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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 -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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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제동. 연예인 중에서 이 사람만큼이나 정치와 연관되어 많이 나오는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문제인이라고 판단되어질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 사람만큼이나 두루두루 사랑받는 연예인도 얼마없다. 누구 말대로 그는 정계에서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똑바라로 하라는 말이 그를 위해 있듯이 시원솔직하게 말해주는 그가 있어서 속내가 시원한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내가 김제동을 좋아하는 이유는 솔직하게 일침을 놓는 그의 정치적 면모때문은 아니다. 그냥 다양하고 때로는 뜻밖의 인맥을 자랑하는 그 사람들과 어우르고 생각을 주고 받는 이야기들이 참 좋다.

 

 <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는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만큼이나 다양한 인물들과 소통할 수 있고 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 더군다나 이번에 출간된 책에서는 목적에 대한 색깔이 분명해져서 연대화합을 위해 노력하는 인물들이 더 확실하게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은근히 묻어있는 김제동의 생각들도 엿볼 수 있었다.

 

 연대화합과 실천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시작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그리 무겁지 않다. 오히려 유쾌하고 재밌으며 간간히 입에 웃음을 달고 본다. 그러나 한번쯤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는 그런 이유로 많은 이들이 찾아 읽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실천을 위한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오피니언리더들의 주장과 생각들을 딱딱하고 무겁지 않게 풀어나간다. 정말로 내가 소통하는 느낌이 들고 인터뷰형식으로 서술된 본문은 그들이 진솔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김제동과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색들이 강하다. (김제동을 포함하여) 그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과 또 털어놓는 고민들에 대해서는 많이 놀라웠다. 개인적으로 이번 책에서는 가수 이효리에대해 다시보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 전까지 이효리를 가수의 이미지보다는 재기발랄한 여성쯤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재기발랄한 뒷 모습에 동물에 대해 책임지려는 모습과 자기자신의 심신을 위하여 (종교는 아니지만) 불교사상을 품으며 행하여 나누고 내가 발전 할 수 있는 것들에 노력하는 모습에 많이 놀랐다.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이렇다. 이게 이 책의 매력이다. 인물에 대해 새로운 모습을 보고 그들이 '나만 잘먹고 잘살면 되!' 라는 모습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우리 시대의 각 계층과 나누고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멀리서 떨어진 모습의 그들은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길로만 다닐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네와 소통하고 교감하게 만든다. 바로 이 부분을 이끌어내는것이 저자 김제동 그러니까 인터뷰이였고 말이다.

 

 ‘웃음의 기본적인 구조를 살펴보면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웃고 새로운 발상을 해냈을 때 웃습니다. 혁명이라는 게 그런 겁니다. 누구도 봄을 예상하지 못했을 때 이렇게 꽃을 땅 위로 밀어 올립니다. 꽃이 땅을 뚫고 나온 게 아니라 땅의 깊숙한 기운이 꽃을 밀어 올려주는 것이죠. 그래 아이고 내 새끼들 세상에 나올 때가 됐다, 이게 혁명 아닙니까. 꽃잎이 떨어지는 것도 혁명이고 낙엽이 지는 것도 혁명이죠. 그렇게 보면 웃음은 늘 혁명과 맞닿아 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지 않습니까. 고정돼 있는 것은 절대로 웃음을 줄 수 없습니다. 끝없이 변해야 되는 것입니다.’  <김제동 심층 인터뷰 중에서>


 

