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 -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
말콤 글래드웰 지음, 선대인 옮김 / 21세기북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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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기사를 읽을 때 유독 내 눈에 띄는 표현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다윗과 골리앗'이다. 이 말은 객관적인 전력 차이가 많이 나는 두 팀이 승부를 가릴 때 등장하는데, 성경에 실린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차용한 것이다. 그런데 스포츠에서는 성경 속 이야기처럼 약팀이 강팀을 꺾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지난해에 열린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이 이전 대회 우승팀이었던 독일을 꺾었던 이변도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어떨까? 현실 속 다윗, 이른바 '언더독'들은 '흙수저'로 불리면서 갖가지 골리앗에 치이며 살아간다. 여기서 골리앗은 강력한 상대를 넘어 언더독을 둘러싼 온갖 현실적 어려움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이 같은 어려움은 언더독의 어깨를 짓눌러 그들의 무기력을 강화하고 포기를 이끌어낸다. 현실이 이러하니 다양한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의 언더독들에게는 일말의 희망도 없는 걸까? 만약 언더독에게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이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아웃라이어>>, <<블링크>> 등의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은 성경 속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빌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언더독을 위한 맞춤형 전략을 제시한다.

 때는 이스라엘 왕국과 블레셋의 군대가 맞붙던 시기였다. 당시 블레셋의 전사는 210cm의 큰 키를 자랑하는 '골리앗'이었다.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과 그의 군대는 골리앗의 체구와 기세에 눌려 있었다. 이때, 한 사람이 나선다. 그는 양치기 '다윗'이었다. 다윗은 사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골리앗에게 나아간다.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다윗은 골리앗의 목을 베어 불가능해 보이던 승리를 거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스라엘 군대를 공포에 떨게 한 골리앗은 중보병이었다. 고대에는 중보병끼리 일대일로 결투를 벌였다. 이 때문에 골리앗은 적의 진영에서 중보병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윗은 중보병이 아니었다. 그는 평범한 양치기였다. 그래서 기존의 전투 관행을 따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양치기 생활을 하며 익힌 투석 기술을 활용해 골리앗의 이마를 노렸다. 다윗이 던진 돌을 맞은 골리앗은 그대로 쓰러졌고, 다윗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골리앗의 목을 벴다. 결국 다윗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어찌보면 하찮다고 할 수 있는 투석 기술로 기적을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다윗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이 싸움을 패자인 골리앗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골리앗은 무시무시한 완력을 지닌 전사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완력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보조병을 데리고 계곡 아래로 내려왔으며, 다윗에게 "내게로 오라"라고 말한다. 또 성경에 의하면 골리앗의 걸음걸이는 매우 느렸다. 성경에 기록된 골리앗의 언행을 본 현대 의학 전문가들은 골리앗의 건강 상태가 나빴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가 앓고 있던 병은 '말단비대증'으로, 뇌하수체에 악성 종양이 생겨 발병한다. 주로 키가 큰 사람들이 앓아서 '거인병'이라고도 불린다. 말단비대증의 대표적인 합병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시력 문제다. 구체적인 증상은 갑자기 시야가 좁아지거나 하나의 물체가 여러 개로 보이는 것 등이다. 이로 인해 골리앗은 느리게 걸을 수밖에 없었고, 더 나아가서는 다윗이 싸움의 규칙을 바꿨다는 사실을 그가 자신의 코앞까지 왔을 때에야 눈치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설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관점으로 이 이야기를 해석하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언더독'이 '거인'을 상대할 때에는 세상과 거인이 만든 판에서 싸워서는 안 된다. 언더독은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싸움의 규칙을 만들어 거인을 상대해야 한다. 그러려면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도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요소를 장점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또 골리앗의 최대 장점이었던 거대한 체구가 다윗과의 싸움 중에 그의 발목을 잡은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거인의 장점은 큰 약점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언더독은 이 점에 착안해 자신이 지닌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동시에 거인의 강점이자 약점인 포인트를 정확히 공략해야 한다.

