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을 만지다
김은주 지음, 에밀리 블링코 사진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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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은주 작가를 좋아한다. 그녀의 많지 않은 책은 모두 빼놓지 않고 챙겨볼 정도로. 처음 그녀의 책을 본 건 <1cm>였다. 많은 사람들이 김은주라는 작가를 알게 된 책인데, 사실 나는 이 책이 유명해지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책을 발견한 동기는 말 그대로 '우연히'였다. 학교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제목이 특이한 빨갛고 하얀 책을 발견했고,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마음에 들어 집으로 빌려왔다. 단숨에 책을 다 읽어냈고 바로 책을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집에는 이제는 절판된 <1cm>의 2008년도 버전이 있다!!) 그런 그녀의 오랜만의 신작이다. 

그런데 완전한 신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기분을 만지다>는 2012년에 나왔던 <달팽이 안에 달>의 글들과 새 글들을 합해 새로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옷을 예쁘게 차려입었다. 예전엔 김은주 작가가 글을 쓰고 그림도 그렸는데, 이번엔 그림이 아닌 사진을 전담으로 맡아준 분이 계셨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유명한 사진 작가라는 에밀리 블링코라고 하는 분인데, 그녀의 따뜻한 사진들 때문인지 전혀 새로운 책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몇 번 봤던 글이라 해서 내가 모두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봤던 책이라고 하니 친근감이 조금 더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일단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에밀리 블링코의 사진들이다. 사진들이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따뜻한지. 사진을 쭉 둘러보고 있노라면 그녀의 사진들이 왜 인기가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직관적이면서도 따스하고,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포근함이 느껴진다. 막 햇빛에서 걷어낸 이불을 덮고 강아지와 함께 뒹굴거릴 때의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이번에 그녀의 사진을 싣기로 결정한 게 바로 김은주 작가라고 하던데, <기분을 만지다>의 분위기 형성에 그녀의 사진들이 한 몫 단단히 했음은 책을 읽어본 이라면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주 탁월한 선택 칭찬해!!)

그럼 이제 위에서도 언급했던, 내가 좋아하는 김은주 작가의 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달팽이 안에 달>은 기존 1cm 시리즈들과는 달리 글이 긴 책이었다. 에세이 성격이 강하다고 해야할까. 늘 짧은 호흡의 글을 쓰던 사람인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긴 글의 호흡도 느낌이 좋았던 기억이 있었다. <기분을 만지다>는 <달팽이 안에 달>과 비슷한 느낌이다. 당연하다. 거기에 실렸던 글들이 이곳에도 있으니. 그런데 느껴지는 느낌은 그때와 또 다르다. 뭔가 차분하고 위로가 되는 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그런 글들에 눈이 가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천장이 아닌 하늘을 올려다보자.
UFO가 아닌 나에게 필요한 그 어떤 말을
문득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
그렇지 않다해도 흰 구름과 맑은 하늘은
이미 당신의 기분을 구하고 있다. (46쪽)

아무리 완벽한 허구라도
완벽하지 않은 진짜를 따라잡을 수 없다.
오늘 또한 너로 인해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한 하루였다. (102쪽)

이유 없는 우울의 순간이 찾아오면
마지막 보루로
오늘의 밤과
내일의 태양의 처방을 기다릴 것. (115쪽)


접어놓은 페이지가 어찌나 많은지. 물론 모든 글이 통째로 좋을 때도 있고, 의도치 않게 나를 건드린 단어 하나도 있었고, 나의 지금과 딱 알맞은 구절도 있었다. 특히나 프롤로그 속 '완벽하지 않은 하루여도, 여전히 기분 좋은 하루가 될 수 있다.'는 이 책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에 상처가 나면
그냥 걷기만 하는데도 아픔이 느껴진다.
그제야 숨 쉬는 모든 순간 넌 나와 함께였구나
깨닫게 된다. (168쪽)

어릴 적 썼던
'오늘도 참 재미있었다'라고 끝나는 그림일기처럼
세상의 하루가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저물 수만 있다면. (236쪽)