 책을 다 읽었고 덮었음에도 바라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군들 안그러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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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6-08 09:51   좋아요 0 | URL
리뷰 일찍 쓰셨네요.
자신이 묻고 싶은 것보다 상대가 말하고 싶은 걸 묻는다는 제동씨,
참 괜찮은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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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 박범신 논산일기
박범신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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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범신. 최근 들어 이 작가만큼 핫 한 작가가 있을까 싶다. 원래도 그는 활발한 작품을 써내왔고 소외된 이웃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있어 계속된 관심을 받아왔지만, 그 어떤 때 보다 최근 폭발적이고 다양한 연령층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작가 중 한명이 아닐까 한다. 그러한 그가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감성에세이를 이번에 선보이게 되었다. 고향 논산으로 내려가 SNS에 틈틈이 기록해둔 일기를 모아 사진과 함께 편집해 만든 이번 작품은 2011년 6월부터 2012년 2월까지 그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 수 있다.(하루의 3월도 들어있다.)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몰라도 사실 나는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박범신에 대해 주목한 것도 아니고 박범신의 에세이라는 점에 주목한 것도 아니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논산이었다. 내게 있어 논산은 지리적으로 가까울 수도 있고 멀 수도 있었다. 어찌되었건 마음만 먹으면 금방 도달하지만 마음을 먹지 않으면 멀기만 한 논산을 가본 적이 없었다. 뭐 이래저래 논산에 대해 듣기는 해보았어도 직접 가본적은 없으니 그 곳에 대해 기대하는 바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에 반하게 된 것에는 바로 논산을 담은 사진들이었다.

 

 노 작가인 박범신이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이 책을 가득 매우고 있는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박범신이 지난날의 자신을 돌아보는 곳이기도 하고 사랑을 열렬히 고백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논산이 삭막하다는 편견을 깨고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했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서 그도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산에서 소박하고 조용하게 지낸 박범신도 있지만 서울을 오가며 갈팡질팡한 박범신도 있다. 또 장난스러운 소년 같은 박범신도 있고, 그 나이에 맞는 노년의 박범신도 깃들어 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박범신의 일상을 이야기 하는 일기와 일상속의 사진들이 가득한 책이었다. 어쩐지 활자들과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화려체를 좋아하는 박범신 작가의 글이 맞는데,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자랑하고 설명하는 이웃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같았다.

 

 대부분의 이들이 논산이라고 하면 논산훈련소를 생각할 거라고 어림짐작한다. 반면 나는 앞서 이야기 했듯이 논산에 대해 별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논산훈련소도 내게 있어서는 논산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냥 회색빛이었다. 어떠한 색깔도 띄지 않는 회색 같은 곳. 그러나 박범신 작가는 논산을 써야 될 것이 많은 장소라고 이야기한다. 글을 읽다보면 굳이 말해주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다. 은근히 묻어나있는 고향 논산에 대한 자부심들이.

 

 책을 계속 읽어나갈 수록 초반보다는 안정된 논산생활과 문학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 지난날들, 그리고 다가올 날들에 대해 두런두런 늘어놓는다.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한 이야기와 고민을 듣고 있노라면 그도 사람이라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박범신의 나날과 생각들을 기록한 글이지만 어쩐지 내 글 같기도 하다. 그 만큼 교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이 책을 읽는 내내 푸근해져왔고 신나기도 했다. 딱 하나의 이미지로 절대 표현 할 수 없는 이 책을 덮으며 ‘그래도 박범신 작가가 쓴 글이 맞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P.76

나는 요즘, 나를 끌고 어디로 가려고 길을 나선 것일까. 길 끝은 아스라하고 어둑해 여전히 분간할 수가 없다. 너무 성급히 떠나왔는지도 모른다. 고백건대, 우울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어린애가 되거나 백 살이 되면 좋으련만. 계속 나 자신에게 자비심을 발휘할 수는 없다. 삶에 대한 어떤, 인식의 깊고도 혁명적인 전환을 갈망한다. 너무도, 너무도, 그런데 내게 그런 축복이 부여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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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요 엄마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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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은교>를 보았다. 영화<은교>에서 이적요役 (박해일)은 '어떠한 사물에서 각자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때로 이승과 저승만큼 멀거든' 이라는 대사와 함께 연필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내었다. 내가 생각하던 연필의 이미지와는 다르지만 각자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때로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껴서 인상 깊었다.
엄마.
단 두음절의 단어인 '엄마'는 연필을 들고 가만히 써보아도 뭉클하고 입 밖으로 가만히 소리 내어 보아도 어쩐지 뭉클한 구석이 있다. 내게 있어서 엄마라는 단어는 뭉클하면서도 찡하고 따뜻하다.