 파리가 세계 예술의 중심지였던 150년 전, 바티뇰 부근에 있는 '게르부아'라는 카페에 한 무리의 화가들이 모여 들었다. 주요 멤버는 '마네, 드 가, 르누아르, 피사로'였다. 이들은 카페에 모여 밤이면 밤마다 격론을 벌였다. 이들의 토론 주제는 '살롱의 문을 계속 두드릴 것인가, 아니면 독자적으로 전시회를 열 것인가'였다. 이들의 최종 결론은 독자 전시회 개최였고, 이는 옳은 선택이었다. 이 선택으로 소규모 미술 비평가 집단에게 항상 혹평을 받았던 그들의 작품이 전 세계의 유명 미술관에 걸리게 됐다.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인상파 화가'라고 부른다.

 1873년, 모네와 피사로는 인상파 화가를 모아 협동조합을 만든다. 1874년 4월 15일, 이들은 자신들만의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가 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인생 역전 이야기는, 때로는 '큰 연못의 작은 물고기가 되는 것보다 작은 연못의 큰 물고기가 되는 것이 더 좋은 때와 장소가 있다'는 교훈을 준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주변 세계의 아웃사이더였다는 약점이 더 이상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게 된다. 이는 언더독의 또 다른 생존 전략이기도 한데, 인상파 화가들의 예로 알 수 있는 '큰 물고기-작은 연못 이론'은 심리학자인 허버트 마시가 개척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다윗과 골리앗의 예를 통해 살펴본 '약점의 강점화'와 '강점이 내포한 약점'이 언더독에게 가장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라는 전제가 맞아 떨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언더독이 승리하려면, 세상과 강자가 정한 틀을 과감히 거부하고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활용해 자기만의 판을 만든 다윗의 용기와 지혜를 배워 앞에 있는 장벽을 무너뜨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저자가 이 시대의 모든 언더독에게 바치는 맞춤형 전략일 것이다. 글을 마치면서 개인적인 소회를 밝히자면, 책을 읽는 동안 다윗과 골리앗이 경쟁을 통해 상호 발전하는 동시에 공존할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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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 - 주성하 기자가 전하는 진짜 북한 이야기
주성하 지음 / 북돋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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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평양' 하면 거리를 메운 호전적인 문구와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고 있는 주민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내가 바라본 평양은 북한 체제의 상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평양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동아일보 소속의 주성하 기자에 따르면, 이 변화는 '자본주의'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 평양과 자본주의라니,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부터 이에 대해 알아보자.

 평양의 자본주의화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은 '장마당'일 것이다. 이미 장마당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국내에 많이 소개됐지만 이 책을 기초로 다시 한번 언급하고자 한다.

 주성하 기자는 평양의 장마당을 소개하면서 "장마당 세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태어난 북한 주민을 뜻하는 말로, 주 기자가 만든 조어다. 장마당 세대가 태어났을 때는 북한의 국가 배급망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그러자 이들의 부모 세대인 "고난의 행군 세대"는 장마당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북한에서는 3대 세습이 이뤄졌다. 새로운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은 시장 경제에 대한 통제를 포기한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조치 중 하나가 바로 장마당과 관련된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그러자 북한 시장의 규모가 급격히 커졌고, 이 과정 속에서 나름의 분업화가 이뤄졌다.

 2000년 이후, 거대 시장으로 발전한 장마당은 북한의 경제·사회적 발전을 견인했다. 2018년 2월 기준으로 북한에서 공인된 장마당의 수는 480여 개였다. 여기에는 장마당으로 인해 파생된 골목 시장과 야시장도 포함된다. 북한 주민은 장마당에서 생활 수요의 80~90%를 해결한다. 장마당과 관련된 분야에서 종사하는 주민들과 그들의 가족까지 합치면, 대략 북한 주민의 3분의 1 이상이 장마당에서 3분의 2 이상의 소득을 얻는다. 또 "외랑식 (여러 층이 있는 주택에서 각 층의 바깥쪽에 공동으로 쓸 수 있는 복도가 딸려 있는 구조) 아파트"에 장마당이 들어서면, 그 아파트는 다른 아파트보다 비싸게 거래된다. 아파트에 자리를 잡은 장마당은 다른 장마당들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평양을 넘어 북한 전역의 자본주의화를 뜻하는 상징으로 장마당이 거론되고 있다.

