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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윤리적 심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악의 희롱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다른 참가자의 목숨을 희생시켜 그 대가로 힘차게 지속되는생명이 있을 뿐이다. 생물학에서 옳고 그름이란, 같은 색채를 다른 불빛 에 비추어보는 일이다.(179p)

억지로라도 그 바닷가는 피하고 습지에서만 새 둥지와 깃털을 찾으려했다. 안전하게 몸을 사리고, 갈매기 먹이를 주고, 삶을 살아가며 보관할수 있는 크기로 감정을 잘게 자르는 데는 도가 텄다.
하지만 외로움을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카야는 그다음 날에도 그 바닷가로 돌아가 체이스를 찾았다. 그리고 또 그다음 날도. (189p)

그리고 생각했다. ‘우주의 다른 모든 사물처럼 우리도 질량이 더 높은쪽으로 굴러가기 마련이지."(232p)

체이스가 카야의 손을 잡고 손깍지를 끼더니 힘을 꼭 주어 의심을 짜냈다. (234p)

카야는 체이스를 잃었기 때문에 슬픈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거절로 점철된 삶이 슬펐다. 머리 위에서 씨름하는 하늘과 구름에 대고 카야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인생은 혼자 살아내야 하는 거라지. 하지만 난 알고있었어. 사람들은 결코 내 곁에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있었단 말이야."
체이스가 교묘하게 결혼 얘기를 꺼내 미끼를 던지고, 지체 없이 카야를 침대로 끌어들인 다음 헌신짝처럼 버리고 딴 여자를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카야는 수컷들이 여러 암컷을 전전한다는 연구 결과를 읽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 남자한테 빠졌을까? 체이스의 멋진 스키보트는 발정 난 수사슴의 잔뜩 힘준 목이나 거대한 뿔과 다름없었다. 경쟁자 수컷을 쫓아내고 끝없이 암컷들을 유혹하려는 부속기관이다. 카야는 엄마와 똑같은 덫에 걸려들었다. ‘음흉한 바람둥이 섹스 도둑들’ 아버지는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을까. 얼마나 비싼 레스토랑에 데리고 다녔을까. 그러다가 돈이 떨어지자 자신의 진짜 영역으로, 늪지의 판잣집으로 데리고 와버렸다. 사랑이란 차라리 씨도 뿌리지 않고 그냥 두는 게 나은 휴경지인지도 모른다.(264p)

한창 냇물을 건너는데 발밑에서 허망하게 쑥 빠져버리는 징검돌처럼 누구도 못믿을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 (2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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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아르의 주인공은 개새끼다. 다만 책을 읽는 중간부터 끝까지 나는 그 개새끼를 처단하는것과 동시에 그에 동조하고 지지하고 열광했던 이들의 책임도 추궁해야할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개새끼만 처벌해서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 없으니.

유머러스한 문체임에도 결국 눈물이 나고 말았다. 책뒷표지에 있던 ‘작가라면 비극적 감상에 빠지기보다는 차라리 고통스럽게 웃겨야 한다는 것’이 정말 작가의 능력이었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하나씩, 한 가지씩 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후에 그녀의 동료 교사들은당시를 회고하면서 김순희에 대해 짧게 이런 평을 내리기도 했다.
밤이나 낮이나 잠깐이라도 딴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 봉사가 아니라 자기 몸을 학대하려고 노력한 사람……(129p)

마치 이쪽과 저쪽으로 반하게 잘린 나무처럼, 끈이 풀린 검은 커튼이 갑자기 쏟아져 내려대와 객석을 반으로 나눈 것처럼, 그녀는 그렇게 과거와 단절한 채 살아갔다. (130p)

그러니, 보아라. 바로 이 지점에서 어떤 사람들은 우리 이야기의 핵심을 그대로 단정지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읽 지 못하고, 아무것도 읽을 수도 없는 세계. 눈앞에 있는 것도 외면하고 다른 것을 말해 버리는 세계, 그것을 조장하는 세계(전문 용어로 ‘눈먼 상태‘ 되시겠다.), 그것이 어쩌면 ‘차남들의 세계’라고 말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1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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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이 이 낯선 친구에게 자신을 맡길 때는 실로 용기와 믿음이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의 본성에는 뭔가 믿음직스럽지못한 데가 있어서, 우리가 믿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여러 가지 일을 억지로 믿으면서 자신을 맡겨 버리곤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피곤하다고 해도 자기 스스로 눈을 감거나 알지못할 이 낯선 꿈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어차피 이해하기 힘든 것들로 가득 차있는데, 인간의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왜 모조리 알려고하는가? 자연이든, 사람이든, 또는 자신의 가슴속에서 일어나는일이든, 우리를 가장 매료시키는 것은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아니었던가.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인간, 해부용 표본처럼 그 구조가 우리 눈에 분명하게 보이는 인간들은 수많은 소설 속에 나오는그저 그런 인물들처럼 우리를 열중시킬 만한 힘이 없다. 그리고생활에 있어서나 인간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흥을 깨는 것은모든 것을 다 설명해 버려서 내면에 존재하는 불가사의함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윤리적 합리주의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라는 것은 어느 존재에나 있는 법이어서,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도 하고 영감(靈感) 또는 성격이라고도부른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영원히 남는 요소가 있기 마련인데,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모든 행동을 모두 분석할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인간의 보편성을모른다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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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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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찾다 죄를 짓고 죄를 벌하지만 끝내 나는 나의 죄를 생각하지 못했다.
이기호의 소설은 재밌다. 일상적이어서 일상적으로 저지르고 마는 죄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는 시선이 좋다. 다만 읽는순간 한번에 와 닿지 못하면 끝내 미궁에 빠져버리는게 (나 자신에게)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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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관성 같은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가정을 진실로 만들어버리는 관성 같은 것.

이곳을 벗어나기만 한다면, 수술에 대한 생각만 버린다면, 이 모든 모멸감과 수치스러움, 그리고 그것들을 감추기 위해 어쩌면 억지로 꾸며낸 모든 말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1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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