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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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를 참 싫어한다.
덮어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자성의 소리를 담고 있고, 냄비같은 대중들에게 각성을 호소하고 있으며 고통과 공감에 대한 무지를 일깨워 준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이끌려 ‘끼리끼리 공감 만 가능해진 지금, - P5

볼 권리나 볼 자격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눈으로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그런 죄악감을 안고도 마 지막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 P7

어느 분야에서건 수요와 공급은 서로를 북돋고 창출해 낸다. 무엇이 먼저였든, 언론은 오늘도 안방의 브라운 관 앞까지, 손안의 스마트폰 화면 앞까지 고통을 질질 끌어다 놓는다. - P10

목격은 눈으로 직접 보는 일이고, 구경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보는 일이다. 둘 다 보는 일이지만 목격이 가 치중립적이라면, 구경할 때 눈은 홍밋거리와 관심거리를 찾는다. - P16

10.29 참사 당시 촬영된 영상이 증언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다름 아닌 구경꾼들의 존재. - P16

온갖 각도에서 찍힌 동영상이 보여주는 정보는 카메라 앞에서 일어나는 참상만은 아니었다. 이 영상들이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었던 건 카메라 뒤에서 일어난 일과 카메라 뒤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 P16

영상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에는 피해자들의 초상권과 더불어 촬영자들의 태도가 큰 영향을 줬다고 본다. 구조 인력이 절실했던 상황에서 충분히 도울 수 있는 거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촬영자들이 구조 대신 촬영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보는 이들을 괴롭혔다. - P17

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는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대를 통해 느슨한 공동체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동하여 비슷한 아픔을 막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살펴보고, 누가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알아내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파헤쳐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게 동료 시민의 역할이다. - P22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범죄자들은 점점 진화하며 레벨업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 P36

피해자의 인권은 범죄가 발생한 순간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렸는데 사법부가 최대한 지키려는 건 엉뚱하게 도 피의자의 인권뿐인 것처럼 보인다. - P38

날씨가 재해와 연결될 때는 어떻게 하면 ‘가장 위험해 보이는 상황‘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을지‘에 초점이 맞 춰진다. - P45

카메라는 날씨가 만들어낸 풍경의 평균치가 아니라 극대치를 포착한다. - P45

그럴 때마다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할 게 뻔한데도, 혹은 느리게나마 변화가 오더라도 여기까지 닿지 못할 수 있는데도 그의 고통을 속속들이 보여달라고 하여 기록하고 알리는 일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무례하고 염치없 는 일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눈치했다.
그저 고통의 착즙기처럼 한 방울까지 쥐어짜고 있다는 자각. 약자를 대변하겠다는, 접지만 남아빠진 기자스러 운 다짐은 어쩌면 약자에게 목소리를 빼앗겠다는, 그들의 말을 고르고 편집하여 내보낼 권한을 양보하지 않겠 다는 말의 위선적인 버전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 P48

흔한 사고일수록, 어디서나 보이는 사고일수록 그 고통을 보는 일에 능숙해지고, 주기적으로 비슷한 소식을 들은 나머지 거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결국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계속 일 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패러독스에 빠진다. - P53

흔한 고통은 문제가 아닌 문화가 되어 사회 안에 천연덕스럽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통계는 이 기사 저 기사에 인용되며 산업재해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보여주기도 하지만, 잘 정리된 숫자 속으로 진짜 이야기 들을 빨아들여 감춰버리기도 한다. - P53

쉬는 걸 보이지 않아야 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고쳐져야 하는 건 보이는 인프라나 환경만이 아니라 이들을 어둑한 땅속으로 밀어넣고서 깐깐한 고용주라도 된 것처럼 노동과 쉼을 고작 자신의 눈에 띈 장면만으로 평가 하는 무례함이다. - P71

개인의 프로필을 중심으로 한 소셜미디어를 주축으로 뉴스의 소비가 극도로 개인화되고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효과(폐쇄된 환경에서 유사한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소통하며 기존의 신념을 증폭하거나 강화하는 현상)에 갇히게 된 시대다. 나에게 심리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와닿지 않는 뉴스는 점차 존재하지 않는 뉴스나 마찬가지가 되어가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나에게 ‘신경 쓰이는‘ 뉴스만이 가장 중요한 뉴스가 되는 것이다. - P84

