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2disc)
요한 렌크 감독, 제어드 해리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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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426, 소련의 프리피야트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4호기가 폭발했다. 이 사고는 2011년에 있었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까지 국제원자력기구(IAEA)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에 의해 최고 등급인 7등급으로 분류됐다. 이는 곧 후쿠시마가 21세기 최악의 원전 사고였다면, 체르노빌은 20세기 최악의 원전 사고였음을 의미한다.

 사고가 일어난 지 만 33년이 지난 올해, 미국의 드라마 명가 HBO가 영국의 SKY와 함께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기초로 제작한 5부작 미니시리즈 체르노빌’(감독 요한 렌크, 작가 크레이그 메이진)이 시청자를 찾아왔다. 이 드라마는 지난 5월 미국 HBO에서 방영됐고, 국내에서는 OTT 서비스인 왓챠플레이를 통해 814일에 최초 공개됐다.

 1988년 4월 26일 오전 1시 23분 45초, 한 남성이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는 소련의 핵물리학자 ‘발레리 레가소프(재러드 해리스)’로, 2년 전 체르노빌 원전 사고 현장에서 자신이 직접 목격했던 진실과 함께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테이프에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메시지에는 체르노빌 사고 수습 책임자로서 느꼈던 죄책감 등이 배어 있었다. 도대체 2년 전 체르노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23분 45초, 소련 프리피야트의 체르노빌 원전 4호기가 폭발했다. 사고 발생 당시 담당자였던 부수석 연구원 ‘아나톨리 댜틀로프(폴 리터)’와 그의 부하 직원들은 모두 충격에 빠진다. 이후 댜틀로프에게 심상치 않은 보고가 올라온다. 폭발 후 원전 근처에 흑연이 나뒹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곧 원자로의 노심이 열렸다는 이야기인데, 댜틀로프는 자신의 눈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흑연을 확인했음에도 이 사실을 부정한다.
 폭발로 인해 불이 나자 소방대원 전원에게 출동 명령이 내려진다. 이에 신혼의 달콤함을 만끽하고 있던 젊은 소방관 ‘바실리 이그나텐코(애덤 나가이티스)’는 아내인 ‘류드밀라 이그나텐코(제시 버클리)’를 두고 화재 현장으로 출발하지만, 이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사고 소식을 접한 소련 정부는 쿠르차토프 원자력연구소 제1부소장 발레리 레가소프에게 연락한다. 사고관리위원회의 일원이 된 레가소프는 회의에 참석한다. 회의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보고서를 읽어보던 그는 사고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장관회의 부의장 겸 연료동력부 장관인 ‘보리스 셰르비나(스텔란 스카스가드)’와 함께 사고 수습을 위해 체르노빌로 향하게 된다.
 4월 26일 오전 8시 30분, 민스크에 있는 벨라루스 원자력연구소의 핵물리학자 ‘울라나 호뮤크(에밀리 왓슨)’는 8밀리뢴트겐의 방사능을 측정한다. 그는 방사능의 출처를 조사하던 중 체르노빌에서 일어난 사고를 알게 된다. 사고 사실을 파악한 호뮤크는 체르노빌로 출발한다.
 33년 전에 있었던 최악의 참사를 다룬 드라마 '체르노빌'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일까? 바로 ‘거짓의 대가’다. 사고 발생 이래, 소련 정부는 자국 원자력 기술의 우수성과 정권 안정을 위해 거짓으로 일관했다. 이 때문에 사고 발생 36시간 만에 원전 주변 지역 주민들에 대한 소개령이 발령됐고, 희생을 치르지 않아도 될 수많은 생명들이 체르노빌 원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사고의 후유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거짓의 대가는 이처럼 너무나도 많은 생명과 삶의 터전을 앗아갔다. 이와 관련해 요한 렌크 감독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라는 첫 대사는 현대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 질문이에요. 여전히 진실보다 자신들을 위해 거짓을 선전하는 기회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갉아먹고 있죠.”라고 말했다.
 거짓은 잠깐의 책임 회피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권력은 여러 수단으로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부각할 수 있다. 하지만 거짓이 계속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에 이르러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진실이 그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권력의 거짓으로 인해 한 사회와 구성원들이 치러온 비용과 대가를 목도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거짓에 의한 대가와 비용이 너무나도 커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동안의 거짓말을 진실로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 또한 등장한다. 권력이 자신을 위해 퍼뜨린 거짓의 대가는 이처럼 크고 치명적이다. 그리고 체르노빌은 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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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Dead Poets Society (죽은 시인의 사회) (한글무자막)(Blu-ray) (1989)
Touchstone / Disney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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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문학 역시 세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가치임을 일깨워주는 영화. 학생들과 소통하면서 세상을 구성하는 가치의 다양함을 가르쳐주는 키팅 선생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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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 THE REVIEW - 방탄소년단을 리뷰하다
김영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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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아메리칸뮤직어워즈(AMAs) 시상식에서 BTS가 3관왕을 차지했다. BTS는 '투어 오브 더 이어(TOUR OF THE YEAR)', '페이보릿 듀오 오어 그룹(FAVORITE DUO OR GROUP-POP/ROCK)', '페이보릿 소셜 아티스트(FAVORITE SOCIAL ARTIST)' 등 3개 부문에서 수상자가 됐다. 3개의 상 중 '페이보릿 소셜 아티스트'는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BTS에게 수여됐다. '페이보릿 듀오 오어 그룹' 팝/록 부문에서 BTS는 조나스 브라더스와 패닉 앳 더 디스크 등의 쟁쟁한 후보들과 경쟁을 벌여 비영어권 아티스트 최초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로써 2012년에 싸이가 AMAs에서 뉴미디어상을 받은 이래 7년 만에 한국 아티스트가 본상을 받게 됐다(중앙일보, 'BTS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3관왕…"그래미는 왜 빼나" 논란', 2019. 11. 25).

