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러리엄
로렌 올리버 지음, 조우형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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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 읽고 싶었던 책이다.

   

 

  <딜러리엄>은 읽어야지 해놓고서 연이 닿지 않아 한 번 놓치고 다시 만나게 된 책이라 이 책을 손에 쥐고 있을 때면 늘 설레었고 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책 편식을 하지말자고 늘 다짐하지만 잘 읽지 않는 장르 중에 가장 대표되는 것이 로맨스소설이다. 어쩐지 현실감이 없다는 생각에 잘 읽지 않는다. 비슷한 맥락으로 판타지 소설도 잘 읽지 않는다. 판타지 소설의 경우 한 번 빠지면 그 책을 완독하기까지는 시간문제이지만 문제는 그 시작하기가 참 어렵다는 점이다. <딜러리엄>은 판타지로맨스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꼭 읽고 싶었던 이유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신비로운 소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감정과 행동을 철저히 감시 및 컨트롤하는 근 미래의 통제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딜러리엄>은 정말 놀라울 만큼 신기했다.

인간의 모든 감정과 행동을 감시한다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일지도 모르지만 그 소재가 한층 더 확고한 규칙과 규율을 만들어내어 만 18세가 된 사람은 모두 평가받고 약물치료를 받으며 평가점수에 따라 자기 연령, 신분 등에 걸맞은 짝을 부여받아 결혼하고 정해진 직업에 종사해야 한다고 한다. 자녀의 수도 평가기관에서 정해주고 심지어 웃고 울고 애정 표현하는 모든 감정마저도 엄격하게 금지되어있으며 예술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춤과 노래도 금지이다. 

 

 

 한편으로는 정말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고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저 정해진대로 주어진대로 삶을 살아가면 되니 우리 사회에서 부딪힌 각종 사회적 문제 따위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정말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뒤따른 감정표현과 예술 활동마저 금지된다는 말에서 깨닫게 되었다. 이 삶은 사람으로써의 삶이 아니라 그저 감정이 없는 로봇의 삶일 뿐이라고.

더군다나 <딜러리엄>의 배경이 되는 사회는 사랑이라는 개념자체가 없는 즉, 병으로 취급받는 금기어라고 하니 더욱 로봇이 되는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인류가 시작하는 순간 함께 시작되었고 이는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이상 계속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찌해서 이 감정을 조절하고 컨트롤 하면서 막는 것인지 과연 이러한 사회 속에 살게 되는 이들은 행복한지 궁금해졌다.

 

<딜러리엄>의 주인공은 레나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랑을 했기 때문에 그녀는 외로웠다. 심지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로 인해 레나는 늘 두려웠고 얼른 만 18세가 되어 치료를 받고 사회에 편입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소녀이다. 그녀의 걱정과 미래에 대한 다짐은 한 소년을 만나면서 무너진다. 그 소년은 레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 동안 이 길만이 확실하고 진리라고 생각했던 레나에게 그 것은 신세계였고 기존의 세계의 배신이었다.

    

 

  저자 로렌 올리버는 이 책을 단순히 판타지 로맨스로 독특한 소재에 관한 미래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사회는 극도로 억압된 통제사회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생생한 초상이다. 어쩐지 우리사회와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강제로 사랑을 금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회가 하나하나 억압을 한다. 이 공부를 받아야 하며 사회에 나아가 흔한 말로 무시당하지 않고 번듯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영어공부를 반드시 해야 되고 끊임없이 임무가 주어지고 우리는 긴장 속에서 사회에 낙오되는 일이 없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억압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을 억압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사랑으로부터 억압을 한다. 결국 <딜러리엄>의 미래사회배경은 우리 현실인 셈이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달콤한 첫맛으로, 하지만 공포를 동반한 채 찾아온다. 공포의 정체는 아마도 변화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 사랑을 원한다면 공포를 감수하고도 변화를 이루어낼 것이다. 금지된 것에도 손을 뻗어내는 것이 사람이다. 태초에 아담과 이브도 그러하지 않았는가?

결국 작가는 이 모든 것은 젊은이들의 특권으로 돌려둔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들이 어리단 것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자유를 택하여 싸우고 부딪혀 볼 것인지 주어진대로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어린 주인공인 소녀와 소년이지 늙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니다.

