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미술관 - 미술관 담장을 넘어 전하는 열다섯 개 그림 이야기
이소라 지음 / 혜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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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내게 조금 낯설다. 개인적으로 미술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아는 것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다.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면 아마 미술은 내게 엄청 친숙했을테고, 아는 것이 많았다면 어디서든 미술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을 테니까. 얕디 얕게 알고 있는 것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들은 주워들은 상식선에서다. 그래서 미술 관련 책들이 나오면 일단 눈이 갔다. 대충 훑어보고 마음에 들면 한 번쯤 읽어보려고. 왜 그런 것 있지 않나. 내가 모르는 부분에 대한 지적 호기심. 하지만 문외한이라 해도 될 정도로 미술엔 기초도 없으니 "아주 읽기 쉬운 책이 눈에 띄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딱 발견했다. <한밤의 미술관>이라는 책을 말이다.

사실 내가 막 뒤져가며 열의있게 발견한 것은 아니고, 온라인 서점의 메인화면에서 봤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박스에 소개되어 있었다. 미술에 대한 이야기에 <한밤의 미술관>이라는 제목도 마음에 들었고, 책의 색깔이나 책의 방향성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직접 받아본 책은 표지부터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마음에 들었다.

<한밤의 미술관>은 나처럼 미술 초심자들이 봐도 좋을만큼 쉬운 책이다. 어떤 느낌이냐면, 마치 미술을 공부한 사촌언니가 미술 초심자에게 이것저것 이야기해주는 느낌. 하나의 작품을 놓고 작가가 이야기해주고 싶은 방향대로 글을 썼다고 보면 된다. (근데 그 글이 잘 읽히고 흥미가 동한다!) 아무래도 그림의 화풍이나 복잡한 기법 등 어려운 내용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데, 그땐 깊이 들어가지 않고 스르륵 흘려보냈다. 초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만큼(물론 초등학생 중에 이 책을 좋아할 아이들이 많을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읽힌다. 

그러다 보니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 중 대부분은 화가에 대한 이야기다. 화가의 성장 배경이라든가, 작품을 그릴 당시의 상황이라든가, 화가에게 영향을 끼친 스승이라든가, 비슷한 시기에 같은 화가가 그린 다른 그림이라든가. <한밤의 미술관>의 좋은 점은 하나의 작품을 이야기한다고 그 작품에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여러 갈래로 발전시켜 그에 알맞은 다른 작품들도 소개해준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연관지어 어떤 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 분야에 어느정도 통달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오래 공부하지 않고도 언뜻 흉내는 낼 수 있겠으나 흉내만 내는 비교는 그 깊이를 당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밤의 미술관>은 비교들도 훌륭하다.

책 속에 등장한 15개의 주제 작품들 중 내가 아는 작품은 어느 누구에게 물어도 알 법한 드가와 고흐의 작품 뿐이었다. 에곤 실레는 영화제목으로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나고, 다른 이들은 잘 모르겠다. 그러니 내게 익숙한 드가의 그림 이야기를 해 보자. 드가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집안의 기대에 맞춰 법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앵그르라는 프랑스 거장을 만나 조언을 듣게 되면서 진로를 완전히 뒤바꾸어 버린다. "자네의 인생과 추억에서 날아오르는 이미지를 그려보게." 드가는 움직이는 것에 사로잡혀 발레리나를 많이 그렸다. 또한 시력을 잃게 된 말년에는 손으로 더듬거리며 조각을 했다. 하지만 드가는 사춘기 시절 겪었던 어머니의 외도로 '여성혐오자'라는, 그림만 보면 언뜻 이해할 수 없는 별명도 갖고 있다. 이에 작가는 '어머니라는 절대적 존재를 계속 사랑할 수도 끝끝내 미워할 수도 없었던, 자기부정과 모순으로 점철된 유년기를 반복적으로 살아내고 있는, 가엾은 어른이었을 뿐이다'라며 드가의 비하인드를 이야기한다.

