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1
패트리샤 맥코믹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이미 몇 해전부터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절대로 남의 일로 여길 수없는 학교폭력과 더불어 쌍둥이문제처럼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왕따문제. 지난 주 한 TV프로그램에서도 왕따문제를 주의깊게 다루었는데 왕따문제로 인해 소중한 목숨까지도 스스럼없이 버리는 아이들의 잘못된 선택이 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철없는 아이들의 사소한 문제로 여기기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과 왕따 그리고 아이들의 자살. 단지 끌끌하며 혀를 차고 말 수만도 없는 것도 '혹시 내 아이도...'하는 불안감때문일 것이다.

과연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자살로 내몰고 있을까......

단순히 죽음을 선택한 아이들을 피해자로 여기고, 죽음으로 몰아간 아이들을 가해자로 여기며, 그들의 가운데 폭력과 따돌림이 분명한 원인이라 탓하기 보다는 사회적인 원인규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요즘 아이들치고 정서적으로 온전히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부모와 아이들이 화기애애하게 함께 식사를 하고 TV를 보는 것이 더이상 평범한 가정의 일상이 될 수 없는 것이 요즘 우리시대의 가정이 아닐까..... 부모들은 아이들의 학원비를 벌기위해, 아이들을 보다 잘 키우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 까지 돈을 벌러가고 , 또 아이들은 남보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이 학원 저 학원으로 학원순례를 다니는 것이 요즘의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밥 먹는 시간조차도 부족한 우리의 가정. 아이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간과한 채 서로가 고단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 생겨난다. 어쩌면 몇십만 원의 학원비보다는 부모와 마주앉아 밥을 먹고, 사소한 이야기라도 건네는 시간이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돈이라는 물질보다는 가족임을 깨닫게하는 '소통'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 말이다.

 

어쩌면 가정에서 부모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소통'으로 인해 학교에서 친구들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폭력이 폭력이 아닐 수도 있고, 왕따가 왕따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 어쩌면 가정에서부터의 '소통'이 아닐까 싶다.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 도움을 청하는 것 역시 '소통'으로 가능할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본적으로 '소통'을 배울 수 있는 가정이 온전하지 않으니... 아이들의 왕따문제는 어쩌면 올바른 가정의 회복에 그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컷'이라는 섬뜩한 제목의 이 책 역시 가족간의 올바른 소통이 있었다면 주인공 소녀 캘리의 안타까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원인이야 우리 아이들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생명'에 대한 존중감이 없이 행동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여겨지는데, 요즘 세대들의 철없는 행동이라 치부하기엔 참으로 석연치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어쩌면 우리 사회나 캘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가정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잘못된 부담감(이해)과 어른들의 무책임한 행동때문에 말문을 닫아버린 캘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인내하며 들어주는 '당신'으로 인해 병(?)을 치유한듯 보이지만, 결국엔 가정의 회복과 가족간의 소통(오해를 풀어버림)으로써 침묵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된다.

 

이 책에는 캘리 또래의 아이들이 거식증, 마약(약물 남용) 등과 같은 문제로 '주거 치료 시설(정신병원)'에서 함께 생활하며 다시 가정과 사회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담겨있다.

문득, 우리 사회도 10대들을 위한 '주거 치료 시설'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아니, 그보다는 우리의 가정 각각이 아이들의 '주거 치료 시설'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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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아틀라스 시원의 책 1
존 스티븐슨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시원의 책 The Books of beginning」3부작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으로 이미 '전 세계 35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수식어가 증명(?)하듯 중학교에 입학한 후 첫 중간고사를 앞두고 책상 앞에서 씨름하고 있는 딸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접어가며 푹~ 빠져든 책이었다.

케이트와 마이클, 엠마...세 명의 아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부모와 헤어져 고아원을 전전하는 초반부의 이야기에는 측은함이 먼저 밀려왔다. 겨우 네 살밖에 안 된 맏이 케이트가 두 살배기와 갓난아이였던 두 동생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약속을 잠결에 하고 부모와 생이별을 해야 했으니... 그것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주인공은 어떠한 고난과 역경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보이지 않은 힘에 의해 이끌리듯 모범적(?)으로 살아가고는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케이트 역시 마찬가지로 어린 두 동생을 겨우 네 살때 잠결에 엄마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없이 강하게 자란다.물론 그 날의 기억을 그나마 간직한 것은 맏이였던 자신 뿐이었으로.

