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이 죽었다!
아르만도 이아누치 감독, 스티브 부세미 외 출연 / 루커스엔터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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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사후 벌어지는 권력 다툼을 풍자한 영화. 뭔가 하나씩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이 권력을 위해 암투를 벌이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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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미술관 - 아픔은 어떻게 명화가 되었나?
김소울 지음 / 일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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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그림에 관해 문외한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명화라고 인정받는 그림들도 별다른 감흥 없이 훑어보기만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알게 된 책인 <<치유 미술관>>은 미술에 관심도 없고 상식도 없는 나에게 색다른 느낌을 줬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구성 자체가 참 흥미로웠다. 가상 인물인 '닥터 소울'이라는 심리치료사가 15명의 화가를 만나 상담을 진행한다. 이 과정 속에서 화가들은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데, 이 그림들이 현재 명화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구성 자체에서 색다름을 느끼다 보니 책을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그들이 겪은 아픔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아픔이 그림에 어떻게 담겨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졌다.

 <<치유 미술관>>은 가상 공간인 '소울마음연구소'의 내담자 일지 내용을 묶은 책이다. 위에서 언급한 '닥터 소울'이 이미 세상을 떠난 15명의 화가를 가상으로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내담자는 반 고흐, 모네, 마네 등의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두 16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했는데, 다들 마음이 아파 고통을 겪었다. 이들은 동정받기도 했고, '문제 화가'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이 책이 가상에 기초하고 있다고 해서 모든 내용이 지어낸 것은 아니다. 저자가 필요한 상황만 설정했을 뿐 결정적인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다. 언급하는 내용의 대다수도 실제로 화가들이 했던 말이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그들의 말과 표현을 가상 상황에서 풀어낸 것이다. 결국 <<치유 미술관>>은 역사 속에 실존했던 화가들의 실제 이야기, 즉 팩트와 '닥터 소울'을 만난다는 픽션을 적절히 섞은 팩션(faction) 형식의 책이다. 15명의 화가를 모두 소개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화가 2명의 이야기를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를 소개한다. 뭉크는 5살 때 어머니를 잃었고, 13살 때에는 누나인 소피아를 잃었다. 그리고 32살이 되던 해에는 동생인 안드레아가 그의 곁을 떠난다.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온 뭉크는 '공황장애·우울증·신경쇠약·불면증'을 앓게 된다. 이런 아픔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절규>다.

 그림 <절규>를 멀리서 보면 다리가 갑자기 무너지고, 피오르(fjord, 협만)에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이 느껴진다. 또 피오르의 바닷물이 마치 살아 꿈틀거리듯 표현됐고, 붉은색의 하늘과 바닷물의 경계가 모호하게 그려졌다.

 어느 날 뭉크는 하늘이 피처럼 붉은색으로 변하고, 온 세상이 구불구불 어지럽게 뒤섞이고, 피오르 바닷물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 솟아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그는 온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껴 난간에 힘 없이 기댔다. 그때 세상의 끝까지 닿을 듯한 절규를 듣게 됐는데, 이로 인해 작품명이 '절규'로 정해졌다.

 그림 속 인물을 보면 상체는 명확한 반면, 하체는 사라지듯 흐물흐물하게 그려졌다. 다리 부분이 명확하지 않은 그림의 경우, 그림을 그린 사람이 그가 속한 조직, 예를 들어 직장이나 사회·가족 혹은 대인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실제로 뭉크는 어릴 때부터 병에 걸리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느꼈고, 어디에서도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다. 한편, 그림 속 인물은 가운데에 위치해 있는데, 이것은 더 살고 싶다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절규>의 주인공은 가운데에 있지만, 그 위치는 매우 아래쪽이다. 이처럼 인물을 바닥쪽에 그린 것은 자신의 우울함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뭉크는 <절규> 외에도 몇 가지 그림을 더 그렸는데, 그 작품들은 가족의 죽음과 죽음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결국 뭉크의 작품 대부분은 어려서 어머니와 누나를 잃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남동생을 잃어 느끼게 된 아픔과 이로 인해 생긴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화가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다. 그녀는 7살 때 어머니를 잃었고, 18살 때는 스승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 결과로 그녀는 '우울증'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안고 살게 됐다.