 한편, 큰 규모의 장마당 주변에는 작은 규모의 장마당들이 열린다. 이 같은 소규모 장마당에는 가옥을 상점으로 삼아 사업을 하는 개인 기업들이 있다. 개인 기업가들은 소규모 장마당에서 수익을 올리며 시장 경제 원리를 학습했다. 소규모 상인 중 일부는 이를 발판 삼아 보다 큰 국영 기업의 사영화에 뛰어들기도 한다.

 장마당은 자체 환율까지 보유하고 있다. 현재 북한의 환율 시스템은 공식 환율과 장마당 환율(시장 환율)로 이원화돼 있다. 향후 북한에 투자를 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북한의 환율 체계를 눈여겨봐야 한다. 이것이 투자 성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국 공무원 사회에 레벨이 있듯, 북한의 간부 사회에도 엄연한 레벨이 존재한다. 이 말은 뒷돈, 즉 뇌물이 몰리는 자리가 있다는 의미이다. 북한에서는 판사보다 검사가 더 인기 있고 힘 있는 존재다. 기업과 기관을 한번 털었다 하면 무수히 많은 먼지가 나오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러하니 북한의 검사들은 각종 기업과 기관으로부터 뇌물을 두둑이 챙길 수 있다. 그런데 북한 각 지역에 있는 노동당 간부부 해외파견과 소속 담당자에 비하면 검사는 양호한 편이다. 북한 주민이 해외에 나가 일을 하고 싶을 때에는 해외파견과 담당자의 도장을 받아야 하는데, 이들은 도장 몇 번 찍어준 대가로 수백 달러의 뇌물을 받는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해외파견과에서 1년만 일해도 몇만 달러에 이르는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뇌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한에서 뇌물이 가장 많이 오가는 경우는 직업을 변경할 때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는 뇌물을 주지 않으면 국가가 정해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직업을 바꿀 때에는 50달러에서 수천 달러의 뇌물을 바쳐야 한다. 또 평양에서 살고 싶은 사람도 뇌물을 줘야만 거주지를 바꿀 수 있다. 평양에서 거주할 자격은 보안성과 보위성 같은 보안 기관이 부여한다. 지방 주민이 평양에서 살려면 정확한 줄을 잡아 3,000달러~5,000달러에 이르는 뇌물을 써야만 한다. 주 기자는 뇌물로 욕망을 실현하는 북한의 현실상을 설명하면서 "북한은 중앙에서 지방까지, 위에서 아래까지 뇌물이라는 거대한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평양을 비롯한 북한 전 지역에서 목격할 수 있는 자본주의적 요소를 살펴봤다. 그럼 이런 북한에서 우리는 어떤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평양에서 통할 가능성이 있는 창업 아이템들을 설명하겠다.

 먼저 당구장과 탁구장, 배구장이 있다. 그런데 이 중 당구장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남은 건 탁구장과 배구장인데, 평양에 살고 있는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자신의 아이에게 탁구나 배구를 가르치려 노력한다. 그 이유는 이 둘 중 하나만 잘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외식업은 어떨까? 주 기자는 한국 외식업의 평양 진출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서울에 정착한 평양 출신의 탈북자들에 의하면, 한국의 삼겹살집과 한우 불고기 요리집이 평양에 진출할 시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외에도 한국의 미용업과 의류업 등도 평양에서 통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보인다.

