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비만 차라리 운동하지 마라
전희연 지음, 이동규 감수 / 건강매니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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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비만과 비만의 차이점은? 

고도비만인 사람과 비만인 사람이 같은 처방을 받는다면 그 결과는 같을 수 있을까?


사실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세상에 나와 있는 '살을 빼는 방법'들에 굉장히 관심이 많지만, 그 모든 것들을 해보기엔 나는 시간과 비용과 노력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그 방법들에 완전히 관심을 끊어버릴 수도 없는 나는 세상 모든 여자들이 그러하듯 일종의 '다이어터'다. 어떻게 하면 살이 빠진다더라, 이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살이 빠졌다더라. 아침이든 밤이든 정보를 준다는 프로그램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멘트들이다. 하지만 단순히 누가 살을 뺐다더라 하는 정보들 말고, 고도비만과 비만의 차이점을 세세히 알고 있는 일반인들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체육 관련, 의학 관련 등 공부하면서 배우게 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고도비만과 비만은 같은 처방이 아닌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일반인은?


추천사의 많은 의사들의 말처럼 더이상 비만은 단순한 에너지 불균형의 문제가 아니다. 고도비만인 사람들에게는 비만이 자신의 건강을 위협하는 일종의 질병이며, 비만과 함께 동반되는 여타 다른 질병들(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의 성인병)을 개선하기 위한 치료 목적으로써의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인식은 '비만인=게으른 사람'이라는 색안경을 장착한 채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몸 상태가 고도비만인지 아닌지에 대한 인식도 없는데다, 어떤 것이 자신에게 더 필요한 정보인지조차도 선별하지 못하고 있으니, 인식 개선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먼 미래의 일이라고도 느껴진다. 


그래서 이 책 <고도비만 차라리 운동하지 마라>는 자극적인 책의 제목만큼이나 고도비만에 대한 이모저모를 알려준다. 고도비만에 대한 잘못된 인식, 그로인해 잘못 처방되고 있는 고도비만의 치료법들까지. 거기에 고도비만을 탈출한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적어도 '고도비만은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 정도는 알게 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고도비만 차라리 운동하지 마라>는 고도비만에 대한 정의부터 새로 한다. 


평균보다 체중이 조금 더 나가는 과체중과는 달리 고도비만은 암과 같이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 질병입니다. 고도비만은 이미 지방세포자체가 심각하게 변성되어 있어 일반적인 노력만으로는 정상으로 복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지방의 흡수와 분해 식욕과 연관된 신체의 호르몬 체계 또한 모두 틀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고도비만은 일반적인 섭취 칼로리량의 제한이나 운동량의 증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69-70쪽)


이와 더불어 한국형 비만은 서구형 비만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과 서양에서 효과가 있다는 약들을 그대로 한국형 비만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해외의 유명 다이어트 프로그램들의 이야기도 가져와 요요없이 감량한 몸무게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출연자 중 1명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과체중과 고도비만을 나누는 척도를 알려주고, 비만 관련 치료를 하는 의사들의 선입견 같은 팩트들도 전해준다. 간과하기 쉬운 고도비만과 우울증의 상관관계도 살짝이지만 다루고 넘어간다. 책의 대부분은 고도비만 탈출 사례들이지만, 그 이야기들 속에 팩트들을 간간하게 집어 넣어서 사례들만 나열하는 것과는 다른 '정보' 또한 전해주는 식이다.  





