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찰스 스탠리 지음, 정영숙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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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찰스 스탠리 목사님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위로의 메시지.

큰 역경과 고난이 닥쳐올 때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바로 소망이다.

스탠리 목사님은 우리에게 아직 소망이 남아 있음을 강하게 호소하고 있다.

아니 '아직' ' 단지' 소망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소망은 삶의 원동력이다.

그가 말하는 소망은 단지 희망사항이 아니다.

우리 삶에 영향을 발휘하는 하나의 실체요, 살아있는 에너지이며, 우리가 살아가야할 근거이다..

우리에게 어떤 소망이 있는가? 먼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다.

식상하고  진부한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분명한 사실임을 확인한다면

우리가 낙담할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 사랑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다. 나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계획은 바로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기에 결코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실수를 하고 내가 좀 잘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변할리 없다.

하나님은 뛰어난 모략꾼이다. 나의 실수까지도 다 염두에 두시고 그 계획을 수행하신다.

얼마나 복된 소식인가? 왜 절망해야 하는가? 절망은 필요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바로 나를 인정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한다. 인정받지 못할 때, 우리는 좌절을 겪는다.

왕따가 큰 상처가 되는 것은 바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상실감이다.

그런데 가장 크신 그 분이 나를 인정하신다고 한다.

세상 모두가 인정하지 않는다할 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인정하신다.

나의 어떤 모습이나 어떤 가진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시고 사랑하신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안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까?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에 그냥 인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으신다.

나를 보다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원하신다. 지금의 내 모습보다 더 멋진 모습,

너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바로 우리의 속 삭람을 빚기를 원하신다.

이 사실을 잊지말자.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나 자신에게 있고,

또한 나의 모습을 가꾸어 나가길 원하신다.

그 가꿈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나를 설득하고 나를 이해시켜서

나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길을 가게 하시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하신다.

오늘도 하나님은 내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오늘도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

이 말에 귀를 기울이자.

우리 속에는 인정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

우리는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데 만족감을 얻는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할 때, 얼마나 큰 낭패감을 가질까?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쓰임이 있게 만드셨다.

하나님만이 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인정받도록 하셨다.

나는 사람들에게 쓰임받도록 지음받았다. 가장 큰 쓰임은 바로 사랑을 나눠주는 것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우리는 줌으로 행복할 수 있다. 거기에서 나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희망과 행복감을 던져주길 원하신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더 큰 위로와 축복으로 함께 하신다.

그 때 우리는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위로를 누리며 살자. 언제나 그 분이 우리와 동행함을 인하여 감사하자.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다. 이 소망으로 기쁨 가운데 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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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작
주선태 지음 / 아가페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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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태씨의 일종의 신앙 간증문이다.

하지만 신앙 간증문이라고 하기에는 책이 너무 재미있다.

재미있다고 하기에는 너무 감동적이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신앙 생활을 해가면서 느꼈던 여러 가지 갈등과 감정,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잔잔하게 에세이 형식으로 엮어놓았다.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격, 그리고 원망과 자신에 대한 좌절, 그리고 희망

그의 글에는 꾸밈이 없다.  하지만 천박하거나 미숙하지 않다.

그의 글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아무래도 그에게는 남다른 글짓는 재주가 있나보다.

작은 주제마다, 표지형식으로 시처럼 적은 짧은 글들이 실려있는데,(그는 시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시’라고 하면 왠지 작의적인 느낌이어서 짧은 글이라 표현해본다.)

그 짧은 글에도 감동이 밀려온다.

저자에게 우리가 배워야 하는 점은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정직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교리적인 틀에 가두어서 이해하기 보다는

마음으로, 삶으로,  하나의 실존적 존재로서 만남과 이해를 시도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만나는 하나님 (그렇다고 결코 머리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는 그 하나님을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리 모두가, 저자처럼 하나님을 만난다면, 그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다면,

오늘날 기독교의 모습은 이러하지 않을텐데...

책 분량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소설 읽는 식으로 읽자면 1시간이면 다 읽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읽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치 시를 읽듯이 음미하면서, 그리고 내 삶을 돌아보면서,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책을 읽어내려가야 한다.

첫 사랑을 잃어버린 기독교인,

무미건조하고 형식적인 신앙의 명맥만을 이어가는 그리스도인

눈물을 흘려본 적이 오래된 신앙인에게

꼭 한번 읽어보라고 싶다.

저자를 찾아온 하나님은 곧 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면 좋겠다.

따스하고 자상하지만 또한 엄격하신 그 하나님.

나도 그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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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양장)
파커 팔머 지음, 이종태 옮김 / IVP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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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저자의 지식에 대한 문제 인식은 실존주의자들의 연장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근대에 유럽에 지배하던 사상은 이성주의였다. 사람들은 인간 이성의 가능성에 열렬히 환호했고, 이성의 계발은 인류를 유토피아로 안내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세계 양차 대전으로 말미암아 이런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는 산산조각났다. 덕분에 유럽은 실존주의가 지배하게 되었다.

