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넓고 더 깊게 십진분류 독서법 - 지식의 스케일이 달라진다!
장대은.임재성 지음 / 청림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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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창에 '독서법'이라 검색해 보면 <000 독서법>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 수십 권이 찾아진다. 오프라인 서점에 가더라도 쉽게 손 닿는 곳에서 독서법 관련 서적을 여러 종류 찾을 수 있다. '효율적으로 독서하는 법'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서다. 지식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과 욕심은 더해가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시간은 한정적이고 개개인이 가진 능력도 전문가에 비해서는 한참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도 일단 <000 독서법>이란 제목이 눈에 띄면 일단 걸음을 멈추고(혹은 마우스를 쥔 손을 멈추고) 살펴보고는 한다. 뭐라도 내 독서생활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이번에 <십진분류 독서법>을 손에 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번엔 어떤 독서법이려나, 그동안의 독서법들과는 뭔가 다르려나. 호기심을 가졌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십진분류 독서법>은 책의 시작부터 기존의 독서법과는 접근방법이 달랐다. 왜냐?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책도 아닌데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부터 등장하기 때문이다. 1장인 '인공지능 시대에 왜 인간지능인가'에서 작가는 생활 곳곳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고 미래에는 많은 인간 노동력을 대신할 인공지능으로 인해 인류는 특이점의 시대를 맞았다 주장한다. 단순한 암기나 머릿속에 담긴 지식, 즉 '아는 것'만으로는 인공지능을 따라갈 수 없다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작가는 누군가 알아낸 지식을 주워 담는 학습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창출해 내는 원천 능력이 필요하다.(28쪽)고 이야기한다. 이는 그동안 읽었던 어떤 독서법에서 제시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각이었다. 호기심을 꽉 붙잡아두는 인상적인 시작이었다.

<십진분류 독서법>은 그동안 수많은 독서법이 실패한 이유는 숲이 아닌 나무를 봤기 때문이라 주장했고, 취미독서(취미생활로 즐기는 독서)에서 성공독서(책에 '성공독서'를 콕 집어 정의를 하지 않으나, 읽으면서 생각해 본 바로는 '책을 읽고 과정이나 계획한 어떤 것을 이루는(진보시키는) 것'이 아닐까 한다.)로 나아가야 한다 주장했다. 그렇기에 여러가지 독서법을 일러준다. 책 읽는 동기를 부여하는 독서법 (동기부여 독서법) / 삶의 균형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독서법 (전인독서법) / 도서관의 책 분류법에서 착안, 여러가지 분야의 책을 10~20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엿보는 독서법 (십진분류 독서법) / 십진분류 독서법의 연장선, 수용된 지식과 정보를 글쓰기로 정리하고 자신의 생각을 덧입혀 창조적인 산물을 만드는 훈련을 하는 독서법. 하나의 주제에 대해 질을 높여가며 배움 (박이정 독서법) / 박이정 독서법의 심화단계. 지식의 수용력을 키우는 문법, 지식의 관계성을 세우는 논리력, 지식의 수용과 이해를 말과 글로 표현해 재구성하는 표현력 3가지로 이루어진 독서법 (트리비움 독서법) 까지. <십진분류 독서법>은 총 5가지의 독서법을 설명하고 있으며, 이 독서법들은 각각 하나의 단계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로 점점 심화 독서법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든다. (물론 중간과정이 아니니 건너 뛰어도 상관은 없다.) 최종적으로 <십진분류 독서법>이 추구하는 독서는 책의 지식만 아는 것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재구성해 다른 것들과 연결시키는 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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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 - 개화와 근대화의 격변 시대를 지나는 20세기 초 서울의 모습 표석 시리즈 2
전국역사지도사모임 지음 / 유씨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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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선택한 계기는 단순했다. 표지의 전차가 많이 낯익어서다. 내가 이걸 어디서 봤더라,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어, 이거 드라마에서 봤는데?" 요즘들어 가장 집중해서 봤던 드라마인 <미스터 션샤인>에서 매 회차마다 등장해 자주 봤었던 전차였다.(드라마에선 주인공의 유모격인 함안댁이 '쇠당나구'라고 불렀다.) 전차의 위쪽에 붙어 있는 '표호산'이란 단어가 낯설어서 유심히 봤던 기억이 남아 있는 터라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의 작가진도 <미스터 션샤인>을 언급했다. 드라마 덕분에 많은 이들이 대한제국의 관심을 갖는 지금, 이 책이 대한제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말이다.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는 말 그대로 '표석'이 주인공이다. 표석이 지니고 있는 장소성과 시간성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연구활동이 책으로 엮여 나온 것이고. 일단 책을 쭉 훑어보다 책의 맨 뒤쪽에 '표석 찾아보기'가 부록처럼 붙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책 속에 등장한 표석들이 사진으로 찍혀 쭈욱 첨부되어 있었는데, 대체로 '00 터'의 형식으로 표석이 세워져 있었다. 현재는 그 자리에 있지 않지만 그곳에 있었음을 알려주는 지표. 아마 광화문 근처 어디를 걸어다니다가 표석을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도 눈여겨 보지 않았기에 서울의 곳곳에 표석들이 자리잡고 있는 게 꽤나 신선했다. 

