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 때문에 - 대인관계를 결정하는 언어의 메이크업
김인희 지음 / 청년정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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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과 관련된 속담 중 생각나는 속담을 말하라."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열에 여덟 정도는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를 대답하지 않을까 싶다. 오래된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선조들도 말이 갖고 있는 힘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다는 뜻이다. 물론 말이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평상시에 깊이 생각하지 않고 쉽게 말을 뱉는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을 비롯한 여기저기에는 남을 헐뜯는 말들이 산재해있다. 피를 나눈 가족끼리도 말로 상처 입히고 상처 받는다. 그렇기에 '말에도 메이크업이 필요하다'라는 책의 카피를 봤을 때, 이건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말, 내 말의 문제점, 가슴을 흔드는 말, 얼굴보다 더 중요한 말의 메이크업. <말 한마디 때문에>는 크게 4가지의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인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혹은 직장생활에서 말을 잘못해 가까웠던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상황들을 이야기한다. 작가가 이 주제에서 가장 자주 언급한 내용은 악의 없이 내뱉는다고 생각하나 결국 무의식의 반증인 '말실수'에 대한 내용이다. 두번째인 '내 말의 문제점'에서는 말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잘못이나 고마움에 대해 제대로 표현하지 않는 습관, 잘못에 대한 핑계를 대는 습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목소리와 말의 빠르기 등 '말'을 이루고 있는 주변까지 언급하며 자신의 문제점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세번째 '가슴을 흔드는 말'은 소통, 경청, 진심어린 공감, 칭찬, 좋은 말, 정확한 문맥 파악 등 타인과의 대화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비법을 전달한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부분은 사람들이 알면서도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지막 '얼굴보다 더 중요한 말의 메이크업'에서는 쿠션 말 같은 화법에 대한 조언이 담겨 있다. 화법을 메이크업에 비유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 화법은 이런 메이크업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메이크업 용어에 훨씬 익숙한 여자들이 더 쉽게 이해할 것 같았다.) 여기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화법은 단연 YES-THEN 화법이었다. YES-BUT 화법보다 좀 더 긍정적인 화법인데, 나의 평소 말투와는 많이 달라서 (화법 특유의 나긋나긋함이) 만약 이 화법을 내게 적용시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다보면 느낄 수 있다. 작가는 모든 문제점을 남이 아닌 나에게서 찾는다는 것을. "말은 오해를 부르기 쉽다. 상대가 오해하지 않도록 내 의도를 정확하게 잘 전달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상대가 내 말을 오해해서 받아들인 게 아니다. 내가 제대로 내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대의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21쪽)" 이 문장들만 봐도 그러하다. 작가는 주변을 바꾸는 것보다 자신을 바꾸는 것이 훨씬 쉽다고 이야기 한다. 문제를 나 자신에게서 찾기보다 남에게서 찾는 것이 쉽고 편하긴 하지만, 나 자신을 바꾸지 않고 그럴듯 하게 꾸미기만 한다면 불현듯 자신의 무의식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말실수로 이어지고, 좋지 않은 결말을 맞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것을 세상에 주라. 그러면 최선의 것이 돌아오리라. -M.A 베레 (167쪽)"라는 말이 있지만, 물론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하지만 "메이크업을 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만이 아니다. 나 스스로의 만족감을 충족하기 위해서 메이크업을 한다. 말도 마찬가지다. (117쪽)"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 유명한 유재석과 이적의 <말하는대로>라는 노래처럼, 말습관 고치기는 결코 남을 위해서만은 아님을 우리 모두 안다. 그러니 이젠 실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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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해서 좋다 - 작지만 깊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것들에 관하여
왕고래 지음 / 웨일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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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A형이다. 엄마와 아빠의 혈액형이 모두 A형이라 내가 가지고 태어날 수 있는 혈액형의 선택지는 A형과 O형 2개 뿐이었다. 퍽 단순하게 물려받은 것 뿐인데 누군가에게 내 혈액형을 밝히면 "소심하죠?"라는 말이 자연스레 따라 붙는다. A형=소심, 마치 이것이 공식인 것처럼. 언젠가부터는 AAA형(트리플 에이형)이란 단어가 생기며 '소심의 끝판왕'을 일컫고 있다. 사람들은 재미로 그런다지만, 정작 소심한 사람들은 이런 농담을 농담으로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부터도 말이다.

