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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가 없는 하얀 요호 설화 - 제3·4회 타임리프 공모전 수상 작품집
해도연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3월
평점 :
단편집을 많이 보고 있는 요즘,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온 '꼬리가 없는 하얀 요호 설화'는 유달리 재밌는 작품들이 많았다. 타임리프 공모전 중 3,4회 수상 작품을 모은 작품집인데 수상작이라서 그런지 과연 알찬 작품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크게 눈에 띄는 작품들에 대한 리뷰를 남겨본다.
'안녕, 아킬레우스'는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는 내용이다. 타임리프 공모전 수상작이라는 사실을 알고 읽었음에도 타임리프물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의 쾌감이 재밌다. 분량은 수록작 중에서 제일 긴 편인데도 제일 앞에 배치된 것은 그만큼 읽는 재미를 황금가지 출판사가 확신 했기 때문이겠지.
'심계항진' 역시 반복되는 하루가 나오는데 반복되는 문장과 일상이 미묘하게 바뀌는 것이 주는 묘한 운율이 있었다. 주인공은 정작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모르고 그를 지키려는 사람이 등장한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 누군가를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 '안녕, 아킬레우스'와 겹치지만 앞의 작품이 추리 액션 스릴러라면 이쪽은 로맨스에 가까운 애틋함이있다.
'사랑손님과 나'는 제목에서부터 눈치챌 수 있 듯이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세계를 차용한 작품이다. 작가는 놀랍게도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단아하고 옛된 문체마저 흉내내서 읽는 재미가 컸다. 이런 표현, 이런 문장이 '사랑손님과 어머니'에도 있었던가하고 놀라면서 읽었다. 어머니와 옥희는 단역에 불과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실제 '사랑손님과 어머니'에서도 이런 일이 몰래 일어나지 않았을까하고 상상하게 된다. 작가의 필력이 놀랍다.
표제작인 '꼬리가 없는 하얀 요호 설화' 역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전설의 고향'이 아직도 인기리에 방송 중이라면 분명 원작이 팔렸을 것 같은 작품이다. 다른 수록작도 그러하지만 시간 여행을 하는 영화나 소설에서도 주인공들이 대부분 시간 여행을 하는 것이 직업이라던가 역사를 위해서라던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라는 둥 어떤 거대한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꼬리가 없는 하얀 요호 설화'에서 주인공이 시간 여행을 하는 목적은 그 스케일이 제일 작다고 할 수도 있다. 사실 이건 '심계항진'도 마찬가지이지만 산 속에서 도술을 부리는 짐승이 부리는 재주치고는 소박한 면이 있다. 그것이 주는 감동이 컸다. 도술을 부리는 짐승이 겨우 인간사의 일 때문에 그런다는 것이 어릴적 이불을 덮고 보던 '전설의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전설의 고향'이 무섭지만 말미에 나레이션이 나올 땐 마음 한켠이 서글펐던 것은 그 드라마의 요괴와 귀신들도 인간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제일 마지막 작품인 '뒤로 가는 사람들'은 수록작들 중 제일 끔찍한 작품이다. 작품의 완성도가 끔찍하다는 말이 아니라 내용이 끔찍하다는 뜻이다. 특별 초청작이라고 하는데 책의 마지막에 깜짝 놀랄만 한 이야기를 배치한 것이 효과가 좋다. 앞선 작품들이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선한 의지인데 반해 이쪽은 그 결이 다르다. 그것이 좋은 작품이 많은 이 작품집에서도 눈에 띄는 요소이다. 말미에서 벌어지는 전개가 신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