사실 하나의 표석이 이야기하는 것은 많지 않다. 적혀 있는 글자도 많지 않고, 역사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들은 표석이 무얼 의미하는 지 알기도 쉽지 않다. 낱개의 표석만 본다면 그렇다. 하지만 이 표석들이 지닌 각자의 이야기를 잘 연결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면 말은 달라진다.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표석들을 연결해 길을 만들었다. 조선 얼리어답터 고종의 전기, 전차, 전화와 관련된 표석들을 한데 묶는다거나(부강몽 길), 근대 신문들인 대한매일신보, 독립신문, 황성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창간 사옥 표석들을 한데 묶는다거나(신문사 길), 만해 한용운이 머물렀거나 몸 담았던 곳들의 표석들을 한데 묶는다거나(심우장 길) 하는 식으로. 각자 가지고 있던 이야기들을 큰 주제로 한데 모아 정리했다. 

사료에서 찾은 장소와 관련된 이야기, 문헌 속에서 찾은 당대의 분위기나 생각들, 장소의 번영과 몰락, 그 당시 장소가 가지던 의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해 가던 장소의 의미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보니 꼭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보자. '태화관 길'의 경우에는 현종 후궁의 처소인 순화궁이 이완용의 별장이 되었다가 다시 기생 요릿집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장소는 같으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던 장소의 의미를 정리할 수 있던 길이다. '서양의학 길'은 길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한성에 서양의학이 뿌리내리던 과정을 그렸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운 근대식 국립병원 제중원부터 현재의 연세대학교병원이나 이화여자대학교 부속병원 등의 전신들에 관한 이야기, 현재에도 많이 먹는 부채표 까스활명수의 동화제약이 동화약방으로 시작해 판매금을 독립운동에 보탰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를 알 수 있다.

물론 이야기가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다루는 것은 아니니 엄밀히 말하자면 제목은 틀렸다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하나의 표석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표석들로 그 당시의 사회상을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사진자료들과 미처 알지 못했던 신선한 내용들은 책읽기를 더 즐겁게 만들어준다. 모르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흥미롭고, 알고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혹시 내가 모르는 내용이 등장하진 않을까 흥미롭고.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라 권해보고 싶은 책이다. 왜 전작이 우수 콘텐츠로 선정되었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후속작인 이 책도 우수 콘텐츠로 선정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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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 김제동의 헌법 독후감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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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이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나는 작년, 아니 재작년에 참 많이도 들었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생각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도 세트로 떠오른다.) 대한민국이 제대로 나아가고 있지 않음에 분노했던 나날들, 그래서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주권이라는 것을 다시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2016년 10월을 지나왔음에도 나에게 헌법 1조 2항은 가깝고도 멀다. 헌법이라는 말 자체가 갖는 무게감과 묘한 거리감을 상쇄시킬 만한 그 무엇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여기, 대중에게 아주 친숙한 김제동이라는 방송인이 헌법 관련 에세이를 펴냈다.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라는 기다란 제목을 달고. (저자는 '말 잘하는 법'이란 제목을 내세웠지만출판사의 반대에 부딪혀 사라졌다는 비하인드가 책 속에 적혀있다)

