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헌터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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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의 <헤드헌터>. 작가의 이름이 이 책을 시작하려는 내 눈을 이끌었다. 너무나도 낯설게 다가오는 이름인데 이미 북유럽 스릴러의 자존심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런 문구일수록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고 유심히 책을 살펴보게 만든다. 요 네스뵈는 ‘자존심’ 이라고 일컬어 질 만큼 잘나가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록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하기도 하는 특이한 이력의 작가이다. 책을 읽기도 전에 작가의 화려한 이력과 멋들어진 사진을 보니 절로 헤드헌터를 펼쳐들게 끔 만들었다. <헤드헌터>에서 눈에 띄는 문구를 꼽으라면 바로 ‘직업 사냥꾼, 그림 사냥꾼, 사람 사냥꾼의 쫓고 쫓기는 싸움!’을 단박에 고르고 싶다. 이 책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문구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헤드 헌터>는 사냥꾼들의 술래잡기와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그만큼 숨 막히고 긴박하며 초조하게 만드는 책이다. 과연 어떤 책이 길래 이렇게 흥분하여 떠드는가 싶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므로 간략하게 소개를 할까 한다.





주인공은 헤드헌터, 즉 기업 임원직에 적합한 인물을 추천하고 이들이 각기 위치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다. 이름은 로게르 브론으로 사람을 보고 최고의 능력을 가진 인물을 뽑아내는 것에 으뜸으로 인정받는다. 그에게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될만큼 아름답고 사랑스런 아내가 있다. 그는 여러면으로 아내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을 비치며 아내를 위해 물질적인 측면만큼은 완벽하게 보상해주려는 노력을 한다. 아내 디아나에게 화랑을 주기도 하고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할 만큼의 여유로운 돈을 주기도 한다. 주인공은 아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직업 외에도 돈이 될 만한 무언가를 해야만 했고 그것이 바로 고가의 미술품을 훔치는 ‘헌터’로 생활하는 것이 었다.
어느 날 그는 최고의 행운이 두 가지나 찾아오는 기쁨을 맞이하게 된다. 행운은 바로 최고의 인재 그레베와 다른 하나, 최고의 미술품 루벤스의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 로게르 브론은 행운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레베를 속이고 미술품을 훔치게 된다. 순조롭게 진행될 줄알았던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그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한다.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





책이 더 흥미롭게 진행될수록 호흡이 가빠져 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른 책과 비교하면 <헤드헌터>는 문장이 간결하고 짧다. 그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가쁘게 쫓기는 기분을 느끼도록 한다. 길고 화려한 수식어는 잘 찾아보기 어렵고 짧고 간결하게 끝난다. ‘헌터’를 잘 표현하기 위해 요 네스뵈가 문장, 단어 하나까지 얼마나 간결하게 다듬으면서 의미를 담아 넣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헤드헌터>의 옮긴이는 이를 ‘롤러코스터’에 비유했다. 빠르고 급격하고 간결하다. 사건이 꼬이기도 하고 풀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빠르며 이 모든 것은 쾌속선을 탄 것 마냥 빠르게 진행된다. 숨가쁘게 쫓아 가다보면 어느 덧 책이 끝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헤드헌터>를 계속 ‘빠르고 간결하고 짧다’라는 강조하지만 그 속에 담긴 요 네스뵈의 철저함이 한층 더 책을 흥미롭게 만든다. 결코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를 요 네스뵈는 한 번 풀었다가 다시 트릭을 이용하여 독자들을 농락한다. 그리고 가볍게 다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영리한 주인공 로게르 브론 보다 뛰어 나는 것이 자신이라고 과시하듯이 독자들을 우롱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내가 요 네스뵈에게 마지막장까지 끌려 다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글을 처음 시작할 때 요 네스뵈는 북유럽의 자존심으로 불린다고 언급했었고 이런 문구일수록 유심히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심히 읽은 <헤드헌터>는 요 네스뵈를 북유럽의 자존심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한국에서 보인 첫 스릴러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우리는 다양한 스릴러를 많이 봐왔고 다양한 작가들을 만나봤으며 다양한 스타일을 접해보았다. 그러나 요 네스뵈 만큼 빠르고 재미있게 진행하는 작가를 만나기란 어렵다. 사건들을 진지하고 무겁게 그리고 진중하게 다루는 스릴러에 질렸다면 <헤드헌터>를 읽을 것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당신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의 책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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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나구 - 죽은 자와 산 자의 고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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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죽은 자와 산자의 고리’ 책 표지를 받자마자 가장 눈에 띄었던 부분이다. 이 문구만 읽어보면 <츠나구>는 미스터리물이나 공포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츠나구>는 가슴 한켠을 울리는 사연이 담긴 책이라는 반전을 지니고 있다.