 

저자의 문제인식은 실존주의적인 입장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지식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에서 볼 때는 실존주의와 공통분모가 있다. 팔머는 보다 근본적으로 지식이 가지는 폭력에 주의하고 있는데,  지식은 하나의 작의적 과정이고 문화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적 수단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입장은 포스트모던적인 접근과 유사하긴 하지만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기도 하다.

 

팔머는 지식이 가치 중립적이라는 믿음은 잘못디었다고 말하고 있다. 지식은 인간 영혼 내부의 열정에서 시작되기때문에, 만약 그 영혼 내부의 동기가잘못되었다면 결과도 필연적으로 잘못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오늘날 사회가 이토록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가 지식의 영성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올바른 동기로 지식을 취득하고 지식이 전수되어질 때에도 올바른 동기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번역자의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이라는 제목은 참으로 저자의 의도를 바르게 파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지식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의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 지식의 실패는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지식이 우리와 세계와의 관계 속에 사랑이 거하도록 하지 못한것에서 기인한,  말하자면 앎 그 자체의 실패라고 지적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지식은 관계성에 근거한 지식이다. 그는 이것을 기도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 만물에 대한 사랑과 친밀한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것을 지향하는 지식이 참된 지식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지식의 가르침과 배움의 모델로서 수도원과 초대 교회의 광야 구도자를 들고 있다. 여기에 조금은 염려스러운 신비주의적인 형태가 엿보인다. 저자는 동양의 신비주의, 동양의 구도적인 자세에 대해서 너무나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실 그는 이것이 가지는 위험성에 대해서 조금도 모르는 듯하다. 아마 서양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방법론이 가지는 유익과 장점만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동양적 신비주의에 익숙한 내가 보기에는 조금은 위험하기 때문에 한 번 걸러줄 필요가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탁월한 점은 지식을 인격과 결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지식은 우리와 객관적이고 동떨어진 그 무엇이 아니다. 인격과 인격간의 상호 대화와 상호 관계이다.

 

서구 사회는 바로 이 점에서 크나큰 실수를 범한 것이다. 서구 사회는 진리를 나와 결부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저쪽 바깥에 있는 실재에만 관심을 두게 함으로 자아를 고립시키고 공동체와도 격리시켰다.

 

저자의 지식에 대한 견해는 통찰력있고 탁월하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실천이다. 그럼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저자는 그저 원론적인 방법론만을 제시한다. 물질주의와 객관주의에 찌들려서, 배우는 자나 가르치는 자나 다 생소한 이 방법론을 교실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할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공교육이 도입되기 전에는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런바 도제수업은 바로 저자가 말하고 있는 그런류의 가르침이 행해질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불가능하지 않는가?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스스로가 더욱 하나님과 가까이 관계를 맺으며 통합된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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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되는 나 - 믿음으로 산다
조엘 오스틴 지음, 정성묵 옮김 / 긍정의힘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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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이룬다.

그에게서 희망과 삶의 메시지를 발견했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국제 싸구려 복음의 전형이라고도 말한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물론 후자의 평가가 훨씬 더 정당하다. 그의 메시지는 반쪽짜리 복음이다. 반쪽짜리 복음은 복음이라 할 수 없고, 오히려 복음에 해가 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쓸모없는 쓰레기 책인가?

그에 대한 답변 역시 ’아니다’이다. 비록 그의 메시지는 복음이라고 할 수 없지만, 교양서적이라고 본다면 더 없이 좋은 책이다.

기독교인은 기본적으로 긍정과 희망의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제일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낙담이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신다. 그 실패하지 않으신 분이 나를 지켜 주시기에, 나 또한 절대로 실패할 수 없다. 단 단서가 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이다. 죄와 욕심을 버리고 자아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때이다. 오스틴에게는 단서 조항을 없다. 그래서 그의 메시지는 복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이 교양서적으로 더 없이 좋은 이유는, 특별히 기독교인이 이 책을 복음이라고 혹은 설교라고 보지 않고 단지 일반서적이라고 본다면 꽤나 유용하고 괜찮은 책이다. 왜냐하면 올바른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단서 조항을 늘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경건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오스틴의 메시지는 확실히 효과가 있다. 그의 가르침은 성경적이라기 보다는 일반적인 상식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긍정적 사고 방식은 확실히 삶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때로는 기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그는 이 긍정의 효과를 아주 심도있고 그리고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의 가르침이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님에도 취해야 하는 이유는, 그의 메시지는 일반적인 진리에 속하기 떄문이다.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다. 성경 책에만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성경은 절대 진리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많은 진리가 있다. 수학적 진리가 있고 물리적 진리가 있고 화학적 진리가 있고 윤리도덕적인 진리가 있다. 그 모든 진리는 다 하나님의 진리이다.