서문에서 제동 씨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헌법 37조 1항이 마치 연애편지의 한 구절 같다 생각했다고. 헌법 37조 1항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인데 이게 마치 "내가 여기 안 적어놨다고 해서 널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야." 처럼 보였다고 말이다. 마치 사랑을 가득 담아 쓴 연애편지의 마지막에 추신으로 또 덧붙이는 사랑고백 같은 느낌을 받았단다. 이 부분에서부터 나는 신선함을 느꼈다. 헌법을 딱딱한 법으로만 한정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앞으로 어떤 글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재미있겠다란 생각도 했다. 제동 씨는 이 책이 에세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무거울지도 모른다고 적어뒀지만, 서문에서 느낀 신선함이 본문에서 계속 이어진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하면서 본문을 읽어나갔다.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김제동이 느낀 헌법'이다.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헌법이 낯설기만 한 나같은 사람들에게 '헌법은 전혀 어렵지 않아요'라고 온 몸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물론 제동 씨가 이해하고 책 속에 적어둔 헌법 해석이 무조건 옳은 해석은 아니다. 제동 씨 나름대로 여기저기 물어보고 고민하며 적은 거겠지만, 원래 헌법이 의도했던 해석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약간의 물꼬만 터두어도 사람들이 헌법에 갖는 선입견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킬 수 있을 거다. 제동 씨의 말마따나 '누구나 헌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우리가 헌법의 진짜 주인이 될 수 있'는 거니까, 조금이라도 헌법을 아는 것이 나쁠 리 없다. 게다가 비타민, 빼빼로, 방탄, 판관포천천 등 헌법을 쉽게 기억하라고 닉네임도 붙여뒀으니 어느 정도는 기억에 남지 않을까.

하지만 처음 예상과는 좀 다르게 헌법 해석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김제동식으로 해석된 헌법보다는 에세이스러운(?) 내용들도 많이 담겨있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비율로 따지자면 5:5 정도가 아닌가 싶다) 결국 헌법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거니까, 제동 씨가 살면서 겪었던 여러가지 이야기들 속에 헌법을 조금씩 녹여냈다. TV고려(..)를 보는 가게 할아버지와의 대화, 2016년부터 2017년까지 광장에서 겪었던 여러 이야기, 종북과 좌파와 우파와 정치 이야기, 민주주의, 정치참여 등등 김제동과 잘 어울리는 이야기들이 제동 씨의 말투로 적혀 있다. 읽고 있노라면 어느 방송에서 봤던 제동 씨의 목소리가 음성지원되는 듯이 따뜻하고 정중하고 위트있게. 헌법이란 낯설고 무거운 주제를 전면에 내세웠음에도 읽어내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간중간 곁들여진 일러스트들은 마치 이모티콘을 달아둔 것처럼 아기자기하고, 제동 씨의 위트와 만나 독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또한 헌법 관련 조언을 얻기 위해 국내외의 헌법 전문가들과 인터뷰한 내용도 실어 너무 가볍지 않은 책을 만들려 노력한 모습도 보인다. 법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헌법 관련 에세이를 낸다면 이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꽉꽉 눌러 담은 느낌. 정성이 느껴져 또한 좋았다.

물론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니다. 제동 씨와 내 견해가 다른 부분도 엄연히 존재하니까. 다른 것은 다른 대로, 동의하는 부분은 동의하는 대로. 어떤 이야기를 읽어 나가는데 헌법 이야기가 툭 튀어나오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면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를 권하고 싶다. 어렵지 않고, 소소한 위트로 재미도 있고, 잘 읽히고, 생각도 하고, 선입견을 타파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라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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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 있는 신비한 잡학 사전 - 잘난 척하고 싶을 때 꼭 알아야 할
레이 해밀턴 지음, 이종호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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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우위에 서고 싶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듣고 싶다. 내 관심분야가 아니더라도 조금의 지식은 갖고 싶다. 현재의 대한민국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은 듯 하다. 예전에 TV에서 스치듯 어떤 강연을 봤는데, (얼굴은 기억 안 나는) 강연자가 그랬다. 하나라도 더 공부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하며 걱정하는 거라고. 그래서 그런지 tvN의 예능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 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일명 알쓸신잡)>이라는 이 긴 이름의 예능이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평소에 이미 알고 있던 익숙한 것과 전문 분야의 새로운 시선이 만나 '낯설 것'을 만들어내며 대중의 지적허영심을 채워줬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기가 있었던만큼 책의 제목으로도 많이 차용됐다. 온라인 서점 검색창에서 '쓸데'까지 쳐보면 주르륵 비슷한 제목의 책들이 검색된다. <쓸데 있는 신비한 잡학사전>도 그 프로그램에서 파생된 걸까?란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별 기대없이 책을 열었다.

