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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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는 인간_오에 겐자부로

책 고르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그리고 책을 막상 읽어도 도움이 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모든 책이 똑같은 말만 하는 것 같고, 어려운 내용이 나오면 나와 별 상관없다는 듯이 쿨한 척 그냥 넘기기 일수다. 최근 일이 너무 바빠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이건 그냥 핑계일 뿐이다.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왜일까? 이 책이 그 해답을 주리라 생각하며 구입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만큼 내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의 정답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도 들었고, 저자가 책이 가지고 있는 힘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나만이 지닌 책의 네트워크가 있다.`, `이런 작가들의 책을 읽고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다`와 같은 구조도가 살면서 차츰 생성되는 것이죠. 그게 지속적으로 책을 읽는 것일 터인데, 제 나이쯤 되니 제 삶이 다른 무엇보다 이 책들과 함께해왔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 여러분도 중요한 책이라기에 읽었는데, 인생에 별반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겼던 책이 몇 권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것이 빛을 발하게 될 때가 올 테니, 기대하고 계셨으면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두렵고 어려운 책은 두렵다. 그리고 독서를 시작한지 반년밖에 안된 독서 입문자로서 독서의 질보다는 양에 조금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두껍고 어려운 책은 되도록 나중에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얼마전에도 `파우스트`,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 등 어려운 고전을 읽다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다. 아직은 능력이 부족하고 1년에 100권의 책을 목표로 했으니 1년 후에 보자는 핑계를 계속해서 대며 결과적으로 쉬운 책들, 얇은 책들만 찾고 있다. 그러니 책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말들을 하는 것 같고 내 삶에 영향을 못주고 있는 것이다. 책을 제대로 흡수하기 위해 서평도 나름 열심히 쓰고 있지만 안에 좋은 내용만 배껴쓰는 정도이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에게 도움이 됐는지 판단하는 것조차 나에겐 버겁다. 이 책 역시 읽는 내내 집중하기가 어려웠고 페이지수는 얼마 안되지만 한장 한장 쉽게 넘길 수 있는 페이지가 하나도 없다.

`저는 이처럼 독서를 통해 제 인생을 만들어가고 나아가 새로이 길을 내면서, 그 전에 생각했던 과정과 다른 방향으로 (제 소설을 쓰는 일에 이끌려)탈선도 하며 살아왔는데,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그런 경향이 항층 두드러졌습니다. 심지어는 책을 읽을 때도, 또 책을 쓸 때도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가며 제가 나아갈 길을 결정해왔습니다. 가끔씩 탈선하는 일까지 포함해서요. 정녕 제 인생은 책으로 인해 방향이 정해졌음을,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른 지금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이대로 천천히 나아보고자 한다. 저자의 말처럼 지금은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일 들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인생에 도움이 되는 책을 발견하고 빛을 발하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하며 책의 힘을 믿으면서 지금 이대로 내 능력껏 최대한 읽고 독서를 통한 내 인생의 새로운 길들을 만들어가면서 살아가보고자 한다.

`자신의 가장 처음 책들을 발견했다면, 그것들을 하나로 이어 기틀이 되는 평면을 만듭니다. 그 뒤에는 이 책들이 불러들이는 다른 책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죠. `이 책이 불러들이는 사람을 기다린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정말 그런 사람이 스승으로, 친구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런 감정도 있구나` `이렇게 훌륭한 생각도 있구나`하고 책을 통해 느끼는 사이에 신기한 인물들이 나타납니다. (..) 책을 읽음으로써 책을 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한 인간이 생각하는 건 어떻게 작용한다는 것인지 알 수 있어요. 이를 통해 사람은 발견을 합니다. 지금 내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는지 깨닫고, 결국은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는 것이 가능해지지요.`

책 속의 인물을 통해 나 자신과 만나는 것! 소설을 읽다보면 많은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자유를 찾아 떠나는 인물로써 나에게 자유의 참된 의미를 보여준 인물이었고, 오베라는 남자에서 오베는 까칠하지만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온 모습이 보기 좋았다. 소설뿐만 아니라 다른 인문학 책을 보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느끼고 공유할 수 있었다. 오에 겐자부로가 이 책을 통해 보여준 감성(?), 영감만큼은 아니지만 나 나름대로 작품 속 인물들을 만나고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면 나만의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작가의 말대로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는 것이 가능해지는 듯 싶다.

