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대안학교 졸업생이야! - 대안학교를 꿈꾸는 학부모, 학생들을 위한 졸업생 15인의 리얼 보고서
김한성 외 14인 지음 / 글담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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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새 초등최고학년이 된 딸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심정 역시 여느 부모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경쟁'이라는 사회 속으로 한 발 더 깊숙이 빠져드는 것같은 딸아이를 보며 과연 이대로 좋을 것인가...하는 염려와 걱정을 한층더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전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대안교육을 슬며시 떠올려 보고는 한다. 초창기 대안교육은 나와는 너무도 먼 이야기여서 그다지 떠오르는 것이 없지만 TV프로그램이나 방송을 통해 들었던 기억을 돌이켜보면 공교육이란 울타리 속에 순응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구제기관(?)쯤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탁월함이나 창의적인 능력보다는 무엇인가 부족함으로 인해 또래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들을 그나마 보듬어 줄 수 있는 곳 말이다. 

그에 비하면, 요즘 들려오는 대안교육에 대한 것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초창기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소위 금전적인 뒷받침이 마련되어야 보낼 수 있고 갈 수 있는 특별한 그들만의 교육기관이라고나 할까..... 
언감생심,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수 없다면 오르지 못할 나무가 되어버린 것이 요즘 대안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곳이 분명 있겠지만 보통의 아이들과는 다른 끼와 재능을 더 인정하고 키워주는 곳으로 인식되는 요즘의 대안교육이다. 

대안교육 1세대로 자신들의 청소년기를 보낸 15인의 회상과도 같은 이야기에도 적지 않게 다뤄지고 있는 큰 부분은, 어떤 이유로든(자신의 내부로부터의 것이든 혹은 외부로부터의 것이든) 공교육의 울타리에서 다소곳하게 공교육이 이끄는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혹은 따라갈 수 없는 아이들이,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정말 대안처럼 택한 대안교육.  

그럼에도 15인 모두가 대안교육을 100% 지지하고 있지 않음에 새삼 안도를 느끼는 것은 무슨 심사란 말인가? 하지만, 하나같이 공통적인 것은 자신들이 택했던 대안교육에 대해 결코 후회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 순간(공교육에 안주할 수 없었던)에 택한 최선책이란 이유도 있겠지만, 그 후 자신들의 미래와 인생을 찾아감에 있어 분명 무시 못할 든든한 기초가 된 셈이리라.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제각각의 미래를 인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졸업생들의 이야기는 솔직히 공교육을 졸업한 아이들의 것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공교육이든 대안교육이든 제 갈길을 확신하며 걷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말이다. 

결과적으로 확실한(떳떳한?) 미래를 걷고 있기에 그래도 대안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며 추억처럼 회상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는 공교육을 받은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고보면, 여전히 우리 사회는 과정보다는 결과에 더 의미를 두고 있는 것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그래서일까...15인의 대안학교 졸업생의 이야기 역시 내게는 미적지근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우리가 좋든싫든 이미 사회구성원이 되었고,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기본적인 소양교육을 부모 혹은 교육기관으로부터 받으며 자라고 있다. 따지고보면 이 사회를 제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할 아이들의 사회성을 길러주는 것이 바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성적지상주의나 대학입시만이 최종의 목표인듯 교육하고 있는 우리의 공교육은 분명 문제가 많다고 할 것이다.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결코 상위 몇 퍼센트의 사람들이 아니라 100%의 사람들이 제각각 주어진 일을 가치 있게 여기며 땀을 흘릴 때 우리의 사회는 보다 행복하고 든든한 밑바탕을 갖추게 될 것이다. 