어릴 때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와 닿지 않아 잃는 다는 것에 대한 슬픔을 잘 모른다. 내 주위 누군가의 부재(不在)를 맞이하고 나서야 ‘죽음’을 처음 인정하게 되고 죽음이 두려워 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한 번 맞이한 죽음은 내가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더 많이 와 닿게 되고 더 많은 부재(不在)를 겪게 된다. 비로소 이미 죽은 누군가를 딱 한번만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그 것이 조부모 일수도 있고, 형제 일수도 있으며 자식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죽음을 깨닫고 난 뒤, 체념을 맞본 우리가 하는 일은 눈물을 흘리고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고 추억한다고 해도 내 일상을 달라지는 것이 없다.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다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마저도 가슴에 묻어 두고 내 앞에 주어진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죽음을 다시 외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츠나구>는 죽은자와 산자의 고리를 연결하는 사람으로서 생전에 한 번, 죽어서 한 번 인간의 생사를 뛰어 넘어 만남을 이루어 준다. 그 어떤 조건도 없이 운이 좋으면 이루어 질 수 있지만 내가 만나고 싶어 하는 이가 이미 다른 이와 만났더라면 나와의 만남이 파기 되며, 이는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약간의 도박을 걸고 하는 셈이다. 또, 만약 내가 만나고 싶어 하는 이가 나와 만나고 싶지 않다고 거절 한다면 마찬가지로 나의 기회가 박탈 당하는 것이다. 츠나구가 이런 조건을 제시한다고 할 지라도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 그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떤 사연을 담고 있을까?





몇 가지 사연을 담고 있는 <츠나구>에서는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또 그에 대한 이유도 제 각각 다르다. 그 중 몇 가지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이야기는 돌연사한 연예인과 팬이라고 말하기도 모호한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이 여성은 자신이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결국 자기애마저 사라져 버린 소심하고 움츠러드는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만이 기억하는 돌연사한 연예인과의 단 한번의 부딪힘으로 많은 용기를 얻어서 만남을 청했다. 처음에는 굳이 전혀 안면이 없는 사람을 선택할 만큼 많이 주어진 기회도 아닌데 꼭 만남을 청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머지 세 사연 보다 더 생각을 많이 하게한 첫 번째 사연은 결국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게 만들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여성이 아니던가. 심지어 자기애 마저 사라져 버린 여성에게 유일하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준 연예인이다. 단지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졌을 뿐이지 여성에게는 연예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반면 가장 가슴깊이 울컥하였던 이야기는 죽은 어머니와 장남의 만남이었다. 흔히 장남, 장녀들이 짐을 많이 떠안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에게 서운한 점도 자식들 중에 제일 많을 것 이다. 두 번째 사연의 장남도 마찬가지이다. 장남은 어머니에게 서운했고 그 동안 묻어 두었던 말을 꺼내면서 위로 받게 된다. 장남, 장녀는 아니지만 ‘어머니’와의 만남에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가장 슬프게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위에서 간략히 이야기 했던 만남 외에도 다른 만남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는데, 모두 공통되는 점은 ‘츠나구’라 불리는 인물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계속 이야기 했듯이 ‘츠나구’는 생사와 관계없이 만남을 연결해주는 인물인데, 어딘가 모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책을 읽는 동안 가장 궁금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 ‘츠나구’에 관한 비밀은 마지막에 이야기로 실린다. 어떻게 생사를 뛰어 넘는 만남을 성사 시킬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죽은 자가 되는 것인지, 그의 가족사는 어떠한지 까지도.
‘츠나구’의 존재 까지 비로소 알게 되었을 때 <츠나구>를 완벽히 끝까지 읽게 되는 순간이다.





