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하기 위한 말들 - 다시 사랑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민해나 지음 / 라디오북(Radio book)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알고 보니 사랑은 그리 대단한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가만히 곁에 있는 것.
수다 떠는 것. 밥을 먹는 것. 웃고 울며 살아가는 것.
그 안에 이미 사랑이 있었던 거예요.(6쪽)

책의 뒷표지에 적혀 있는 문장이다. 책의 시작인 프롤로그에 적혀 있던 이 문장들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말들의 나열일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일상들 속에도 소중하지 않은 것들은 하나도 없다. 방 정리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쏟아져 나오는 많은 물건들, 그 중에 내 손이 닿지 않은 건 없는 것처럼. 물건만 해도 이럴진대 사람이라면 더 말해 무엇할까.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 중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사랑을 주고받음을. 하지만 나는, 우리는 이 소중한 것들을 너무 가벼이 여기곤 한다. 그리고 소중함을 놓쳐보고서야 깨닫는다. "알고 보니 사랑은 그리 대단한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었어요."라는 문장에 공감하는 이유다.

<다시 사랑하기 위한 말들>은 사랑과 관련된 에세이다. 제목에도 '사랑'이 자리잡고 있어 말하기 새삼스럽지만 말이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떠나보내고, 다시 사랑을 하는, 책 속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랑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사랑하며 기쁘고, 사랑하며 슬프고, 다시 사랑하지 않겠다 다짐하면서 사랑에 빠지는 일상의 어느 한 귀퉁이 속 이야기들이 말이다. 누군가에게 전하기 위한 글인 것 같기도 하고, 나에게 다짐하는 것 같기도 한 글들은 낯설다기보단 익숙하다. (누군가의 마음이 담겼을테니 당연한 건가.) 그 익숙함들은 읽기 어렵지 않고 가볍다. 가독성도 좋아 에세이임에도 술술 읽히니,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는 사람들에게 추천해도 좋겠다.

책의 초반, 내 마음에 들어온 문장은 "나에게 이젠 일상 같은 네가, 사실은 너무 큰 기적이어서 오늘도 새삼 행복하고 고마운 아침(29쪽)"이라는 특별할 것 없는 문장이다. 이제는 일상인 네가 사실은 큰 기적이라며 누구든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당연함을 고마워하는 마음이 예뻐서. 더불어 "네게 아무런 힘이 남아있지 않을 때, 혼자 불을 켤 힘조차 내지 못할 때, 네 발 밑을 밝혀줄 딱 그만큼의 빛으로 언제나 가까이 있을게. (49쪽)"는 가장 힘들때 곁에 있어주겠다는 마음이 예뻐서. part.1에서 내 마음에 들었던 문장들은 대체로 따스함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사랑을 하면서 줄 수 있는 마음들이 모인 공간이라서인지 동그란 이야기들이 따뜻했다.

하지만 part.2로 넘어가면 당연하게도 이별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묶여 있다. 친구로 남았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땠을까 후회도, 계속 같이 가야 하는 걸까 불분명한 마음에 대한 고민도, '이젠 더는 이 세상에 없는 그때의 우리에게 그래도 고맙다고 말할 거야.(77쪽)' 추억도 한데 묶였다. 사랑에는 결국 끝이 있고, 끝을 맞이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만나는 슬픔과 추억들 말이다. '사랑한다의 반대말은 사랑했었다'라는 어느 드라마 속 대사처럼, 사랑했던 누군가의 기억들이 조금 담겼다. 다만 너무 아프다 울부짖기보단 한발자국 떨어져 관조하는 느낌의 에세이들이라 감정적으로 힘들지는 않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part.3는 다시 사랑하기 위해 마음을 추스리고 곧게 서려는 어떤 이에게 조언하는 느낌이 들었고, 마지막 part.4는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이라는 부제 아래 part.3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조언들이 자리하고 있다. 흠. 일단 조언이라고 적기는 했지만 무언가 훈수 두는 느낌은 절대 아니다. 응원 같기도 하고, 혼잣말 같기도 하고, 다짐 같기도 하고. "꼭 어떤 형태의 결실을 맺어야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니까. 그 순간이 모든 것이 되기도 하니까.(139쪽)"라든가, "어디로 가도 옳은 당신의 달리기를 항상 응원할게요.(177쪽)"라든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두 문장만 이 곳에 옮기지만, 찾아보면 툭 마음에 와서 닿는 어떤 문장들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연애의 따스함을 사랑한다. 사랑받고 있구나, 이 사람이 나를 아껴주는구나, 소소하지만 이런 게 행복이구나. 말로 하지 않아도 분위기로 느껴지는 따스함을 사랑한다. 그리고 <다시 사랑하기 위한 말들>엔 그런 따스함들이 있다. 삽입된 일러스트에서 느껴지는 따스함도 좋았다. 외출하기 전 뽀송뽀송한 스웨터를 입은 듯한 따스함. 찬 바람이 부는 계절과 잘 어울리는 <다시 사랑하기 위한 말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하루 일기
마스다 미리 지음, 김현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친구는 학교에 있을 때의 통행권. 무언가를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내 통행권으로 갈 수 없는 장소도 있다. 빈손인 아이도 있다. 어른이 되면 좀 더 자유로워질까? (9쪽)
이런 이야기가 처음부터 막 등장했다. 읽으면서 흠칫, 이건 뭔가 했다. 아, 맞다. 마스다 미리의 책이었지. 침대위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던 자세를 고쳐잡고 계속 읽어갔다. 역시 마스다 미리의 책은 (에세이든 만화든)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 코하루 귀엽다. 음, 그건 아니지. 경솔한 것 같아. 그치만 이거 일기니까 상관없나? 이거 금방 읽겠다. 아 벌써 다 읽었어. <코하루 일기>의 첫인상은 '역시 마스다 미리'였다. 

