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드라이브 오늘의 젊은 작가 31
조예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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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루는 예민한 사춘기 소녀이지만 원만한 성격의 중학생이었고, 같은 학교 이사장의 의붓딸인 이월은 사고로 죽은 강아지 하루의 환영을 보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이이다. 모루와 이월은 친구 사이는 아니지만 녹지 않는 눈이 내리던 날, 눈이 피부에 닿으면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하는 재난 상황을 피해 학생들에 치여 쓰러져 있는 모루를 이월이 도와주면서 위기상황을 피한다.
녹지 않는 눈은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백영시가 쌓이는 눈을 소각할 장소로 선정이 되며 도시는 폐허가 된다. 모루는 이모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눈 소각장에 취업을 하고, 집을 나오면서 이모와의 연락이 끊긴다. 모루의 이모는 재난 상황 이후 물자 수송을 해왔는데, 어느 날 녹지 않는 눈 속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살을 한 의붓엄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이월의 주문으로 이월과 함께 백영시로 향하던 중 강도를 만나 행방이 묘연해진다. 이월은 백영시로 가는 길에 트럭기사가 모루의 이모라는 것을 눈치채고, 모루가 현재 소각장에서 일하는 것을 알게 된다. 모루 이모가 납치되기 전 이모의 도움으로 트럭에서 탈출한 이월은 소각장으로 들어가 모루를 만나게 되고, 이모와 연락이 닿지 않아 애가 타던 모루는 이월에게 이모와 있었던 일을 듣고는 소각장에서 관리자 차를 훔쳐 이모를 찾아 나선다.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와 마찬가지로, 재난 상황에도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 한 도시를 공권력의 힘으로 폐허를 만들며, 생존을 위한 이기심으로 서로에게 폭력과 약탈을 일삼는다. 그러면서도 가족이나 동료들과의 연대 같은 인간애로 삶의 의미를 찾곤 한다.

‘사실 센터나 학교나 별다를 것 없지 않나. 이곳에는 함께 대화할 또래가 있고, 센터의 생활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있다. ...... 우리는 투덜거리면서 일을 하고, 짧은 휴식시간을 기다리고, 친구를 사귀고, 무리를 만들고, 새 직원에게 텃세를 부리고, 서로 헐뜯고 싸우다가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그건 학교생활과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센터에는 눈송이에 증발되지 않은 복작거림과 온기가 있었다’(76p.)

재난이 인간의 생활방식을 바꿔놓을지언정, 인간의 습성을 바꾸지는 못한다.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의 삶은 불편해졌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하고 성장해 나간다. 다른 재난상황이 와도 우리는 그렇게 별다를 것 없이 연대해 나갈 것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침묵하는 쪽의 선택지를 떠올렸다. 백모루를 움직이게 하는 힘을, 그 믿음의 원동력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는 잘못된 추측이나 신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믿는 게 중요한 것이다. 믿고 싶은 사실이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유진이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는 나의 믿음은 백모루와 같았다. 믿음은 같은데 모루의 근거를 굳이 내 손으로 깨고 싶지 않았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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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 - 나도 모르게 쓰는 차별의 언어 왜요?
김청연 지음, 김예지 그림 / 동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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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당초 작가가 기레기라니 선입견이 생긴다.
게다가 청소년권장도서라고 책을 반말로 쓰는 무례함이라니.
청소년을 유독 낮춰 보는 급식이란 표현을 문제삼으면서 정작 본인은 청소년들에게 반말을 일삼는 클라스가 기레기답다.

짭새라는 표현도 직업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하는데, 국개, 판새, 떡검, 짭새, 철밥통 같은 은어는 특정 집단의 권위의식과 만행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표현이지, 혐오나 비하하는 용어가 아니다. 특.히. 기레기같은 거. 집단을 비하하는 용어에 인권을 들먹이며 지적질하고 싶을 땐 그 집단이 사회적 약자인가 따져봐야 한다. 그것도 아닌데 혐오표현이라 사용을 막는 건 권위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청소년 인권감수성 함양을 위한 도서는 많다.
이 책에 아까운 시간을 투자할 필요는 없다.