현실에서는 존재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존재 하게 된다면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아직은 없지만 누가 될까? 사실은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 까지 나는 죽음이 무섭고 두려운 사람이며 내 옆의 소중한 이의 부재를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죽게 된다면 츠나구를 통해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있을까?
어느 날 문득, 죽음이 떠올랐거나 내가 죽게 된다면……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날 다시 <츠나구>를 읽으면 답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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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브램 스토커 지음, 홍연미 옮김, 찰스 키핑 그림 / 열림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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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는 이미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친숙하다. 드라큘라는 이제 공포를 제공하는 존재이기 보다는 친숙하게 느껴지는 악령, 또는 귀신들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처음 드라큘라가 만들어졌던 1897년에는 흡혈귀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만큼 큰 명성을 얻었고 그 결과 음악, 뮤지컬,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언어로 많은 작품이 탄생하고 있으며 대중들에게 끊임 없이 사랑 받고 있다.



문득 드라큘라를 처음 알게 되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원래 겁이 많은 지라 부모님께서는 공포와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잘 말씀해주시지 않는 분이셨는데,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왔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드라큘라를 알게 된 후로 밤이 얼마나 무서워졌는지 밤마다 같이 자자고 조르고 십자가를 지니고 있으면 드라큘라가 오지 못한다는 말에 하나만 구해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도 나는 여전히 겁쟁이였고 공포와 관련된 것은 일절 접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여름마다 줄줄이 쏟아지는 공포영화도 절대 보지 않았다. 어느 덧 성인이 된 지금은 드라큘라가 무섭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브램 스토커의 원전을 그대로 번역한 <드라큘라>가 나오면서 한구석에 꽁꽁 묶어두었던 기억들을 풀어 약간은 떨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이들이 <드라큘라>라는 keyword에 영화를 떠올리고, 이 책을 읽을 때 영화와 비교하면서 읽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본 유일무이한 드라큘라는 <두치와 뿌꾸>라는 만화영화에서 보았던 ‘큐라’가 전부여서 그런지 오히려 원작이 낯설게 느껴졌다. 또 만화영화를 보면서 드라큘라에 대한 친숙한 이미지를 심어두었던 내 노력들이 다 부질없는 짓이 었다고 생각될 만큼 찰스 키핑의 그림은 노골적이면서도 찌릿하게 섬뜩하였다. 다양한 색감도 없이 오직 펜 하나로만 그려졌을 것 같은 그림인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찰스 키핑이 겪어보고 그린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드라큘라>는 영국 런던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조너선 하커는 루마니아의 황량한 지방인 트란실바니아로 향한다. 그곳에 사는 드라큘라 백작이 런던에 집을 한 채 구입하는 과정에 필요한 법적 절차를 일러주기 위해서다. 음산하고 수상한 분위기의 성과 백작의 분위기 속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는 조너선 하커는 어느 순간부터 드라큘라 백작이 언데드라는 사실을 깨달아 가기 시작한다. 상황은 조너선에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자 그는 백작의 성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조너선의 약혼자인 미나는 조너선과 연락이 닿지 않아 초조한 마음으로 친한 친구인 루시와 길을 떠난다. 인간의 피로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되는 드라큘라 백작에게는 이 두 사람을 이용하여 더 없이 좋은 인간의 피를 맛볼 수 있게 된다. 루시의 변화를 눈치체면서 드라큘라 백작의 뒤를 쫓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게 진행된다.





흡혈귀 문학의 명작, 흡혈귀 문학의 고전 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드라큘라>이지만 명작과 고전이라는 어려움을 털어낼 수 있을 만큼 흥미롭게 진행된다. 현재와 맞지 않는 의학적인 내용도 다소 포함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수혈에 관하여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는 재미로 가볍게 넘길 수 있다. 그만큼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드라큘라>는 여전히 오싹하고 가슴을 뛰게 만들며 공포를 가져다 준다.
그 이 어디 있을까?





