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급주의 - 따뜻하고 불행한
김이슬 지음 / 책밥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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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초록색인 표지, 거기에 초록색과는 보색인 빨간색으로 쓰인 글씨 '취급주의' 네 글자. 온라인 서점에서 보는 것처럼 글씨가 눈에 잘 띄는가 하면, 아니다. 실물로 책을 보면 많지도 않은 글씨가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자신의 제목을 알려주는 것조차 참 불친절한 이 책은 뭐랄까, 조금 특별하고 이상한 책이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 평범하지 않다고 표지부터 소리 지르고 있으니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다. 책 소개글에서 읽은 문장 때문이었다. '그녀의 잠꼬대'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글의 묘한 울림 때문이었다.


엄마. 
엄마는 왜 자면서 끙끙 앓아? 
“꿈에서도 엄마라서 그래.” 
어떤 대답엔 물기가 어려 있다. (118)


막상 읽어보면 너무도 평범한 글이라서 나의 선택에 누군가는 의문을 가질 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이 글로 인해 이 책을 읽고 싶어졌다. 왜인지 책에는 이 글에서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함, 알 수 없는 아련함, 훅 다가오는 뭉클함 같은 것들이 들어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막상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모두 읽어보니, <취급주의>에는 생각과는 좀 다른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한 마디로 정리해 보자면 '작가의 마음 속 우울의 한 켠을 본 것 같다'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마음 속 한 켠의 우울이라 적어놓으니 되게 심각한 느낌이 든다. 그건 아니다. <취급주의>는 대체적으로 조금은 담담하고, 그러면서도 조금은 날카롭다. 내가 처음에 느꼈던 엄마를 보는 따뜻한 시선은 변함이 없었고, 엄마와 엄마의 엄마(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따뜻했다. 누군가의 마음에 가서 박힐법한 툭툭 뱉어 놓은 글조각들도 있었고, 맘 먹고 풀어놓은 과거의 덩어리들도 있었다. 담겨 있는 이야기들이 이렇게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작가의 마음 속 우울의 한 켠을 본 것 같다'라고 정리한 이유는, (책을 모두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작가가 풀어놓은 과거의 덩어리들이 꽤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겪은 부모님의 이혼, 엄마의 재혼, 아빠라는 존재의 부재, 그로인한 알 수 없는 결핍같은 것들ㅡ아마도 조금씩 작가의 마음을 갉아먹었을 스며들었던 아픔. 이끼가 피어나는 지하방, 늘 넉넉치 않은 살림, 엄마의 관절염, 결막염과 안구건조증ㅡ작가를 한없이 작게 만들었던 녹녹치 않은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의 한숨.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피하겠지만, 작가는 자신의 우울함의 얼만큼은 책 속에 그대로 드러냈다. 언젠가 작가가 온 몸으로 경험하고 통과해 낸 그 과거를, 이제는 조금 객관적으로 전달하면서 '그땐 그랬지' 퍽 담담하게. 읽다보면 그 담담함이 오히려 독자를 작가의 과거속에 데려다 놓는다. 그래서 책 속에서 작가가 꽤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음에도 책을 덮고 나서는 작가 마음 속 우울의 한켠이 생각나는가 보다 나는 생각했다.


지구의 꽃말. (28)
우주의 먼지들이 모여 사는 집.
우리가 외로운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혼자라는 온도. (64)
혼자를 견디는 것의 온도는 늘 이렇다. 춥고 서늘하다.
혼자를 이기려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지만 그 주변을 배회하는 외로운 입자들이 모조리 먹어치워 버린다.

별일 없이 산다. (123)
한 달 치 일기를 한꺼번에 쓴다.
지루하다.
지루해서 다행이고, 행복하다 말한 적은 없다.

깨끗한 우울. (231)
그냥 마셔요.
죽지 않아요.


