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노트북
제임스 A. 레바인 지음, 홍성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아동 성노예' 라는 다소 민감하고 예민한 주제를 다룬 블루 노트북을 보고 절로 이끌리듯이 이 책은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지 아동성노예라는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이 책을 선택한 것만은 아니다.
몸을 파는 소녀가 존엄성을 지키는 모습이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데서 놀라웠기 때문이다.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몸을 파는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존엄성을 꿋꿋하게 지켜나간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는 않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몇 해 전에 뉴스를 통해 인도에서는 너무 많은 숫자의 여성들이 사창가에서 자신의 몸을 파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 속에서는 또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숫자가 어린아이라고 하여 놀랐던 기억이 난다.
유치원에 다닐 것 같은 꼬마도, 초등학교에 다닐 것 만 같은 여자아이도 살기위해서 그런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 지금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녀들의 손님들 중에는 많은 수의 한국인들이 포함되어있다고 말하며 보도를 마쳤을 때 너무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바툭' 이라는 소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좀 더 나은 나의 삶에 희망을 느끼며 그녀가 놓치지 않았던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하여 의지가 보여주는 위대함을 느끼는 순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펼쳐들었다.



주인공 바툭은 어리고 예쁜 소녀이다.
그녀는 어느 날 가족들과 떨어져 커먼가로 가서 생활하게 된다.
그곳에서 '케이크 굽기' 라고 부르면서 몸파는 일을 하며 히포 마마키의 마음에 쏙 들도록 잘 구워진 케이크를 만들면서 그 대가로 밥을 먹는다.
이곳에서 바툭의 생활은 시간도 이름도 없는 그런 생활이지만 노트에 닳아가는 연필을 아까워하며 글을 쓰는 것으로 자신을 지킨다.



바툭은 비로 몸을 파는 아이지만, 그녀의 영리함은 곳곳에 나타난다.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 살아남기 위하여 남자들 (힘이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거슬리지 않도록 재빠르게 행동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고스란히 글로 옮겨져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이 모든 게 바툭이라는 어리지만 당찬 소녀가 가진 힘이 아닐까한다.



이 글을 쓴 지은이 제임스 A.레바인은 두 딸을 둔 중년의 남성이다.
하지만 <블루노트북> 안에서 만큼은 그 어디에서도 중년의 남성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는 완벽하게 열다섯 살 소녀가 되어 그녀의 마음을 대변한다.
참혹한 현실에서도 소녀다움과 어린아이다움을 잃지 않는 바툭을 보며 오히려 더 아름답게 느껴졌으나 그 모습은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처연해 보이기 까지 했다.



바툭의 노트 속에는 그녀가 쓴 동화라든지 시가 몇 편 등장한다.
소설 속에 담긴 또 다른 글들은 그녀가 노트 속에 써내려가는 일상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녀가 바라는 이상 또는 슬픔이 모두 묻어나 액자형식으로 보여준다.
결국 그러한 것들은 바툭이 표면적으로는 이 생활에 완벽히 적응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하고 가족들을 만나고파하는 어린소녀라는 것을 알 수 있게끔 해주었다.



P358: 오늘 밤, 나는 깊은 잠을 잘 것이다.
모자 장수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내일이면 기력을 되찾아 마침내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거의 다 왔다.



꿈속에서 모자장수와 만나는 것으로 <블루 노트북>은 끝이 난다.
즉, 바툭이 어린나이로 결국 죽게 된다는 것으로 끝이 난다.
다양한 시련과 이겨내려는 의지 속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그녀는 그토록 불안하게 생각하였던 모자장수의 꿈으로 죽음을 마무리한다.
모자장수 꿈은 바툭에게 예사 꿈이 아니다.
사창가로 오게 되면서 종종 꾸게 되는 그 꿈 뒤에는 늘 기분 나쁜 일이 뒤따르고 있다는 것을 바툭은 눈치 채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그 밤까지도 이야기와 시를 남기고 가는 모습은 그녀가 의지할 곳을 글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글이 갖는 힘은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일 것 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져다주었다.



우리에게 '글쓰기'는 생활이기도 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툭에게 있어서는 그 생활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기도 하였다.
글쓰기가 갖는 힘에 대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감을 보았던 책이 이 책이었다고 생각된다.



