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 - 남인숙의 여자마음
남인숙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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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처음부터 나름 무시무시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라니. 남편들에게는 꽤 매정해 보이는 제목이 아닌가. (물론 반기는 쪽도 있겠지만) 예의상이라도 다시 태어나면 너랑 살아주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다시 태어나면 너랑 결혼 안 할건데?라고 이야기하는 책 제목이 말이다. 그래서 굉장히 호기심이 일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았기에 제목이 이런(?) 걸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좀 더 범위를 줄여보자면,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는 중년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범위를 구체화 해보자면 '중년 여자 작가가 이야기하는 중년 여자의 이야기'가 되겠다. 일상적으로 흔히 마주하는 아내, 엄마, 여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중년이 될 예정이거나 중년이거나 중년이었던 여자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유머러스함을 놓치지 않는 작가의 글솜씨는 보너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지금까지 내가 산 인생을 통틀어 가장 늙었으나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 이유를 찾고 싶어져 '젊음을 잃어가는 대가로 얻고 있는 것들을 숨은그림찾기 하듯 하나하나 찾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러니 이 책은 작가가 찾은 그 숨은그림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공간이다. 그러면서 '나이 들어가는 지금이 더 좋고,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이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 앞으로 펼쳐질 책 전체의 '분위기'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책 재미있을 것 같아!


기본적으로 에세이 형식이기 때문에 쉽게 읽힌다. 유머러스함을 시종일관 놓지 않기 때문에 재미도 있다. 하지만 쉽게 읽히는 이야기들 속에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겪을 수 밖에 없는 중년 여자의 삶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그래서 조금씩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다는 것, 탱탱한 젊음은 가고 유연한 지혜가 온다는 것, 그래서 나이가 드는 것이 괴롭지만은 않다는 것. 아직은 중년 여자가 되지 않은 내가 느낀 감정들은 이렇다. (엄마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가슴이 깊숙히가 아닌 머리여서 아쉬웠다는 것만 빼면.) 하지만 책은 '중년 여자'로 주제를 한정하지만은 않는다. 보편적인 '나이 들어감'에 따라 느끼는 감정들도 무수히 등장한다. 그러니까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는 '나이듦의 즐거움' 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중년 여자로서 느끼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기에 나이 들었다고 '꼰대짓' 하는 어른들의 모습에 의문을 품는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한다. '나이로 대접받고 싶어 하는 건 초라하게 나이 들고 있다는 증거다'라는 제목이 있을만큼 (하나의 이야기로 묶일만큼) 작가는 나이가 유세인 양 이야기하는 어른들의 말도 안되는 고집들을 경계한다. 나이를 먹는 것 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노화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난 나이로 대접받지 않고 나 자체로 존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나이 듦의 방향을 정했다"(115쪽) 라는 작가의 결정은 나중에 내가 따라하고 싶을만큼 젊고 나이스한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나이스함과 반대로 얼굴에 주름이 늘어가는 것에 슬퍼하고, '아줌마'라고 불리는 것에 발끈하며, 할머니옷(?)에 눈독 들이게 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늙어 보이기 싫은 건 만국 여자들의 공통일 테니까. "자연스럽게 나이 들고 싶다. 그렇다고 오면 오는 대로 세월을 정통으로 맞을 생각은 더더욱 없다. (80쪽)" 그래서 작가는 매력적으로 나이 듦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기도 한다.


