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감정들과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청소년기를 지날 때, 저의 경우 가장 힘들게 다가왔던 감정은 '외로움'이었습니다. 나 혼자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 집만 이런 것이 아닐까? 다른 친구들은 그렇지 않은데 나만 이런 것일까? 이제 막 자기정체성이 단단해지려고 모양을 잡아가려고 할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학교와 사회라는 무리 속에 던져 졌을 때 '나 혼자만 이런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운 감정이 시시때때로 밀려들 때 짝꿍으로 밀려오는 감정은 외로움이었습니다.
어른이 된 요즘도 이러한 마음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제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로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시를 꺼내 본다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서 무수히 많은 감정들이 왔다갔다 하고 많은 생각들이 드나들지만 그 정체를 모를 때, 그 혼란스러움이 정확히 뭔지 잘 모를 때,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꺼내 보이고 싶지만 나조차 지금 내 마음이 어떤 것인지 정의할 수 없을 때, 나만 이런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가 두려움과 외로움이 밀려들 때 시를 꺼내봅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흠짓 놀랍니다. 아! 내 마음속에 드나 들었던 것의 정체가 이런 것과 비슷한 것이었구나. 누군가는 그 정체를 이렇게 표현했구나. 누군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구나.
그래서 청소년기에 시를 조금 더 빨리 만났더라면 삶이 바뀌었을까... 라는 생각을 지금 시를 접할 때마다 가끔 합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때도 시는 내곁에 멀리 있지는 않았습니다. 국어 책에 항상 등장했었고, 언어영역 지문에도 항상 등장했었지요. 그런데 그때는 왜 그리도 그 시들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을까요? 교.과.서. 라는 책이 주는 아우라에 뭍혔을 수도 있고, 밑줄 긋고 정답을 받아적으라는 수업방식 때문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그때의 나는 아직 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구요.
지금의 청소년들도 과거 제가 청소년일 때와의 상황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청소년들에게 교과서가 아닌, 언어영역 지문이 아닌, 국어샘의 밑줄쫙이 아닌 마음으로 만나는 시를 소개하는데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청소년 마음 시툰'이라는 주제 아래 청소년들의 마음에 울림을 줄 시들을 선정해서 웹툰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시를 소개합니다. 특히 14살 중학생 잔디와 천상계에서 인간계로 내려온 영물 해태의 일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시를 전달합니다. 잔디와 해태의 사춘기 감성에서 경험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절로 마음이 끄덕여집니다. '나도 그랬었지.' 그리고 그때 잔디와 해태의 마음을 정확히 대변한 시들을 읽다보면 또다시 절로 마음이 끄덕여집니다. 잔디와 해태와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 시인이 어딘가에 또 있었구나.
저자는 저자의 말에서 이 책에 수록된 시들을 고르는 것은 매우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시는 삶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자신을 번쩍 들어 올려 저 너머를 보여주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는 어쩌면 우리 안에 있는 어질고 너그러운 마음, 밝게 반짝이는 마음을 잘 지키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전합니다.
한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다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 모르고, 넘어져야만 알을 깨고 성장하는 부분이 있지만 때로 우리 아이들이 어린 시절 가지고 있던 밝게 반짝이는 마음이 사회 속에서 점차 빛을 잃어가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도 함께 듭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모든 아이가 가지고 있던 밝게 반짝이는 마음의 빛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은 언제나 밝게 비치고 있었는데 그 위에 온갖 먼지들과 모래들이 둘러 쌓여 있어서 빛이 흐릿해 지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언제나 밝게 빛나고 있는 그 빛들이 다시 잘 비추어 질 수 있도록 먼지들을 닦아 내야 한다면 그 역할을 하는 것중 하나가 바로 시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