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 물욕 먼슬리에세이 1
신예희 지음 / 드렁큰에디터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를 위한 선물‘이란 상투적 표현은 싫지만, 돈지랄은 ‘가난한 내 기분을 돌보는 일‘이 될 때가 있다. - P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빈자의 미학 - 20주년 개정판
승효상 지음 / 느린걸음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쓰레기도 아름답게 포장할 줄 알아야 한다.

침묵의 메타포로 가득 차 있던 그 학생의 작품을 읽으며, 나는 막스피카르트의 말을 기억해냈다.
"살아있는 침묵을 가지지 못한 도시는 몰락을 통해 침묵을 찾는다." - P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브 플랜트 트리플 11
윤치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인칭 컷>
직장 내 회식자리에서 희주는 팀장인 최팀장에게 성희롱을 당한다. 그런데 피해자인 희주대신 사내커플이었던 남자가 가해자에게 사과를 받았다. 희주는 사과를 납득할 수 없고, 가해자의 전보를 요구했지만 회사 방침은 피해자에게 원하는 곳으로 인사발령을 내준다는 것이었다. 회사는 성희롱 당시 가해자와 피해자의 남자친구의 몸싸움이 있었으니 문제가 커지지 않길 바라면 남자에게 희주의 반발을 조용히 잠재우라는 압박도 있었다. 멍청한 남자는 회사의 의견이 합리적이라 생각했고, 심지어 희주가 자기와 결혼해 빨리 회사를 그만두기를 내심 바란다. 희주는 회사를 그만두고는 비혼을 선언한다. 남자는 끝까지 희주의 경고를 눈치채지 못한다. 마치 회식자리에서 성희롱일 발생했을 때, 최팀장의 성희롱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처럼. 말레이시아 여행에서 남자는 계속 커플사진 대신 희주를 관찰자 시점으로 촬영한다. 자기중심적으로 희주만 바라보던 남자는 그제서야 자기 앵글 안의 희주의 시점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완벽한 밀 플랜>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무모한 짓이다. 투어 가이드가 말한대로, 이해하려는 자는 뿔달린 물고기고 이해받아야 하는 대상은 바다거북이처럼, 이해하려는 자가 이해받아야할 대상을 자기 뿔로 찔러 동반 추락하고 마는 꼴이다. 사실 화자의 방식은 누구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자신의 기준대로 상대방의 행동양식을 강요하는 행위이다. 호텔에서 뛰어내려 암흑의 바다를 헤엄쳐 가는 현영을 보며, 화자는 현영이 어둠의 바다처럼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으려는지 모르겠다.

<러브 플랜트>
이혼 후 꽃집을 차린 현준은 결혼 실패 후 같은 건물 은행에 역시나 이혼 후 독신으로 지내는 이미나 차장에게 호감을 표현하기 두려워한다. 이미나 차장의 부하직원인 김정한 대리는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 사적인 질문을 함부로 던지는 사람이다. 현준은 김대리처럼 결혼 전에는 상대에게 쉽게 감정표현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상대만 비난하며 끝난 이혼 소송 후 누군가에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고백하려고 꽃다발을 사려 하면 말리고 싶은 심정인데, 김정한 대리가 술에 취해 자신에게서 산 꽃다발로 이미나 차장에게 막무가내로 고백하는 모습을 목격하며 자신의 과거를 상기하게 된다. 이미나 차장은 그 사건 이후 본사로 발령나며 소식이 뜸해졌지만, 언젠가 주말에 오픈하기 전 자신의 꽃집을 찾아온 이미나 차장을 기억하며 주말에도 일찍 가게문을 여는 습관이 생겼다. 마치 이미나 차장에게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려는 듯이.

연애부터 시작해 결혼 후 이혼까지 이어지는 연작소설 같은 구성이다. 연애에 대해 진심인 작가인 듯하고 <일인칭 컷>에서 받은 임팩트가 강해 차기 작품을 찾아보게 될 것 같다.

"너는 꼭 그래본 적 없는 것처럼 말하네." - P25

그곳에는 ‘경험 많은 선원은 바다를 장담하지 않는 다‘라고 적혀 있었다. - P41

다만 유일한 문제는 괜찮다는 대답이 진심으로 좋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아무래도 상 관없다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P55

"그냥 행복한데 불안하고, 그래서 불행하게 느 껴지는 거. 아니면 반대로 불행해서 편안하고, 그래서 행복한 거. 그런 게 쌓이다가 어느 날 목 끝까지 잠겨버 려" - P60

너한테는 디폴트인 게 다른 사람한테는 아닐 수도 있어 - P72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 상대방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쏟아부을 권리까지 생기는 걸까? 누 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자신에게는 한없이 아름답지 만 그만큼 또 일방적이라 상대방에게는 어떻게 받아들 여질지 전혀 알 수가 없는데 그렇게 함부로 표현해도 괜찮은 일일까? - P75

