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론 - 아베, 일본 우경화의 뿌리 살림지식총서 529
이기용 지음 / 살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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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4일부터 시작된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된 일본산 불매 운동, 8월 2일에 있었던 일본의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 8월 22일에 발표된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연장 종료 결정 등의 일들이 진행되면서, 한일 관계는 무기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거의 전쟁 수준까지 간 것 같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에 대한 원인은 결국 일본이 제공했는데, 그렇다면 왜 일본은 이렇게 극단적인 조치까지 취한 걸까? 그 이유를 파악하려면 먼저 아베와 그를 위시한 일본 우익의 사상을 알아야만 한다. 아베와 그의 주변에 포진한 일본 우익의 핵심 사상에는 '정한론'이 자리 잡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과거사에 관한 책임과 반성을 회피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이 보이는 이런 태도의 근간에는 정한론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을 진정한 반성의 길로 유도하려면 한일 관계를 파탄시킨 침략 사상의 원형, 정한론의 실상을 이해하고 뿌리 뽑아야 한다고 한다. 더구나 현재 일본에서 정한론이 무서운 생명력으로 부활하고 있기에, 이에 대한 규명과 시정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정한론은 일본 근대화의 기점인 메이지 초기에 등장한 사상으로, 불행한 근대 한일 관계의 서곡이자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에 대한 왜곡된 인식의 연원이라 할 수 있다. 근대 일본의 침략 사상인 정한론은 메이지 초기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정한론의 근원은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건국 과정을 담은 <<일본서기>>는 일본의 기원과 형성 과정을 다룬 책으로, 한반도에 관한 내용도 수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 내용이 너무 신화적인 데다가, 초기 기록자의 조작과 후세의 개작이 더해지면서 사실로 볼 수 없는 왜곡된 부분이 많다. 고대 천황제 국가에서 천황의 정당성과 권위를 높이기 위해 편찬한 책이기에, 한반도와 관련된 내용은 사실성이나 시기적인 부분에서 많이 왜곡돼 사실이라고 믿을 수 없는 내용이 많다. <<일본서기>>에 기술된 내용 중에서 아직까지도 일본인의 뇌리에 각인돼, 한일 간의 긴장 관계나 무력 충돌이 있을 때마다 상기되는 이야기가 바로 '진구 황후의 삼한 정벌설'이다. 내용은 신탁을 받은 진구 황후가 신의 보호 아래 신라를 무력으로 침공하고,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했다는 것이다. 이후 삼국이 일본에 조공을 바치고 종속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이 허구의 설화는 여몽 연합군의 일본 침공, 기해동정이라고 불리는 쓰시마 정벌, 임진왜란, 메이지 초기 정한론 등, 한일 간의 긴장 관계나 무력 충돌이 생길 때마다 다시 포장되고 재생됐다. 이 설화의 내용은 일본을 천황 중심의 신국으로 보는 인식과 조선을 향한 멸시를 담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삼한 정벌설이 등장했는데, 결국 일본에 침략적인 집권자가 등장할 때마다 이 설화가 역사적 사실로 둔갑돼 침략 행위에 힘을 실어줬다.

 임진왜란 이후 등장한 에도 막부는 조선과의 국교정상화를 통해 선린우호의 길을 열었다. 이는 에도 막부의 문을 연 도쿠가와 이에아스가 조선을 문화와 학문의 선진국으로 간주하고 다시 교류하길 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삼한 정벌설에 근거한 침략적인 시각은 잠시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17세기 후반,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삼한 정벌설에 입각한 '조선 멸시론'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에도 초기 유학자들이 형성한 '조선 존중론'과 대치하는 조선 멸시론과 속국론이 하야시 시헤이라는 사람에 이르러 침략론으로 발전한다.