하지만 분명히 해 둘 것은, 책에 나온 '고도비만의 해법'이라는 것은 식이요법과 운동이라는 틀에 박힌 '왕도'가 아닌, 의학적 시술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물론 맨 마지막 장은 고도비만인 사람들도 따라할 수 있는 운동들이 소개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부분을 제외한다면,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왜 고도비만 탈출을 위해서는 의학적 시술이 필요한가?'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고도비만은 일회성으로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며, 성인병 질환들과 같은 만성질환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 약을 먹거나 완전히 제약된 식이요법을 통한 다이어트를 한다해도 반드시 요요가 온다는 것. 한국인의 고도비만은 잦은 다이어트와 요요로 인한 체내 성분 변화로 인한 것이라는 것. 꼬여있는 성분들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는 급격하게 살을 빼는 것보다는 천천히 자신에게 잘 맞는 방법으로 살을 뺄 수 있는 시술법이 동반되어야만 한다는 것.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대체로 이런 내용들이다. 고도비만이 아닌 사람들이 본다면 '뭐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TV에서 이야기해주지 않고 병원에서도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고도비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시술들의 종류, 그 시술의 위험성과 적합성, 성공사례 등을 통한 이야기들이 아주 자세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독자에게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기에는 충분하다. 또한 비만 관련 수술 중 대표적인 '지방흡입술'의 경우 미용을 목적으로 하는 시술이라는 것을 전제하기도 해서 다른 시술들과는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추천. (이미 지방흡입에 대한 것들까지 검색을 하는 정도라면 과체중 그 이상은 될 테니 말이다.) 





<고도비만 차라리 운동하지 마라>를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고도비만이 더이상 게으름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쯤은 인식하게 될 것이다. 고도비만으로 가기까지의 과정은 게으름의 산물이었을지는 몰라도, 고도비만에서 체중을 끌어내리는 것은 게으름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는 것을 말이다.


고도비만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고도비만인들은 절대로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저자. 시술을 선택하는 것이 더이상 '쉽게 살을 빼는 방법'이라는 인식이 희미해지고, 고도비만 또한 죽을 때까지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이라는 인식이 뿌리 박힐 때까지 앞으로 얼만큼의 세월이 더 걸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고도비만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를 알고 그를 실천해나간다면, 고도비만에서 탈출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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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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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이라는 한 단어, 덩그러니 환하게 불을 밝힌 집 한 채가 그려져 있는 표지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었다. (상상할 수 있는 것이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나락으로 떨어진 -눈을 떠보니 온 몸을 움직일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 채 '기적적으로' 깨어난- 이야기가 진행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홀>은 '오기'라는 남자 주인공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소설이다. 인은 증발한 채 덜렁 과부터 등장해 당황스럽긴 하지만, 찬찬히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장 어떻게 삶은 한 순간에 뒤바뀔까.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릴까. 그럴 작정을 하고 있던 인생을 오기는 남몰래 돕고 있었던 걸까. (28쪽) 을 잘 기억해 둬야만 한다.

 

일단, 주인공 오기는 아내와 함께 짧은 여행을 계획했다. 강원도의 어느 여행지로 가는 비 내리는 심야의 고속도로, 앞차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추락한 교통사고로 오기는 '스스로 신체 통제권을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40대 후반의 안정적인 '정교수' 라는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던 그의 인생인 완전히 뒤바뀌었다. 간병인이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몸을 돌려줘야 했으며, 유동식을 호스로 몸 안에 밀어 넣으며, '그저 살아있기만 할' 뿐이다. 주인공은 깨어나자마자 자신만 살아남았음을 괴로워했다. 자신이 사랑해 마지 않았던, 그래서 그녀가 하는 일이라곤 모든지 하기를 동의했던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혼자 살아남았으니 얼른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까지 하면서.

 

그래서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주인공 부부 둘 사이의 문제는 전혀 없었던 거라 생각했다. 오기의 기억 속 이야기로만 보자면 둘은 대학원생활을 하던 때 서로 사랑을 했고, 각자 원하는 진로를 따라 길이 갈라졌지만 서로의 앞날을 위해서 조금은 불편해도 참고, 결혼 생활 중에도 많은 결정을 아내가 하도록 양보하는 모습을 회상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이 둘에게 문제가 있었을거야."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없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오기가 기억하는 것은 기억의 전부가 아닌 파편이었다. 아내와 함께 지냈던 20년 간의 시간들 중 극히 일부의 좋았던 기억들. 오기는 사고로 인해 뇌에도 손상을 입었고 그렇기에 기억이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기에게는 여러 기억들이 돌아왔다. 특히나 부부가 심혈을 기울여 사들였던 집(타운 하우스)에 돌아와서는 더 많은 기억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 죽은 아내의 어머니, 장모와의 기묘한 동거까지. 이야기는 점점 숨이 꽉 막히는 상자 안으로 떠밀려 들어가는 듯 했다.