드가의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짧게 요약한 것인데, 어떤가. 이 글만 읽어봐도 되게 흥미롭지 않은가? 작가는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들을 찾아 작품과 잘 엮어냈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 한 줄을 마지막에 적기도 한다. <한밤의 미술관>은 이런 이야기들이 15개가 실려 있다. 한꺼번에 후루룩 몰아봐도 상관은 없지만, 시간 날 때마다 하나의 이야기씩 만나기를 권한다. 하나의 이야기 속 그림들을 느낄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한밤의 미술관>의 또 다른 좋은 점은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작품이 있는 미술관의 이야기도 덧붙여져 있다는 점이었다. 미술관을 소개할 때는 앞서 작품을 소개할 때와는 다른 톤으로 설명해준다. 이때는 사촌언니의 느낌보다는 미술관 도슨트의 느낌이 강하다. "이 미술관에는 이런 작품이 있구요,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같은. 글이 확연하게 둘로 나뉘어서 그런지 화가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볼 때는 흥미로운 눈빛을 반짝였다면, 미술관에 관한 이야기를 볼 때는 뭔가 뒷 이야기와 지식을 함께 전달받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의 '우리동네 미술관' 코너는, 한번쯤은 꼭 가봐야지 할만한 우리나라의 미술관들을 소개해뒀다. 물론 작가 추천이다. 어디부터 가야할지 망설이는 초보 관람자에게 좋은 팁이 될 듯하다.

작가는 한밤 침대 위에서 책으로나마 짧게 만나는 미술관이길, 언젠가는 한번쯤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을 갖길 바라면서 책 제목을 <한밤의 미술관>으로 지었던 듯 하다. 작가의 말에 있는 영화 <<굿 윌 헌팅>>의 대사 "너는 미술에 관해 물으면 뭐든 답할 수 있을 거야. 미켈란젤로를 예로 들어볼까. 넌 그의 걸작, 정치적 야심, 성적 취향까지도 줄줄 읊어대겠지.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의 냄새가 어떤지는 모를 거야. 직접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볼 때 벅차오르는 감동도. 넌 한 번도 그 성당의 아름다운 천장화를 본 적이 없을 테니까."처럼, 그리고 작가의 바람처럼, 책으로만 작품을 만나는 것 보다는 그곳의 공기를 함께 느껴보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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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숨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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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를 처음 읽을 때만 해도,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무거울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었다. '안정적인 가정생활, 완벽한 커리어를 가진 여자 무용수가 안무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라고 책소개를 내마음대로 각색해 대충 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가볍게 책을 펼쳤지만, 책 한 권을 모두 읽는데는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불온한 숨>은 앞에서부터 글을 이끌어가는 여자 주인공 제인과 6장과 7장에서 비밀을 1인칭 시점으로 풀이하는 남자 주인공 텐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맥스와 마리에 관한 이야기다. 텐의 시점에서 그동안의 사건들을 정리하기 전까지,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혼란스러운 제인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에 무언가가 콱 막힌 듯 개운하지 않았다. 제인은 겉으로는 완벽했지만 속은 곪을대로 곪아 무너지기 직전의 사람이었으니까. "이 보잘것없는 밀실에 몸을 밀어넣을 때에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리고 하루 종일 억눌렸던 감각들이 깨어나는 듯했다. 피부로 숨을 쉬는 양서류들처럼 나는 온종잉 햇빛 아래 피부가 바짝 말라 숨을 쉬지 못하다가 어두운 저수지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느낌이었다. 쩍쩍 갈라지던 피부가 미지근한 물에 젖으며 다시 미끈거리기 시작했다.(31쪽)" 집에서조차 아무도 들이지 않는 밀실같은 방 한 칸에서만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숨을 쉬는 공간이기도 했다. 