 좋은 소식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지난 3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멜론뮤직어워드(MMA) 2019 이매진 바이 기아'에서 BTS는 4개 부분 대상을 모두 휩쓸어 총 8관왕을 차지했다. BTS는 '올해의 아티스트',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베스트송' 등의 4개 부분에서 대상을 받았다. '올해의 앨범'으로는 '맵 오브 더 솔: 페르소나(MAP OF THE SOUL: PERSONA)'가, '올해의 베스트송'으로는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가 각각 선정됐다. 이외에도 BTS는 음원 성적과 멜론 회원 투표로 선정한 '톱 10'에도 이름을 올렸으며, '남자 댄스상'·'네티즌 인기상'·'카카오 핫스타상' 등 총 8개의 트로피를 받았다(경북매일, 'BTS, 멜론뮤직어워드 8관왕 우뚝', 2019. 12. 01).

 BTS와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의 수상 소식은 반가우면서도 궁금증을 남긴다. 그것은 '그들 음악의 매력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팬과 전문가 등에 따라 답변이 다른데, 개인적으로 BTS의 음악에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에 기초한 음악이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것에 마음이 간다. 이런 특성 때문에 BTS의 음악이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래서 오직 BTS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 무엇이 된 건 아닐까? 이 점과 관련해 음악평론가이자 문화연구자인 김영대 씨의 <<BTS: THE REVIEW 방탄소년단을 리뷰하다>>를 살펴 보려고 한다. 이 책은 BTS의 음악을 살펴보는 동시에 BTS 현상과 그들의 음악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도 함께 소개한다. 모든 내용을 다 다루고 싶지만, 분량 등의 이유로 BTS의 음악 중에서 내게 깊은 인상을 준 것들만 소개하고자 한다. 

 BTS의 음악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짚어볼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한국 대중음악과 21세기에 관한 내용이다. 21세기를 맞이한 한국 대중음악은 비좁은 내수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진출했고, 그 결과 'K-Pop'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새롭게 명명된 이 음악 신(scene)에서 우리는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두 가지 변곡점을 목격한다. 첫 번째는 전 세계적인 바이럴과 K-Pop 붐을 불러 일으킨 싸이의 '강남스타일(2012)'이다.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BTS 현상'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특별하다. 이는 BTS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BTS의 데뷔 싱글 앨범은 '2 COOL 4 SKOOL'로, 2013년에 출시됐다. BTS는 1980~1990년대 스타일의 스크래치가 담긴 올드스쿨 힙합으로 첫 발을 뗐다. BTS의 데뷔 음반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전반적인 힙합의 부상과 아이돌의 구별짓기 욕망이라는 맥락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비록 이들이 아이돌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태도와 기저에 힙합이 있다는 사실은 사운드와 가사만 봐도 알 수 있다. 뮤직비디오와 다소 힘을 준 듯한 비주얼은 힙합의 '공격성'을 정체성으로 끌어 안으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지금은 누구에게나 제법 익숙한 아이돌의 자기 증명과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열망이 BTS의 경우 유독 데뷔 앨범에서부터 분명하게 표방됐을 뿐만 아니라, 그 방식이 예외적이라고 할 만큼 직설적이고 진솔했다. 이는 분명히 새로운 흐름이었다. 데뷔 앨범의 메인 곡은 'No More Dream'인데, 이 앨범은 학교 3부작의 첫 장을 장식했다.

