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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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배우 중에 조지 클루니가 제일 멋지다 생각한다. 그의 눈을 보자면 남자인 나도 빠져드는 느낌인데 여자들은 오죽할까? 외모로만 먹고 살아도 될 듯한데 조지 클루니는 정치와 인권 운동도 한다. 미국 민주당 선거자금 모금파트도 열고 2012년도에는 워싱던 DC 수단 대사관 앞에서 인권 시위를 벌이다가 체포되기도 했다는... 아무튼 멋진 놈(?)이 분명하다.

그런데 조지 클루니로부터 제일 부러운 건 그의 멋진 눈도 아니요, 목소리도 아니다. 멋지게 늙는다는 거다. 그를 보자면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움 속에서도 고급스러우며 부드럽고 카리스마도 있다. (남자의 매력으로서 모든걸 다 가진듯...) 내가 광고나 영화 속 인물만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무엇보다 조지 클루니는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려고 노력하지도, 뽐내지도 않는다. 그냥 사람 자체가 매력 덩어리이다.

나에게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묻는다면, `멋지게 늙고 싶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살고 싶은지 물어봤는데, 늙고 싶다라고 대답한건 하루하루 시간이 가는 것, 숨쉬고 있는 것 자체가 죽음을 향해 우리가 늙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가고 있다`라는 말보다는 `늙어가고 있다`는 말이 더 위기의식이 생기는 듯 하다. 무엇보다 30대 중반이 넘어가고 있는 지금의 내 나이를 보자면 젊어진다라는 표현보다는 앞으로는 늙어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 하다.

아무튼, 난 조지 클루니처럼 멋지게 늙고 싶다. 그런데 아직 어떻게 늙어야 멋지게 늙는건지 잘 모르는게 문제다. 조지 클루니처럼 외모가 저렇게 생겨먹어야 되는건지, 돈이 많아서 여유로움이 몸에 뵈어야 되는건지, 차승원처럼 몸매가 되야 하는건지, 옷을 잘 입어야 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와이프도 멋지게 늙는 남자가 좋다고 하는데... 참.. 어렵다.

지금까지 멋지게 살아왔는지 물어본다면, 당연 no!다. 그렇다면 왜 멋지게 살아온게 아닌 것 같은지 반문을 해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멋있었던 거였는지 회상해보면 답이 나오려나?

이제까지 난 내 인생중에 내가 실로 원해서 선택한 경우는 별로 없는것 같다. 성적과 지역, 돈, 합격 여부 등에 맞춰서 왠지 그냥 가야할 것 같으니깐, 남들 다 가니까 부모님이 간 것 같다. 아무 생각없이, 주관없이, 의미없이 산거다. 좋아하는 것도 없었고, 꿈도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유시민 작가 역시 유년시절에는 이랬나 보다. (유시민 선생님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너무나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그래서 책의 처음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생의 품격은 평범함이나 비범함과 상관없는 것이다. 내 문제는 꿈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게는 무엇인가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었다. 인생을 어떤 색조로 꾸미고 싶다는 소망도 없었따. 그저 현실에 작 적응했을 뿐이다.` (p. 33)

멋지다는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인가? 꿈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멋진건가? 그렇다면 꿈을 가지고 자신이 하고싶은 걸 해야하는건가? 지금 와서? 책 첫장에 크라잉 넛을 보고 이들은 원하는 인생을 스스로 설계했고 그 삶을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았기에 유시민 작가는 멋있다 말한다. 나도 크라잉 넛을 좋아하고 이들의 노래 역시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크라잉 넛처럼 살라고 하면 사양하고 싶다. 30대 중반이 아직 젊은 나이일 수는 있지만, 인생을 다시 설계하고 이들처럼 살기에는 좀 늦은 느낌이다.

크라잉 넛처럼 주위 사람들 시선에 신경 안쓰고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 역시 멋지다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고민하는 것은 멋지게 늙는 것다. 난 크라잉 넛처럼 살 자신이 없기에 아무래도 방향을 잘못 잡았은 듯 하다. (뭐지?)

이 책에서 나온 품위있게 늙는 방법에 대한 유시민 작가의 방법이다.

1. 잘난체, 있는체, 아는 체 하지 않고 겸손하게 처신한다.

2. 없어도 없는 티를 내지 않는다.

3. 힘든 일이 있어도 의연하게 대처한다.

4. 매사에 넓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임하며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는다.

5.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신중하게 행동한다.