 한편 정한론과 관련해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요시다 쇼인'이다. 요시다 쇼인은 1853년에 미국의 함선을 이끌고 와 개항을 요구한 페리 제독의 행동에 자극을 받았다. 이에 그는 천황을 중심으로 서구를 무찌르자는 '존황양이론'을 주장했다. 그리고 서구 열강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속 대상으로 조선과 아시아를 겨냥하는 침략론을 펼쳤다. 요시다 쇼인은 삼한 정벌설을 최초의 조선 침략으로서 역사적 사실로 인식하고, 그 위에 자신의 침략론을 펼쳤다. 그가 구상한 조선 침략론의 중심에서 삼한 정벌설이 부활한 것이다. 이 사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주창한 '대동아공영권'의 원론이라 할 수 있다. 조선 멸시론과 침략론이 요시다 쇼인에 의해 집대성돼 체계화된 정한론으로 결실을 맺었음을 볼 수 있다. 요시다 쇼인은 서양 열강의 압박에 못 이겨 불평등 조약을 체결한 막부 체제의 무능을 비판하면서, 막번 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천황 중심의 '국체론'을 이념으로 삼았다. 이 이념의 근거는 삼한 정벌설이다.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은 존황국체론과 일치한다. 그래서 정한론은 천황 중심의 신국을 수립하고, 이 위세를 몰아 조선을 정벌하자는 '존황정한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상은 메이지 초기에 이르러 정한론으로 이어진다.

 요시다 쇼인의 제자와 동조자들은 1868년에 '메이지 유신'을 세운다. 이는 도쿠가와 봉건 막번 체제를 무너뜨리고 일본을 천황 중심의 근대 국가로 변모시킨 정치사회적 개혁이었다. 이 시기에는 열강의 식민 지배와 제국주의 논리가 통했다. 그러자 일본 내에서도 내적으로는 민권을 탄압하고, 외적으로는 식민지 확장을 통해 국권을 강화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것의 첫 단계가 바로 정한론이다.

 메이지 정부 내에서 요시다 쇼인의 사상을 충실히 계승해 정한론을 처음 발의한 사람은 당시 참의(각료)였던 '기도 다카요시'다. 당시 조슈 번(오늘날의 야마구치현)의 역할과 대조선 외교에서 보여준 지위를 감안했을 때, 그의 발언에는 영향력이 있었다. 메이지 정부의 집권자는 요시다 쇼인의 존황국체론을 계승해, 왕정 복고를 알리는 서계(공식 외교 문서)를 조선에 보냈다. 그런데 서계에서는 메이지 천황을 조선 국왕보다 위에 뒀다. 

 종래 선린우호의 격례와 양식, 내용과는 다른 서계를 본 동래부사 정현덕은 문서 수납을 거절하고 일본 사절을 돌려보낸다. 조선은 조선 시대 이래로 이어져 온 일본과의 선린우호 관계를 유지하길 원했다. 이후 조선 정부가 일본에 서계 양식 변경을 요청했지만, 메이지 정부는 '황(皇)'과 '칙(勅)'이라는 문구를 고수한 채 사신을 보냈다. 이는 메이지 정부가 요시다 쇼인의 존황정한론을 그대로 계승해 외교 정책에 반영한 결과다.

 조선이 계속해서 일본 사절을 돌려보내자, 메이지 정부는 1869년 12월에 쓰시마를 통한 대조선 교섭을 중단한다. 교섭을 중단한 일본은 당시 외무대록이었던 사다 하쿠보 등을 조선으로 파견해 실상을 파악하도록 한다. 그런데 사다 하쿠보는 조선으로 가기 전부터 삼한 정벌설을 사실로 규정하고 과격한 정한론을 주장했다. 1870년 4월에 돌아온 사다 하쿠보는 "조선과 관계를 수립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과격한 정한론의 주장을 담은 <<건백서>>를 제출했다. 이 내용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을 재현하자는 것이었다.

 정한론은, 1873년에 사쓰마(오늘날의 가고시마) 출신의 집권자인 오쿠보 도시미치와 사이고 다카모리 등 메이지 정부 내에서 파벌을 가르는 심각한 정치 문제였다. 1873년 '메이지 6년 정변'이라고 불리는 '정한 논쟁'은, 왕정 복고를 알리는 문서를 조선에 보낸 후 교착 상태에 빠진 대조선 교섭에서 정한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실행 방법과 시기의 차이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다. 메이지 정부의 내분을 초래한 정한 논쟁은 즉시 정한을 주장한 자나 시기상조를 이유로 반대한 자나, 정한이라는 대외관의 본질에서는 같았다. 따라서 이 논쟁의 진상은 권력 내부의 파벌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메이지 초기의 정한론은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을 계승한 것이며, 메이지 정부 수립 직후 정치적 불안이 생기자 조선 침략을 통해 시선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것이었다. 또 서구 열강에 정치·경제·심리적으로 입은 압박과 손해를 보상받으라는 요시다 쇼인의 주장을 그의 제자와 동조자들이 실천에 옮긴 것이기도 하다.1876년, 드디어 조선 침략의 첫 단계인 '강화도 조약'이 체결됐다.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일본은 조선을 강제 병합할 때까지 일관된 대조선 침략 정책을 수행했다.