서평의 처음부터 '소심'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너무도 당연하게도 <소심해서 좋다>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소심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은 가끔 봐 왔지만, '소심해서 좋다'라고 이야기하는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이전에도 나왔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번에 처음 봤다.) 기존에 보던 책들과는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왜인지 읽어보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하여 마주하게 된 책은 파랑파랑하고 분홍분홍했다. 뽕뽕 구멍이 뚫린 파랑색 겉표지, 그리고 일러스트가 그려진 분홍색 속표지. 파랑색 겉표지를 벗겨내면 분홍색 표지 속 숨겨진 일러스트가 드러난다. 오, 신기하다. 그렇지만 그 뿐, 나는 책의 처음 프롤로그를 읽어갔다.


나는 소심하다. 좋게 표현하면 내성적이고 더 좋게는 내향적이다. 심리학은 이런 내 성향과 호기심을 담기에 적합했고, 나는 고민의 답을 얻기 위해 긴 시간을 몰두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심을 대범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정확히는 바꿔야 할 이유를 못 찾았다. (6쪽)


작가는 프롤로그에서부터 밝힌다. 자신은 '소심인'이며, <소심해서 좋다>는 작가가 '소심인'이라 칭한 이들의 시선과 일상을 담아낸 책이라고 말이다. 맞다. 이 책은 '소심인'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다. 자신의 흑역사를 대방출하면서 소심인에 대한 설명을 돕기도 하고, 소심인의 유형을 분류해 놓기도 하며, 소심한 이들만이 이룰 수 있는 역사를 설명하기도 하고, 너무도 간단하지만 그만큼 쉽게 간과해버리는 처방전도 내어놓는다. 그러니까 이 책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소심인 셀프(+주변) 관찰 보고서'다. 누군가에게는 몸을 휘감는 맞춤옷처럼 느껴지고 누군가에게는 향신료 강한 외지 음식처럼 낯설게 다가오는(7쪽).

좋은 게 좋은 거지, 사람은 두루두루 친한 게 좋아 등등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대범하기를 강요한다. 유연함이 사회생활에서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소심인들에게 그런 유연함을 가장한 관계맺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소심해서 좋다>는 그 사회 속 소심인들의 고군분투를 다루고 있다. 대범한 척 연기를 해야하는 건지 아니면 성향대로 소심하게 있어도 되는 건지 고민이 될 때, 여기서 작가의 경험들이 빛을 발한다. 현재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작가는 이런 에피소드들을 착실히 모았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소심인(작가 본인)은 이런 생각을 갖고 있고, 주변의 소심인인 A씨는 이 상황에선 아마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을 해준다. '말을 놓는 것에 관하여', '소심한 회의에 대범인이 낄 때', '솔직함에 대한 강요', '개인의 업무공간', '프리라이더의 이해' 등등 작가가 골라내 들려주는 상황들은 현실성 100%라 묘하게 공감이 간다.

또한 작가가 심리학 공부를 해서인지 몰라도, 소심인을 설명할 때 심리학적인 용어와 사례들로 설명하는 것도 흥미롭다. 예를 들면 심리적 안녕감이라든가, 사회적 순응 실험이라든가, 각성 이론이라든가. 에세이인 듯 에세이 아닌 에세이 같은 너랄까. 중간중간 심리학을 이용해 소심인의 이해를 돕는 작가의 글쓰기는 소심인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내게는 흥미로운 감이 더 있었지만 말이다.)


우리에게 기회는 자신감보다 지속적인 노력과 닿아 있는 게 아닐까, 되물었다. (30쪽)

겹겹 흑역사를 쓰며 알게 된 건 '일상의 담담함'이다. 삶엔 드라마와 엔딩이 있지만, 일상엔 없다는 것. 일상의 길고 반복적인 흐름은 어느 한 지점이 반짝거리거나 일그러진다고 해서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담담하게 내일이 올 뿐이다. (32쪽)