6. 내 이야기를 늘어놓기 보다는 남의 말을 경청한다. (p. 224)

유시민 작가는 품위있게 사는 방법이라고 표현했지만, 왠지 품위란 말은 프랑스 부르주아 느낌이 나서 싫다. 그리고 킹스맨에서 나오는 `manner maketh man`란 대사처럼 정장 입고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할 것같은 느낌이 들어서 싫다. 난 멋진게 좋다.

무엇이 됐든, 위의 말들을 곰곰히 생각해 봤다. 체하지 않기, 티내지 않기, 화내지 않기, 배려하고 신중하게 행동하기, 경청하기. 이들을 종합해보면 내가 내린 결론은 여유다. 멋지게 늙으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 조지 클루니처럼 뽐내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는다면 멋진거다. 밑의 사진을 보더라도 조지클루니는 체포를 당하면서도 결코 당황해하지 않는다. 오션스 일레븐에서도 보는 내내 그는 여유가 넘쳐보였다. 그래서 멋있어 보인거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것인가 묻는다면 난 여유있게 살고 싶다라고 말할거다. 멋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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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3-06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치를 더하면서 늙어가는 것처럼 멋찐 인생도 없죠.....공감 하게 되네요,^^..
 

좋은 부모란 어떤 부모일까?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서 맞벌이를 하면서 살고 있는 걸 보면 현대의 좋은 부모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그래서 자식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 할 수 있을 듯 싶다. 뭐, 꼭 자식만을 위해서 맞벌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반박할 수는 있겠지만,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대신에 일을 선택한 만큼 돈으로 아이를 위해서 해주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 여기고 있는 것만은 반박할 수 없을 듯하다.

하긴, `좋은`이란 형용사 의미 자체가 애매 모호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아이를 위해서`라는 전제로서의 부모가 하는 일이면, `좋은` 부모로서 의무를 다 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돈을 잘 벌어서 아이가 경제적으로 남부럽지 않도록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으면 그것 역시 `좋은` 부모가 맞을 듯 싶다.

그렇다면 좋은 부모라는 척도를 점수로 평가할 수 있다면, 지금의 부모들은 몇점이나 될까? 부모로서의 역할에 대해서 평가를 한다면 모두들 내가 아이에게 얼마나 잘해주었는지, 얼마나 잘 챙겨주었는지, 얼마나 잘 놀아주었는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볼 것이다. 어쩌면 좀 괴팍하게, 지금의 부모들을 보자면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부모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좋은 부모의 기준을 평가를 해보면 어떻게 될까? 아이의 입장에서 과연 좋은 부모란 어떤 부모일까?

얼마전, 영재 발굴단 프로그램에서 영재라 불리는 한 아이를 통해 엄마와 아빠의 지지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 테스트를 해 보았다. 즉, 한 아이가 영재가 되기까지 부모가 아이에게 어떤 정신적, 심리적 영향을 끼쳤는지 점수로서 확인을 해 본 것이다. 결과는 엄마의 지지율이 100점, 아빠의 지지율이 95점이 나왔다. 전문가들이 말하길, 어느 부모도 이런 점수는 나올 수가 없단다. 아이의 부모는 특이하게도 벙어리였다. 이 부모는 말을 못하기에 아이의 눈과 입을 자세히 쳐다본다. 안보면 의사소통이 힘들기 때문이다. 부모는 벙어리라서 경제적인 여유를 줄 수도 없고, 잘 놀아줄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아이가 하는 말을 유심히 보고, 눈을 쳐다보고, 들리지 않지만 잘 들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이 부모를 보자면, 좋은 부모란 아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부모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들은 아이가 하는 말에 잘 귀기울이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따라주길 바라며, 돈이란 물질적인 것으로 소통하려고 한다. 귀로 듣는 것 말고도 몸짓, 눈, 손, 글, 표정, 심지어 사랑하면 마음으로 소통한다고 하는데 지금의 부모들은 오로지 입으로만 소통하려고 한다. 가장 편하고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많은 부모들이 갈망하는 영재가 대한민국에 많아지기 위해서는 벙어리 부모를 보자면 우리 부모들이 모두 벙어리가 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입을 닫는 만큼 벙어리 부모처럼 아이들을 더 유심히 보고 감정으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처럼 모두가 한순간에 다 벙어리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우리 부모들 각자가 바뀌어야 한다. 맞벌이 부부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부모들이 바뀌기 이전에 대한민국 사회 구조가 먼저 변해야 한다. 하지만 이놈의 나라는 바뀔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진정으로 아이의 행복을 원한다면, 현재 자신이 부모러서 잘 하고 있는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의미없이 남들 하는대로 따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내가 아이의 잠재력을 짚밟고 있지는 않은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아직 자식을 키우는 경험을 제대로 해보진 않았지만, 뱃 속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진지하게 생각중이다. 좋은 부모란 어떤 부모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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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왜 의미 있는가 - 속물 사회를 살아가는 자유인의 나침반
이한 지음 / 미지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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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이란 무엇인가?