제인의 삶은 '떠밀림'과 '발버둥'의 연속이었다. 한국의 보육원에서 영국 여자에게 선택되어 싱가포르로 오게 된 후, 그녀의 죽은 딸 '제인'과 똑같은 삶을 강요받았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제인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만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수석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정석대로의 춤을 완벽히 춰 내는 촉망받는 발레리나였으나, 그녀는 속으로 항상 불안했다. 백조의 발버둥처럼 그녀는 최고의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다그쳤다. 그러다 제인은 맥스의 춤을 보게 됐다. "맥스의 동작들은 기괴해 보였다. 이제껏 내가 익혀왔던 규칙과 규율들로부터 조금씩 비켜나가고 있는 동작들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긴장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그의 동작들이 나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나는 그의 기묘한 춤에 이끌려 그의 손끝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91쪽)" 규율과 규칙으로 얽매여있던 제인에게 맥스는 신선한 바람 혹은 동경으로 다가왔다.

제인과 맥스의 강사였던 마리는 맥스의 자유분방함을 눈여겨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숲에서 자유의 춤을 추었다. 그리고 몰래 숨어 그들을 지켜보던 제인이 그 춤에 합류하게 됐다. 셋 만의 비밀이었던 춤이 세상에 밝혀지게 되고,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제인은 거짓말을 했고, 사건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스포가 될 수 있으니 많이 생략한다.) 되돌아보면 결국 제인에게는 자신의 답답함을 알아주는 맥스와 마리와 함께 있는 시간이 삶의 유일한 숨 쉴 구멍이었을 지도 모른다. "너는 늘 완벽에 가깝게 춤을 추고 있었지만 누군가 뜬 주물에 갇혀 있는 것만 같았지. 나는 이상하게도 너의 숨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어. 너는 숨을 쉬고 싶었을 거야. 너를 결박하고 있는 주물 같은 몸을 깨고 나와 너만의 춤을 추고 싶었을 거야. (139쪽)" 이렇게나 자신을 꿰뚫어보고 같이 호흡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룬 것을 놓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로 상황을 외면한다. 그리고 여전히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현재에까지 이르렀다.

제인은 자신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안무가 텐을 만나게 되지만, 그는 뜻밖에도 자신이 그렇게나 숨기고 싶어했던 일을 헤집는다. 손등부터 이어지는 기다란 흉터도 그렇고, 숨기고픈 과거를 마음대로 꺼내놓는 것도 그렇고, 텐이 위험하다는 신호를 감지하지만 커리어 때문에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한다.

소설 <불온한 숨>은 자신의 모든 것을 통제해야만 했던 제인이 숨을 내쉬던 것이 '불온하다' 규정했다. 그리고 그 불온함에서 도망치기 위해 제인은 선택을 했다. 자신을 잃어버렸던 제인이 겨우 불온한 숨을 내쉬며 자신이 원하던 것을 찾으려 했지만, 숨을 내쉰다는 것을 세상에 들키자마자 제인은 다시는 자신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불온한 숨>은 처음부터 제인의 상태와 다르지 않은 싱가포르의 강을 묘사한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강의 모습이 제인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강물은 투명해 보였다. 그러나 강은 사실 맑지 않다. 낮에 내려다본 강물은 녹이 슨 수만 개의 그릇을 씻어낸 뒤인 것처럼 싯누렇다. (중략) 바닷물은 끝없이 강물 속을 헤집으며 진한 모래를 게워낸다. 그래서 강은 맑아질 틈이 없다. 해가 떠오르면 밤새 도시의 불빛 아래 맑아 보이던 강물은 다시금 퇴색될 것이다.(8~9쪽)" 그래서 제인은 불온하지 않은 숨도 채 내뱉지 못한 채, 강물의 본모습을 들킬까 두려운 것처럼 굴었다. 자신은 자신을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겠니? 어둠 속에서 추는 춤만이 진정한 춤이라는 걸. 그런 춤만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그런 춤을 춰야지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거라는 걸.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마. 오직 너의 춤을 춰, 제인. (153쪽)"
"그녀는 내 몸을 결박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나를 결박하고 있는 올가미로부터 나를 풀어주려 했다. 그러나 나는 끝내 나를 결박하고 있는 로프를 풀어내지 못했다. 좀 더 사력을 다해 어둠을 향해 뛰어들지 못했다. 그러다 끝내 삶도 죽음도 아닌 곳에 떨어졌다. 나는 죽음으로 뛰어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저 먼지만 자욱이 쌓여 있는 무대 위에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고 누군가의 체온도 느껴지지 않았다.(154쪽)"