진정한 사회인을 길러내는 참교육을 위한다면 지금의 공교육은 보다 폭넓은 형태의 교육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공교육 스스로가 대안을 마련하는 대의적인 자세가 필요한 요즘이다.
말로만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고 할 것이 아니라, 공교육 스스로 행복은 성적이 아닌 다른 것으로도 추구할 수 있음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문득, 대안학교에서조차도 안주하지 못하고 뛰쳐나간 아이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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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카드, 대한민국 영어공부
송봉숙 지음 / 부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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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으레 쏟아져나오는 무수한 책들 가운데 하나려니 했다. 하루하루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는 현교육제도를 그래도 수용하며 살아야지 하는 살아남기 비법이라도 되는양 그럴싸한 노하우를 내세운 책들에 비하면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듯 모순된 교육제도며 체재를 살짝이나마 꼬집어 주는 책이려니 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교육의 최종목표는 영어 또는 대입이라도 되는 것처럼 미쳐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은 목적도 없이 영어를 배우고 이유없이 대입을 준비한다. 아닌게 아니라 영어와 대입은 아이들의 목적이고 목표가 아니라 부모들의 것이다. 영어에 일류대에 한맺힌(피해의식이 쌓인?) 부모들의 지금과는 분명히 다른 삶을 보장해줄 보증수표인양 아이들을 일찌감치 영어와 대입으로 몰아세우고 있으니 말이다. 

세계가 인정하는 뛰어난 문자, 한글을 갖고도 영어에 미쳐있는 나라가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우리말도 못하는 아이를 영어학원에다 밀어넣고, 발음이 조금이라도 좋아진다면 어린아이의 설소대를 함부로 자르는 부모가 능력있는(교육열이 높은?) 부모라고 인정받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현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자식의 교육은 오로지 돈이 있어야 가능한 나라,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믿는 나라, 학교에서의 교육은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 나라. 그것이 바로 부끄러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대한민국 영어공부에 레드카드를 던지고 있는 저자의 조목조목 이유 있고 근거 있는 이야기를 통해 짚어볼 수 있는 것은, 모순된 교육제도의 현실을 버젓이 알고도 모른체하는 국가와 교육관련자들 그리고 나아가서 정치적인 이유 등등까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하긴, 아이 하나를 키우는 나조차도 한 해에도 몇번씩 바뀌는 교육관련 제도에도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을 하는데, 다년간(몇십 년간) 교육정책을 연구하고 또 연구하는 이들이 그것을 모를까. 어쩌면 복잡한(?) 이유로 알고도 모른체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어교사로 근무하다 미국 현지로 유학까지 한 저자가 냉정하게 바라본 현재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현실. 막연히 잘못되었다가 아니라 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조목조목 짚어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특히,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현실에 대해 느끼는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셈이라고나 할까?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영어교육에 보이지 않는 미국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
' 영어 교육 열풍에서 빠뜨릴 수 없는 건 영어 교육 시장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노력이다. 미국은 세계 여러 나라의 영어 교육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세계가 영어 교육에 열을 올릴수록 그들의 일자리는 많아지고 영어 교육 관련 수익이 높아질테니 말이다.' (본문 167쪽) 

과연 위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현재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란 의미일 것이다. 그러고보면 정치적 경제적 부분뿐만 아니라 교육적인 부분까지도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심각한 현실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건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영어교육 제도를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실인 셈이니 말이다. 정치적 경제적 관계와 얽혀있으니 교육적인 관계는 어떻게 보면 상호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일방적인 관계일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를테면, 정치적 경제적인 거래의 원활함을 위한 부수적인 것정도로 다루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결국엔 영어교육 정책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도 영어로 인한 혜택(?)을 크게는 아니지만 누린 세대여서 영어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자도 본문을 통해 말했듯이 영어는 수단이지 결코 목적 그것도 맹목적인 투자의 대상쯤으로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

우선 영어도 우리말과 마찬가지로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수단, 또는 연구(학문)의 대상.. 그 이상도 또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중국어나 일본어, 독일어나 프랑스어와 마찬가지로 영어도 취급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세계공용어라는 무시못할 힘을 가진 언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아이들의 미래까지도 지레 판가름하고자 하는 것만큼은 반드시 지양해야 할 일이다. 영어를 잘 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세상에는 더 많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영어교육의 현실, 레드카드로 부족하다. 올곧은 양심선언이 필요한 대한민국 영어교육의 현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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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온 1도 올리면 면역력이 5배 높아진다 - 암 고혈압 당뇨 알레르기 비만 우울증을 이기는 체온건강법
이시하라 유미 지음, 황미숙 옮김 / 예인(플루토북)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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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건강이라고는 무심한 편인 나는 그나마 몇 년째 일주일에 세 번 꼬박하는 수영의 덕을 톡톡히 보고있는 셈이랄까.. 1년에 고작해야 한두 번 또는 한 번도 병원을 찾지 않고 지나가는 해도 있어 나름 건강한 체질이 아닐까 짐작해 보고는 한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흔히들 말하는 중년이 되고보니 건강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고개를 쳐들기 시작하는 요즘이다. 왠지 계절이 바뀌는 무렵이면 딱히 병이 난 것도 아닌데 무력감을 느끼고 의욕마저 사라지는 것같아 일상이 힘겹기만 하다.  