'돈이 많다면, 외모가 뛰어나다면, 사회적 지위가 높다면, 권력이 강하다면 그 사람은 그만큼 더 나은 삶이다. 반대로 돈이 적다면, 외모가 못나다면, 사회적 지위가 낮다면 권력이 약하다면 그 사람은 그만큼 볼품없는 사람이다.(...) 자신이 그려낸 위계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아래에 놓이는 것이 꿈이요, 포부가 된다. 타인의 권리와 복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타적인 인간이라고 인정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깍아내리는 일이 주된 충동이 된다' (p 16)


'현실에서 사람들은 삶의 지배적 속성에 스포츠 경기 모델을 도입하고, 위계에서 위치가 삶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기계적으로 발화하고, 자신도 타인의 발화에 안절부절못한다. 여기에 짜증이 난 사람들은 지배적 속성이 아닌 것 중에 자신에게 맞는 속성을 골라 그 속성의 위계로 사람들을 줄세우고, 뿌듯해하고, 안달한다.'(p. 24)


사람들은 남과 비교하는 것을 좋아한다. 남들보다 위에 서고 싶어하는 욕심, 뒤쳐지지 않으려는 마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이면서 의식적인 자극들 속에서 우리는 매일 타인과 마주한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말했던 책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이 과연 행복인걸까? 그렇다면, 상대적 박탈감이 찾아온다면 그것은 불행인걸까? 이 말이 맞다면, 어쩌면 타인과의 비교는 인간의 본능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진다.


 현대의 우리들은 속물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연봉, 학벌, 직업, 직장, 외모, 아파트, 지역, 자동차, 의류 등 남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넘쳐난다. 아마도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남과 비교하지 말란 말은 머리 밀고 절로 들어가 스님이 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미션이다. 특히, 경쟁을 통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고 상대방을 밟고 올라가는 것이 정의라고 가르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남을 의식하게 되는 듯 하다.


(TV속 광고만 봐도 비교 권장 광고들로 넘쳐난다. 옆집 남편, 처남이 차를 바꿨냐며 부러운 표정을 짓는 남자들의 소곤거림 속에서 새차에서 나오는 당당한 남자의 포스를 보여주는 자동차 광고는 단연 최고의 속물 광고다. (이 광고의 자동차가 최근 큰 문제를 일으켜 국제적 이슈를 일으켰는데 어찌나 쌤통이던지...) 그리고 둥그런 테이블에 앉아 피자를 기다리는 여러명의 아이들 중 자신이 쏘겠다며 엄마 카드를 꺼내는 아이의 표정을 보여주는 광고 역시 속물 of 속물광고다)


'사실 비관의 전제에 더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남들보다 더 잘나거나,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 있어야 인생에 의미가 있다'는 이상한 명제이다. 즉, 타인의 인생이 보다 가치 업시는 것, 의미 없는 것이 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인생이 의미있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p. 47)


이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 중에 자진해서 자신이 속물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어쩌면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는 만큼 박탈감을 가지는 것 역시 속물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남들보다 앞서야지만 인생에 의미가 있다는 착각속에 빠져서 산다. 과정보다는 결과로 자신과 타인을 평가하고 매일 남들의 칭찬을 갈망하며 산다. 나보다 잘난 사람과 마주칠 때면 자기 자신이 초라해보이기에 자리를 피하고 싶어진다.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약점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해도, 살다 보면 너무 지나친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이들은 바로 '이상한 사람들'이다. 이상한 사람들은 인간의 약점 중 몇가지를 도드라져 타인과 양립가능한 통상적인 생활이 쉽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상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타고나거나 학습하는 어떤 성향이 부족하다. 그 성향은 바로 강제적인 압박이 없어도 타인의 권리와 이익, 평가를 고려하여 자신의 행동을 조정하는 성향이다. (...) 예(禮)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의미한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도 낮은 사람에게도,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도 적은 사람에게도, 가장 가깝게 부대끼는 사람에게도 한번 보고 말 사람에게도 언제나 예를 지켜야 한다. 한결같은 예는 바로 상대방이 인간이라는 사실에서 나오는 기본적 존중의 행위다.'