 젠틸레스키는 화실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런데 화실 선생님이 그녀에게 흑심을 품었는지 계속 치근덕댈 뿐만 아니라 둘만 있을 때에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젠틸레스키는 스승의 행동을 보고 <수산나의 두 노인>을 그렸다. '수산나'는 성경에 나오는 여인이며, 그녀의 뒤에 있는 두 노인도 성격 속 인물들이다. 두 노인 중 검은 머리의 노인은 젠틸레스키의 선생인 '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의 얼굴을 갖고 있다. 그리고 두 노인 앞에 있는 수산나는 타시에게 능욕당하는 젠틸레스키 본인을 빗댄 인물이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만다. 타시가 젠틸레스키를 성폭행한 것이다. 이 일로 그녀는 PTSD 증상을 보이고, 꿈을 꿀 때마다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일의 장면을 보게 된다. 

 큰 상처를 입은 젠틸레스키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라는 그림을 그리는데, 이 그림은 그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그림의 본 내용은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유디트가 베는 것이다. 젠틸레스키는 이 그림을 통해 남자에게 복수하고자 했다. 복수의 대상은 남성 전체였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그녀의 자화상이고, 유디트에게 당하는 홀로페르네스는 타시의 얼굴이다.

 이런 충격적인 일을 겪은 후 젠틸레스키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 그녀는 결혼 후에 <루크레티아>를 그린다. '루크레티아'는 고대 로마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는데, 그녀는 당시 로마의 왕이었던 타르퀴니우스의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이 일을 겪은 후 그녀는 남편에게 복수를 부탁하고 자결을 하는데, 그 장면을 그린 게 바로 <루크레티아>다. 이 그림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한 가지는 과거의 기억(성폭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젠틸레스키 자신의 모습이고, 또 하나는 과거의 끔찍한 사건으로 어두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기억을 지우고 싶은 마음이다. 특히 비장하게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은 과거의 기억을 잘라내고 새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아픔을 겪은 젠틸레스키지만 그녀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화가로 불린다. 그녀는 여성이 숨죽여 살아야 했던 시기에 그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냈던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이 책에서는 젠틸레스키를 '카이사르의 용기를 품은 여성'이라고 소개한다. 조심스럽지만 그녀가 겪은 아픔이 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에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다른 여성 화가들, 아니 그 어떤 여성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이 같은 그녀의 마음과 이 마음의 근원에 위치한 아픔은 그녀가 그린 명화들에 담겨 지금까지 그 의미와 빛을 전달하고 있다.

 지금까지 두 명의 화가와 그들이 겪은 아픔, 그리고 그 아픔이 담긴 작품을 알아봤다. 모두 내가 알고도 그냥 지나쳤거나 아예 몰랐던 작품들이다. 나는 이런 명화에 사회적·시대적 메시지만 담겨 있다고 생각했을 뿐, 화가 개인의 아픔을 내포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림과, 화가들의 아픔 등에 대한 설명을 보면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게 됐고, 이 공감은 그림을 색다르게 보게 했다.

 <<치유 미술관>>을 읽으면서 그림을 보고 글을 읽을 때 화가와 저자가 걸어온 길을 유심히 살펴 그들의 내면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렇게 한다면 그림과 글의 큰 부분과 작은 부분을 함께 볼 수 있어 작품 속 의미와 메시지를 더 깊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치유 미술관>>은 단순한 미술 혹은 심리 치료를 위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하거나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 혹은 미술에 관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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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와 아미 컬처
이지행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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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하면 떠오르는 게 몇 가지 있다. 자로 잰 듯한 칼군무, 서사에 기초한 음악 등. 이것들 외에도 몇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그들의 팬덤 '아미(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일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미는 단순히 BTS에게 꽃길을 깔아준 팬들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아미란, 단순히 BTS를 세계 최정상의 가수에 올려 놓은 팬을 초월해 그들과 함께 동시대를 걷고 있는 동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까지 BTS가 거둔 성과는 화려하다. 한국 가수 최초의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1위, 빌보드뮤직어워즈 본상 수상, 전 세계 메인 스타디움 공연 매진, 유엔총회 연설, <<타임>> 표지, 문화훈장 수상, 그래미 노미네이션' 등이 이를 말해준다. 이 중 어느 하나 '한국 가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 것이 없다. 이처럼 BTS가 이뤄낸 성과의 원동력으로 전 세계 언론이 한결같이 짚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이들의 팬덤인 아미다. 아미가 BTS의 음악과 콘텐츠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메시지를 체화하고 전파하며 보여주는 글로벌 결속력은, '취향의 공동체'가 어떤 대상을 향해 신념에 가까운 열정을 보여줄 때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로 평가받는 BTS의 시작은 초라했다. 중소 기획사 출신의 가수라는 이유로 방송 출연의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한 BTS는 무대 뒤의 일상과 모습을 인터넷에 꾸준히 업로드했다. '방탄 로그' 같은 자체 콘텐츠에는 순간순간의 불안과 각오가 담겼다. 방송 출연의 대안으로 제작한 자체 콘텐츠에 그들만의 서사가 덧붙는 순간이었다. BTS는 한국에서 2015년에 'I NEED YOU'라는 곡으로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2014년 KCON(K팝 콘서트)에서 엄청난 갈채를 받으면서 심상치 않은 기미를 보인 바 있다. 2014년 발매한 앨범 'SKOOL LUV AFFAIR'는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내에서 인지도조차 없던 BTS의 앨범을 빌보드 월드 앨범 차트 3위에 올라가게 했다.