오에 겐자부로는 많은 책들을 읽었겠지만 이 책에서 소개해주는 책은 몇권 안된다. 자신이 쓴 소설들을 말하면서 그 소설들에 영향을 끼친 책들 위주로 소개해주는 정도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단테의 신곡, 블레이크 정도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을 어떻게 읽었는지 어떻게 이해했으며 그로 인해 받은 영감으로 자신의 소설을 어떻게 썼는지 말해준다. 오야 겐자부로는 글 쓰는 능력이 선천적으로 타고난게 아니라 후천적으로 노력하는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는 평생에 걸쳐 읽고자 하는 고전을 젊은 시절에 발견해두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건 자신 있게 드리는 말씀인데, 정신 차리고 지속적으로 책을 읽어나가면,저절로 고전이 한 권, 두 권, 그것도 인생에서 아주 소중한 무언가가 될 작품이 여러분에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그건 정말 신기할 정도예요. 어렵사리 만난 고전이 손에서 멀어져 갈 때도 있습니다. (..) 하지만 어떤 기회가 생겨 그 책이 다시 제게 돌아와요. 책을 읽는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의 관계까 무척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여겨지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 고전은 다양한 형태로 몇 번이고 우리에게 새롭고 심오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어요. 특히 노년에 이르러 그것이 주는 풍부한 경험을 생각하면, 저는 젊은 여러분에게 그 때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고전을 제대로 만들어두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최근 고전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책들이 이야기하는 걸 볼 수 있다. 고전은 시간과 싸워 이겨냈으며 3백 년, 5백년 을 살아남았고, 앞으로 더 살아남을 것이다. 고전은 인간의 근본적인 무엇가를 건드리기 때문이고 `여덟단어`의 박웅현 대표도 말하는데 그 근본적인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오에 겐자부로도 다양한 형태로 몇 번이고 우리에게 새롭고 심어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다고 말하면서 젊을 때 자신의 고전을 제대로 만들어놓으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새롭고 심오한 감정, 풍부한 경험을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이걸 느껴보기 위해서라도 고전을 열심히 읽어보려고 한다. (파우스트, 카마라조프가의 형제들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했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지만 한편으로는 소설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주인공은 당연 오야 겐자부로다. 오야 겐자부로의 독서에 대한 인생을 담은 스토리라 할까? 책과 함께 한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

처음에 이야기했지만 이 책은 한장 한장 넘기기 너무 힘들다. 하지만 오야 겐자부로가 재독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서 말한 것처럼 다시 이 책을 찾고 싶어질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 읽은 걸로 봐서는 저자의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50%도 이해를 못한 것 같아서이다. 하지만 삶을 위한 독서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이해를 많이 못했지만 다시 보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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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언어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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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언어_댄 주레프스키

소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이다. 음식과 인문합의 조합이라... 음식이 사람을 살릴수도, 행복하게 만들수도, 우울함을 달래줄 수도 있으니 인간의 학문이라 할 수 있는 인문학과는 어울리는 주제이긴 하다. 음식이라는 것이 살고자 먹는 목적도 있지만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진 현대에 와서는 생존보다는 더 맛있는 음식을 갈구하고 재미나고 신비한 요리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요리를 미술과 같은 창작의 세계로 만들고 있다. 특히 한국의 최근 경향을 보자면 심심할 때마다 TV의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누르면 여지없이 요리 프로그램이 방송된다. 그리고는 보고자 하는 프로그램이 없으면 맛깔나게 음식을 요리하는 쉐프들과 그 음식을 먹는 연예인들의 행복해하는 표정을 (정작 우리는 마냥 부럽기만 하다) TV를 통해 뚫어지게 쳐다 보고있을 때가 많다. 대리만족이랄까.....TV 뿐만 아니라 SNS 상에서도 푸드 포르노로 넘쳐나고 있는 걸 보면 음식의 시대라 불릴만한 세상이다.