 

어릴 적 나는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는 엄마밖에 모르는 꼬마였다. 재미없는 곳에 가더라도 엄마와 함께 갔어야 했고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 있으면 꼭 배워와 엄마한테 떠들고, 자랑하길 좋아했다. 또 나는 꽤 감수성이 풍부했던 아이였던 것 같다. 철도 안든 꼬마시절에도 어느 날 내게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으로 몰래 훌쩍훌쩍 하기도 했었다.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고, 또 나는 변함없이 자라왔다. 몸과 생각은 많이 자랐어도 여전히 엄마만 졸졸 따라다니고 재미있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엄마를 찾아간다. 나는 아직도 엄마가 어느 날 내 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여전히 두렵고, 어린 시절의 그 때 마냥 훌쩍이게 된다는 것이다.

 

엄마가 젊었을 때는 엄마가 젊다는 것을 몰랐다. 내가 나이를 들어서 엄마를 한 사람, 여자로써 온전히 바라보게 되었을 때 엄마는 젊음보다는 이제 중견의 여성으로써 노후를 준비하실 나이가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아픈 곳이 늘어가는 엄마를 보면 아찔해져온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엄마가 어느 날 내 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잘가요 엄마>는 "내려오셔야겠습니다."라는 정갈한 한 줄로 시작한다.
새벽 세 시에 걸려온 동생의 전화는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지만 주인공은 담담하게 그 소식을 듣고 다음날 해가 뜨면 그 곳으로 가기로 한다. 너무 담담해서 이질적이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독자뿐만 아니라 주인공도 스스로도 느끼고 그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나간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이미 맞이하였던 사람처럼 차분하였고 심지어는 빈 집에서 홀로 보던 포르노를 잠시 보다가 정신 차리기도 한다.

 

이윽고 그는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어떠한 분이셨는가를 생각한다. 몇 번이나 현실과 회상 씬을 오가면서 주인공이 전해주는 그의 어머니는 그 어떤 여성보다 단단하고 고독하였다. 마치 바닷가에 있는 바위처럼 단단함으로 무장해있었다. 몇 번의 시련을 맞으면서 어쩔 수 없이 깎이면서도 단단해 질 수 밖에 없는 그런.

 

생전의 어머니는 화자의 아내, 자식들에게도 그리 살가운 편은 아니셨다. 자신만의 생활 패턴이 확고하신 분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죄가 크고 한이 많으신 분이셨다. 남편을 두 번이나 '갈아치운' 남들이 욕할 여자였고, 그 남편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이 어려워 자신의 손과 발로 벌어야 된다는 책임감에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여자였고, 자식이 잘 못해도 마음껏 혼내지도 못하는 여자였다. 그런 여자, 즉 어머니는 주인공에게 이해 할 수 없는 존재였고 오히려 지긋지긋한 모습으로 기억되었다. 도망치듯이 뛰쳐나와 어미의 속사정은 속속들이 알지 못하여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끝내 받아들이지 못해 이복동생에게 어미를 부탁하고 경제적인 도움으로 자식 된 도리를 하는 것으로 자신이 할 일은 어느 정도 하였다고 생각해왔었다.

 

어머니의 유언대로 화장을 하고 재를 뿌리며 주인공은 그 장소를 떠올린다. 모든 것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지고 도망치고 싶던 기억 한켠 속에서 어머니는 다정스럽지는 않았지만 어둠속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몰래 눈물을 훔치던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 이복동생은 묘하게 화자인 형을 탓했다. 동생이 전하는 어머니는 이렇고 저렇고한 과거와 상관없이 자신만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화자가 어머니에게 살가운 말을 건낸적 없듯 어머니 역시 보고 싶다, 내려오너라, 너희 아이들은 어떠하냐와 같은 살가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늘 자신을 그리워하고 보고파 하는 사람이었다. 

