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편 - I'm a loser
혼다 다카요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책에이름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정의'란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모두가 잘 알고 있고 많이 쓰는 단어이지만, 정작 단어의 뜻풀이를 하라고 하면 단어가 갑작스레 낯설어지기에 사전에서 그 뜻을 찾아봤다. 사전에서 말하는 정의란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 바른 의의'를 뜻한다. 그러니까 '옳고 바른 일을 하는 것'이 정의라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반하는 단어는 '불의'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이 소설책의 제목은 <정의의 편>이다. 그러니까 옳고 바른 일을 하는 사람들의 편에 있다는 얘기다. 누가? 주인공을 비롯한 '정의의 편 연구부' 동아리 소속 멤버들이 말이다.


이 동아리는 하는 일이 참 신기(?)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어려운 건 없어."

"우선은 정의의 편의 시선으로 세상을 봐볼 것." (68쪽)

동아리의 멤버 수를 늘리는 것을 극히 제한하고, 그 멤버들 또한 현재 정의의 편 연구부에 속해 있는 멤버들의 추천으로 스카우트를 통해 한정된 인원만을 뽑는다. (현재는 대표, 주인공 료타, 도모이치, 안경선배, 티셔츠선배, 여자선배 총 6명이다) 그런 그들이 하는 일은 꽤 다양했다. 아니 오히려 '어떤 것'이라고 정의하기 힘든 일들을 했다. 다른 동아리로의 잠입수사부터 시작해서 대체로는 조용히 사건을 마무리하는 쪽으로 약간의 협박도 동원하면서. 료타의 동아리 선배라는 사람들이 풀어놓는 썰은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만큼이나 부풀려져 있는 듯 해서 믿을게 못되겠구나 싶었지만, 료타가 하는 것을 보니 그 이야기도 맞겠다 싶은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도대체 이 동아리는 뭘하는 동아리인가 싶었다.

"여하튼 정의의 편의 시선을 잊지 마. 정의의 편의 눈에는 어쩔 수 없는 것 따위는 없어.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일은 없어. 어떤 악이라도 대응할 방법이 있어. 너 혼자서는 못하는 것도 우리와 함께라면 못할 게 없어. 그렇게 믿고 세상을 봐보는 거야." (69쪽)

그래도 이들이 꿈꾸는 것은 꽤 단순했다. 정의의 편에 서서 세상을 바라봤을 때 잘못된 행동을 상대방이 하고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하되 폭력은 쓰지 않는 쪽으로 한다. (다만 얼마간의 협박이 있을 뿐이다)


책의 시작부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료타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왕따로 지내왔고, 같은 반 친구의 셔틀이 당연했었다는 이야기가 소개됐다. 그래서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을 보지 않기 위해 전혀 연관성이 없는 대학으로 진학했지만, 고등학교때 자신을 괴롭히던 같은반 친구를 대학 캠퍼스에서 다시 만나게 된 장면이 이어졌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요구와 폭언과 구타를 당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사실 처음부터 숨이 턱턱 막혔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남을 괴롭히는 아이들의 심리도 이해가 되지 않고, 그런 아이들에게 전혀 반항하지 않는 료타의 심정도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강도는 제 3자이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독자인 내가 봐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이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시작하기에 '도대체 정의의 편은 언제 나온다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어내려갔는데, 대학 캠퍼스에서 옛 고교 동창으로부터의 괴로운 기억 소환이 정의의 편과의 인연을 만들어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미간에 계속 주름이 잡히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긴 하다)


정의의 편을 통해 료타는 친구를 얻었고, 여자친구들을 얻었으며, 선배도 얻었다. 끔찍했던 학교가 아니라 무언가를 더 하고 싶게 만드는 학교로 그 위치가 완전히 변화했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였고, 책은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다. 하지만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마냥 밝은 이야기들만은 아니었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튀어 나와서 '이건 적어둬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ㅡ "상관없는 일 따위는 없어. 네가 발로 찬 캔은 누구에게든 맞게 돼 있어. 같은 나라, 같은 시대, 하물며 같은 대학에 있는 우리에게, 네가 한 짓과 관계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 (116쪽)