왜 그랬느냐고? 장애인 입장에서 장애우라는 표현을 들으차별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야. 장애인은 장애를가진 사람이란 뜻의 중립적 표현이기는 하지만, 장애우는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을 다른 집단으로 보고 만든 비중립적 표현이거든. 더구나 이 말은 장애인 본인이 1인칭으로 사용하기 어려워. "저는 장애우입니다."라고 말할 경우, 자기 자신이 친구(友)라는 의미가 되잖아. 관점 자체가 장애인을 ‘대상‘으로 보고 있지. "장애를 극복했습니다. 처럼 장애를 인간이 이겨 내거나 재활이 필요한 대상처럼 표현하는 경우도 장애를 비하하는 표현일 수 있어. - P75

칭찬을 담은 표현이지만 중요한 건 발화자, 즉 이 말을 한여러분의 의도가 아니라 청자, 즉 듣는 흑인의 감정이야. 게다.
가 흑인이라고 누구나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음악적 감수성이 풍부한 것도 아니거든, 결국 흑형, 흑누나란 표현 안에는 흑인에 대한 철저한 대상화, 타자화 시선이 전제돼 있지.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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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플레이 트리플 6
조우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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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건 다 오해와 자기 변명으로 점철되는 것이다…

한세문화사의 오미연 차장은 은희가 겪었던 모든 상사를 통틀어 최악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었다. 퇴사를 하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이름을 들으면 쭈뼛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특히 웃는 얼굴로 조곤조곤 다른 사람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말을 잘했다. 그 말은그저 자신의 위치를 과시하기 위한 것일 뿐인 데다가주로 가장 약한 사람을 향했다. 팀의 막내인 다정이 오차장의 책상 앞에 불려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고개를 조아리는 동안, 사무실 안의 귀가 열린 모든 사람이함께 고통스러워했다. 은희의 입사 동기는 꿈에서도 오차장의 목소리가 들려서 원형탈모가 생겼다며 사직서를 냈다. - P15

언니, 난 언니 재능 있다고 생각해요. 재능이뭐 별거예요?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게 재능이지.
나도 만화 보는 거 좋아하지만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든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게언니가 재능이 있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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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2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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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짓고 악을 응징하는 것은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악의 평범성‘이라고 생각한다. 선과 악의 대립은 일반 독자들에게 자신을 선의 편에 서게 하고 내가 아닌 타인이 가진 악의 습성을 지적하고 비난하려 하지 자신을 반성하게 하진 않는다. 악한 자가 패하면 정의가 바로 선 것 같고 선의 입장에 섰던 내가 승리하고 고결해진 것 같은 느낌. 이런 느낌이 싫다. (그래서 나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가 늘 불편하다.)

소장은 누가 봐도 악한 존재이다.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해 최대한의 이득을 취하고 갈취한다. 폐사된 가축으로 선심 쓰듯이 회식을 해 공치사를 떨고, 사건과 사고의 본질을 흐려 책임을 남에게 뒤집어씌운다. 선길은 약한 존재이다. 직장을 잃고 아들은 아픈데다가 기술도 없이 노가다판에 뛰어들어 적응도 힘들어하는 불행한 인물이다. 약함이 선함이 되는 단순성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현경은 정의의 사도로 그려진다. 선길의불행에 공감하며 비닐하우스에 해자를 두르는 선의를 베풀고 마지막에 소장에게 통쾌한 응징을 하는 영웅적인 인물이다. 각자의 캐릭터나 인물간의 갈등관계 명확한 권선징악의 교훈적인소설이다.

그래도 소설에서 악을 표현하는 데 현실의 잔인함을 고발하는 탁월함이 돋보인다. 특히 소장의 감정이나 행동에서 이 인물이 사회적인 문제로 표상된다면 단체, 기업, 사회라는 주체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성이 얼마나 잔인 한지를 실감할 수 있다.