얼마전 내가 이 회사에 경력으로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상한 메일을 하나 받았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내가 메일을 보냈었고, 그 메일의 내용은 같은 회사의 다른 팀에게 샘플 제작을 요청하는 메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하고 그 팀에게 보내는 첫 메일이었다. 내가 보낸 메일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안녕하십니까 ... 업무로 인해서 샘플 제작을 요청드립니다. ... 용도로 요청드리오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요청한 팀의 과장으로부터 이런 메일을 받았다.


'... 님 메일을 보내는데 있어서 조금 무례하신 것 같습니다. 전화 한통 없이 메일로 이렇게 요청하시는 것은 무례하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필요하시면 직접 제작합시요. 전에도 그렇게 하셨으면서... '


난 내 인생에 있어서 무례하다는 말을 이 때 처음 들어봤다. 무례하다니... 특히나 이 메일은 내가 그 팀으로부터 받은 첫 메일이었고, 솔직히 이 업무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지도 못했다. 단지 우리팀의 과장님이 메일을 보내라고 해서 보냈을 뿐, 우리팀과 그 팀간의 업무 관계나 혹여나 사전에 불쾌한 일이 있었다는 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업무라는게 메일을 먼저 보내고, 전화를 걸어서 요청을 할 수도 있는것이고, 전화를 먼저 하고 메일을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다. 군대에서 쓰는 선 보고, 후 조치 같이 선 전화, 후 메일 같은 이런 공식이 업무 메뉴얼 상에 있지도 않을 뿐더러, 누가 정해놓은 것도 아니다.


혹시나 내가 먼저 보낸 메일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건 아닌지, 내가 진짜로 무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예의 없게 메일을 보낸 건지, 회사 문화 자체가 틀린건지 확인하고 싶어 주위 사람에게도 물어봤다. 하지만 아무도 내 메일에는 문제가 없단다. 그렇다면, 나에게 메일을 보낸 그 과장이 우리 팀과 업무를 하면서 뭔가 얹잖은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말 한번 한 적도 없는 나에게 처음부터 무례하다는 표현을 보낸 건 잘못된 것이다.


메일을 받고 바로 그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작은 불씨라도 감추고 싶은 마음에 '메일 보내기 전에 전화를 생략해서 죄송하다며 내가 먼저 숙이고 들어갔다.' 화가 나도 어쩔 수 없다. '이런 것이 회사 생활이고 인생인 것을 어쩌겠는가.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하나하나 모두 반응하며 싸우다보면 나만 피곤해진다.' 이렇게 내 자신을 위로하며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몇일 동안, 아니 몇주동안 출근하기 전 머리 드라이하면서 그 메일 내용이 계속해서 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무례'라는 단어가...


'그는 자신을 평가하는 타인이 없을 때도 타인의 시선을 상상하고 감시받으며 살아간다. 그 결과 그의 인생은 무엇을 하더라도 만족스러지 않다. 자신의 신념에 따른 충동과 의무감을 성취하지 못했다는 패배감은 기분에도 영향을 미치고 마지막으로 감각적 쾌락도 온전히 느끼지 못하게 방해한다. (...) 우리가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삼을 때 문제가 생긴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꿈꾸며 살고 있다. 나 역시 행복을 목표로 살고 있다. 인간이기에 행복해야 한다는 공식 속에서 최종적인 꿈인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주문 속에서 억지로라도 웃는 연습을 한다. (눈은 그대로이고 입꼬리만 올라가가기에 입만 웃는 것 같다며 와이프는 가끔씩 비웃는다.) 그런데 가끔씩 이런 내가 부자연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아닌 것 같고 어색하고 여전히 남들 시선에서 벗어나질 못하며,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는 점점 커지는 느낌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충동을 자주 느낀다. 돈과 행복과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말하면서도 반대로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느슨하게 정의된 '행복'은 허공의 충동과 의무감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어떤 행위이든 행복을 위한다는 번드르르한 목적으로 쉽게 포장된다. 현실에서 '행복'이라는 포장지는 지배적 속성의 위계를 강화한다. 더 높은 곳을 향하거나 욕구를 줄이고 현재에 만족하라고 조언한다.(...) 행복이라는 포장지는 가치와 절연된 채 위계 안에서 자신을 비하하는 비극적인 삶을 대량으로 낳는다.'


