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옷장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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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클로파르 길로 돌아오는 길, 나는 무서웠고 부모님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다 장난이야, 그럴 거 없어………≫ 나는 내 곁에서 앞으로 향하는, 풀이 잔뜩 붙은 아버지의 커다란 신발을 봤다. 어머니는 파란색 줄무늬가 있는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달라붙었다. 다섯 살, 여섯 살, 나는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믿는다. 제기랄! 언제 어느 날부터 벽에 바른 페인트가 보기 흉해졌을까, 언제 어느 날부터 방의 요강에서 냄새가 났으며, 남자들은 주정뱅이, 늙다리가 되어 버린 것일까…..…언제부터 나는 그들을, 부모님을 닮아가는 것에 끔찍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인가…… 하루아침에 그렇게 된 것은아니다. 큰 상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눈을 뜬 것이다. 바보 같은 소리. 세상이 하루아침에 내 것이 아닌 게된 것이 아니다. 거울 속에 비친 나 자신을 보며, 더는 그들을 볼 수 없다고 말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점차적으로 내가 그들의 실패작이라고 말하기까지…… 누구의 잘못인가.
모든 것이 그리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었는데. 늘 즐거움이있었고, 그것이 나를 살렸다. 더러운 년. - P54

나는 그 모든 것을 느꼈다. 고해실에서 내게 최면을 걸던그의 생기 없는 눈…… 벽에 던져버리고 싶은 유리구슬, 수치심…… 타락한 년…… 모든 방탕한 일에 타고난 재능을가졌다고 믿었는데…… 나는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견딘다. 나는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지 그 애들을, 그 애들의 부모와 그애들이 속한 세계를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일이라는 것이 증명됐다. 지금 낙태를 겪는 것은 나다.
잔느나 로즐린이 아니다. 어쩌면 죄에 관한 생각이 죄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오래 간다는 것을 믿는 게 너무 쉬웠을까. - P75

나의 다름과 내가속한 사회와 연결된 끈적끈적하고 불순한 것이 완전히 나를둘러싼다. 어떤 회개 기도도 소용없다. 내가 벌을 받아야만한다. - P75

그들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나의 세계다. 나는 그 방학에 마리화나를 발견한다. 벗어날 수 있는 가장 교활한 방법, 사람들이 모르는것을 알고, 고개를 숙이고 공부를 판다. 문학, 특히 문학을다른 모든 이들 위에서 떠다니기 위해, 그들을 무시하기 위해 공부한다. 진정한 우월 의식이며 쾌락을 위한 것이기도하다. - P184

정제된 문학은, 정제할 수 없는 사건을 만났을 때 무력해진다. 아니 에르노의 <세월>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시몬 드 보부아르를 읽은 것은 자궁을 가졌다는 불행을확인하는 것 외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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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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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에는
숨이 들어 있었다

사람의 울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통곡이 아니라

곡과 곡 사이
급하게 들이마시며 내는
숨의 소리였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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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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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하나하나가 왠지 나의 지난 일기를 다시 읽어보는 기분이 들었다.
나만 지친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나만 지치고 뒤처져 있는 것 같은게 세상속에 뒤엉켜 사는 사람들이 하는 보통의 생각인가보다. 나아지고 있는데 더 나빠지기만 한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

김애란작가의 천재적인 비유가 역시나 돋보이는 문장들이 많았다. 훔치고 싶은 표현들. 내가 작가가 아니라 이런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이 드는 책.

에스컬레이터 위로 얼굴이 부은사람들이 일렬로 서 있는 게 보인다. 그들 모두 어릴 때 꿈이 ‘훌륭한 사람은 못 되었어도, 공휴일에 출근하는 사람’은아니었을 거다. 그녀는 에스컬레이터의 긴 행렬에 바싹 따라붙은 뒤, ‘내가 사교육만 제대로 받았어도 이러고 있지 않을텐데‘ 탄식한다. 그러고는 이내 부끄러워한다. 학부모들이상담 때마다 하는 말 중 하나가 ‘우리 애가 공부를 못 해서‘가아니라 ‘욕심이 없어서‘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 P49

세련됨이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오랜 소비 경험과 안목, 소품의 자연스러운 조화에서 나온다는 것을. 옷을 잘 입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잘 입기 위해 감각만큼 필요한 것은 생활의 여유라는 것을, 스물한 살 여자는남자에게 예뻐 보이고 싶었다. 그것은 허영심이기 전에 소박한 순정이었다. - P91

그러나 그러지 못한 것은 서울의 크기가컸던 탓이 아니라, 내 삶의 크기가 작았던 탓이리라. 하지만 모든 별자리에 깃든 이야기처럼, 그 이름처럼, 내 좁은 동선안에도 나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 P118

진동음이 전해질 때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란다. 휴대 전화 크기만큼 작아진 언니가 내 호주머니 안에서 자꾸 울어대는 것 같다. - P187

어머니는 셋방의 주인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얼마나 잘해주었는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갚을 순 없어도 잊어선 안 되는 일들이 있다고, 어머니는 무릎에 힘을 주며 계단을 올랐다. - P217

어쩌면 처음 해보는 남의집살이가 불편해 최대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서로를 조금씩 견디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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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13
오스카 와일드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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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할 것인가 반성할 것인가.
오스카를 유미주의자라고 하는데 이 작품을 통해 내가 느낀 바로는 오스카는 유미주의에 대해 철저히 자기반성을 하고있다.
헨리의 대사에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극찬같은 탐미주의가 돋보이지만, 오스카의 인생은 결국 타락한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여주니까. 그런데 아름다움에 대한 허황된 말만 쏟아내는 헨리의 인생은 그닥 불행해지진 않는다. 어찌보면 도리언은 헨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순수했다. 헨리는 순수한 도리언을 더럽혔다.