누구의 잘못도 죄도 아니었다. 세상은 여기저기 함수가 틀린 엑셀표 같은 것이었다. 어떤 칸에서는 아무리 올바른 숫자를 넣어도 에러라고 뜰 수밖에없는,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으로는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자꾸 움츠러들고 소심해졌다. - P28

목 씨는 시선을 피했다. "나일 먹을수록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 어쨌거나 반장이고, 잡부가 아니잖아." 들키기 싫은 것이었다. 아쉬운 소리를 할 만큼 가진 게 없는 처지와 능력을, 나이를 먹고 자리가 생기면 그렇게 됐다. 그럴수록 허울 같은 체면밖에 남는 것이 없었지만. - P42

"인마, 해 줄 거 다 해 주고 챙겨 줄 거 다 챙겨 주는 게, 그게 관리야? 그게 시중드는 거지, 관리야? 해 줄 거 다 해 주고챙겨 줄 거 다 챙겨 줘야 일하겠다는 놈은 아무 일도 안 하겠다는 놈이야. 관리는 그런 놈들부터 제일 먼저 녹아 내는 게관리고, 걔네들은 관리가 안 되니까! 황 반장도 그런 놈이니까 내 진즉 솎아 낸 거야. 알겠어? 그런 놈들은 해 주고 챙겨줄수록 지가 상전인 줄 안다고. 아쉬운 게 있어야, 뭐 하나 빠지고 부족한 데가 있어야, 그걸 내가 쥐고 흔들 수 있어야 관리가 되는 거야." - P45

"봐라, 너부터 당장 그러고 있잖냐. 책임은 지는 게 아니야.
지우는 거지. 세상에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없거든, 어디에서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멍청한 것들이나 어설프게 책임을 지네 마네, 그런 소릴 하는 거야. 그러면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자기 짐까지 떠넘기고 책임지라고 대가리부터 치켜들기나 하거든. 텔레비전에서 정치인들이 하는 게 다 그거야.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지우는 거, 자기 책임이라는 걸 아예 안 만드는 거. 걔들도 관리자거든. 뭘 좀 아는."
소장은 흡족하게 웃었다. 즉흥적으로 한 말이었지만 퍽 마음에 들었다. 멧돼지를 떠올렸던 그때처럼. - P46

"뭘 저렇게들 떠들까요.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남의 일에."
현경은 윤 씨 주변에 둘러앉아 떠들고 있는 인부들을 보며 말했다. 들리지 않았지만 대충 짐작이 갔다. 선길이 도망갔나 안갔나, 그것 때문에 반장이 소장에게 얼마나 곤란할지 말지 하는 그런 이야기. 윤 씨는 반장과 있을 때는 반장의 비위를 맞췄지만 인부들과 있을 때는 인부들 구미에 맞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주목받고 주도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남의 일이니까, 다 가진 게 없으니까 그런 거지. 겸손이니뭐니 해도 자기 자랑하는 게, 남 부러움 받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 다 없으니까, 남 일이니까 자기 얘긴 안 하고 못 하는거야. 남 없을수록 자기 없는 게 덜 없어 보이고 남 못날수록자기 못난 것도 덜 못나 보이니까." - P56

그렇게 일은 다시 소장의 뜻대로 흘러갔다. 반장들이 갈라서는 한 필승은 소장의 것이었고 사실 이제 소장은 좀 따분하기까지 했다. 어쩌면 저렇게들 뻔하고 뭘 모를까. 역시나 관리자에게 필요한 것은 갈라 세우고 갈라 세우고 오로지 어떻게든 갈라 세우는 일이었다. 줄을 세우고 편을 갈라서 저희끼리 알아서 치고받도록, 그러느라 뭐가 중요하고 누가 이득을 보는지 생각도 못 하도록, 인간이란 고작 그런 것이다. 서로 믿지 못하고 지기 싫어한다. 그 속성마저 남들만 그렇고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그래서 싸우고, 그렇게 싸우기 때문에 싸울수록 더 편향되고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그 불신을 극복하지도, 서로 이기거나 져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진흙탕 밑바닥까지 서로 끌고 들어가기만 한다. 그러다 결국 자신들을 끄집어 올려 줄 관리자를 찾게 되는 것이다. 싸움은 끝나야 하고 누군가는 개처럼 물불 못 가리게 된, 자신들이 아니라 저것들을 따로 가둬야 하니까. - P94