이런 음식의 시대에 맞춰 언어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스탠퍼드 대학의 괴짜 언어학 교수 댄 주래프스키 교수가 음식에 관한 책을 냈다. 음악, 스포츠, 책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지만 유달리 요리에는 애정이 가지 않았던 나이기에(아버지 영향이 큰 것 같다.) 관심을 가져보고자 이 책을 샀다. 요리를 해보고자 하는 목적보다는 내가 먹는 음식들이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음식의 언어를 파헤침으로써 인류의 역사와 세계의 문화, 사회 경제간의 충돌을 들여다 보고 인간의 심리, 행동, 욕망의 근원을 파헤친다는 작가의 말처럼 음식을 통해 인간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런데 내용이 너무 산만하고 어렵다. 동양인의 문화와는 많은 차이가 있어 읽는데 힘들다. 그래서 100페이지만 읽다 지쳐 덮었다. 책의 중간중간 재미난 이야기들 예를 들어, `섹스`를 연상시키는 형용사를 썼을 때 더욱 비싸지는 음식들 등과 같이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있어 조금 더 들쳐보았지만 역시나 우리 동양인의 시선에서는 어려운 내용 투성이다. 쉐프들과 같이 음식에 어느정도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일반인들은 음식 이름 하나하나 익숙하지 않으니 집중하기 너무 힘들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 추천해고픈 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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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의 지혜 - 삶의 갈림길에서 읽는 신심명 강의
김기태 지음 / 판미동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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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의 지혜_김기태


우리 모두는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들 행복해지기 위해서 많은 노력들을 한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자 억지로 웃으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취미생활을 통해 힘든 마음을 달래보려 노력하기도 하고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사람들과 음주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물론 나처럼 독서와 함께 하루하루 내면의 성장을 통해 행복을 찾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매일 행복한 감정을 가질수는 없는 법! 우리 인간은 기쁨, 흥분, 만족, 쾌감 등과 같이 일반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감정들을 느끼기도 하지만 슬픔, 좌절감, 부끄러움, 울분, 짜증과 같이 (이것 역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여기는) 부정적인 마음도 느낀다. 그리고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부정적인 마음보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항상 가지고 싶을 것이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이런 기분만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음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이 사라지고 참된 평화와 자유가 가득하게 되면 영원한 행복을 얻게 된다.'는 스님들의 말씀처럼 사람들은 힘든 삶 속에서도 계속해서 영원한 행복을 얻고자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행복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그리고 특별한 것도 아니며 우리가 그것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하거나 애쓸 필요가 없다. 이유는 행복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속에 온전히 드라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행복을 찾고자 노력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가려서 택하는'마음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안을 '둘'로 나누어 놓고는 하나는 택하고 다른 하나는 버리려 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 될 것을 우리는 그것을 못 견뎌 하며 어떻게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달아나고 극복하려고만 한다.'