 

장모는 결혼생활 내내 오기와는 불편한 관계였다. 하지만 딱히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불편함이었던지라 살면서도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었던 터였다. 하지만 이제 움직일 수 없는 오기에게는 동아줄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장모의 행동이 좀 수상하다. 자신을 돌봐주러 오는 입주 간병인, 물리치료사, 자신의 옛 동료들이 입을 모아 '집 앞 마당에 큰 구덩이가 있다'는 것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사위, 큰 구덩이를 파고 있는 장모, 사위와 함께 여행가다 죽은 딸. 이런 관계 내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이란 아주 심플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기의 입장에서만 묘사되는 행동들은 제약이 많다. 병원과 집. 공간은 이 둘 밖에 등장하지 않고, 회상씬들에 '공간'은 중요하게 차지하지 않는다. 그저 상황들만 오기의 머릿속에서 회상될 뿐이다. 제약이 많은 주인공의 상황은 독자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끔하고, 실제로 위협을 당하지 않음에도 위협을 당하고 있다고 느끼게끔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인공의 회상장면이 많아질수록 더없이 좋은 사이처럼 보였던 주인공 부부의 모습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파국까지.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탄력을 받아 속도감이 붙기 때문에 술술 읽힌다. 술술 읽히는 데 반해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감은 여전하니, 다음에 어떤 내용이 등장할지 갈수록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래야죠. 죽어버렸으니까요. 다 죽었지요, 전부 다…… 다 죽었어요. 기껏 애지중지 키워놨는데, 그만 어이없게 죽어버렸어요."

잠시 쉬었다가 장모가 말을 이었다.

"살려야지요, 내가. 내가 다 살려야죠."

(중략)

"연못이요? 정원에요?"

"산 걸 풀어놔야죠. 살아서 꼬리도 치고 숨도 쉬고 헤엄도 치고 그러는 걸 둬야지요."

"잉어 같은 거요? 근사하겠네요."

"산 게 근사합니까? 추접하죠. 악착같이 그 좁은 구멍에서 살려고 해댈 텐데…" (149쪽)

 

내가 불안감을 느꼈던 부분은 바로 이 부분부터다. 묘하게 어긋한 것 같은 장모의 행동이 거슬리기 시작했을 찰라, 집에 병문안을 온 동료들과 장모가 나눈 대화에서 그 '연못'이라는 것에 들어갈 '잉어 같은 거'는 잉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사십대란 모든 죄가 잘 어울리는 나이'(77쪽) 라는 구절이 담긴 시라든가, '인간이 어떻게 속물이 되는지, 그 관찰기라고도 할 수 있어'(182쪽) 라고 이야기하는 회상 장면 속 아내의 말이라든가. 불안한 것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양 모든 것을 털어놓는 오기의 모습 속에서, 처음에 언급했던 구절 "어떻게 삶은 한 순간에 뒤바뀔까.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릴까." 라는 구절은 이미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한 순간에 뒤바뀌지는 않는 것 같다고. 아마 작가가 의도한 제목 <홀>이라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그동안 파두었던 공간들이고, 그 공간들이 모여 커다란 홀을 만들었을 때 자신이 만든 그 홀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함께 말이다.