그러나 <불온한 숨>은 열린 결말이다. 앞으로 제인이 어떤 선택을 해 나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리고 나는 제인이 자신을 되찾는 노력을 다시 시작하기를 바란다.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는 채로 사느니, 어쩌면 죽게 되더라도 조금 더 생기있게 날아올라 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 숲에서의 춤이 불온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미스터리하지만 슬프고, 꽤나 답답하지만 처연한 제인의 삶을 속으로 응원해본다. 당신은 이제라도 다시 걸어갈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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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봄
오미경 지음 / 하움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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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분홍한 표지와 <오늘도, 봄>이라는 달달한 제목을 가진 책. 하지만 책의 첫머리에서 작가는 '힘들지 않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언제나 행복하기만 한 하루가 이어지는 삶이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에 나는 찰리채플린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이 떠올렸다. 1부의 부제는 '각자의 인생이라는 막장드라마 속 주인공'이다. 이쯤 되면 조금은 와 닿을 것이다. <오늘도, 봄>은 제목에서 떠오르는 사랑이야기 혹은 달달함과는 거리가 먼 책이라는 것이.

'봄'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보다'의 'See'와 사계절 중 '봄'의 'Spring'으로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해석이 여러개다. 작가는 책의 제목을 이렇게 해석했다. '나의 인생을 보여주고 싶어요. 나를 통해 당신의 인생을 보게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 봄이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띠지에 적힌 말이고, 작가가 <오늘도, 봄>이라는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작가는 1부의 주제인 '나'에 대해 책 속 여기저기에 드러냈다. 170이라는 큰 키, 빚쟁이를 피해 섬에서 뭍으로 나오던 세 남매, 단칸방과 다섯 식구, 성추행 합의금 400만원, 고등학교 시절의 도둑 누명, 식당 종업원 엄마, 트럭운전사 아빠 등등.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1부의 부제는 '각자의 인생이라는 막장드라마 속 주인공'이다. 작가는 자신의 드라마를 담담히 풀어냈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덧붙였다.
세상 사람들 모두 자신이 제일 힘든 존재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내 삶이 당신이 보기에 쉬워 보인다 할지라도 그런 말 마.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삶 속에서 죽을만큼 힘겹지만 더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61쪽)

2부는 타인에 관한 이야기다. '너'로 지칭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너는 외로움이기도, 사랑했던 과거의 누구이기도 했다. 아주 나쁜 생각 혹은 미련이기도 했고, 오빠나 언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냥 2부의 이야기는, 작가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라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쏟아진 곳이다. 주제에 제한이 없어서일까. 좀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볼 수 있었다. 
그 간절함이 담긴 두 마디 '제발'이 얼마나 간절하고 처전한지 나는 알아. 하지만 세상은 그 '제발'이라는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 말은, 다가올 불행을 예견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149-150쪽)
여기서 내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제발'이라는 단어에 대한 작가의 생각 부분이었는데, 왜인지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했었는데 '설마'와 같은 용법의 '제발'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일견 공감하기도 하고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꽤 기억에 남는 부분이었다.