ㅡ "일부러 상대의 씨름판에 올라가서 승부를 겨루고, 그리고는 졌다고 한탄하는 거 말이야. 지는 게 당연하잖아. 상대를 위한 씨름판인걸. 씨름으로 이길 수 없다면 100m 달리기로 겨루면 되는 거야. 상대의 씨름판에 올라가지 말고 자신의 판을 만들면 돼. 바르게 노력한다는 것은 그런 뜻이야." (229쪽)

ㅡ 희망에서조차 클래스가 나누어져 있다. 상에는 상의, 중에는 중의 희망이 있고, 그리고 하에는 하의 희망이 있다. 그것을 넘어선 희망은 이미 희망이 아니라 그저 꿈이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는 공허한 꿈이다. 나는 가질 수 있는 희망조차 클래스가 나뉜 세계에 사는 거다. (251쪽)

ㅡ 불공평함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의 뿌리를 썩게 하지. 어처구니가 없어서 의지가 꺾이고 노력할 의욕이 식어버리는 거야. 그래도 의지와 노력에 달렸다고 하는 거야. 그런 부당한 얘기가 어디 있냐고 항의해봤자 그런 놈들에게는 통하지 않아. (중략) 그러니까 반론 같은 건 필요없어. 놈들에게는 놈들의 논리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 논리가 있어. 우리는 우리 논리에 따라 살아가면 되는 거야." (258쪽)

 


정의의 편이라는 동아리로 인해 권력을 갖게 되고, 마치 세일러문처럼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의 마인드로 나쁜일을 막아내지만, 방벌하지는 않는다. 이 과정에서 료타가 '어떤 것이 진정한 정의의 편인가'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면서부터 사실 구심점을 잃어버린다. 정의의 편이라면서 우쭐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위기에 처한 이들을 돕는다는 명목하에 잘못 대처하고 있던 것은 아닌가 등등. 중간 쯤에 잠입(?) 수사로 인한 대마초 다단계 사건이 큰 계기가 됐지만, 정의의 편으로 인해 료타는 조금 성장했다. 사회를 똑바로 바라보게 됐고,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또한 다시 깨닫게 됐다.


나는 못난이 맞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나는 그저 못난이로 좋다. 당신네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알아. 그런 말을 듣는 강자가 되기보다는, 료타, 넌 분명히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 말을 듣는 못난이인 채로 있고 싶었다. (382쪽)

결국 이 책을 관통하는 건 이 문단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등학교때의 왕따에서 벗어나 권력을 갖게 되었으나, 그 권력 속에서 불공평함을 상기하게 된 것. 그로 인해 더 나은 생활이 될 것이 분명함에도 그를 포기하는 것. 자신의 생활을 한탄하거나 그래서 노력해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 미친듯이 노력하는 것 보다는, 나다운 것을 찾아 그 길을 걸어가는 것. 남들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 '루저'라 이름 붙여진 길일지라도,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는 용기 내어 도전하는 것. 예를 들면 그런 거다. 못 생겼다고 생각해 성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매력을 찾아 나아가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렇기에 방황이 오히려 당연한 대학생 시기에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생각들을 섬세하게 잘 담아낸 소설을 통해, 누구라도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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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1월 말까지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늦지 않고 잘 써야지, 란 생각을 가지고. 꽤나 열의를 가지고.

하지만 2월에 들어서서 책이 결정되었다는 며칠전의 문자를 받기까지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정말 까맣게 잊었다ㅠㅠㅠㅠ 중간에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바쁘기도 바빴지만 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ㅠ

지난 15기에서도 이랬던 적이 몇 번 있어서 난감했던 적이 한 두번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일이 생기다니...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분위기를 좀 바꿔서)

이번 1월에는 주목신간을 작성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이번에는 내가 어떤 책을 내놓았든 선택은 안됐을 듯 싶다.

많은 분들이 2권에 올인하신 느낌.