그러니까 유 책이라는 말은 누구에게 더 책임이 있다는 의미일 뿐이 고 이혼소송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리는 재판이 아니 었다. - P90

"소송으로 헤어지면 바닥을 본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상대방 바닥도 보지만 결국 내 바닥도 보게 되는 거예요. 전 저의 밑바닥을 완전히 봐버린 것 같아요." - P96

예전에는 사랑한다는 말에 반드시 사랑한다는 말로만 대답할 수 있으며 웅당 그래 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사랑 한다는 말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의 줄임말로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나의 방식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의미이 지,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만큼 사랑하겠다 는 뜻은 아니다. 어리석게도 나는 그 의미가 반드시 같 거나 같아야 하는 줄로만 알아서 누군가에게는 사랑한 다는 말을 들으면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닌데 이상하다고 부담감을 느꼈고 누군가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 면 이미 사랑에 충분히 빠졌어야 할 대목인데 너무 부 족하다고 모자람을 느꼈다. 연애라는 게 내가 정해놓은 플롯대로 진행될 수가 없는 것인데 매번 고민할 필요조 차 없는 일로 혼자 괴로워하고 또 상대방을 괴롭혀왔 다. 그리고 그건 사실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했던 게 아 니라 누군가를 사랑하는 내 자신을 사랑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 P1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환락의 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1
이디스 워튼 지음, 전승희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무 정직한 번역체가 읽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일찍 고아가 된 아름다운 여인인 릴리가 결혼에도 실패하고, 친척의 유산상속에도 실패하고, 사교계 안에서 추문에 휩싸이다 결국 노동자로 전락해 남은 빚을 청산하며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는 이야기다. 그녀의 개인적인 불행과, 사람 마음이 다 산만하고 혼란스럽다는 부분은 공감하지만, 그녀의 사고방식과 논리회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당시 결혼만이 삶의 전부였던 여성의 한계에 좌절한 비련의 여주인공을 재밌게 풀어낼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주변 설명이 사교계 등장 인물들 수만큼 너무 복잡하고 장황해서, 한마디로 재미없다.

페미니즘이 자꾸 소설평에 끼어드는데, 망상적인 피해의식이 여성주의의 본질이라 생각한다면 어서 완독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를 키우시라. 다만 그 페미니즘 사이에 버사 도싯의 자리는 어디쯤 위치하는지 설명해 보시길….

그녀는 단지 다른 사람들이 릴리 를 맡겠다고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기 적인 행동을 하는 데는 주저하지 않았어도 남들 앞에서 이기 적으로 구는 것은 견딜 수 없어 하는 일종의 가식적인 도덕적 겸양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나섰던 것이다. - P70

그녀가 파티의 여주인 노릇을 하는 것은 그녀가 남 달리 사람들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 속에 있지 않 으면 자신의 삶을 지속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P78

더욱이 교양의 본능은 적에게 곤란을 주는 것보다 적을 이용하는 데서 더 섬세한 기쁨을 경험하는 법이다. - P242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고통은 절반의 고통에 지나지 않듯 질문을 하는 동정심에는 치유력이 있을 수 없다. - P2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자를 참 싫어한다.
덮어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자성의 소리를 담고 있고, 냄비같은 대중들에게 각성을 호소하고 있으며 고통과 공감에 대한 무지를 일깨워 준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이끌려 ‘끼리끼리 공감 만 가능해진 지금, - P5

볼 권리나 볼 자격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눈으로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그런 죄악감을 안고도 마 지막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 P7

어느 분야에서건 수요와 공급은 서로를 북돋고 창출해 낸다. 무엇이 먼저였든, 언론은 오늘도 안방의 브라운 관 앞까지, 손안의 스마트폰 화면 앞까지 고통을 질질 끌어다 놓는다. - P10

목격은 눈으로 직접 보는 일이고, 구경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보는 일이다. 둘 다 보는 일이지만 목격이 가 치중립적이라면, 구경할 때 눈은 홍밋거리와 관심거리를 찾는다. - P16

10.29 참사 당시 촬영된 영상이 증언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다름 아닌 구경꾼들의 존재. - P16

온갖 각도에서 찍힌 동영상이 보여주는 정보는 카메라 앞에서 일어나는 참상만은 아니었다. 이 영상들이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었던 건 카메라 뒤에서 일어난 일과 카메라 뒤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 P16

영상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에는 피해자들의 초상권과 더불어 촬영자들의 태도가 큰 영향을 줬다고 본다. 구조 인력이 절실했던 상황에서 충분히 도울 수 있는 거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촬영자들이 구조 대신 촬영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보는 이들을 괴롭혔다. - P17

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는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대를 통해 느슨한 공동체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동하여 비슷한 아픔을 막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살펴보고, 누가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알아내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파헤쳐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게 동료 시민의 역할이다. - P22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범죄자들은 점점 진화하며 레벨업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 P36