 정한론자로 이뤄진 메이지 정부가 일본의 부국강병을 성공시키려면,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와 국민 통합이 필요했다. 메이지 정부 수립 직후 요시다 쇼인의 제자인 이토 히로부미는 1888년 6월에 추밀원에서 제국 헌법 초안을 심의한다. 당시 그는 "일본에서 중심이 될 존재는 오직 천황가뿐이다"라고 단정한다. 이 결과, '천황제'가 국가 통합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이는 요시다 쇼인의 존황국체론을 고스란히 계승한 것이기도 하다. 이후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주의 침략 사상'과 도쿠토미 소호의 '대일본 팽창론'이 등장한다.

 현대 일본은 어땠을까?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연합국 군정의 지배를 받는다. 전후 미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근간에 천황이 있다고 보고 천황제 폐지를 고려한다. 그러나 당시 연합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는 천황제 폐지 시 있을 일본 국민의 반발과 패닉을 생각해 천황제를 유지하면서 점령 정책에 유리하게 활용하기로 한다. 이로 인해 천황은 책임을 면하게 됐다.

 1947년, 지금의 '평화헌법'인 일본 헌법이 제정되는데, 천황은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남게 됐다. 천황이 면죄되면, 천황을 따른 국민들만 전쟁과 침략에 대한 반성을 통감할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천황의 면죄는 현실로 나타났다. 이렇듯 쇼와 천황에 대한 단죄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일본은 침략 전쟁에 대한 책임을 매듭 짓지 않고 넘어가 버렸다. 심지어 천황은 '더 비참할 수 있었던 일본을 구원했다'는 전후 평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전후 일본 우익의 천황 숭배와 정한론 부활의 씨앗으로 남았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아베 정권 우경화의 원인이기도 한데, 아베도 천황 숭배자다.

 아베는 재집권 1년차인 2013년 12월 26일,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과 2차 세계대전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했다.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배경에는 과거 일본이 벌인 침략 전쟁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기시 노부스케를 향한 존경심이 깔려 있다. 

 또한 아베는 2006년 1차 집권 시부터 평화 헌법 개정을 주창했다. 재집권 후에도 그는 정치 생명을 걸고 다시 헌법 개정을 추진했다. 평화 헌법을 자주 헌법으로 바꾸고, 자위대를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강한 군대'로 만들자는 게 요지였다. 2014년 7월 1일, 평화 헌법의 근간을 뒤흔드는 헌법 해석 변경이라는 변법으로 각의 결정을 거쳐 집단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했다. 왜 아베는 대다수 일본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집단 자위권을 추진할까? 그리고 왜 그릇된 역사관에 기초해 망언을 일삼을까? 이를 알려면 아베의 배경과 본질 사상을 알야야 한다.

