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하루 그림 - 그림으로 문을 여는 오늘, 그림 한 점의 위로와 격려
선동기 지음 / 아트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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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봄은 나를 설레게 만든다. 봄이 뭐라고 나를 설레게 하는지 새벽에 글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봄날의 나는 책 표지의 아이들만큼이나 기분 좋게 들떠 있고 벚꽃나무를 끼고 걷기위해 부러 먼 길을 돌아갈 만큼 여유가 넘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기분 그대로 가능하다면 그림의 아이들처럼 맨발로 걷는 것도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만 아니라면 말이다.)

매일이 두근두근하는, 그러나 아무것도 아니고 때로는 더 지치는 봄 날.
봄날의 로망과도 같이 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지는 나무아래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 하에 달디 단 책을 찾고 있던 내게 한 책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이 책이 눈에 들어왔고, 두 번째로는 <나를 위한 하루 그림>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왔다. 세 번째로는 '그림 한 점의 위로와 격려'라는 문구가 뇌리에 박히면서 마지막으로 이 책을 꼭 손에 넣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을 출발하는 것은 봄과 같다. 눈을 뜨는 것으로 시작하는 '하루' 맞이는 설레지만 가끔 시작부터가 울적한 날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나를 위한 위로와 격려'라는 문구가 참 재미있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그 동안 나 자신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주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일을 더디게 진행하고 있는 나를 질책했고 해야 할 일을 미루는 나를 꾸짖기만 했었지 그 흔한 수고했어라는 말 한마디조차 내게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특별한 2012년을 위해 나를 격려해주기로 마음먹고 <나를 위한 하루 그림>을 집어 들었다. 계절 별로 나누어 그림과 글이 한 면씩 배치되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조금 더 세분화 하여 월(月)별로 나누어 이야기 하는 것도 좋았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내 그림실력은 그리 뛰어나지가 않다. (지난 날의 선생님말씀을 빌리자면 스케치만 보면 나름대로 괜찮고, 또 색감만 보자면 훌륭한데 어째서 이 둘을 조합하면 참 오묘한 그림이 탄생하니 이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이다라고 비웃을 정도로 그냥 못 그리는 솜씨이다.)

어쨌거나 못그리는 그림이지만 나름대로 그림에 대한 확고한 내 취향이 있어 그 편향대로 그림을 무수히도 보아왔었다. 강렬하고 조금은 난해하고 또 자신만의 철학이 가득 담긴 그림들을 보아오다가 이 책에 나오는 그림들을 보고 참 재미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기도 했었다. 낯익은 화가들도 있고 낯선 화가들도 있었지만 다 들 어쩜 이리도 소박하게 그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모두 소박하고 정겨웠다. 마치 시골의 된장국처럼 구수하고 폐교의 벽화를 바라보는 느낌이 묻어난다고 하면 느낌이 전해지려나 모르겠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림들만 주르륵 모아놓아 두었으니, 이러한 그림들을 그 동안 보아오지 않은 나도 책을 보는 내내 이유 없이 마음이 편해지고 스륵 웃게 되는 봄 날 같은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참 재미있지 않은가?
그 동안의 내 취향과 분명 다른 소박한 그림들만 모아두었는데 이것들을 보며 피실피실 웃고 있는 나라니.

 

 

p66

봄이면 마당에 꽃을 심습니다. 매년 심는 꽃이 조금씩 다르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양'으로 심는다는 것이죠.

무리 지어 피는 모습들이 보기 좋거든요.

간혹 홀로 피어 있는 꽃들에게서 당당함이나 고고함을 볼 때도 있지만 혼자보다는 둘이나 셋, 그리고 이렇게 비슷한 키 높이로,

무더기로 피어 있는 모습이 저는 더 좋습니다. 특히 봄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 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함께 피어나는 모습만큼 웃음 짓게 하는 것도 많지 않거든요.