이렇게만 보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다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보면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편안함이나 당당함, 기쁨, 즐거움만을 자기 안에 담아 두고 싶어한다. 그러나 바로 늘 자신을 '가려서 택하는' 마음 때문에 오히려 우리의 삶은 무한히 괴롭고 힘들게 된다. 누군가가 몹시도 미운가. 그 때문에 마음이 무척 힘들고 괴로운가. 어떻게든 그 마음을 해결하여 더 이상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되거나 용서하고 싶은가. 그래서 진정으로 마음의 평화를 다시 얻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를 온전히 미원하라.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마음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그 미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허용하라. 먼저 자신 안에서 올라오는 그 미움을 깊이 존중해 줘라. 그리하여 미움과 하나가 되고 미움 자체가 되어 보라. 바로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경로를 통하여 마음의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 미움은 온데간데 없고 사라지고 아득하게만 여겼던 사랑과 용서가 저절로 자신 안에 가득히 채워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몇일 전 이 책을 보다가 잠깐 TV를 켰는데 애니메이션 '쿵푸팬더2'가 방영되었다. 몇년 전 처음 우리나라 극장에서 상영했을 때 봤던 영화였는데 다시 봐도 쿵푸팬더의 귀여움은 여전했다. 애니메이션답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데 주인공 푸가 마지막에 터득한 건 현란한 무술도 아니고 특수한 능력이 생긴것도 아니었다. 'INNER PEACE' 바로 내면의 평화였다. '내면의 평화를 찾으니 악당도 물리칠 수 있다'라 조금 웃길 수도 잇겠지만, 이 책을 읽는 도중에 영화를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았다. 

부모가 자신을 버린 줄 알고 잠깐 원망하는 마음을 가졌던 푸였지만 이 펜더는 원망하는 마음을 자신을 키워준 부모의 감사함으로 승화(?)시켜 자신이 지금까지 행복하게 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로인해 어린시절의 불행을 받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의 행복을 느꼈던 것이다. 즉 이 책에서 말하는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내면의 평화가 찾아오리라.'는 말과 비슷하지 않은가. 'INNER PEACE'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모습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더 나은 내가 되고자 매일 자기계발을 하며 치열하게 살고 있다. 더 나은 미래, 더 나은 내 자신을 꿈꾸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바꿔 말하면 현재 자신의 모습을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말이된다. 즉 지금의 나는 내 자신이 봤을 때 맘에 안드는 모습만 보이니 바꾸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김기태 교수는 지금 자신이 모습, 초라한 내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게으르다 생각하고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한번 확 게을러보라는 것이다. 모든 노력을 정지하고, 수고와 몸부림을 통하여 해방을 얻으려는 그 마음을 스스로 놓아 버리고, 단 한번만이라도 게으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진정 게을러 보라는 말이다. 그리하면 영원토록 삶 속에서 게으름을 보지 않게 될거라고 말한다.


이 글을 봤을 때, 문득 떠오른 것이 있다면 '키높이 깔창'이다. 끼높이 깔창은 키가 커보이기 위해 신발 안에 넣는 깔창인데 이거에 한번 빠지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신발에 이 키높이 깔창을 넣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식당이라도 가는 날이면 불안해 미친다. '너 원래 키가 이정도야?', '더 크지 않았나? 크게 봤는데'라는 말을 들을까봐 신발을 벗자마자 바로 앉으려 한다. 키가 커질 수도 없는데 키를 커 보이게 만들려니 마음이 힘든 것이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의 나, 키높이 깔창을 뺀, 키 작은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한결 마음이 편하다. 더욱이 옷도 더 자연스러워지고 멋있게 입을 수 있다. 키 높이 깔창만 없애면 키 좀 작으면 어때.. 멋있는 사람이 되자'라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저자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겪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야기가 재미있다기 보다는 모든 이야기가 내 이야기같고 한번씩은 고민해봄직한 일상사와 또 안쓰럽고 가슴아픈 사연들이라 자꾸 눈이 간다. 그리고 이 소소한 이야기 속의 모든 내용이 '가려서 택하는' 마음을 버리고 모든 마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든 마음을 받아드리고 매 순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드리라고 말한다. 계속 이 말의 반복이다 보니 약간은 지겨울 수 있다. 짜증이 날 수도 있고 무언가 세뇌받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끝까지 읽다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얘기했듯이 세뇌당하는 걸수도 있지만, 세뇌당하면 어떠하랴. 내 마음이 편하면 됐지!