'이 책을 소개합니다'라는 서문에서 작가는 대놓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당신을 아주 짧게나마 지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실제적으로 더 유식하게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식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그런데 또 '하지만 깊이를 따진다면 글쎄!'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이 책에는 세상의 온갖 지식이 가득 들어차 있지만, 아주 전문적이고 깊숙한 이론이나 지식은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가볍게 읽고 유식한 척 대화할 때 써먹어라!가 저자가 책을 쓴 이유가 될 것 같다. 사실 서문을 읽으면서 조금 당황했다. 저자 본인이 책의 쓰임을 이렇게 정의한 건 처음 봤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안고 뒤로 넘겼다. '우리가 살고 있는 놀라운 지구'라며 지구에 관한 이야기임을 암시했다. 지구에 관한 '쓸데 있는 지식'은 뭘까 봤더니 이게 웬 걸. 지구의 둘레, 가장 큰 대륙, 가장 큰 바다, 가장 큰 사막, 가장 더운 사막 등등 정말 살면서 한 번 생각해볼까 말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퀴즈 프로그램에서 자주 접할 법한 이야기들이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저자는 서문에서 이런 글도 남겨뒀다. '만약 선술집에서 사람들이 팀 대항으로 상식 퀴즈 게임을 할 때, 당신이 속한 팀이 당신 때문에 질까 봐 부담을 느낀다면 지식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책의 성격은 대충 파악이 됐으니 이제 쭉쭉 읽어나가기만 하면 되겠다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웬만한 건(지구의 둘레 같은 정보 같은 것) 스킵하려고도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책에 담겨 있는 내용들이 신기하더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고 한 번도 알았던 적 없던 정보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지구에 관해서도 당장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라고 생각하면 중국을 떠올리겠으나, 일본 도쿄의 인구가 약 3천 8백만으로 가장 많았다. 유럽에서 가장 긴 이름을 갖고 있는 장소는 책에서 집적 확인하길 바라고(적기에 너무 길다), 인류는 단 한 번도 달에 착륙한 적 없다고 많은 미국인들이 믿고 있다는 여론조사 이야기도 짧게 담겨있다. '수달은 물 위에 누워서 손을 맞잡고 잠을 잔다. 나는 이 문장에서 '귀엽다'는 단어를 사용할 뻔 했다'와 같은 유머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봤던 분야는 '문화' 분야였다. 특히 문학 분야에선 셰익스피어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처음 생각해 낸 표현들이 가장 인상깊었다. (내가 영어권이 아니기에 아주 깊이 공감할 수는 없지만, 가사에도 쓰일 정도로 '흔하게' 쓰이는 표현들을 셰익스피어가 처음 발명(?)했다는 이야기라 많이 신선했다. 더불어 예문이라고 덧붙인 작가의 글이 있었는데, 거기엔 원문이 함께 표기돼 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어 조금 아쉬웠다) 미술 분야의 '미술 사조의 전문적인 표현'을 보면서는 웃어야 하나 물음표를 띄워야 하나 약간 고민했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가 역대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영화들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과, 로마의 연극에선 등장인물 중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면 유죄 판결을 받은 살인범이 대신해서 무대에 올라 처형당한 이야기까지, 문화 분야는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라 그런지 몰라도 재미를 느꼈다. (물론 누군가의 사생활 혹은 이런 이야기를 굳이?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책은 전체적으로 흥미롭다. 각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이다.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도 누군가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때 읽기 좋은 책이다. 내용마다 연속성이 딱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은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하며 썼겠지만 아시아인 독자 입장에서는 조금 기분이 나쁜 부분도 몇 군데 존재했다. (그 부분이 아쉽다.)
 
