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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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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부드러운 흰 색 바탕에 빨간 코끼리가 인상 깊게 그려있는 <지지 않는다는 말>. 누구에게나 힘이 되고 용기가 되는 말이리라고 생각된다. '약육강식'이 대표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 보다 더 힘나는 말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사실 이 책을 펼치기 까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위로를 받는 다는 것은 위로 받을 상황이 풍부하게 깔려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썩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이왕 지사 책이 내 손안에 있으니 읽어보기로 마음먹고 펼쳐들었을 때, 생각보다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아서 참으로도 다행이었다.

 

 

  김연수 작가를 몰랐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작품을 펼쳤었는지 잘 모르고 시작하였기에 나는 그에 대해 백지였고 조금 더 가감 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

열정 가득한 그도 삶에서 성공을 맛보기도 했고 또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지난 시간들에 대해 우쭐해 하지도 않았고 대단히 여기지도 않았다. 또 회의적이지도 않았다. 지나갔던 시간들이 좋았고 슬펐고에 관계없이 이미 지나간 시간들이었고 그는 그것을 바탕으로 조금 우스개 농담과 함께 풀어나가며 자신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그 파이팅의 대상이 작가가 되었건 독자가 되었건 에너지를 얻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파이팅을 외쳐주는 김연수 작가가 파이팅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긍정적인 기운에 빨려들어 내가 어느 덧 동화되어 파이팅을 외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책을 읽다보면 어느 덧 깨닫게 될 것이다. 김연수 작가는 누구나 갖길 원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기란 사실 말처럼 쉽지 않다. 사람이기에 욕심을 부리고 기억을 하며 후회하고 슬럼프에 빠진다. 젊은 청춘들도 이러한데, 어느 덧 인생의 반을 바라보는 김연수 작가 정도의 나이가 되면 더더욱 회의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김연수 작가는 노련하게도 자신의 나이를 숨기고 싶은 건지 혹은 젊은 청춘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 건지 이 책에서는 회의적인 삶에 대한 고찰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책을 읽기 전 도입부에 나는 이렇게 언급했다. 위로를 받는 다는 것은 위로 받을 상황이 깔려있는 것이고 지지 않는 다는 말은 지는 상황이 깔려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책을 펼치고 얼마 되지 않으면 작가는 벌써 답을 제시 한다. 지지 않는 다는 말이 반드시 '이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마치 마라톤 결승점을 통해 들어오는 선수들의 순서와 관계없이 열렬한 환호를 보낸 것과 같이.

 

인생은 마라톤 같다는 말을 많이 쓴다. 오랜 시간 천천히 뛰면서 앞으로 많은 것을 보고 등 뒤로 많은 것을 보낸다. 숨을 헐떡이며 달리다 결승점을 통과하면 등수에 관계없이 자신에 대한 벅차오름과 박수 속에 희로애락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결국 지지 않는 다는 말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모두가 박수 받는 것. 어쨌거나 우리는 이미 출발선상에서 출발해서 달리는 마라토너니까 말이다.

 

 

  뜨거웠던 이번 여름에 나는 많은 것을 하고 싶었고 또 지난 시간들에 많은 것을 후회하고 괴로워했었다. 그러나 결국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이 남았다. 지금이라도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는 <지지 않는 다는 말>을 잊지 말고 단지 내가 마라토너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한 번 해볼까한다.

 

빨간 코끼리처럼 온몸이 붉게 달아오를 때 까지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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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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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어느 덧 색이 바래어진 추억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고교시절까지 올라간다. 처음 하루키의 작품을 접하고 나서 난생 처음 느꼈던 알 수 없는 기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느낌이 좋고, 하루키의 작품을 매번 손에 쥘 때 마다 그 시절에 젖어 들곤 한다.