소심하기 때문에 늘 소심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뭔가를 드러낼 만큼의 분위기가 있다면 그것에 기대어 잠시나마 다른 옷을 입어보는 것도 괜찮다. 힘이 빠지는 만큼 빼보는 경험이 즐겁다. 그리고 다시, 내 고향으로 돌아와도 된다. 대범함과 소심함은 동전의 양면이 아닌, 오른손잡이의 왼손 같은 거니까. (88쪽)


책을 읽고 있자니 나는 소심한 건가?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소심하다 생각해 왔었는데, 막상 책 속의 이야기를 보니 그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고. 근데 또 다른 이야기를 보면 이건 또 내 얘기같고. 하지만 '대범함과 소심함은 동전의 양면이 아닌, 오른손잡이의 왼손 같은 거'라는 작가의 말에 힘입어 나는 소심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결론을 수줍게 내렸다. 뭐 소심인이면 어떻고 소심인이 아니면 어떤가. 나는 나니까. 소심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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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급주의 - 따뜻하고 불행한
김이슬 지음 / 책밥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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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초록색인 표지, 거기에 초록색과는 보색인 빨간색으로 쓰인 글씨 '취급주의' 네 글자. 온라인 서점에서 보는 것처럼 글씨가 눈에 잘 띄는가 하면, 아니다. 실물로 책을 보면 많지도 않은 글씨가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자신의 제목을 알려주는 것조차 참 불친절한 이 책은 뭐랄까, 조금 특별하고 이상한 책이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 평범하지 않다고 표지부터 소리 지르고 있으니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다. 책 소개글에서 읽은 문장 때문이었다. '그녀의 잠꼬대'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글의 묘한 울림 때문이었다.


엄마. 
엄마는 왜 자면서 끙끙 앓아? 
“꿈에서도 엄마라서 그래.” 
어떤 대답엔 물기가 어려 있다. (118)


막상 읽어보면 너무도 평범한 글이라서 나의 선택에 누군가는 의문을 가질 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이 글로 인해 이 책을 읽고 싶어졌다. 왜인지 책에는 이 글에서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함, 알 수 없는 아련함, 훅 다가오는 뭉클함 같은 것들이 들어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막상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모두 읽어보니, <취급주의>에는 생각과는 좀 다른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한 마디로 정리해 보자면 '작가의 마음 속 우울의 한 켠을 본 것 같다'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마음 속 한 켠의 우울이라 적어놓으니 되게 심각한 느낌이 든다. 그건 아니다. <취급주의>는 대체적으로 조금은 담담하고, 그러면서도 조금은 날카롭다. 내가 처음에 느꼈던 엄마를 보는 따뜻한 시선은 변함이 없었고, 엄마와 엄마의 엄마(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따뜻했다. 누군가의 마음에 가서 박힐법한 툭툭 뱉어 놓은 글조각들도 있었고, 맘 먹고 풀어놓은 과거의 덩어리들도 있었다. 담겨 있는 이야기들이 이렇게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작가의 마음 속 우울의 한 켠을 본 것 같다'라고 정리한 이유는, (책을 모두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작가가 풀어놓은 과거의 덩어리들이 꽤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겪은 부모님의 이혼, 엄마의 재혼, 아빠라는 존재의 부재, 그로인한 알 수 없는 결핍같은 것들ㅡ아마도 조금씩 작가의 마음을 갉아먹었을 스며들었던 아픔. 이끼가 피어나는 지하방, 늘 넉넉치 않은 살림, 엄마의 관절염, 결막염과 안구건조증ㅡ작가를 한없이 작게 만들었던 녹녹치 않은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의 한숨.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피하겠지만, 작가는 자신의 우울함의 얼만큼은 책 속에 그대로 드러냈다. 언젠가 작가가 온 몸으로 경험하고 통과해 낸 그 과거를, 이제는 조금 객관적으로 전달하면서 '그땐 그랬지' 퍽 담담하게. 읽다보면 그 담담함이 오히려 독자를 작가의 과거속에 데려다 놓는다. 그래서 책 속에서 작가가 꽤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음에도 책을 덮고 나서는 작가 마음 속 우울의 한켠이 생각나는가 보다 나는 생각했다.


지구의 꽃말. (28)
우주의 먼지들이 모여 사는 집.
우리가 외로운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혼자라는 온도. (64)
혼자를 견디는 것의 온도는 늘 이렇다. 춥고 서늘하다.
혼자를 이기려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지만 그 주변을 배회하는 외로운 입자들이 모조리 먹어치워 버린다.