<기분을 만지다>는 이 책을 읽는 누군가가 당당히 자신의 길을 걷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가가 쓴 글이다. 큰 용기가 없더라도 소심하게 내딛은 한 발자국으로 인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작가는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그런 자그마한 발자국을 내 보라 응원하고 있다. 그 응원이 참 따뜻해서 용기가 없더라도 한 발자국 내딛고 싶어지는 마음. 이 책을 읽으면 그런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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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재테크를 부탁해 - 1년 후, 5년 후 점점 더 나아질
이지영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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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재테크와 관련된 자기계발서들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100만원으로 얼마를 만든다던가, 갭투자를 한다던가 뭐 기타 등등, 왠지 모르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의 이야기 같아서다. 재테크가 살면서 꼭 필요하긴 하지만, 주식도 모르고 부동산도 모르고 그렇다고 여유돈이 유연한 것도 아닌 내게 그런 책들은 읽어봤자 쓸모가 없기도 했고. 그래서 재테크 책들은 과감히 생략해왔던 내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으니, 그 이름하야 <우리 집 재테크를 부탁해>라는 제목의 책이다.

사실 처음에 책 제목을 봤을 때만 하더라도 큰 기대감은 없었다. 한 달에도 얼마나 많은 재테크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 책도 다를 바 없겠지. 그런데 웬 걸. 첫 번째 목차의 제목이 '합리적 소비라는 판타지'였다. 그 다음 눈에 들어오는 제목은 '수입, 현실과 착각'이었고, '우리 집은 얼마를 벌어 얼마나 남기고 있을까', '부채의 악순환' 등등. 뭔가 기존의 재테크 책들과는 다른 냄새가 풍겨왔다.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왜인지 생활밀착적 내용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하게 됐다. 

위에서 언급한 '합리적 소비라는 판타지'에는 절약하려고 애쓸수록 절약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소비는 필요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란다. 절약하려고 하면 뇌가 피로해지며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자제력을 포기하게 되고, 감정은 늘 이성을 이기니 소비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무의식과 본능의 지배도 받는 소비를 무작정 소비의 억제만 생각하다보니 매번 실패하는 것이라고. 1장에서는 우리가 착각 속에 빠져 흔히 하는 실수들을 모아뒀다. 같은 상품도 비싸면 좋다고 느끼는 심리상태라든가, 미끼상품이나 공짜에 혹하는 심리라든가, 돈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책에는 지누스 소시오비전이라는 독일 시장조사기관이 돈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8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내용을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이 꽤 흥미롭다. 내 경우는 이것 저것 섞여 있어 무어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따지자면 무사태평형이 가장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책에 쓰인 내용 전부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렇게 1장에서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돈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2장부터는 본격적인 숫자 이야기를 한다. '숫자는 항상 정확하다'라는 것이 저자의 지론인데, 책을 읽다보면 그것을 백번 이해하게 된다. 백날 말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실제적으로 쓴 영수증을 가지고 숫자로 비교하면, 현재 통제가 가능한 비용과 고정비용을 따로 분류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고정수입과 변동수입을 정확히 아는 것부터가 재테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정지출 중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게 되는 보험에 관한 이야기는 신선했다. 알고 있는 것과 정확히 아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해야할까. 어떤 보험에 가입하는 게 좋은지, 보험료는 얼마나 내는 게 좋은지, 만기환급형 보험도 손해인건지 등등. 어디가서 쉽게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물론 숫자의 비교를 통해서.