 

 

  <나를 위한 하루 그림>은 말 그대로 그림으로 나를 위로해주고 또 때로는 격려해준다고 하지만, 실상 이 책에는 그 흔한 당신 힘내세요! 오늘 하루 파이팅! 같은 문구는 발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한 점과 더해 그림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구어체로 전해주는 활자들을 보고 그냥 마음이 따뜻해진다. 꼭 이유를 꼽자면 그냥 소박하고 그만큼 소박하고 그래서 또 소박하고 소박하기에 마음이 따듯해지고 위안을 받게 되는게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해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것을 쫓아가는 현대인이라고는 하지만, 누구나 한켠에는 고향이 시골이든 시골이 아니든 된장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던 그 것들과 상관없이 소박한 것을 품어두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소박하고 수수함의 절정을 이룬 책이라 구어체로 전해오는 활자들마저 정겹고 마치 낮은 저음의 사내가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 난다.

적당히 좋은 글과 적당히 아름다운 그림들과 오랫 동안 함께이고 싶어 조금 더디게 아껴 읽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봄을 이 책과 함께 더 만끽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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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한의 취업 적성검사 불패노트
이시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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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맘때 쯤이면 졸업시즌과 맞물려 기업들의 공채소식들이 속속히 날아든다. 비단 머나먼 일이 아닐까 하던 시절도 다 지나가고 어느 덧 나에게도 가까워져오면서 조금은 긴장도 되고 걱정도 되었다. 대기업들의 공채소식에 많은 이들이 지원했으리라 생각된다. 또 그 많은 이들 중 나도 한명에 포함된다. 떨리는 마음으로 지난 날의 공부했던 나를 보이고 과연 어떠한 평을 받게 될지 두려움이 크다. 아마 이번 시즌에 입사지원서 및 자기소개서를 낸 이들은 나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내가 공부한 것을 평가받고 나의 가치를 알아봐주고 하는 기업과의 만남을 조우하기 이전에 문제가 하나 있다. 대부분의 이들(나를 포함하여)이 원하는 흔히 말하는 '잘나가는' 기업들은 자기소개서와 졸업증명서는 기본으로 하고 한가지를 더 요구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는 인재는 바로 우리 회사의 시험에서 무사 통과를 해내는 사람을 거르는 것, 바로 인적성검사이다. 인적성검사하면 중고등학교때 치루었던 대국민적인 아주 기초적인 시험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취직에 걱정 없던 시절의 나 또한 그리 쉽게만 생각하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시험은 쉽게 볼 것 이 못된다.

내노라하는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를 찾고, 원치않는 인재는 거르고자 하여 만든 시험인데 어디 쉬울수가 있으랴.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여 문제를 비꼬고 문제를 간파하고 답을 찾는 사고력과 이해력, 순발력 등 다방면으로 우수한 인재만이 통과할 수 있도록 많은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한 문제들인데 말이다. 따라서 시중에서는 이러한 기업들을 타깃으로 하여 각 기업마다 문제집이 출판되고 있다.

 

 

  문제집을 구입하여 풀어보고 시험치면 되지 않겠냐는 아주 간단한 답을 이야기하면서 걱정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도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말은 정답이다. 만약 당신이 엄청나게 부유한 집안의 자녀라면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그냥저냥 평범한 가정의 자녀인데다가 용돈을 받아서 그냥저냥 생활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내가 지원한 기업마다 각각의 책을 구입하기에는 배보다 배꼽이 큰 격으로 돈이 많이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비단 나에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 지원서를 낸 이라면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기업에 여러 지원서를 넣고 시험치는 날만을 기다리는 것인데, 기업마다 개별 문제집을 사서 풀어보자니 시간도 없고 돈도 부족하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취업준비생(취준생)이 아닌 발등에 불이 떨어져 급히 취준생으로 변신한 나에게는 한가지 통합문제집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지금 풀고 있는 이 문제집이다.

다양한 기업들을 통합하여 문제를 제시해두어 한 권으로 여러마리의 기업들을 잡는다는 책의 목표답게 내용도 알뜰차서 공부하기 편리했다.

먼저 이 책으로 공부하기전에는 사실 걱정 아닌 걱정도 없지 않았다. 과연 통합 한 권으로 모든 기업들을 노릴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걱정말이다. 그래서 서점을 직접 찾아가 각 기업에 맞게 문제집을 펼쳐 놓고 보면 각각의 기업에서 특히 신경쓰는 부분도 있지만 통합되는 부분도 적지 않게 많았다. 이 부분에 대한 시간절약을 할 수 있는 것이 이번 문제집의 장점이다.