 

일본의 대표 작가라고는 하나 이미 한국에서도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그는 한동안 소설을 집필해왔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맥주회사가 만드는 우롱차'같은 에세이를 선보이게 되었다. 다시 말해 에세이 쓰기가 소설 쓰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지만 앓는 소리와 달리 본연의 무라카미 스타일대로 톡톡 튀면서도 즐겁게 읽어 내릴 수 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책에 실린 글들은 지극히 일상적일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소소한 이야기들이라 글로 적어두지 않으면 그냥 한 부분으로 놓쳤던 시간들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소한 나의 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하루키 마술사의 능력은 놀라웠다. 나에게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을 놓치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 남들에게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일이라도 특별함을 부여한다는 것. 이는 분명 생각보다 쉬운 작업은 아닐 터이니 말이다.
물론 책에 집필 된 글들은 잡지 <앙앙>에 위클리 에세이로 연재했던 글들을 추려서 엮은 것이라고는 하나 내 일상에 애정이 없다면 글들이 좀처럼 써지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다.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 사람의 가치관을 알 수 있다는 것.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집 안의 가족들과 혹은 집 밖에서 마주 치는 그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들의 생각을 통해 가치관을 알기란 어렵다. 그 이유를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한 구석을 숨기고 싶어 하는 욕망에 있다고 보는데, 그러한 인간마저도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곳이 바로 글 또는 그림 혹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재능이 있는 분야로 자신의 깊은 내면까지 들춰내는데, 그 중에서도 글 그리고 다양한 장르 중에서도 에세이는 특히나 가치관을 잘 닮아내는 장르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한 번쯤 에세이를 읽다보면 작가와 대화를 하는 기분이 들고 또 나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기분이 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 있지 않을까?


또한, 말로 주고받는 이야기들은 찰나의 순간들을 오가기 때문에 강렬하게 오해의 요지를 남길 때도 있지만 글은 어지간하면 그러한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참 좋다고 생각한다.
분명 작가의 삶과 내 삶은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관도 다를 수 있다. 이를 서로간의 대화로 주고 받다보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끝날지도 모르나 책으로 읽다보면 이러한 사람도 있구나 하고 자연스레 수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라는 제목만으로도 어쩐지 싱그럽다. 식물도 감정을 느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식물의 기분과 감정이라는 건 독특하고 재미있다. 뭐랄까 감정이 없는 사물인척 위장하면서 생물이라는 소리처럼 들린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제목만으로 피식 웃음이 나오고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이 하루키의 힘이자 동시에 그의 독특한 면을 엿보는 기분이다. 학교 다닐 때도 그러한 친구가 있었던 것 같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이 규정된 생활을 하는데 알게 모르게 조금 생각이 독특한 아이.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성적인 날에는 실없는 소리라고 딱 잘라 생각하게 되지만 도리어 감성적인 날에는 더 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하루키의 이번 책도 그러했다. 그 동안 미뤄왔던 수술이 있었는데 이 기회에 병원에서 시원하게 요양이나 할 셈으로 수술날짜를 받아두고 수술 후 틈틈이 읽었다. 그냥 생각 없이 읽었고, 읽었고, 읽었다.
하릴 없이 병원에만 틀어 박혀서 출혈의 위험 때문에 가만히 누워있는 것 밖에 할 것이 없었던 나는 이성적인 나로 돌아올 틈이 없었고 덕분에 말랑말랑하게 감성적인 나는 채소가 된 기분으로 또 바다표점과 키스를 하듯이 재미있게 읽어 내려갔다.

 

 

  더불어 삽입된 삽화들은 글 못지않게 재미있다. 한 번쯤 따라 그리고 싶게 만드는 삽화도 있었고 그렇지! 할 만큼 재미있는 삽화도 있어서 한 권 더 사서 너무 재미있는 그림은 다이어리에 끼우고 틈틈이 꺼내 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쨌거나 하루키의 책은 그렇다.
언제나 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 그 기분을 맛보여 준다. 그 것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어쩌면 내가 지나치게 하루키의 '팬'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내게는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에세이와 동등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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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하우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랄랄라 하우스 - 묘하고 유쾌한 생각의 집, 개정판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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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랄랄라 하우스>라는 제목만 들어도 벌써부터 기분이 저만치 앞서 유쾌해지고, 무언가 설레는 일이 가득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다가와서 읽혀졌다. <랄랄라 하우스>는 실제 공간에서 존재 하는 물리적인 집은 아니다. 단지 이 책의 저자 김영하가 지은 생각의 집이다.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하고 또 원하는 데로 고칠 수 있는 멋진 생각의 집인 만큼 이 책은 2005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올해 새롭게 다듬고 수정하여 다시 내놓게 되었다.