민감하면서도 불편한 소재 안에는 아동성폭력, 글쓰기의 힘, 인간의 의지와 같은 다양한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처연하도록 아름다움' 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며 오랫동안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기억될 것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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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옌롄커라는 생소한 작가가 쓴 <딩씨 마을의 꿈>은 중국장편소설이다.
평소 중국소설을 잘 읽지 않기 때문에 생소하고 낯선 글이지만, 판금조치를 당하고 무섭도록 섬뜩한 피로 흥하고 망한다는 이야기에 이 책으로 손이 절로 뻗어나갔다.
현실과 판타지의 결합이라는 오묘한 결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시종일관 신비감과 낯선 느낌을 전해주었다.



'매혈'로 부자가 되고 '매혈'로 인하여 세상을 달리한다.
정부에서 내린 피를 사들이는 사업은 얼핏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피를 팔면 그 피에 해당하는 돈을 주고 어지러운 이들에게 무료로 야채를 나눠준다.
처음에는 매혈을 꺼려하던 딩씨 마을 사람도 손쉽게 돈 버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너도나도 매혈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리고 딩씨마을의 저주는 이제부터 시작되었다,
딩후이가 국가에서 사들이는 것 보다 좀 더 비씨가 사들이자 주민들은 너도나도 딩후이에게 피를 팔았다.
그리고 딩후이는 사들인 피를 다시 파는 것으로 이익을 남겼다.
이 와중에 딩후이는 주시가 하나를 세 번 쓰고 소독 솜을 세 번 세 사람에게 쓰면서 마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열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신약도 없이 열병이라는 병에 걸려죽는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명이었고 마을은 딩후이를 저주하기 시작했다.
이 열병이 에이즈였다.



<딩씨마을의 꿈>에서는 현실과 판티지 외에 특이한 점이 하나 더 있다.
마을사람들은 딩후이를 저주하였고 그들은 그의 닭, 돼지, 그리고 아들까지 죽였다.
아이들은 선생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학교에서 일을 도맡아 했던 딩후이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 담벼락 밑에 묻혔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옌롄커는 이 소년을 소설 속 화자로 등장시켰다.
모든 이야기의 흐름은 이 아이의 눈을 통해 일어났는데 그래서인지 이 무서운 이야기가 아이의 눈에 순수하게 투영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옌롄커의 소설 특징 중에 하나인 '판타지와 사실'이 합쳐진 듯 한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P460: 고금을 막론하고 중국문학에서 가장 결핍된 요소는 비극의식과 참회의식이다.
...
희극에 강한 반면 비극에 약한 것이 중국의 문화이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비극에 약한 것이 중국문화 즉, 문학이고 그렇기 때문에 옌롄커의 문학은 특별하다고 이야기한다.
<딩씨마을의 꿈>은 열병(에이즈)에 결린 사람들이 결국 그들끼리 어떻게 뭉쳐 살게 되는지 또 그 속에서의 이기적인 모습들과 사랑하려는 모습을 통해

그들이 받는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P81: 마샹린은 우리 할아버지가 정말로 신약이 없다는 말을 하자마자 '콰당'하고 고꾸라진 것이다.
입가에는 피가 한 가닥 흘러나와 있었고 코에서도 피가 두 가닥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샹린은 열병에 걸린 사내였다.
그는 곧 죽을 사람처럼 보였으나 할아버지의 신약이 있다는 말에 병이 다 난 것처럼 연주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신이 의지할 곳을 잃자 바로 죽어버렸다.
인간의 의지력에 관한 굉장히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죽음을 표현하는 장면이었다.
이 책속에는 그런 장면이 수십 번도 더 나타나는데 계속 읽어내려 가다보면 문득 나도 딩씨마을 사람처럼 죽음에 무덤덤해지는 느낌이 든다.