아침 6시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할때면 매일매일이 고통이다. 노예와 같은 마음으로 억지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막노동판에 가는 느낌이다. 사무실에 앉아 편하게 일은 하지만 이상하게 몸이 힘들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런 힘든 생활을 받아들이라 말한다. 저항하지 말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그런데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니 (몇일 안됐지만..) 약간의 편안함을 느꼈다. 내가 찾는 마음의 평화는 '지금' 나의 이 힘듦 속에 있다니... 이상한 말 같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그냥 힘들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일을 하니 약간은 치유를 받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려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 일이 없을 때는 일이 없음을 즐겨라. 언제 또 이런 즐거움이 있으랴. 일이 많을 때는 또 많은 만큼 일을 즐겨라. 언제 이런 즐거움이 있으랴. 돈이 없어서 힘들 때는 또 돈없이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즐겨라. 언제는 내 인셍이 돈이 많았던가.. 매 순간 새로운 인생일 펼쳐지듯 즐기면서 살자!


그리고 집착하면서 살지 않으려 한다. 집착! 어떤 것은 붙잡고서 놓치 않으려 하고 어떤 것은 멀리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집착인데, 그런 노력과 수고를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보다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법도를 잃는다.


성공! 인정!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노력(이라고 착각)을 통해 얻은 것들(자신의 성공한 모습, 돈, 명예, 권력 등)을 놓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을 집착이라 말할 수 있다. 놓치고 싶지 않은 맘을 이해못하는 것도, 사람으로서 당연한 마음일 수도 있지만 이런 지착으로 인해 자기 자신, 영혼 육체 모두가 혹사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부신, 자존심이라고 하는 것은 보수적 마인드를 만들고 그로 인해 행복할 수 있는 변화된 마음은 얻지 못할 수 있다. 자부심, 자존심이 쎈 사람들 대부분은 미간에 내천(川)이 그려져 있는 걸 보면 행복보다는 집착에 목 매어 있는 사람들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들이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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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교과서 공자 - 인, 세상을 구원할 따뜻한 사랑 플라톤아카데미 인생교과서 시리즈 3
신정근.이기동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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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교과서 공자_신정근+이기동


독서를 하면서 언젠가는 공자의 '논어' 필사를 계획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그 목표에는 변함없지만 이런 저런 핑계들과 다른 읽고 싶은 책들이 많다보니 실천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 아직도 공자, 맹자 등의 제자백가라 불리는 성인들의 책들을 보면 읽어야지 하면서도 많은 한자들과 이해하기 힘든 깊은 내용들에 매번 책을 덮어버린다. '조금만 더 인문학 내공을 키운다음에 읽자'라는 핑계와 함께...


그런데 이번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현자 19명의 삶과 철학을 풀어낸 19권의 인생교과서 시리즈를 만들었다. 아직 예수(1권), 부처(2권), 공자(3권), 무함마드(4권) 뿐이지만 앞으로도 호메로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장자, 이황, 간디, 데카르트, 니체, 칸트, 헤겔, 미켈란젤로, 베토벤, 톨스토이, 아이슈타인 편으로 계속 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교과서라는 말이 학창시절 시험을 위한 책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생을 위한 교과서라고 하니 앞으로 다른 현인들의 책들도 구입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하게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중복된 내용이 너무 많아 약간 실망했다. 그리고 책의 두께는 꽤 되지만 다른 공자의 책들과 달리 쉽게쉽게 읽히는 편이다.(공자 책을 제대로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 책보다는 훨씬 어려울것 같다는 예상을 해본다.) 그래서 쉽게 읽히는 만큼 남는 것도 다른 책들에 비해 부족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같이 인문학 초보자들에게는 이런 책도 입문용으로 나름 괜찮을 것 같다. 언젠가는 필사를 준비하기 위해 읽는다는 핑계와 함께...