 

 

 

       

 

 

먼저 첫번째 책은 199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의 단편집>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써온 글들을 되돌아보고 다시 읽어보며 23편만을 뽑아 다시 고쳐 쓰고 번역한 책이다.

많은 분들이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 듯 하다. (오에 겐자부로는 이름만큼이나 낯선 작가라 그의 책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

 

두번째 책은 문학동네의 세계문학전집 136번 <시스터 캐리>이다.

역시 세상에는 너무도 유명하고 많은 작가들이 있고, 내가 모르는 작가와 작품들이 어마어마한 듯 하다.

처음보는 작가지만 생각보다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자연주의 문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라니.

어떤 느낌일지 감히 감도 안 오는데, 읽어보면 어떤 느낌일지 알 수 있겠지.

 

 

2권 모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이왕 선택된 책, 열심히 읽어봐야겠다.

물론 페이지의 압박은 (약 800쪽과 약 700쪽) 상당할테지만..

다른 책들을 줄여서라도 다 읽어내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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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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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라는 단어 자체가 낯선 나는 '무신론자'이다. 종교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편견이 없을 수 있으나, 외려 지식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대로의 예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편견이 많을 수도 있다. 그런 내게 온 <카인>은 얇은데도 불구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책이라고 해야 맞겠다. 그래서 일단 책을 읽기 전에 검색부터 해 봤다. 아무것도 모르고 책을 만나는 것도 좋겠지만, 적어도 작가는 독자들이 '어느정도' 내용을 알고 읽을 거라 생각했을 것 같아서.

 

알아보니 구약성서라는 건 기독교의 경전이라고 한다. 900년이 넘는 시간동안 히브리인들의 종교적 책.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들 뿐만 아니라 인물들도 많아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부 알려하지는 않았다. (모르는 내용을 새로 알아봐야 하는 거라서 시간도 많이 걸릴 뿐더러.) 그렇기에 책의 제목이 <카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찾아봤다. 카인은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 인물이다. '카인과 아벨'의 그 카인 아니던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기억이 있는데 즐겨보던 드라마는 아니었기에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형인 카인이 동생인 아벨을 죽인다는 것.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가 간혹 등장하기는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작가의 상상력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중간중간 어떤 일을 했다는 것이 드러나긴 하지만 그 과정이 몽땅 생략되어 있던 부분들을 이어붙이는 것. 인과관계와 인물 설정들을 자세히 해 그 일들이 어색하지 않게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 책은 그 카인과 아벨의 탄생부터 새롭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니 그 이전의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의 탄생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카인과 아벨의 탄생, 카인이 아벨을 죽이게 되는 과정 등을 단 3, 4 페이지에 마무리 해버린다. <카인>의 내용은 카인이 자신이 살던 땅을 떠나 놋에 도착하면서부터 이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 봤던 '카인과 아벨'의 지식백과 이야기는 꽤 단편적이었다. 카인은 어떻게 아내와 결혼했는가, 카인이 남을 죽이지도 또한 자신이 죽지도 않는 면죄부를 받는 것에 대해 카인을 죽이려 하려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등의 의문점만을 남긴 채 말이다. 실상 카인이 여호와의 저주를 받아 방랑을 하게 된 이후에는 어떤 자세한 내용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카인> 속의 아벨은 우리가 익히 알던 착하고 순한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고, 아벨의 그런 행동이 신이 의도한 시험이었으며, 그렇기에 카인은 자신이 동생을 죽였으나 그것은 여호와가 의도한 죽음이라는 새로운 시각의 주장을 펼쳤다. 단편적이었던 사건들이 입체적으로 되살아나 카인은 주인공으로서 책을 활보했다. 인간이기에 (물론 영원을 갖고 있긴 하지만) 불완전하지만, 또 주어진 저주로 인해 보호받을 수 있는 모습을 가지고서 말이다.

