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41 | 42 | 4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오늘의 젊은 작가 1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실한 자리에 항상 더 큰 따듯함을 채우는 작가.

그들처럼 반가워해야 하는데, 충분히 그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윤은 웃을 수가 없다. 한때 허름한 체육관에서 함께트레이닝을 받았고 학교 앞 술집에서 헛소리나 해 대며 새벽까지 마시고 취했던 그들. 미래가 아직 공백이었던 시절에는친구이거나 선후배일 수 있었으나 이제는 서로의 연봉과 세금에 무심하거나 무심한 척해야 하는 각기 다른 계층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들과의 연락이 끊긴 지는 2년도 넘었다. - P102

아까부터 미수의 눈치만 살피던 택시 기사가 룸 미러로 뒷좌석을 조심스럽게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기사의 말대로 창문에 빗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둠이 스민 도로에 떨어지는 빗줄기엔 아무런 형태도 없었지만 창문에 맺히는 물방울들은도시의 조명을 받으면서 제각각의 모양으로 번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정성스럽게 조각을 해 놓고 빛깔을 덧씌운 세공품 같았다. - P1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니밖에 없네 큐큐퀴어단편선 3
김지연 외 지음 / 큐큐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는요. 소문내고 싶어요. 점심으로 맛있는 우동을 먹어도 소문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에요. 길 가다 귀여운 고양이를 만나면 소문을 내는 게 인지상정이라고요. 근데 우리 은호 좀보세요. 얼마나 귀여워요. 아버님도 거기 앉아서 계속 본인자랑만 하셨잖아요. 뭐 별 대단한 것도 아니었잖아요. 저도 동네방네 소문내고 자랑하고 싶어요. 동네 사람들 다 모아놓고 잔치라도 열었으면 한다고요. 다들 그렇게 하면서 살잖아요. 근데 저희가 남들은 다 하는 그 잔치 열겠다는 것도 아니고요, 어디 광고할 것도 아니고요. 그냥 거짓말 안 하고 살겠다는 거예요." - P28

"손님들이 여길 정말 좋아하네요."
"좋아서 좋은 게 아니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죠."
"다른가요?"
"선택지가 없으니까, 이왕이면 좋게 생각해야죠.‘ - P1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의 엄마 오늘의 젊은 작가 25
강진아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일지라도 이렇게 진부한 신파라면 그런 능력의 부재는 부끄럽지 않다. “......시끄럽다”는 한줄에 눈물이 핑 돌기는 했지만...
그래도 누군가 겪었을 고통을 나같이 무시하려는 의지는 어쩌면 자기방어적인 수단일지도 모른다고 변명을 해보련다.

엄마의 죽음을 남자친구의 죽음과 대비되게 풀어나갔으면 좀더 재밌지 않았을까싶다. 자세한 설명도 없는 남자친구의 죽음은 앞에 왜 끼워넣었는지, 좀 아쉽다.

언니는 정아가 불편한 친가라도 되는 양 적의를 표했으므로 덧붙이려던 질문은 삼켰다. 그리고 그날 밤, 혼자 이리저리생각해 보니 엄마의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자신도 그의 가족을 장례식 이후에 만나지 않는다. 그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존재만으로 상실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역시, 불편하기만 한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은 그 불편의 구덩이를 급하게 메우려고 시집가야지, 시집가야지, 합창을 해대는 건지도 모르겠다. - P93

이모에게는 모두가 타자일 뿐 아이와 어른의 차이가 없다. 손윗사람이든 손아랫사람이든 모두가 불편하고 어렵다.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정아 자신도 같은 문제를 겪고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모두가 어렵다. - P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선과 가족들이 마치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할머니도 어느 누구의 할머니만큼 특별하고 소중하다. 그분의 이야기가 시선의 이야기처럼 남아있다면 그 후손인 나의 가족들의 이야기는 어느 지점에 수렴해 있을까 상상하니 문득 할머니가 더 보고 싶고 애틋해졌다.
시선이 깔아주는 멍석에 가족들의 삶의 이야기가 놓이는 소설인데 가족이라 그런지 인물들이 좀 비슷비슷하고 평면적이라 아쉬움이 있었지만, 워낙 독보적인 시선을 강조하려 한 의도라고 생각한다.