 아베의 고조 할아버지인 오시마 요시마사는 1894년에 청일전쟁이 있기 전 불법으로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의 사령관이었다.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이자, 전후 일본 우익 보수 정치의 대부로 불리는 인물이다. 이걸 봤을 때 아베는 뿌리 깊은 우익 집안의 구성원이다. 이런 아베가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묘소에 찾아가 참배를 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요시다 쇼인이다. 요시다 쇼인은 도쿠가와 막부 말기에 아베의 고향이자 선거구인 조슈 번의 하기에서 사숙을 열어 천황 숭배와 정한론을 설파했다. 그렇기에 아베가 존경하는 요시다 쇼인의 사상을 살펴보면 아베 정권의 향후 방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지금도 아베 주변에는 2차 세계대전 전범과 관련되거나 일본 제국주의에 동참한 사람들의 후손과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인물들이 포진해 정권의 핵심 보직을 맡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 우익 사상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정한론을 역사적 배경과 함께 살펴봤다. 사실 일본과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이 갈등의 주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정한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정한론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일본을 상대한다면, 갈등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봉합 수준에 머물 것이며 우리의 이익도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일본과의 갈등이 첨예해진 이 시점에 정한론을 구체적으로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정한론을 학습해 일본 우익의 사고 체계를 파악한 이후에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내가 외교 전문가는 아니기에 조심스럽지만, 이럴 때일수록 일본의 양심 세력과 전 세계에서 일본의 참회를 요구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더욱 강화해 아베 정부를 압박해 나가는 기본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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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파친코 1~2 세트 - 전2권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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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작품 <<파친코>>. 강렬한 도입부만큼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의 삶도 참 기구하다. 도대체 역사는 각 인물들을 어떻게 망쳤으며, 그들은 어떻게 이에 맞서며 살아갈까? <<파친코>>는 재일 한국인 가족의 처절한 삶을 통해 이를 그려냈다.

 부산 영도가 고향인 훈이 엄마와 아버지. 그들의 유일한 혈육인 훈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언청이인 데다가 한쪽 발이 뒤틀린 장애까지 갖고 있다. 이런 아들을 키우는 훈이의 부모는 먹고살기 위해 하숙을 치기 시작한다.

 훈이가 27살이 되던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한다. 그럼에도 훈이의 부모는 생계에만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1년 뒤, 훈이는 한 가난한 집안의 막내 딸인 양진이와 결혼한다. 둘은 결혼해 아이를 낳긴 했지만 모두 죽고 딸인 선자만 살아 남았다. 훈이는 유일한 자식인 선자를 아끼지만, 선자가 13살이 되던 해에 결핵으로 죽고 만다. 남편과 시부모를 모두 잃은 양진은 혼자서 선자를 키우고 하숙집을 운영해 나간다.

 일본이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1932년, 평양에서 백이삭이라는 목사가 양진의 하숙집을 찾아 온다. 그의 형인 백요셉이 오사카로 가기 전 이 하숙집에 머문 적이 있어 동생에게 오사카에 오기 전에 한번 묵으라고 추천했기 때문이다. 이삭은 이미 하숙객으로 꽉 차 있는 양진의 하숙집에서 지내게 된다.

 한편 선자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시장에 간다. 필요한 물품을 다 사고 집에 돌아가려 할 때, 일본인 학생들이 선자를 에워싸고 희롱하기 시작한다. 선자는 그들에게 제대로 저항할 수 없어 당하고만 있었다. 이때 시장에서 생선 중매상으로 일하는 고한수가 일본인 학생들을 쫓아내 선자를 구해낸다. 이 일로 둘은 가까워졌고 만나는 사이까지 발전한다. 그리고 성관계까지 맺게 되면서 선자는 한수의 아이를 가지게 된다. 선자는 오사카에 갔다 돌아온 한수에게 이 사실을 말한다. 그런데 한수는 오사카에 자신의 본처가 있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3명의 딸을 낳았다고 고백한다. 선자는 이 말에 충격을 받는데, 한수는 그런 선자에게 엄마인 양진과 뱃속의 아이와 같이 살 수 있도록 집을 구해주겠다고 말한다. 선자는 한수에게 배신감을 느껴 그에게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말해 버린다.

 선자는 아이를 가진 사실을 양진에게 말했고, 양진은 이 일 때문에 고민에 빠진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아이를 낳게 되면, 선자가 손가락질을 받게 될 뿐 아니라 아이를 호적에 올리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양진에게 이삭은 자신이 선자에게 청혼을 해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 안 되겠냐고 묻는다. 양진은 이를 허락한다. 이삭이 선자에게 청혼하자 선자도 이를 수락한다. 이삭과 선자는 요셉이 있는 오사카로 향한다. 둘은 요셉과 그의 부인 경희가 사는 집에 살게 된다. 이삭은 오사카에서 한 교회의 부목사로 일한다. 얼마 후, 선자는 아이를 낳는다. 비록 이 아이는 한수의 아이지만, 요셉은 이 아이를 자신의 친조카라 생각하고 '노아'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몇 년 후에는 이삭과 선자 사이에서 또 다른 남자 아이가 태어난다. 이 아이의 이름은 '모자수'다.