이 책은 1부 삶과 죽음/2부 나와 우리/3부 생각과 행동/4부 도덕과 가치라는 주제로 총 4부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공자에게 묻고 싶은 29개의 질문에 대해 신정근 교수님, 이기동 교수님이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현자들의 대답을 그냥 듣는것만이 아닌 현자들의 질문과 답을 사숙하신 다음, 스스로에게 인생의 짊누을 던지는 독자가 되길 바라는데 있다고 말한다.


먼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인지, 그리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말해준다.


'배우고 때맞게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공자는 배움은 행복 그 자체라고 말한다. 참다운 행복은 늙어 죽는 길에서 벗어날 때 찾아온다. 공자가 말하는 배움은 참다운 행복을 찾는 길이다. 그 길은 자기를 바로잡는데서부터 시작된다. 자기를 바로잡는 것, 그것이 수신이다. 그리고 가장 이상적인 삶은 바로 도에 따른 삶이다. 즉 경쟁하지 말고 배움의 순수함을 쫓아 보아라! 그리고 배움을 몸소 실천하라! 함부로 안다 말하지 말고 겸손하라! 알고 있다고 뽐내지 말아라. 모두 의미 없는 짓이다. 행복은 올바르게 사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호학은 다른 것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 그 자체로서 무한한 즐거움을 낳은 것이다.


공자는 행복이 꿈꾸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았따. 사람이 도에 따른 삶의 방향을 살기로 결정했으며, 도와 '지금의 나'만이 아니라 '도'와 '지금 이곳'사이의 간격을 줄여나가야 하며, 행복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찾아서 만나야 한다. 행복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가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군자로서의 삶을 중요시한다. 군자란 자신의 이익보다는 모두의 이익을 생각하고 경쟁하지 않으며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주위에는 군자가 많으며 이런 사람들을 룰모델로 삼아 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군자는 인仁과 예禮로서 사회를 다스려야 하며, 사회를 다스리는 지도자는 군자와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는 제 자신이 올바로 서는것이다. 지도자가 올바름으로 자신을 끌어간다면 도대체 누가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공자가 생각하기에 정치 지도자는 원칙을 제시하고 일반 인민들이 그것을 따르도록 요구한다. 정치 지도자는 원칙을 제시만 할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그 원칙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만약 지도자가 원칙을 제시만 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그 스스로 다른사람에게 지키도록 요구할 힘을 잃게 된다.


공자는 사람의 말과 행동에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바른말과 바른 행동은 바른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쉽게 교만해지거나 편견과 탐욕에 빠져 세상을 바라볼때가 많다. 이런 차원에서 공자는 사람의 본심을 회복하기 위해 학문과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말에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 담겨 있는 마음의 의미로 판단할 때 비로소 말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그 말에 담겨 있는 마음이 비뚤어진 마음이라면, 아무리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다 하더라도, 그 말은 삐뚤어진 말이다. 비뚤어지지 않은 마음은 오직 바른 마음뿐이므로, 바른 마음에서 나온 말만이 바른말이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는 사람은 욕심을 채우든 그렇지 못하든 고통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오직 행복은 욕심을 지우려고 노력하는 데서 찾아온다. 욕심을 지우면 고통도 지워진다. 고통이 커서 견디기 어려울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욕심을 지우면 된다.


읽어도 읽어도 그 말이 그 말같고, 전에 했던 내용이 반복해서 계속 나오는 것 같고, 앞에도 얘기했었지만 읽기에는 쉬운 책이지만, 남는 건 별로 없다. 솔직히 이 책의 각 장에서 소개해주는 내용만 읽어도 될 듯 싶다. 질문이 29개나 되지만 대답은 반복의 연속이다. 다른 현자의 책들도 이런 식이면 각 하루씩 시간을 들여 핵심만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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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그대에게 -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시를 잊은 그대에게_정재찬