 BTS 팬의 대다수는 기본적으로 BTS만 좋아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다른 K팝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오로지 BTS에만 열광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생겨난 반(反) BTS 정서는 오랫동안 전 세계의 아미를 괴롭혀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공격은 글로벌 아미의 결속력을 강화했다. 아미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은, 후에 해외 팬들이 오직 BTS만을 위해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계기가 됐다. 결국 BTS와 아미는 K팝의 변두리에서 출발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현재 BTS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이 밴드이고, 아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팬덤이다.

 아미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부분 중 하나가 바로 그들의 투표 문화다. 아이하트라디오(iHeartRadio)는 2014년부터 '아이하트뮤직어워즈'를 개최해 왔다. 2018년 1월, SNS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BTS가 보이 밴드와 팬덤 부문의 후보로 올랐기 때문이다. 소셜 투표로 진행된 수상자 선정 방식은 간단하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후보의 해시태그를 만들거나 아이하트의 홈페이지에서 직접 투표를 하면 된다. 그런데 트위터에서 BTS는 한국 계정 중 가장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2019년 5월 기준으로 BTS의 팔로워는 2,000만 명 이상이었는데, 하루에도 수십만 명의 팔로워가 새롭게 유입되고 있다. 그래서 트위터는 BTS와 아미의 소굴이나 다름없다.

 가장 큰 위협은 베스트 팬덤 부문에 함께 오른 한국 아이돌 엑소(EXO)의 팬덤이었다. 그러나 아미는 각 부문의 경쟁자들을 1억 표 이상의 차이로 따돌리고 두 개 부문을 모두 거머 쥐었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해시태그 투표는 빌보드 톱소셜 아티스트 투표였다. 2017년 5월, BTS는 팬들의 환호 속에 빌보드 톱소셜 아티스트 수상자에 올랐다. 전 세계의 아미들이 빌보드 시상식과 온라인을 점령하며 BTS를 미국의 메인 시상식장으로 보낸 것이다. 사실 BTS가 빌보드 차트에서 두각을 나타낸 때는 2015년이었다. 하지만 팬덤은 서구의 메인 음악 시장이 BTS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SNS 투표를 통해 수상자를 결정하는 선정 방식은 아미에게 최적화된 것이었다. BTS는 2018년 2년 연속으로 빌보드 톱소셜 아티스트 부문의 수상자가 되는 동시에 그들의 새 앨범 타이틀곡인 'FAKE LOVE'의 데뷔 무대를 가졌다. 일주일 후, BTS의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2019년, BTS는 빌보드 본상인 톱 듀오·그룹 수상자에 오르면서 빌보드 본상을 탄 아시아권 최초의 가수가 됐다.

 BTS와 아미의 주무대는 트위터다. 2018년 한 해 동안 트위터에서 BTS와 관련해 생산된 해시태그는 1억 개가 넘는데, 이 중 대부분이 전 세계 실시간 트렌드 1위에 올랐다. 트위터의 트렌드 순위는 아미에게는 접근하기 쉽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무료 홍보 수단이다. 트위터상의 아미 사이에서는 BTS와 관련된 것들을 해시태그로 만들어 실시간 트렌드 1위에 올리는 일이 하나의 관행이다.