한 때 모두가 주연이었던 우리는 이제 몇 계단 아래로 내려와 조연으로서의 삶을 즐길 때가 된 것 같다. 때가 되었는데도 주연 자리에 미련을 놓지 못하고 새로 올라오는 이들의 손마디를 밟아 떨어뜨리는 이의 모습은 추하다. 나는 삶의 횡단면에서 주연 사퇴를 한 요즘이야말로 내 삶에서는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타인의 기대와 시선, 무지와 부족한 판단력 등에 묶여 꼭두각시 주연으로 살아온 젊은 날에서 해방되어 내가 쓰는 대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진짜 주연 말이다. (68쪽)


아무래도 내가 가장 관심이 있던 부분들은 '나이 듦'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아직은 내가 닿지 않은 세계이고, 그렇기에 그 세계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듣는 것조차 재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에는 결혼생활과 육아, 워킹맘으로서의 이야기까지 많은 것들이 포괄적으로 담겨 있다. 귀엽고 엉뚱한 시선의 작가 모습을 지켜보는 매력이 쏠쏠하니, 여자들이라면 한 번씩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폭풍 공감을 일으킬만한 주변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할 테니 말이다. 여자 마음은 여자가 가장 잘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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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남자 요즘 연애
김정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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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남자'들의 '요즘 연애' 이야기가 담긴 책이 나왔다. 책 이름은 <요즘 남자 요즘 연애>. 책 이름이 꽤나 직접적이다. (제목에서 언급하는 '요즘 남자'라는 것은, 특별한 남자의 종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그냥 현대를 살아가는 남자들을 에둘러 표현하는 말일 뿐이다.) 세상이 많이 변화한만큼 연애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고, 남자들의 모습도 그대로인 듯 많이 바뀌었다. 어디가 어떻게 바뀌었다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연애에 관해 꽤나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 책에서 '요즘 남자'들의 속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남자 요즘 연애>의 성격은 저자의 '책머리에'에 나온다. "엿보기 어려웠던 남자들의 수다를 풀어냈지만 꼭 남자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다. 이해와 이별 사이에서 지금도 고민하고 있을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6쪽)" 라고. 그러니까 <요즘 남자 요즘 연애>는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보편적인 사랑이야기라고 한다면 누구나가 생각하는 그런 사랑 이야기가 맞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사랑을 하고, 만나기만 하면 꿀 떨어지는 시간들을 지나, 함께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느끼게 되는 그런 시간들을 거쳐, 이별에 이르기까지의. 하지만 그런 보편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보편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주체가 남자 넷이라는 것이다. <섹스 앤 더 시티>의 남자 버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던 작가의 바람대로 하는 일도 성격도 다른 네 명의 남자들은 여자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수다'를 선사한다. (<요즘 남자 요즘 연애>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만났던 신선함은 '남자들의 수다'였다.) 여자들의 시시콜콜함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남자들의 수다도 또 다른 매력이 있는 듯 했다. 수다에는 늘 술이 빠지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그럼 작가가 만들어낸 <섹스 앤 더 시티> 남자판 등장인물 소개를 좀 해 볼까. 먼저 화자인 '나'가 있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한 듯 한 주인공인데, 에세이 속 이름은 '태희'이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연애칼럼을 쓰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는 중이다. 여자는 믿지 않지만 사랑은 믿는다는 주의. 그리고 그의 고등학교시절부터 친구인 '준'은 현재는 소셜데이팅앱을 개발하는 벤처기업 대표이자, 과거에는 애널리스트와 게임 tv 아나운서 등의 직업을 가졌던 화려한 직업란의 소유자. 사랑에 데인 기억이 너무나도 커 여자는 믿지만 사랑은 믿지 않는다. '주영'이라는 친구는 인간문화재 아버지를 따라 가업(아버지는 칼을 만든다)을 잇는 게 싫어 집에서부터 도망쳤다. 현재는 요리사. 여자와 사랑 모두 의미가 없다며 믿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친구 '세운'은 기간제 교사로, 여전히 여자와 사랑 전부를 믿는 쪽. (챕터 1의 3번 이야기 참조) 프롤로그에서 태희가 실연을 당하자 모두 솔로였던 친구들이 의기투합해 그에게 위로 비슷한 걸 건네는 부분부터 본격 등장하는 4명의 친구들은, 여자에 대해 꽤나 솔직하면서도 대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 와중에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말들이 속속 등장하는데, 여자인 내가 봐도 공감가는데 남자들이 보면 얼마나 더 공감할까 싶은 내용들이 많았다. 여자로서는 '아, 남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엿볼 수 있는 꽤 재미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풀리지 않는 매듭은 그냥 잘라버리는 편이 나아." 남녀 관계 역시 그렇게 꼬여버리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고. 아무렇지 않게 내버려뒀던 감정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복잡해져서 도무지 어찌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오면, 그냥 그땐 잘라버리는 게 나은 것 같다고 말하며 유턴을 했다. (63쪽)