<쓸데 있는 신비한 잡학사전>이 얼만큼 지식을 넓혀주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냄으로써 하나라도 머릿속에 남는다면,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했다면, 그것은 어느 장소 어떤 상황에서 당신에게 좋은 대화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나야나! 언젠가 이 책을 읽은 나도 오늘의 이 지식들이 쓸 데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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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랑 - 김충선과 히데요시
이주호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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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왜. 역사 관련 컨텐츠를 좋아하는 내게도 그리 익숙한 단어가 아니니, 사람들에겐 참 낯설 단어다. 아마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도 꽤 있을 테다. 역사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아 많이 연구되지 않은 분야기도 하니까 말이다. 항왜라는 건 '조선에 투항한 일본인'을 뜻한다. 영화 <명량>에도 항왜였던 '준사'가 등장한다. 사실 나도 <명량> 때문에 항왜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건데, <역랑>은 조선의 대표적 항왜로 손꼽는 '김충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역랑>은 김충선, 극 중 '히로'라 불리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태어나면서부터 항왜로 전향하기까지 30년 가까운 세월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일본의 이야기가 비중있게 다뤄질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좀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한 번씩은 들어본 이름이고, 일본 만화를 좋아했던 이라면 조금은 친숙한 이름일 이 이름들이 소설 전면에 등장한다. 히로가 살아갔던 세상은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을 통일하기 위해 애쓰던 시기였으며, 히로는 오다 노부나가의 용병집단 '붉은 돌'의 뎃포(조총)부대원이었으니까 말이다.

히로의 아비는 역모로 몰려 죽었다. 히로의 어미는 자식만은 살리려 일본으로 가는 배에 젖먹이를 실려 보냈다. 천식이 있던 연약한 젖먹이는 용병집단 '붉은 돌'에서 뎃포부대원으로 성장한다. '붉은 돌'의 마고이치(우두머리) 겐카쿠는 히로의 비상한 두뇌를 알아보고 히로가 원하는 뎃포 공부를 시켜준다. 포도국(포르투갈)의 최식신 뎃포를 통해 일본의 뎃포를 개발한 히로는 전쟁에 혁혁한 공을 세워 단숨에 권력자들의 눈에 들게 되고, 자신을 지지하던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 이후엔 어쩔 수 없이 시류에 휩쓸리게 된다. 시류에 휩쓸리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겐카쿠의 딸 아츠카 때문이다. 아츠카는 어려서부터 히로를 마음에 두고 있었고, 히로도 아츠카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히로를 원하는 권력자들이 아츠카를 가만히 놔 두지 않았고 결국 히로는 아츠카를 위해 임진왜란에 참전하게 된다.

<역랑>은 조선인이라는 신분적 핸디캡을 가진 이방인으로서, 일본의 역사적 흐름에 어쩔 수 없이 끌려 들어가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조선인이지만 일본인으로 살아야 했기에 느꼈을 '뿌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도 함께 보여준다. 임진왜란 시작 이야기와 처참하게 무너진 조선군의 이야기 또한 모조리 드러내어 전쟁의 참담함도 알려준다. 항왜란 낯선 존재에 대한 친근함도 만들어준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답답함으로 속이 꽉 막힌 느낌 또한 들었다. 저때의 조선의 상황이란, 그리고 주인공이 처했던 처참한 상황이란 답답함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니까 말이다.

하지만 소설은 그런 답답함 뿐만 아니라, 그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딛고 일어서는 조선 민중들의 모습도 잘 그렸다. '힘이 없어 침략당하고 있지만 이들은 힘이 없지 않았다. 이들은 누구보다 강한 자들이었다. 누구보다 강한 백성들 위에 누구보다 비겁하고 위선적인 정치가들이 있어 이리도 비참하게 짓밟히고 있는 것뿐이었다.' 이런 히로의 감상은 임진왜란을 겪는 내내 느꼈던 감정들이다. 자신의 죽음을 피하지 않은 리더, 각지에서 일어났던 의병, 승병, 그리고 그들을 지원했던 일반 민중들까지. 그나마 전쟁의 처참함 속 조금은 위로가 됐었던 모습들이었다.

개인이 역사의 흐름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소설을 보면서 계속 갖게 된 물음이다. 히로는 벗어나려하면 할수록 한가운데로 떠밀려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용기있게 자신의 인생을 선택했다. 작가는 이 한 남자의 일생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무엇을 던져주고 싶었던 걸까. 치열한 전쟁같은 소설 <역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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