 노아가 6살이 되던 1939년의 어느 날, 요셉이 집에 돌아왔는데 아무도 없었다. 요셉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 이삭의 교회로 간다. 그곳에서 교인들로부터 이삭이 신사참배를 거부해 경찰서에 끌려갔다는 말을 듣게 된다. 요셉은 곧바로 경찰서로 갔지만 이삭의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이삭이 갇혀 있는 동안, 요셉만으로는 집안 형편이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희와 선자는 장사를 하기로 한다. 경희가 김치를 담그면 선자가 그것을 팔았다. 선자가 한창 장사를 하던 어느 날, 근처에서 숯불구이점을 운영하는 김창호라는 사람이 선자에게 다가왔다. 그는 선자의 김치가 맛있다고 소문났다면서 자기 식당에 팔라고 했다. 선자는 김치를 담근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며칠 후에 주겠다고 말하면서 창호를 돌려 보냈다. 며칠 후, 선자와 경희는 김치를 가지고 창호의 가게에 갔다. 창호는 선자와 경희에게 자신의 가게에서 반찬을 만들어주면 안 되겠냐며 제안한다. 선자와 경희는 이를 받아들인다.

 노아가 8살이 되던 해였다. 노아가 집에 돌아왔는데 거지꼴을 한 사람이 집에 쓰러져 있었다. 알고보니 그 사람은 이삭이었다. 이삭은 2년이 넘는 투옥 기간 동안 고문을 심하게 당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원래 몸이 약한 체질이어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 선자가 그를 간호했지만 애석하게도 이삭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1944년 12월, 창호는 선자와 경희에게 전시 체제로 인해 더 이상 가게를 운영할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경희와 함께 시장으로 간다. 홀로 남은 선자가 가게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가게에 찾아왔다. 그는 한수였다. 선자는 깜짝 놀랐다. 한수는 충격을 받은 선자에게 창호의 가게는 사실 자신의 가게이고, 선자가 오사카에 온 이후부터 그녀를 쭉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한다. 한수는 선자에게 곧 미군이 오사카를 폭격할 테니 가족과 함께 자신의 지인이 운영하는 농장으로 가라고 말한다. 선자는 집으로 가 떠날 준비를 하지만, 요셉은 나가사키에 일자리가 있다면서 나가사키로 떠난다. 결국 요셉을 제외하고 선자와 경희, 노아, 모자수만 한수가 알려준 농장으로 피난을 간다. 선자와 나머지 가족이 농장에서 전쟁의 참극을 피하고 있을 때, 한수는 한국에 있는 양진을 찾아 농장으로 데려온다. 또 부하들을 시켜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인해 부상당한 요셉까지 찾아 농장으로 데려온다. 요셉은 큰 부상을 당해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는데, 그 와중에 한수가 노아의 친부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한수가 야쿠자의 보스라는 사실까지 알고 만다.

 전쟁이 끝난 후 선자의 가족은 다시 오사카에 돌아온다. 양진과 선자는 장사를 하고, 경희는 아픈 요셉을 간호했다. 노아는 대학 입시를 봐도 되는 나이까지 자랐고, 모자수도 학교에 다니게 됐다. 두 형제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아왔다. 하지만 노아는 공부를 잘했기에 동생인 모자수보다는 차별을 덜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모자수는 성적도 안 좋아 더 많은 차별을 받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주먹으로 자신을 멸시하는 상대를 혼내줬다.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자 모자수는 문제아로 낙인찍힌다. 모자수는 싸움에 휘말리는 게 피곤하다고 여겨 방과후에는 엄마의 가게에서 일을 도왔다. 한창 엄마의 일을 돕고 있던 모자수는 배가 고팠는지 김밥을 사 먹고 오겠다며 가게 밖으로 나선다. 그러다 양말 가게 점원인 지아키를 보고 그녀에게 가 대화를 나눈다. 둘이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한 손님이 가게로 들어와 지아키를 희롱한다. 모자수는 그 손님에게 주먹맛을 보여줬다. 모자수는 곧바로 엄마의 가게로 도망쳐 왔는데 경관이 가게로 찾아온다. 경관은 선자에게 몇 가지를 물으면서 조사를 한다. 이때 선자의 가게 단골이자 파친코 게임 가게 사장인 고로가 들어와 경관에게 몇 마디 하자 경관이 돌아가버린다. 고로는 모자수에게 당장 내일부터 학교에 나가지 말고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라고 말했고, 모자수는 이를 받아들인다. 이렇게 모자수는 고로의 밑에서 일하게 된다.