 'DARK&WILD'로 청소년들의 '꿈'과 '행복'이 지닌 의미를 탐색하는 여정을 끝낸 BTS는 청춘의 가장 눈부신 한순간을 의미하는 '화양연화' 시리즈를 발표한다. 화양연화 시리즈는 '화양연화 Pt. 1'과 '화양연화 Pt. 2' 그리고 '화양연화 Young Forever'로 이뤄져 있다. Pt. 1과 Pt. 2는 2015년에 출시된 미니 앨범이고, Young Forever는 2016년에 나온 리패키지 앨범이다.

 개인적으로 BTS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봄날'이 수록된 'YOU NEVER WALK ALONE(2017년, 리패키지 앨범)'을 접하면서부터다. 앨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곡은 '봄날'과 'Not Today'였다. 봄날의 경우 뮤직비디오를 통해 5년 전의 어느 봄날에 우리 곁을 떠나버린 아이들을 기리는 것 같아, 지금도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 켠이 저며온다. Not Today는 팍팍한 오늘과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미래 때문에 힘들어하는 청춘에게 건네는 BTS만의 위로와 격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청춘의 좌절감이 어떠한 종류의 불합리함과 부당함 혹은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지는 몰라도, 아직은 패배를 선언하고 주저 앉아 있을 때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 두 곡을 통해 BTS는 단순한 아이돌 그룹이 아닌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음악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BTS는 화양연화 시리즈를 지나 'LOVE YOURSELF'를 통해 그동안 접한 적 없던 문제 의식, 즉 그에 대한 본질과 답에 대한 도전을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을 통한 '자기애'의 깨달음이다. 주제 의식만으로도 지금까지의 여타 K-Pop 아이돌 음악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지만, 이 같은 서사가 음악과 밀접히 연관되면서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Her'는 'LOVE YOURSELF' 시리즈 중 '승'의 파트를 담당하는 앨범으로,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전기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서사 구조상 사랑의 기쁨과 설렘을 묘사하기도 하거니와, 같은 해 BBMAs의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에서 수상을 하며 세계에서 주목받는 그룹이 된 외부 상황 때문인지, 앨범은 시종일관 밝고 에너지 넘치는 분위기로 나아간다.