하지만 책 속 여기 저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작가는 글을 잘 쓴다. 나는 에세이를 읽을 때 좋은 책인가 아닌가를 '얼마나 내 마음에 와 닿는 구절들이 많은가'로 구분한다. <취급주의>는 충분히 합격점이었다. 공감과 깨달음, 피식 웃을 수 있는 작은 유머까지. 거기다 "시간은 새살을 돋게 하는 약이라기보단 흉터를 가릴 수 있는 밴드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101)" 라든가, "굳이 있는 것들 때문에 나는 많이 아팠다. 굳이 있어서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당신들 또한 그렇다. (176)", "남겨지는 건 원래 그리도 묵묵한 것이냐고. (217)" 등등 제목에 관련된 이야기를 주욱 이어가는 와중에 등장한 공감 가는 문장들까지. 앞에서 언급한 우울들은 중간중간 박혀 있어 부담스럽지 않다. 특히나 '안경을 벗어두는 버릇'은 작가와는 다른 이유였지만 내가 특히 공감한 글이었으므로 따로 적어둔다.


안경을 벗어두는 버릇. (94)
도리어 선명하지 않아 좋은 순간들이 분명 있으니까. 
나는 흐릿한 세상 속에서 좀 더 자유롭다.
선명함에 지치기 시작한 건 선명한 것들과 마주하고 난 후부터였다.

나는 안경을 벗어 내 눈을 가린다.
꽁꽁.
나는 좀 더 용감해지고 좀 덜 상처받는다.

안경 안 쓰면 불편하지 않아? 많이들 묻는데,
“선명하지 않아서 더 좋을 때가 있는 거야.”가 언제나 내 답이다.


상처 많은 사람이니 '함부로 건들지 마시오' <취급주의>인가 했더니, 나에 대해 오해하지 않아줬으면 하는 사용설명서 같은 <취급주의>였다. 내가 아직도 한심한가?라고 되묻는 작가의 글에서 한심하지 않다고 말해주길 원하고 있다고 느꼈다면 그건 조금 많이 나간걸까. 꽈악 안아주고 싶은 작가의 안아주고 싶은 책이다. 마치 어린왕자의 투덜쟁이 장미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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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정리하는 4차 산업혁명
최진기 지음 / 이지퍼블리싱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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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이 많이 보인다. 긴 말 필요없이 나는 지난 달에도 4차 산업혁명 관련 책을 한 권 읽었다. 대한민국에서 핫한 주제인 4차 산업혁명은 이제 그 단어자체가 일상생활에서도 쓰일만큼 친숙해졌다. 온통 이와 관련해서 떠드는 통에 뭐라도 조금은 알아야 할 것 같은 조바심도 갖게 만든다. 그런데 여기, 인문학 강의를 하던 이가 이야기하는 4차 산업혁명 책이 있다. 바로 <한 권으로 정리하는 4차 산업혁명>이란 책이다.

사실 저자 최진기는 내게 굉장히 친숙한 사람이다. <김제동의 톡투유>를 통해 처음 알게 됐으며, <어쩌다 어른>이란 강의 프로그램이나 여타 강의 프로그램, 또 예전엔 <썰전>에도 한동안 고정으로 출연했었다. 그는 늘 재치있게 말을 잘 받아쳤고, 말을 잘 하는 만큼 무언가에 대해 설명도 잘 했다. 어렵다고 생각했던 분야를 말 몇 마디로 불쑥 이해시킨다던가 하는 것은 예사다. 깊고 넓은 지식으로 자신이 아는 것을 남에게 참 잘 설명하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저자 최진기는 그렇다. 그렇기에 '내가 알기로 그는 인문학 강사인데, 왜 과학분야인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걸까?' 궁금증이 앞섰고, 책을 선택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변화는 요란하기보다 은밀하게, 점진적이고 전면적으로 다가와 우리에게 일상이 되는 것입니다.(28쪽)는 문장은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일깨워주는 말이었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이미 도태되었다는 뜻이고, 변화됐다라고 느끼는 것은 어느샌가 우리 주변에서 이미 일상이 되어 있으리라는 것. 초반에 간단하게 스치듯 지나간 문장이었지만 내게는 꽤 강하게 다가온 문장이었다. 이후 책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자신의 방식대로, 차분하게, 많은 것을 설명해 나간다.

