가지 만족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인정 받으려고 하는 욕구와 편하고 싶은 욕구 속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다보면 나 역시 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거나, 퇴근은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회사에서 떠나질 못하고 있다.

쓸모없는 인간이 되느냐 쓸모 있는 인간이 되느냐, 중간만 하느냐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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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이 책 저자의 강의를.직접 들었는데 재미있을 것같네요. 접근동기 회피동기 그리고 원하는것과 좋아하는것은 엄연히 다르다..등등 기회되면 책도 읽어봐야겠어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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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2-16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시스패로우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3년 후, 한국은 없다 - 총체적 난국에 빠진 대한민국 민낯 보고서
공병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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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들은 화재경고음이 울려도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적을 깨는 소리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길 바라는 듯 설레여하는 눈치다. 위험불감증이라 불리는 이 병은(흔히 안전불감증이라 불리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위험을 못 느끼는 병이라 불리는게 맞기에) 아마도 대한민국 국민의 성향인 듯 하다.

`농경문화가 짙게 배어 있는 한국인들에게 위기에 필사적으로 대비하는 절심함은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지 않다.(...) 예상되는 위험을 체계적인 노력으로 대비하기보다는 그저 낙관과 행운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 억수 같은 비가 내려서 홍수가 날 정도가 되어서야 마지못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p. 40)

세월호 역시 그랬다. 세월호가 기울어지기 시작했을 당시 자신들이 찍은 동영상 속의 아이들은 추억이라도 하나 더 생긴 듯한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일어나겠어?` 하지만 그 무슨 일은 결국 일어났다. 그 속에서 누구 한명이라도 위험에 대한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면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죽진 않았을 것이다.

(그 누구 한명이란 사람이 선장이었어야 했지만, 선장은 배를 떠나고 없었다. 어쩌면 선장이 먼저 배를 떠났듯이 현재 대한민국에도 리더가 없는 것이 무엇보다 큰 위험이란 생각이 든다. 배는 가라앉고 있는데 방법은 찾을 생각 없이 자신은 책임없다며 문제에 대해서 회피만 하고 있으니 세월호 선장과 무엇이 다르랴.)

지금 이 위험불감증이란 병이 대한민국 경제 위기 속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대한민국 문제가 무엇인지 총 16가지로 나누어서 설명을 해 준다. 다소 보수적 성향의 글들이 많지만, 저자의 정치적 견해를 떠나서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에 큰 쓰나미가 닥칠 것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제대로 된 리더가 없는 것이 문제인지, 정치인들의 짧은 임기 기간으로 인해 눈 앞의 성과만을 위한 정치활동이 문제인 것인지, 아니면 국민들의 정부 의종도가 없은 시대 정신이 문제인 것인지...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누구하나 위기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대비할 생각이 없기에 안타까울 뿐이다.

몇년 전 시트콤 논스톱에서 앤디의 대사가 순간 생각났다. 뚜렷하게 생각은 안나지만 대사는 이랬던 것 같다. `아시다시피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청년실업이 40만명에 육박한 이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계획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사회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용감한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이런 말을 남드에게 서슴없이 할 줄 아는 앤디같은 사람이 이 시대에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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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분노해야 하는가 -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 한국 자본주의 2
장하성 지음 / 헤이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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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솔로였을 때는 술 생각만 나면 연락해서 모이던 놈들이었는데 어느덧 한명씩 결혼을 하더니 이제는 남자들만의 모임이 아닌 가족모임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런데 이번 모임에는 모임 멤버가 갑자기 늘었다. 두 놈의 친구녀석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거의 동시에 낳아서 자기 새끼라며 인사를 시킨다. 임신을 했다는 얘기는 들었다만 언제 낳았는지 참! 신기하면서도 요즘 배속의 아이들 때문에 입덧을 하는 와이프를 생각하면 그들이 내심 부러웠다. 우리 역시 디질세라 와이프 뱃속에 있는 우리 새끼들을 인사시킨다. 쌍둥이라는 말에 모두들 축하해주는데, 내 느낌탓인가? 그 축하 속에는 걱정 섞인 우려의 목소리도 짙게 깔려있는 듯 했다. 하긴 지금까지 그들이 겪은 고생들과 인내의 시간을 생각하자면 아이 둘을 키워야 하는 우리가 걱정스러울 만도 할 것이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시픈 이야기는)시간이 빠르다보니 일년이란 세월이 짧다 느껴지면서도 누군가에게는 한 아이의 부모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과 눈물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똑같은 시간이라 해도 각자 느끼는 시간과 세월의 무게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낀다.