시를 읽은 적이 언제였던가... 까마득하다. 이 책 부제목이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처럼 나 역시 공대생이다. 시를 읽고자 이 책을 고랐던 건 아니다. 독서모임에서 모임원 중 한명이 이 책의 저자인 정재찬 교수가 자신의 은사라며 모임에 이 책을 추천해서 읽은거다. 어디선가 '시는 창의력의 보고다'라는 말을 했던 걸 본적이 있다. 여기서 '덧붙여 시는 감성을 살리는 도구일 뿐 아니라 상상력의 보고인데 이를 많은 사람들이 외면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라는 말도 했었다. 나 역시 외면했던 사람들 중 한명인데 시를 읽어보자고 생각만 했었지 정작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던 찰라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좋은 제목과 나에게 딱 맞는 부제목으로 지어진 시에 대한 감성을 일깨워 주는 책을 읽게 되서 기분이 좋았다.


너무나 주옥같은 시들이 많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시는 맨 처음장에서 나오는 신경림 작가의 '갈대'라는 시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흐느껴 울어 본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몸이 흔들린다. 갈대의 울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폭풍 같은 통곡이 아니라 벌판에 나부끼는 바람처럼 흐느낌의 형태로 지속된다. 이때 '조용한 울음'은 남이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조용한 정도가 아니라 때로는 너무 조용해서 자기 자신도 자기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용한 울음이다. 실제로 우리는 삶이 비애라는 사실을 자주 잊고 산다. 그러나 '어느 밤'이 찾아오면, 비로소 고요한 침잠과 성찰의 시간이 오면, 그때야 깨닫게 된다. 산다는 것은 슬픈 것이다. 힘든 것이다. 허무한 것이다.


시란 분야는 파고 들면 파고들수록 점점 빠져드는 것 같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가도 두번, 세번 읽다보면 시의 분위기에 압도됨을 느낄 수 있다. 신경림의 '갈대'역시 이 책의 저자가 말한대로 조용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시를 읽고 나서 왠지 모르게 가슴을 파고드는 느낌이 있다면 그것을 나직이 흐느낄 때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그것과 비교해 보라. 그렇게 본다면 진정 시인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갈대의 흔들림, 그 외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흐느끼는 듯한 소리와 느낌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이런게 시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음은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추천해준 모임원이 질문한 내용에 시를 통해 나의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한 경험을 느꼈다. 질문은 이랬다. '혹시 이 책에서 나온 시를 읽다가 갑자기 잊고 있던 옛 기억이 떠오르진 않았는지...'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다.


'별이 빛나고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루카치 [소설의 이론]중에서


소개해준 것은 시는 아니지만 요르단 사막 위에서 별을 봤던 옛기억이 떠올랐다. 별을 제대로 보려면 사막위에서 봐라. 라는 말을 들어본적이 있지만, 사막 위에 누워서 별을 봐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100%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진정한 별은 사막위에서 보는 별이다. 그리고 그 어떤 야경을 따라올 수 없는 야경쇼다. 남산 타워에서 본 서울의 야경이나 파리에서 바토무슈를 타고 반짝 반짝 빛나는 에펠탑도 사막 위의 별 앞에서는 불장난일 뿐이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진정 별을 바라보고 길을 찾아갔던 사람들은 행복했을 거라는 거다. 아무리 깜깜해도 별빛이 내가 가야할 길을 인도해주고, 아늑함을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리고 저자가 말한 것처럼 어둠이 밝음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때론 밝음이 어둠을 가리는 것이란 생각을 깊이 공감했다.


다음은 아버지에 대한 시다.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으로 특히 아들로서 산과 같은 존재다.