<드라큘라>와 비슷한 keyword를 가지고 있는 책들이 주인공 시점으로 사건이 흘러가는데 반하여 이 책에는 기록으로 의해 사건들이 흘러간다. 뿐만 아니라 지금과 다소 맞지 않는 의학적인 지식이 포함되어있지만 브램 스토커가 차근차근 자료를 조사하고 모아 써내려 갔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치밀하고 탄탄한 구성을 보인다. 등장하는 인물 모두에게 각자의 특징을 부여하고 특징에 맞는 새로운 삶이 부여되었다고 생각될 만큼 생생하고 흥미롭다.





여전히 지금도 인터넷을 띄워 검색 창에 ‘드라큘라’ 단 4글자만 입력하면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다양한 정보들이 등장한다. 그 시절 꼬마는 없어졌지만 여전히 겁이 많은 나는 스쳐 지나가는 사진만으로도 겁이 날만한 그림들도 많다.
그러나 정말 <드라큘라>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원작의 충실함과 삽화들. 그 보다 정확한 드라큘라가 어디 있으랴.

무더운 여름날 밤, 작년에 읽었더라도 또 읽고 싶어서 매년 꺼내 읽게 되는 매력이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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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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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1943년 출생하셔서 1970년 등단 이후로 <태백산맥>과 <아리랑>으로 문학상을 받았음은 물론 끊임없이 책으로 뜻을 펼쳐가는 우리 시대의 소중한 보석 같은 작가님이시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조정래 작가님의 글은 이번 <비탈진 음지>가 처음이었다. 조정래 작가님의 작품 속에는 우리네 정서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음은 물론이고 아픔을 과감히 노출하여 더욱 시리고 애틋함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비탈진 음지>를 읽어보고자 마음 먹었던 것은 어쩌면 건방진 태도 일지도 모르나, 왜 조정래 작가에게 열광하는지 또, 쉽게 공감되지 않고 어렵다고 회피한 그 정서가 무엇인지 궁금하였다.



<비탈진 음지>는 1973년 처음 발표되고 1999년 조정래 문학전집에서 <황토>와 함께 출간이 되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발표 당시부터 평단의 관심을 받을 만큼 문학관과 역사관을 압축한 작품으로 일컬어 지며, 이번에 새롭게 개정하며 장편 소설로 태어나게 되었다.
최근 들어 읽어 온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마다 얼마나 섬세하고 정성들인 글인지 문력(文力)이 느껴졌다. 글자 하나에도 힘을 불어 넣고 의미를 부여 한다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인데도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힘이 가득한 글자들이 향연에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기운을 얻었는지 모른다. 이는 여타 외서들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그러한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탈진 음지>는 1970년대 한국에서 산업화가 진행되는 시기에 부인의 병수발로 삶을 터전을 잃고 가족들과 서울드림을 꿈꾸며 서울로 상경하여 생계를 꾸리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정리하여 서울로 떠난 복천은 ‘무작정 상경한 1세대’로 일컬어 진다. 말 그대로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복천은 칼갈이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생활이 녹록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그는 마지막까지도 평탄하지 못하고 끊임 없는 고생과 시련을 맞이 한다. 끊임 없이 고생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복천이 가난한 사람은 끊임 없이 가난하고 부자인 사람은 끊임 없이 부자인 세상에 원망하고 한탄하는 구절이 있었다.




