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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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누군지 독자는 모른다. 소설의 인물들도 모르고 작가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소설이 진정 세계를 담아냈다. 아무도 모르는 걸 왜 자꾸 알아내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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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여기 존재하는 것은,
이 세계가 소설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그것을 위해,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이다.
(1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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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게는 화원의 꽃이 팔리기도 전에 시들어 죽거나, 누군가 돌을 던져화원의 유리를 깨뜨리고 도망가는 게 전쟁이나 지진보다 더 불운이었다.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것은 어쩌지 못하는 사이 모두에게 닥치는 일이었다. 그러니 두려울 게 없었다. 모두 무사한데 자신에게만 불운이 닥치는 것, 김이 생각하는 불행은 그런 것이었다.(22p)

앞으로 여자와의 통화는 더 드물어질 것이고 간혹 이어지는 만남은 지루할 것이고 말투는 무뚝뚝해질 것이며 웃을 일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럴수록 여자는 더 자주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소홀하고 무관심한 김을 이해하려고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서운함과 허전함을견디지 못해 울컥하여 화를 내고 얼마 후에는 화낸 것을 사과할 것이다. 그런 일이 얼마간 반복되다가 나중에는 오로지 마음을 되받지 못한 것을 억울해하며 김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데 시간을 쓸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 모든 일을 되풀이할 정도로 김을 사랑하지않으며 어쩌면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동시에 허탈해질 것이다. 김으로서는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쩌면 그때 비로소 여자에게 애틋함을 느끼게 될지도 몰랐다.(26p)

그의 글을 읽으며 느꼈던, 이유를 알 수 없는 탐닉도 거의 사라 졌다. 마음이나 집중력이라는 것에도 탄생과 소멸의 주기가 있는 법 이니까……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녀와 내가 헤어진 것 역시. (125p)

누구도 그들에게 우 리가 공유한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다. 남들이 모르는 걸 익숙하게 알고 있다는 감각은 내게 묘한 우월감을 느끼게 해줬다.(2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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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이 모인곳에서도 어느 사람사는 곳과 다를바 없이 사기, 절도, 간통, 음모, 모함, 협박, 권세욕들이 난무한다. 그 속에서 양심이 있고 염치를 아는 사람들은 안타깝게 개처럼 죽어나가고 만다.
죽음에 이르게한 자본의 천박한 탐욕도, 그런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물질앞에 내버리는 치졸함도, 모두 더럽고 파렴치한 인간성의 미천함을 쥐어짜내는 소설.

소설의 비극은 어디서 부터 시작되었을까 생각해 봤다. 매혈을 조장한 사회부터인지, 매혈을 가지고 이익을 취하려한 비위생적인 행위부터인지, 매혈로 부를 누리려 했던 인간의 욕망때문인지, 마을사람이 모두 에이즈에 감염되고 나서부터 인지.
무엇보다 소설에서 제일 안타까운 비극은 아버지의 반성없는 태도가 드러나기 시작할 때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인간은 부를 누리고 싶고, 남보다 더 많은 이익을 취하고 싶기 때문에 간혹 정당하지 못한 행위를 할 수 있다.(이 불법적이라던지, 도덕적이지 못하다 던지 하는 행위도 항상 끊임없는 논란이지 않나) 다만 우리는 사심으로 인해 사고가 터졌을 때 이를 반성하는 자세만큼은 잃지 말아야 한다.
소설 초반부터 사고는 터진다. 아예 시작부터 사고를 터뜨리고 만다. 그리고 사고의 주동자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계속해서 이야기 한다. 에이즈와 죽음은 정말 비극적인 상황을 선호(?)하는 작가의 성향과 실화로서 차용된 현실일 뿐이다.

우리는 늘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 피의자들을 보며 분노해 왔다. 반성하지 않는 누구 누구들.....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하나같이 큰 손해를 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엄청난 손해를 본 것은 아니었지만 자기가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챙기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244p)

일이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우는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이 슬피 우는 수밖에 없었다. (255p)

그렇게 마른 나무처럼 앉아 있었다. 많은 일들을생각한 것 같지만 실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셈이었다.
밤이 깊을 때까지 머릿속이 윙윙 울리더니 동이 틀 무렵이피자 오히려 머리가 황량한 들판처럼 하얗게 비어버렸다.(269p)

점차적으로 사람들은 이 일이 책상의 문제도 아니고, 우리 삼촌과 링링이 간통 현장에서 붙잡힌일과 관련된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누가 학교를 관리할 것인가, 누가 학교의 책상을 관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293p)

자오더취안에게는 자오씨우친 같은 담력과 기개가 없었다. 원래 사내들은 여자들 같은 담력과 기개를 갖추고 있지못했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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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전모가 이처럼 간단하고 두루뭉술했다. 너무 많은 과정과 디테일이 생략되어 있었다. 사실 이 사랑이야기의 발생과 결말도 이처럼 간단하고 직접적이어서 반드시 있어야 할 수많은 과정과 디테일을 결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정과 디테일이 언제나 힘 있고 위대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생략이 더 힘 있고 확실하여 사물의 발전과 변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었다. 이야기 속의 현재처럼 우 꽝은 생략 속에서 문을 밀고 방 안으로 들어갔고, 그제야 그는 방에 불이 켜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53p)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모든 과거는 미래가 되고 미래는 다시 과거가 된다. 우다왕의 다음 행보는 바로 그의 과거가 지렛대 작용을한 결과였다. 아주 가볍게 한 번 비틀어주자 운명의 지구가 새로운방향을 갖게 되었다.
(73p)

그는 류롄과의 심각한 관계를 이제 대수롭지 않은 마음으로 덮어버리려 했다. 사실 과거든 현재든 아니면 미래든, 수많은 문제들에 있어서 단순함이 항상 복잡함을 지배하는 법이었다. 단순함은 언제나황제였고 복잡함은 신하에 불과했다. 무수한 복잡한 일들이 그 표피를 벗겨내면 남는 것이라고는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과 같은 너무나도 간단한 핵심뿐이었다. 우다왕이 사단장 사택으로 다시 돌아온 것도 바로 이런 단순함이었다. 영웅이 되살아나 그의 운명을 구해준 것 같은 단순함이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그녀를,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웬일인지 그녀가 눈물을 흘렸고, 그 역시 따라 울었다. 두 사람의 마비되었던 내면 기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눈문이었다. 미친 듯한 성애가 그들이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위대한 사랑을 깨닫게 해준 것 같았다.
어쩌면 두 사람 모두 이미 마음속 깊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느꼈지만, 필연적으로 남천지북南天地北으로 하늘과 땅처럼 멀어져야 하는 현실을 인식한 것인지도 모른다. 환락은 끝이 없었지만 고통은 항상 서둘러 찾아왔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의 공통된 감상이다.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누구도 먼저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누구든지 먼저 말을 하거나 움직이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끝장 날 것만 같았다.(1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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