책 속에서 저자가 정의하는 4차 산업혁명이란,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 ICT의 결합'을 뜻한다. 1차 2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류는 비약적인 생산적 발전을 이뤄냈고, 3차 산업혁명으로는 실생활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의 일상화를 이뤄냈지만, 생산영역(공장)에서 만큼은 3차 산업혁명으로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 되면 공장에도 정보통신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시스템적 변화(예를 들면 무인공장 같은 것)가 일어나고 있고, 이는 더 많은 생산량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의 4차 산업혁명 관련 책 속에선 볼 수 없던 부분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은 선진국과 저개발국의 격차를 벌릴 대분기'라는 분석이나, 스마트 팩토리와 리쇼어링에 관한 이야기, 4차 산업혁명 시대 제조업의 중요도 같은 이야기는 이 책에서 새롭게 본 이야기들이다. 책을 읽다보면 알게 된다. 이 책은 많은 지표들을 가져다 설명하고 있지만,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과학적인 설명보다는 사회의 변화 이후의 상황이나 지표들을 예측하고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앞으로 어떤 국가가, 어떤 기업이, 어떤 개인이 4차 산업혁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같은 현실적이면서도 당장엔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을 말이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서 인문학적 시각은 과학적 시각과는 이렇게도 다르구나. 새롭고 신선했다. 

물론 말 잘하는 이의 책답게 가독성이 뛰어나고, 글도 유려하다. 책의 중간 중간 '최진기의 잡학사전'이라고 해서 여러가지 책에 등장한 지식들을 따로 떼어내어 자세히알려주기도 하고, 한Q에 정리하기라는 코너로 지금까지 자신이 이야기했던 것을 한 페이지에 간략하게 요약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두꺼운 책을 사놓고 모두 다 읽지 않을 이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있어빌리티를 자랑하고 싶은 이들..?- 이 페이지가 유용하게 쓰일 듯 싶다) 중간중간 조금 촌스럽다 생각되는 이미지들과 큰 글씨들이 눈에 약간 거슬리지만, 그것들을 제외하곤 지금까지와는 새로운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한 권으로 정리하는 4차 산업혁명>은 하나의 주제를 여러개로 쪼개서 설명한다. 아주 작은 것 친숙한 것으로부터 범위가 넓은 것으로설명이 뻗어나가면서 글을 따라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것은 과연 이것이 맞는 걸까? 다른 것은 아닐까? 그럼 다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닐까?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독자에게 묻는다. 물론 그 물음들은 방대한 자료들과 설명을 통해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답을 알려준다.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 비해 답이 간단할 때도 있어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결론이 산뜻하게 나면 왜인지 시원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다가올, 아니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왔을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 우리는 걱정을 하기만 해야할까? 대답은 No다. 제대로 알고 있기만 해도 대처방법을 생각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으므로. 이 책에도 미래에 대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 알아봤으니, 무조건 걱정하는 것은 그만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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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 With Frida Kahlo 활자에 잠긴 시
박연준 지음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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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개봉했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코코>. 멕시코 남자 아이가 주인공으로, '죽은 자의 날'에 우연히 '죽은 자들의 세상'으로 건너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모험담을 그렸다. '죽은 자들의 세상'을 우리식으로 말하면 '저승'인데, 이곳을 멕시코 전통 축제의 화려함과 아기자기함으로 무장시켜 재미있게 표현했다. 내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지금부터다. 이 '죽은 자들의 세상'에는 낯익은 모습의 여인이 등장한다. 눈썹이 굉장히 짙고 알레브리헤 원숭이와 함께 다니는 극 중 무대 연출가. 바로 '프리다 칼로'다. 사실 나는 프리다 칼로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코코>에 등장한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도 긴가민가 할 정도로 말이다. 내가 아는 것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자화상, 짙은 눈썹, 화가라는 직업 정도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표지로 사용하고, with Frida Kahlo라고 적어 놓았기 때문에.

하지만 처음의 한없이 가벼웠던 선택과는 달리,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는 읽을수록 흥미로운 책이었다. 그림 번역이라는 카테고리들은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저자의 글이 가지는 분위기가 휘리릭 읽어버릴 수 없게끔 만들었다. 단순히 선택된 10개의 그림이 무거워서만은 아니다. 그 그림이 가졌을 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저자인 시인 박연준이 실감나게 처연히도 풀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풀어낸 일상의 이야기들은 생각보다 소소했고, 그래서 읽어내기 편안했다. 무거움과 편안함이 공존하는 책이라니.