 

열린 결말이다. 오기가 어찌되었는지까지는 친절히 알려주지 않는 소설이지만 생각해 볼 점은 많은 것 같다. 사십대라는 나이에 저지를 수 있는 많은 죄들이라는 것, 그리고 <홀>이라는 제목 자체와 집 앞 마당의 '홀'의 상관관계 같은 것들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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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에의 심야상담소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홍미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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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에의 심야상담소>라는 제목이 어쩐지 친근하게도 느껴지는 이 책은, 단편 7개로 구성된 책이다. 저자는 현재 일본에서 미스터리 작가로 가장 핫한 작가이기에 책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듯 했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표지도 어찌보면 다르게 느껴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책을 스르륵 읽어가면서, 미스터리 추리물이라는 장르적 특성 답지 않게 무겁지 않아 읽기 수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스터리 추리물이라고 한다면 어떤 살인이나 사건이 일어나고 그를 해결하는 셜록홈즈를 비롯한 여타 탐정수사물, 첩보 액션이 가미된 히어로물, 뒤를 절대 돌아보면 안 될것 같은 스릴러물 등을 떠올리지 않나. 살인 사건이 당연시되고, 어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이 온 힘을 다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사건을 풀어내는 그런 이야기 구조 말이다. 하지만 <나가에의 심야상담소>는 다르다. 책 속의 이야기는 소소하긴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가에의 심야상담소>라는 제목에 맞게, 장소는 당연히 나가에의 원룸이다. 표지에 보이는 방은 아마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나가에의 방인 듯 하다. 연보라색 띠지를 벗기면 가려진 이미지를 마저 볼 수 있는데, 쇼파 앞 식탁(테이블)에 음식이 담겨 있는 접시와 술잔, 젓가락, 앞접시 등이 놓여 있다. 책 속에서 느낄 수 있었던 원룸보다는 훨씬 따뜻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왜 표지 이야기를 하냐면 7개의 단편 모두 이 '술상' 주변에서 '말'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기본 등장인물은 유아사 나쓰미(화자), 구마이 나기사, 나가에 다키아키 총 3명. 여기에 단편마다 게스트가 한 명씩 등장하니 대체로 이 술상에는 4명이 둘러앉아 밤을 즐긴다.

나가에, 구마이, 그리고 나는 대학 시절 술친구였다. 졸업 후에도 셋 다 도쿄에서 일하게 되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술자리를 갖곤 했다. 그런데 매번 같은 멤버만 모이다 보니 심심해져서 몇 년 전부터는 친구를 모임에 데리고 오기로 했다. 그 친구들과 새로운 화제로 얘기를 하다 보면 의외의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해서 어느 결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10쪽)

 

대학시절 술친구 3명은 하나의 음식(안주)를 정해 놓는다. 배 터질때까지 먹어보자, 혹은 이 음식을 질릴때까지 먹어보자 뭐 이런 느낌으로 잔뜩, 가득. 그리고 그에 맞는 술을 준비한다. (술에 대해 여러 지식이 있는 구마이가 선택과 추천을 도맡는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과 술을 먹고 마시면서 얘기를 하다보면 그에 관한 이야기(그러니까 안주이야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게스트들은 음식 혹은 술과 관련된 경험들을 꺼내놓게 되고 그러면서 나가에 원룸의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바로 이때! 미스터리 추리물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등장한다. 바로 '나가에의 추리'다. 나가에는 게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게스트의 행동을 보면서 일반인들은 그냥 넘겨버릴 이야기들을 짚어낸다. 그리고 이때부터 추리물의 느낌이 약간 난다.

 