 

작고 단단한 양장본의 푸른색과 흰색의 표지는 엄마라는 단어만큼 깊숙하여 손에 쥘 때마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잘가요 엄마>는 등단 41년 만에 김주영 작가가 처음으로 부르는 사모곡이자 내밀한 고백이라고 하였다. 그렇기에 이 책에 등장하는 어머니와 주인공이 김주영 작가의 어머니와 작가 본인 일 수도 있다. 찢어지게 가난하고 힘든 시절에 대부분의 어미들이 그렇듯 비슷비슷하게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업으로 여기며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원하신 노인은 역시 어머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으로 책을 덮게 만들었다. 책날개에는 김주영 작가가 환희 웃고 있지만 이 글을 쓸 때만큼은 그는 가슴 한켠이 묵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 인생에서 남는 것은 혼자 가만히 앉아 있으려면 딱히 누구랄 것도 없이 막연하게 그리움이 있다는 것, 그 한가지뿐이라는 것이다. 채우지 못한 무엇이 있어서겠지." p266

 

그리고 시대가 달라져도 별다를 것 없이 엄마는 엄마인 그녀가 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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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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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다소 음울한 제목과 표지가 끌렸다. 맨부커 수상작의 책들을 참 좋아하고 웬만하면 꼭 읽으려고 하는데 이 책은 읽을까 말까 조금 고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읽어야겠다고 결심한 날은 어이없게도 봄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이 표지와 참 잘 어울리는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감이라는 것이 그렇다. 어느 정도의 기정사실을 바탕으로 할 때가 많아서 대게 이 예감이 라는 것이 틀리는 날 보다 맞는 날이 더 많다. 그 예감이 좋든 나쁘던 말이다.



  저자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나는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스텔라 리밍턴의 말에 주목하고 있다. 13편의 예선 작 중 6편의 본선 작을 추려 발표하면서, 올해 심사기준은 '가독성'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즐길 수 있는 책, 읽힐 수 있는 책을 찾고 있다. 우리는 독자들이 이 책들을 사서 직접 읽기를 바란다. 사지는 않고 그냥 숭배하는 게 아니라”라고 덧붙였다.
이 책은 얼마나 가독성이 있으며 독자인 내가 즐길 수 있을 것인가가 그 무엇보다 궁금해졌다. 논란을 한꺼번에 잠재웠던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바로 내 앞에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우리는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p. 165)



  그렇다. 내 기억을 더듬어 봐도 어느 덧 나의 편의대로 각색되고 마음대로 맞추어진 기억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유독 아프게 다가왔던 시간들은 더욱 그러하다. 내 멋대로 사실에서 벗어나 가감하고 가지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타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써 보다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이었지만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입안이 까끌해져왔다. 역시 진실을 조우하게 되는 것은 그 어느 때, 어느 순간이라도 힘든 것이다.



이렇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주인공들의 삶과 기억들이 엇갈려 하나의 퍼즐로 맞추어지듯이 이루어져 간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 줄리언 반스의 말대로 끝까지 읽은 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몇 번이나 읽게 되었다. 이렇게 몇 번이나 이동해서 읽다가보면 완성된 퍼즐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 순간부터는 이 책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수 많은 복선들과 사실과 기억의 오류들을 생생하게 지켜보면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은 얼마나 숨어있을지 두렵기도 하였다.



  책의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특별한 순서 없이, 기억이 떠오른다.' 어쩌면 여기서 부터 눈치를 채고 마음의 준비를 해서 책을 읽어야 했을 지도 모른다. 생각지 못하게 조우한 사실들의 파편들은 날카롭게 찔러왔으며 아주 부끄럽게 만들었고 잔인한 조각들만이 남아 나를 아프게 했다.



나는 인생의 목적이 흔히 말하듯 인생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님을 얼마의 시간이 걸리건 상관없이 기어코 납득시킨 끝에, 고달파진 우리가 최후의 상실까지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할 때가 가끔 있다.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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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지의 부엌
니콜 모니스 지음, 최애리 옮김 / 푸른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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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작가와 표지, 그리고 작가의 말, 심지어는 책날개에 적힌 글마저도 꼼꼼히 보는 타입이다. 그런 사소함(?)이 표현하는 것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참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칸지의 부엌>의 작가인 니콜 모니스는 참 생소하였고 표지는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책보다 독특하고 예뻤다. 니콜 모니스의 이력은 생각보다 독특했다. 처음부터 작가로 데뷔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18년간 사업을 하면서 틈틈이 써둔 소설 <Lost in Translation>이 재닛 하이딩어 카프카 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변신하게 된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시작한 책은 생각보다 더 설레어서 날씨만큼이나 기분을 살랑살랑하게 만들었다.