3장부터는 본격 '우리집 회계장부'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뭔가 회계공부를 하는 듯한 느낌도 들긴 하는데 내용이 어렵지는 않다. 처음 책을 쓱 훑어봤을 때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한 것은 기우였다. (책에 숫자가 많이 등장해서 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내용은 상세한 설명이 덧붙는다. 그 설명을 읽으면 앞뒤 파악되지 않는 숫자는 없고, 그렇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다. 회계에 대해 1도 모르는 사람이 회계장부와 재무상태표를 작성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만큼 말이다. (물론 어렵지 않다고 복잡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결국 이 책은 잘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디에 얼만큼 지출을 하는 지 정확하게 앎으로써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것. 소비를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꾸준히 작성하는 가계부와 '머니내비'라는 사이트를 통해 너무 과한 소비를 하지 않게 돕는 것. 적절한 소비만 하더라도 많은 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책에서 많은 루트로 소개되어 있다. 그것을 실천하느냐 마느냐는 이 책을 읽은 독자의 선택이고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씩 '내 소비 패턴은 어떻지?' 생각하게 되는 게 바로 이 책이다. 흥미로운 부분이 가득인데, 담고 있는 내용도 많아서 퍽 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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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五月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16명 지음, 차일드 하삼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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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은 김영랑 시인의 시다. 그런데 책을 보면 저자는 윤동주 외로 되어있다. 왜지? 그런데 눈 앞에 더 크게 보이는 '열두 개의 달 시화집'이라는 문구는 신선했고, 시화집이라는 형태 또한 꽤 신선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기존과는 다른 신선한 느낌이라서. 알아보니 <열두 개의 달 시화집>은 1년 12달을 총 12개의 시화집으로 묶어 출판하는 프로젝트다. 여러 유명 작가들의 시를 유명한 화가의 그림과 함께 한 권의 책에 실어내는 프로젝트. 저녁달 출판사에서 텀블벅으로 출판을 하게 되었고, 이번에 봄편인 3월 4월 5월이 출간되었다. 그 중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5월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달을 꼽으라면 원래는 12월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태어난 달이라서다. 요즘 5월도 많이 좋아하고 있다. (이유는 굳이 적지는 않겠지만) 생각하면 몽글몽글 웃음이 지어지는 달이기 때문인데, 마침 5월이 있었기에 과감히 선택했다. 

목차를 보면 1일부터 31일까지 시가 쭉 나열되어 있다. 책 속에는 5월달의 날짜와 같은 갯수의 시가 실려 있는 것이다. 탄생화, 탄생목이 있는 것처럼 탄생시가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윤동주나 김영랑 시인처럼 일반인들도 알 만한 시인들의 시도 존재하고, 하이쿠처럼 짧은 시들도 존재한다. (물론 우리나라 시인들보다는 인지도가 없을테지만.) 5월엔 윤동주와 김영랑 시인의 시가 꽤 많이 등장한다. 다른 달에도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5월은 그렇다. 5월이라고 생각하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봄, 꽃, 벚꽃, 초록 등등 밝은 분위기 일색이다. 그런 밝은 분위기와 윤동주는 조금 어울리지 않지 않나 생각을 해보면서 시화집을 펼쳤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5월 31일의 하이쿠였다. '모두 거짓말이었다며 봄은 달아나버렸다' 이 짧은 한 문장으로 이 책 뿐만 아니라 봄이 확실히 정리되는 느낌. 하이쿠 옆에 실린 그림이 꽃잎이 떨어지는 꽃병이라서 더 확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내 마음에 와 닿았던 시들 몇 편을 소개한다.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이길래
내 숨결 가볍게 실어 보냈지
하늘가를 스치고 휘도는 바람
어이면 한숨을 몰아다 주오.
ㅡ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김영랑

그대가 누구를 사랑한다 할 때
그대는 결국 그대를 사랑하는 겔세.
그대 넉의 그림자가 그리워
알들이 알들이 따라가는 겔세.
ㅡ그대가 누구를 사랑한다 할 때. 김상용

오늘은 십년보다 얼마나 더 귀한고
어제도 이별되고 내일도 모를 일이
그러나 오늘 하루만은 마음놓고 살려오
ㅡ오늘. 장정심


5월이라서인지 장미와 관련된 시들이 몇 편 보였고, 역시나 윤동주 시인의 시는 생각처럼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사랑의 속살거림을 담았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사랑의 슬픔들도 많이 보였다. 하이쿠가 뭔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보는 하이쿠는 새롭기도 마냥 반갑기도 해 좋았다. 이 서평에 옮겨적은 '오늘'이라는 시는 처음 보는 시였지만 느낌이 좋아 계속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차일드 하삼이란 화가의 이름은 낯설지만 그림을 보니 낯이 익기도 하다. 작가 설명을 봐도 여전히 그는 낯설지만, 그림은 참 좋았다. 그의 그림 스타일이 붓 터치감을 남겨두는 것이었는지 많은 그림에 거친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풍경화가 주는 안온함은 작은 그림 속에서도 느껴질 정도였고, 그가 그린 꽃들은 화려하지 않아도 어여뻤다. 그림 속에 등장한 여인들은 모두 편안해 보였고. 5월의 시들과 그의 그림들은 닮은 듯 닮지 않았다. 그래서 더 잘 어울리는 것인지도.