현경은 고개를 파묻었다. 아무리 움직여 보려고 해도 그럴수록 더 친친 감겨드는 덫에 걸린 것 같았다. 어떻게 소장을만나야 할지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결국자기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살아 있고 계속 살아야 하는 사람의 숙명인 것 같았다. 잔인하고 비겁하게 거짓말하거나 침묵하면서, 자신의 잘못과 죄를죽은 사람에게 떠넘기면서. 그것이 산 사람의 몫, 생존의 대가 같았다. - P141

그것이 중요했다. 이거 먹고 제발 입 좀 다물어 달라는 식이면 나중에 더 내놓으랄 수도, 또 어느 순간 죄책감에 혼자미쳐 날뛸 수도 있다. 하지만 믿음의 힘은 늘 위대하다.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는 믿음은 모든 믿음 중에서 가장 위대하다. 세상에서 제일 참혹한 일을 벌였던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이 바로 자신은 착하고 항상 착하다는 믿음이었다. 그 사람들은 양민을 칼로 총으로 베고 쏴 죽이면서도 생각했다. 해방시켜 주는 것이라고, 오로지 선행을 베푸는 것뿐이라고. 오, 세상에 정말!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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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 에리히 프롬 진짜 삶을 말하다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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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현대사회에 사물을 소유하려는 욕망 때문에 자기 자신을 착취하고, 자발적인 행위를 하지 못한다. 우리는 최종적으로 얻는 물질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그 결과를 얻는 과정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사물을 숭배하는 병을 벗어나면 삶의 권태와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사물을, 우리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결과물을 숭배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
하지만 인간은 사물이 아니다. 스스로 사물이 된다면 자각하건 못 하건 병이 들고 말 것이다.
……
우리는 이 질병을 권태, 삶이 무의미하다는 느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느낌이라 부른다.…..우리는 이 질병을 신경증‘이라 부른다.’ (27-28p.)

2장에서는 인간의 본성과 이성을 진화심리학이나 칸트의 이성을 예시로 들어 대조한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속성을 ‘자연의 변덕‘으로 정의하는데, 이는 절대적인 본질을 찾아 어느 한쪽에 치우친 정의보다는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비유를 통해 ‘균형‘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3장에서는 자유를 실존하는 사실이 아니라 행위로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정의하며, 열정과 노력을 통해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로써 첫 장에서 언급했듯이 ‘존재‘가 아닌 ‘소유‘를 추구함으로써 ‘인격으로서의 자신이 되기를 중단‘ (63p.)하였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즉 중요한 것은 ‘자발성‘이다. 다만 이러한 자발성에 대해서 우리가 과연 진정한 의미의 자발성을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던진다.

‘우리는 생각과 느낌, 소망은 물론 심지어 감각적 느낌까지도 주관적으로 우리 것이라고 느끼지만, 사실은 외부에서 주입된 것이고, 우리가 실제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남의 것일 수 있다’(119p.)
‘스스로 결심을 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관습을 지키거나 의무감에서 혹은 아주 단순히 압박감에서 해동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깨닫고 깜짝 놀랄 것이다.’ (135p.)

존재보다는 소유에 집착하는 삶과 자발적인 결정이 결여된 삶은 무력감을 만든다. 그럼 무력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우리의 또 다른 무력감의 원인은 ‘기대‘ 이다.