마스다 미리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출판사에서 진행한 '마스다 미리 공감단' 같은 북서포터즈에 지원해 활동 했었고, 그녀의 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도 직접 영화관에서 봤었다. 에세이로 처음 그녀를 알게 된 거라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전작들(수짱 시리즈라던가)을 찾아보기도 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진짜 마스다 미리를 좋아하는구나 새삼 깨닫는다.) 그녀의 글과 만화에는 특별함이 있다. 누구나 겪는 참 평범하고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그녀에게 닿으면 특별한 이야기로 변하는 게 낯설고도 신기하달까. 그녀는 늘 그런 이야기들을 해 왔고, 이번 <코하루 일기> 또한 다르지 않았다. 

<코하루 일기>는 등장인물이자 주인공인 '코하루'가 '일기를 써 볼까?' 생각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5년 후면 어른이 되는데(현재 코하루는 열다섯) 어른이 되면 지금의 기분도 마음도 사라져 버릴까봐, '어른이 되지 않도록' 일기를 쓸 마음을 먹는 이야기가 첫 시작으로 등장한다.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면 잊는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의 마음들을 잘 적어놓으면 어른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그 발상이 참 귀여웠다. 이미 많은 걸 알아버린 서른 혹은 마흔의 코하루가 이 일기를 보게 된다면 흑역사라며 부끄러워하겠지만. 그렇게 코하루의 자잘한 일상 속 코하루의 이런저런 생각들이 <코하루 일기>에 담겼다. 10대 시절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이야기들이다.

2차 성징 후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 아빠도 남자라며 집 안에서도 옷 간섭을 하기 시작하는 엄마(아직까지 우리 엄마도 이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친구들과 하던 야한 이야기(?), 별 시덥잖은 생각들을 잔뜩 하면서 괜히 심각해지기도 하는 오락가락 기분, '예쁜 나'를 꿈꾸며 평소에도 꽤 많이 신경쓰는 외모, 좋았다 싫었다 하루에도 여러번 바뀌는 변덕스러운 마음 등등. 