''행복'이 가치와 문법과 연결되어 있을 때면 행복한 삶은 긍정적인 내용을 가진다. 그 때 행복은 가치를 경험하고 의미를 채우는 삶에 수반되는 기분 좋은 현상이 된다.(...)행복을 말하지 않고도 우리는 인생에 관해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고통을 완화하고 쾌락을 경험하며, 진리와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나누고, 다른 사람들과 애착과 유대를 형성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p. 116)


행복이란 단어에 묶여 행복이 삶의 의무인 듯 살고 있지는 않은가? 만족, 성취, 기쁨, 희열, 쾌락 등의 단어들을 매개체로 스스로를 최면 속 환각 상태로 몰어놓고 있지는 않은가? 자기 자신을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속으로 밀어넣고 있지는 않은가? 너무 행복하려는 의식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는 않은가? 행복이 의무인건가? 등등.. 행복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해 보았다. 행복하고 싶다. 그런데 너무 행복하려 애쓰지 말자. 행복이 꼭 인생의 목적일 필요는 없다. 어렵다....


어려운 내용을 쉽고 잘 읽히도록 글을 쓴 책이 잘 쓴 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면 이 책은 결코 잘 쓴책이라 보기 어렵다. 모든 문장이 쉽게 이해되지 않아 읽는 내내 너무 고통스러웠다. 중간,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고 집중하지 못해서 이유없이 핸드폰을 자주 들여다보곤 했다. 하지만 부담을 많이 느낄수록 얻는 것도 많아진다 했듯이, 집중, 이해의 어려움 등으로 정독의 부담을 느낄 수록 얻는 일깨움을 주는 내용도 많았다. 그래서 쉽게 이 책을 덮기 어려웠다. 밑줄 그은 문장이 하도 많기에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책은 다 읽었으니 정리하는 건 이정도로 포기하고 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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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배우는 속도가 느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인생의 의미와는 무관하다. 나의 형편에 맞게 남들보다 느린 나의 속도에 맞추어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의 기질은 각기 다르므로, 어떤 일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더라도 나의 기질과 맞지 않고 다른 누군가가 더 뛰어나다는 사실에 좌절할 필요가 없다. 각자가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히 하고 그 결과가 결합되었을 때, 사람들이 누리는 가치는 훨씬 풍부해진다.`

솔직히 난 언어나 글쓰기, 외국어 이런 쪽으로는 전혀 재능이 없다. 재능이 없어서였을까?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상당히 싫어했다. 책이란 것은 그저 따분하고, 지루하고 졸음만 오는 그런... 피하고 싶은 물건이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나는 내가 이런 쪽으로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갖난 아기때부터 티가 팍 났다. 난 다른 아이들보다 말이 한참이나 느렸다. 돌 지나고도 한, 두달 정도? 그래서 우리 할머니는 내가 벙어린줄 아셨단다. 내가 처음 말을 했을 때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아기때 말을 빨리 하는 것과 언어적 기질과의 관계가 있느냐? 아기 때 배우는 속도와 현재 능력과 실제로 연관이 있느냐? 라는 질문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봤을 때 분명히 있다. 왜냐하면 난 말이 느린 대신에 다른 아이들보다 한달 정도 걸음이 빨랐고, 지금은 운동에 좀 재능이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운동이든 남들보다 빨리 배우고 자~알 한다. 폼이 끝내준다.

이런 내가 갑자기 왜 책에, 글쓰기에 빠졌는지... 너무 너무 신기하다. 내가 못하는 것일수록 성취하고 싶은 청개구리식 갈망이였을까? 아님 나도 모르는 이 분야에 약간의 기질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이런 좀 아닌 것 같고...) 나도 눈치채지 못했던 어떠한 계기가 있었떤 것일까? 당최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지금 책을 읽고 있고 글을 쓰고 있다. 잘 쓰고 있는건지... 실력이 늘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다. 남들에게 보여지는게 창피하기도 하면서도 계속 쓰고 싶다.

