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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이어령'이라는 저자의 이름 하나로 선택한 책이다.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지만 딸의 기도로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여러 경로를 통하여 들은 바가 있었다. 내가 문화,사회 분야에 문외한이라서인지 세상을 향한 눈과 귀가 어두워서인지 이어령 박사가 크리스찬이 되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는 것은 뒤늦게 알았는데,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이 분이 '종교'를 가지게 된 것이 이슈가 되었는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은 무신론자였던 이어령 박사가 어떻게 영성의 빛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는지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의 시작품에서 세례를 받을 때까지의 일상을 1부 교토에서 찾다, 2부 하와이에서 만나다, 3부 한국에서 행하다, 4부 아버지와 딸의 만남 5부 문지방 위의 대화 등 5부로 나누어 전한다. 그를 회심시킨 그의 딸, 이민아 변호사의 간증도 함께 엮어져 있어, 작가는 이 책을 '이어령, 이민아 공저'라고 소개한다.
20대부터 글쓰기를 시작하여 문학평론, 에세이, 소설, 드라마, 시나리오, 신문칼럼 등을 집필했다는 이력때문인지 그의 글은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이었다. 그저 삶의 영역에서 느낀 것들을 글에 담았을 뿐인데 고매한 문학작품과 같이 느껴질 정도로 나에게는 인상적이고 강렬했다. 삶에 대한 연륜때문일까, 그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과 사뭇 달랐다.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도, 뒤늦게 시작한 그의 신앙생활도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그의 글을 통하여 나도 모르게 터지는 눈물어린 웃음을 경험했다.
글의 한 부분, 한 부분이 모두 좋았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번째는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텔레비전의 아나운서와 눈을 맞춰 인사하던 '고독'했던 아버지에 대한 회상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고, 돌아가시기 전 다니기 시작한 교회에서 이웃을 위해 먼저 기도한 아버지의 모습은 내 모습을 반성하게 했다. 23년차 크리스찬으로 나의 기도의 생활은 어떠한가. 당장 나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철없는 아이처럼 떼를 쓰기만 했지 나라의 어려움과 세계의 고통을 위하여 얼마나 많이 기도했는가. 기도의 90%를 차지하는 나에 대한 기도를 줄이고, 세계와 나라를 위하여 먼저 무릎꿇는 사람이 되야겠다 결심하게 되었다.
두번째는, 마두금의 음악으로 눈물을 흘리는 낙타에 대한 이야기와 제임스 앙소르의 '1889년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그림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모성애를 잃은 낙타를 울리는 음악처럼 리더가 누군가를 이끌어 가려면 감동을 주어야 한다. 영혼을 일깨워서 눈물을 솟아나게 해야 한다. 비가 와야 무지개가 돋는 것처럼 눈물이 흘러야 영혼에 무지개가 생긴다'는 그의 말은 나의 마음에 깊은 깨우침을 주었고, 앞과 뒤가 아닌 군중 속에 파묻힌 예수님의 모습은 깊은 감동을 주었다. 독선적으로 앞에서 이끄는 것이 아닌, 뒤에서 관리만 하는 것이 아닌, 나의 옆에서 함께 하는 리더, 그런 리더의 모습을 나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번째는, 왜 교회에 가는지 묻는 사람들에게 되묻는 질문과 답에 대한 이야기였다. '먹어도 배고프고, 마셔도 갈증나고, 놀아도 심심하고, 배워도 답답하면 어디를 가나? 그런 때 가는 곳이 교회이다'라는 말은 나도 모르게 '아!'하고 외치게 만들었다. 그래. 내 영혼의 쉴 곳, 이 세상 어느 곳에 내 작은 몸 하나 가릴 수 없을 때, 못견디게 답답하고 슬플 때, 그럴 때 내 발걸음이 옮겨지는 곳이 바로 교회가 아니던가. 비록 부패한 교회가 세상에 있을지라도 영혼이 메마른 사람이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오직 '교회'뿐이지 않는가. 선데이 크리스찬으로 살지 않겠노라 다짐하면서도 이러한 생각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온 나의 모습이 부끄럽고 또 작아진다.
사실, 이어령 박사의 회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그의 딸이 겪은 여러가지 고통과 치유에 대한 언급을 빼놓을 수 없겠지만 그 이야기는 많이 들어온 터이라 책을 읽으며 나의 초점은 그의 내면 속 이야기에 맞춰져있었던 것 같다. 왜 이분이 '글'을 통하여 많은 업적을 이루었는지 책을 읽어보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창작 활동의 결과물, '시'를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책, 그 책을 통하여 그의 글과 감정을 더 깊이 전달받고 싶다.
끝부분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제목과 내용, 표지와 삽화까지 마음에 드니 이 책은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저자의 바람대로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그 문앞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