저자의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프리다 칼로 탐험기다. 프리다 칼로라는 인간을 탐험하는 글이라기보다는, 프리다 칼로를 사랑하는 개인의 독백에 가까운 글이 될 것이다.(10쪽)'라는 글은 이 책의 성격을 아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그림과 시는 비와 눈처럼 닮았다(11쪽)'라는 글로는 저자가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대하는 자세를, '프리다 칼로는 시의 영토에 묻힌 영혼이다. 너무 많이 죽어 더이상 죽지 않는 죽음이다.(15쪽)'라는 글로는 저자가 프리다 칼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나는 프리다 칼로의 형상을 한 시의 관절들에 매료되어 책을 썼다.(17쪽)'라는 글엔 창작동기까지 담았다. 그러니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이 책은 '책을 펴내며'부터 꼼꼼히 읽어갈 것을 권하고 싶다. 저자의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음은 물론, 앞으로 나올 이야기들에 관한 지침서이자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니 말이다. 

책은 프리다 칼로와 관련된 여러 책들 가운데 하나의 문장(혹은 한 단락)을 적어두고, 그와 관련된 혹은 관계가 없더라도 저자가 그것과 연관지어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적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툭툭 무심하게 채우는 것은 어찌보면 시같고 어찌보면 울음같고 어찌보면 따뜻한 그런 글들이다.


외로움이란 누구를 골라 찾아가고 비켜가는 감정이 아니다. 불시에, 누구에게든 온다. 비나 눈처럼, 온다. 외로움은 충일함의 반대편에 서 있는 행려병자다. 크리스마스 은종이 매달리 창가 앞을 걸어가는 거지다. 당신이 곁에서, 멀리 있는 것. 삶의 비탈길에서 조심하지 않는 것. 다치기를 기다리는 것. (38쪽)

옅은 사랑은 사랑이 어릴 적 써낸, 장래희망 같은 걸까. 되고 싶었지만 되지 않은, 될 수 없는 게 아니라 되지 않은 무엇. 어려풋함. 미래일 수도 있었을 씨앗. 너무 짙은 사랑은 직업이다. 직업병이다. (56쪽)

종종, 지나치게 아끼는 것은 무거워진다. 섣불리 들 수조차 없이 무거워진다. 내 맘대로 옮길 수도 버릴 수도 잊을 수도 없이 무거워져, 그 앞에 서면 쩔쩔매게 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사랑하는 것이다. 함부로 할 수 없는 것. 무거운 존재. 그 심장 속에 갇혀, 나도 점점 무거워진다. (166쪽)


소제목 '여름 책상'은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다. 짧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 선, 두서도 흐름도 없이 이어지는 글들이 모여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가도, 그저 거기에 적힌 말들이 좋아 "그래, 그렇지." 무심코 이해하게 되어버리는. 이것 말고도 2장 '우리들의 실패'는 저자가 갓 낳은 메추리알처럼 소중히 여기는 젊은 친구와 주고 받은 편지도 실려있다. 저자의 개인적 일화를 담뿍 담아내기도 하고. 그런 점에 있어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는 형식에 있어 자유롭다. 그래서 더 좋게 느껴졌다. 

그림 속에서 시의 관절들을 찾아낸 저자. 이전까지 저자의 시를 읽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번 책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를 통해 저자 박연준을 기억에 담아두게 될 듯 하다. 더불어 알마의 활자에 담긴 시라는 시리즈 또한 눈여겨 보게 될 듯 하다. 좋은 기획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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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을 만지다
김은주 지음, 에밀리 블링코 사진 / 엔트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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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작가를 좋아한다. 그녀의 많지 않은 책은 모두 빼놓지 않고 챙겨볼 정도로. 처음 그녀의 책을 본 건 <1cm>였다. 많은 사람들이 김은주라는 작가를 알게 된 책인데, 사실 나는 이 책이 유명해지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책을 발견한 동기는 말 그대로 '우연히'였다. 학교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제목이 특이한 빨갛고 하얀 책을 발견했고,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마음에 들어 집으로 빌려왔다. 단숨에 책을 다 읽어냈고 바로 책을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집에는 이제는 절판된 <1cm>의 2008년도 버전이 있다!!) 그런 그녀의 오랜만의 신작이다. 