마지막 3부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부제가 '누군가에게는 천국, 누군가에게는 지옥, 그러나 모두가 살아가야 할 곳'인데, 읽기 전부터 부제에 쓰인 단어들 덕분에 조금은 어두운 마음으로 글을 읽어갔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 부분은 세상 살아가기 어려운 누군가에게 보내는 '위로'였다. 살아내기 힘든 게 당신 뿐만은 아니니, 우리 모두 힘내서 앞으로 나아가봅시다! 라고 외치는 느낌. 슈퍼 을이라도 행복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 마인드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난 그렇더라. 내가 지금 당장 죽을 것처럼 힘들어도 내 사람들의 힘든 마음을 쓰다듬어 주면, 어느덧 나도 따뜻해지더라.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188쪽)

이렇게 총3부로 이루어진 책은 개인적인 일기같기도 했고,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한 편지같기도 했다. 글 속에 드러난 구어체는 그런 느낌을 더 배가 시키면서 읽기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당신의 인생은 막장 드라마인가? 그렇더라도, 그렇지 않더라도 인생은 살아내야만 하는 전쟁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행복을 찾아 나아가는 발걸음을 게을리하지 않기로 한다. 전쟁터 한 가운데에서도 꽃은 핀다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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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고양이
이용한 지음 / 꿈의지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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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지대하지만, 지금 좀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중이다. 예로부터 전해내려오던 고양이에 대한 나쁜 괴소문들과는 상관없이, 이젠 고양이란 동물이 많이 친근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 가장 큰 이유가 '고양이의 사랑스러움과 엉뚱함을 알리는 사람들이 많아져서'라고 생각한다. <당신에게 고양이>의 작가인 이용한은 그 알리는 사람 중 1명이고 말이다. 

이전에 서평을 남겼던 <인간은 바쁘니까 고양이가 알아서 할게>를 비롯, 이용한 작가는 여행하면서 만난 우리나라 어느 곳의 길고양이, 해외의 길고양이 등, 길 위에서 어찌보면 위태롭지만 자기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려는 고양이의 모습을 꾸준히 다뤄왔다. 또한 그의 SNS엔 지금도 길고양이들의 사진이 가득하다. 사실 <인간은 바쁘니까 고양이가 알아서 할게>의 고양이들도 마당고양이었으니 반은 집고양이였지만, 이번 <당신에게 고양이>는 길고양이였다가 완전하게 집고양이가 된 고양이들과의 동거 이야기를 그렸다. 새롭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고양이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새롭지 않은 것이 없다.

책은 캣대디 1년차에 작가가 겪은 '랭보의 간택'부터 시작한다.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하며 알게 된 '노란새댁' 고양이의 아깽이들 중 하나인 랭보를 집에 들이게 된 계기를 적어놓았다. 가끔씩 길고양이들이 '널 내 집사로 선택한다!'는 뉘앙스로 사람을 졸졸 따라다닐 때가 있다는데, 이럴 땐 그들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집사가 된다고 한다. 일명 '간택당한다'고 하는 경우인데, 작가도 그러한 경우다. 그렇게 작가의 집에 살게 된 '랭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이나 작가와 함께 살고 있는 할매묘다. 그 뒤로 시작은 탁묘였으나 결국 눌러 살게 된 지금은 고양이별로 떠난 '랭이', 랭보와 랭이 사이에서 태어난 '체'와 '루'(이름 뜻은 '체 게바라'와 릴케와 니체의 연인인 '루 살로메'에서 따왔다), 체와 루 사이에서 태어난(!) '니코'(이번엔 '니코스 카잔차키스'에서 빌려왔다), 생강나무 아래에서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구조해 온 '생강'이까지. 총 6마리의 고양이와 지지고 볶고 했던 10년의 시간들이 책에 담겨있다.

한번은 아내가 헐레벌떡 나에게 뛰어오더니 랭이가 방금 자기한테 '누나'라고 했다며 볼이 발개져서 말했다. 그러더니 직접 들어보라며 랭이를 불렀다. "봐봐, 방금 누나~아, 그랬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냐앙~!'하는 고양이의 일반적인 울음이었다. "그래. 잘 됐으면 좋겠다." (69쪽) 