 트위터에서 이뤄지는 아미의 활동을 본 미디어는 이를 기초로 기사를 쓴다. 그만큼 아미는 트위터에서 방대한 양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교육적 목적으로 활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타래(스레드) 홍보'다. 아미는 트위터에서 BTS에 관심을 표하는 일반인들에게 BTS를 홍보하기 위해 타래를 쓰곤 한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가 발표한 2018 결산 글로벌 아티스트 순위에서 BTS가 2위를 차지했다. 디지털과 앨범 판매, 스트리밍, 뮤직비디오 뷰 수 등 한 해 동안 전 세계 음악 시장을 대표하는 지표를 집계해 만든 차트다. 답은 아미의 압도적인 구매력이었다. 그들은 실물 앨범과 디지털 음원을 전투적으로 구매했다. 이 덕분에 BTS는 2018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실물 앨범을 두 번째로 많이 판매한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다.

 BTSX50States는 미국 50개 주의 BTS 팬 사이트 연합으로 이들은 라디오 홍보, 풀뿌리 캠페인, 광고, 프로젝트 등을 통해 미국 전역에 BTS를 알렸다. 이중에서 라디오는 미국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들은 라디오 공략에 공을 들였다. 각 지역의 아미들은 자신이 사는 곳의 라디오 방송사들을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 방송사를 분류하고 디제이를 만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이 같은 미국 아미들의 노력과 BTS의 미국 방송 출연으로 인지도가 상승하자, 라디오에서 BTS의 노래가 서서히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아미들은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면 영상을 찍어 디제이에게 전송했다. 이는 곧 더 많은 선곡 횟수로 이어졌다.

 2019년 BTS의 새 앨범 'MAP OF THE SOUL: PERSONA'가 출시된 첫 날, 미국 라디오들은 그 날 하루에만 타이틀 곡인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무려 850회에 걸쳐 틀어줬다. 이 노래는 단숨에 미국 팝라디오에어플레이(Pop Radio Airplay)의 메인 차트 41위에 올랐고, 한 달 뒤에는 이 차트의 톱 20에 들었다. 미국 아미들의 라디오를 뚫기 위한 오랜 헌신이 보상을 받는 순간이었다.

 K팝이 유튜브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간 2000년대 중반, 이 흐름을 효과적으로 이끈 것이 바로 유튜브 리액션 비디오였다. 리액션 비디오를 생산하기 시작한 주요 집단은 '게이 커뮤니티'였다. 이들은 자신의 취향을 충족시키는 하위 문화로서 K팝을 소비했다.

 LGBTQ 팬들이 본격적으로 BTS에 호의를 보인 것은 성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아티스트에 대한 멤버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BTS는 성소수자 아티스트의 음악을 소개하고 그들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공공연히 밝혀 왔다.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성을 넘어 BTS의 존재 자체가 LGBTQ 커뮤니티에게 위로가 된 것은 'LOVE YOURSELF' 시절부터였다. BTS의 메시지는 세대와 인종을 넘어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건넸지만, 그중에서도 이 메시지를 깊이 각인한 사람들이 바로 LGBTQ 팬이었다. LGBTQ 팬들이 BTS 내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첫째, BTS의 메시지, 둘째, 아미의 포용력 때문이다.