그런데 완전한 신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기분을 만지다>는 2012년에 나왔던 <달팽이 안에 달>의 글들과 새 글들을 합해 새로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옷을 예쁘게 차려입었다. 예전엔 김은주 작가가 글을 쓰고 그림도 그렸는데, 이번엔 그림이 아닌 사진을 전담으로 맡아준 분이 계셨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유명한 사진 작가라는 에밀리 블링코라고 하는 분인데, 그녀의 따뜻한 사진들 때문인지 전혀 새로운 책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몇 번 봤던 글이라 해서 내가 모두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봤던 책이라고 하니 친근감이 조금 더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일단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에밀리 블링코의 사진들이다. 사진들이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따뜻한지. 사진을 쭉 둘러보고 있노라면 그녀의 사진들이 왜 인기가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직관적이면서도 따스하고,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포근함이 느껴진다. 막 햇빛에서 걷어낸 이불을 덮고 강아지와 함께 뒹굴거릴 때의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이번에 그녀의 사진을 싣기로 결정한 게 바로 김은주 작가라고 하던데, <기분을 만지다>의 분위기 형성에 그녀의 사진들이 한 몫 단단히 했음은 책을 읽어본 이라면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주 탁월한 선택 칭찬해!!)

그럼 이제 위에서도 언급했던, 내가 좋아하는 김은주 작가의 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달팽이 안에 달>은 기존 1cm 시리즈들과는 달리 글이 긴 책이었다. 에세이 성격이 강하다고 해야할까. 늘 짧은 호흡의 글을 쓰던 사람인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긴 글의 호흡도 느낌이 좋았던 기억이 있었다. <기분을 만지다>는 <달팽이 안에 달>과 비슷한 느낌이다. 당연하다. 거기에 실렸던 글들이 이곳에도 있으니. 그런데 느껴지는 느낌은 그때와 또 다르다. 뭔가 차분하고 위로가 되는 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그런 글들에 눈이 가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천장이 아닌 하늘을 올려다보자.
UFO가 아닌 나에게 필요한 그 어떤 말을
문득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
그렇지 않다해도 흰 구름과 맑은 하늘은
이미 당신의 기분을 구하고 있다. (46쪽)

아무리 완벽한 허구라도
완벽하지 않은 진짜를 따라잡을 수 없다.
오늘 또한 너로 인해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한 하루였다. (102쪽)

이유 없는 우울의 순간이 찾아오면
마지막 보루로
오늘의 밤과
내일의 태양의 처방을 기다릴 것. (115쪽)


접어놓은 페이지가 어찌나 많은지. 물론 모든 글이 통째로 좋을 때도 있고, 의도치 않게 나를 건드린 단어 하나도 있었고, 나의 지금과 딱 알맞은 구절도 있었다. 특히나 프롤로그 속 '완벽하지 않은 하루여도, 여전히 기분 좋은 하루가 될 수 있다.'는 이 책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에 상처가 나면
그냥 걷기만 하는데도 아픔이 느껴진다.
그제야 숨 쉬는 모든 순간 넌 나와 함께였구나
깨닫게 된다. (168쪽)

어릴 적 썼던
'오늘도 참 재미있었다'라고 끝나는 그림일기처럼
세상의 하루가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저물 수만 있다면. (236쪽)


<기분을 만지다>는 이 책을 읽는 누군가가 당당히 자신의 길을 걷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가가 쓴 글이다. 큰 용기가 없더라도 소심하게 내딛은 한 발자국으로 인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작가는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그런 자그마한 발자국을 내 보라 응원하고 있다. 그 응원이 참 따뜻해서 용기가 없더라도 한 발자국 내딛고 싶어지는 마음. 이 책을 읽으면 그런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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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재테크를 부탁해 - 1년 후, 5년 후 점점 더 나아질
이지영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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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재테크와 관련된 자기계발서들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100만원으로 얼마를 만든다던가, 갭투자를 한다던가 뭐 기타 등등, 왠지 모르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의 이야기 같아서다. 재테크가 살면서 꼭 필요하긴 하지만, 주식도 모르고 부동산도 모르고 그렇다고 여유돈이 유연한 것도 아닌 내게 그런 책들은 읽어봤자 쓸모가 없기도 했고. 그래서 재테크 책들은 과감히 생략해왔던 내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으니, 그 이름하야 <우리 집 재테크를 부탁해>라는 제목의 책이다.