 노아는 와세다대학에 합격한다. 하지만 등록금이 문제였다. 이것 때문에 고민하던 선자와 노아에게 한수가 손을 내민다. 한수는 노아의 등록금을 내주고 도쿄에 있는 자취방까지 잡아준다. 선자와 노아가 한사코 거절했지만 한수는 막무가내였다. 한수 덕분에 노아는 와세다대학 영문과에 들어가 공부를 할 수 있게 됐다. 형이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모자수는 고로의 새로운 파친코 가게 운영인이 된다. 그리고 유미를 만나 결혼해 솔로몬이라는 사내 아이를 낳는다.

 학교에서 공부에 매진하던 노아는 한수가 자신의 친부임을 알게 된다. 노아는 오사카로 가 선자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선자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다 얘기한다. 노아는 자신의 친부가 야쿠자 두목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오사카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간다. 이후 노아는 선자에게 편지를 부쳤는데, 그 내용은 대학을 그만두고 일을 하고 있다는 것과 앞으로는 자신을 찾지 말아 달라는 것, 한수가 지원해준 돈을 갚겠다는 것 등이었다.

 나가노에 도착한 노아는 그곳에 있는 파친코 매장에서 경리 일을 맡았다. 노아는 일을 아주 성실하게 잘해 일하고 있는 파친코의 책임자가 됐다. 그리고 같은 경리 직원인 리사와 결혼해 아이 넷을 낳는다.

 선자는 노아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수가 노아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며 그녀를 차에 태우고는 나가노로 향한다. 그곳에는 노아가 운영하는 카지노가 있었다. 선자는 바로 노아에게 달려간다. 모자는 오랜만에 얘기를 나눈다. 그런데 노아가 선자에게 충격적인 말을 한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 중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면서, 이걸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는 순간 큰일이 나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한 후 노아는 선자를 돌려보내면서 곧 집으로 연락하겠다고 약속한다. 며칠 후 선자는 한수로부터 노아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노아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은 후로도 양진, 선자, 경희, 모자수, 솔로몬은 각자 자신의 삶을 치열하고 처절하게 살아 나간다.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디테일하게 잘 이뤄졌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일본인으로 살아가길 바라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노아와 모자수, 솔로몬의 심정이 잘 표현됐다고 본다. 이 덕분에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아 일본 국적을 취득한 노아의 심정이 아프게 느껴졌다. 또 일본에게 나라를 뺏긴 상황 속에서도 먹고사는 문제를 더 중요시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서민들의 감정도 세세하게 잘 표현됐다고 생각한다.