 'LOVE YOURSELF' 시리즈의 마지막인 <LOVE YOURSELF 결 'Answer'>는 BTS가 화양연화 이래로 보여준 청춘과 성장의 궁극적인 담론이 가장 완성된 형태로 담긴 결론이다. 이 앨범은 단순히 기존의 앨범을 재활용한 모음집도 아니고 새로운 곡 몇 개를 끼워 넣은 리패키지 앨범도 아니다. 'Answer'에 담긴 모든 곡은 '기··전·결'이라는 서사 구조 속에서 의미를 부여받아 역할을 하며, 음악적으로는 <Her>와 <Tear> 사이에서 나온 곡에서 완전한 쓰임새를 가진다. 사랑의 흥분으로 시작해 이별의 아픔을 지나 자기애를 깨닫는 긴 여정은 서사 구조상 일리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이야기만이 아닌 장르와 편곡이라는 음악적 문법으로 표현됐다는 점에서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은 K-Pop의 기준점을 제시한 동시에 수준을 높인 문제작이자 BTS 커리어 한 챕터의 화려한 마무리다. 'LOVE YOURSELF' 시리즈에서 기억에 남는 곡으로는 'DNA·고민보다 GO·Fake Love·낙원·Magic Shop·Anpangman·IDOL·Answer: Love Myself' 등을 들고 싶다. 'LOVE YOURSELF' 시리즈는 BTS의 핵심 메시지인 '자기애'를 깊게 파고 들어가는 앨범이어서 듣고 보는 이에게 그들 음악의 정수를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BTS 음악 커리어 중 깊은 인상을 준 앨범과 수록곡을 알아봤다. 데뷔 앨범부터 'LOVE YOURSELF' 시리즈까지 모두 다루고 싶지만 분량 등의 이유로 그렇지 못해 아쉽다. BTS의 음악을 책이라는 매체로 접해보니, 그들의 음악에 분명한 서사가 담겨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 그것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실제로 겪고 느꼈던 이야기인 동시에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거나 겪고 있는 중인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바로 이 점이 수많은 음악팬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나 싶다. 결국, BTS는 누구나 겪었거나 겪을 수 있는 일에 음악을 향한 열정과 그들의 심정을 있는 그대로 담아 자신들만의 음악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은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오직 BTS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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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이 죽었다!
아르만도 이아누치 감독, 스티브 부세미 외 출연 / 루커스엔터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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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사후 벌어지는 권력 다툼을 풍자한 영화. 뭔가 하나씩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이 권력을 위해 암투를 벌이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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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미술관 - 아픔은 어떻게 명화가 되었나?
김소울 지음 / 일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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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그림에 관해 문외한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명화라고 인정받는 그림들도 별다른 감흥 없이 훑어보기만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알게 된 책인 <<치유 미술관>>은 미술에 관심도 없고 상식도 없는 나에게 색다른 느낌을 줬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구성 자체가 참 흥미로웠다. 가상 인물인 '닥터 소울'이라는 심리치료사가 15명의 화가를 만나 상담을 진행한다. 이 과정 속에서 화가들은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데, 이 그림들이 현재 명화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구성 자체에서 색다름을 느끼다 보니 책을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그들이 겪은 아픔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아픔이 그림에 어떻게 담겨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졌다.

 <<치유 미술관>>은 가상 공간인 '소울마음연구소'의 내담자 일지 내용을 묶은 책이다. 위에서 언급한 '닥터 소울'이 이미 세상을 떠난 15명의 화가를 가상으로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내담자는 반 고흐, 모네, 마네 등의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두 16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했는데, 다들 마음이 아파 고통을 겪었다. 이들은 동정받기도 했고, '문제 화가'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이 책이 가상에 기초하고 있다고 해서 모든 내용이 지어낸 것은 아니다. 저자가 필요한 상황만 설정했을 뿐 결정적인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다. 언급하는 내용의 대다수도 실제로 화가들이 했던 말이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그들의 말과 표현을 가상 상황에서 풀어낸 것이다. 결국 <<치유 미술관>>은 역사 속에 실존했던 화가들의 실제 이야기, 즉 팩트와 '닥터 소울'을 만난다는 픽션을 적절히 섞은 팩션(faction) 형식의 책이다. 15명의 화가를 모두 소개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화가 2명의 이야기를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를 소개한다. 뭉크는 5살 때 어머니를 잃었고, 13살 때에는 누나인 소피아를 잃었다. 그리고 32살이 되던 해에는 동생인 안드레아가 그의 곁을 떠난다.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온 뭉크는 '공황장애·우울증·신경쇠약·불면증'을 앓게 된다. 이런 아픔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절규>다.

 그림 <절규>를 멀리서 보면 다리가 갑자기 무너지고, 피오르(fjord, 협만)에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이 느껴진다. 또 피오르의 바닷물이 마치 살아 꿈틀거리듯 표현됐고, 붉은색의 하늘과 바닷물의 경계가 모호하게 그려졌다.

 어느 날 뭉크는 하늘이 피처럼 붉은색으로 변하고, 온 세상이 구불구불 어지럽게 뒤섞이고, 피오르 바닷물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 솟아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그는 온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껴 난간에 힘 없이 기댔다. 그때 세상의 끝까지 닿을 듯한 절규를 듣게 됐는데, 이로 인해 작품명이 '절규'로 정해졌다.