책 속에는 태희와 친구들의 이야기가 1인칭 소설처럼 혹은 에세이처럼 이어진다. 그 이야기들 사이에는 유기적인 관계가 있어서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 하나의 챕터가 끝나는 식이고, 앞의 이야기와 뒤의 이야기가 굉장한 텀을 두고 혹은 짧은 텀을 두고 이어지기도 한다. 쉽게 읽히고 그래서 흥미로웠다. 이들이 경험하는 이야기들이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 거기에 남자의 이야기들을 여자가 보더라도 괜찮을 만큼 '순화'해서 적어놓았으니 말이다. (실제 남자들끼리의 이야기들은 순화하지 않으면 여자들이 많이 낯선 법이라 했다.) 그 와중에 연보라색 종이에 적힌 이야기들은 태희와 친구들의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들이다. 태희가 프롤로그에서 쓰기 시작한 '사랑은 없다'라는 가제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는 '도남'이라는 주인공이 있고 ('도시 남자'의 준말이다.) 어떤 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룬다기보다 '사랑'에 대한 포괄적인 이야기를 주로 한다. 뜬구름을 잡는 듯한 느낌이지만 읽어보면 공감이 될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느낌.


이해를 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이별에 가까워지는 과정이 바로 연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모든 연애는 이별이란 허무한 결말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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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들로부터의 위로 - 넘어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힘
무무 지음, 이지수 옮김 / 프롬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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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서리에 부딪혔을 때, 결국 나를 지켜주는 것은 사소하다 여겼던 행복의 조각들입니다.

내딛는 말의 이 문장이 너무도 좋았다. 작가의 말들은 대체로 책의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기에 꼭 읽어보는 편인데, 무무의 글이라 첫 장부터 취향을 저격당한 문장을 만났다고나 할까.

 

사실 <사소한 것들로부터의 위로>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에세이집은 아니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 일종의 처세술 책이다. 그동안 작가 무무가 썼던 <오늘 뺄셈>이라든가 <사랑을 배우다> 등의 책들에서처럼, 책을 인용해서 옛날 이야기를 인용해서 하고 싶은 글을 이어나가는 방식은 비슷하다. 따뜻한 무무의 시선도 비슷하고 유려한 글솜씨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자기계발서 같지 않은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을 받는다. 게다가 제목까지 이렇게나 감상적이니, 읽는 내내 '자기계발서의 탈을 쓴 에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무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오랜만에 나온 신작 <사소한 것들로부터의 위로>가 반가운 것만은 변치 않는 사실일 듯 하다.

 

자기계발서, 특히 '힐링'이라는 단어를 위시한 자기계발서들은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내가 모르고 있는 사실을 늘어놓는 것도 아니고, 모두 알고 있는 사실들을 마치 '너무도 새로운 진실'인 양 써 놓는 글들을 아주 자주 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힐링'이라는 단어, '위로'라는 단어에 반응하는 것은 그만큼 팍팍한 삶에 지쳐서일텐데 독자의 머리위에서 배놔라 감놔라 타령하는 글들은 전혀 유쾌하지 않고 말이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무무의 이번 신작 <사소한 것들로부터의 위로>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다. 무무가 하는 이야기도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고,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모든 게 본인에게 달렸다는 요지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역시나 이 부분들은 내가 그다지 좋아하는 부분들은 아니다. 하지만 난 무무의 그 따뜻한 글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내 취향저격 '문장'들을 찾아다니는 데 몰두했다. 작가의 주옥같은 이야기들 또한 물론 좋지만, 역시 위로와 힐링은 내게는 좀 맞지 않는 단어같다는 느낌을 다시 한 번 받으면서 말이다.