마지막 도리언이 깨달은 신에대한 기도문을 내가 좀 더 각색해 보자면 ‘죄를 죄라고 인지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도록 해주소서…’라고 하고싶다. ‘죄를 벌하여 주소서’는 내가 저지른 일이 죄라는 것을 알고있는 경우에야 할 수 있는 말이고, 대부분 인간은 자기가 저지른 죄로 벌을 받게되는 상황이 돼서야 그 죄를 인지하거나 인정하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하나만 덧붙이자면 줄거리만 알고 읽지는 않은 책들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베스트트랜스의 번역은 정말 최악이다.

각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들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의 삶에서 필요하지 않은 미덕의 중요성에 대해 설교하는 것이 보통이다. 부자들은 검소함에 대해, 게으른 자들은 노동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에 대해 떠들어 댈 것이다. - P24

일단 육체가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청산하게 되는데, 이것은 행동이 정화하는 양식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그런 행동 뒤에는 쾌락에 대한 회상이나 후회 따위가 남을 뿐이죠. 유혹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그 유혹에 굴복하는 거예요. 유혹에 저항하려 들면, 당신 영혼은 스스로 금지한 것에 대한 갈망과 기이하고 비합법적인 것들에 대한 욕망으로 병이 들 겁니다. - P32

아름다움도 천재성의 한 형태예요. 아니, 설명할 필요도 없으니 천재성을 능가한다고 봐야겠죠. 햇빛이 청명한 봄날, 우리가 달이라고 이름 붙인 저 은빛 조개가 검은 물위에 비쳐 반사되는 것처럼 아름다움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사실이에요.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지요. 아름다움은 신성한 주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왕자가 되지요. - P36

"항상? 그건 정말 무서운 말이네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면 몸서리가 쳐져요. 그 말은 여자들이 즐겨 쓰는 말이죠. 여자들은 로맨스가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모든 로맨스를 망치는 거예요. 영원이라는 말은 의미 없는 말이에요. 일시적인 기분을 나타내는 변덕과 일생의 열정 사이에 단 한 가지 차이점을 찾는다면 그건 변덕이 좀 더 오래 간다는 것이지요." - P39

"도리언, 건드리고 싶은 것만이 신성한 거예요. 왜 그리 화를 내는 건가요? 언젠가는 그녀는 당신 것이 될 테지요. 인간이란 사랑할 때 처음에는 언제나 자신을 속이는 법이에요. 그리고 사랑이 끝날 때는 상대방을 속이고 말이죠. 그걸 바로 로맨스라고 부르는 거예요. 어쨌든 당신은 그녀와 알고 지내는 거죠?" - P77

그는 인간이 심리학을 엄밀한 하나의 학문으로 만들어 삶을 이루는 작은 샘물 하나하나를 다 밝힐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사실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잘못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경험은 윤리적인 가치가 없다. 그저 인간이 자신의 실수에 붙인 이름이 경험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도덕주의자들은 경험을 교훈을 주는 방법으로 치부했으며 경험의 윤리적 효과가 성격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험에는 어떤 원동력 같은 것이 없었다. 양심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힘 같은 것이 거의 없었다. 실제로 경험은 우리의 미래와 과거가 같다는 것, 우리가 한때 저지른 죄악을 몹시 혐오하면서도 결국엔 죄악을 수없이 되풀이하리라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 P85

"바질, 자네가 그렇게 얘기하면 도리언은 틀림없이 그 여자와 결혼을하고야 말 거야. 분명히 그러고도 남을 친구야. 인간이 철저히 바보짓을할 때는 항상 고귀한 동기가 있거든." - P105

이런 귀중품과 그가 자신의 저택에 수집해 둔 많은 물건들은 그가 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때로는 감당하기 벅찬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 P188

아! 초상화가 그의 생명이 가졌던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고 그가 영원한 청춘의 순수한 광채를 간직하게 해 달라고 했던 저 오만하고 격정적인 기도를 왜 했단 말인가! 그의 모든 실패는 바로 그 순간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차라리 살아가면서 죄지을 때마다 확실한 처벌을 바로바로 받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처벌은 영혼을 정화해 주기 때문이다. 대단히 공정한 신에게 바치는 인간의 기도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가 아니라 ‘우리 죄악을 벌하여 주시고’가 되어야 했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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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 물건을 버린 후 찾아온 12가지 놀라운 인생의 변화
사사키 후미오 지음, 김윤경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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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한 라이프의 에세이인 줄 알았는데 자기개발서였다. 뻔하지만 실행할 수 없는 다짐들 몇가지를 모아놓은…

익숙함에서 시작되어 싫증으로 연결되는 메커니즘은 엄청나게 강력한독이자 삶의 모든 측면에 악영향을 미친다. - P72

술은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일시 정지시킬 뿐이다. - P43

그렇게 가치를 따지는 탓에 우리는 타인의 비난에 민감하다. 사실 비난의 본질은 다른 사람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데 있다. 그다지 자신에게 가치를 느끼지 못하면 비난을 넘어극단적인 행동으로 치닫기도 한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분노를 자기보다 약한 존재에 돌리는 것이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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