 K팝에 무지한 북미와 유럽의 음악 팬들이 BTS의 열렬한 팬이 되면서 기존의 K팝 팬 구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존의 K팝과 멀리 떨어진 지역, 특히 미국 팬들의 열렬한 팬덤이 유독 BTS에게만 형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언더독 서사'다. 소규모 기획사 출신의 주목받지 못한 출발, 유독 악의적인 루머와 공격에 시달리면서도 오직 음악으로만 답해온 BTS의 모습이 언더독의 성공 신화에 열광하는 서구, 그중에서도 미국인들의 구미에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들의 언더독 정체성은 미국 사회에서 소수로 취급받는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에게 동일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17년 이후, 팬의 폭이 훨씬 다양해졌지만 기존의 미국 BTS 팬 중에서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등의 유색 인종과 퀴어 팬들이 눈에 띄게 많았던 이유는 바로 이런 소수자로서의 정서적 공감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아미의 언어 문화에서 눈에 띄는 점은 동시대 현실에서 주류 언어와 비주류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처지와 감정이 역전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해외 팬덤을 관찰할 때 주목할 만한 점은 언어의 장벽이 주는 좌절감이 역전된다는 사실이다. 공식 뮤직비디오나 네이버 V앱의 '달려라 방탄' 같은 일부 콘텐츠를 제외한 대부분의 BTS 관련 콘텐츠에는 영어 자막이 없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발적인 팬 번역가인 '번역계'가 영어 자막을 붙이기는 한다. 이때까지 영어권 아미 등은 초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다. 제1 세계 시민으로 우월한 문화적 지위를 놓친 적이 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이런 감정은, 세상에서 자신이 위치하고 있는 곳과 타 문화권에 관해 성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실 다른 K팝 팬덤에도 번역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아미의 번역가와 다른 K팝의 번역계를 분명하게 구분짓는 점은 이들이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고민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번역은 단지 뜻을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문화적 지식이 요구된다. 그들 스스로 공부하면서 변역을 하는 것이다.

 BTS가 지금처럼 세대와 인종을 뛰어넘는 팬을 거느리게 된 저변에는 깊은 공감대가 자리하고 있다. '성장하는 존재'로서의 BTS에 관한 공감대 말이다. 십대와 이십대 팬들에게는 롤 모델이자 공감 가는 동세대로, 삼십대와 사십대 팬들에게는 자신이 지나쳐 온 청춘의 불안한 연약함과 성실한 자기 극복의 상징으로서, BTS라는 불완전한 존재가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의 아름다움에 모든 세대가 동참하는 것이다.

 한편 BTS의 음악에 담긴 메시지를 접하면서 생긴 변화에 대한 열망은 팬이라는 개인적 존재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에 대한 변화의 열망으로 확장된다. 바로 이때가 그저 소비자 주체로 치부돼 왔던 팬덤이 사회적 주체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개인적으로 BTS의 노래에 담긴 핵심 메시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며 끊임없는 경쟁과 불안에 시달리는 우리 모두를 위한 메시지다. 누군가는 이것이 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감성적인 메시지일 뿐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미는 이런 비판 등에 아랑곳하지 않고 BTS의 메시지를 개인의 삶에 적용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전파해 지금보다 더 나은 개인과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결국 아미는 BTS가 던진 메시지를 기초로 개인을 넘어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꿔 가려는 존재들이다. 나는 이 과정에서 BTS와 아미 간에 상호작용이 일어난다고 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BTS와 아미는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 없이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있다.

 끝으로 현재 진행형인 BTS와 아미의 동행도 언젠간 끝을 맺으며 K팝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것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날이 온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개인과 사회의 더 나은 변화를 바라며 음악과 팬덤을 통해 함께 걸어온 BTS와 아미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동행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켜본 동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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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세계사 - 한 잔의 커피로 마시는 인류 문명사
탄베 유키히로 지음, 윤선해 옮김 / 황소자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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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스무 살 넘은 한국인 1명이 마신 커피의 양은 353잔이었다. 이는 전 세계 1인당 소비량인 132잔의 3배에 달한다. 인구 대비 커피 매장 수도 미국·중국·일본보다 많다. 고급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국내 수요가 늘어나면서, 스타벅스 리저브 바·블루보틀·커피앳웍스 같은 매장이 늘고 있다. 특히 스타벅스는 한국에 고급 매장(리저브 바)을 많이 개설했는데, 그 수가 인구 1,000만 명당 9.8개다. 전 세계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수다(조선일보, '당신이 1년간 마시는 커피 '353잔'', 2019. 8. 30.). 그만큼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유별나다.

 따지고보면 커피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기호식품이다. 이런 커피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커피라는 사물은 도대체 어떻게 탄생해 지금에 이르렀을까'였다. 커피 역시 다른 사물처럼 역사를 지닌 물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커피 세계사>>를 알게 됐다. 이 책은 커피를 중심으로 세계사를 조망한다.

