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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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실린 여론 조사. 거기에서 구체적 상징들의 힘을 발견한다. 신을 모욕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고 생 각하나 십자가에 침 받는 일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십자가를 인조 음경으로 사용할 사람의 수는 아마도 더욱 적었으리라) - 탈영은 하고 싶어도 국기를 밝고 싶지는 않다. 어린 시절에 존중해야 한다고 주입당했던 사물들의 신성한 성격, 그리고 꼭 그만큼, 사람들이 보고 만지는 사물의 위력. 그것을 위반하는 것은 즉각적이 고 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침해이다. 말과 사상에는 동작이, 행동이 사물에 대해 갖는 힘이 없다. 적을 해치고 싶다고 쉽게 소원하지만, 인형을 집어서 그러한 해악을 구현하기 위해 바늘로 찌르는 행동은 대부분의 사람에 계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인데, 미신에 대한 경멸 때문이라기보다는, 위반 이외의 다른 목적성은 없는 동작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 P42

교육 시스템이 제공하는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계급에 따른 문화 자본의 차이가 어떻게 사회적 지배 관계의 재생산에 작용하는지 뼛속 깊이 체험했던 에르노는, 떠나온 계급과 새로이 진입하게 된 계급 사이에서 찢김과 모색의 시간을 보낸 뒤,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객관적 분석에 이르게 되고, 그 결과 자신을 상향 계급 이 탈자 혹은 계급 종단자라고 거침없이 규정한다. - P59

오히려 피지배 계급에서 지배 계급으로 이동한 자신의 현실과 자기 부류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언어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벼려 낸 무기인 셈이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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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을유세계문학전집 13
에밀 졸라 지음, 최애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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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베르틴 부부에게 입양된 앙젤리크는 ‘황금빛 전설’이라는 책을 보고 자라며, 자신은 왕자님과 결혼할 것이라는 꿈을 꾸며 산다. 어느날 오트쾨르 예배당에서 마주친 남자와 반하게 되는데, 유리 채색공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속인 그 남자는 주교의 아들 펠리시앵이었고, 운명적으로 자신을 찾아온 왕자와 결혼을 해야겠다는 신념에 매달린다. 펠리시앵은 주교가 정해놓은 정략결혼 상대가 있어, 주교는 그들의 만남을 단호하게 반대하고, 위베르틴 부부도 분수에 맞는 결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방해공작을 벌이지만, 위독한 상사병에걸린 앙젤리크가 죽어가기 직전, 교주는 기도로 그녀가 되살아나는 하느님의 뜻이 있다면 그들의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하자 앙젤리크는 기적같이 살아난다. 결국 결혼식을 올리게 되지만, 행복의 정점에서 펠리시앵과 키스를 나눈 앙젤리크는 숨을 거둔다.

에밀 졸라가 냉소적인 관점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이기 때문에, 아무리 번역자가앙젤리크를 순수하고 가녀린 여성으로 오역하려 애써도, 나는 졸라의 앙젤리크에 대한 빈정거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어를 못하기 때문에 원문을 읽어볼 수도 없을 것이고, 원제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지도 모르지만, 제목에 쓰인 ‘꿈’이라는 것은 망상이라는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그녀는 오직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속에서만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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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노벨문학상은 작가들의 개인적 감성에서 보편성을 찾는 글쓰기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 같다. 보다 내밀하고 수치스러울 수도 있는 은밀한 속내를 솔직하고 일반적인 감정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작가들이 유능하다고 평가받는다. 이해는 안 가지만 이게 시대의 흐름이니…

지난여름 나는 크누덴과 다시 마주쳤다. 그는 음악교사가 되었고, 결혼했으며, 아이가 둘 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내 삶에는 이룬 것이 별로 없고, 이제 나는 매일 저녁 이곳에 앉아 있다, 그리고 나는 두렵다, 불안이 엄습해 온다. 어째서 내가 이런 불안감에 시달리는지 모르겠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이 불안감 탓이다. - P33

나는 불안감을 느끼며 글을 쓴다. 나는 내 삶에 이룬 것이 별로 없다. 그리고 지난여름 나는 크누텐과 다시 마 주쳤다, 그는 음악교사가 되었다. 크누텐의 아내. 내겐 특기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나는 실업자고, 수입이 없 으며, 정말로 가진 것이 얼마 없다. - P34

나는 지난여름 크누텐과 마주쳤다. 그와 몇 번 마주친 후로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다. 나는 그의 아내를 몇 번 보았는데, 그녀는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고, 내 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날 본 듯하지는 않다. 나는 방 안쪽에 숨었다. 외출을 기피하는 이 괴벽은 토르셀과 내가 마을 축제에서 연주했던 밤 이후에 찾아왔다. 그날 저녁 이후로 나는 밖을 다니지 않는다. 크누텐은 옛 동창과 춤을 준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모 르겠다. 불안감이, 끔찍한 불안감이 날 엄습한다. 이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불안감을 견딜 수가 없다.
오직 이 불안감으로 인해 나는 글을 쓴다. 나는 모르겠다. 지난여름 토르셀과 내가 마을 축제에서 연주하고 난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나는 마당에 서 있었다. 크누텐에 대해서든, 그의 아내에 대해서든 딱히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서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전날 밤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래쪽 길가에 크누텐이 보였다, 그가 날 보았고 나는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는 오직 가볍게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그리고 크누텐 은 그건 모두 다 옛일이야, 저 친구는 우릴 봤음이 틀림없어, 분명 모든 걸 알고 있을 거야, 그건 문제될 게 없 어, 그렇지만 그때, 그 여자아이, 이제 더는 원하지 않아, 그러니까 그냥, 할 수 없어,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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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정말 프리라이팅을 한 것들을 모아서 묶은 책인 것 같다. 그래서 실망스럽다기 보다는 프리라이팅의 중요성이 진심으로 와 닿았다.
(직업이 쓰는 일이 아니더라도)뭐라도 하루에 조금씩 아무것이나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었다.