사실 가전제품도 시간이 지나면 A/S를 받으며 쓴다는데 사람인들 다르랴. 타고난 건강이 있다하더라도 벌써 몇십 년을 쓰기만 한 셈이니 보약이나 건강제품도 좀 먹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한두 해 전부터 더욱 나를 괴롭히고 있다. 안 먹자니 기운이 없는 것같고 먹자니 찜찜한 농약범벅 한약재가 또다른 딜레마로 나를 괴롭힌다. 

또 다시 계절이 바뀌고 있는 요즘 변함없는 딜레마로 나를 괴롭히고 있을 즈음 읽게된 이 책!
한마디로 'Oh, my body heat!'을 절로 외치게 한다.
나의 체온은 삼십여 년 전 초등학교 체력검사때이후 변함없는 진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상체온인 36.5도라 철썩같이 믿고 있는 나에게 그것은 착각이며 이미 한물 간 기록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이제 나의 체온은 더이상 36.5도가 아니라 그에 못미치는 체온으로 살고 있다고 깨우쳐 주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게 된다. 

일본에서는 정평이 나 있는 저자는 36.5도라는 인간의 체온이 이미 50년 전의 것에 불과하며, 현대인들은 저체온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인해 대부분이 35.0도대의 저체온에 속한다고 한다. 또 저체온화 됨으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지고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쉬운 체질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감기, 폐렴, 천식과 아토피를 비롯해 암과 같은 질병은 물론 우울증이나 신경증 등의 정신질환도 바로 저체온화에 따른 면역력 감소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의 '체온'에 대한 정의는 '몸속의 온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환경과 각종 외부 조건에 따라 다소 변하기도 한다. 하루 중에도 0.5~1도 이내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수치 상으로는 미미한 것 같아도 0.5도가 저하되면 열을 발생시키기 위해 몸이 떨리며, 1도가 저하되면 배설 장애나 알레르기가 발생하기도 한다. (본문 28쪽 그림을 참조하면 그렇다)