 

 

  즉, 통합 문제집인 , <이시한의 취업적성검사 불패노트>를 통해 시간절약을 해둔 뒤 기업에서 요구되는 특별부분만 공략하자는것이 이번 계획으로 잡고 한창 실행중이다. 이렇게만 부지런히 노력한다면 아마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오늘도 공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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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병원미생물학 - 원색도감, 4판
이건섭 외 지음 / 고려의학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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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부분 총론에도 그림과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앞뒤로 움직여야 되네요. 그래도 고려의학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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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창녀다
이상우 감독, 권범택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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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엄마는 창녀다>는 제목만으로도 파격적이다. 그 동안 모든 엄마를 숭고하고 희생의 대명사로 여기던 인식을 싸그리 무너트리고 굴러다니는 종이조각보다 못한 싸구려로 만들어버리는 제목이다. 관객의 심리를 톡톡히 건드리고 깊은 추악함까지 끌고 들어가는 영화는 제목만큼이나 시놉시도 끝을 달리는 영화이다.  그러나 영화를 다보고 나면 엄마는 창녀가 아니였다로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영화는 에이즈에 걸린 노총각 상우, 그리고 몸이 불편한 엄마의 삶을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삶을 꾸린 아버지와 그에게 딸린 교회광신도로 나오는 새로운 처, 방황하는 희수, 히키코모리 희철과 사촌, 혹은 그냥 게이소년으로 나오는 남자한명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어쩐지 주인공만 들어도 '역시나 그렇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지만, 이들은 왜 이렇게 밑바닥에서 구질구질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영화가 아닐까 한다.

 

새로운 삶을 꾸린 아버지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맞이한 상우 모자는 서울 변두리 오두막이라고 말하기도 뭣 한 정말 초라하고 쓰러져가는 그 곳에서 상우가 포주가 되고 엄마가 창녀가 된다. 시간당 9900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면서 손님을 맞이하고 게시하는데, 손님이라고 해봐야 지체장애우 혹은 내일모레가 걱정되는 노인, 풀 곳없는 군인과 같은 사람들 뿐이다. 파격적인 돈을 받으며 엄마는 창녀노릇을 하고, 그 돈으로 모자는 삶을 영위한다. 고기를 사기도 하고 책을 사기도 하며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렇다고해서 아들 상우가 엄마를 하찮게 여기거나 벌레취급하듯 대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상우는 자신이 에이즈란 것에 대해 그리고 엄마가 창녀노릇을 한다는 것에 대해 강박증세를 보이기도 하며 또 세상과 유일한 끈인 엄마를 계속적으로 돌보며,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하고자 노력하는 인물로 나온다. 즉, 상우에게서 창녀엄마는 에이즈에 걸린 자신을 대신해서 몸이 불편한 엄마가 창녀노릇을 하여 돈을 버는 안타까운 존재이고 아버지로부터 버려진 아픔을 보듬고 세상과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끈인 것이다.   

 

 

 

 

  새로운 살림을 꾸린 상우의 아버지는 어딘가 정상적이지 않다. 영화에서는 상우의 모와 어떻게 이별을 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은 나와 있지는 않지만, 새로운 집의 아들인 히키코모리 희철을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로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며 이는 상우가 아버지를 증오하는 이유도 눈에 보이는 듯 하다. 

히키코모리 희철은 집에서도 가족 그 누구와도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다. 그런 희철은 아버지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었고 그는 가족들이 없을 때 희철을 무자비 하게 탐한다. 그 결과 마지막에서는 희철이 자살하기도 하는 결과를 낳는다.

 

한편 어쨌거나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는 상우에게 엄마 피 빨아먹고사는 못난 놈이라고 욕을 하지만, 상우는 오히려 그에게 차가운 냉소를 흘리며 희수와 새로운 가정에 충실하라는 충고만 남길 뿐이다.  

