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신을 그리고 당신을 씁니다 - 어린 만큼 통제할 수 없었던 사랑
주또 지음 / 더블유미디어(Wmedia) / 2018년 10월
평점 :
글보다 일러스트에 먼저 눈이 갔던 건 2018년 들어 처음이다. 막상 표지는 눈여겨 보지도 않았으면서, 글을 읽어나갈수록 자꾸 옆에서 눈길을 뺏는 일러스트에 결국 가던 길(책 읽기)을 멈췄다. 어두컴컴한 일러스트 속 눈 밑이 시뻘개진 남자. (얼핏 보면 잘 보이지도 않을만큼 일러스트가 어두워서 얼굴을 책에 가까이 가져다 대고서야 그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취해 보이기도 하고, 울고 난 다음으로 보이기도 하고, 상기돼 보이기도 한 얼굴의 남자가 한 명만 덩그러니. 남자는 왜인지는 모르지만 무기력해 보였다. 매가리가 하나도 없어서는, 그저 앉아 있는 것조차 힘겨워보이기도 했다. 작가는 얼굴만 크게 클로즈업하기도 했다가 배경까지 전부 그려넣기도 했는데, 책 속 그 많은 일러스트들은 겹치는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근데 그 다양한 얼굴들을 보고 있자니 '짠하다'라는 한 단어만 떠올랐다. 그리고 일러스트를 지나 글을 읽으니 그 짠함이 배가되었다.
차마 알지 못했다. 네가 빌미가 되어 나의 밤이 이다지도 소란스러워질 거라고는. (39쪽)
자꾸만 너의 얼굴이 보고 싶다. 똑바로 너의 두 눈을 마주할 자신도 없으면서. 사랑을 마셨나, 이 밤에 취했나. 머리는 어지럽고 시야가 분명하지 못한데 그 와중에 자꾸만 네가 선명하다. (61쪽)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은. 끝내 오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는 일은. 나의 몸의 수분을 다 내보내고 자처해서 말라가는 허튼짓과도 같다. (78쪽)
제 마음 하나 제대로 꺼내놓지 못하며 망설이는 화자여서다. 너의 다정함에 가슴 떨리고, 혼자만의 상상 속에 설레고, 용기 한 자락 낼 수 없어 수없이 망설이고, 그렇다고 마음을 접을 용기도 갖고 있지 않은 글 속 어떤 화자가 말이다. 그런데 작가가 의도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러스트 속 그림이 남자여서인지 화자도 자꾸 남자로 읽혔다. 일러스트 속 묘한 짠함과 글 속의 짠함이 합쳐지니 최강 짠함이 탄생했다. 화자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 울 것같은 표정으로 취해있는 일러스트 속 남자인걸까. 그나마 여기까지는 짝사랑이어서 이정도다. 이후엔 이별 후라 화자의 자존감이 땅바닥까지 떨어져 있음이 와 닿는다.
무얼 할까 하다가 / 그냥 잠만 잤던 거 같아 / 네가 없으니까 내가 없더라고 (172쪽)
네가 무책임하게 던지고 간 / 우리의 시간들에 엉킨 나는 / 여태 그걸 끊어내지 못하고 / 그렇다고 해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 참, 뭐가 이리도 아쉬워서는. / 참, 뭐가 이리도 소중해서는.
(참, 남겨진 주제에 미련하기까지 해서는. 201쪽)
글을 읽으면서 작가가 글센스가 있다고 생각했다. 제목이 본문과 이어진다거나 하는 발상이라든지, 마치 가사를 쓰듯 앞에 나온 문단을 다시 반복해 끝을 맺는다든지, 이것을 저것과 엮어 글을 쓴다든지 하는 것들이 말이다. 하지만 글의 센스같은 것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아무래도 글의 감성이다. 1부 짝사랑, 2부 이별 후, 3부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모습, 이렇게 세 파트로 나뉜 글들 속엔 짠한 화자가 끊임없이 속마음을 꺼내놓는다. 나는 이렇게 힘들어. 나한테 그때 왜 그랬어? 나는 왜 이렇게 못났니. 나는 왜 그때 그렇게 못했을까? 고독으로 걸어가는 우울을 본 것 같아 마음이 가볍지는 않다. '20대의 사랑이야기'라고 해서 가볍게 집어들었는데, 읽는 내내 무거웠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래, 마음은 원래 무거운거였지. 사랑은 쉽지 않고, 아플 땐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지. 뭐 그런 생각들을 말이다.
그래도, 그래도 사랑은 계속 되었으면 한다. 사랑이 아프기만 한 것은 아니고, 되돌아보면 언젠가는 빛 바랜 추억으로 마주할 날이 오는 것을 이제 나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당신을 그리고 당신을 씁니다> 속 화자는 아직 모르는 것 같지만, 그도 곧 알 수 있을테다. 반짝거리는 마음이 어느 순간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싸늘해진 공기만큼 누군가가 그리운 밤, 나도 너의 행복이 소원이 되는 날이 다시 찾아오기를 바라본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소원 안에는 너의 행복이 포함되어 있었다.(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