따라서 그의 메시지가 복음과는 상관없다고 해서 악한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소치이다. 다만 그의 메시지를 복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경계해야 할 뿐이다.  -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가 인터뷰에 나와서 그리스도의 절대성 같은 것을 부인하는 것을 보았다고 호들갑을 뜨는 것은 솔직히 우습다. 그의 책을 보면 그에게 복음이 없다는 것을 얼마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책의 가치는 인정해주자)

사족을 달자면,  오스틴은 사람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아는 데에는 탁월한 통찰력을 지녔다.  참으로 부러운 재능이다. 이 부분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본 받았으면 좋겠다. 기독인은 복의 사람으로 부름받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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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렉 로리 지음, 채수범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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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렉 로리 목사님의 설교집이다. 그렉로리는 하비스트 크리스쳔 펠로우쉽 교회의 담임으로 이 교회는 1만 5천여명이 등록교인으로 있다.

설교집이라 서평하는 것이 좀 머슥하기는 하다.

일단 이 책의 내용은 매우 복음적이며 성경적이다.  그의 논거의 출발점은 성경이며, 그의 논지의 전개도 성경을 의지하며 결론도 역시 성경으로 마감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지루하지 않다. 적절한 예화와 재치있는 인용은 그의 메시지를 강화시키고 듣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준다. 혹 설교집을 읽다가 실망한 분들이 있다면, 이 책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겠다. 싸구려 복음과는 전혀관계없으니 염려말고 읽으시라

각 장에 대한 간략한 내용을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장 최고의 날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예수님의 포도주 사건을 기억하는가? 잔치의 마지막에 가장 좋은 포도주가 나왔다. 바로 예수님이 만드신 포도주다.  하나님은 맨 나중에 최고의 것을 주신다. 하지만 사단은 맨 처음에  최고의 것을 준다. 사실은 최고의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그 결말은 쓰디쓴 고통과 비참한 최후이다.  당신은 어느것을 택할 것인가? 지금의 사단이 유혹하는 달콤한 현실을 좇을 것인가? 아니면  힘들어 보이지만 경건한 삶을 선택할 것인가?

2장 천국을 향해 믿음의 발걸음을 옮기라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 다음이 백부장의 아들을 고친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을 표적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것이 암시하는 바가 무엇인가? 예수님은 슬플떼나 기쁠때나  우리의 해결책이 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언제나 그 분을 초청하라. 그분은 언제든지 우리와 함꼐 하실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 옆에 있으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영화배우 실버스타 스텔론은 이렇게 말했다. ' 돈은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 주지 못합낟. 실제로 돈은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돈에 대해서 모든 것이 실제보다 수십만 매나 과장되어 있습니다. 불평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단 재산을 가지게 되면 모든 앞날에 청신호가 켜지고 하늘도 맑게 개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돈은 사람의 인격 가운데서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성격이 드러나게 만듭니다. 하나님꼐 믿고 맡겨라 그러면 기적을 맛볼 것이다.

3장 기도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려라

많은 사람들이 염려 때문에 그의 삶을 소진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염려하는 걱정거리들의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려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오히려 기뻐하라고 한다.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라고 한다. 큰 일 뿐 아니라 작은 일까지 주께 맡기고 그것을 기도하라고 이야기 한다. 낙담이 찾아오면 그 낙담에 굴복하지 말고 기도하라. 다니엘은 좋은 모범이 된다.

4장 예수그리스도가 대답이라면 무엇이 문제인가?

이 세상은 고난과 고통이 가득하다. 이것은 현실이다. 우리는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신다.  고난을 이해하지 못한다할지라도 주님꼐서 지켜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그래도 고난이 계속되는가? 천국을 바라보라. 그 고난은 천국을 향한 여정일 뿐이다. 우리가 받게 될 영광과 지금의 고난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해답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5장 천국에서의 화려한 첫날을 기대하라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할 것이다. 새로운 몸을 입고 새로운 존재가 될 것이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두신 것이며, 우리가 받게 될 영광이다. 이것을 소망하며 살라

6장 당신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의 대작이다.

이 세상이 끝날이 올 것은 자명하다. 우리는 바로 그 날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우리가 그 날을 바라본다면 현재의 삶은 너무나 달라질 것이다.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비록 고난이 닥친다할지라도 그 날을 바라보면 이겨낼 수 있다. 하나님은 그 모든 환경과 역경을 통해서 나를 만들어 나가시고 계시다. 지금 이순간에도, 무의미하거나 헛된 일은 없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통해 나를 만들고 계시다.  이 사실을 기억하라. 그러면 모든 삶이 기쁨이 될 것이다.

요약만 읽으면 밋밋해 보일 수도 있고(사실 제대로 된 요약이라고 말하기는 좀 멋쩍다) 뻔한 이야기 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본문을 읽으면 달라질 것이다. 또 하나, 진리는 단순하다. 쉽지만 무시하고 잘 아는 것 같지만 늘 잊어버린다.

그렉로리는 우리가 잊어버린 진리를 생생하기 되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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