별일 없이 산다. (123)
한 달 치 일기를 한꺼번에 쓴다.
지루하다.
지루해서 다행이고, 행복하다 말한 적은 없다.

깨끗한 우울. (231)
그냥 마셔요.
죽지 않아요.


하지만 책 속 여기 저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작가는 글을 잘 쓴다. 나는 에세이를 읽을 때 좋은 책인가 아닌가를 '얼마나 내 마음에 와 닿는 구절들이 많은가'로 구분한다. <취급주의>는 충분히 합격점이었다. 공감과 깨달음, 피식 웃을 수 있는 작은 유머까지. 거기다 "시간은 새살을 돋게 하는 약이라기보단 흉터를 가릴 수 있는 밴드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101)" 라든가, "굳이 있는 것들 때문에 나는 많이 아팠다. 굳이 있어서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당신들 또한 그렇다. (176)", "남겨지는 건 원래 그리도 묵묵한 것이냐고. (217)" 등등 제목에 관련된 이야기를 주욱 이어가는 와중에 등장한 공감 가는 문장들까지. 앞에서 언급한 우울들은 중간중간 박혀 있어 부담스럽지 않다. 특히나 '안경을 벗어두는 버릇'은 작가와는 다른 이유였지만 내가 특히 공감한 글이었으므로 따로 적어둔다.


안경을 벗어두는 버릇. (94)
도리어 선명하지 않아 좋은 순간들이 분명 있으니까. 
나는 흐릿한 세상 속에서 좀 더 자유롭다.
선명함에 지치기 시작한 건 선명한 것들과 마주하고 난 후부터였다.

나는 안경을 벗어 내 눈을 가린다.
꽁꽁.
나는 좀 더 용감해지고 좀 덜 상처받는다.

안경 안 쓰면 불편하지 않아? 많이들 묻는데,
“선명하지 않아서 더 좋을 때가 있는 거야.”가 언제나 내 답이다.


상처 많은 사람이니 '함부로 건들지 마시오' <취급주의>인가 했더니, 나에 대해 오해하지 않아줬으면 하는 사용설명서 같은 <취급주의>였다. 내가 아직도 한심한가?라고 되묻는 작가의 글에서 한심하지 않다고 말해주길 원하고 있다고 느꼈다면 그건 조금 많이 나간걸까. 꽈악 안아주고 싶은 작가의 안아주고 싶은 책이다. 마치 어린왕자의 투덜쟁이 장미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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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정리하는 4차 산업혁명
최진기 지음 / 이지퍼블리싱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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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이 많이 보인다. 긴 말 필요없이 나는 지난 달에도 4차 산업혁명 관련 책을 한 권 읽었다. 대한민국에서 핫한 주제인 4차 산업혁명은 이제 그 단어자체가 일상생활에서도 쓰일만큼 친숙해졌다. 온통 이와 관련해서 떠드는 통에 뭐라도 조금은 알아야 할 것 같은 조바심도 갖게 만든다. 그런데 여기, 인문학 강의를 하던 이가 이야기하는 4차 산업혁명 책이 있다. 바로 <한 권으로 정리하는 4차 산업혁명>이란 책이다.

사실 저자 최진기는 내게 굉장히 친숙한 사람이다. <김제동의 톡투유>를 통해 처음 알게 됐으며, <어쩌다 어른>이란 강의 프로그램이나 여타 강의 프로그램, 또 예전엔 <썰전>에도 한동안 고정으로 출연했었다. 그는 늘 재치있게 말을 잘 받아쳤고, 말을 잘 하는 만큼 무언가에 대해 설명도 잘 했다. 어렵다고 생각했던 분야를 말 몇 마디로 불쑥 이해시킨다던가 하는 것은 예사다. 깊고 넓은 지식으로 자신이 아는 것을 남에게 참 잘 설명하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저자 최진기는 그렇다. 그렇기에 '내가 알기로 그는 인문학 강사인데, 왜 과학분야인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걸까?' 궁금증이 앞섰고, 책을 선택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변화는 요란하기보다 은밀하게, 점진적이고 전면적으로 다가와 우리에게 일상이 되는 것입니다.(28쪽)는 문장은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일깨워주는 말이었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이미 도태되었다는 뜻이고, 변화됐다라고 느끼는 것은 어느샌가 우리 주변에서 이미 일상이 되어 있으리라는 것. 초반에 간단하게 스치듯 지나간 문장이었지만 내게는 꽤 강하게 다가온 문장이었다. 이후 책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자신의 방식대로, 차분하게, 많은 것을 설명해 나간다.