 한편, 최근 평양에서는 종합화·복합화라는 트렌드가 등장했다. 이 추세로 인해 큰 건물을 지은 후 그곳에 상점과 식당, 사우나를 갖춘 목욕탕뿐만 아니라 수영장, 탁구장까지 몰아 넣는다고 한다. 평양에서 사업을 할 사람이라면 종합화와 복합화라는 화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평양을 비롯해 북한 전역에서 사업을 하고자 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인맥'이다. 실제로 북한 주민들이 기업을 차려 운영할 때에도 인맥이 큰 역할을 하는데, 외부인이 사업을 하려 할 때는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북한에서 힘 있는 인물을 찾아 인연을 맺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당, 보안서, 인민위원회를 비롯한 기관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기관과 연계된 인맥의 사슬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 사슬의 복잡성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을 능가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주 기자는 북한에서 사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시장 조사와 함께 인맥 조사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맥 말고도 신경을 써야 할 게 몇 가지 더 있다. 이 중 하나는 북한 특유의 '벼랑끝 전술(?)'이다. 북한에서 사업 기반을 닦으려는 사람이 처음 북한땅에 발을 디디면, 북한 당국은 온갖 좋은 말로 호감을 얻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잠시뿐이다. 공장이 들어서고, 기술과 사업 노하우를 어느 정도 전수받은 다음에는 기존의 계약 조건을 바꿔 버린다. 사업자가 이에 대해 항의하면 단수 및 단전 조치까지 해 버린다. 그래서 이와 같은 북한 특유의 전술을 늘 유념하고 있어야 한다. 이게 끝이라면 좋을 텐데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만약 어떤 권력자가 사업상 편의를 봐준다고 해도 이를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권력자보다 높은 사람이 원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의 복잡한 행정 단계로 인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 외에도 대북 사업을 꿈꾸는 사람이 반드시 신경 써야만 하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지정학적 리스크'다. 북한은 동북아 정세에 따라 언제든지 태세 전환을 할 수 있는 곳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책을 보면서 전반적인 평양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책 한 권만으로 평양의 곳곳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통인 저자의 글을 통해 평양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이념과 북한 체제라는 키워드만으로 평양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두 가지 키워드가 무조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것들에만 의존해서는 변화하고 있는 평양과 북한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는 평양이라는 도시를 읽는 또 하나의 키워드로 '자본주의'를 활용해야겠다는 결론을 얻게 됐다. 새로운 키워드와 기존의 키워드를 적절히 조합한다면 평양과 북한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최근 남북미 간의 대화 국면이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진도를 나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골치 아픈 일이다. 부디 하루 빨리 남북미가 교차점을 찾아 평화와 공존의 시대로 가는 발걸음을 다시 한번 힘차게 디디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 결과로 남북 간의 경제 교류가 활발해져,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경험하고 있는 평양과 북한 전역에서 무궁무진한 기회를 발견할 수 있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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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뒤늦게나마 보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와 스토리 모든 것이 훌륭한 명작이다. 특히 주인공 혜자의 인생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비록 그녀의 삶이, 세속의 관점에서 볼 때, 성공한 삶은 아닐지 모르지만, 모진 시대와 세월을 살아온 그녀의 삶 자체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고단한 삶을 견뎌온 혜자의 삶이 대표하는 우리의 부모님, 그리고 할아버지•할머니의 삶에 진심어린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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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삐딴 리 - 개정판
전광용 지음 / 을유문화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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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의사이자 종합병원 원장인 이인국은 경성제국대학(지금의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수재다. 이 박사는 진료 시에 환자의 경제적 능력을 먼저 본다.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는 환자는 받지만, 그렇지 못할 것 같은 환자는 어떻게든 돌려보낸다. 그래서 그의 병원이 받는 치료비는 타 병원보다 비싸다. 이렇다 보니 그의 병원에는 주로 권력자들과 재벌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러던 어느 날, 인국은 미국에서 공부 중인 딸 나미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의 내용은 외국인과 결혼하겠다는 것이었다. 인국은 딸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 생각을 뒤로 한 채 미국 대사관의 브라운 씨를 만나기 위해 출발한다. 이때 인국은 그가 지나온 시절을 떠올린다.

 일제강점기 시절, 이 박사는 유창한 일본어를 앞세워 주로 일본인들을 치료했다. 그 시기 그는 잘나갔다. 하지만, 해방이 찾아오면서 그의 삶에 어둠이 드리워진다. 북쪽에 소련군이 들어오면서 친일 행위자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인국 역시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그의 죄목은 '친일파, 민족 반역자, 반일 투사 치료 거부, 일제의 간첩 행위' 등이었다. 감옥에 갇힌 인국은 생존을 위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러시아어 회화 책 한 권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그는 그 책으로 러시아어 공부를 시작한다. 생존에 대한 그의 열망이 하늘에 닿은 걸까? 이 박사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다. 감옥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감옥의 책임자인 스텐코프 소좌는 이인국에게 재소자를 치료하라는 임무를 준다.