몇 군데의 고아원을 전전하던 끝에 최악으로 열악한 '희망도 대책도 없는 고아들을 위한 에드가 앨런 포의 집'에서 조차도 골치덩이들로 여겨지던 삼남매. 삼남매를 몹시도 못마땅해 하는 크럼리 원장의 계락(복수?)에 의한듯 보이지만(동물보호소나 다름없는 곳을 알면서도 기꺼이 삼남매를 보내는 원장) 결국엔 운명처럼 메임브리지 폴스에 도착한다.
그리고 펼쳐지는 마법의 이야기는 도저히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한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묘하게 펼쳐지는 주변 풍광에서 느껴지는 신기한 기운(분위기)과 함께 자신들 세 명이 고아원의 전부라는 사실에 삼남매는 바짝 긴장하게 되는데, 자신들을 맞이하는 에이브러햄과 늙은 가정부 미스 샐로우의 푸짐한 식사는 삼남매의 긴장을 풀어지게 한다.

그리고 에이브러햄이 건네준 십오 년전에 찍었다는 낡은 흑백사진 한 장과 탐험삼아 둘러보던 그 방에서 발견한 낡은 책(아무런 내용도 없이 전부 백지 뿐이었던 녹색 가죽 표지의)은 비로소 마법의 세계로 삼남매를 이끈다.

정말 상상만 해도 신기하지 않을까.. 책 사이에 과거의 사진을 넣으면 어느새 과거의 그 시간으로 순간이동을 하듯 삼남매가 사라지고 다시 현재의 사진을 넣으면 뿅!하고 나타나듯 현재로 돌아온다는...... 우연하게 그러나 이미 삼남매가 영문 모를 이별을 하던 크리스마스 이브의 그날에 이미 필연처럼 시작된듯 마이클은 과거와 현재를 드나들 마법의 단초가 되는 사진을 찍어야 하는(만들어 내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보물처럼 간직하며 자신의 일부인듯 여긴다.

뜬금없이 마법의 시간으로 빠져든 삼남매는 처음 자신들을 과거의 시간으로 데려다 주었던 책이 마법이 세상의 일부로 선명하게 존재하던, 마법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하나였던 시대에 자신들의 시대가 끝나고 인간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에 자신들의 존재가 잊혀질 것을 두려워한 마법사들이 지난 수천 년 동안의 모든 비밀과 지식을 한데 모아놓은 '시원의 책'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책이 마법사들의 위대한 지식이 집대성된 세 권의 책 가운데 하나라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이 모든 사실을 알려준 것은 다름아닌 지금의 세상을 지워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고픈 욕망에 사로잡힌 백작부인. 시원의 책을 차지하기 위한 백작부인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다름아닌 백작부인에게 볼모로 사로잡힌 케임브리지 폴스의 아이들때문이었다.
10년이 지나도록 자신들을 찾아오지 않은 부모들에 대한 그리움과 케임브리지 폴스 아이들의 행복을 지켜주고픈 간절함으로 백작부인에 맞서는 케이트 삼남매의 활약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시원의 책을 둘러싸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무리들, 온전한 형체를 가질 수 없어 다른 생명체의 몸을 빼앗아야만 존재할 수 있는 다이어 매그너스 (살짝 해리 포터의 볼드모트가 떠오른다)와 백작부인, 그리고 형체도 소리도 끔찍한 꽥꽥이들과 마지막에 가브리엘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괴물의 형상은 무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이것이 독자의 무한 상상을 재촉하는 판타지의 묘미일 것이다.
케이트 남매를 돕는 핌 박사와 가브리엘은 물론 드워프들과 케임브리지 폴스의 풍경까지 환상적인 마법을 담은 한 편의 영화가 절로 간절해지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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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 엄마가 만드는 일등 아이 공부습관 - 공부습관을 바꾸면 아이의 인생이 바뀐다!
이명주 지음 / 아주좋은날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미 두 자녀를 사교육 없이 명문대, 그것도 법대에 합격시킨 부모의 노하우뿐만 아니라 '학생지도의 귀재', '명강의'로 명성을 얻고 있다는 저자가 쓴 글이어서인지 군더더기 없이 술술~ 읽히는 책이다.
특히 공부하는(?) 아이를 둔 부모라면 체득할 때까지 끼고 살아야 할 것같은  책이다.