 

사랑을 하고 싶은 젊은이는 선택을 수 없이 한다. 그 선택을 잊지 말고 우리 삶속에서도 적용시키길 간절히 바라는 저자의 소망이 묻어나오는 것만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시 <딜러리엄>을 읽기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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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안네 - 60년 만에 발견한 안네 프랑크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
베르테 메이에르 지음, 문신원 옮김 / 이덴슬리벨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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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안네의 일기>는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필독서 중에 하나였다. 지금도 그 도서가 필독서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그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당시 한 번 읽고 난 후 <굿바이, 안네>를 보기 전 까지는 한동안 잊고 살아왔다. 이제는 <안네의 일기>마저도 그 기억이 가물가물해져서 핵심적인 내용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좋은 책은 두고두고 여러 번 읽어서 때로는 잔소리를 듣기도 하는데 <안네의 일기>는 그 당시에 읽었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았다. <안네의 일기>가 내 기준에서 좋은 책이 아니라서가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 안네의 일기를 읽을 때는 충격이 꽤 컸다. 어린마음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고 유태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억압을 견뎌내며 때로는 내가 세상에 없는 것 마냥 숨어 살아야 하는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또 그 소녀가 나와 비슷한 나이의 어린 소녀라는 사실이 더 못 견디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 어린 시절 <안네의 일기>내게 꽤 충격이었는지 세계 2차 대전과 관련된 책을 보거나 혹은 수용소의 삶을 담은 책을 읽으면 안네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문득문득 생각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는 그 시대의 이야기책인 <굿바이, 안네>도 관심이 안갈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안네로 인해 나는 전쟁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런 안네는 내 기억 속에서 참 괴로웠을지 모른다. 이제는 안네와 정말로 작별인사를 하고 기억 속에서 편히 놓아주고 싶다. 서로가 편안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읽고 깨닫게 된 것이지만 유의할 점은 이 책은 내가 앞서 안네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 한 것과 달리 안네와 동시대에 짧은 시간을 공유했던 저자 베르테 메이에르의 이야기이다.

 

그럼 왜 이 책에서 충분히 안네의 이야기로 착각할 수 있는 ‘60년 만에 발견한 안네 프랑크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라고 써두었는가가 조금 궁금해진다.

개인적인 의견은 이러하다. 안네와 베르테는 그 당시 이웃집에서 살았다는 추억이 있으며 수용소에는 짧은 시간 조우하였다. 이것으로 안네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밝히기는 충분치 않다. 그러나 베르테는 또 다른 안네이기도 하다. 안네와 비슷한 나이로 수용소의 삶을 견뎌내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의미하는 안네는 2 안네인 베르테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독자들은 이를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로 수용소 겪은 유태인들은 그 속의 삶이 어찌나 처참하였는지 우리에게 책을 많이 남겨두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는 드물다. <안네의 일기>가 고통스런 삶속에서도 긍정의 에너지로 상황을 차분히 파악한 것과 더불어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점이다.

 

베르테의 이야기도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다. 적당히 중산층에서 여유롭게 자랐던 그녀이지만 유태인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고생이 시작된다. 어린나이에 들어갔던 수용소에서 먹지 못해 커다란 솥에 들어가 어떻게든 식량을 조금이라도 구해보려고 작은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고 급기야 살아남은 자들이 죽은 자의 간을 빼 먹으며 삶을 연명해나가는 것도 보았다. 그 결과 그녀는 전쟁이 끝난 지금도 먹을 것이 여유롭지 않을까봐 걱정하고 냉장고에는 항상 먹거리를 잔뜩 채워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현재 직업은 푸드 저널리스트이지만 말이다.