˝그게 무엇이더라도 외부 상황의 어떤 변화가 급변을 몰고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160p.)

또한 ‘가짜 활력‘에 대한 주의도 준다.

‘만약 학술 논문을 써야 한다면 이들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대신 도서관에서 십여 권의 책을 주문하고 중대한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전문가들과 면담을 하면서 온갖 시도를 다한다. 그런 행동으로 기대하는 성과를 올리기에는 자신이 무력하다는 통찰을 회피한다. 과도한 단체 활동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쉼 없는 걱정, 카드게임이나 단골 술집에서 장시간 환담을 나누는 것 또한 다른 형태의 가짜 활력이다’(163-164p.)

사실 전체적인 내용을 되새겨 보아도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명확하거나 간단해 보이진 않는다. 스스로 존재에 대한 확신과 자발적인 활력으로 인간성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 타인과의 소통과 사랑까지 언급하지만,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답은 없다. 생각보다는 행동이 먼저 선행돼야 할 것 같은데 이 행동이 과연 주체적인 자발성인가를 또 의심해 봐야하지 않나.
진화심리학을 잠깐 언급하기는 했지만 인간의 무리지어 다니는 습성으로 축적되어진 본능이 지금 집단에 동조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그 지위가 퇴색되었다는 점을 짚어 줬으면 한다. 특히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존재‘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 현대인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삶의 자세라는 점. 그리고 가짜 활력으로 회피하기 보다는 본질적인 활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에리히 프롬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사실 가짜 활력도 인생의 도움이 되기도 한다. 가짜 활력이라도 살아야 그 과정 속에서 진짜 활력의 실마리를 건질 수도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활동 그 자체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문화에서는 무게중심이 정확히 거꾸로 되어 있다. 우리는 구체적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생산하는 대신 상품을 팔겠다는 추상적 목적을 위해 생산한다.
모든 유형, 무형의 사물을 돈을 주고 살 수 있고, 돈만 주면다 우리의 소유가 된다고 여긴다. 우리 개인의 특성과 노력의 성공 또한 돈과 명성, 권력을 위해서 팔 수 있는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무게중심이 창의적 활동이 주는 순간적 만족에서 완제품의 가치로 옮겨간다.
인간은 진정으로 행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만족 - 활동의 순간 체험하는 것 - 을 잃고서 잡았다고 믿는 순간 실망을 안겨주는 환영과 성공이라는 이름의 가짜 행복의 뒤를 쫓아다닌다. - P83

우리의 느낌과 감정 못지않게 독창적 사고 역시 왜곡된다.
처음부터 우리의 교육은 아이의 독자적 사고를 막고 아이의머리에 완성된 생각을 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방법이 어린아이에게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아주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아이는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가득한 손으로, 이성으로세상을 파악하고자 한다. 아이들은 진리를 알고 싶어 한다.
그것이 낯설고 거대한 세상에서 방향을 잡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이다. - P93

독자적 사고를 할 용기를 내지 못하게 만드는 오늘날의 교육과정 몇 가지를 더 살피고 넘어가기로 하자. 예를 들면 오늘날에는 사실 - 더 정확히 말해 정보 - 의 습득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한다. 점점 더 많은 사실들만 기억하면 결국에는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라는 비장한 미신을 섬긴다. 상호 연관 없이 이리저리 흩어진 수많은 개별 지식들을 학생들에게주입시킨다. 학생들의 시간과 에너지가 점점 더 많은 사실을 배우는 데 쓰이기 때문에 정작 사고를 할 시간은 거의 남지 않는다. 물론 사실의 습득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허구일 뿐이다. 하지만 ‘정보‘만으로는 너무 적은 정보와 마찬가지로 사고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 P95

이 모두는 진리의 관념이 모호하다는 증거이다. 현대인은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관점에서 볼 때 그가 원하는 게 마땅한 것만 원한다. 그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가 ㅡ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이는 인간이해결해야 할 가장 까다로운 문제 중 하나이다. 완제품으로제공된 목표를 우리의 것처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가 악착같이 회피하려는 바로 그 과제인 것이다. - P101