봉지 커피를 자주 마시는 내가 가스레인지에 물주전자를 올려놓으면 어떻게 알고 물이 끓을 즈음 나한테 와서는 야옹야옹 물이 다 끓었다옹, 하면서 알려주는 것이었다. 나는 이 사실이 하도 신기하고 대견해서 사람들을 만날 때면 "우리집 고양이 랭보는 커피물이 끓으면 나에게 와서 야옹야옹 알려준다"고 자랑을 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왜 커피도 타온다고 그러지."라면서 놀리곤 했다. (85쪽)

책 속엔 이런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작가 부부도 고양이들만큼 귀여워서 읽는 내내 웃음이 삐져 나왔다. 더불어 고양이의 믿지 못할 행동들, 고양이와 박스와의 상관관계,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등의 작가의 고양이 관찰기(?)도 담겼다. 또한 집 나간 랭이 구출기, 정신없었던 체와 루 탄생기, 어느날의 냥줍, 거실 사파리의 우다다, 소소한 벽지뜯기 등 작가네 여섯 집고양이 이야기(물론 이녀석들이 쳤던 수많은 사고 이야기)도 글 속에 담겼다. 되게 개인적이고 사소하지만 읽고 있자면 즐겁다. 고양이들과 함께 하는 생활은 이렇게나 정신없고 유쾌하다. (물론 고양이야 언제나 사랑스럽지만, 그렇다고 섣부른 입양 그로인한 유기는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책 속엔 예전처럼 고양이 사진들이 가득하다. 사실 이용한 작가는 '고양이 사진'으로도 유명한데, "꾸준히 애정을 가지고 촬영하는 과정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었을까?'하는 의아한 사진도 나오는 것이다.(155쪽)"란 작가의 말처럼, 애정이 가득 담긴 시선을 담뿍 담아낸 사진들 속 고양이들은 천진하고 정신없다.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엄마미소를 짓게 된다. 어릴때의 랭보와 랭이, 그리고 여러가지 사건사고를 일으키던 다 큰 랭보와 랭이, 체와 루의 눈도 못 뜨던 생후 며칠 후의 시절, 우다다를 미친듯이 해서 온 집안을 난장판 만들어 놓던 체와 루의 모습들, 니코의 생후 곧바로의 사진은 없지만(작가 부부의 출산과 책 출간마감이 겹쳐 신경쓸 수 없었다 한다.) 조금 자란 후의 노랑노랑한 모습까지. 한 고양이의 어렸을 때부터 나이가 들었을 때까지를 볼 수 있다는 건 참 신기한 경험인데, <당신에게 고양이>에서 그 경험을 할 수 있다.

그저 고양이가 좋아서 나는 고양이주의자가 되었다. 고양이와 함께 살기 위해 나는 고양이주의자가 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나는 고양이주의자가 되었다.(319쪽)
<당신에게 고양이>는 고양이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작가의 이 말들로 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운명이냐 묻는다면 글쎄요,라 답하겠지만, 다시 돌아간다해도 같은 선택을 할거냐 묻는다면 당연하죠라 답할 고양이주의자가 쓴 책. 고양이의 평생을 지켜봤다 이야기 할 수는 없겠지만, 고양이의 평생을 지켜볼 각오가 되어 있는 집사의 책. 이들의 행복한 동거생활을 지켜보고 싶은 이라면 누구든 읽어볼 것을 권한다.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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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손그림 - 색연필로 만나는 작고 소소한 일상 일러스트
신은영 지음 / 책밥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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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식이 가득한 내 독서활동 중, 그나마 내가 관심을 가지는 취미 분야는 손그림과 손글씨가 유일하다. 원래 손으로 하는 걸 좋아하는데다가, 손그림과 손글씨는 간단하게 펜과 종이만 있으면 돼서 더 선호한다. 캘리그라피를 잘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별거 아닐지 몰라도 손글씨는 귀여운 편이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실력일지라도 무언가를 곧잘 따라 그리는 편이다. 그러니까 웬만큼 하니 더욱 발전시키고 싶다고나 할까. 좀 더 슥슥 잘 그렸으면 좋겠고 잘 썼으면 좋겠다는 마음. 내가 책을 보는 이유는 그런 이유다. 