 

기존의 컨텐츠에 새로운 상상력을 더해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능력은 놀랍다. 또한 마지막 노아의 방주에서 홀로 내리는 카인의 모습은 여호와에게 전면적으로 대들었다는 느낌 또한 강하게 받았다. 글쎄, 이 책을 어떻게 설명해내야 할까 참 난감하지만, 적어도 이 책은 '오래된 컨텐츠도 다시보자'라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듯 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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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아직, 연애가 필요해
차현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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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 선샤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남자주인공은 연인과 너무도 힘들게 헤어져 함께한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려 기억삭제를 의뢰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잊어버렸던 기억 속을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게 되고, 그곳에 행복했던 너와 나의 시간들을 바라보며 자신이 멍청한 짓을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영화다.(물론 뒤에 이야기는 더 있지만 뭐 여기서 영화 얘기를 오래할 건 아니니까 넘어가도록 하고) <이터널 선샤인>은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이라는 진부한 주제였다기 보다는, 추억을 소중히하고 싶다는 생각을 만들게 하는 영화였다. 왜 <내겐 아직, 연애가 필요해>라는 책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이터널 선샤인> 이야기를 하느냐면, 이 책 역시 지나간 이와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추억을 소중히 대하는 법을 몰랐던 한 남자의 절규에 가깝다면, 책은 추억을 소중히 대할 줄 아는 여자의 기억 어디쯤의 이야기다.

 

책을 보자마자 '가볍게 읽을 수 있겠다'라고 했던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고, 생각보다 좋은 책이었다. <내겐 아직, 연애가 필요해>는 담담하면서도 화자의 느낌이 정확하게 와 닿는, 쓰인 단어 하나까지도 계산해 넣은 듯 느껴지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손이 가는대로 적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글이다. 투박하지만 소담스럽고, 그렇기 때문에 담길 글들까지 눈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드라마와 예능 작가 출신 저자의 많이 단련된 글솜씨가 넘치지도 않고 모자르지도 안았다고 느껴졌다. (이번에 처음 보는 저자였지만 말이다.)

 

맑고 높은 하늘, 그늘에 있으면 덥지 않을 만큼의 딱 적당한 온도, 부서질 듯 쏟아지는 햇살, 푸르른 공원의 싱그러움, 기분좋게 살랑이는 바람, 한 쪽씩 나눠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너가 좋아하는 음악, 무릎을 베고 올려다보면 보이는 너의 얼굴. <내겐 아직, 연애가 필요해>는 이렇게 따뜻한 상황에서 읽으면 좋을 법한 이야기들이 담긴 책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편안하고 따뜻하고. 물론 책 속의 모든 이야기에 이렇게 따뜻함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책을 다 덮은 후에 드는 '그래, 사랑.. 좋지'라는 생각이다.  "나는 당신이 이 책을 단숨에 읽다가 누군가가 떠올라서 뛰쳐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 제발, 보고 싶은 사람을 보는 일은 미루지 않았으면 한다." 라는 저자의 첫 문장은 이 책의 존재 이유이다.

 

책 속에는 총 8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모두 저자의 지나간 사랑들이다. 저자는 이들과의 만남부터 어느 순간까지 (그것이 열렬히 사랑하다 맞은 이별이 됐든, 사랑 그 근처 어디쯤에서 배회하다 이뤄지지 않은 사랑이 됐든) 그 순간의 자신의 마음을 남김없이 글로 꺼내어 놓았고, 자신을 바라봐 줬던 혹은 바라봐 주길 원하던 당시의 남자들의 행동들도 꺼내 놓았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남자에게서 느껴보았던 안정감, 사랑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없는 남자지만 편안함 속에서 저도 모르게 받아들였던 확신, 어쿠스틱한 비누 냄새가 났던 파란 눈의 조각상같은 남자와의 싱그러움, 장난치는 게 좋았던 나이 어린 연하남과의 조금은 과격했던 끝맺음, 마을 위에 서 있는 한 그루 봄 나무 같았던 남자와의 낯섦에서 찾던 현실도피까지.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 속 남자들은 그녀가 반했던 포인트가 하나씩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었고, 책을 읽는 나조차도 그들의 매력에 빠질 수 있게끔 멋진 사람들로 등장했다. (물론 취향이라는 게 있어 모두가 '내게' 매력적인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같은 추억이라도 다르게 적힌 다는 것을 말이다. 저자의 이야기들이 온전히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다른 기억은 아마도 그들과 직접 맞춰가야 제대로 된 퍼즐이 완성될 것이다. 하지만 완성되지 않은 퍼즐이면 어떤가. 그저 그들이 그녀의 곁에 잠시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그들을 가끔씩 꺼내보며 가슴 한켠이 따뜻해 질 텐데 말이다. 절절하게 눈물 나는 사랑이야기도 좋지만, 담백하게 여운이 남는 사랑이야기도 좋다. 특히나 남의 사랑이야기가 좋다. 내가 아닌 다른이가 사랑 때문에 행복하고 고민하는 모습들이 보기가 좋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감정들을 만날 때마다 신기하고, 조금은 평범한 내 연애보다 아기자기한 그들의 연애를 보면서 불끈 의지를 다지기도 하고. 어쨌든 나는 이런 사랑 감정들이 좋다는 것이다.