등장하는 모든 내용들이 어렸다. 어리다고 이야기한다면 코하루는 화를 낼 지 모르겠지만,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서 보는 <코하루 일기> 속 코하루는 생각도 행동도 어렸다. 뭐라고 해야하나.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지만 오히려 그 순수함이 위험한 느낌? 아주 눈살 찌푸려지는 행동들은 없었지만 예의없고, 못됐고, 좋지 않은 마음들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서 그런가보다.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결론을 내버리는 섣부름과 자주 마음이 바뀌는 변덕스러움도 이유겠지만. 내 경우엔 나이를 먹고나선 그런 마음들은 굳이 입밖으로 꺼내거나 글로 남기거나 하지 않았다. 그래서 <코하루 일기>를 보면서 조금은 못된 이야기라도 글로 남겨두면 나중에 읽어보면서 어떠려나 문득 궁금해졌다. 요즘에도 가끔씩 쓰는 일기에 마음들을 스킵하지 말고 최대한 솔직하게 적어볼까 생각도 조금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이다경제 - 어디 가서 아는 척할 수 있는 경제 지식
사이다경제 외 지음 / 원앤원북스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제는 고등학교 다닐 때 교과서 과목으로 공부한 이후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가끔씩 경제 관력 책들을 읽었지만 재태크나 부동산 등 요즘 관심을 두거나 내게 필요할 내용들로만 책을 읽었고, 경제는 나와 상관 없는 단어라 생각했다. 그런데 <사이다경제>의 서문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한다."라고.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앨런 그리스펀의 말이라고 하는데, 경제가 생존을 위한 필수지식이라니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관점이었다. 당장 경제 뉴스에 나온 그 어떤 것도 나랑 관계가 1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나의 생존과 연관지을 수 있다는 말인지. 막상 이런 식의 이야기를 보니 덜컥 겁부터 났다. 생존과 연관된다잖아- 그래서 얼른 책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사이다경제>는 나에게서 가장 가까운 '돈'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돈이란 뭔지, 화폐란 왜 만들어졌는지,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의 변화, 합리적 선택을 위한 방법(기회비용, 명시적 암묵적 비용, 매몰비용), 임금노동자의 월급이 오르지 않는 이유(기업 이윤추구의 복잡함 속 을의 무기력함), 정부에 세금을 내는 이유(공공재와 공공서비스, 규제에 대한 이야기)까지. 경제에 대해 어려움부터 갖지 않도록 개인이 접하는 경제부터 다루기 시작한 게 인상적이다. 지금껏 생각해 본 적 없지만 개인과 관련된 경제만 해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책은 개인에서 사회로, 사회에서 세부적인 사항으로 경계를 확대하기도 하고 집중하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이다경제>에서 다루는 경제 이야기는 그 분야가 다양하다. 보험이나 환율, 주식과 펀드 등을 아우르는 금융 분야도 다루고, 세계 속 큰 경제 사건들(이를테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우리나라의 IMF)를 다루기도 한다. 미래 예측을 위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다루기도 하고, 여러 기업들의 마케팅을 알아보기도 한다. (단순히 어떤 마케팅을 알아본다기 보다는, 그 마케팅으로 거둔 기업이 거둔 경제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관심이 없다면 잘 모르는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분야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히 해 놓는데, 아무래도 사람들이 갖는 경제라는 카테고리는 투자이기 때문에 더 자세히 다루는 느낌도 들었다.



내 경우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은 마케팅 부분이었다. 기업의 마케팅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으로 이루어낸 경제가치는 어느 정도다라는 기본적인 이야기 말고도 여러가지 마케팅 용어가 등장하기 떄문이다. 미투 효과(하나의 매장이 자리잡은 근처에 같은 종류의 상품을 파는 매장을 세우는 방법), 샤워 효과(백화점 꼭대기층에 영화관이나 식당가를 배치하는 이유), 폭포 효과(상류층의 소비가 아래쪽으로 흘러가는 효과), 노이즈 마케팅(욕 먹을 각오와 함께 인지도를 넓히는 방법), 바이럴 마케팅(요즘엔 대체로 인센티브를 받고 작성하는 경우가 많아짐), 매복 마케팅(공식 파트너사의 지위를 갖지 못했음에도 관련이 있는 듯 광고하는 경우), 공포 마케팅(사회적 공포를 조장해 꼭 필요하다(필요없다) 생각하게 만들어 소비를 유도하거나 막는 경우) 등등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더불어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요즘 정부가 벌였던 LTV와 DTI 제약에 관한 내용들은 흐릿하게 알고 있었던 부분이었는데 <사이다경제>를 통해 좀 더 명확하게 개념을 잡게 되었다. 주택담보인정비율과 총부채상환비율이라는, 한글로 적어도 어려운 이 두 개념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앞으로 뉴스를 들을 때 좀 더 명확한 핵심을 캐치할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기뻤다.) 투자를 위해서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대한민국의 부동산 전망이 어떤지 같은 것은 여전히 먼 훗날 나와 관계될 수 있는 느낌이지만 말이다.