 커피의 역사를 짚기 전에 커피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부터 다루는 게 좋을 듯하다. 커피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고 봤을 법한 단어가 '모카'일 것이다. 모카는 어떻게 만들어진 어휘일까? 모카는 아라비아 반도 남단에 위치한 예멘의 항구도시다. 17세기, 예멘과 에티오피아 산지에서 수확한 커피콩을 이 항구에서 유럽으로 수출했다. 이 과정에서 모카는 가장 오래된 커피 브랜드이자 이후 고가에 거래되는 고급 커피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19세기 전반, 모래가 쌓이면서 항구는 폐쇄되고 만다. 그러나 모카라는 브랜드는 그대로 살아 남아 근린 항구로부터 수출됐고, 그 명성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음료인 커피는 커피나무라고 불리는 꼭두서니과 식물의 종자(커피씨)로 만들어진다. 커피의 총 소비량은 하루 약 25억 잔인데, 이는 물과 차(1일 약 68억 잔) 다음으로 많다. 국가별로 소비량을 살펴보면 북유럽 국가가 가장 높다. 1위인 핀란드는 1인당 평균 1일 약 3.3잔이며 미국은 1.2잔이다. 일본은 1.0잔을 기록했다.

 '커피'라는 명칭은 아라비아어의 '카와qahwah'에서 나온 말로, 커피가 유럽으로 본격 수출되면서 coffee(영국), cafe(프랑스), kaffee(독일) 등 각국어로 파생됐다. 일본에는 네덜란드인이 처음으로 전했기 때문에 네덜란드어의 koffie에서 따와 '코히'라고 불리게 됐다.

 중세 아라비아의 사전 편집자에 따르면, 아라비아어의 카와는 '식욕을 줄여준다'는 뜻의 단어로부터 나온 말이다. 이것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커피가 본격적으로 음용되기 시작한 15세기경부터 '수면욕을 없애주는' 음료를 지칭하는 것으로 정착한 듯하다. 카와의 어원과 관련해서는, 커피나무의 원산인 에티오피타 서남부의 '카파kaffa'라는 지역명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이 설에 의문을 제기한다.

 주로 재배되는 커피는 아라비카종과 로부스타종인데, 여기에 리베리카종을 더해 '커피의 3원종'이라고 한다. 이 중 아라비카는 전 세계 생산량의 60~70%를 차지하며, 에티오피아 서남부 에티오피아 고원이 원산이다. 나머지 30~40%는 로부스타가 차지하고 있는데, 로부스타의 원산은 중앙 아프리카 서부다. 리베리카의 원산도 중앙 아프리카 서부다.

 시중에 있는 커피 관련 책을 살펴보면, 커피와 인간의 최초 만남과 관련해 두 가지 에피소드가 존재하고 있다. '염소치기 칼디 발견설'과 '쉐이크 오말 발견설'이다.

 분자진화시계에 따르면, 커피나무의 기원은 '중신대(약 2,300~53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약 1,440만 년 전 카메룬 부근(중앙 아프리카)에서 근종 식물과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커피나무 동종(커피나무속)이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 열대림으로 확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커피나무는 아프리카 각지에서 다양하게 분기됐다. 이것은 약 420만 년 전의 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때 소말리아 반도에서 진화한 것 중 일부가 인도 연안부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로, 탄자니아에서 진화한 것 중 일부는 코모로 제도와 마다가스카르섬으로 전파됐다.

 인류가 최초의 커피로 이용한 것은 아라비카종이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녹병이라는 병해가 세계적으로 만연하면서, 내병 품종 탐색이 이뤄졌다. 이때 발견한 것이 바로 로부스타종과 리베리카종이다. 로부스타종과 리베리카종은 중앙 아프리카 서부에서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지만, 아라비카종의 탄생 경위는 이와는 다르다. 아라비카종은 커피나무가 아프리카 각지에서 진화를 거친 후, 탄자니아 서부 고지대에서 자생하는 '유게니오이디스종eugenioides'이라는 커피나무에 로부스타종 화분이 수분되면서 탄생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된 호모 사피엔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20만 년 전 에티오피아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때 이미 아라비카종도 에티오피아에 널리 서식하고 있었다.