나가에는 '너무 똑똑한 머리로 다른 사람에게 어떤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81쪽) 스타일이다. 주인공인 나쓰미는 나가에의 똑똑함은 절대로 연애 상대로 보지 않는 결정적 이유라고 언급해 두기도 했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게스트로 등장하는 모두는 나가에의 앞에서 누군가가 숨겨뒀던, 혹은 자신이 숨겼던 것들을 들키게 된다. 자신도 원치 않게. 그렇게 밝혀진 감정들은 대개 사소한 것들이다.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숨겼든, 누가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숨겼든, 일종의 '숨겨진 마음'에 대한 것들. 그냥 지나칠 정도로 사소한 것들이지만 굳이 짚어내는 나가에로 인해 알게 된 진심들인 것이다. 쓰고 있던 가면이 벗겨졌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자신의 마음을 들긴 것을 인정하고, 그 술자리는 외려 마음을 제대로 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마음을 알게 된 커플이 6커플. 심지어 여기에는 화자 나쓰미 부부, 그 당시에는 커플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게스트들이 이야기를 하고 나가에가 그 이야기들 속에 숨어있는 마음을 찾는 패턴이 계속되다보니 아무래도 패턴이 읽히는 감이 없지는 않은데, 그래도 책을 읽다보면 궁금하다. 이 '단순하고 평범한' 이야기 속에 어떤 마음이 숨어 있을까, 나가에의 입이 떼지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술을 아주 즐기지는 않기에 책을 보면서 '술을 마시고 싶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술자리'라면 늘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다. 나와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 그 친구들이 엄선해서 데려오는 새로운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좋은 음식 좋은 술. <나가에의 심야상담소>는 한 마디로 힐링이 가능한 공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하루하루 힘들게 치이면서 삶을 살아낸 스트레스를 하하호호 웃으면서 씻어낼 수 있는 공간. 감춰진 마음을 찾는 것은 덤이고 말이다. 누구든 숨기고 싶은 마음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의 행동에 의문점이 든다면 나가에에게 찾아가보길 권한다. 그는 그저 행동의 나열만으로 묘한 부분을 찾아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테니 말이다. 물론 게스트가 상처받을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으니 주의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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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글씨로 전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 - 윤선디자인의 캘리그라피 라이팅북
정윤선 지음 / 길벗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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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는 올해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다는 이미지 때문인지, 무엇이든 손으로 하는(만드는) 열풍이 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혼자서 '손글씨'를 잘 쓰는 것에는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리 많은 캘리그라피 책을 산다 한들, 그를 열심히 따라 쓰는 노력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일테니까.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부단한 노력을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따라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워크북' 혹은 '라이팅북' 형식의 손글씨 책들이 눈에 자주 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자주 쓰는 말들을 엮어 놓았으므로, 따라 쓰면서 실생활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연습장 형태인 것이다.

 

<내 손글씨로 전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의 저자 정윤선은, 이전부터 내가 블로그 구독을 하고 있는 프리랜서 디자이너였다. 그녀의 블로그에는 포토샵을 막 시작한 사람들에게 좋을 팁들이 가득 담겨 있는 폴더가 있어서 자주 찾아다니던 터였다. (포토샵 책을 내기도 한 그녀다.) 그런데 그 블로그에 어느날 '캘리그라피 책이 나왔어요'라는 포스트가 뜨더니, 그 책이 지금은 캘리그라피 분야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책 이름은 <내 손글씨로 완성하는 캘리그라피>. 이번엔 그 여세를 모아 '캘리그라피 라이팅북' 형태로 책이 나왔다.

 

 

그녀의 블로그에 가서 몇 작품만 봐도 알 수 있는건데, 작가가 주로 하는 캘리그라피는 먹과 먹물과 붓으로 하는, '붓'의 알 수 없는 방향성과 '먹물'의 자유로움으로 만들어진 한 편의 작품 같은 캘리그라피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그렇게 붓과 먹물을 휴대하는 사람들은 많이 없으니, 이전 책은 캘리그라피 입문자들에게 차근차근한 설명으로 도움이 됐을지는 모르나 소소하게 손글씨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책이었다. 나도 일상생활에서 펜으로 혹은 만년필 등으로 간단하지만 멋드러진 손글씨를 쓰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구매했었는데, 자신의 손글씨를 캘리그라피로 발전시키는 방법 등은 유용했지만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붓을 이용한 캘리그라피는 실천해 보기가 약간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라이팅북은 손글씨를 쓰는 주체를 딱 2가지로 한정했고, 그 2가지는 일반 문구점이나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문구용품'들인 납작펜과 붓펜이다.