 

인생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화려한 수채화든 정갈한 소묘든 나름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그림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이다. (31쪽)

 

나는 내가 가진 그 어떤 것도 영원히 붙잡아 두지 못했다. 어떤 물건을 평생 간직하고자 하면 금방 잃어버렸고 사랑을 붙잡아 두려 하면 떠나갔다. 이후에야 깨달았다. 무언가를 소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붙잡지 않고 놓아주는 것임을. -미국 작가 닐 도날드 월시 (71쪽)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주변에 나쁜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고약한 함정이 많은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괴로운 일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다. (110쪽)

 

세상에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아무리 세차게 내리는 비도, 우중충하고 어둑어둑한 날씨도 언젠가는 맑게 개고 따스한 햇볕이 비출 것이다. 그때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비가 내린 후의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로운 공기가 얼마나 깨끗하고 상쾌한지 말이다. (265쪽)


 

책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 내려놓음에 대한 찬사, 어린아이같은 단순함의 힘, '행복'에 관한 고찰,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 포괄적 삶에 관한 이야기까지 총 6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나와 주변, 결혼생활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그 모든 이야기 속 중요한 무게의 추는 '나'에게 있다. 나를 사랑하고,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마음 편한 모자람을 선택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선택을 했다면 후회하지 말고 돌아보지 않는 게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삶이 될 것이며, 무엇보다 오늘을 살아가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을테다, 같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하나의 이야기를 해 나가는 데 있어 2~3가지 이야기들로 예시를 들어주어 그 상황의 안타까움들을 직접 눈으로 보게 만든다.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게 매끄럽고 마치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만큼 구성도 뛰어난 편이라, 읽는 데 지루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적재적소에 넣인 예시들은 글을 읽는 내내 생각하게 하거든. 결국 <사소한 것들로부터의 위로>에는 오늘의 나를 사랑하는 방법들이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닌 듯 하다. 자기 자신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바른소리 모음집 같은 느낌도 난다. 읽는 내내 '잘 사는 것이란 뭘까'란 생각을 하게 했던, 중심을 바로잡기 어려웠던 이들을 향한 메시지북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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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모신 하미드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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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되게 뭔가 있을 것 같은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처음 보는 소설인데 되게 낯이 익었다. 그런데 그럴 수 밖에 없다. 이런 내용들은 그동안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많이 다뤄졌던 이야기들이니까. 아침드라마나 TV소설 드라마 등등에서 막장 설정을 소거하면 딱 이런 내용들이 넘치고 차일만큼일테다. 그런데 또, 자수성가해서 번듯한 기업을 이루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에서도 들을 수 있다. 현재는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의 위치에서 빠진 지 꽤 된 우리나라지만,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우리도 저 위치에서 지금으로 올라왔으니 이런 이야기가 낯선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실 책을 읽으면 자연히 알게 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국가가 작가가 태어난 파키스탄인지 인도 어디쯤인지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작가는 나라 이름을 굳이 지명하지 않음으로써 '국가' 속에 여러 국가를 소환하게끔 만들어뒀다. 그래서 우리나라, 지난 시간들 속의 대한민국을 소환해도 그리 어색하지는 않다. 