그도 그럴것이 그의 새로운 가족에 포함된 방황하는 희수는 상우를 좋아하며 쫓아다니고 급기야 한 번 자고 싶다고 말는가하면, 식물인간인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새로운 아버지(즉, 상우의 아버지)는 증오하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창녀다>에서 진짜 불행 혹은 끝의 시작은 상우의 엄마가 군인으로 부터 강간당하는 것과 창우가 게이소년에게 강간을 당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창녀가 강간이라니 조금 아이러니 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창우는 엄마를 창녀 이면서도 창녀가 아닌 것 처럼 대하기 때문에 군인들의 반발심을 자극하였고 그 결과 엄마는 강간을 당한다. 상우는 지금 자신들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찰나 엄마가 납치되면서 영화는 조금씩 결말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엄마는 창녀다>를 검색하면 결말에 대해 어떻게 해석해야 될 지 많은 물음이 올라온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나의 견해는 이렇게 내리고 싶다.

이는 결말에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므로 궁금하다면, 더보기 부분을 클릭하였으면 한다.

 

 

접힌 부분 펼치기 ▼

아버지의 지금 처는 광신도다. 그녀는 어째서인지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전 남편이 죽어바라기를 바라고 있고 가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상우 모자에게 교회찬가를 부르는 청년을 보내어 그들의 삶을 엿보기도 한다. 마침 두 사람이 현재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상우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그들은 엄마를 납치했다. 상우는 엄마를 찾아 샅샅이 헤매이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결국 아버지에게 까지 도움을 청하지만, 새로운 아내와 고기를 먹으며 상우를 외면한다. 상우는 아버지를 저주하고 자신이 더러운 피, 에이즈에 감염되어 더럽기도 하지만 그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피라 더럽기도 한 그것을 주사기로 빼내어 며칠 후 아버지의 집으로 찾아갔고 그가 보게 된 것은 자신의 처지와 전혀 상반된 것들이었을 뿐이다.

두 사람은 '장애인을 가두어 두고 끝내 죽음으로 닿게 했다'라는 뉴스, 상우 엄마에 관한 뉴스를 뒤로 하며 결혼 1주년과 전 남편의 죽음, 상우엄마의 죽음을 축배하며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결국 아버지의 목에 자신이 혈액이 담긴 주사를 주입함으로써 상우의 복수는 막을 내린다.

 

펼친 부분 접기 ▲

 

  

  영화를 보는 동안 제목이 주는 자극적인 요소라던가, 사회에서 불쾌하기 그지 없는 이야기들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보단 이 영화를 만들었을 감독이 오히려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평범할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최악의 조건을 하나씩 달아줌으로써 그들은 저 밑바닥까지 내려 앉았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듣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을 주고 있지만, 나름의 사정이 있고 그 삶이 있다.

엄마라는 숭고한 이미지에 검고 붉게 창녀라는 이미지를 덧 씌웠지만, 엄마는 상우를 위해 우리가 익히아는 이미지데로 희생했다.

결국,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은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라는 존재는 끌어내리고 밑바닥에 있어도 희생을 하며, 암울하기 그지 없는 삶속에서도 의지하고 부둥켜 안는 두 모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 '상우'가 실제 영화감독인 만큼, 아마 이 영화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시리즈로 '아버지는 개다', '나는 쓰레기다'를 만들려고 하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불편한 제목으로 또 다른 삶 속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같은 시리즈인 두 영화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 또 어떠한 시선으로 어떻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기대된다.

 

불편한 영화가 아닌 감독의 묵직한 메시지가 담긴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http://pariskitty.blog.me@은근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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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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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 <우체국>을 읽었다. 적지 않을 시간을 <우체국> 읽는 것에 투자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책을 다 읽고 책상 위에 올려둔 책은 지금 내 옆에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찰스 부코스키의 삶을 조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확연한 굴곡과 함께 깊게 파인 주름, 툭 튀어나온 턱, 게슴츠레한 눈. 실제로 그는 전업 작가가 되기 전 하급노동자로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였고 우연히 우체국에 취직하게 되어 10년 동안 근무하였던 전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 글은 자전적인 느낌을 적지 않게 받을 수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몇몇 인물은 실제 인물을 묘사했지만, 절대 사실은 아니다. 이에 대하여 책을 들어서기 전 찰스 부코스키는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허구이며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 라고

 