 

  이 글은 중국 황실 요리를 계승하려는 황실 숙수의 손자와 그를 취재하는 푸드 에디터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미국인 여주인공과 중국계 미국인인 남자주인공이 등장한다. 또 오경재, 원매, 소동파 등 실존 인물과 중국 황실 요리에 대한 철저한 취재와 3대를 이어 온 요리 스승들과 제자 간의 끈끈한 정(情), 중국 전역에 생중계되는 요리 올림픽 등은 이 소설을 단순한 요리 허풍 소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요리에 대해 연구와 묘사를 하려고 노력했는지 보여주었으며 단조롭게 끝날 수 도 있는 스토리를 끝까지 부여잡고 풍성하게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추리소설이 아닌 이상 이렇게 풍요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작가는 그 부분을 성공해냈다.

 

  여주인공으로 나오는 매기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뜻밖의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중국에서 어떤 여성이 남편의 딸을 키우고 있다며 친자소송을 냈으니 그 부분을 확인하고 진실이라면 매기는 남편의 유산을 절반이상 떼어 내어 주게 생겼다. 그녀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날벼락 같은 전화를 받고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정리하던 중 잡지사에서 중국에 있는 한 천재 셰프를 취재할 것을 요청하고, 매기는 '친자 확인'과 '취재'를 위해 베이징으로 떠나게 된다.

 

  매기는 중국으로 가서 셰프를 만나게 되고 그 곳에서 지난날의 상처를 치료 받게 된다. 요리를 통해서 마음을 치유한다는 것이 <칸지의 부엌>에서 핵심 되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그 마음의 치유로 인해 두 주인공들이 잔잔하고 달달한 로맨스를 풍겨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요리로 인해 사람의 마음이 치유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나도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으면 무엇보다도 먹는 일을 했던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지갑을 들고나가 먹고 싶은 것을 닥치는데로 구매하고 생각 없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사온 것을 주섬주섬 까먹는 일이다. 생각보다 요리를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것은 우리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여 주인공인 매기가 맛보았던 음식들은 레토르트, 인스턴트와 같은 가공식품이 아닌 정성이 가득 담긴데다가 화려하고 섬세한 중국 황실의 요리이기까지 하다. 그 어떤 여자가 자신의 힘든 상황에 이런 요리를 받고서 위로가 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충분히 매기의 입장이 되어 눈으로 요리를 먹으며 마음의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동양에서는 물론이고 서양에서도 찬사를 받은 책이다. 그도 그럴만한 생각이 든다. 동양을 소재로 담고 있지만 서양인의 시선에서 쓰인 책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들도 고려할 만한 부분으로 쓰여 있고 게다가 만국의 공통관심사인 ‘음식’이라는 키워드도 있으니 서양에서도 받아들이는데 자연스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식을 통해 은근히 묻어나는 동양의 매력은 서양에서 더욱 매력적이었을 것이고 서양인들의 시각으로는 발견하기 어려운 문화적 가치들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물론 동양인의 시선으로 본 <칸지의 부엌>은 더 없이 매력적이다. 오히려 동양권이지만 그 동안 잘 몰랐던 중국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그들의 진짜 요리가 궁금해졌으니 말이다.

 

  나는 요리를 굉장히 못한다. 라면을 싫어하는 이유로 라면하나도 잘 못 끓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요리에 관련되어 이렇게 책이 나오면 무엇보다도 신기하다. 소설이라는 틀 안에 갇혀 가상이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네 삶을 닮고 있는 글이니까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뭐랄까. 음식으로 이렇게 행복하게 웃고 울 수도 있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랍다. 내게 음식이라는 것은 배고픔을 채워주고 내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유일한 즐거움일 뿐인데 이 음식을 통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책 한권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이 책을 다 읽고 난 첫 번째 소감이었다. 두 번째 소감은 니콜 모니스의 화려한 묘사풍 문체와 음식과 같이 달달하게 피어오르는 로맨스였다. 화려하고 묘사를 잔뜩 불어넣는 문체들이지만 그렇게 부담스럽지도 않고 오히려 중국요리를 소개하는 만큼 이 보다 더 잘 어울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칸지의 부엌>을 다 읽고 나니 배가 고파지고 봄에 맞게 달달해지는 분위기가 나를 감도는 것 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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