 한창 전염병에 걸린 죄수들을 치료하던 인국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굴러 들어온다. 스텐코프가 순시를 돌고 있을 때, 인국은 그의 얼굴에 붙어 있는 혹을 발견하고는 수술을 제안한다. 스텐코프는 이를 받아들였고, 그렇게 수술이 시작됐다. 인국은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 수술을 무사히 마친다. 수술을 받고 퇴원하던 날, 스텐코프는 인국을 가리켜 "꺼삐딴 리"라고 칭한다. '꺼삐딴'은 영어 단어 'Captain'의 러시아 발음으로, '최고·우두머리' 등을 뜻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인국에게 '엄지 척'을 한 것이다. 이렇게 맺은 스텐코프와의 인연을 통해 인국은 아들 원식을 소련으로 유학 보낸다.

 인국은 특유의 생존력으로 위기를 돌파해냈다. 이제 그의 앞에는 비단길만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전쟁이 터졌고, 인국은 1·4 후퇴 시에 청진기가 든 가방 하나만 들고 월남한다. 남으로 내려온 인국은 병원을 차리고 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다.

 브라운을 만난 인국은 그에게서 미국에 갈 때 소개장을 써주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브라운의 집에서 나온 인국은 "그 사마귀 같은 일본놈들 틈에서도 살았고, 닥싸귀 같은 로스케 속에서도 살아났는데, 양키라고 다를까······ 혁명이 일겠으면 일구, 나라가 바뀌겠으면 바뀌구, 아직 이 이인국의 살 구멍은 막히지 않았다"라는 독백을 하면서 반도호텔로 향한다.

 '꺼삐딴 리' 이인국은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로 묘사된다. 일제 치하에서는 일본에 붙고, 소련군 주둔 시에는 소련에 붙어 연명하고, 미군정기에는 미국을 택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민족'과 '정의',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큰 관점에서 보면 인국은 처벌과 지탄의 대상이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자연인 '이인국'에 주목했다. 내가 본 자연인 이인국은 자신이 속한 시대 속에서 생존하고자 발버둥친 한 인간이었다. 현대인에게도 생존이 중요하듯, 일제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전쟁을 거쳐온 인국에게도 생존은 절대적인 과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일본과 소련, 미국 주위를 기웃거리며 살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해 온 이인국을 '기회주의자'라고 쉽게 손가락질할 수 없었다. 더 나아가 한 인간으로서 살고자 여기저기 배회한 그의 삶이 애잔하게 느껴졌다. 공적 개념 하에서는 이인국에게 '기회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지만, 사적 존재로 바라본 이인국에게는 이 딱지를 쉽사리 붙일 수 없는 것이다.

 끝으로 '기회'를 좇는 것과 '기회주의'의 차이가 과연 무엇일까에 관해 고민해 보았다. 사전에 의하면, 기회는 "어떠한 일을 하는 데 적절한 시기나 경우"이며, 기회주의는 "한결같은 입장을 지니지 못하고 그때그때의 정세에 따라 이로운 쪽으로 행동하는 경향"이라고 나와 있다. 사전의 뜻으로 보면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둘을 명확히 가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과연 '기회 추구'와 '기회주의'라는 기준으로 내가 여태껏 해 온 행위와 앞으로 할 행위를 명확히 나눌 수 있을까? 앞으로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해볼 만한 고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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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성공한 인생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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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각자의 가치와 처한 상황 등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양한 상상을 하며 생활한다. 이 같은 상상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데 희망과 위안을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상상은 무엇일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준다면 ~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작가 김동식은 필부필부들이 즐겨하는 이런 생각을 한 편의 단편소설로 신박하게 그려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심상치 않다. 마치 주인공인 김남우의 스토리를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재수생인 김남우는 공부로 받은 스트레스를 풀러 새벽에 산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신세를 한탄하던 김남우는 위령탑을 걷어 찬다. 그때 그의 앞에 귀신이 나타난다. 귀신은 김남우에게 제안을 한다.


 "만약 내가 수능 만점을 받아준다면, 네 일주일 중 하루를 내게 줘."


 김남우는 귀신의 말에 당황했지만 이내 이를 받아들인다. 결국 김남우는 불수능에서 만점을 기록해 명문대에 입학하는 동시에 일주일 중 월요일을 귀신에게 주고 만다. 대학에 들어간 김남우는 여태까지 본인 스스로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 학점 관리에서 애를 먹는다. 이때 그의 앞에 귀신이 찾아온다. 이번에도 귀신은 김남우에게 제안을 한다. 그것도 새로운 귀신을 소개하면서 말이다. 김남우와 처음 만난 귀신은 5급 공무원 시험에 붙게 해주겠다며 이런 딜을 제시한다.