 

베르테의 이야기는 시간의 순서대로 흐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전쟁을 겪은 이들이 그렇지만 무의식적으로 밀어내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베르테 역시 그러했고 기억이 드문드문 끊기는가 하면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베르테의 이야기는 그 동안 들어왔던 다른 이야기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그녀의 생각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과 같이 끊기는 부분도 드러나 있고 어린 시절의 생각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겪지 않은 내가 이 글을 통해 다시 알게 되는 공포는 그들이 겪었던 고통의 절반도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안전한 집과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대에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노인들은 그렇지 않다. 비단 세계 2차 대전을 겪은 이들 만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쟁을 겪은 이들 더 나아가서는 전쟁으로 인해 참혹한 고문을 당했던 이들은 그 이후의 삶에서 더 힘든 생활을 보낸다.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각종 증후군에 시달리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

베르테의 이야기는 현재 그녀의 삶과 과거 그녀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 그녀가 겪고 있는 아픔을 이야기 해준다. 이 글은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의 아픔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다.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안네 외에 또 다른 어린이를 만나고 싶다면 이 이야기를 읽었으면 좋겠다. 안네와 같은 시간을 숨 쉬었던 베르테는 더 많은 것을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또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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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 1950년, 받지 못한 편지들
이흥환 엮음 / 삼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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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 쓰는 걸 참 좋아한다. 편지에는 수줍은 내 마음을 표현 할 수도 있고 서운했던 점을 이야기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하는 것보다 조금이나마 더 정리해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편지쓰기가 참 좋았다. 반대로 편지 받는 것도 참 좋았다. 글 쓸 때와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나를 향해 설렘을 표시하면 나도 덩달아 설레어지는 것이 좋았고 나에게 서운했던 점을 이야기한다면 정말로 미안해졌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편지는 참 묘한 힘이 있어 그냥 "사랑한다."라고 뱉었을 때는 담백한 맛이 나는데 편지지에 꼭꼭 눌러 적은 글자로 보는 "사랑한다."는 내 가슴을 가득 채우는 무언가가 벅차오르는 무언가가 있어 편지에 관련된 이 책이 참 반가웠다.

    

 

  그러나 그 보다 먼저 <조선인민군우편함 4606>라는 책 제목을 받아보고 덜컥 겁이 났다.

아마 내가 울음이 많은 탓이라 그럴 것이다. ‘조선인민군이라는 단어에서 짐작 할 수 있듯이

말하기 힘든 씁쓸함을 담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해 전해지지 못한 편지들의 애절한 내용을 읽다보면 절로 울컥해질 것 만 같았다.

    

 

  이 책에 소개된 편지의 출처에 대하여 저자 이흥환은 미국국립문서보관소의 열람실 문서상자 1138번과 1139번에 들어있다고 한다. 그는 출처에 이어 이 편지들이 미국에 들어가게 된 이유까지 설명하였는데, 한국전 당시 미군들이 북한의 문서들을 노획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에서 북으로 전해지는 편지도 있고 남에서 북으로 전해지는 편지도 있다. 어색한 단어들과 낯선 비문과 오타들은 그 당시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이 수많은 편지들은 세월이 흘러 종이들은 바스라질 것처럼 바삭해지기도 하고 누렇게 변색되기도 하였다. 연필로 쓴 글씨들은 세월의 흘러감을 증명이라도 흐릿해지고 잉크로 쓴 것들은 번지게 되었다. 종이와 글 쓴 도구가 제 각각이듯 사연도 제 각각이다. 아들내외 부부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사연을 제대로 이야기해보라고 엄격히 말을 전하는 어머니의 서도 있고 전쟁 통에 은근히 남편에 대한 사랑을 전하는 편지도 있다. 또 자신을 걱정 말라는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도 있다.

    

 

  제 각각의 편지를 수 없이 많이 읽고 있으려니 어쩐지 가슴 한켠이 찡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전해지지 못한 편지인 것은 둘째 치고 하나같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사랑과 애정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휘갈겨 쓴 편지이더라도 또 사내답게 쓴 글일지라도 은근히 묻어있는 사랑과 애정은 가늠할 수 없으리란 만큼 넘친다.  

 

 P164

대개의 전쟁사가 전투 기록, 전략전술사로만 기술된 군사이거나 전쟁의 배경, 원인에만 치중한 정치사이다. 이런 기록은 생명력이 없다.

생명력이 없다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며, 생명력이 없는 기록은 그래서 잊히기 쉽다

    

 

  그렇다. 이미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전투기록과 어떻게 전략을 짜서 당시 한국전을 치렀는지는 익히 알고 있다. 이 객관적인 사실들은 원인-과정-결과에 치중한 정치사일 뿐이다. 속속들이 당시 국민들의 삶과 생각은 들어있지 않은 지극히 객관적인 문서이다. 물론 이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생명력이 깃든 편지는 조금 다르다. 전쟁의 긴박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당시 삶의 궁핍함과 고단함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공식화되어있는 자료보다 이러한 글이 더 가슴 아픈 까닭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당신네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는 것.