사실 처음에 책 제목을 봤을 때만 하더라도 큰 기대감은 없었다. 한 달에도 얼마나 많은 재테크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 책도 다를 바 없겠지. 그런데 웬 걸. 첫 번째 목차의 제목이 '합리적 소비라는 판타지'였다. 그 다음 눈에 들어오는 제목은 '수입, 현실과 착각'이었고, '우리 집은 얼마를 벌어 얼마나 남기고 있을까', '부채의 악순환' 등등. 뭔가 기존의 재테크 책들과는 다른 냄새가 풍겨왔다.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왜인지 생활밀착적 내용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하게 됐다. 

위에서 언급한 '합리적 소비라는 판타지'에는 절약하려고 애쓸수록 절약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소비는 필요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란다. 절약하려고 하면 뇌가 피로해지며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자제력을 포기하게 되고, 감정은 늘 이성을 이기니 소비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무의식과 본능의 지배도 받는 소비를 무작정 소비의 억제만 생각하다보니 매번 실패하는 것이라고. 1장에서는 우리가 착각 속에 빠져 흔히 하는 실수들을 모아뒀다. 같은 상품도 비싸면 좋다고 느끼는 심리상태라든가, 미끼상품이나 공짜에 혹하는 심리라든가, 돈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책에는 지누스 소시오비전이라는 독일 시장조사기관이 돈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8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내용을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이 꽤 흥미롭다. 내 경우는 이것 저것 섞여 있어 무어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따지자면 무사태평형이 가장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책에 쓰인 내용 전부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렇게 1장에서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돈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2장부터는 본격적인 숫자 이야기를 한다. '숫자는 항상 정확하다'라는 것이 저자의 지론인데, 책을 읽다보면 그것을 백번 이해하게 된다. 백날 말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실제적으로 쓴 영수증을 가지고 숫자로 비교하면, 현재 통제가 가능한 비용과 고정비용을 따로 분류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고정수입과 변동수입을 정확히 아는 것부터가 재테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정지출 중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게 되는 보험에 관한 이야기는 신선했다. 알고 있는 것과 정확히 아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해야할까. 어떤 보험에 가입하는 게 좋은지, 보험료는 얼마나 내는 게 좋은지, 만기환급형 보험도 손해인건지 등등. 어디가서 쉽게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물론 숫자의 비교를 통해서.

3장부터는 본격 '우리집 회계장부'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뭔가 회계공부를 하는 듯한 느낌도 들긴 하는데 내용이 어렵지는 않다. 처음 책을 쓱 훑어봤을 때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한 것은 기우였다. (책에 숫자가 많이 등장해서 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내용은 상세한 설명이 덧붙는다. 그 설명을 읽으면 앞뒤 파악되지 않는 숫자는 없고, 그렇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다. 회계에 대해 1도 모르는 사람이 회계장부와 재무상태표를 작성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만큼 말이다. (물론 어렵지 않다고 복잡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결국 이 책은 잘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디에 얼만큼 지출을 하는 지 정확하게 앎으로써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것. 소비를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꾸준히 작성하는 가계부와 '머니내비'라는 사이트를 통해 너무 과한 소비를 하지 않게 돕는 것. 적절한 소비만 하더라도 많은 지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책에서 많은 루트로 소개되어 있다. 그것을 실천하느냐 마느냐는 이 책을 읽은 독자의 선택이고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씩 '내 소비 패턴은 어떻지?' 생각하게 되는 게 바로 이 책이다. 흥미로운 부분이 가득인데, 담고 있는 내용도 많아서 퍽 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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