 

ㅡ 누군가가 내게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것, 그 확신이 손끝으로 느껴지는 것. 그가 보여주고 있는 마음이 만져진다는 것. 이걸 뭐라고 하는거지? 사랑의 그립감? (중략) 롱디?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무슨 상관이야? 마음이, 만져지는데. (61쪽)

ㅡ 어떠한 난기류라도 결국엔 다 지나간다고 분명 그가 말했었다. (105쪽)

ㅡ 나는 지금 본격적으로 용기의 시간으로 간다. (161쪽)

ㅡ 나는 노력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노력하지 않는 것'은 사랑한다. (287쪽)

 

그런 사랑 감정들을 바라보면서 나의 지난날을 돌아본다. 나의 지난 연애들은 지극히 평범했지만, 만나게 돼서 행복했었고, 가끔씩 꺼내보면 하이킥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유치했다. 그런데 누가 그랬다. 원래 사랑은 유치한 거라고. 비록 저자처럼 예쁘게 사랑을 추억하는 일은 못하지만 나는 나대로의 추억방식이 있는 거니까. 원래 사랑이야기를 보면 '아, 나도 사랑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야 정상이다. 현재 솔로라면 당연히 이 반응이어야 하고, 곁에 누군가가 있다면 '아, 남자친구(혹은 여자친구)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내겐 아직, 연애가 필요해>는 '누구는 잘 있나 모르겠네'라며 지난 추억을 뒤적이게 만든다. 유치한 추억이라도 다시 꺼내보며 빙그레 웃게끔 만들어준다.

 

사는 게 바빠서, 아프게 헤어져서, 이미 지나간 연애니까 등등 박스에 넣은 채 그 주위를 박스테이프로 밀봉한 사람들이 아마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그렇게 밀봉해 한 켠으로 밀쳐둔 그 박스가 생각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붙여놓은 테이프에 칼집을 내 뚜껑을 열고 오랜만에 '너'를 추억해 보는 일도 생기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생각하겠지.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다. 기억 속에 저장해 둔 나만의 기억은 언제나 그렇게 편집되는 거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 기억 속 너를 꺼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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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종말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딜로이트 컨설팅 지음 / 원앤원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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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변화하는 미래에 발맞춰 대처해 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미래라는 것이 오늘이 쌓여서 생기는 것인데, 당장 오늘도 알기 힘든 세계가 아니던가. 그런데 또 공급을 하는, 그러니까 고객의 니즈를 미리 파악해 무언가를 한 발 먼저 만들어내야 하는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미래에 대한 예측은 무조건 필요하다. 앞으로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기 위해서도 그렇고, 좀 더 전망이 밝은 분야(블루오션)를 선점해 많은 이득을 보기 위해서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자료들과 통계를 통해 조금이라도 미래를 예측해 보려는 것이고, 그 정보를 가지고 어떤 수를 둘 것인가에 대한 엄청난 고민을 필수적으로 할 수 밖에 없다.