<공감의 배신>에서 폰 블륨 Paul Bloom이 이야기 했듯, "공감은 형편없는 도덕 지침"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공감은 지금 여기 있는 특정 인물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스포트라이트"와도 같아서 "그 사람들에게 더 마음을 쓰게 하지만, 그런 행동이 야기하는 장기적 결과에는 둔감해지게 하고, 우리가 공감하지 않거나 공감할 수 없 는 사람들의 고통은 보지 못하게 한다." - P84

세상의 변화는
연민보다도 자유로운 개인들 사이의 예기치 못한 화학작용으로 발생한다. - P134

사람들은 여러 방식으로 고통의 이미지와 관계를 맺는다. 가장 즉각적인 반응 중 하나는 연민이다. 사진 아래 고펀드미GoFundMe 링크, 계좌번호나 이체가 가능한 ARS 번호 등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적혀있다면 우 리는 구원자나 조력자의 위치에서 다소 편안하게 연민을 소화해 낼 수 있다. 때로 우리가 그들에게 무언가 해 줄 수 있다는 효능감은 거리감과 정보 부족, 어긋난 문화적 맥락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 다. 그러나 포착된 고통이, 이 술한 장벽 속에서 겨우 기록자의 눈에 띄었던 고립된 파편일 뿐이라면 어떤가? - P138

말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남의 사정 같은 건 없다.
인종과 언어, 계급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소통의 무한한 불가능성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 P141

일단 보도의 영역으로 넘어온 애도는, 더 이상 사적인 애도만이 아니게 되었다. 대형 사고 현장이나 병원 응급 실, 장례식장처럼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장소로 일이 나를 떠밀 때면, 유족을 만나 긴말을 보태고 살을 끓여도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언론사가 판단한 어떠한 이유로 죽음에 대해 세상에 알 리고 싶으며, 당신이 겪고 있는 상실에 대해서도 우리가 찍고 말하겠다는 말. 당신의 고통을 보여달라는 말. - P143

파편으로밖에 남을 수 없는 외로운 사적 애도를 위해 공동체가 함께해 줄 수 있는 일은, ‘왜‘, "무엇을, ‘어떻 계‘와 같은 구성성분이 제자리를 찾도록 하여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것 정도다. 공적 애도에서 진상 규명과 책 임자 처벌이 자주 화두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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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매일을 헤엄치는 법 - 이연 그림 에세이
이연 지음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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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한번 봐야겠다

"제게도 바보 같은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시절이 하나도 바보 같지 않더군요." - P5

다정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런 나도 전에는 다정에 의식적인 훈련을 필요로 했는데 현재는 자 율신경의 영역으로 넘어가서 딱히 큰 자각 없이도 친절을 베푸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 P79

모든 것이 영원한 세상에 과연 아름다운 게 있을까? 아름다움을 누리는 만큼 허무는 그에 따르는 필수적인 감 정이다. 의미로만 가득한 삶은 되레 무겁지만 않은가. - P191

기억력은 머리가 똑똑한 거랑 관련 없을지도 몰라.
오히려 다정함에 기반하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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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회복탄력성 (리커버) -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마음 근력의 힘
김주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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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긍정이라는 자기최면을 종용하는 작자들이 살아있다는 현실이 슬프다.
‘장애를 지닌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인물’(17p.)이라는 엽기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21세기에도 장애가 불행이고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구시대적 가치관을 자랑하는 사람이 교수로 재직 중이라니 충격적이다. 링컨 대통령의 과거인 시골 변호사라는 직업을 두고 ‘보잘것없는’(11p.) 직업이다라는 편견을 서슴지 않게 드러내는 저급한 도서이다.
특히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에 담긴 위험한 사고방식이 공부의 내적 보상을 간과한다는 점이라고만 말하는데, 이 작자는 직업을 차별하고, 사람의 가치를 서열화된 직업으로 판단하는 자신의 사고방식이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나 보다.
본인의 편협한 시각으로 문제의식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거의 코미디 수준이다. 운동과 모든 일에 감사하는 인생낙관.
연구라는 것이 그렇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 만한 내용을 아주 힘들게 조사하고, 의미없는 숫자를 생산해서 증빙해야 그 상식이 타당성을 갖게 되는 것. 논문으로만 남았으면 다행인데, 책으로 출간해 일반인들에게 소개된 것이 안타깝다.