 

따라서 이 편지 한 장, 한 장에는 영혼들이 깃든 것 같다. 새 책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도 오래된 편지의 냄새 것일 것만 같다. 저자 이흥환과 출판사에서는 편지글을 인쇄활자로 바로 옮기는 데에 그치지 않고 당시 편지를 깨끗하게 스캔하여 보여준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깔끔하게 옮겨 쓴 원문을 두고도 꼭 스캔 된 편지를 먼저 어렵사리 읽어 내렸다. 아마 그들의 목소리가 담겨있기 때문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하여 역사공부를 한다거나 그 시대의 상황을 알고 싶어 한다면 다소 무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저자가 먼저 이야기 한 것처럼 후손들에게 한 자락의 기억을 돕고 싶고 또 편지를 주고받았던 그네들이 아직 있다면 이 편지를 찾아가 그 기억들을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젊은이에게는 전쟁으로 인해 우리가 변해가는 모습과 삶에 묻어나는 고단함, 전쟁이 남기고 간 것들을 보여줄 것이고, 전쟁 통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그 시대의 아픔이 느껴져 가슴한 쪽이 먹먹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역사 속에 빠질 수 없는 한국전의 아픔을 읽는 것이 참 아프다는 것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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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55
파트리크 라페르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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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 제목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느낌을 주는 책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역시 민음사에서 선보이는 모던 클래식시리즈 중 하나로 선택되는 이유가 있나보다. 제목하나만으로도 많은 느낌을 전달해주는 책이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민음사라는 브랜드를 참 좋아한다. 내가 읽은 많은 고전시리즈를 민음사를 통해서 읽었고 또 그 것을 바탕으로 독서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다시 <인생은 짧고 욕망이 없다>로 돌아가 이야기를 하자면 이 책제목에서부터 나는 많은 공감을 했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내 앞에 주어진 시간은 많으나 이 시간을 100%활용하기 어려우므로 인생은 짧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과 함께 늙어가는 것에 반비례하게 하고 싶은 것과 욕망은 끊임없이 샘솟는다. 제목만으로도 공감돼서 책을 펼치기도 전에 울컥하였다.

    

 

책의 이력이 참 특이하다.  

 

2010년 프랑스 페미나 상 수상작.  

이 상은 남성권력위주의 콩쿠르 상에 대적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상으로 심사위원 12명도 모두 여성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을 수여받은 작가는 남성. 얼마나 황당하고 재미있는지 모른다. 심사위원들은 페미나상을 작가 파트리크 라페르에게 주기 전까지 수 없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혹시 그에게 주지 않기 위해 하나라도 결점을 찾아내기 위하여 노력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다소 우스운 생각도 해본다. 어쨌거나 이 모든 경우의 수를 무시하고 페미나상을 남성 작가인 파트리크 라페르에게 주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펼쳐서 본격적으로 읽기시작하면서 직감적으로 정말로 오랜만에 을 읽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 읽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블레리오라는 남성에 대해 짧은 소개와 함께 그의 갈등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정확한 이유도 모르고 숨 막히도록 가쁘게 나를 조여 왔다. 아마 섬세하게 한 사람의 갈등을 시작부터 표현해내는 작가를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여주인공 노라와 그녀를 사랑하는 두 남자, 유부남인 루이와 능력 있는 머피 이 세 남녀의 사랑과 욕망을 다룬 이야기가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이다.

 

루이 블레리오는 아내와 또 다른 여자인 노라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사랑을 즐기며 온몸을 불태우는 정열을 맛본다. 단면적인 모습만 본다면 블레리오가 부도덕하기 때문에 손가락을 받아 마땅한 인물로 그려질지도 모른다. 흔히 하는 말로 어쨌거나 그가 노라를 사랑하는 것은 아내를 두고 해서는 안 될 짓인 불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째서 인지 책을 읽고 있노라면 블레리오를 손가락질 할 수 없다. 불륜을 하는 이들이 대게 하는 변명으로 뒤늦은 사랑이 지금 찾아왔고 이 사람만을 사랑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블레리오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그가 노라를 사랑하는 과정이 차라리 행복했더라면 그를 나쁘다고 이야기 했을 텐데 노라를 그에게 떠오르고 지는 태양과 같이 막을 수 없이 왔다가는 존재라 그의 욕망을 채워서 기쁘게도 해주었지만 괴롭게도 만들었기 때문이다.