남들보다 느리고 못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생각을 글로 쓰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의미있는 행동이기에 이런게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팍! 온다. 천천히 조금씩 전진만 하자! 이런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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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2-25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시스패로우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삶의 의미


이번주 동상이몽에서는 수시로 감정이 바뀌는 엄마가 걱정된다는 아들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아들은 엄마가 잘 웃다가도 갑자기 돌변해서 발길질과 짜증을 내고 심지어 욕까지 한다며 엄마가 갱년기가 온듯 하단다. 아들 입장에서의 시선으로 촬영된 영상을 보면 아들 말대로 엄마의 행동에 문제가 있어보였다. 하지만 매번 동상이몽에 나온 사연들이 그렇듯이 상대방의 입장, 즉 엄마의 시선으로 가족들의 생활을 보면 엄마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엄마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이 간다.

엄마는 남자 4명과 같이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남편은 쇼파에 접착제라도 붙여놓은 듯 딱 붙어서는 조선시대 남자들마냥 집안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해 보였다. 부인이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달라는 말에 오늘 일이 너무 힘들었다며 못하겠다 당당히 말한다. 첫째 아들은 핸드폰으로 여자친구와 통화하기 바빠보였다. 심지어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 앞에서 여자친구에게 `솨랑해`란 말을 남발한다. 둘째의 꿈은 랩퍼다. 집에서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는 여느 랩퍼가 되겠다는 친구들과 똑같이 알수없는 말들로 자신만의 언어를 내뱉는다. 마지막 셋째는 특이하게도 스피닝 강사가 꿈이란다. 둘째 못지않는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함께 앞으로 가지도 않는 자전거 위에서 정신없이 춤을 춘다. 이렇게 각자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 살고 있는 4명의 남자들과 한 집에 산다는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다. 여기에 더해 집안 살림은 고스란히 엄마만의 몫이다. 음식, 설거지, 빨래, 청소 등 해도 티도 안나는 집안일을 혼자서 묵묵히 실행한다.

아들이 많은 집에서는 첫째든 막내든 누구 한명은 딸처럼 엄마와 같이 놀고 위로해주고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집에서는 엄마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건내는 사람이 없다. 엄마는 한명이라도 자신을 바라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애타게 남편과 자식들을 불렀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집에서 남자들만 보면 짜증과 분노가 나다가도 자신을 뒤돌아보면 마귀할멈과 같이 변해간다는 걸 스스로 느끼기에 웃어 넘겨 보려 하다가도 다시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남자들과 마주칠 때면 외로움과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한데 모아져 다시금 폭발하는 것이다.

마지막 엄마와의 인터뷰에서 엄마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왜 사는지, 자신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왜 사는지 모르겠어요. 자신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자식들을 위해 사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 그래서 이제는 내 자신을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특히, 일을 할 때면 내가 노력한 만큼 성취감도 생기고, 만족감이 생겨서 너무 좋았어요.`

누구든지 고통, 외로움, 갈등, 즐거움이 없는 삶 등 자신을 힘들게 하는 요소들과 마주칠 때면 우리는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모두가 지금보다 나아지는 상황을 바라게 되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원인들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 원인들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 집의 엄마 역시 사막에 홀로 남아있는 듯한 집 구석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엄마는 스스로 위로해야했고, 스스로 행복을 찾아야 했고,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야했다. 어찌보면 이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자신 삶의 의미있는 일들이지 않을까? 무의미한 삶에서부터 의미있는 삶을 찾기 위한 여정들 하나하나가 모두 가치있는 일이며, 이 가치들이 모여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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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2-21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놀랍네요..결혼하고 이날까지 음식물 쓰레기 ..각종 쓰레기는 와이프 손에 맺겨 본적이 없었습니다....왜 저러고 살지 이해가 안되네...누군가 아내를 도와줄 남편이나 자식을 만들지 못한게 문제군요..이해가 안되네..아내가 ...엄마가...안스럽지 않나?????

제시스패로우 2016-02-21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방송에 나와서도 다른건하겠지만 음식물 쓰레기버리는건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남자의 자존심이라나??ㅎㅎ처음들어봤어요...정말 여자들이.대단하단 생각이 마니드네요..특히 엄마들이요

yureka01 2016-02-21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음식물쓰레기 버린다고 남자 자존심 떨어지는 건 단순 핑게죠. 사랑이 뭔지를 모르는 인간형들의 논리가 저런거니까요....ㅎㅎㅎ 그런데 늙어서 뒷방 늙은이 되고 나서 ㅎ할머니들에게 열라 까임 당하는 늙은 영감이 상상이 가네요.ㄷㄷㄷㄷ보통 나이들어 할아버지 되면 그때 할머니들이 복수하는 이유입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