 선자와 그녀의 손자인 솔로몬까지 재일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살아가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이들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역사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역사가 이들을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몰아 넣었다. 그럼에도 선자와 가족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강한 존재들이다. 이들이 삶을 꾸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의 치열한 삶은 단순히 생계 때문만도 아니고 일본에서 인정받으려는 노력만도 아닌 개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행위였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파친코에서 일하는 노아와 모자수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지만(선자의 가족에 비해 한수의 비중은 작기에 한수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불법을 자행하며 장사를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능력이 닿는 선에서 법을 준수하며 정직하게 일한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끝으로 최근 한일 양국이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 이 책을 읽으니 마음이 어지럽다. 그럼에도 한 가지 생각은 명확하다. 선자의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각종 혐한 시위와 일본 내에 존재하는 재일 한국인을 향한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굳세게 살아가는 현재의 재일 교포들도 개개인으로서의 존엄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것이다. 역사는 선자와 그녀의 가족, 그리고 현재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 한국인들을 고난으로 밀어버렸다. 하지만 선자와 그녀의 가족뿐만 아니라 현재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 한국인들 역시 이런 역사에 관계 없이 꿋꿋이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고 있다. 이처럼 역사의 비극 속에서도 강인하고 굳세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보면서 나는 이번 리뷰의 제목을 '역사가 그들을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고 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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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 - 유병재 농담집
유병재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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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는 "잔혹하고 기괴하고 통렬한 풍자를 내용으로 하는 희극"이다(국립국어원 출처). 나는 이런 블랙코미디를 좋아한다. 누구나 한번쯤 부조리하다고 생각해 본 것을 직설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이다. 이런 블랙코미디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대리 만족을 안겨주는데, 방송인 유병재의 <<블랙코미디>>는 이 역할을 해냈다. 유병재는 이 책에서 본인의 느낌을 자신만의 유머로 풀어내 본인만의 블랙코미디를 구현했다. 여기에는 블랙코미디 본연의 목적인 현실 풍자에 더해 자기 성찰의 메시지도 들어 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돈을 잃으면

대개 명예와 건강도 잃는다. - 32p


아들딸

대한민국에서 아들딸로 살기 힘든 이유

: 딸 같아서 성희롱하고 아들 같아서 갑질함. - 77p


복덩이

나는 복덩이인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여태껏 내가 속했던 모든 집단은, 내가 들어오기 전까진 항상 빡셌고 지금처럼 편한 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들어옴과 동시에 모든 집단이 다 편해지고 기가 빠졌다고 했다. - 86p


무지의 무지 지의 지

너는 네가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며

아는 거라곤 네가 다 아는 줄 안다는 것뿐이다. - 128p


갑질

나는 굽실대지 않는 사람을 불친절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갑질은 내가 하는 것이었다. - 151p


산 사람은 살아야지

광화문을 지나던 택시 기사님 말씀대로

이제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부끄럽지 않게. - 162p


 유병재의 글은 본인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낸 유병재식 유머이자 블랙코미디다. 유병재의 유머는 우리가 통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뒤집는 동시에 현실 속에서 마주치는 부조리를 '원래 그래'라며 외면하는 우리에게 각성을 촉구한다. 물론 그의 글을 읽었다고 해서 당장 우리가 현실 속 부당함에 맞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병재식 블랙코미디는 현실을 꿰뚫어봄으로써 우리가 다양한 이유로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들에 관해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한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사회의 부조리를 탓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유병재의 모습이 담겨 있다. 결국 유병재는 자신만의 생각과 언어에 바탕을 둔 블랙코미디를 통해 독자들에게 현실 속 부당함에 눈뜨기를 촉구하는 동시에 자신에 대한 성찰도 권하고 있다. 나는 유병재의 이런 블랙코미디가 좋다. 그래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같은 유병재의 블랙코미디를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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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의 중국 수업 - 현대 중국의 진심을 알고 싶은 당신을 위한 맞춤형 특강
이욱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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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까지 한국은 중국에 '801억 8천만 달러(약 94조 5천억 원)'를 직접 투자해 중국에 네 번째로 많이 투자한 국가가 됐다. 또 지난해 한중 무역액은 '3천억 달러(약 353조 4천억 원)'를 기록했고, 중국은 우리의 세 번째 무역 파트너가 됐다(연합뉴스, '한국, 중국 직접투자액 800억 달러 넘겨…세계 4위', 2019. 7. 22). 이 기사는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다양한 출처를 통해 접할 수 있는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관계에 단순히 하나의 사실을 보탠 것일 수 있다. 또 경제적 측면은 다양한 교류로 묶여 있는 양국 관계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과 깊이 연관돼 있는 중국은 현재 G2 국가로 부상해 세계의 패권을 두고 전 세계에서 미국과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 세계에서 미중의 힘이 가장 강하게 맞부딪치는 곳이 바로 한반도다. 이는 우리가 전통적 우방인 미국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국에 관해서도 알아야 함을 의미한다. "미중 신냉전 시대에는 중국도 공부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그럼 중국을 제대로 알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중국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마음을 제대로 보려면 중국의 근현대사를 이해해야 한다. 