사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아무리 책과 담을 쌓고 산다고해도 자녀교육서 한 번 읽어보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쉴 새없이 노하우를 담은 책들을 쏟아내고 있는 요즘이다. 게다가 교육현장의 제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학교 선생님들까지 가세하여 부모들의 적극적인 교육참여를 부채질 하고 있는 실정이다보니 무릇 밥 잘 먹이고 옷 잘 입히고 심성을 곱게 키우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란 소리는 케케묵은 것이 된지 오래다.

자녀교육서를 오래도록(혹은 꾸준히) 읽은 부모라면 '결국엔 그 소리가 그 소리'라는 것이 결론일 것이다.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는듯 제각각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결국엔 하나같이 공부 잘 하는 아이, 명문대에 가는 아이로 키우자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래도 딸아이가 어렸을 때는 정서나 심성을 주로 하는 책들도 적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주(主)는 공부(학습)고, 그 외의 것은 공부를 위한 효율적인 수단 혹은 부재(副材)쯤으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고보면 어느새 부모의 역할이란 공부 잘 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전부가 된 셈이다.

이 책 역시도 그런 추세에 확실하게 한몫하는 책이다. 제목조차도 '일등 엄마가 만드는 일등 아이 공부습관'아닌가..... "한 살짜리 아이는 엄마 품을 원하지만 열 살짜리 아이는 엄마의 능력을 원한다!"는 <프롤로그>의 제목은 한 술 더 뜬다. '아이 공부, 중학교 이전에 결판내라'는 1장의 소제목은 결정타가 됨에 부족함이 없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기는 1급수의 교육환경에 해당하고, 중학교는 2급수, 고등학교는 3급수의 교육환경에 해당한다.... 그래서 우리 자녀교육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 아무리 늦어도 중학교 초기까지는 결판을 내야 한다." 이 구절은 그야말로 대다수의 부모들(결판은커녕 갈피조차 잡지 못하는 나와같은)에게는 쐐기를 박는 셈이다. 이제 당신의 아이는 제아무리 발버둥쳐도 맘 놓고 마시는 1급수가 될 수 없다는..... 하지만, 정작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시기가 빠를수록 효과가 크다는 의미인데 제목을 너무 함축적, 단정적으로 지은 탓이다. 이러한 점이 본문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이 책의 아쉬운 점이다.
특히, 각 장의 소제목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본문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것 같다. 너무 시대의 흐름(혹은 홍보적으로 치우친?)을 좇은 탓이 아닐까 싶다.

문득, 책을 읽고 또 읽다보니 화가 난다. 특별히 이 책의 내용에 불만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님에도.....
곧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는 딸아이에게 당장 읽으라고 표시를 해둔 곳만도 예닐 곱개가 넘는데도 말이다.

아이의 성적이나 대학 합격만으로 아이를 잘 키우는 목표를 삼고 밤낮없이, 휴일도 없이 아이를 책상 앞으로, 교과서 속으로 내몰아야 한다는 말인지......
물론, 과거의 어느 시절에는 학교 시험만 잘 보고 성적만 좋아도 절로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또 대학만 졸업해도, 영어만 조금 잘 해도 걱정없이 취업해서 잘 살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로라하는 명문대를 졸업해도 안심할 수없는 것이 오늘날 젊은 세대의 현실이고, 공부만 잘 한다고 좋은 학교, 취업이 대기하고 있는 시절이 아니다.
이제는 공부만으로, 성적만으로 인생을 설계할 수 없는 시대다.
그럼에도 공부만을 강요하는 우리는 어쩌면 첨단 시대의 아이들에게 돌도끼같은 도구만을 들려주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유행어가 강타한 적이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드넓은 세상에서의 자신을 돌아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학교는 분명 '배우는 곳'이다. 그리고 공부는 학문(지식)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배우고 익힌다는 의미도 분명하게 들어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태껏 아이들에게 학교란 학문(지식)만을 배우는 곳이라고 가르쳐 왔다.