이 교수에겐 평생 비교의식에 고통받으면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불행한 인생의 종착지를 찾아 나가길 바란다. 그게 그의 행복일 테니까. 다만 자신의 보잘것없는 편견을 드러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기 전에 자기 자신을 검열하는 습관은 필요해 보인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보다 나은 세상으로 변화되어가기를 원한다면 인간을 독립변수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 다. 물론 사회적 구조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구조만 바라보면서 모든 탓을 구조로 돌 려서는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 인간이 정치-사회적 조건에 의해서 얼마나 영향을 받는 지만 살펴볼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이 사는 정치-사회적 조건에 어떻게, 언제, 얼마큼 영향을 미칠 수 있 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한 개인이 그가 몸담고 살아가는 사회적 구조를 변화시켜가려면 강력한 회복탄 력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 P9

그 어떤 시련도 없었더라면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칭송받는 링컨도 보잘것없는 시골 변호사로 생을 마감했 을 것이고, 처칠 수상은 평생 자그마한 사업이나 운영했을 것이며, 이순신 장군은 이름 없는 말단 장군으로 전 전하다가 정년퇴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 P11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제대로 성장해나가는 힘을 발휘한 아이들이 예외 없이 지니고 있던 공통점이 하 나 발견되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그 아이의 인생 중에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엄마였든 아빠였든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이든 간에, 그 아이를 가까이서 지켜봐주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서 아이가 언제든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던 사람이 적 어도 한 사람은 있었던 것이다. - P28

긍정성을 습관화한다는 것은 뇌를 긍정적인 뇌로 바꿔나간다는 뜻이다. - P36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는 스스로 민감하게 알아차 리는 뇌를 지닌 사람들이다. 설령 실수를 범한다 해도 실수로부터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이 들어 있는 뇌를 지닌 사람들이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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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가부장제의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아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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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유쾌하고 읽는 내내 즐거웠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조금 신기하다. 성인으로서의 첫해를 시작했을 뿐이면서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가장 명징하게 생각하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서른보다 마흔에 더 가까운 나이가 된 지금도 나는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이 어색한데, - P25

이혼 이후 많은 사람이 내가 실패하길 바랐다. 나를 실패라는 틀 안에 가두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 다 르게 나의 사랑도, 인생도 실패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의 이혼은 무엇의 실패일까? 나는 명확히 말할 수 있 다. 이건 가부장제의 실패다. 한 집안의 가부장제가 균열을 일으키다 무너진 것이다. 더 이상 우리는 이혼이라 는 사건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이혼은 한 여성의 인생을 무너뜨릴 수 없으며, 결혼과 이혼으로 우리를 협박하 고 옭아맬 수 있던 시대는 이미 붕괴되고 있다.
실패한 사람은 없다. 실패하고 무너지는 것은 오직 퀴퀴한 냄새를 뿜어내는 낡은 사고방식과 제도뿐이다. - P62

이혼 경력직으로서 말하자면, 이혼을 종용하는 건 다른 누군가가아니라 그 가정의 불화다. 누가 나에게 이혼 을 하라고 암만 고사를 지내도 내가 속한 가정이 행복했다면 ‘뭐래?‘ 하면서 보고 넘겼을 것이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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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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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것을 자칫하면 피해자를 연민하고 시혜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자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헬렌 캘러가 우생학을 지지했다고 밝히며, 그럼에도 그를 ‘박제된 영웅‘이 아닌 장단점을 가진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싶다는 서술은 제목을 보고 오해했던 나에게 더 큰 확신을 심어주었다.
외국인이나 HIV 보균자에 대한 한국인들의 설문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외국과 비교되는 수치도 문제지만 통계가 시사하는 바가 더 충격적이다. 당당하게 그들과 이웃이 되기 싫다고 표현하는 한국사람들은 외국인을 차별하거나 성수수자를 혐오하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랬고, 그를 지지하는 깨진 자들이 그랬다.)
스스로 차별주의자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자신의 발언에 사과도 없었던 이 나라의 수장이 그들의 차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래서이 시점의 시대정신은 이러한 차별과 비교를 정당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지만, 책속의 인터뷰이의 말처럼 타인의 고통에 무심한 것이 기본값이라는 생각을 가져야만 이 사회를 경멸하지 않을 수 있나.(이 책의 목적과는 상반되는 주장이다…)

논문을 쓰다 보면,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다지 놀랍지 않은 상식에 가까운 결론을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문현을 읽고 정리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고도 우리가 가닿는 자리에는 종종 불확실성이 섞여 있다고. 그리고 논리적 엄밀성을 추구하는 학계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어서, 급격하 게 변화하는 현실을 사후적으로 분석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고 그조차도 온전히 해내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 P10