처음부터 신간을 읽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스치듯이 책 제목을 들었던 것 같다. 읽지 않아도 익숙한 제목이었고, 너무 익숙하다보니 마치 내가 언젠가 읽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번 개정판 출간의 소식이 너무나도 반가웠고 이번에는 착각하지 않도록 꼭 읽기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랄랄라 하우스>에 대한 알 수 없는 익숙함을 배제하고 이 책을 기대하였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고양이 방울이와 깐돌이에 관한 것이다. 내 사적인 공간은 나 혼자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기에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내가 사는 집은 일절 손님 거절이다. 그게 그 누가되었건 말이다. 밖에서는 신나게, 안에서는 나만의 공간이라는 생각으로 재미있게 살아왔지만, 문득 어느 순간 집에 따뜻한 온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그래도 검은 머리의 짐승은 절대 출입금지!) 때마침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랄랄라 하우스의 고양이들이었다.

방울이와 깐돌이의 일상을 주도면밀히 관찰하는 것은 아니지만, 짧은 호흡으로 들려주는 김영하 작가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구어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작가와 대화하는 기분이 들 정도니 말 다한 셈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 대하여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작가 김영하에 대한 느낌을 찾기는 조금 어려웠다. 뜬금없는 악담 같기도 하지만, 절대 악담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단지 작가라는 데서 오는 무겁고 진중한 느낌은 훌훌 털어버리고 엉뚱하고 재치 발랄한 중년의 사내가 앉아서 자신의 생각이 이러이러한데 세상은 아니더라고! 하는 유쾌한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어서 한 말이기 때문이다. 길지 않게 한 페이지에서 두 페이지로 마무리 되는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재미난 에피소드들은 카페에서 마주보고 수다 떠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단순히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들려주는 것에 끝나지 많은 않는다. 은근슬쩍 자신의 의견을 깔아두기도 하고 은근한 권유를 하기도 한다. 마치 고도의 심리전에 휘말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아마 이것을 느낄 때쯤이면 책을 다 읽고 덮은 후가 아닐까 싶다.

 

 

  시작은 귀여운 고양이들로 했지만, 끝은 김영하의 일상 훔쳐보기로 끝난 것 같아서 조금 우스웠다. 그렇다고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이 책이 마냥 가볍고 유쾌하지만은 않다. 스타벅스 커피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기도 하며 태극기의 단상이라는 주제로 <랄랄라 하우스>기준으로 다소 긴 호흡으로 무려 아홉 페이지에 걸쳐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한다. 주제만 보고서는 무거울 수 있지만 그 것 마저도 가볍게 그리고 흥미롭게 이끌어 나가는 것이 바로 작가 김영하의 재주가 아닐까 싶다. 생각지도 못한 것으로 툭 주제를 던져놓고 우스운 발상으로 마무리 짓기도 하고, 진지하게 파고드는 모습은 이 책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데 충분했다.

 

 