P125
“어떤 놈들은 벼락을 맞아도 골라가며 돈벼락을 맞아 저런 궁궐 같은 집에 살고, 어떤 놈들은 무슨 모진 죄를 졌길래 고향을 도망쳐 나와 산꼭대기 판잣집 셋방살이 신세란 말인가.
잘사는 것들은 갈수록 팔자가 처지고 늘어지고, 못사는 놈들은 갈수록 신세가 비틀리고 조그라드니 평생 저런 집에서 살아보기는 아예 틀려먹은 거 아닌가.”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조정래 작가가 남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합니다”의 문구가 대번에 떠올랐다. 책을 처음 읽어 내려갈 때는 1970년대 돈이 없던 우리네가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면서 겪게 되는 모질고 아픈 삶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 즈음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속속들이 열어본 <비탈진 음지>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단 저 구절에 해당하는 것이 1970년대에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약 4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되풀이 되고 있는 일이고 NEWS에서는 경제/사회면을 늘 장식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결국 우리가 힘든 것은 그 시대에서도 반복되던 일이고 이 시대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절대 끊을 수 없는 쇠고리로 연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탈진 음지>를 읽을 필요가 없는 날의 속내는 그런 날을 희망하지만, 현실화 되기는 어렵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왜 이렇게 까지 힘들어야 하고 왜 이렇게 까지 고통을 받아야 하며 왜 이렇게 까지 모진 시련이 주어지는지. 그 힘들고 고생스러운 마음은 겪어 보지 않고 따뜻한 밥 먹으며 따뜻한 집에서 편히 생활하는 내가 어떻게 다 알 수 있을까 마냐 이지만, 아무리 타국 생활을 오래하여 우리네 정서가 어렵고 쉽게 읽어 내려가기 힘들다는 내게도 공감을 불어 일으킨다.
첫 시작을 왜 조정래 작가에게 열광하는지 궁금하다고 시작했었다. <비탈진 음지>를 다 읽은 지금 그 해답을 조금은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들은 조정래 작가의 글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그의 글에 열광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여타 책에서 느끼기 힘든 한국인의 애환과 순수하면서도 힘이 가득한 문력(文力)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투리로 대화하는 부분이 많아서 읽는 동안 몇 번이나 거듭 읽어야 했지만, 문득문득 힘이 들 때 한번씩 <비탈진 음지>를 꺼내어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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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세계문학의 숲 7
마크 트웨인 지음, 김영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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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이 책의 제목인 <아서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는 쉬운 듯하면서도 어딘가가 미묘하게 어렵다고 느껴졌다.
(어딘가 입에 착착 붙는 제목이 아니어서 늘 말하는데 힘들었다고나 할까…….)

<아서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의 작가는 마크 트웨인으로 그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마크 트웨인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을 당시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도 나고, 그 때 너무 좋아해서 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만화주제가를

테잎을 따라 즐겨불렀던것으로 기억난다.

그런 점에서 <아서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도 재미있을 거라는데 한 치의 의심도 없었고 정말 이 책은 도입부부터 재미를 안겨주었다.

 

 

  <아서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는 그 당시 접하기 힘든 SF적 요소가 포함되어있다.

완벽한 SF적요소가 가미되어있는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당시의 책들이 주로 유토피아와 같은 이상향의 사회에 관심을 둔 것에 반해 이 책은 주인공이 과거로가 당시의 과학기술로

사회를 변모시키려고 한다는 설정에서 독특하고 참신함이 묻어난다.

도저히 19세기 미국인에게서 탄생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스토리 라인이라 읽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지난 과거에 쓰였다고 믿기 어려운 탄탄한 구조와 재미있는 설정덕분에 세계문학 시리즈 중의 하나라고 하는 책을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전혀 어려움 없이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으로 조금 더 자세히 들어가서 이야기하자면, 주인공은 어쩐지 약간 어리바리 하게 느껴지는 캐릭터였다.

뿐만 아니라 중세시대가 배경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세시대하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장언함과 근엄한 분위기보다는

이 모든 것을 해학과 풍자로 담아낸다는 점도 특이하다.

이 책의 홍보문구에서도 '해학과 풍자'가 잘 담겨있는 작품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한 만큼 <아서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에서는 그 동안 마크 트웨인의 해학과 풍자가 쏟아져 나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단순히 이 책을 재미있는 풍자와 해학이 담겨있다고 단정 짓기에는 의외로 담아내는 것이 많다.

물론 얼핏 보면 당시 상상하기 힘든 스토리와 풍자 및 해학으로 주목을 이끄는 것 같지만, 실상 들여다 보게 된 이 책에서는

그 외에도 당시 미국의 문제를 날카롭게 써내려갔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19세기에는 미국의 문화(문학도 물론 포함되는)가 영국과 같은 유럽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에 세계로 부터 인정을 받기란 어려웠다.

이에 대해 마크 트웨인은 자신의 개성을 살려 날카롭게 숨은 뜻을 감추고 '해학과 풍자'로 뜻을 담아낸 작품이 아닐까 한다.

 

 

  <아서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의 진정한 재미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알게되었을때 진정으로 찾아오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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