 

조금은 특이한 설정을 가지고 있는 책이 바로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이다. 자기계발서의 형식을 빌리고 있기 때문인데, 작가인 모신 하마드는 처음부터 이렇게 이야기한다. "혹시 지금 자기계발서를 쓰고 있는 사람이 들으면 섭섭한 얘기겠지만, 자기계발서라는 말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11쪽) 라고. 그러니까 자기계발서의 형태를 빌려 소설이 진행되는 이 책은 처음부터 자기계발서를 향한 디스의 시작인 것이다. 물론 뒤에 자기계발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며 자신은 '자기'라는 말의 모호함이 어떨 땐 즐겁다며 이 책을 시작하긴 하지만 말이다. 어찌됐든 이 책은 자기계발서처럼 '어떻게 하면 된다'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공식은 각 챕터의 제목으로 달려 있다.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되는 법은 총 12가지다. 도시로 이사가고, 교육을 받고, 사랑에 빠지지 않고, 이상주의자를 멀리하고, 고수에게 배우고, 스스로를 위해 일하고, 폭력사용을 마다하지 않고, 관료와 친구가 되고, 전쟁 기술자들을 후원하고, 부채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고, 출구 전략을 마련하면 된다고 말이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제목이 의미하는대로 소설 속 주인공인 '당신'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행동해 나가면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뒷받침한다. 특이하게 이 책은 '당신'이라는 존재만이 등장하며, '당신이 어떻게 행동하면 된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현실의 각박한 이야기들은 꽤 상세히 그러나 덤덤히 언급하고, 주인공 '당신'이 저지르는 조금은 잔인한 일들 또한 꽤나 사무적으로 전달한다. 이런 방법은 독자로에게 이 소설이 소설이라고 느끼기보다는 그저 하나의 예시로 느껴지게끔 한다. 이걸 2인칭 소설이라고 이야기하던데, 꽤 신선한 소설 진행방법이었다. 

 

나는 책들 중에서 '당신'이 살아가는 인생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1장 분량 정도의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의 글들에 눈이 더 많이 갔다. 사실을 잘 표현해낸 이야기들은 묘한 공감이 아닌 격한 공감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따금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있기도 하고 말이다. 자기계발서의 애매모호함이 좋다던 첫번째 챕터의 이야기도 그랬고, 상상한다는 것은 곧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뜻이다. (105쪽) 같은 이야기가 들어 있던 6번 챕터도,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로부터 망명을 떠나온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야기를 쓰고, 또 그 이야기를 읽는 것은, 망명자 신분으로부터의 망명자가 된다는 뜻이다. (221쪽) 같은 이야기가 들어 있던 12번 챕터도.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가 되는 방법이란 건, 일생을 열심히 앞을 보며 달려가야 한다는 결론이 등장한다. 일평생 열심히 살다보면 더럽게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정도다. 그것도 떠오르는 아시아, 그러니까 개발도상국의 한정이라는 조건이 붙고 말이다. 그래서 이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은 자기계발서라는 것들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무슨 법칙인 양 설명해 놓기도 할 때가 있을 때처럼 조금은 허무한 이야기다.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가 이렇게나 담백하게 다가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러면서 덧붙인다. 부자가 되는 것은 이제는 생존이라고 말이다. 충분히 부자였음에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버리며 생존에 위협을 받았던 '당신'을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 삶이 무의미하거나 가치 없는 건 아니고, 충분히 아름답고 값진 인생을 살아낼 것(책 뒷표지)이라는 위안 또한 함께 전해준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잘 살고 있다. 비록 앞만 보며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면서 힘들게 걸어가고 있더라도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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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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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은 내가 추천한 책은 아니었지만 신작들을 훑어볼때 한 번 보기는 했었다. (다만 내가 추천하지는 않았을 뿐.) 그러니 내게는 낯설 이유까지는 없었지만 또 그렇게 친근할 이유도 없는 책이었다. 그런데 <지극히 내성적인>이라는 이 책 제목이 묘하게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지? 어디서 들었지? 책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기억을 더듬어가다가 생각났다. 아, '빨간 책방'. 코너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김중혁 소설가가 진행하던 그 코너에서 들었던 기억이 났다. 이 코너는 아무래도 내가 빨간책방을 듣지 않은 이후 새로 생긴 코너 같은데, (간단하게 코너 소개를 하자면) 책을 쓴 작가가 직접 자신의 글을 육성으로 읽어주는 코너다. 늘 빨간책방은 라디오처럼 흘려들어버릇 해서 질문이 어떤 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거 하나는 기억난다. 제목이 <지극히 내성적인>인 이유는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라는 단편소설의 제목에서 가져온 것인데, '살인의 경우'라는 단어가 소설집의 성격을 부여해버리는 것 같아 뺐다는 이야기. 제대로 된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이야기했던,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소설 제목의 이유는 그랬다.