한정된 숫자의 시만 담겨 있으니 책을 덮을 때쯤엔 시가 더 보고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짧다는 느낌이 든다. 한 달이 늘 빨리 지나가듯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달이 찾아오고 시간은 계속 흘러가듯이, 이 책이 끝이 아니다. 여름편이 출간되면 그 속에 어떤 시들이 담길지 궁금해진다. 시화집이란 게 이렇게나 퍽 매력적이라니. 앞으론 시화집이라고 하면 눈길을 한 번 더 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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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의 플러스 마이너스 퀘스천 (+ - ?) 영어 - 국가대표 영어 선생님
에리카 최 지음 / 사람in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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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KBS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에 윤성빈 선수와 봅슬레이팀 선수들이 출연한 적이 있었다. 평창 동계 올림픽 출전까지의 과정과 메달획득 관련 뒷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너무 당연하게도 윤성빈 선수의 아이언맨 헬맷 관련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면서 아이언맨 주인공인 로다주를 만나러 촬영이 끝나면 바로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간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거기가 싱가포르였던가. 기억은 잘 안난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다 얼마전 유튜브를 통해 로다주와 윤성빈 선수의 만남을 우연히 보게 됐다. 로다주와 단 둘이 카메라 앞에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는 모습을 말이다.

앞서 내가 윤성빈 선수의 이야기를 꽤 길게 꺼낸 것은, 윤성빈 선수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에리카 선생님의 <에리카의 플러스 마이너스 퀘스천 영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사실 나를 비롯한 학생들은 대학교까지 무려 16년을 영어공부에 매달리지만, 입을 떼는 데는 어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윤성빈 선수는 외국인인 로다주와 대화를 자유자재로 편하게 한다. 물론 1년에 어느정도는 영어에 노출되는 환경이 존재하니 그 메리트를 제외하고서라도, 뭔가 공평하지 않은 느낌이 든다. 이런 상황에 대해 책의 저자인 에리카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그건 ‘스피킹에 맞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서’라고. 


선수들이 토익/토플 시험을 한 번도 보지 않았는데도 해외에서 유창하게 외국인 선수들과 이야기하고, 반대로 토익/토플 점수는 높은 사람들이 외국인 앞에서 입도 뻥긋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스피킹을 제대로 하려면 스피킹 강화 트레이닝을 잘 받아야 합니다.

영어는 학습과 훈련을 통해서 익힐 수밖에 없는데요. 우리는 훈련보다는 눈으로 하는 학습에 너무 치중해 있다는 뜻입니다. 즉, 밸런스가 맞춰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인 거죠.



저자 에리카는 잘못된 영어 훈련이 스피킹을 망설이게 만드는 주된 원인으로 보고 있었다. '영어회화 훈련의 균형이 깨져 있다' 즉, 문법이나 독해 훈련은 많이 되어 있어도 스피킹 훈련의 강도는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이 밸런스만 잘 맞춰줘도 스피킹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래서 저자가 특별히 고안해 낸 것이 플러스(+), 마이너스(-), 퀘스천(?) 영어다. 

뭔가 되게 있어 보이는 듯 한데, 이론은 간단하다. 플러스의 문장들은 평서문의 형태, 마이너스의 문장들은 부정문의 형태, 퀘스천의 문장들은 의문문의 형태로 여러가지 단어들과 함께 연습을 하는 것이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입니다'처럼 일상적인 문장들을 '~아니다'의 형태로 만들어보고, 또 '~입니까?'의 형태로도 만들어보는 훈련. 동사를 어떤 곳에 어떻게 사용해야 문장에 변화가 일어나는지 확실히 알게 하는 훈련 형태인 것이다. 에리카 선생님은 국가대표들의 선생님을 주로 맡아왔는데, 영어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 없는 선수들의 특성상 기본이 되는 식을 알려주고 +,-,?으로 바꿔 말하는 훈련을 반복하면서 그들이 외신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거나 외국 선수 혹은 코치들과 소통이 필요할 때 바로바로 쓸 수 있도록 고안해 낸 것이다. 