체온이라고 하면 딸아이를 키우며 갑작스레 열이 올라 긴장하던 때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인데, 이 책은 고온만큼이나 아니면 더 심각한 저체온화의 심각성을 알려주고 있다. 하긴 한여름이 되어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선선한 실내에서 지내는 것이 낯선 풍경이 아니다. 심지어는 한여름에 에어컨바람때문에 감기에 걸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발병하면 외적인 현상만으로 판단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을 치료하려는 서양의학과 달리 병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더 중점을 두는 동양의학의 원리와 함께, 병자체보다는 인간의 몸을 이해하는 것을 바탕으로 해석되는 이 책이 이채롭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 가족의 평소 식습관을 생각해 보아도 저체온을 부르는 것들이 적지 않다. 특히, 항간에 떠도는(?) 무분별한 속설들을 무심히 따르며 생활하는 우리의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체온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니, 무심코 마시던 찬물조차도 조심스럽다. 보약이나 영양제로 고민하기에 앞서 먼저 내 몸의 체온부터 챙겨 건강을 지켜야겠다.
이제부터는 '안녕하세요?'를 대신해 '당신의 체온은 정상인가요?'를 건네야 할 것같은 생각이 들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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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어린이 도서관 101% 활용법, 쫑나지 않는 해충 이야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우리동네 어린이도서관 101% 활용법
김명하 지음, 마이클럽닷컴 기획 / 봄날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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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 무심한 부모는 결코 없으리라. 특히 대한민국이란 이 나라에서는 말이다. 부모의 수입이 많고 적음을 떠나 가계지출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자녀의 사교육을 위한 비용.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을 받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부모들이 부담하는 사교육비는 세계 최고, 그러나 국가의 교육비지출은 턱없이 낮은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다가오는 6월 2일 지자체선거에서 아이들의 무상급식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나라, 대학의 평균 등록금이 700만 원에 육박하고, 일류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어려운 현실에 학생 스스로 자퇴를 선언하는 나라.......그것이 바로 우리 나라 교육계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사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의지와 기대는 멈출줄 모른다. 방과 후 학교 정문과 후문은 아이들을 학원으로 실어나르기 위한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자연스레 학원 차에 오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결코 낯설지 않은 초등학교의 풍경.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부대끼며 친구를 사귀기 보다는 방과 후에 다시 만나는 학원이나 공부방에서 유대감을 쌓아나간다.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끈끈함보다 같은 학원을 다니는 새로운 소속감이 더 결속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이 학원으로 공부방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 학원이 아닌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도 있고, 또 학교의 방과후 특별활동에 참여하는 아이들도 있고, 또 동네 도서관으로 향하는 아이들도 그 수가 적기는 하지만 사교육이라 칭하는 범주에서 용감하게 벗어난 무리들이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학원이 대표격인 사교육의 울타리를 아직은 거부하는(?) 무리들인 셈이라고나 할까.......

광풍처럼 몰아치는 사교육이 공교육을 옥죄고 있는 현실에서 무대뽀(?)와 같은 사교육에 맞서는 방법에는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무조건적인 사교육의 그늘에 대항해 용감하게 맞서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책'에서 길을 묻고 답을 찾는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더불어 온갖 책들이 있는 그곳 '도서관'도 함께 방법이 되고 있는 요즘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적지 않는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몇해 전 2008년이었던가.. TV프로그램에서도 '기적의 도서관'이라하며 지방의 여러 곳에 도서관을 세워주고 독서에 대한 국민적인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때 새롭게 세워진 산뜻한 모습의 도서관을 갖게 된 그 지역의 주민들을 얼마나 부러워 했던지......

그 후 도서관은 새롭게 우리의 생활 깊숙이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아마도 어린이도서관이란 특별한 공간도 새롭게 우리의 생활에 등장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1979년 5월 4일 세계 어린이의 해를 맞이하여 개관한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한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과 2002년일산에 문을 연 숲속작은도서관이 있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제는 지자체에서 삐까뻔쩍(?)하게 시설도 모양새도 멋지게 만들어 놓은 어린이도서관이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어 반가운 요즘이다. 그런 어린이도서관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이 책은 물론 어린이도서관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하고 있는 기본적인 독서활동 외에 다양한 문화활동과 체험활동 등에 대한 알짜정보들로 가득하다. 문득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어린이도서관에만 열심히 다녀도 사교육은 물론 그 어떤 것보다도 확실한 교육이 보장될 것만 같아 지금 당장에라도 아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도서관으로 향하고 싶은 유혹이 피어오른다. 