할아버지의 꿈은 판타지세계이다.
꿈이지만 너무나 사실적이다.
그리고 배경은 꿈이 잔인하든 그렇지 않든 늘 화사하다.
결국 이 모든 것은 현실로 이어지는 구조를 띈다.
고통과 절망에 대하여 가득한 이 책은 옌롄커의 작품이 중국에서는 특이할 뿐만 아니라 '판타지리얼리즘' 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어째서 이 책이 중국에서 판금조치를 당하였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대하여 한국독자들에게 드리는 글에서 옌롄커가 하였던 말은

P7: 이 작품이 똑같은 조치를 당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중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금기를 범했고' '민감한 사인을 건드렸기'때문일 것이라고 짐작만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라는 것으로 끝난다.



고통, 절망, 판타지만 있을 뿐 희망이 없는 것은 어떠한 결과와 이야기를 낳는지 확인하는 작품이 <딩씨마을의 꿈>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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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리움 - 자전거 타고 대한민국 멀리 던지기
이종환 지음 / 하늘아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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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리움>이라는 아련하고 잊고 지내던 무언가를 드디어 그리워할 것 만 같은 느낌을 주는 새벽녘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이 책은 부제목이 자전거를 타고 대한민국 멀리 던지기 이다.
자전거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한다는 것.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나에게는 어떤 느낌일지 알 수는 없지만, 책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딘가에서 들었던 ‘길 위의 인생’ 이라는 느낌이 물씬 느껴져 망설임 없이 책으로 손을 뻗었다.


4페이지에서 지은이 이종환의 서문으로 길, 인생, 여행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본론에 들어가기도 전에 어떤 의미로는 이종환씨가 가득히 긴 문장으로 써내려간 삶에서 먼저 압도되었다고 말하여도 충분하다.
자전거와 길 그리고 삶을 통하여 여러 가지 생각을 이 여행을 통해서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서문에 고스란히 정리되어 담겨 내마음속에 콕콕 박혀 들어왔다.


P7: 이 여행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목적이 없다는 바로 그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정해진 길도 방향도 있을 수 없다.
나는 자전거와 더불어 이리저리 끌리다가 어느 순간 사물과 풍경에 꼴리고 급기야 매혹 앞에 무릎을 꿇을 뿐.
끌리고 꼴리고 꿇을 뿐.


그의 일정과 거쳐 간 곳들이 서문을 다음으로 차례차례 등장한다.
내가 다녀온 길도 아니고 자전거를 탈 줄도 모르지만, 나는 마치 내가 다녀온 길 마냥 꼼꼼하게 읽어가며 마음을 다잡는다.
직접 떠난 여행은 아니지만 이 책의 끝에는 나도 숨가빠하며 그 어떤 것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다.

그의 여행 일정 속에 담긴 글은 마치 일기처럼 그리고 지난 자신을 돌아보듯이 써내려간 글처럼 보인다.
담겨있는 사진과 그리워하는 것, 추억하는 것 또한 딱 그만큼이나 오래되었고 낡은 느낌을 풍겼다.


P35: 망한 휴게소의 망한 음식점이다. 문은 굳게 닫혔으나 내부는 활짝 열려있다.
투명하다.
그 투명함이 외부를 내부로 받아들인다.
외부 너머 외부의 그 투명함이 인간과 사물을 시적으로 변용한다.
의미는 가라앉고 이미지만 떠 있는 세계.
재배치된 그 세계의 질서는 낯설지만 기이하게 따뜻하다.
저토록 풍부한 폐허라니!


여행 속에는 여유가 묻어난다.
누구에게 쫓기는 것 같지도 않고 단지 여행의 동반자와 함께 나누어도 줄지 않는 햇살과 달린다.
그 달림 속에서 자유가 느껴져 내가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는 것도 잊고 내일부터 자전거를 한번 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상상만으로도 두 바퀴위에 내가 앉아 있다는 것으로 오금이 저려서 금세 포기하였다^^;)

여행은 출발과 동시에 설레면서도 후회이다.
이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책 곳곳에서는 ‘집떠남’의 후회이기보다는 잘못 든 길에 대한 후회라든지 사사로운 후회가 눈에 띈다.
사사로운 것들.
삶의 무게를 내려두고 사사로운 것에 기뻐하고 후회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행복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
우리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나 이리저리 얽혀있는 세상사 속의 무게.
여행은 그 모든 것을 훌쩍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에서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일반 여행도 아닌 자전거와 함께 전국 일주이다 보니 시간이 흘러 갈수록 몸이 지쳐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후회와 힘든 시간을 써 내려가는 손길에 고단함이 묻어난다.
이 또한 평소와의 다른 여행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단함일 것이다.
<마침내 그리움>은 자전거 일주 속의 힘든 점도 좋은 점도 솔직하게 언급한다.