 1840년~1842년까지 있었던 '아편전쟁'에서 중국은 영국에게 패한다. 이후 중국은 서구 열강들에게 잇따라 지고 만다. 상황이 이런데도 당시 중국인들은 큰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은 중국 문명이 서구보다 우월함에도 불구하고 자연과학과 무기를 만드는 기술에서 뒤처져 패했다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중국인들은 서구의 기술과 자연과학이 중국에서 기원한 뒤 서양으로 가 발전할 수 있었고, 서구가 중국을 이겼지만 중국 문화의 맥이 끊긴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치 과거에 있었던 이민족의 침략에도 중화 문명이 맥을 이어왔던 것처럼. 그런데 이런 중국인들에게 큰 충격과 위기의식을 주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1894년에 일어난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게 패한 것이다. 전쟁의 결과로 1895년에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된다. 이로써 중국은 일본에 타이완을 할양했고, 이 소식을 접한 중국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생각보다 커버린 일본을 보며 자신감을 잃고 만다.

 근대 초기의 중국은 미국·영국·독일·러시아·프랑스·일본 등에게 패해 영토를 뺏기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었다. 중국을 꺾은 서양 세력은 서구식 학교와 교회, 서적 출판, 신문 발행을 통해 근대적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을 중국에 전파해 중화 문명을 해체하려 했다. 이 때문에 청나라 말기에 중국이 겪은 위기는 이전에 있었던 이민족들의 침략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중화 문명 자체가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직면했던 위기는 복합적이었고, 중국의 근현대사는 이 위기를 극복하는 지난한 과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중국은 지금까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까? 중국 공산당과 중국인들은 나머지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타이완' 문제다. 타이완까지 합쳐 완벽한 통일을 이뤄야 근대에 있었던 민족의 분열을 해결하고, 완전한 민족 국가를 이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중국이 타이완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 문제 외에도 중국 공산당과 중국인들로 하여금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과제가 존재한다. 중화 문명의 위상을 회복하는 일이다. 자세히 말하면 전통 시대처럼 중국이 세계 선진 국가이자 문명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서구의 기준(가치와 제도)을 따르지 않고 중국 고유의 문화와 사상, 가치, 제도를 바탕으로 중국만의 길을 걸어 세계의 중심으로 복귀하자는 목표인데, 중국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중국의 꿈(中國夢)'이라고 한다. 중국을 부유하고 강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근대에 분열된 중국을 통일하고 중화 문명을 되찾는 것이 세계의 중심으로 복귀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꿈은 서구가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은 21세기에 세계 중심 국가가 되기 위해 '일대일로'를 국가 핵심 전략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일대'는 육로 실크로드, '일로'는 바다 실크로드다.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에서 관련 국가가 65개에 이르는데, 육로와 해로를 통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고 유라시아에서 새로운 지역 협력과 성장을 모색하겠다는 것이 중국의 구상이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국제 경제 협력 프로젝트를 뛰어 넘는다. 세계의 중심과 문명의 축을 옮기려는 문명의 대기획으로, 일대일로를 국제 협력이 아닌 문명권 차원에서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대일로를 완성하기까지 최소 30년~50년이 걸릴 수도 있고, 최대 100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일대일로를 21세기 국가 핵심 전략으로 추진 중이다.

 지금까지 중국의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부분과 현대 중국이 지니고 있는 생각을 소개했다. 이 책에는 위의 내용 외에도 중국인이 보는 미국, 중국과 타이완, 중국과 홍콩, 중국의 관시 등과 같은 부분이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중국의 생각과 다양한 모습을 함께 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중국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중국을 제대로 알기 위해 중국에 관한 책을 계속해서 읽어야 한다. 좋든 싫든 중국과 오랫동안 교류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생존과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중국의 포부와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려 힘쓰고, 이를 통해 얻은 결과를 토대로 향후 진행될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 남북 통일 등에서 중국의 도움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지혜와 함께 개인적인 기회도 얻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중국을 알고 싶지만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중국의 깊은 속내를 보여주는 좋은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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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30일 일요일, 오늘 판문점에서 일어난 일이 향후 역사 교과서에 실릴 것이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이 일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한 돌파구가 되었다고 교과서에 기록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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