책 속에서 저자가 정의하는 4차 산업혁명이란,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 ICT의 결합'을 뜻한다. 1차 2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류는 비약적인 생산적 발전을 이뤄냈고, 3차 산업혁명으로는 실생활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의 일상화를 이뤄냈지만, 생산영역(공장)에서 만큼은 3차 산업혁명으로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 되면 공장에도 정보통신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시스템적 변화(예를 들면 무인공장 같은 것)가 일어나고 있고, 이는 더 많은 생산량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의 4차 산업혁명 관련 책 속에선 볼 수 없던 부분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은 선진국과 저개발국의 격차를 벌릴 대분기'라는 분석이나, 스마트 팩토리와 리쇼어링에 관한 이야기, 4차 산업혁명 시대 제조업의 중요도 같은 이야기는 이 책에서 새롭게 본 이야기들이다. 책을 읽다보면 알게 된다. 이 책은 많은 지표들을 가져다 설명하고 있지만,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과학적인 설명보다는 사회의 변화 이후의 상황이나 지표들을 예측하고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앞으로 어떤 국가가, 어떤 기업이, 어떤 개인이 4차 산업혁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같은 현실적이면서도 당장엔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을 말이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서 인문학적 시각은 과학적 시각과는 이렇게도 다르구나. 새롭고 신선했다. 

물론 말 잘하는 이의 책답게 가독성이 뛰어나고, 글도 유려하다. 책의 중간 중간 '최진기의 잡학사전'이라고 해서 여러가지 책에 등장한 지식들을 따로 떼어내어 자세히알려주기도 하고, 한Q에 정리하기라는 코너로 지금까지 자신이 이야기했던 것을 한 페이지에 간략하게 요약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두꺼운 책을 사놓고 모두 다 읽지 않을 이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있어빌리티를 자랑하고 싶은 이들..?- 이 페이지가 유용하게 쓰일 듯 싶다) 중간중간 조금 촌스럽다 생각되는 이미지들과 큰 글씨들이 눈에 약간 거슬리지만, 그것들을 제외하곤 지금까지와는 새로운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한 권으로 정리하는 4차 산업혁명>은 하나의 주제를 여러개로 쪼개서 설명한다. 아주 작은 것 친숙한 것으로부터 범위가 넓은 것으로설명이 뻗어나가면서 글을 따라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것은 과연 이것이 맞는 걸까? 다른 것은 아닐까? 그럼 다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닐까?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독자에게 묻는다. 물론 그 물음들은 방대한 자료들과 설명을 통해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답을 알려준다.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 비해 답이 간단할 때도 있어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결론이 산뜻하게 나면 왜인지 시원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다가올, 아니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왔을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 우리는 걱정을 하기만 해야할까? 대답은 No다. 제대로 알고 있기만 해도 대처방법을 생각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으므로. 이 책에도 미래에 대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 알아봤으니, 무조건 걱정하는 것은 그만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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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 With Frida Kahlo 활자에 잠긴 시
박연준 지음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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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개봉했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코코>. 멕시코 남자 아이가 주인공으로, '죽은 자의 날'에 우연히 '죽은 자들의 세상'으로 건너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모험담을 그렸다. '죽은 자들의 세상'을 우리식으로 말하면 '저승'인데, 이곳을 멕시코 전통 축제의 화려함과 아기자기함으로 무장시켜 재미있게 표현했다. 내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지금부터다. 이 '죽은 자들의 세상'에는 낯익은 모습의 여인이 등장한다. 눈썹이 굉장히 짙고 알레브리헤 원숭이와 함께 다니는 극 중 무대 연출가. 바로 '프리다 칼로'다. 사실 나는 프리다 칼로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코코>에 등장한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도 긴가민가 할 정도로 말이다. 내가 아는 것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자화상, 짙은 눈썹, 화가라는 직업 정도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표지로 사용하고, with Frida Kahlo라고 적어 놓았기 때문에.