청평-미로 속으로 라는 것으로 자전거 일주는 마무리된다.
자신이 원래 살던 곳을 미모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서울로 진입하며 그는 어떤 느낌에 사로잡혔을까.
책 속의 글로 담아내지 못했을 그네의 마음이 문득 궁금해졌다.


P245: 불야성으로 반짝이는 네온의 거리가 살아야할 내 터전이다.
저 인공의 빛 속에서 어쨌든 부나비처럼 움직여야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 운명이고, 길이며, 안고 가야할 그리움이다.


그의 그리움은 결국 삶을 움직이는 자기 자신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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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오브 워터 - 흑인 아들이 백인 어머니에게 바치는 글
제임스 맥브라이드 지음, 황정아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나 스스로가 내 입으로 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컬러 오브 워터>를 보면서 난 편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컬러 오브 워터>의 부제는 '흑인 아들이 백인 어머니에게 바치는 글'이다.
흑인아들과 백인어머니라는 조합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흑인을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도 아닌데 내가 이 두 조합에 놀랐던 이유는 '아직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백인과 흑인과의 관계였다.
 


  <컬러 오브 워터>의 저자 제임스 맥 브라이드는 이 글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가 그의 어머니인 루스 맥브라이드를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자신의 이야기와 한 챕터(chapter)씩 번갈아 가며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그의 에세이는 얼핏 보기에는 특별한 점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책 표지에서도 써져있듯이 100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전 세계 20개 국 번역출간, 미국전역의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교재로

채택하였다고 할 만큼 읽어보고 느낌 이 책은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 문구들을 읽으면서 그렇게 까지 대단한가? 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별 생각을 가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한 장씩 얇은 종이를 넘길 때 마다 이 책이 주는 진정한 의미와 자라나는 내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컬러 오브 워터>는 흑인과 백인과의 가족이라는 다인종가족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서 인종문제에 관하여 솔직하고 진솔하게 직면하고 있었다.

인종문제가 가볍지 않은 문제라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 피부에 와 닿게 느껴보지 못하여서 그런지 그들의 이야기는 의외로 나에게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이 문제에 관하여 등장인물인 루스 맥브라이드 조던이라던지 루첼 드와즈라 질스카 (레이철 데보라 실스키), 제임스 등 모두가 그들의 정체성에 대하여

고민하는 모습은 어떤 의미로는 경건하게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제임스의 어머니인 루스의 이야기는 그녀의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던 억압적인 모습과 폭력적인 모습을 통하여 받은 고통과 그 당시의 차별에

관하여 이야기 한다.
놀라운 것은 몇 십 년 후에 루스의 아들로 태어나는 제임스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아버지는 일찍이 돌아가셨으므로 억압적인 모습과 폭력적인 모습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만 여전히 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루스와 다를 것이

없어보였다.
특히 제임스가 학교를 다니는 시기부터 그의 어머니와 친구들의 어머니가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하는

모습은 어떤 의미로는 놀랍기 까지 하였다.


 

p19: 몇 주가 지나 학교에 가는 두려움이 점차 잦아들면서 엄마가 어딘지 다른 애들의 엄마와 전혀 비슷하지 않다는 걸 눈치 채기 시작했다.
그가 겪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이 책의 곳곳에 나타난다.
다인종문화가 국내에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가 자랄 무렵만 하여도 다인종으로 구성된 가족은 보기 드물었다.
그래서 같은 인종인 엄마와 내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이런 문제로 고민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요즘은 종종 필리핀 엄마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문제가 거론되기도 한다.
그 아이들 또한 제임스와 같이 인종적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것이 아닐지 하는 걱정이 든다.
 