피해자의 인권은 범죄가 발생한 순간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렸는데 사법부가 최대한 지키려는 건 엉뚱하게 도 피의자의 인권뿐인 것처럼 보인다. - P38

날씨가 재해와 연결될 때는 어떻게 하면 ‘가장 위험해 보이는 상황‘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을지‘에 초점이 맞 춰진다. - P45

카메라는 날씨가 만들어낸 풍경의 평균치가 아니라 극대치를 포착한다. - P45

그럴 때마다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할 게 뻔한데도, 혹은 느리게나마 변화가 오더라도 여기까지 닿지 못할 수 있는데도 그의 고통을 속속들이 보여달라고 하여 기록하고 알리는 일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무례하고 염치없 는 일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눈치했다.
그저 고통의 착즙기처럼 한 방울까지 쥐어짜고 있다는 자각. 약자를 대변하겠다는, 접지만 남아빠진 기자스러 운 다짐은 어쩌면 약자에게 목소리를 빼앗겠다는, 그들의 말을 고르고 편집하여 내보낼 권한을 양보하지 않겠 다는 말의 위선적인 버전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 P48

흔한 사고일수록, 어디서나 보이는 사고일수록 그 고통을 보는 일에 능숙해지고, 주기적으로 비슷한 소식을 들은 나머지 거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결국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계속 일 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패러독스에 빠진다. - P53

흔한 고통은 문제가 아닌 문화가 되어 사회 안에 천연덕스럽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통계는 이 기사 저 기사에 인용되며 산업재해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보여주기도 하지만, 잘 정리된 숫자 속으로 진짜 이야기 들을 빨아들여 감춰버리기도 한다. - P53

쉬는 걸 보이지 않아야 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고쳐져야 하는 건 보이는 인프라나 환경만이 아니라 이들을 어둑한 땅속으로 밀어넣고서 깐깐한 고용주라도 된 것처럼 노동과 쉼을 고작 자신의 눈에 띈 장면만으로 평가 하는 무례함이다. - P71

개인의 프로필을 중심으로 한 소셜미디어를 주축으로 뉴스의 소비가 극도로 개인화되고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효과(폐쇄된 환경에서 유사한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소통하며 기존의 신념을 증폭하거나 강화하는 현상)에 갇히게 된 시대다. 나에게 심리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와닿지 않는 뉴스는 점차 존재하지 않는 뉴스나 마찬가지가 되어가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나에게 ‘신경 쓰이는‘ 뉴스만이 가장 중요한 뉴스가 되는 것이다. - P84

<공감의 배신>에서 폰 블륨 Paul Bloom이 이야기 했듯, "공감은 형편없는 도덕 지침"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공감은 지금 여기 있는 특정 인물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스포트라이트"와도 같아서 "그 사람들에게 더 마음을 쓰게 하지만, 그런 행동이 야기하는 장기적 결과에는 둔감해지게 하고, 우리가 공감하지 않거나 공감할 수 없 는 사람들의 고통은 보지 못하게 한다." - P84

세상의 변화는
연민보다도 자유로운 개인들 사이의 예기치 못한 화학작용으로 발생한다. - P134

사람들은 여러 방식으로 고통의 이미지와 관계를 맺는다. 가장 즉각적인 반응 중 하나는 연민이다. 사진 아래 고펀드미GoFundMe 링크, 계좌번호나 이체가 가능한 ARS 번호 등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적혀있다면 우 리는 구원자나 조력자의 위치에서 다소 편안하게 연민을 소화해 낼 수 있다. 때로 우리가 그들에게 무언가 해 줄 수 있다는 효능감은 거리감과 정보 부족, 어긋난 문화적 맥락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 다. 그러나 포착된 고통이, 이 술한 장벽 속에서 겨우 기록자의 눈에 띄었던 고립된 파편일 뿐이라면 어떤가? - P138

말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남의 사정 같은 건 없다.
인종과 언어, 계급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소통의 무한한 불가능성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 P141

일단 보도의 영역으로 넘어온 애도는, 더 이상 사적인 애도만이 아니게 되었다. 대형 사고 현장이나 병원 응급 실, 장례식장처럼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장소로 일이 나를 떠밀 때면, 유족을 만나 긴말을 보태고 살을 끓여도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언론사가 판단한 어떠한 이유로 죽음에 대해 세상에 알 리고 싶으며, 당신이 겪고 있는 상실에 대해서도 우리가 찍고 말하겠다는 말. 당신의 고통을 보여달라는 말. - P143

파편으로밖에 남을 수 없는 외로운 사적 애도를 위해 공동체가 함께해 줄 수 있는 일은, ‘왜‘, "무엇을, ‘어떻 계‘와 같은 구성성분이 제자리를 찾도록 하여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것 정도다. 공적 애도에서 진상 규명과 책 임자 처벌이 자주 화두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1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