 

  앞서 언급했듯이 <우체국>을 읽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을 소요했다. 내가 보통 책을 읽는 방법은 한권을 시작하였으면 나와 맞지 않더라도 끝까지 읽는데, 이 책이 딱 그러했다. 보통 소설에서 보기 어려운 운문형의 압축된 문장이라던가, 기승전결 없이 매일이 똑같이 그려지고 있는 나날들은 내가 과연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느 초등학생의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읽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언어들은 이 책을 과연 19세 딱지 없이 청소년들이 읽게 해도 좋을까? 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이쯤 되면 알겠지만, 모두가 추앙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어째서 이 따위 글이 추앙받을 수 있냐고 말했었다. 매번 책을 피면서 또 지겨운 치나스키(우체국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삶속으로 들어가야 하냐고 절규했었다. 그러나 참 묘하게도 찰스 부코스키의 책을 읽다보면 어느 새 집중하고 있다.

치나스키의 삶은 단 세 가지로 정리된다. 여자와 술 그리고 경마. 치나스키는 술을 마시고 여자와 섹스하며 그리고 찌든 몸을 이끌고 우체국으로 간다. 우체국에서는 대충대충 일하면서 적당히 요령피우다가 벌게 된 돈으로는 다시 경마를 하고 술을 사먹는다. 순환되는 삶 속에서 치나스키는 어떠한 소속도 원치 않고 노동에서도 해방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을 꿈꾼다.

 

 

  여기서 치나스키가 왜! 어떠한 소속도 원치 않고 노동에서도 해방되고 싶어 했는가가 중요하다.

<우체국>은 1952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치나스키가 근무하는 우체국들은 한결같이 반복적인 노동을 요구한다. 가장 하급계층으로 취직 하게 된 그에게는 특별히 요구하는 것은 없으나 매일 과도하게 몸을 쓰는 반복적인 노동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생활의 달인’과 같은 단순반복 노동의 달인들이 나와서 재미있게 일하는 것을 보고 괜찮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이라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당신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같은 볼펜 뚜껑 짝을 지어주는 일을 한다고. 처음에는 이보다 쉬운 일이 없을 거라며 신날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같은 일을 하자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당신을 다독일 것 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퇴근까지 시간 내에 할당량을 해야 돼서 마음이 조급해져오기 시작했다. 또 쉬운 일이지만 계속 반복되는 일은 당신의 인내심을 시험할 것이다. 드디어 하루 12시간의 노동이 끝났다. 당신의 손에 들어오는 건 고작 만원이 되지 않는 얼마였다. 얼마나 허탈한가. 이 허탈함의 연속이 당신에게 펼쳐져 있다고 생각해보라. 의미도 없이 오직 목적과 절차만을 따라야 하며 개인의 특성은 모조리 집단이라는 이름하에 말살된다. 오로지 규칙과 결과만을 준수하며 계급을 철저하게 분리하여 하층계급을 비웃는 노동에 대하여 치나스키는 저항하는 인물로 나온다. 다만, 그는 저항가가 아닌 집단노동에서 요구하는 삶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말이다.

 

 

  <우체국>이 이렇게 심각한 책은 아니다. 저속한 욕들이 한 페이지 내에서도 몇 번이나 나오고 섹스 하는 장면이 묘사기도 한다. 그러나 p.50에서 시작되는 착한 아저씨 G.G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푹 빠지게 되었다. 헨리 치나스키가 그저 색과 유흥만 즐기는 멍청이 같은 놈이라고 생각하던 내가 그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그를 이해하려고 했던 지점 말이다. 그가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이 책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금 깨달아 가면서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반노동에 대한 책이라고 설명했지만, 나는 이 책이 그 보다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싶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노동에 대한 운동치고는 그가 바꾸어 놓은 것도 또 자신이 변한 것도 혹은 대체물을 마련한 것도 없지 않은가? 그저 현실에 수용되고 싶지 않은 자유로운 남자의 이야기 이었다고 생각된다.

 

 

  기어코 <우체국>을 다 읽게 되었을 때 마지막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p.241 아침이 되자 아침이었고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아마 소설을 쓸 것 같군, 생각했다.
그래서 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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