또 가짜 사고가 완벽하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일 수도 있다. 사고의허위성이 반드시 비논리적 사실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 P125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결심이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며, 외부의 힘이 강요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무언가를 원할 경우 그것은 자신의 의지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 확신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품는 큰 착각이다. 우리가 결심하는 것의 대다수는 실제 우리의 결심이 아니라 외부에서 암시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 자신의 결심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있지만 실제로는 타인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대로 행동한다.
그 이유는 고립이 두렵기 때문이며 우리의 삶, 우리의 자유와안락이 직접적인 위험에 처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 P133

환자는 변하고 싶고 변할수 있다고 느끼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세상모든 것을 기대하면서도 오직 한 가지, 스스로 변화를 위해무언가 할 수 있다는 기대만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있다. 그는 의사가 정신분석을 통해 반드시 그에게 결정적인일을 해줄 것이며, 그는 수동적으로 이 과정을 참고 견딜 수있다고 기대한다. 실제로 그 어떤 변화도 믿지 않지만, 위에서 설명한 위안의 합리화로 불신을 은폐한다. - P169

일련의 철학자들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생산한다는 사실, 인간이 자기 역사의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 P43

확정된 인간 본성, 인간 본질의 존재를 부인하는 데 일조한 한 가지 요인이 더 있다. 인간 본질이라는 개념이 자주 악용되었고 최악의 부정을 행하는 핑계로도 이용되었던 것이다. 인간 본질의 개념을 언급할 때면 그것의 도덕적 가치를 심각하게 의심하는, 심지어 그 개념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발생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18세기의 철학자들까지인간의 본질을 들먹이면서 노예제도를 변호했다. (인간의 평등을 확신한 그리스 스토아학파와 로테르담의 에라스뮈스, 토마스모루스, 후안 루이스 비베스 같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예외였다.) 국수주의와 인종주의 역시 ‘인간 본성‘을 들먹이면서 탄생했다. 국가 사회주의는 특정 민족의 본질이 우월하다는 주장으로 6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았다. 특정한 추상적 인간본성의 개념을 들먹이며 백인은 유색인에게, 권력 있는 자는권력 없는 자에게, 강자는 약자에게 우월감을 느낀다. 지금까지도 ‘인간 본성‘의 개념은 국가와 사회의 목적에 자주 이용당하고 있다. - P39

우리는 존재를 추구하지 않고 소유를 추구한다.
많은 경우에서 소유가 존재보다 더 강한 현실성을 갖는다.
자신을 소유자로 소외시키는 우리는 우리의 소유물일 뿐 인간 인격으로서의 자신이 되기를 중단하였다. - P63

일단 우리는 자발성을 갖춘 혹은 갖추었던 사람들을 알고있다. 그들의 사고, 감정, 행동은 자동인형의 표현이 아니라자아의 표현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예술가이다. 실제로 예술가는 자발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런 정의를 인정한다면 - 발자크의 예술가 정의가 그랬다 — 몇몇 철학자와 학자들 역시 예술가라 불러야할 것이다. 그들은 다른 철학자 및 학자들과 구식 사진사와-
창조적인 화가만큼이나 다르다.
예술가만큼 객관적인 수단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은부족하지만 - 혹은 좀 더 훈련할 필요가 있지만 - 예술가와 같은 자발성을 갖춘 사람들도 물론 있다. 그런데 예술가들의 처지는 정말 곤란하다. 성공한 예술가의 개성이나 자발성만 존중을 받기 때문이다. 작품을 파는 데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는 동시대인들에게 ‘미친놈 아니면 신경증 환자‘ 취급을 받는다. 이때의 예술가는 혁명가와 비슷한 처지이다.
성공한 혁명가는 정치인이 되지만 성공하지 못한 혁명가는 범죄자다. - P79