애기들 얘기로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쯤 맥주를 홀짝 홀짝 마셔대다보니 어느 순간 취해있었다. 나는 취기 속에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마도 요즘 읽고 있는 책 내용들을 말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 이야기 하는 가운데 한번은 이렇게 물었다.


'앞으로 애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걱정이다. 특히,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서 과연 행복하게 키울 수 있을지 참 걱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만뒀어야 했는데 한발 더 나아갔다.


'우리가 아이들을 낳는게 과연 아이들을 위한 일인건지 모르겠다. 고령화 되는 시대에 분명히 다음 세대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힘들 것이다. 행복한 사회 속에서 클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은데 지금 이 나라는 그러질 못하니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걱정스럽다.'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잘 키울 수 있을까? 옆집 아이가 이 장난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우리도 사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럼 나중에 아이가 커서 옆집 아이가 하는대로 우리도 똑같이 공부시켜야 하는 것인가? 이것이 선행 학습을 조장하는 것 아닌가? 이것이 진정 아이를 위한 일인가?'


여기서 더 나아가 '과연 우리나라에서 키우는 것만이 정답일까? 배교없는 세상, 공정한 환경 속에서는 키울 수 없는 것인가? 우리도 북유럽처럼 비교없는 교육 환경 속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너희들은 교육 걱정, 육아 걱정, 노후 걱정은 안되는가?'


대답은 이랬다. '뭐 벌써부터 그런 걱정은 하느냐? 우리가 무엇을 바꿀 수 있다고... 너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겠다만, 일단은 애기 낳고 너의 가정부터 걱정하고 와이프부터 신경써줘라. 애기 낳으면 다 똑같이 된다. 우리 애가 뭐 하나 부족한 게 있으면 해주고 싶은게 부모의 마음이더라. 애기 낳아봐라'


내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넌 지금 충분히 행복하냐?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게 행복해?'모두들의 대답은 'YES'였다. 반대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그때 난 'NO!'라고 대답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 지긋지긋하다고. 희망도 없고 미래도 없다며 난 결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사는게 행복하지 않다 대답했다.


재미있던 분위기 속에서 내가 먼저 시작한 심각한 이야기들로 인해 분위기는 싸해졌다. 역시 대한민국 술자리에서는 정치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말라고 했던가.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논리적 굴복을 요구하면 상대방은 반드시 저항하게 되어 있다. '그래 당신 말이 맞아. 그래서?' 논리는 이해했지만 절대 승복할 마음이 없다.' 라고 말한 김정운 교수의 말처럼 내가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고 굴복을 요구하듯 대화를 했던 걸까? (지금 기억으로는 분명히 그랬다.) 나만 빼고 모두들 하나로 뭉친 듯 했다.


술기운에 '나 책좀 보고 있어요'라며 자랑을 조금 하고 싶어서 시작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단지 대한민국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뿐이고,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바뀌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난 그 때 당시 분명히 분노하고 있었다. (술이 문제인 듯...)


난 분노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일부러 분노까지 해가며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이 책의 제목처럼 분노해야 한다는 말 속에는 'must'나 'have to'같이 의무감이 내포되어 있는 듯한 뉘앙스가 들어있기에 오히려 분노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반감마저 든다. 하지만, 난 그때 당시 분노하고 있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명절에 어른들과 정치얘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분노하고 있다.


난 이렇게 묻고 싶다. '분노되지 않는가?' 뉴스에서는 연일 노동개혁안과 누리교육 예산안을 가지고 누가 맞고 틀린지에 가리기 위한 이분법적 회의만 계속하고 있으며, 대통령은 선거 당시 공약으로 내걸었던 경제민주화나 분배나 반값 등록금 등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까먹은 듯 입 밖에도 내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정책들은 국민들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정책들이다. 우리가 내가 있는 세금으로 인해 이들이 아무 결정도 못내리며 헛똑똑이들 같이 뭐가 중요한지도 잊은채 자기들 잘났다는 식으로 싸우고들 있는데이런 걸 보면서도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전혀 분노되지 않는단 말인가?