무엇보다 장애인을 위한 작업환경 모델의 개발과 확산이 절실하다. ‘다른 몸‘을 고려하지 않고 비장애인의 몸 에 맞춰 디자인된 작업환경에서 장애인은 필연적으로 무능한 존재가 되고, 사업주는 그들을 규제 때문에 떠맡 은 짐처럼 여기게 된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 일터에 대한 수많은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정 부 차원에서 그 성과를 현실에서 적용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 - P15

시스젠더cisgender(출생 시 법적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가 아닌 인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시스젠더 여성은 트랜스젠더와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강자이고 기득권자일 수 있다. - P16

타인의 삶을 내 경험에 따라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일은 고 황현산 선생님의 책 제목처럼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고 자기 경험치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전선은 하나가 아니다. - P17

자신이 가해자일 수 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모인 ‘합리적인‘ 사회만이 누군가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릴 수 있지요. - P24

시스젠더만을 정상적인 몸으로 취급하는 성별 이분법의 사회에서는 트랜스젠더와의 관계에서 기득권일 수 있습니다. - P24

모든 인간은 특정한 맥락에서 가해자가 될 수 있다. - P24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 사건에서 저는 두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과연 입학 반대를 외치던 여성 들이 주장하는 ‘생물학적 여성‘은 과연 그들의 주장처럼 명확하고 단단한 개념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 P24

한 사회가 표준이라고 여기던 몸은 항상 기득권의 것이었습니다.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할 필요가 없던 기득권 은 소수자의 몸을 두고 매번 인간의 자격을 따져 물었지요. 그렇게 백인은 흑인이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지 물었고, 남성은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아도 되는지 따졌고, 이성애자는 동성애자의 존재가 질병인지 질문했습 니다. 하지만 가장 필요한 질문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를 향해 던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나는 정상인가? 그렇 다면 정상의 의미는 무엇인가?"라고요 - P25

내가 하는 일에서 작은 잘못이라도 찾아내려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고혈압, 우울증, 심장병 을 비롯한 수많은 질병을 유발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가장 크게 증가시킨다는 것입니다. - P28

인간의 두뇌는 외부 자극을 범주화해서 이해하며 진화했습니다. 인간이 처음 사자와 호랑이를 봤을 때는 그 대상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에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험이 반복되면, 사자와 비슷 한 생명체를 봤을 때 인간의 두뇌는 그것을 맹수로 분류하고 위험한 동물이라고 판단합니다. 그에 따라 도망 치거나 싸우는 행동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러한 판단이 빠를수록, 또 무의식적 수준에서 즉각적으로 이루어질 수록 생존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인간 두뇌에 깊이 새겨진 고정관념에 기반한 편견이 활성화되는 과정은 생존 하기 위해 수많은 외부 정보를 인지하고 처리해 온 과정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 P29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매우 심각하다는 점과 한국인은 인종차별 성향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 검열과 긴장이 부족한 나라라는 점입니다. 인종별 거주지 분리가 심각한 미국 사회에서, 같은 질문에 "받아들 일 수 없다"라고 응답한 5.6%가 실제 미국인의 속마음을 반영하는 숫자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5.6%는 적어도 누군가 그런 질문을 했을 때, 인종차별주의자로 여겨지고 싶지 않은 미국 사회의 긴장을 반영 하는 숫자라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는 그 긴장조차 부재한 것이지요. - P30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교사가 학생이나 학부모와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 학교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그 원인이지요. 모든 교사가 선하지는 않고 모든 학생이 선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불완전한 존재들이 모인 공 동체가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시스템의 문제점을 상세히 따져보지 않고 교사 개인과 학생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직관적이고 쉬운 일입니다. 그만큼 폭력적이고, 또 그만큼 문제 해결로부터 멀어지는 길이기도 합니다. - P32

한 인간이 이상을 좇아 떨쳐 일어날 때마다, 다른 이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행동할 때마다. 불의에 맞서 싸율 때마다, 희망의 작은 물결ripple of hope이 세상에 보내진다. 그렇게 쌓인 물결들은 억압과 차별이라는 가장 강력한 장벽조차 무너뜨리는 파도를 만들어 낸다." - P34

플라톤은 "동등하지 않은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만큼 불공정한 일은 없다"라고 말했다. - P40

실제로 당사자가 벽장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으면, 낙인이 줄어들기 어렵다. - P46

어떤 사람이 동성애자를 혐오하더라도, 옆자리에서 일하는 동성애자에게 당신이 역겹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 점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만남은 힘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혐오 발언을 막고, 장기적으 로는 동성애자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 P46