 "무조건 합격시켜주마. 그 대신! 나도 일주일 중 하루를 주거라."


 고민하던 김남우는 귀신의 안을 수용한다. 김남우는 이번에도 일을 저질렀다. 수능 만점과 명문대 입학에 이어 5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이제 그는 세속의 성공은 거의 이뤘다.

 김남우는 인기 아이돌 홍혜화에게 빠진다. 그가 홍혜화의 팬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 귀신이 또 그의 앞에 나타났다. 이번에도 새로운 귀신을 데리고 왔다. 김남우를 본 새로운 귀신은 그에게 홍혜화와 결혼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며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한다.


 "나도 조건은 같네. 일주일 중 하루를 내게 줘."


 홍혜화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김남우는 이 제안에도 응한다. 이제 일주일 중 김남우가 본인으로 살아가는 날은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4일뿐이다. 그래도 김남우는 홍혜화와 결혼할 수 있어 행복했다. 하지만 불과 결혼 1년 만에 둘은 이혼을 하고 만다.

 이혼 후 평범하게 지내던 김남우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인 장진주의 팬이 된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김남우의 앞에 귀신이 등장한다. 귀신은 늘 그랬듯 새로운 귀신을 데리고 왔다. 그 귀신도 앞의 귀신들처럼 김남우에게 거절하기 어려운 미끼를 던진다. 장진주와의 결혼을 도와줄 테니 자신에게도 일주일 중 하루를 달라는 것이었다. 몇 차례 있었던 귀신과의 거래로 협상의 달인이 된 김남우는 역으로 제안을 한다.


 "거래를 할 수는 있는데, 조건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연애 기간을 2년으로 잡고, 결혼 후 1년 안에 이혼하게 되면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시오."


 귀신을 이를 허락했다. 약속대로 김남우는 장진주와 2년간 연애를 하고 1년 넘게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이 결과로 김남우의 일주일 중 나흘이 귀신들의 것이 됐다. 남들이 동경하는 직업과 인기 스타인 아내를 얻은 후 김남우는 자기 관리를 게을리해 비만, 탈모 등을 갖게 된다. 귀신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또 다시 김남우를 유혹했다. 이번에는 자기 관리를 도와줄 귀신을 소개해줬는데, 김남우는 이전처럼 귀신의 제안을 수락한다. 이제 김남우는 토요일과 일요일, 단 이틀만 자기 자신으로 살게 됐다. 하지만 그는 행복했다. 일하기 싫은 주중에는 귀신들이 자기 삶을 살아주기 때문이다. 김남우는 귀신과의 거래로 자신이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며 자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잠을 자고 있던 김남우는 아내와 자신의 어머니가 나누는 통화 내용을 듣게 된다. 아내는 시어머니에게 김남우가 주말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말에 마치 김남우에게 귀신이 씌인 것 같다고 맞장구친다.

 김동식 작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상상에 기초해 이 글을 썼다. 그래서 그럴까? 이 글은 쉽고 재밌다. 그런데 이 글은 단순히 재밌게 읽고 덮을 수 있는 내용만으로 이뤄진 것 같지 않다. 

 글의 주인공인 김남우는 우리가 부러워할 만한 인생, 이른바 성공한 인생을 이뤘다. 작가는 성공한 김남우의 삶, 더 자세히 말하면 그가 귀신과의 거래로 성공해 가는 과정을 통해 현실 문제를 끄집어낸다. 수능 고득점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귀신에게 내주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입시 문제를 지적하고, 5급 공무원 합격을 위해 하루를 떼어주는 장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는 우리의 현실을 그려냈다. 또 이런 김남우의 모습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나타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귀신에게 자신의 하루를 넘겨주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갑자기 자기계발서에 있을 법한 내용을 언급해 나 역시도 당황스럽지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끝으로 작가의 핵심 의도에 관해 생각해 봤다. 아무래도 일주일 중 단 이틀만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김남우의 모습을 통해 '과연 내가 없는 삶이 성공한 인생일까'와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작가가 재밌고 가볍지만 깊이 있는 이야기로 나에게 물어왔으니, 나도 이에 응답할 수 있도록 나만의 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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