학생 때는 A4용이 한 장 정도 분량의 글쓰기가 고통스럽지는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문장 두 세개 쓰는 것도 어렵고 고통스러워졌다. 옛날엔 뭐든 쓰는 일이 많았는데, 일을 시작하고 난 뒤로는 ‘재기안’, ‘재작성’해서 숫자만 고치거나, ‘복붙’으로 중요한 단어 몇개만 수정하고 마니 점점 쇠퇴해가고 있던 거다.
항상 다짐만 하지만, 그래도 뭐라도 쓰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또 다짐이라도 해본다…

자는 것은 힘이다. - P11

어제 위에 오늘을 겹친 뒤 불을 켤 수 잇는 라이트박스가 있다면 더 나은 오늘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 P25

글과 그림은 생각 이후에 가능한 활동이라고 여겨왔다. 이제는 아니다. 쓰고 그리는 과정이 곧 생각이자 생각의 기술임을 알게 됐다. - P49

리뷰나 후기, 요약본으로 대체될 수 없는 시간의 영역, 다짐의 영역이 있었던 거다. 실제로 이 책을 완독한 이 후 책 내용과 더불어 그 책을 읽으며 통과한 ‘시간‘이 그대로 내게 새겨져. 지금도 잠을 소홀히 하지 않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 P53

활동이 수월하려면 여유 공간이 필요하구나
일주일에 걸쳐 대대적인 작업실 정리를 끝내고 여유의 힘을 극적으로 체험하고 나니, 정신적 공간도 물리적 공간과 마찬가지 아닐까 싶어졌다. 생각을 정리하고 비워 내야만 생각을 더 잘 할 수 있었다. - P55

프리라이팅은 창작 활동이라는 측면에 더 초점을 맞춘 글쓰기다. 방법은 간단하다. 10분간 멈추지 않고 뭐라도 걔속 써 보는 것. 그러면 그다음부터 술술 쓸 수 있게 된다. - P65

현대사회의 근본적인 가설부터 잘못되었다. 불편을 최소화하고 행복을 최대화하려는 노력 자체가 노화를 가속하고 있다. - P68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이 아니라 자기 가치관으로 자신을 규정할 때, 사람들은 새로운 증거가 제시될 때마다 자신의 기존 관행을 수정, 보완하는 유연성을 가질 수 있다. - P80

글로 남겨 둔 예전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다르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다. 달라진다는 것은 변화한다 는 것이고 변화한다는 것은 살아 있음의 방증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보자면, 변화하면 살아 있게 되는 것이 다. 언젠가 내가 쓴 글들이 부끄러워지는 날이 오면 내가 그 글들을 닫고 나아갈 수 있었음에 감사해야 마땅하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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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어떤 갈등이 촉발될까라는 설정이 상당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고통이 사라진 사회에서 고통을 신성시하는 사이비 종교의 등장으로 발생하는 사이비 범죄에 대한 내용이었다. 기발한 상상력이 사이비 종교에 대한 혐오로 점철되는 소설이 되어버려 아쉽다.
이 작가의 소설은 상상력이 특출나지만 장르소설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심오한 문제의식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기대에 살짝 미치진 못했지만, 그래도 종종 챙겨보고 싶은 작가이다.

그들은 도스토옙스키를 읽고는 고통을 겪지 않는 인간은 신의 구원을 갈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고통이 없는 상태가 죄악에 빠진 상태보다도 더욱 무서운 타락이라는 주장을 수긍했다. 그들은 통증의 신체적 감각뿐 아니라 고통에 수반되는 두려움, 절망감, 모멸감, 자괴감, 분노 등의 정서적 반응에도 주목하며 이것이 영혼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고봉은 곧 영혼이자 인간의 정수이고, 고통의 근절은 영혼의 멸절이자 신에 대한 거부이며 구원에 대한 모독이었다. - P18

중독되지 않고 내성이 생기지 않는 강력하고 안전한 진통제의 등장은 고통의 개념, 통각의 문화를 서서히 그 러나 확신하게 바꾸었다. 통증은 그 부위나 정도와 관계없이 참는 것이 아니라 간단하게 조절하거나 퇴치하는 것으로 변했다. - P18

그리고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삶의 의미. 그 삶이 고통이라도, 거 기에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다면 사람은 어떻게든 견뎌낸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오래 지속되면 고통을 견 며내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된다. 삶의 의미를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더 건강하고 자학적이지 않은 방식으 로 찾을 능력과 자원은 이미 고통을 견디는 데 소모되어 사라진다. - P19

거기에는 초월도 깨달음도 없었다. 그저 인간의 신체에 대한 이해가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신체를 갖는다는 것은 욕구의 발생과 그것의 한시적인 충족이 반복되는 생존의 투쟁이며 그 모든 과정 자체가 또한 고통이라는 쓸쓸한 결론이었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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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2-31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입부만 읽다 쉬고 있는데 충분히 강렬한 소설이었어요. 틈새를 타서 종교와 범죄가 사람들을 교란하는 내용이군요. 다시 책 펴야 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