글씨를 쓸 수 있는 주체가 굉장히 간단해서 일단 구매부터 했다. 책 속에는 저자가 책을 쓸 때 썼던 제품들 이름을 정확히 밝혀 두고, 사진도 함께 있기 때문에 구매할 때 도움이 되었다. 캘리그라피에서 굉장히 많이 사용하는 '쿠레타케 붓펜'은 알파에서 6700원 정도에 구매했고, 'ZIG 납작펜'은 오프라인에서 못찾아서 온라인으로 3000원 정도에 구매했다. (사고 보니 ZIG 펜도 쿠레타케 붓펜을 만든 회사와 같은 회사더라. 책 속의 사진과 납작펜의 사진이 조금은 달랐지만 기능상 다른 점은 없는 것 같으니 쿨하게 패스.)

 

 

<내 손글씨로 전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일단 붓펜과 납작펜을 사용할 때 알아야 하는 팁 같은 것을 5~6개 정도 알려준다. 어떻게 쓰면 글씨에 리듬감이 생길 수 있는지 자신의 노하우를 설명하면서. (팁이란게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몰랐다면 꽤 밋밋했을 것 같은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10개 정도의 단어를 따라쓰게 만들면서 붓펜과 납작펜을 어떤 식으로 사용해 단어를 만들어 나가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따라 쓰면서 느끼는 거지만 쉽게 한 번에 저자가 의도한 느낌을 낼 수 있지는 않다.) 그리고 책 제목이 <내 손글씨로 전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된 이유인,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 한마디'가 담긴 30개의 글귀들이 차례대로 저자의 캘리그라피와 함께 예쁘게 꾸며져 있다. 왼쪽에는 저자의 완성 작품이, 오른쪽에는 흐릿하게 따라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빈 종이가 등장한다. 캘리그라피를 많이 보면서 가질 수 있는 건 글을 배치하는 능력이나 비율 등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렇게 저자의 캘리그라피를 본따서 직접 써 보면서 그 느낌을 가늠할 수 있는 점이 꽤 익숙하지만 신선하게 다가왔다. 책에 함께 붙어 있는 부록 CD로 똑같은 글귀를 마음껏 출력해서 써 볼 수 있도록 배려 또한 잊지 않은 것도 장점.

 

 

아무래도 직접 붓펜을 가지고 써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농도 조절이라든지 글씨체 조절이라든지 획의 굵기 조절이라든지가 쉽지 않았다. 저자가 말한대로 눕혀서 썼는데도 불구하고 끝이 뾰족해진다거나 갈라진다거나. 헤매기도 많이 헤맸는데 이것들은 한 두번 한다고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납작펜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상시에 사용하는 펜들과 비슷한 느낌이라서 잘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납작펜은 경사가 없이 납작한 펜이라 손에 익숙해지는 데만 해도 꽤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획의 굵기를 조절하는게 붓펜으로 조절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서 많이 헤맸다. 그렇게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만들어낸 붓펜과 납작펜 손글씨. 저자의 손글씨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 뿐인데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실망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정도 얼추 비슷해 졌을 때의 만족감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모르지 싶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깔끔하지 않다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이지만, 뭐.. 처음이니까.

 

 

휴대할 수 있는 펜들이라고 쉽게 생각했었는데 역시 쉬운 건 하나도 없다. 조금이라도 힘이 들어가거나 힘이 안 들어가면 원하는대로 글씨가 나와주지 않으니까. 예전부터 글자의 비율이나 배치들로 인해서 캘리그라피처럼 보이지 않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따라 써보면서 배치하는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을 때 이 책의 어느 페이지를 펴서 따라 쓰면서 손으로 직접 만든 카드를 전해 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더더욱 좋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마음을 전하기 어렵다면 열심히 연습한 손글씨로 슬쩍 마음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 그러기 위해서는 손글씨 연습이 필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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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서 배우는 경영 - 위대한 실패 vs. 위험한 실패, 성공한 기업들만 아는 말할 수 없는 비밀 실패에서 배우는 경영 1
윤경훈 지음 /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실패에서 배우는 경영>이라고 적힌 표지를 펼치면 제일 먼저 보이는 프롤로그. 프롤로그에 이 책이 나오게 된 이유가 등장한다.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저마다의 실패담을 자랑하는 기업가들의 모임 failcon. 저자는 이 모임에서 자신의 실패담을 당당하게 발표하는 벤처기업가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 투자자들과 후배 벤처기업가들에게서 이 책의 존재 이유를 발견한 듯 했다. 저자는 이 모임의 가치를 Pay it forward 라고 정의했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받은 혜택을 준 사람에게 돌려주지 않고 오히려 더 힘든 사람에게 돌려준다는 뜻'으로, 알기 쉽게 말하면 기업가들이 실패를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실패를 사전에 예방하고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9쪽)