찻잔을 앞에 두고 허벅지가 불편할 때까지 앉아 있었더니, 액자에 햇빛이 들어 반사가 심해졌다. 화수는 액자 유리에 비친 자신을 보았고 관자놀이와 턱, 목 아래로 이어지는 흉터를 살폈다.
분노로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테이블을 손바닥으로밀며, 한 발을 딛고 또 한 발을 디뎠다. 무릎과 어깨가 어색하게움직였지만 무시하고 벽을 짚었다. 숨을 고르고 욕실로 걸었다.
분노를 연료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비웃어주고싶었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나와 내 할머니만 알고다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 P18

"아이구, 무서워라. 하지만 무서우면 잘 만든 거겠지. 근데 원래 예술보다 예술 조금 옆이 더 재밌다. 나도 그랬었다." - P67

명준은 난정이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이 어쩐지 자기 탓인 것도 같았다. 아이가 아팠고, 돈이 급했다는 흔해 빠진 이유로 저 특별한 여자를 주저앉힌 것이 세상인지자신인지 헷갈렸다. - P90

현장에서 순순히 자수하여 삼 개월간 구금 생활을 한 기민철은초범이며, 반성하고 있고, 희석한 염산을 사용했다는 점이 참작되어 징역 이 년에 집행유예 삼 년을 받았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민사를 막 시작하려고 할 때 자살했다. 염산을 쓰지는 않았고, 욕실수건걸이에 목을 매달았다.
죗값을 치르지 않고 도망쳤다. 그건 도망이었다. 화수는 잊을수 없었고 늘 화가 나 있었고 이제 그 화는 화수만을 해쳤고…… - P110

입지가 애매하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예술 애호가였다. - P113

요제프를 데리고 다니면일종의 인증을 받을 수 있으면서 과시도 가능했던 게 아닌가 짐작한다. 그는 터키인으로도 인도인으로도 중국인으로도 보였고, 특히 마티아스의 제자였던 젊은 축들은 자신들이 히틀러 유겐트처럼 보일까봐 늘 신경썼으므로 그를 끼우는 편이 나았다. 세계시민처럼 보이려는, 그림의 문제였다. 요제프도 나처럼 장식품이었다.
나보다야 지위가 나았지만, - P114

"할머니는 할머니의 싸움을 했어. 효율적이지 못했고 이기지못했을지 몰라도, 어찌되었든 사람은 시대가 보여주는 데까지만볼 수 있으니까." - P182

특별히 어느 지역 사람들이 더 잔인한 건 아닌 것 같아.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에겐 기본적으로 잔인함이 내재되어 있어. 함부로 굴어도 되겠다 싶으면 바로 튀어나오는 거야. 그걸 인정할 줄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한 집단의 역겨움 농도가 정해지는 거고. - P235

"응, 당신은 괜찮은 벽이야. 내가 생각을 던지면 재밌게 튀어돌아와."
"나는 우리가 라켓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쪽은 벽이었어?" - P237

빛나는 재능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사실 그들은 계속 같은 일을 했다. 그리고 조각하고 빚고 찍고……… 아득할 정도의 반복이었다. 예외는 있지만 주제도 한둘이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 하나에 온 평생으로 대답하는 것은 질리기 쉬운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대가들일수록 질려하지 않았다. 즐거워했다는 게 아니다. 즐거워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질리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 - P289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손맛이 생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무것도 당연히 솟아나진 않는구나 싶고 나는 나대로 젊은이들에게 할 몫을 한 것이면 좋겠다. 낙과 같은 나의 실패와 방황을 양분 삼아다음 세대가 덜 헤맨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 P2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상을 강요하는 환상적인 공간에 현실이 들어앉아 그 환상을 허물고 마는 이야기.

‘네’가 ‘너’가 아닌 ‘넷(4)’이었다는 점도 스포라면 스포니 흘려봄.

속사정을 알 길이 없었으나, 정가가 12만 원이든7만 원이든 일단 3만 원을 무턱대고 부르고 보는 강교원의 사고 리듬은 분명 은오의 이해 바깥에 놓여 있었다. 아이를 위한다는 구실로 일상에서 가벼운 것부터 하나씩 둘씩 무리수를 두다 결국 수치라는 걸 모르게 되고 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걸까……. - P148

남자들 여럿이 들어 옮기면 식탁 옆으로 한두 대쯤 더 주차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여자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중기를 동원하지 않고는 어려워 보였을뿐더러 왠지는몰라도 이 공간은 이렇게 활용해야 마땅한 곳 같았다. 어떤효용이나 합리보다는 철저한 당위가 지배하는 장소. - P191

물건 사진을 찍어서 홍단희에게 보내 버린 다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상의할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렇게 솔직히 고백했을 때 홍단희가 자기 남편이 아닌 요진의 편에 서 줄 리는 없었고, 같은 여자 입장으로 봤을 때 좀 이상하다 싶어 추궁하더라도 신재강은 그 상황에 맞추어 떨 수 있는 너스레와그 자신에게 유리한 임기응변을 적어도 스무 가지는 갖추고있을 것만 같았다. 무엇을 선택하는 요진은 공동주택의 남자들에게는 예민하고 까탈 부리는 사람이 될 터였고, 여자들에게는 밑도 끝도 없이 이상한 사람이거나 남의 집 남편에게 꼬리 친 여자로 둔갑하여 이미지가 박제될 것이었다. - P15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41 | 42 | 4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