책 속에 있는 내용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오히려 모두 아는 단어들만 나오고 좀 쉬운 느낌도 들어서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동사'들은 중학교 수준의 영어만 알면 모두 알 수 있는 단어들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연습한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의문도 들었다. 예를 들어 조동사 can의 경우 부정문으로 만들때는 can not, 의문문으로 만들때는 문장의 맨 앞에 can~?으로 만드는 것은 되게 쉬운 수준이 아니던가. 영어를 1도 모른다 하더라도 되게 쉽게 공부할 수 있게 되어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게다가 책 곳곳에 에리카 선생님의 팁이라든지, 중요한 부분은 몇 번씩 반복+강조 되어 있다. 이 책 한 권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영어는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중요한 건 꾸준히 하는 겁니다'라는 말이 책에 적혀 있다. 쉽다는 건 그만큼 간편하게 지나칠 수 있다는 말이고, 소홀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꾸준히 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은 없는데, 과연 이 책에 빈칸을 모두 적어난 후엔 스피킹이 얼마나 늘어나 있을까. 스피킹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스피킹 훈련책. 내게도 스피킹이 조금은 쉬워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영어 발음을 입 밖으로 뱉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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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수집 생활 - 밑줄 긋는 카피라이터의 일상적 글쓰기
이유미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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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문장 수집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책을 읽다보면 마음에 와 닿는 구절들을 자주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어디에든 적고 본다. 다이어리에 각 잡아 예쁘게 적어놓을 때도 있고 시간이 없을 땐 알아보기 힘들만큼 날려쓰기도 한다. 종이가 없거나 혹은 쓸 시간이 없을 땐 사진을 찍어두기도 하고, 쓸 시간과 종이가 있어도 펜이 없을 땐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둔다. 내가 왜 문장을 수집하고 있는지 나조차도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참 아무 이유없이 시작했다) 핸드폰에 차곡히 쌓인 책 리스트를 볼 때마다 흐뭇해진다. 배도 부르는 것 같고.

서두부터 문장 수집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하나다. 이 책의 제목과 내용이 <문장 수집 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면서도 느꼈지만, 저자와 나는 각자 수집하는 문장들이 참 많이 다른 듯 하다. 내 경우엔 문장이 예뻐서, 내게 유용해 보여서, 언젠가는 쓰고 싶어서 등등 모든 이유가 나에 맞춰져 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이런 문장을 쓰고 싶으니 이런 문장을 모아보자!'라고 할까. 하지만 저자의 경우는 다르다. 저자가 모아놓은 소설 속 문장들을 보고 있노라면, 일상적이면서도 나라면 그냥 지나칠 법한 문장인 경우가 많았다. 취향이 다르다는 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다름. 아마도 이건 저자와 내가 책 읽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일 테다. 저자는 책을 읽으면서 문장을 수집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카피를 작성하기 위해서니 말이다.

<문장 수집 생활>은 소설 속 문장이 카피라이터 이유미를 만나 카피로 변화하는 과정을 담았다. 저자가 왜 그 소설 속 그 문장을 택했는지의 이유부터 카피로 바꾸기 위해 저자가 했던 생각의 여러 꼬리들, 나아가 어떤 식으로 변형시켜 카피로 재탄생 시켰는지까지의 모든 과정을 말이다. 50권의 책에서 탄생한 50개가 넘는 카피들은 확실히 책과는 다른 매력을 갖고 있었다. 그 중에서 마음에 들었던 몇 가지를 이곳에 옮겨본다.