'정치는 국민 모두의 삶에 매일 매일 가장 밀접하게 영향을 끼치며, 정치적 선택은 우리 사회의 많은 것들을 결정짓는다. 그들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정치적 선택을 외면하거나 적극적 참여를 하지 않고 있다. 청년세대가 희망을 포기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세상은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하는 것은 그저 무책임하고 개념없는 바람일 뿐이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왜 분노되지 않는가?'로 바꾸고 싶다. 분노된다는 말은 무언가로 인해 되어진다는 의미, 즉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분노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분노하라고 부축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왜 분노되지 않는건지에 대해서만 묻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 책은 'JTBC 뉴스룸'에 장하성 교수가 직접 나와서 소개될 정도로 꽤 괜찮은 책이라 생각한다. 꽤 많은 그래프들을 근거로 대한민국의 불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불평등의 원인과 이유에 대해서도 꽤 상세하게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처음부터 3분의 2는 다 똑같은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해서 설명해놨을 뿐, 장하성 교수가 밝혀낸 불평등의 원인은 한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불평등한 고용구조가 한국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이며, 이러한 구조를 만든 장본인은 대기업이다. 삼성과 현대와 같이 초대기업들로 인해 비정규직과 임금 불평등이 악화되었으며 성장의 성과가 임금으로 분배되지 않았다. 경제 성장의 성과가 가계, 즉 국민에게 분배되지 않고 대기업이 소유하는 기현상이 한국의 현실이다.' (P. 031)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마지막 장이다. 이러한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청년들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상세히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약간의 희망에 메시지를 주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긍정적인 사고 자체를 부정하며 위험한 요소로까지 간주한다. 그리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자고 말한다.


'한국 청년세대의 미래에 희망이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답은 '없다!' 지금의 한국 경제구조에서 청년들이 꿈꾸는 더 나은 인생, 더 좋은 세상은 미래에 현실이 될 수 없다. 오늘보다 더 못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필자가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이미 20대는 '잉여'가 되었고, 30대는 '포기'했다. 청년들이 이미 희망을 포기했는데, 희망이 없는 이유를 찾느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래도 답을 구하려는 이유가 있다. 청년세대가 희망을 포기하면 한국은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P381)


'세상 모든 것을 긍정하다 보니, 자신을 짓누르는 것조차도 긍정해버리는 긍정의 화신이 되어 주어진 체제에 순종하는 '긍정의 노예'가 되버린 것이다. '긍정'이 모든 것을 긍정하고 싶어 하는 청년세대를 '긍정적 노예'로 만드는 배신을 한 것이다. 젊은이들이 행복하고, 만족한 것은 '긍정적 노예의 행복'인 것이다. (...) 미래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사람이나 장래의 인생에 '희망'이 있는 사람은 '지금 불행하다'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이제 자신이 '이보다 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되었을 때, '지금 해복하다' 혹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락 대답하게 되는 것이다. (...) 청년세대는 더 나은 미래가 없으니 지금 '행복을 집행하는 세대'라고 말할 수 있다. 청년세대의 행복과 만족은 희망을 포기한 대가로 얻은 것이다.' (P393)


지금 청년들은 힘들고 밝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대도 '행복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빠져서 살고 있는 듯 하다. 이 의무감이 지속되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자기 최면에 빠진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진짜 행복한 사람인 양 착각에 빠져 살고 있는 것이다. 솔지기 이 '아픈 행복'이라는 최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맞고 틀리다로 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며 행복학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을 보고 틀리다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분명한 것은 암울한 미래를 보며 절망과 분노만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행복만을 찾으며 살수도 없다. 단지, 긍정의 힘을 믿으며 자신의 우울한 현실 조차도 긍정으로 보고 그것을 행복하다 말하는 우리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생각한다.


친구들과 있을 때 행복하느냐는 질문에 'NO!'라고 대답해서 와이프가 적잖이 당황하고 화도 많이 났을 텐데, 난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단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금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많은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며, 아이들을 어떻게 행복하게 키울 것인지, 다음 세대를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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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eus0616 2016-02-07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좋아요 어케 누르는거야??ㅋㅋㅋ

2016-02-07 1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07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시스패로우 2016-02-07 19:10   좋아요 1 | URL
그런거보면 무서워요...친일파옹호 하는 사람도 많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