많이 낯선 이름인 책의 저자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과 '딜로이트 컨설팅'은 기업들에게 다양한 산업 및 공공부분에서 회계감사, 세무자문부터 (안진회계법인) 경영, 마케팅, 운영조직에 이르기까지 (컨설팅) 기업의 사업 전반을 기민하게 도우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딜로이트 글로벌'의 한국 회원사라고 보면 된다. <경계의 종말>이라는 책을 쓴 이 그룹은 현재 우리나라 대표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된 상태인데, 이 상태에서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중국의 가격과 기술력에 밀리고 또다시 일본의 엔저로 인해 밀리게 될 거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위아래로 두들겨 맞는 샌드백 상황에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21세기 산업 패러다미 전환의 테마인 글로벌 스마트 디지털 융합의 관점에서 정부의 개혁과 기업의 혁신이 병행되어야 한다'(13쪽) 고.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 책은 향후 5년간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예측해보고, 살펴보고, 기업들이 그에 따라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하는 것이 좋은 지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딜로이트의 세계 최고 수준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그 속에서 대한민국 기업 특색에 맞게 책에 설명을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책은 '사업'을 하는 이들에게 퍽 잘 어울리는 책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의 변화는 빠른 속도에 국한되지 않고 각 부문 간의 경계 자체를 없애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지금까지 기업, 경제, 사회의 진화를 결정했던 기존의 경계와 제약이 희미해지고 심지어는 와해되고 있다. (19쪽)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으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도 흐려지고 있다. 각각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 달라서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대척점에 있던 것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경계를 허물었고, 명확하던 모든 것들이 흐려져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계기를 만들었다. 물론 새로운 가능성이 또 다른 경계를 만들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딜로이트는 이를 기업들에게는 큰 기회로 봤다.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후 제조업부터 금융, 보험, 유통, 소비재, 인지기술, 운송, 에너지, 의료, 공공분야에 이르기까지 총 10개의 분야에 걸쳐 앞으로의 발전 예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조업은 제품이라는 한정된 것을 생산해내는 것에서 벗어나 유기적인 서비스나 플랫폼을 함께 제공하는 쪽으로의 변화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하고, 큰 유통업체들에게는 소비자들이 필요한 대안을 대신 미리 찾아주는 퍼스널 쇼퍼 개념 도입을 권고한다. 조금은 낯선 '인지기술' 챕터에서는 '통상적으로 인간의 지각력과 인지력이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많은 업무를 대신 수행할 수 있는 기술에 적용되는 일반적 용어'라는 설명과 더불어 디지털 발전에 따른 스마트한 온라인 쇼핑의 확산, 그를 위한 기업들의 디지털 기술 투자 등을 미루어 볼 때 '때가 왔다'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인지 기술에 대한 미래를 높게 평가했다. (물론 그를 위해서는 디지털 기술의 고급화, 자동화가 전제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런 식으로 책 속에서는 굉장히 많은 사업들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그로 인해 필요한 것들을 주문한다. 그들의 분석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통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정확한데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미래는 치밀하다.​ 물론 단순히 책 몇 페이지로 실현 가능한 이야기는 절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딜로이트에서 그렇게나 많은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의 보고서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신기한 세계를 경험하게 된 듯 하다.


디지털 기술은 기존의 안정된 환경을 뒤흔드는 ​위협이 되지만, 핵심 역량을 보유한 준비된 기업에게는 새로운 시장에 대한 접근 장벽을 낮춰주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준다. 새로운 트렌드와 기술 변화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일 뿐만 아니라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가능성과 기회를 열어주는 열쇠가 되고 있다. (400쪽)

책을 닫는 위의 문장은 이 책의 존재 이유를 대변한다. 새로운 가능성은 준비된 기업에게는 퍽 쉽게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산업들이 미래를 위해 내달리고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딜로이트 그룹에서 내놓은 잘 차려진 보고서는 다시 한 번 비상을 꿈꾸는 기업들에게는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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