사진이라는 건 참 좋구나 싶었습니다. 찍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사진을 보는 나를 볼 수도 없고 그런데도 그 사람이 지나간 풍경을 영원한 정지 화면으로 가슴에 안고 갈 수가 있습니다. ㅡ니시카와 미와 <유레루>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 당신의 시선을 영원한 정지 화면으로 간직합니다 : 사진집 (48~49쪽)

내게 기대한 반응이 웃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ㅡ손보미 <디어 랄프 로렌> (문학동네, 2017)
*** 너에게 기대하는 반응, 없음. 그저 올라가 앉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캣타워 (92~93쪽)

커피 잔을 내려놓고 책꽂이에서 책을 몇 권 집어 들었다. 책을 펼쳐 들고 한때 줄을 그어놓았던 문장들을 다시 접해보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모른다. ㅡ파비오 볼로 <아침의 첫 햇살> (소담출판사, 2014)
*** '그때'가 보이는 밑줄.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들춰본다. 밑줄이 그어진 문장을 새로 읽는다. 그때 내 고민과 질문과 생각들이 깃털처럼 얇은 볼펜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 있다. : 깃털 볼펜 (208쪽)


저자가 어떻게 카피를 활용하게 됐는지 저자의 생각들을 따라가면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난다. 물론 더하고 빼고 조금은 곱하고 나누기도 하지만, 그렇게 정리된 카피를 보면 재미있다. 전혀 관련이 없는 소설 속 문장을 꺼내와 카피를 만들고, 아주 연관있는 문장은 꺼내와 그대로 적어놓기도 한다. 마술처럼 변하는 의미들이 신기해진다. 아 이런 생각은 참 재치가 있네. 이건 나도 생각할 수 있을 법 한데? 자꾸 저자의 생각을 알아맞추려고 하고, 요즘말로 '신박한' 아이디어는 신선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 

보는 재미뿐만이 아니다. 사실 저자가 몸담고 있는 온라인샵 29CM의 컨슈머 특성상 조금 더 감성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저자의 방식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책 속에서는 다양한 팁을 전달받기엔 충분하다. 책 속에는 이런 류의 조언이 많으니 말이다.


가장 매력적인 글은 솔직한 글이다. 부족한 나를 드러낼수록 훨씬 더 매력적인 글이 된다는 걸 꼭 강조하고 싶다. (53쪽)
모방은 가장 좋은 기초 훈련이다. 글쓰기가 막막한 사람이라면 일단 필사부터 해보기를 추천한다. 따라하기와 흉내내기를 충분히 한 다음에야 비로소 나만의 것이 탄생할 수 있다. (87쪽)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다.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도 좋고 자기계발서도 좋다. 닥치는 대로 읽자. 눈에 꽂히는 표현은 밑줄 그어 따로 메모해두자. 나만의 비밀병기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128쪽)


<문장 수집 생활>의 재미는 책의 뒷표지에도 존재한다. 원래는 뒷표지겠으나, 이 책은 바코드가 붙어 있는 쪽부터 새 책을 읽는 기분을 낼 수 있도록 편집을 기존 책과 다르게 했다. 책의 부록인 '뭔가 다른 카피의 기술', 일명 카피라이팅 가이드. 문장이 상투적이진 않은지, 막힐때 체크하면 좋을 것들, 유행어의 폐해, 익숙해서 식상한 말들 버리기 등등 좋은 카피를 쓰는 자신의 노하우를 방출한다. 저자의 모든 노하우를적어놓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은 병아리들에겐 피와 살이 될 조언이다. 물론 이 조언은 카피라이팅에 한정되어 사용할 수 있는 조언은 아니다. 나조차도 아차! 싶었던 부분이 있으니,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 들여다 볼 만한 부록. 

부록까지 모두 읽고 책을 덮을 즈음엔 소설이 좋았을 뿐인데 카피라이터가 됐다는 저자의 말은 그저 겸손이라는 것을 안다. 문장을 골라내는 안목, 물건과 연관시키는 센스, 좋은 카피를 만들어내는 능력까지 모든 것이 한 순간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을지, 얼마나 많은 문장을 수집했을지 알 수 없지만 저자의 부지런함이 지금을 만들었음은 분명하다. 세상에 그냥 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술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마술사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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