 앞서 밝혔던 것처럼 두 가지 커피 발견셜은 '산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자라고 있던 커피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지만, 각각의 탄생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실제 최초의 만남은 이와 달랐을 가능성이 높다. 인류가 지구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커피나무가 이미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에티오피아에서 유라시아로, 그리고 세계 각지로 여행을 떠나게 됐다. 이는 약 7만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아라비카종이 에티오피아에서 세계로 퍼져나간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재배 작물은 세계로 퍼져 커다란 영향을 준 '확산형'과 한정된 지역에 머물렀던 '국소형'으로 나뉜다. 이 중 후자로는 에티오피아 고지대에서 재배되는 곡물인 '테프'와 '엔세테'를 들 수 있다. 아라비카종도 이들처럼 고도 1,000~2,000미터의 열대 고지대에 적응한 식물이다. 따라서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를 떠난 후에도 에티오피아 산속에 남겨져 현지인들만이 아는 존재가 됐다.

 에티오피아 서남부 부족들이 언제부터 커피를 이용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에티오피아 서남부에 관해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가 남긴 자료다. 이들이 에티오피아 서남부로 진출해 커피를 이용하고 있던 현지 부족을 처음 만난 때는 9세기경이라고 추정된다.

 에티오피아인이 예멘으로 건너 갔음에도, 노예로 팔려간 탓인지 이들이 커피를 전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대 이후 세계 학문의 중심으로 떠오른 페르시아 의학서에 커피로 추정되는 생약이 기록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9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초경, 테헤란 근교의 '레이'라는 마을에 한 학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알 라지Al-Razi'였다. 그는 925년에 사망했지만, 그가 남긴 글들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의학집성>>이라는 책으로 만들어졌다. 이 책은 아쉽게도 현존하지 않는다. 과거 연구자들에 의하면, 이 책에 '분 혹은 분카'라는 이름의 식물 열매와 종자로 끓여서 만든 약이 등장한다고 한다. 여기서 분은 15세기 이후 아라비아어로 커피콩과 커피 열매를 의미했다.

 알 라지 이후 약 100년 뒤, 페르시아에서 또 한 명의 뛰어난 학자가 활약한다. 이름은 '이븐 시나Ibn Sina'. 그가 1020년에 쓴 <<의학전범>>의 약 해설에 '분큼 혹은 분코'라는, 예멘에서 전해진 식물 생약이 실렸다. 이 역시 분처럼 커피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두 문헌이 등장한 시기와 에티오피아 서남부 사람들이 노예로 끌려간 시기 및 예멘에서 그 수가 증가한 시기가 겹친다는 점은, 이 시기에 아라비아 반도에 커피가 전해졌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근거 중 하나로 쓰인다.

 한편 10~11세기에 간신히 모습을 나타내는 듯하던 커피 관련 기술은 이후 400년이 넘도록 관련 문헌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다시 커피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15세기 예멘이었다. 라수르 왕조 말기, 알 라지 이후 약 400년이 흘렀을 때 예멘에서 커피가 다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아마 이 시기에 에피오피아에서 예멘으로 커피가 다시 전래된 듯하다.

 14~15세기에 걸쳐 에티오피아 서남부에서 이파트를 거쳐 홍해 연안부, 예멘에 도달하기까지 비교적 거대한 사람들의 이동이 있었다. 이 움직임 이후 15세기 예멘에서 커피가 모습을 드러낸다.

 15세기가 되면, 커피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바로 예멘에서 확산한 '카와'다. 카와는 14~15세기에 에티오피아 홍해 연안부에서 예멘에 도래했지만 처음에는 커피 이외의 재료로 만들어졌다. 예멘에 최초로 소개된 카와는 커피가 아니라 하라 원산인 '캇Khat'이라는 식물의 잎으로 만든 차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15세기에 접어들어 예멘의 아덴에서 커피로 만드는 카와가 발명된다. 예멘에 카와를 전했다고 알려진 사람은 샤즈리 교단의 수피인 '알리 이븐 우말 아 샤즈리'다. 당시에는 아직 빈촌이었던 모카로 이주해 사람들에게 포교를 했다.

 캇을 이용한 커피는 15세기 초 모카에서 예멘 각지의 수피들에게 전파됐다. 커피처럼 고지대에서만 자라고 신선도가 중요한 캇을 사람들은 예멘의 산속에서 재배했다. 산과 멀리 떨어진 항구마을 아덴은 캇을 구하기 어려웠다. 아덴 수피들은 구하기 어려운 캇의 대체재는 없는지, 어느 수피 도사에게 질문했다. 그는 '무하마드 자말린 아 자부하니'다. 자부하니는 '커피 열매와 종자에도 캇과 같은 성분이 있으므로, 그것으로 카와를 만들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무렵, 커피 카와에는 두 종류가 있었다. 둘 다 현재의 커피와는 다르다. 하나는 '기실(껍질) 카와', 또 다른 하나는 '분(커피 열매) 카와'다. 예멘의 카와가 세계에 알려지는 과정 속에서 기실은 모습을 감추고 분만 남았다. 분 카와가 콩 부분만을 사용하는 현재의 커피로 변모한 것이다. 그래서 '카와가 커피의 기원이다'라고 할 수 있다.