이 메커니즘의 사례로 재능이 매우 뛰어난 어떤 작가를들 수 있다. 그는 세계문학 역사에 남을 만한 책을 쓰고 싶지만, 쓰고 싶은 내용에 대해 일련의 생각들을 하고 자신의 책이 얼마나 획기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까 상상하며 친구에게거의 완성되었다고 말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 벌써 7년 동안이나 책 ‘작업‘을 했지만 실제로는 아직 한줄도 못 썼다. 그런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성사시킬 것이라는 상상에 발작하듯 매달릴 수밖에 없다. 많은 경우 일정한 연령 - 평균적으로 40대 초반 - 에 도달하면 각성하여 상상을 포기하고 자력을 활용하려 노력하거나, 아니면 위안을 주는 시간의 착각 없이는 견딜 수 없기에 신경증으로 무너진다. - P162

만약 학술 논문을 써야 한다면 이들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대신 도서관에서 십여 권의 책을 주문하고 중대한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전문가들과 면담을 하면서 온갖 시도를 다한다. 그런 행동으로 기대하는 성과를 올리기에는 자신이 무력하다는 통찰을 회피한다. 과도한 단체 활동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쉼 없는 걱정, 카드게임이나 단골 술집에서 장시간 환담을 나누는 것 또한 다른 형태의 가짜 활력이다 - P163

하지만 자신의 자기와 자아를 진정으로 느끼는 사람은 스스로를 자기 세계의 중심으로, 자기 행동의 진짜 장본인으로경험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독창성이다. 내가 말하는 독창성은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기원을 두는경험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반드시 자기 자신의 감정, 즉 정체감이필요하다. 이 ‘자아‘ 감정이 없다면 우리는 미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정체감은 우리가 사는 문화에 따라 다르다. 개인이 아직 개체가 아닌 원시 사회의 ‘자기‘ 감정은 ‘나는 우리’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정체감은 내가 나를집단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진화의 과정이 진척되고 스스로를 개체로 인식하는 정도에 따라 정체감이 집단과 분리된다. 독자적 개체인 그는 이제 스스로를 ‘나‘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자아‘ 감정과 관련하여서는 수많은 오해가 존재한다. 심리학자들 중에는 이 감정을 자신에게 할당된 사회적 역할의 반영에 불과하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타인이 그에게 거는 기대에 대한 반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경험상 그것이 우리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자아의 방식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짙은 불안과 공포, 강박적인 순응의 욕망을 초래하는 병리학적 현상이다. 이런 공포와 순응의 강박은 나 자신을 창의적인 내 행위의 장본인으로 느끼는
‘자아‘ 감정을 키워야만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이 결코 자기중심적이거나 이기적이 되라는 의미는 아니다. 정반대로 나는 나를 타인과의 관계의 과정에서만 ‘나‘로 느낄 수있다. - P197

타인과 아무런 관계도 없이 고립될 경우에는 나의 정체성과 나의 자아라는 감정을 전혀 키울 수 없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나는 정체감 대신 내 인격을 소유한다는 감정을 느낀다. 그러면 나는 나의 소유물이 된다. 나의 지식, 신체, 기억을 포함하여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이 나를 구성한다. 하지만 이는 앞에서 설명한 자아의 경험이 아니다. 그럴 때 나의자아는 사물로서의, 소유물로서의 나의 인격에 집착하는 ‘자아‘이다. 이런 태도를 취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자기 자신의포로다. 감금당했기에 어쩔 수 없이 불행하고 공포에 사로잡힌 포로다. 진정한 자아감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인격을 부수어야 한다. 사물로서의 자기 자신에게 더 이상 집착해서는 안 된다. 창조적 응답의 과정에 있는 자기 자신을경험하도록 배워야 한다. 여기서의 역설은 그가 이렇게 자기 자신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인격의 경계를 초월하며, 나다‘라고 느끼는순간 나는 너다‘ ‘나는 온 세상과 하나다‘ 라고도 느낀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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