 그림 속 인물을 보면 상체는 명확한 반면, 하체는 사라지듯 흐물흐물하게 그려졌다. 다리 부분이 명확하지 않은 그림의 경우, 그림을 그린 사람이 그가 속한 조직, 예를 들어 직장이나 사회·가족 혹은 대인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실제로 뭉크는 어릴 때부터 병에 걸리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느꼈고, 어디에서도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다. 한편, 그림 속 인물은 가운데에 위치해 있는데, 이것은 더 살고 싶다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절규>의 주인공은 가운데에 있지만, 그 위치는 매우 아래쪽이다. 이처럼 인물을 바닥쪽에 그린 것은 자신의 우울함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뭉크는 <절규> 외에도 몇 가지 그림을 더 그렸는데, 그 작품들은 가족의 죽음과 죽음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결국 뭉크의 작품 대부분은 어려서 어머니와 누나를 잃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남동생을 잃어 느끼게 된 아픔과 이로 인해 생긴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화가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다. 그녀는 7살 때 어머니를 잃었고, 18살 때는 스승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 결과로 그녀는 '우울증'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안고 살게 됐다.

 젠틸레스키는 화실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런데 화실 선생님이 그녀에게 흑심을 품었는지 계속 치근덕댈 뿐만 아니라 둘만 있을 때에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젠틸레스키는 스승의 행동을 보고 <수산나의 두 노인>을 그렸다. '수산나'는 성경에 나오는 여인이며, 그녀의 뒤에 있는 두 노인도 성격 속 인물들이다. 두 노인 중 검은 머리의 노인은 젠틸레스키의 선생인 '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의 얼굴을 갖고 있다. 그리고 두 노인 앞에 있는 수산나는 타시에게 능욕당하는 젠틸레스키 본인을 빗댄 인물이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만다. 타시가 젠틸레스키를 성폭행한 것이다. 이 일로 그녀는 PTSD 증상을 보이고, 꿈을 꿀 때마다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일의 장면을 보게 된다. 

 큰 상처를 입은 젠틸레스키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라는 그림을 그리는데, 이 그림은 그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그림의 본 내용은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유디트가 베는 것이다. 젠틸레스키는 이 그림을 통해 남자에게 복수하고자 했다. 복수의 대상은 남성 전체였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그녀의 자화상이고, 유디트에게 당하는 홀로페르네스는 타시의 얼굴이다.

 이런 충격적인 일을 겪은 후 젠틸레스키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 그녀는 결혼 후에 <루크레티아>를 그린다. '루크레티아'는 고대 로마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는데, 그녀는 당시 로마의 왕이었던 타르퀴니우스의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이 일을 겪은 후 그녀는 남편에게 복수를 부탁하고 자결을 하는데, 그 장면을 그린 게 바로 <루크레티아>다. 이 그림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한 가지는 과거의 기억(성폭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젠틸레스키 자신의 모습이고, 또 하나는 과거의 끔찍한 사건으로 어두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기억을 지우고 싶은 마음이다. 특히 비장하게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은 과거의 기억을 잘라내고 새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아픔을 겪은 젠틸레스키지만 그녀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화가로 불린다. 그녀는 여성이 숨죽여 살아야 했던 시기에 그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냈던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이 책에서는 젠틸레스키를 '카이사르의 용기를 품은 여성'이라고 소개한다. 조심스럽지만 그녀가 겪은 아픔이 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에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다른 여성 화가들, 아니 그 어떤 여성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이 같은 그녀의 마음과 이 마음의 근원에 위치한 아픔은 그녀가 그린 명화들에 담겨 지금까지 그 의미와 빛을 전달하고 있다.

 지금까지 두 명의 화가와 그들이 겪은 아픔, 그리고 그 아픔이 담긴 작품을 알아봤다. 모두 내가 알고도 그냥 지나쳤거나 아예 몰랐던 작품들이다. 나는 이런 명화에 사회적·시대적 메시지만 담겨 있다고 생각했을 뿐, 화가 개인의 아픔을 내포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림과, 화가들의 아픔 등에 대한 설명을 보면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게 됐고, 이 공감은 그림을 색다르게 보게 했다.

 <<치유 미술관>>을 읽으면서 그림을 보고 글을 읽을 때 화가와 저자가 걸어온 길을 유심히 살펴 그들의 내면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렇게 한다면 그림과 글의 큰 부분과 작은 부분을 함께 볼 수 있어 작품 속 의미와 메시지를 더 깊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치유 미술관>>은 단순한 미술 혹은 심리 치료를 위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하거나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 혹은 미술에 관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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