  '차별' 이라는 사회적인 문제를 에세이를 통해 풀어낸 책이라고는 하지만, 이 책은 전혀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루스의 엉뚱한 모습이라던지 그녀가 학대, 편견, 방황 등 다양한 시련을 겪고도 일어나는 모습은 감동적이기 까지 하다.
그녀가 피부색에 얽히지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친구하고 파 했던 친구들을 보면 브루클린의 레드훅 주택잔디에 사는 가난한 노동계급, 막노동꾼,

제빵사, 도넛 만드는 사람, 할머니들, 소울 푸드를 만드는 열혈 신도들이었다.
자신이 속해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즉, 진정한 의모로 내면이 반짝반짝 하얗게 빛나는 사람과 친구하고 하는 모습은 그녀가 얼마나 뚜렷한

생각과 원칙을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책 가득히 감동과 사회적인 문제 그리고 간간히 섞인 웃음은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한다.
인종 차별이라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되고 피부색에 따른 차별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보여준다.
그것인 단지 '색깔' 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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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 살인사건 탐정 글래디 골드 시리즈 3
리타 라킨 지음, 이경아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글래디 골드의 세 번째 시리즈인 <카사노바 살인사건>의 주인공은 글래디 골드로 그녀는 75살의 ‘할머니’ 탐정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을 모티브로 썼다고 말한 만큼 비슷한 점이 눈에 띈다.
친근하면서도 어렵지 않은 글래디 골드라는 캐릭터는 너무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그저 그런 평범함으로 더욱 흥미롭게 느껴지는 캐릭터였다.


<카사노바 살인사건>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글래디 뿐만 아니라 모두 흥미롭다.
나이가 다들 70대라고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아니, 할아버지 할머니 맞아?”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그들은 젊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에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그동안 보지 못하였던 색다른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

글래디가 중심이 되어 그녀의 친구들과 사설탐정을 차리고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은 어딘지 재미있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너무 친근하게 느껴져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엉뚱한 상상을 일으킨다.

 

  이번 책의 중심사건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나이는 많지만, 어쨌든 이 두 분은 서로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부르며 사랑하는 사이였다.
(이 책에서는 황혼의 로맨스가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황혼의 사랑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그런데 어느 날 줄리엣, 즉 에스더가 쟈쿠지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녀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명이 다하여 죽었다고 하지만,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 에스더의 남자친구가 수상하다며 글래디와 그녀의 친구들에게 의뢰를 해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의뢰를 받고 진지하게 온 신경을 의뢰받은 일에 신경을 쓰며 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 그녀들은 종횡무진 했어야한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책을 읽을 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그녀들의 독특한 수사방법에 빠져 이리저리 끌려 다니게 된다.
만약, 이 책이 일반 추리소설과 똑같았다면 이렇게 재미있지 않았으리라.
황혼의 ‘걸’ 들이 사건을 위하여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그녀들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싶을 만큼 엉뚱하고 기발한 방법으로 사건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며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깜짝 놀라기도 한다.
‘유쾌한 미스터리’ 라고 책 표지에 써놓았듯이 그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독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확실하게 알려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 아닌가 한다.

  <카사노바 살인사건>에서 재미있는 것은 단순히 그녀들의 즐거운 추리수사뿐만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그녀들은 ‘노인’ 이라는 신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게 사는 모습을 보여 준다.
사랑을 하고 젊은 사람들처럼 남자의 이것저것 따지기도 하고 심지어 뻥 차주기까지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잘되지 않으면 비 내리는 거리를 우산 없이 걸어 다니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여전히 여자이고 남자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탐정 글래디골드시리즈는 이번이 세 번째로 출간되는 것이다.
앞서 출간돼 시리즈는 읽어보지 못하였지만 작가 리타 란킨이 만들어낸 상황과 인물들은 꼭 한번 읽어봐야지 하고 마음먹게끔 만든다.
‘친근함’을 무기로 내세워 활동하는 사람이 맞나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안목과 수사력에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또 그건 그것대로 충분히 이 책을 매력 있게 만들어 준다.

각각 맡은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는 글래디 골드와 글레디에이터들을 보면 늙는 것도 이렇게 늙을 수만 있다면 멋진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쾌한 추리소설’과 ‘황혼의 멋’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는 이 책은 두 마리 토끼 모두 잡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P493: 늙는 것이 죄라고 누가 말했나?
노년의 시간은 드물게 찾아오는 달콤함과 사랑 그리고 수많은 고통으로 가득 차있지만 언제나 놀랄 일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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