어렵게 읽히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지만 알고 보면 경제를 공부한 것이 되는 대견한 <사이다경제>. 많은 사람들이 카드 뉴스나 앱을 통해 왜 읽었는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용 하나하나가 길지 않고, 어렵지 않으며, 사람들이 싫어할 복잡하고 아주 전문적인 내용은 과감히 생략했기 때문이다. <사이다경제>를 읽는다고 모든 경제에 능통할 수는 없겠지만, 경제의 기초를 다진다라고 생각하면 이 책은 맡은 바 본분을 충분히 해내고도 남음이 있다. 아이들에게 읽혀도 좋을만한 유익한 경제 도서! 경제가 쉽게 다가가길 바라며 만들어낸 제작진의 마음이 느껴지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을 그리고 당신을 씁니다 - 어린 만큼 통제할 수 없었던 사랑
주또 지음 / 더블유미디어(Wmedia)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보다 일러스트에 먼저 눈이 갔던 건 2018년 들어 처음이다. 막상 표지는 눈여겨 보지도 않았으면서, 글을 읽어나갈수록 자꾸 옆에서 눈길을 뺏는 일러스트에 결국 가던 길(책 읽기)을 멈췄다. 어두컴컴한 일러스트 속 눈 밑이 시뻘개진 남자. (얼핏 보면 잘 보이지도 않을만큼 일러스트가 어두워서 얼굴을 책에 가까이 가져다 대고서야 그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취해 보이기도 하고, 울고 난 다음으로 보이기도 하고, 상기돼 보이기도 한 얼굴의 남자가 한 명만 덩그러니. 남자는 왜인지는 모르지만 무기력해 보였다. 매가리가 하나도 없어서는, 그저 앉아 있는 것조차 힘겨워보이기도 했다. 작가는 얼굴만 크게 클로즈업하기도 했다가 배경까지 전부 그려넣기도 했는데, 책 속 그 많은 일러스트들은 겹치는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근데 그 다양한 얼굴들을 보고 있자니 '짠하다'라는 한 단어만 떠올랐다. 그리고 일러스트를 지나 글을 읽으니 그 짠함이 배가되었다.

차마 알지 못했다. 네가 빌미가 되어 나의 밤이 이다지도 소란스러워질 거라고는. (39쪽)
자꾸만 너의 얼굴이 보고 싶다. 똑바로 너의 두 눈을 마주할 자신도 없으면서. 사랑을 마셨나, 이 밤에 취했나. 머리는 어지럽고 시야가 분명하지 못한데 그 와중에 자꾸만 네가 선명하다. (61쪽)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은. 끝내 오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는 일은. 나의 몸의 수분을 다 내보내고 자처해서 말라가는 허튼짓과도 같다. (78쪽)

제 마음 하나 제대로 꺼내놓지 못하며 망설이는 화자여서다. 너의 다정함에 가슴 떨리고, 혼자만의 상상 속에 설레고, 용기 한 자락 낼 수 없어 수없이 망설이고, 그렇다고 마음을 접을 용기도 갖고 있지 않은 글 속 어떤 화자가 말이다. 그런데 작가가 의도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러스트 속 그림이 남자여서인지 화자도 자꾸 남자로 읽혔다. 일러스트 속 묘한 짠함과 글 속의 짠함이 합쳐지니 최강 짠함이 탄생했다. 화자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 울 것같은 표정으로 취해있는 일러스트 속 남자인걸까. 그나마 여기까지는 짝사랑이어서 이정도다. 이후엔 이별 후라 화자의 자존감이 땅바닥까지 떨어져 있음이 와 닿는다.

무얼 할까 하다가 / 그냥 잠만 잤던 거 같아 / 네가 없으니까 내가 없더라고 (172쪽)
네가 무책임하게 던지고 간 / 우리의 시간들에 엉킨 나는 / 여태 그걸 끊어내지 못하고 / 그렇다고 해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 참, 뭐가 이리도 아쉬워서는. / 참, 뭐가 이리도 소중해서는. 
(참, 남겨진 주제에 미련하기까지 해서는. 201쪽)

글을 읽으면서 작가가 글센스가 있다고 생각했다. 제목이 본문과 이어진다거나 하는 발상이라든지, 마치 가사를 쓰듯 앞에 나온 문단을 다시 반복해 끝을 맺는다든지, 이것을 저것과 엮어 글을 쓴다든지 하는 것들이 말이다. 하지만 글의 센스같은 것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아무래도 글의 감성이다. 1부 짝사랑, 2부 이별 후, 3부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모습, 이렇게 세 파트로 나뉜 글들 속엔 짠한 화자가 끊임없이 속마음을 꺼내놓는다. 나는 이렇게 힘들어. 나한테 그때 왜 그랬어? 나는 왜 이렇게 못났니. 나는 왜 그때 그렇게 못했을까? 고독으로 걸어가는 우울을 본 것 같아 마음이 가볍지는 않다. '20대의 사랑이야기'라고 해서 가볍게 집어들었는데, 읽는 내내 무거웠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래, 마음은 원래 무거운거였지. 사랑은 쉽지 않고, 아플 땐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지. 뭐 그런 생각들을 말이다.