  이렇게 연관 짓다 보니 문득 <랄랄라 하우스>라는 제목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읽다보면 정말로 랄랄라라는 소리가 절로 날 정도로 재미있으니 말이다. 더운 여름이라고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영화만 본다는 편견을 이번에 타파할 정도로 가벼워서 좋았고 유쾌해서 좋았다. 끈적끈적한 몸을 시원하게 씻고 난 후 차가운 맥주와 함께 흥이 나는 멜로디를 깔아두고 읽는 책은 최고였으니까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하나가 마음에 들면 두 개가 마음에 들고 그러다 보면 전부가 마음에 드는 것이 사람 아닌가 싶다. <랄랄라 하우스>에 대하여 애초부터 콩깍지가 씌었던 나는 무엇을 이야기 하든 다 이뻐 보이고 재미있었다. 욕심 같아서는 다음번에는 개정판이 아닌 시리즈로 또 다른 하우스가 생기길 꿈꿔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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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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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출하게 제목과 권정생 산문집이라는 글씨 외에는 그 어떤 화려한 그림하나 없이 흰색과 민트색이 어우러진 바탕에 민들레씨가 폴폴 날아다니는 표지를 보면서 권정생 선생님의 이미지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마 ‘권정생’이라는 조금은 낯선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뒤이어 몇 가지를 붙인다면 금세 이야기는 달라지리라고 예상된다. 동화 이야기 <강아지 똥>이 그의 대표작이고 <몽실 언니>도 마찬가지로 대표작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순수함과 동심이 가득 베어 나와 한번 읽으면 쉽사리 잊히지 않는 자랑스러운 우리 동화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동화 이야기의 대부분이 사랑스럽고 오밀조밀한 느낌을 주지만, 그 중에서도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들은 조금 더 특별하다. 여타 동화이야기보다 더욱 사랑스럽고 더욱 포근한 느낌이 넘쳐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소박한 배경에다가 특별하지 않은, 어찌 보면 조금은 눈에 띄지 않는 사물 혹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빌뱅이 언덕>을 읽기로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산문집을 읽으면서 이렇게 가슴이 아프거나 또는 먹먹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동화가 소박하니 선생님도 그렇게 삶을 보내셨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하고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왔고 또 그러한 나날들을 계속 보내셨으리라는. 그러나 내 생각이 참 부끄러울 만큼 선생님의 유년시절은 그렇게 행복한 나날들이 가득하지만도 않았으며 또 어떤 시간들은 죽기보다 괴로웠다라고 표현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따스한 이야기 나왔다는 것은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타인을 위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나온 것이리라 생각된다. 동화가 전해주는 것처럼.

 

 

  1부로 들어가기 전에 이런 글이 쓰여 있다.

 

나는 왜 동화를 쓰게 되었는지 나 자신도 모른다. 언제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 그런 걸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누구나 가슴에 맺힌 이야기가 있으면 누구에겐가 들려주고 싶듯이 그렇게 동화를 썼는지도 모른다.

 

권정생 선생님을 잘 몰랐던 나는 책을 읽으면 읽어갈수록 새롭게 그를 알아가고 새로운 사실들에 놀라면서 읽어 내렸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도 잊히지 않는 것은 첫 문장이다. 머리말을 읽고 본격적으로 읽어보겠다며 자세를 고치고 나서 가장 처음 본 문장이 ‘나는 왜 동화를 쓰게 되었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여서 그렇지 않을까 한다.
지금도 저 한 줄만큼은 어쩐지 먹먹해져 온다. 나 자신도 모르게 시작하게 된 일이지만, 아마 오랫동안 품어온 한이 있었기에 그렇지 않았겠냐는 담담한 활자들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반성도 하게 만들었고, <빌뱅이 언덕>을 그저 권정생 산문집으로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삶속에서 많은 것을 배워나가고 깨닫게 되는 시간들로 바꾸어 놓았다.

 

 

  권정생 선생님이 곁에 계셨던 시간 들 중 1975년부터 2006년까지 잡지 및 산문집, 절판된 책들 속에서 엮어낸 글들은 선생님의 동화만큼이나 따뜻하기도 하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유 없는 먹먹함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많은 것을 가지려하지도 않고, 나를 돌아보기도 하며 사회를 걱정하기도 한다. 조용하고 차분한 선생님의 삶은 왜 그렇게 먹먹해졌는지 모르겠다.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있는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이 책은 내 책장 가운데 눈에 띄는 한 구석에 앉아 가슴이 따뜻해지고 싶거나 반대로 먹먹해지고 싶은 날에도 꺼내 읽게 될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확히 언제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 한 구석에 읽었던 동화 <강아지풀>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주인공의 착한 일로 갑작스럽게 높은 신분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을 괴롭히던 누군가가 벌을 받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따뜻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것만큼은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 이야기를 읽고서 무럭무럭 자라 어느 덧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가슴속에 고이고이 접힌 민트색의 종이학처럼 접혀 있는 이야기는 아직도 내게 소박한 세상과 그 따뜻함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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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제
츠네카와 코타로 지음, 김해용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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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초 여름이 다가오는 그 즈음에는 미스터리와 판타지 그 중간즈음의 글을 꼭 한편씩 읽는다. 작년에도 한 권 읽었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지금 당장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튼간에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몹시도 기묘한 분위기에 매료되었고, 일부러 그 책을 꼭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졸릴 때 읽었다. 졸릴 때 읽으면 글을 읽으면서 환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에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나게 된 <초제>역시 초 여름이 다가오는 그 즈음에 만난 미스터리와 판타지 그 중간의 작품이었다.