 커피 카와는 캇과 달리 장기간 보존과 수송에 용이했다. 이 점 덕분에 머지 않아 예멘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더 나아가서는 이슬람권 타 지역으로도 확산했다.

 1470~1495년에는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의 예멘인 거주 지구에서 커피 카와가 음용되면서 이 지역과 교류하던 마을의 사람들에게도 전파되기에 이른다. 수피가 졸음 방지용으로 마셨음을 물론 이슬람 학교의 학자와 학생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학업과 업무에서 능률 향상을 위해, 또는 단순 기호식품으로서 커피를 이용했다.

 1500년경, 메카에서 '카페하네(커피하우스라는 뜻)', 즉 커피를 마시는 전문점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 다만 카페하네에는 기본적으로 남성만 드나들 수 있었다. 1510년경에는 당시 이슬람 대국이었던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수도 카이로에도 커피가 전해졌다.

 또 다른 이슬람 대국 오스만제국에도 16세기에 커피가 전파됐다. 이스탄불 시민들에게 알려진 것은 좀 더 시간이 흐른 16세기 중반이다. 오스만제국이 직접 재배한 커피가 더 널리 보급됐는데, 커피가 많은 이슬람 교도들에게 사랑받으면서 예멘의 주요 특산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에 오스만제국은 1544년경부터 예멘 주민의 캇 재배를 제한한다. 대신 외화획득수단인 커피나무 재배를 장려했다. 오스만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에서 커피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554년이다. 두 명의 시리아인 하킴과 샴스가 커피하네를 오픈한 것이 계기라고 한다. 16세기 중반, 오스만제국에서는 현실에 절망한 사람들이 수피즘에 빠지기 시작했고, 커피와 카페하네가 유행했다. 원통형 수동 배전기와 커피 그라인더 등 커피 전용 기구도 이 시대에 이스탄불에서 고안됐다.

 한편 이슬람권에 확산된 커피는 16세기 후반 유럽인들에게도 소개됐고, 17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유럽까지 도달한다. 크게 네 개로 이뤄진 루트는 각각의 사연을 지니고 있다. 연대가 이른 순서대로 정렬하면 '지중해 루트-동인도회사 루트-파리 루트-빈 루트' 순이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전반 무렵, 레반트와 이스탄불에서 유럽인들이 목격한 것은 분이었다. 따라서 유럽에는 지금처럼 커피콩만 이용하는 형태가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유럽으로 건너간 커피는 영국·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에 정착했는데, 이 중 프랑스에서는 카페가 프랑스 혁명의 시작점 역할을 했다. 커피는 미국으로도 건너갔는데, 그곳에서는 커피하우스가 공민관으로 쓰였다. 이후 커피는 나폴레옹 시대와 대공황, 제1·2차 세계대전 등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 속에서 부침을 겪어가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거의 매일 마시는 커피의 맛 등에는 관심을 보여도 역사에는 그만큼의 흥미를 갖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상황 속에서 커피의 기원과 변천 과정, 현재 모습 등을 통해 세계사의 흐름을 바라볼 수 있어 흥미진진했다. 

 개인적으로 한 사물의 역사 등을 알게 되면 그 사물을 보는 사고가 그만큼 확장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비춰봤을 때, 이 책은 우리에게 커피에 관한 사고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일상 속 익숙함으로 인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커피와 관련된 사고의 폭을 넓히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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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근 한 달간 논란의 중심에 있던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솔직히 옳은 선택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임명된 이상, 조국 신임 장관은 사법 개혁이라는 대의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할 것이다. 이전에 조 장관이 고 노회찬 전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은 적이 있다고 한다. 앞으로 조 장관이 ˝법 앞에 만 명만 평등하다˝고 일갈했던 노 전 의원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업무를 추진해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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