그야말로, 누구 하나 딴지를 걸 이유조차 없는 '책'과 '독서'에 온갖 다양하고 유익한 체험활동과 참여가 가능한 활동에 대한 안내를 읽고 있자면 도서관이야말로 무분별한 사교육이 판치는 암울한 현실에서 한줄기 빛이 된듯 희망이 솟아난다.
참고도서에서 인용한 도서관 이용자들의 하나같은 도서관 예찬론은 나름의 이유때문에 평소 도서관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나를 주눅들게 한다. 여태껏 어린이도서관과 긴밀한 혹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음으로 인한 불안감에 상심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사교육도 모든 아이들에게 독이 아니듯 어린이도서관도 정답이 될 수 없다. 책과 독서가 상당부분 좋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듯 말이다. 그럼에도 어린이도서관 활용법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내 보기에 예찬론에 가까운 이 책이 나를 짜증나게 한다. (물론 내가 좀더 어린이도서관과 친했더라면 짜증보다는 수긍이 컸을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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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쟁이, 루쉰
왕시룽 엮음, 김태성 옮김 / 일빛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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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하면 '아Q정전'밖에 딱히 떠오르지 않는 나로서는 '그림쟁이, 루쉰'이라는 제목이 무슨 신기루라도 되는양 의외로 다가왔다.
'그림쟁이'라는 수식어에 솔직히 지극히 '보편적인' 그림을 기대하며 받아든 책은 생각보다 두께며 부피감이 묵직하였다. 자연히 제법 많은 그림을 기대하며 책장을 펼쳐들었다.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문학의 중요성을 절감하여 문예 활동을 시작했다는 루쉰에 대한 앞표지 날개에 적힌 소개글에는 엄연히 '중국의 소설가이자 사상가'로만 적혀있음에 더욱 루쉰의 남겼을 그림에 호기심이 더욱 꿈틀거렸다.
하지만, 가볍게 휘리릭~ 넘겨본 책장마다 언뜻언뜻 보이는 것은 '보편적인' 그림이라하기엔 좀 무엇한(?) 작품들이 좀 작다싶은 크기로 실려있고  그에 얽힌 루쉰의 기록과 배경(해설)이 주석처럼 달려있었다. 

30년 넘게 루쉰 연구에 몰두해 온 루쉰 연구자인 엮은이 왕시룽은  <이 책을 엮게 된 인연>글을 통해 루쉰이 어려서부터 그림을 매우 좋아했으며  훌륭한 미술 훈련을 받은 경력이 있음과 소년 시절에 습자지 같은 종이로 된 명공지에 수상소설을 모사하기도 하였음을 언급하고 있다. 또 남경에서 과학기술을 배울 때 그림을 접하게 되었으며 일본에서 의학을 전공하면서 해부도를 그리게 된 것이 그의 회화 실력을 향상시키는 미술훈련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더불어, 그가 루쉰을 연구하며 발견한 100여 점이 넘는 미술작품들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들을 정선하여 애호가들에게 보여주려 하고자 한다는 이 책의 집필 목적과 함께, 각각 한 점뿐인 국화(國畵)와 전각을 비롯하여 평면디자인과 선묘, 책과 잡지의 디자인 부문으로 분류하여 담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기대했던 그림과는 다소 다른 루쉰의 작품 하나하나를 생경한(미술에) 시선으로 하나하나 보면서 주석같은 루쉰의 이야기와 관련기록과 해설까지 읽으려니 새로운 재미가 느껴졌다.
이를테면, 당시 중국인들의 의식을 고취하고자 하는 루쉰의 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엿볼 수 있다고나 할까....... 

선현들에 관한 자료는 물론 골동품과 책도 구입한 후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길 때도 상세한 그림을 덧붙이고, 또 중국작품을 번역하는 일본인 친구의 질문에 대한 편지에도 설명과 함께 이해를 돕는 그림이 곳곳에 있는 것만 보아도 루쉰이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는 일기장에 자신이 구입한 집의 구조를 그려놓기도 하고 또 자신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이 근무하게 된 대학이며 묵게 된 방의 위치까지 그려보내기도 하였다.

사적이라 할 수 있는 일기며 편지글에 담긴 소소한 그림은 사실 그저 설명이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려놓은 것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생동감이 넘친다' '간결하고도 우아한 풍취를 자아낸다'는 등의 해설은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지도 하였다. (그림에 문외한인 솔직한 나의 느낌이다) 

'책과 잡지 디자인'에 관련한 것들은 대부분 표지의 그림과 글씨로 되어 있는데 역시나 나에게는 미술 작품으로보다는 그가 출판한 번역집들과 문집 등 다양한 저술 활동을 하였다는 것이 더 눈에 들어왔다.

아쉽게도 표지의 작품들에 대한 화려한(?) 해설에는 그다지 공감을 느끼지 못하였지만, 문학 활동에 대한 루쉰의 열정만큼은 제대로 느끼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문득 '그림쟁이, 루쉰'이라는 제목은 그림을 잘 그리는다는 의미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즐겨 그렸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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