<초제>는 책을 펼치기도 전에 표지가 참 좋았다. 이 책의 분위기를 잘 표현한 것 같아서 좋았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계속 강조 하는 초 여름의 소나기가 내리는 그 분위기를 잘 표현 한 것 같아 마음에 쏙 들었다. 빗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반짝이는 흰 글씨로 표현하다니. 책을 펼치기도 전에 느낌이 좋아서 기분 좋게 책을 펼칠 수가 있었다.

 

  각각의 단편 다섯 이야기들은 담담하다. 기묘하고 비현실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신비스런 분위기가 피어올라나왔다. 다섯 편에서 주인공들은 각자 다르지만, 아름다운 땅 비오쿠(어딘가에는 존재하는 아름다운 공간이나 이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공간)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전편에서 등장하였던 인물이 짧게 재등장하기도 하고 나오지 않기도 한다. 스토리가 이어지는 듯 하기도 하고 별개 인듯 종 잡을 수 없이 그저 분위기에 따라 쓸려갔다. 그 무엇보다 <초제>에 집중했던 이유는 신비하고 으스스한 분위기와 별개로 처연한 주인공들의 태도와 지친듯한 모습들이 었다. 그들은 원초적인 공간에 집중을 하였고 그 기원들에 많이 집중을 하고 있었다. 태초로 돌아가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야 말로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말이다.

 

  책에 실린 이야기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자면, 가장 기억에 남는 편은 아무래도 시작을 알렸던 짐승의 들판이었다.  <야시>라는 작품으로 국내 팬이 있다고는 하나 내게는 낯선 작가인지라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펼쳤으나 분위기와 은근히 섬뜩한 이야기는 이 책에 본격적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짐승의 들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어린아이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다는 메시지만 던져주고 결국 끝나 더 여운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제22회 야마모토 슈고로 상 후보작!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신비한 이야기!

 

  홍보문구가 아주 시원스럽다. 그리고 정말 솔직하게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몇번이나 환상과 현실을 오갔는지 모른다. 혹시 실제로 이런 곳이 그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했다가 너무 몰입했다며 쑥스럽게 웃으며 현실로 돌아와 다시 책에 집중하기도 했다. 그러면 다시 환상의 세계로 빠지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보면 <초제>의 끝을 보게 되었다.

(야마모토 슈고로 상은 일본의 출판사 신쵸샤가 주관, 후원하는 소설상이다. 오랜 세월 신쵸샤 주최로 이어져 오던 일본문학대상 후속으로 순문학을 대상으로 하는 미시마 유키오 상과 함께 1988년 창설되었으며, 매년 5월 한 차례 수상작을 선정한다. 순문학보다는 이야기 자체가 우수한 소설에 주어지는 상이며, 주로 오락성이 강한 소설이나 연애소설, 인간의 내면 심리를 깊이 있게 다룬 소설 등을 수상작으로 선정한다. 주요 수상작가와 작품에는 요시모토 바나나(티티새), 양석일(피와 뼈), 이사카 코타로(골든 슬럼버), 미야베 미유키(화차), 텐도 아라타(가족사냥) 등이 있다. 본작 『초제』는 2009년 22회 야마모토 슈고로 상 후보에 올랐으나 아쉽게 수상에는 실패했다.)

 

  이 책의 작가 쓰네카와 고타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품고 있는 세계관을 보여주었다. 당연하리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의문을 품고 기괴하고 신비롭게 그러나 현실적인 세계는 마치 미로와 같았다. 빠져들지 않을 것 같았으나 시작부터 말도 안되는 짐승의 들판이라는 주제로 몰입하게 만들어 아침의 몽롱한 마을을 방문하는 것으로 놓아주었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온 나는 이 세계가 과연 진실인지 아닌지 한 번의문을 품게되었다. 진정한 스릴러물을 시작하기 전 초여름, 그러니까 지금, 딱 빠지기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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