우리가 잘 아는 명언으로 하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사자성어로 한다면 타산지석, 반면교사 정도일 내용을 담고 있는 <실패에서 배우는 경영>은 저자의 말마따나 '실패를 피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누군가의 실패를 통해서 내가 실패할 가능성을 줄여나가는 것. 비슷한 이유로 당할 수도 있었을 실패를 당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것. 누군가의 실패를 보면서 그런 예방이 가능하냐 묻고 싶겠지만, 가능하다. 비슷한 직종이라면, 아니 비슷한 직종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선두로 나서는 그룹이 있다면 후발로 좇는 그룹도 존재한다. 선두하는 그룹이 무조건 옳은 길로 가고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놓친 부분에서 그리고 그들의 실패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패에서 배우는 경영>에 등장하는 기업들은 모두 세계적인 기업들이다. 하지만 사실 대한민국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 나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기업들이 많아 '이 기업은 뭐지?'라는 생각이 들때가 많았다. 하지만 저자가 덧붙인 그 기업들의 전성기 시절 위상을 알고보니 절로 혀를 내두를 정도의 그룹들이었다. '아니 이렇게나 대단한 그룹들이 어떻게 위기를 맞고 실패를 맞게 된 건지?'란 의문이 너무도 당연하게 피어올랐고, 그들이 실패를 맞게 된 이유는 <실패에서 배우는 경영>에 소개된 그룹의 수 만큼이나 다양했다. (저자가 카테고리별로 묶기는 했지만, 실패의 '이유'가 제각각이라 읽는 재미도 있었다.) 코닥, 샤프, 스타벅스, 도시바, 트위터, 코치, 레고, 아베크롬비, BBC 등등 내가 알고 있는 그룹만 벌써 10개 가까이 된다. 이 그룹들이 모두 경영난을 겪고 있거나 겪었던 그룹들이라는 게 새삼 놀라웠다.


코닥은 2012년 파산했는데, 그 이유는 기존 카메라 시장의 틀을 지키고 그러한 틀 안에서 기술 혁신을 이루는 것이 자신의 회사에게 최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09쪽) 샤프는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큰 액정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나 적자 경영난에 빠졌다. 저자는 코닥과 샤프의 상황을 통해 시장을 이끌며 혁신적인 기술로 시장의 판을 새로 짰던 기업들이 '혁신의 딜레마'에 빠지는 것을 주의해야 하고, 혁신에 내제된 실패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않은 채 기술에 대한 자만과 과신은 멀리해야 한다고 못 박는다.

아베크롬비는 '뚱보는 우리 옷 입지마'라는 발언, 장애를 가진 직원의 보직 이동, 아프리카계 미국 남자직원의 해고 등 브랜드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최고경영자와 그룹의 행동에서.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스타벅스는 눈앞의 단기이익을 위해서 장기적으로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베이커리 브랜드 라블랑제와의 협업에서 손을 놓은 행동에서. 두 그룹의 최고 경영자들의 순간의 선택이 바꿔놓은 리스크에 대해 이야기도 한다.

또한 트위터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없는 수익구조나, 코치의 '저렴한 사치품'이라는 전략에서 필수적인 생산량 절감을 위한 중국으로의 공장 이전 등의 선택, BBC의 방만한 경영과 등돌린 여론 등으로 볼 때 결국 실패의 원인은 제각각이다. (BBC의 경우를 보면 우리나라의 K모 방송국이 생각나기도 한다만..)


"실패한 상태에서 그만두면 실패가 된다. 하지만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면 성공이 된다." 즉,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이다.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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