그래도, 그래도 사랑은 계속 되었으면 한다. 사랑이 아프기만 한 것은 아니고, 되돌아보면 언젠가는 빛 바랜 추억으로 마주할 날이 오는 것을 이제 나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당신을 그리고 당신을 씁니다> 속 화자는 아직 모르는 것 같지만, 그도 곧 알 수 있을테다. 반짝거리는 마음이 어느 순간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싸늘해진 공기만큼 누군가가 그리운 밤, 나도 너의 행복이 소원이 되는 날이 다시 찾아오기를 바라본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소원 안에는 너의 행복이 포함되어 있었다.(4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 진작 배울걸 그랬네 - 인문학적 통찰의 힘을 길러주는 일주일 간의 서양철학사 여행
장즈하오 지음, 오혜원 옮김 / 베이직북스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고등학교에 다닐 때 배운다. 윤리와 사상이라는 모호한 과목(개인적인 생각이다)에서 소크라테스가 어쩌고 플라톤이 어쩌고 칸트가 어쩌고. 사는 데엔 다 쓸모 없다고, 이런 거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고 꽤 투덜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에게 전혀 해 끼친 적 없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투덜거렸던 건 물론 시험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상상이나 했을까. 시험때문이 아닌데 자발적으로 내가 철학 관련 교양책을 읽고 있을 줄.

여전히 대한민국엔 인문학 열풍이 분다. 쉽사리 식지 않는 이 열풍에 인문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라기보다는 뒤처지지 않으려 관심을 두고 찾아보게 되는 느낌이 든다.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또 다른 시험공부라는 느낌이 든다랄까. 사람은 참 안 변해서 "이제와서 보니 철학이 아주 재미있다!"라는 얘기는 쉽게라도 꺼내기 힘들다. 이런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초단기로 철학을 훑어볼 수 있는 책이 등장했다. (뚜둔!)

<철학 진작 배울걸 그랬네>는 서양철학 관련 인문교양 책이다. 철학의 'ㅊ'자도 모르는 생초보도 읽으면 대략의 개념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철학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이름하야 '1주일 1학과 시리즈' 중 1번 타자 되시겠다. 개념부터 발전과정, 인물과 이론, 철학이 영향을 끼친 학문까지 중요한 내용들을 간단하게나마 짚어뒀다. 중요한 모든 내용이 담겨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저자인 장즈하오가 생각하는 서양철학의 중요 부분들은 많이 담으려 노력한 듯 하다. 내용이 깊지 않아서 철학에 관심이 있다거나 한다면 다른 책을 봐야 할테지만, 철학이 마냥 어렵고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선택해서 볼 만하다. (본문 구성이 꼭 교과서처럼 생겨서 오랜만에 교과서를 편 느낌도 들고 그런다.) 책에 등장하는 내용 하나하나가 깊지 않지만, <철학 진작 배울걸 그랬네>는 서양철학의 과거부터 지금까지를 개략적으로 알 수 있다. 큰 덩어리들을 작게 작게 만들어 하나로 잘 꿰어놓은 느낌. 

요약하기 좋은 '화요일 : 기원과 발전' 부분을 잠깐 살펴보면, 이 부분은 서양철학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수많은 과정들을 함축시켜 담아 놓았다.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기 이전엔 그리스 신화가 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 우리가 이름은 잘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3명의 아테네 철학자가 서양철학의 기초를 닦았다 → 대표적으로 스토아학파가 유명한 헬레니즘 시기는 기쁨과 행복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했다 → 신학과 결합한 중세철학 시기는 그리스 철학이 몰락하고 교부철학에서 스콜라 철학으로 발전했다 → 르네상스 시기부터 시작된 근대철학은 과학과 결합을 하기도 하고 그리스 철학을 부활시키기도 했다 → 현대철학은 다양한 철학이 등장하던 시대로, 분석철학과 대륙철학이란 낯익은 이름이 등장한다. 학창시절엔 한 부분 한 부분을 꽤나 공들여 여러가지를 곁들여 설명하기도 해서 그 분량들이 심히 방대했었는데, 그 큰 덩어리들을 작게 만들어놓으니 구분하기가 퍽 용이해졌다. 어렵다는 느낌도 많이 희석됐다. 점점 파고들어가면 어렵겠지만 <철학 진작 배울걸 그랬네>는 철학의 기초를 이야기하는 책이므로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글씨도 커다랗고, 주석을 달아놓아 설명을 덧붙여놓기도 하고, 올컬러로 되어 있어 첨부되어 있는 그림이나 사진을 감상하기에도 좋고, 철학자들의 한마디들이 여기저기 등장하기도 한다. 소소한 재미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그러니 어렵다고 지레 겁먹지만 않으면 된다. <철학 진작 배울걸 그랬네>를 손에 드는 단 한 가지 마음가짐은 철학을 좀 만만하게 보는 마음 정도다. 그리고 이만큼의 기초만 일주일에 훑어낸다면 퍽 괜찮다 할 수 있을 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