이제는 학교는 기술도 배우는 곳이라고 제대로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알고 있는 공부하는 학교란 결국 절름발이 학교인 셈이다.
지식을 깨우치고 싶은 아이들은  학문(學文)을, 기술에 흥미가 있고 재밌는 아이들은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학교, 그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되찾아주어야 할 학교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학교란 지식만 배우는 곳이라 철썩같이 믿고 있는 부모들이야말로 진짜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닐까?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모르는 것인지... 전문가라고 하면서도 절름발이 학교가 아무렇지도 않은듯  '공부만 하는' 학교, '공부만 강요하는' 부모, '공부만 해야 하는' 아이들로 이끄는 그들에게 정말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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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 토토 The Collection 1
조은영 글.그림 / 보림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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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연령과 시대의 유행을 벗어나 그림책 본연으로 돌아간다'는 캐치프레이즈로 기획된 보림의 <The Collection>시리즈 두 번째 권이다.

1800년대 이전부터 이미 예술적인 분야의 하나로 다루어진(인식되기 시작한) 서양의 그림책 역사는 맨처음 어린이가 보는 그림책에서 어른도 보는 그림책으로의 단계를 밟아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어른이 보는 그림책'은 최근(20년 전후?)에 이르러서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그림책이 출판되기 시작하였다고 하니 그야말로 '새 발의 피'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만을 위한 그림책에서 벗어나 어른과 아이 모두가 즐기고, 모두가 갖고 싶을' 컬렉션이 탄생하였다는 소식에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픈 마음이다.

딸아이가 초등저학년이었을 때 도서실 봉사를 할 때였는데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조차도 그림책은 자신들보다 어린아이들(유치원 꼬마들)이나 보는 책이라며 시시하게 여기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딸아이조차도 그랬던 것 같다. 그림책은 글자가 적은 탓에 읽을 것도 별로 없는 쉬운(?) 책이라고 말이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은 아이가 어렸을 때 글자를 막 읽기시작하면 읽기책으로 글자가 별로 없는 그림책을 내미는 엄마(부모)들의 탓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림책은 말 그대로 그림이 주(主)가 되는 책으로 그림이 내포하고 있는 혹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독자가 나름대로 읽어내는 책이 아닐까.....
글자로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를 확실하게 규정짓는 책보다 독자의 주관적인 독서(해석)이 무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림책의 장점이자 그림책이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볼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달려 토토'는  아이는 물론 어른도 함께 볼 수 있는 책임이 분명하다.
말과 경마장....... 이 책의 주요한 소재이자 배경이기도 한 이 두 가지가 이미 아이와 어른에게는 제각각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에게 말은 장난감이자 경마장이란 낯선 공간에서 처음으로 볼 수 있다는 설레임을 주는 살아있는 동물이다. 그리고 경마장은 살아있는 말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하는 낯선 공간이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경마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은 더이상 살아있는 동물이 아니다. 그저 자신들이 배팅한 돈의 몇 배를 벌게 해 줄 그것(?)에 지나지 않는다. 경마장 역시 일확천금의 꿈을 꾸는 공간에 불과할 뿐이다.

등장한 말들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아이와 달리 뭔가를 보거나 쓰거나 고민하면서 전광판을 보는 사람들 뿐이다. 심지어 아이의 할아버지 마저도.......
처음으로 실제로 살아있는 말을 보는 아이는 "와! 진짜 말이다."라며 감탄을 쏟아낸다. 그리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기수들이 서커스 단원들 같다며 말을 타는 기수들을 부러워 한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맨 먼저 들어오는 말에만 관심이 있다.
아이는 장난감 토토를 닮은 9번 말을 발견하고 9번을 응원하는데 할아버지는 7번 말을 응원하느라 정신이 없다.
결국 토토를 닮은 9번 말의 우승에 아이는 좋아라 하지만 할아버지와 사람들은 하나도 좋아하지 않는다.
"할아버지, 돈 많이 못 땄어?"라고 묻은 아이의 목소리가 힘없이 기어들어가는 것만 같다. 토토의 승리에 팔짝 좋아하던 아이의 기쁨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로도 아이는 할아버지를 따라 경마장에 가고 있는 것일까...
경마장에 가는 것이 점점 지겹고 토토도 다시 볼 수 없었다는 아이의 말이 더없이 슬프게 들려온다.
언제부턴가 말들이 다 똑같아 보인다는 아이의 말에 어느새 아이의 동심을 앗아간 경마장이, 할아버지가, 사람들이 자꾸만 미워진다.