 

노라의 또 다른 남자인 머피는 이성적이고 신중한 남자이다. 그는 욕망보다 진실한 그 무엇이 있다 믿으며 노라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기까지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노라를 완전히 소유할 수는 없었다. 루이보다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머피는 내가 생각하는 사랑관과는 다소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뱉은 욕망보다 진실한 그 무엇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노라를 향해 욕망을 보이고 있단 소리 아닌가? 더불어 블레리오가 낫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보다도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남자이기에 블레리오와 같이 겁 없이 사랑의 불구덩이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지 못하는 겁쟁이 같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머피는 내게 자신을 행동을 타당하게 만들 수 있는 테두리를 만들고 그 속에서 노라를 편하게 해주는 사랑을 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상반된 두 남자의 사이에서 노라는 사랑을 만끽한다. 사실 만끽이라는 표현을 해도 될까하는 의문이 든다. 앞서 두 남자의 이야기를 써놓은 것만 미루어보면 노라는 참 이기적이고 나쁜 여자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두 남자를 손에 쥐고 왔다 갔다 하며 잡을 수 없는 여자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롭게 사랑하는 것이 그녀의 방식일 뿐이다.

다만 비슷한 그녀의 사랑관과는 맞지 않는 두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블레리오의 욕망에 사로잡힌 사랑에 빠져 사랑을 하다가 그 사랑에 지칠 때쯤이면 조금은 안정되고 편안한 안식처 같은 머피의 품으로 떠난다. 악마 같은 그녀 때문에 두 남자는 상처받고 서서히 변해가는 두 남자로 인해 로라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상처를 받는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이라는 주제는 영원불멸한 주제이다. 사랑은 인류가 끝나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을 것이며 가난하든 부유하든 젊든 나이가 있든 상관없이 열정을 낳고 집착을 낳고 소유를 낳으며 이해와 기다림으로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파트리크 라페르의 <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에 등장하는 세 남녀는 결국 모두 상처를 받고 상실과 허탈감에 지쳐간다. 사랑하는 세 사람의 감정은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표현되어있다. 내가 사랑하는 방식에 따라 볼레리오가 될 수도 있고 머피가 될 수도 있으며 노라가 될 수도 있다. 확연히 다른 세 사람의 사랑방식은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이 미묘한 분위기의 아슬아슬한 감정마저도 사랑이라고 믿기 때문에 견뎌 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랑은 아름답다고 많이 표현하지만 실제로 사랑을 하면 아름답고 찬란한 날들보다는 힘들고 기다리고 우울해지는 날도 적지 않게 있다. 이 책은 사랑의 뒷면에 더 주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우중충하고 울적하지만 진짜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싶은 날, 그리고 비가 오는 날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그 때는 머피가 되어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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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사람공부 - 사람이 기적이 되는 순간 정진홍의 사람공부 3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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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참 많은 공부를 한다. 태어나기도 전부터 태교랍시고 한글을 알려주는가 하면 요즘은 몇 살 되지도 않는 아이에게 영어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학습지를 통해 학습을 강요한다. 이런 공부는 참 지긋지긋하게도 성인이 넘어서도 이어지며 때로는 한 평생을 공부하는데 삶을 소비하다가 간다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내가 살아가는 인생의 시간이 총 100이라면 약 70정도는 공부하는데 쓰이며 공부하는 것이 사람마다 같기도 혹은 다르기도 하다.

어쨌거나 우리는 모두 공부하는데 익숙해져서 수학처럼 정형화되어 공식이 있는 것이 참 쉽다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오늘 공부하려는 사람은 정형화된 공식도 없을 뿐만 아니라 도대체 어떻게 공부 해야 될지 방법부터 모르겠다. 영어가 어렵네 수학이 어렵네 혹은 경제학, 세포학이 어렵네 다양한 말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이 아닐까 한다. 