어렷을 적에는 우러러 봤던 산이며 굳건했으며 태풍이 와도 넘어지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언젠가는 넘어서고 싶은 산이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커서 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다보면 산이 그렇게 높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산이 낮아진건지 내가 큰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렸을 적 아버지란 존재가 산처럼 크진 않았을 수도 있다. 냉정하게 말해, 세상의 모든 부모가 다 훌륭하고 다 고마운 존재는 아니다. 소월(아래 시의 작가)의 아버지처럼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모 구실을 못한 경우는 놔두더라도, 정말 부모답지 않은 아버지도 세상엔 적지 않다.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부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새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엾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 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 신령림 [아버지의 그늘] -


아버지를 반면교사로서 삼아 다르게 살았다고 하지만 막상 거울을 봤을 때 내 모습이 아닌 아버지가 보였다고 한다. 주변을 보면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노라 하던 친구들이 많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 해도 결국 닮고 만다. 닮지 않는데 성공했으나 그 역시 성공이 아닌 삶임을 인정하는 사람, 스스로는 성공이라 생각했지만 이번엔 그의 자식이 또 그렇게 살지는 않겠노라며 곁을 떠나간 경우 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아버지를 닮고 마는 것도 이 시의 제목처럼 아버지의 그늘 탓이지만, 아버지에게 벗어나려 한 것도 결국 아버지의 그늘 탓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살면서 억울하고 답답하고 허무함을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작가는 이 시를 추천해주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및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 천상병, [귀천] -


인생에 있어서 간직하고픈 시가 있었냐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 시를 품고 살고 싶다 말했다.

이 시인은 불행한 인생을 살았다.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되면서 중앙정보부에서 석달, 교도소에서 석 달씩 갇힌 채 모진 고문을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그의 심신은 이미 정상 상태가 아니었다. 고문의 휴유증으로 인해 그의 정신은 날로 황폐해져 과대망상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시인은 노래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하긴 '죽다'의 높임말이 '돌아가다'인 것을 보면 예부터 죽음이란 원래 있던 자리라 돌아감을 의미했나 보다. 죽는다는 것이 썩어빠진 육체로부터 영혼이 자유롭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거라 주장했던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돌아가는 곳이 '하늘'이라면, 죽음도 나름 괜찮을 성싶어지지 않을까? 귀천이란 말 그대로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로 돌아간다는 것은 자신이 본래 하늘에서 왔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만 성립되는 말이다. 그러니 이는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아예 성립조차 될 수 없는 말이다.


불행한 사실은 현실을 살기 위해서는 육체도 영혼도 모두 고생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악다구니같이 변해야만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인간의 세계는 삶을 위한 투쟁과 갈등이 벌어지는 장소다. 이러다 보니 돈, 명예, 권력 등과 같은 세속적 조건들이 인생에 있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육망의 동물인 인간으로서 당연할 수밖에 없다. 세속적 가치를 획득하면 행복함을 느끼고, 그렇지 않으면 불행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가치 속에서 바라보면 '죽음'은 정말이지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이 시의 마지막처럼 인생을 잠시 놀다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어떨까? 시인은 그래서 인생을 소풍 나온다고 생각하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자기 삶의 근원은 다른 곳에 존재하고 자신은 단지 이 세상에 잠시 놀러 나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승에서의 삶은 소풍이기에 아름답고, 소풍에서 돌아가는 천상은 천상이기에 아름다울 터이니, 우리의 생을 이승과 저승의 연속성으로 이해할 경우, 인생 전체가 진정 아름답지 아니하겠는가? 그러려면 무엇보다 우리가 삶을 소풍처럼 살아야 한다. 따라서, 죽는 것 역시 기분 좋은 일로 받아들일만 하지 않을까?

 

시는 이렇게 읽어야된다는 것을 느꼈다. 학창 시절에 수험 공부를 위해 읽었던 시는 지금 머릿속에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시를 이해하기 위한 인생의 경험도 지식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이해를 하기 위해 선생님들이 수험 공부를 위한 설명이 아닌 진정한 시의 의미를 알려주는 수업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경험이 필요하다. 만약 정재찬 교수님의 시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면 책 안의 시 중 반 이상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가 진정한 상상력의 보고라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래서 가끔 시를 몇편 써보자는 나름의 다짐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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