그래서일까....경마장과 경마장의 사람들, 질주하는 말조차도  더없이 거칠고 우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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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지용? 로봇 타임 어린이 지식교양 시리즈 : 까불래용의 알겠지용 8
황덕창 지음, 현태준 그림 / 타임주니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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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하면 만화영화를 보며 우주탐험을 꿈꾸던 어린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영화관 커다란 화면을 통해 나쁜 무리들을 무찌르고 지구의 평화를 지키고 푸른 하늘 높이 날아오르던 거대한 로봇은 어린아이들에게 언제까지나 꿈으로 남을 희망이었다.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인조인간 로보트 마징가~Z!'에 맞서 우리의 태권도를 함께 깨우쳐 주던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 V~!'..까지 그 시절이 아이들에겐 만화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로봇이 꿈이 아닌 현실인 세상이다. 또 '무쇠로 만든 사람'의 모습으로서의 로봇이 아닌 온갖 첨단 소재와 기술이 집약된 과학발전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뼈대 있는 가문, 용의 후손(언뜻 보기엔 돼지의 후손이 아닐까 싶은데..)인 까불래용을 통해 알게 되는 로봇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해 로봇은 어느새 우리의 현실 깊숙이 공존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렴풋하게 어린시절의 추억으로 남아있던 로보트 태권 브이가 1976년 7월 24일에 탄생되었고, 30년이 지난 2006년에는 서른 살 생일잔치까지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주민등록증과 같은 '로봇등록증'까지 만들어 주었다니 그야말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한 셈이다. 이 세상에서 로봇도 함께 살아가고 있노라는....

맨 처음 만들어진 로봇은 1958년 세계 최초로 설립된 로봇 회사가 만든 로봇 팔로 팔 한쪽 밖에 없는 팔이었으며 미국의 자동차 공장에서 자동차 겉에 페인트를 뿌리거나 정확하고 빨리 물건을 집어 드는 일이었던 것이 고작이었던 것에 비하면 요즘처럼 인공지능에 사람을 대신하는 로봇들이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엄청난 발전이다.

공장에서 사람이 하기 힘든 일을 대신하는 로봇은 물론 장애인들에게 밥을 먹여주는 로봇 '마이 스푼', 병원에서 몸이 아픈 환자를 옮기는 로봇, 몸 속의 좁아지거나 막힌 핏줄을 넓혀주는 머리카락 굵기의 1/600 크기의 작은 로봇,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움직이는 대로 똑같이 움직이며 수술을 돕는 아바타로봇  등등 뿐만 아니라 아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인터넷 속에서 사람 대신 정보를 찾고 웹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검색하는 컴퓨터 프로그램같은 인터넷 검색 로봇음 물론 심지어 살아있는 동물을 로봇처럼 조종하는 원격조종 랫봇이란 로봇 쥐까지......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곳곳에서 사람을 대신 하는 로봇들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로봇이 발달하면서 로봇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문제와 같은 부작용(?)도 있지만 사람이 하는 일(심지어 운동경기까지)을 대신하고 때로는 애완동물을 대신하기도 하며 인간을 돕고 또 함께 하는 로봇은 더 이상 만화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캐릭터가 아닌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처럼 로봇이 인간의 생활 곳곳에 출연(?)하기도 전에 이미 아이작 아시모프는 '로봇 공학의 3원칙'을 만들었고, 우리나라도 인간과 로봇 사이에 지켜야 할 예의를 정하는 '로봇 윤리 헌장'을 만들어 점점 더 사람을 닮아가고 능력이 좋아지는 로봇에 대한 우려를 일찌감치 견제(?)하고자 하지만 무엇보다 (본문 42쪽에도 있지만) 로봇이 문제가 아니라 악의로 로봇을 이용하려는 인간에게 보다 큰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로봇 자체가 더 이상 미래의 꿈이 아닌 요즘, 로봇과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이 새로운 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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