 

이 책 <지극히 내성적인>은 최정화 소설가의 단편 모음집이다. 호흡이 짧지만 그 속에서 하고픈 이야기를 묘하게 쏟아내는 재주가 있는 최정화 작가의 글들을 한데 모아 볼 수 있는 소설집. 창비의 신인소설상으로 데뷔해 소설가의 길을 걷고 있는 그녀는 내게 낯선 작가임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녀의 글들은 섬세했고, 일상 생활과 밀접해 있는 글들을 썼다. 누군가는 쉽게 지나쳤을, 일상적이지만 그 속에 있는 규칙적인 것들에서 벗어난 것들. 이를테면 닳은 구두라든지, 틀니를 빼놓은 남편의 보기 흉한 얼굴이라든지, 소설가가 두고 간 종이칼이라든지. 각각의 이야기에는 그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물건(혹은 상황)이 존재하고 그것들을 긴밀하게 상상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나 책의 첫인상을 판단하는, <지극히 내성적인>의 첫 번째 단편 '구두'는 읽고 나서 소름이 끼쳤다. 모든 것은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고 그저 주인공이 상상으로 그려낸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상상을 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상상이 돼서였다. 그저 도우미를 구했을 뿐이고, 구두를 잘못 신고 간 간단한 줄거리였음에도 그 이야기 속에서 시종일관 흐르는 불안한 상상들은 끝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야기했다. 더군다나 마지막 문단, 그 여자가 내 구두를 탐낸 거라면, 그래서 바꿔 신고 간 것 뿐이라면 그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중략) 하지만 전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 여자가, 자기가 나인 줄로 착각하고 내 구두를 신고 갔다고 말이에요. (26쪽) 부분을 읽다보면,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다음장으로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예민도 이만하면 병이고, 망상도 이런 망상이 없겠지만, 덩그러니 현관에 남은 그 여자의 신발을 보면서 했던 불안한 상상은 읽는 이에게 소름을 돋게 하기 충분했으니까. 이런 불안하고 묘하게 어긋난 이야기들이 계속 등장한다. '홍로'라는 소설은 책 속에서 유일하게 귀여운 듯한 느낌의 소설이었고, '오가닉 코튼 베이브'는 세상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주인공이 안쓰럽게 보이면서도 위태로워 보였다.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는 '구두'와는 또 다른 망상으로 인해 일어날 일에 관한 결말로 이 또한 묘하게 어긋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예민하고 망상적인 태도들이 10가지의 이야기들 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 읽는 내내 소름끼쳤던. 작가는 이 <지극히 내성적인>을 읽고 일상생활 속 작은 것들을 보는 눈이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달라지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 기왕이면 작은 것들 하나에도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는 예민함을 가질 수 있기를 말이다. 나같은 경우는 귀찮아서라도 세세한 것들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인데, 왜인지 이런 세세함들에서도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신 그것이 불안한 상상이 아닌 즐거운 상상 쪽으로 말이다. 일상이 불안한 울림이 가득한 상상이라면 힘들 것 같으니까.

 

사람에게 그다지 좋지 않은 울림을 가져다주는 불안을 이렇게나 섬세하게 이야기로 엮어낸 작가의 다음 글이 기대가 되는 바이다. 적어도 이런 불안들을 잘 엮어 내는 작가라면 다른 느낌의 글들도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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