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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아메리카
수잔 손택 지음, 임옥희 옮김 / 이후 / 2008년 7월
평점 :
2번의 암과의 투병과정조차 거뜬히 이겨냈던 그녀가 2004년 12월 골수성 백혈병으로 결국엔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는 비보가 전해졌을 때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이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던 그녀였던지라 그 충격과 허탈함은 더 했을 것이다. 『인 아메리카』(임옥희 역, 이후, 2008)에는 인생의 마지막 무대에 직면한 ‘인간’ 수전 손택의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있다.
손택에게 삶을 향한 저 가열찬 몸짓 외에 하나의 거대한 욕망이 있었다면 그럼에도 불구 그것은 예술이었다. 이는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그녀의 글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이미 명확히 드러난 바 있다. 손택은 단언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감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글의 마지막 문장은 또 어떠했던가. “해석학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의 성애학(erotics)이다.” 수많은 강연과 저술 일정 중간에도 짬짬이 연극과 춤, 영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것도 필경 그 같은 연유에서였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별했던 것이 문학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손택이 이제는 “자신에게 정말로 소중한 일”을 하고 싶다고, 특히 소설을 많이 쓰고 싶다고 소망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두 번째 암과의 투쟁 당시 손택이 몰두했던 것도 소설인데, 그 책이 바로 『인 아메리카』다. 자궁육종치료까지 뒤로 미룰 정도로 그녀는 이 작품에 적지 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손택으로 하여금 그토록 예술을, 문학을, 소설을 간절히 욕망케 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문학은 자유다」에서 손택은 스스로를 “저는 이야기꾼입니다”라고 선언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인 아메리카』에서 손택은, 작품 속 여주인공의 입을 빌어 “예술을 위한 삶을 살았던 것은 특권이자 축복이었다”고 말한다. 평론가 강유정은 소설이란 장르가 “대답이라기보다 공모나 위안”이라고, 즉 “소설은 답이 아닌 위안을 준다”고 압축적으로 정의내린 바 있는데, 이 설명이 손택의 경우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실제로 손택은 “할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고 토로하고 있다. 왜 ‘이’ 이야기가 아니라 하필이면 ‘저’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그녀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긴 여정이라 할지라도 어딘가에서 시작해야 한다.” 때문에 손택은 결코 글쓰기를, 소설을 멈출 수가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녀가 왜 그리도 생을 갈망했는지 공감하게 된다.
『인 아메리카』에서 손택은 “민족의 상징”이었던 폴란드 실존 여배우 헬레나 모드제예브스카의 미국 이민 여부를 둘러싼 논쟁을 다룬다. 여기서 손택은 “누가 옳고 그른가에 관한 논쟁”에서 해답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다음 날이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고, 그러다가도 또 다음날 아침이면 완전히 마음이 반대로 바뀔 수가 있다. 모두헬레나가 왜 폴란드를 떠나려 하는지 궁금해 한다. “남들은 이유가 필요하다.” 조국이 서구 열강들에 의해 지배되고 분리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저항 운동에도 참가했던 헬레나가 미국에서 유토피아적인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서일 수도, 미국 무대에 서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행 직전 헬레나는 푸리에 식의 사회주의 유토피아에 대한 생각을 잊는다. 대신 셰익스피어를 떠올린다. “셰익스피어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그녀에게 셰익스피어는 곧 아메리카를 뜻한다. 그렇게 하여 헬레나는 아메리카로 갔다.
“미국은 대량학살 위에 세워졌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던, 그래서 미국 내에서 ‘반역자’로 매도되기까지 했던 손택의 입에서 느닷없이 아메리카가 모든 것을 의미한다니, 의아해진다. 하지만 여기서 손택이 가리키는 ‘아메리카’는 과거다. “과거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큰 나라다.” 그 때 “미국은 단지 또 다른 나라가 아니었다.” 그 때 미국은 세계사의 정당한 진로로서 창조된 ‘미국’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유토피아 공동체 건설에 실패한 헬레나에게서 보듯, 결과적으로 유토피아는 실패했다. 흥미로운 것은, 유토피아를 공간적 맥락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손택의 주장이다. “유토피아는 공간의 일종이 아니라 시간의 일종이다. 어디에도 아닌 이곳에 있고 싶다고 느끼는 그 짧은 순간, 모든 유토피아들은 너무나 짧은 찰나다.” 결국 『인 아메리카』의 ‘미국’은 좋았던 그 때 그 시절의 아메리카로 귀결된다.
실비아 플라스의 죽음, 보다 정확히는 자살을 지켜보아야 했던 지인 알프레드 알바레즈는 학창시절 자신의 물리 선생님의 말을 쉬이 잊지 못했다. “누구든 목을 베어 죽으려는 사람은 언제나 세심하게, 먼저 자기 머리를 자루 안에 넣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끔찍한 혼란이 남게 된다”던. ‘존재하기를 멈추기’ 얼마 전 손택은 간호조무사에게 몸을 기댄 채 “내가 이제 죽나 봐요”라는 말과 함께 울음을 터뜨리며 너무도 무력하게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실비아 플라스와는 달리 손택은 코앞에 닥친 가혹한 죽음의 현실 앞에서 결코 초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두 권의 책에서 자연스레 우리는 그녀의 이름 앞에 그 어떤 수식도 붙지 않은, 다만, 그저 ‘인간’ 손택의 모습을 그려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