하지만 처음의 한없이 가벼웠던 선택과는 달리,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는 읽을수록 흥미로운 책이었다. 그림 번역이라는 카테고리들은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저자의 글이 가지는 분위기가 휘리릭 읽어버릴 수 없게끔 만들었다. 단순히 선택된 10개의 그림이 무거워서만은 아니다. 그 그림이 가졌을 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저자인 시인 박연준이 실감나게 처연히도 풀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풀어낸 일상의 이야기들은 생각보다 소소했고, 그래서 읽어내기 편안했다. 무거움과 편안함이 공존하는 책이라니.

저자의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프리다 칼로 탐험기다. 프리다 칼로라는 인간을 탐험하는 글이라기보다는, 프리다 칼로를 사랑하는 개인의 독백에 가까운 글이 될 것이다.(10쪽)'라는 글은 이 책의 성격을 아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그림과 시는 비와 눈처럼 닮았다(11쪽)'라는 글로는 저자가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대하는 자세를, '프리다 칼로는 시의 영토에 묻힌 영혼이다. 너무 많이 죽어 더이상 죽지 않는 죽음이다.(15쪽)'라는 글로는 저자가 프리다 칼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나는 프리다 칼로의 형상을 한 시의 관절들에 매료되어 책을 썼다.(17쪽)'라는 글엔 창작동기까지 담았다. 그러니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이 책은 '책을 펴내며'부터 꼼꼼히 읽어갈 것을 권하고 싶다. 저자의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음은 물론, 앞으로 나올 이야기들에 관한 지침서이자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니 말이다. 

책은 프리다 칼로와 관련된 여러 책들 가운데 하나의 문장(혹은 한 단락)을 적어두고, 그와 관련된 혹은 관계가 없더라도 저자가 그것과 연관지어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적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툭툭 무심하게 채우는 것은 어찌보면 시같고 어찌보면 울음같고 어찌보면 따뜻한 그런 글들이다.


외로움이란 누구를 골라 찾아가고 비켜가는 감정이 아니다. 불시에, 누구에게든 온다. 비나 눈처럼, 온다. 외로움은 충일함의 반대편에 서 있는 행려병자다. 크리스마스 은종이 매달리 창가 앞을 걸어가는 거지다. 당신이 곁에서, 멀리 있는 것. 삶의 비탈길에서 조심하지 않는 것. 다치기를 기다리는 것. (38쪽)

옅은 사랑은 사랑이 어릴 적 써낸, 장래희망 같은 걸까. 되고 싶었지만 되지 않은, 될 수 없는 게 아니라 되지 않은 무엇. 어려풋함. 미래일 수도 있었을 씨앗. 너무 짙은 사랑은 직업이다. 직업병이다. (56쪽)

종종, 지나치게 아끼는 것은 무거워진다. 섣불리 들 수조차 없이 무거워진다. 내 맘대로 옮길 수도 버릴 수도 잊을 수도 없이 무거워져, 그 앞에 서면 쩔쩔매게 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사랑하는 것이다. 함부로 할 수 없는 것. 무거운 존재. 그 심장 속에 갇혀, 나도 점점 무거워진다. (166쪽)


소제목 '여름 책상'은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다. 짧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 선, 두서도 흐름도 없이 이어지는 글들이 모여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가도, 그저 거기에 적힌 말들이 좋아 "그래, 그렇지." 무심코 이해하게 되어버리는. 이것 말고도 2장 '우리들의 실패'는 저자가 갓 낳은 메추리알처럼 소중히 여기는 젊은 친구와 주고 받은 편지도 실려있다. 저자의 개인적 일화를 담뿍 담아내기도 하고. 그런 점에 있어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는 형식에 있어 자유롭다. 그래서 더 좋게 느껴졌다. 

그림 속에서 시의 관절들을 찾아낸 저자. 이전까지 저자의 시를 읽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번 책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를 통해 저자 박연준을 기억에 담아두게 될 듯 하다. 더불어 알마의 활자에 담긴 시라는 시리즈 또한 눈여겨 보게 될 듯 하다. 좋은 기획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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