쉽게 그릴 수 있는 것, 작은 일러스트를 그리는 것, 아기자기하게 꾸밈을 돕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예쁜 것. 손그림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무엇보다 많은 책들이 '쉽다'에 중점을 두기에 책에 소개된 모든 것들이 전혀 어려워보이지 않지만, 막상 따라해보면 어려워서 스타일이 뭉개져버리기 일쑤. 밸런스가 망가지는 걸 보면서 매번 뼈저리게 느낀다. 아, 역시 센스가 무엇보다 중요한 게 그림이었지, 하고. 그래도 관심이 가는 분야기에 또다시 책을 들었다.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봐야지, 라는 생각이었지만 일단 책이 예뻤거든.

<1일 1손그림>은 출판사 책밥의 '하루 시리즈' 중 하나다. '일상이 예술이 된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드로잉, 스케치, 캘리그라피, 그림 등 다양한 분야에 이어 등장했다. 다른 시리즈들의 준비물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1일 1손그림>은 손그림을 색연필만으로 그려낸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지점이 이 지점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거창한 준비물이 필요하지 않으니 어디서든지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까. 게다가 작가는 밑그림 없이 바로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이어서 기존의 손그림 책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선이 없어도 깔끔하고 오히려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작가는 일상생활 속 주변의 여러 물건들의 특징을 잘 잡아내 단순화해 그린다. 단순하지만 단순하게만 보이지 않아 신기하다. 사물을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나만의 스타일이 생긴다고 하는데, 초보자에겐 어려운 주문이다. 하지만 작가의 말마따나 그림이 단순해진다고 멋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색을 쓰지 않아도 세련돼 보일 수 있으니, 손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단순화 작업'은 꼭 필요한 듯 싶었다. 또 밑그림없이 그려 나가면서 선과 면을 함께 사용해 단순한 그림에 느낌을 달리 주는 방법 또한 작가의 스타일 중 하나. 그림을 그리기 전에 색을 미리 정해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은 작가의 아주 작은 팁!

작가의 손그림은 특이하게도, 한 장의 종이에 작은 그림을 여러개 몰아 넣어 그리면 패턴이 된다. 패턴은 핸드폰 배경화면이나 손수건, 마스킹 테이프 등에서만 볼 수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직접 패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중앙부터 그림을 채워나가는 게 작가의 팁이던데, 다양한 크기와 다양한 방향으로 그림을 그리면 된다고 적힌 책을 보며 '이게 가능한 걸까?'란 생각이 절로 들기도 했다. 그래도 패턴이 여기저기 쓰인 모습을 보니 책 속의 예시를 활용해 패턴을 만들어 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하다. (손그림이 조금 익숙해진 후에 가능한 일일테지만 말이다.)

작가는 사물을 단순하게 그려내지만, 기본적인 디테일까지는 건드리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조금 더 아기자기해 보이고, 그래서 더 따라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처음부터 작게 시작해봐야지 했는데, 내 성격상 그리다보니 크게크게 그려져서 그리면서도 조금 당황.. 당장 만족스러운 느낌은 아니지만, 책을 보면서 밑그림 없이 그려본 데 의의를 뒀다. 색연필의 두께가 조금은 얇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색의 조합이 내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하다는 걸 깨달았으며, 조금만 연습하면 퍽 만족스러운 그림을 그려낼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약간 발견했다.

사실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비슷하게 그려봐야지 라는 마음으로 시작한건데, 책 속 순서대로 그리기 시작했는데 예시와 묘하게 달라졌을 땐, 될대로 되라 싶었다. 빈 틈에 내 나름대로 더 채워넣기를 여러번. 그림 센스가 없으니 이번에도 망쳤나 싶었는데, 또 사진을 찍어보니 괜찮아서 퍽 다행이었다. 왜인지 여러 번 그리다 보면 '내 스타일'도 나올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작가의 밸런스와 아기자기함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한 발 내딛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기로 했다.

아기자기함을 내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 <1일 1손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아기자기한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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