 

 

  사람은 기적이다.  

 

셀 수 없으리만큼 많은 수의 정자와 단 하나의 난자가 만나 수정을 통해 한 세포로 만들어 진 후 착상을 거쳐 모체 속에 한 생명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하나의 세포로 시작한 이 생명은 자라남과 동시에 수십 억 혹은 그 보다 더 많은 수의 세포를 구성하여 유기체로써 삶을 살아나간다. 놀랍고 경이로운 생명(사람)의 탄생은 한 사람을 기적으로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기적과 기적으로써 인연을 맺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 놀라움을 놀라움이고 사람이 기적이 되는 순간이라는 부제목은 다소 부담되었다. 사람은 기적이지만 기적을 만드는 힘이 나에게서 나와 기적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조금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어떻게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기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기적을 이루어낸 사람은 하나라도 특별한 면이 있어야 하고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정진홍의 사람공부>에서는 등장인물이 참 많다.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기도 쉽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만큼 많은 수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구로야나기 테츠코, 앙드레 김, 하춘화, 조앤 K. 롤링, 구스타프 클림트, 백남준과 같이 이미 귀에 익숙하게 들어본 이름도 많다. 반면에 이 사람은 누구야? 싶을 정도로 생소한 사람도 많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리센룽, 탄 벤 샤하르, 얼 쇼리스, 밀러드 풀러 부부이었다. 어쨌거나 이 많은 사람들의 인생 속에는 용기도 있었을 것이고 창의도 있었을 것이며 욕망도 있었을 것이다.

저자 정진홍은 이 인물들의 일생을 돌이켜 보며 그 속에 담겨있는 열정을 비슷한 사람들끼리 묶어 둠으로써 그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되고, 무엇을 생각하면 좋을지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다. 

 

 

  책을 읽으며 조금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우리가 익숙하게 습득하는 공부라는 것은 정답이 대게 정해져있다. 도덕마저도 정답이 정해져있어 5지선다형 문제에 익숙한 우리에게 정답이 없는 문제는 당황스럽다. 이미 답을 중요시하는데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공부란 것은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른 책들과 달리 저자 정진홍은 <정진홍의 사람공부>에 등장하는 인문들의 삶을 그려주고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결코 정답은 없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P30에는 이웃집 토토로라는 인기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구로야나기 테츠코가 토토로라는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었던 삶을 배경을 이야기 해준다. 이 글의 마지막은 아마도 이 모든 것은 그녀가 모범생이기보다는 모험생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요? 삶과 일상에서 크고 작은 모험이 기적을 만들 테니까요’라고 끝난다.

또 다른 예로는 P148에는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교육제도를 만들어 도입한 쇼리스의 삶이 그려진다. 마찬가지로 이 글의 끝에는 스스로의 사람됨을 상실해가게 만드는 이 혼돈의 시대 속에서 진정으로 잃지 말고 가야할 것이 무엇이며 나아가야할 방향이 어디인지를 일깨워주는 삶의 나침반 같은 사람 아니겠습니까?’로 얼 쇼리스의 삶을 마무리 한다.

결코 정답은 없다. 만약 저자 정진홍의 질문을 생각해보고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 답은 없으니 말이다. 매번 이렇게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물음표(?)가 참 많이 눈에 띈다.

    

 

  글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되면서 하나로 모이는 무언가가 있다. 바로 기적을 생산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특별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도 태어날 때는 나와 똑같았고 마지막도 비슷하게 마감할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단 하나 포인트를 놓치지 않아 그 차이로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 <정진홍의 사람공부>에 등장한다. 때로는 열정 속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 사람들을 바라보는 저자 정진홍의 시선을 느끼며 공감을 하기도 하고 의문을 가져보기도 한다. 답은 없지만 진정한 공부는 이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마무리 할 수 있는 뜻 깊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P7. 저자 서문 강영우 박사 이야기

‘Impossible(불가능한)’이란 단어에 점 하나를 찍으면 “I’m possbile(나는 할 수 있다)로 바뀌듯이

그는 삶의 숱한 고비고비마다 그냥 점이 아니라 땀방울과 핏방울을 찍어가며 기적 같은 삶의 길을 열어갔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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