낙인의 교차성 연구이다. 누군가의 등에 올라타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질환이 약 물중독보다는 낫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렇게 약물중독인 사람을 비하하는 방식으로 정신질환 낙인을 줄이려 하면 안 된다. ‘정신질환자는 약물중독자나 HIV 감염인과 다르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설사 정신질환 낙인 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화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P47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부재하고, 국민건강보험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을 수 없고, 동성결혼이 불가능하고, 아직 까지도 군대에서 동성애자를 색출해 처벌하는 일이 발생하는 나라에서 그런 질문이 나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성소수자를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 이 겪는 차별이 실재한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종종버겁다. - P52

기관에서 사후 조치를 한다고 해도 민원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 관에서 어떤 식으로든 사후 조치를 할 경우 구급대원은 내가 속한 조직이 내 편에 서서 행동한다는, 나를 보호 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내가 속한 조직이 내가 당한 폭행을 심각한 일로 인식하고 부당한 현실을 함께 바꾸고자 노력하고 있구나‘ 하고 말입니다. - P75

손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포괄적이고 유연한 개념입니다. - P103

특저어 집단에서 어떤 질병의 유병률이 높다고 그 집단을 병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류이다. - P111

국제,외교 무대에서 동성애 혐오를 외치는 이들이 설 자리는 더 이상 없습니다. - P114

민주주의의 역사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유포했던 이데올로기를 하나씩 무너뜨리는 과정이었습니다. - P114

우리는 타인의 성적 지향이나 인종을 포함한 여러 정보를 이유로 그 사람에 대해 쉽사리 판단하곤 합니다. 스 스로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내가 상대방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고정관념은 편리한 만큼, 그릇된 것 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 P114

오늘날 미국에서는 자신이 속한 조직이 성소수자 친화적이라는 사실이 큰 자랑입니다. - P114

한국의 한 거대 정당은 선거 때마다 ‘동성애 반대‘를 구호로 내겁니다.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 국제적으로 고립 되고 세계적 흐름에서 낙오하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수십 년을 정치인으로 살아온 그들이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진심으로 성소수자를 혐오하거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소수자 혐오를 이 용하는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혐오는 저열한 만큼 편리하니까요. 전자라면 노예제 찬성론자나 여성차별론자 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 맞고, 후자라면 자신이 소수자 혐오를 통해서만 권력을 잡을 수 있는 무 능력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P115

지난 10년간 사회적 합의는 정치인들에게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는 편리한 출구전략으 로만 기능했다. 그렇게 한국의 정치는 후퇴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가 사회적 합의를 대안으로 말하는 경우는 없다. 그것은 기득권의 언어이다. - P121

"이러한 발언이나 선거공약만으로 구체적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일견 합리 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결정은 ‘근거의 부재‘를 ‘부재의 근거‘로 착각한 것이다. - P130

세탁소에 새 옷걸이가 들어왔는데 헌 옷걸이가 말을 걸어요. "앞으로 너는 다양한 옷을 입게 될 거야. 하지만 그 옷이 너 자신이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새 옷걸이가 물어요. 헌 옷걸이는 이렇게 답 해요. "나는 그 옷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옷걸이를 너무나 많이 봤어." 이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는 이유 가 있어요. 검사라는 직업이나 내가 나온 대학, 이런 것들을 벗으면 나에게 남아 있는 건 뭘까. 15년의 검사 생활은 직업이나 학벌 같은 옷을 벗었을 때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고민하면서 보낸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 P140

선하고 순결한 피해자라는 서사는 문제 해결에도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참사,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에서도 피해자들은 항상 세상에서 자신들에게 기대하는 이미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어요. 그로 인 해 그 이미지와 어긋나지만 진짜 자신에게 중요한 것, 필요한 것은 말하지 못하거든요. - P142

나는 ‘장애를 극복한’ 박제된 영웅보다, 오류와 모순을 품고 당대를 살아낸 한 인간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길 원한다. - P151

타인의 고통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러면 조금 침묵하고 기다릴 수 있잖아요. 판단을 유보하고 배워가야지요. 우리가 그만큼 알지 못하니까.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함부로 말하면서 상대방을 모욕하는 데 주 저함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몇몇 정치인은 그 저열함에 기대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어요 - P158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다는 것이 실제로는 그렇게 놀랍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걸 전제로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지 않으면 자꾸 실망하게 되고 세상을 경멸하게 되는 것 같아요. - P163

저는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 빚지고 있어요. 수많은 희로애락과 온갖 일을 겪으면서 기록하고 표현하고 또 이해하려고 애썼던 역사를 저는 아주 일부분이지만 읽고 습득했고, 그 토대 위에서 세상을 보고 있으니까요.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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