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두 번
김멜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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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을 춰줘요>는 인터섹스라는 태생의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이태원’에서 찾아 나가는 소설이다.
뇌에도 성기가 있다라는 말처럼 생물학적 성보다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후천적으로 찾아가는 주인공의 은유가 돋보인다.

<적어도 두 번>은 여성의 성적 억압을 해학적으로 풍자(이 소설에 이런 고전적인 평을 하다니)한다. ‘지위’를 ‘자위’로 읽은‘여성의 자위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으로 합의할 수 없는 문제이며 여성의 신체적 자유에 관한 의견 또한 신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라는 기사의 문장이 이 소설의 시발점이 되지 않았을까 예상해 본다.(특히 이 기사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 가장 심각한 이슬람 문화에 대한 기사이다.) ‘클레이우투스’를 자극하는 방법을 교육하겠다는 의지로 아동 성추행범이 된 주인공의 변론은 사실 상당히 상식적으로 함의 돼야 할 정의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밝힌 <물질계>에서는 지적으로 자신감이 과하게 충만했던 대학원 시절의 주인공이 논문을 포기하고 과학적 사고에서 미신적 사고로 인생을 전환하다 만난 연인과의 이야기이다. 같은 연구실 조교를 따라 논문통과운을 봐준다는 ‘은하수’라는 철학관을 찾아간 주인공은 그날 본 사주대로 인생을 29에 말아먹는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할머니가 자신의 사주를 ‘집안 말아먹을 년’이라고 풀이해 온 날을 상기하며, 사주라는 철학의 과학적 진리를 수긍하고는 다시 ‘은하수’를 찾아가지만 만나지 못하고 급한 생리적 현상에 들어간 굴다리에서 레즈비언 사주 ‘레사’를 찾아간다. 레사에게 사주를 보며 사이가 가까워진 둘은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어 간다.


작가가 등단을 하기 위해서는 안전하고 평이한 작품을 써서 등단을 해야한다던데, 과연 초창기의 작품은 안정적이고 전형적인 단편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 서서히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독특한 작품들이 재밌고 인상적이었다. 점점 더 개성이 드러날 것 같으니 더 큰 재미를 선사해 주리라 믿는다.

나는 조직을 원했고 조직 문화를 신뢰했다. 누군가는 조직이 개인의 자유와 창조성을 억압한다지만 나는조직이야말로 타인의 무분별한 망상과 폭력으로부터 개인을 지켜주는 보호막이라 믿었다. - P164

조금만 더 하면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완전한 탈락보다 아쉬운 탈락이 더 나쁘다는 것을 모르던 시절이었다. - P174

흔히 길을 잃었다고 하지만 길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다.
찾아야 할 것은 길이 아니라 지금 그가 서 있는 위치였다. - P190

내가 어린왕자를 좋아하는 건 어린왕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왕자를 왕자라 부르는 건 남자라서가 아니라 자기의 왕국을 갖고 있어서다. - P21

만약 이테가 앞을 볼 수 있었다면 그 애는 스스로 클리토리우스와 만나는 법을 터득했겠죠. 어쩌면 세상의수많은 맹인들이 스스로 그 만남을 이어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혹은 이테처럼 어떤 유파고가 그 만남을 인도해주는지도.
유파고, 저는 압니다. 사람에겐 저마다 각자의 클리토리우스가 있고 그것은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요. 숨기고감춰야 할 부끄러움도 아니고 참과 거짓의 방정식도 아닙니다. 저마다 열심히 문질러야 할 콩알일 뿐입니다. 만약 인류가 콩알을 숨기거나 학대하지 않고 자유롭게 문질렀다면 그것은 제크의 콩나무처럼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 하늘로 치솟을 만큼 그 지위(‘이 지위는 보이는 그대로의 지위‘)가 높아졌을지 모릅니다. 혹은 식물의 그것처럼 색과 향기를 뿜으며 피어올랐을지도 모르죠. 식물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꽃을 피우듯 여자들은 자기만의 클리토리우스를 밖으로 피워 올렸을겁니다.
유파고, 이것이 저의 고백입니다. 저는 수천수만 개의 클리토리우스가 겨울나무의 눈처럼 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알았습니다. 이테가 제게 알려주었고 유파고의 죽음이란 생각이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 P83

레사는 사주팔자 명리학은 자기에게 적용하는 성찰이고수양이지, 남에게 악담을 퍼붓는 게 아니라고 했다.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면, 그게 모여 사주팔자가 된다고.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고, 봄에는 꽃이 피고 겨울에는 눈이오고, 눈이 내려 땅에 이불을 덮어주듯 사람은 조용히 1년을되돌아보며 음기를 모으고, 봄이 오면 그 음기를 양기로 쓰는거라고, 그렇게 음과 양, 빛과 어둠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운이 좋고 싶으면 밥 잘먹고 잠 잘 자고, 어디 가서 신발 벗으면 뒤축을 가지런히 모아놓고, 귀찮아도 양치질하고 자고, 무엇보다 남이 나에게 해주길 바라는 것을 내가 남에게 해주고. - P125

죽음은 어떤 공간이어서 계속 걸으면 나오는 길이다. 나는쉬지 않고 그 길을 걸었다. 그 길을 산책하고 때론 다람쥐를만나며 레사와 호흡했다. 어느 날은 내가 레사에게 물었다.
레즈비언이 되는 사주팔자도 타고나는 것이냐고, 레사는 말했다. 사주로 찾으면 찾을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겠다.
고, 설명하면 할 수야 있겠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고, 나는 레사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레사는 드라이어로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듯 내 마음속 빙하를 녹여주었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내가 잠들 때까지 내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렇게10년 동안 레사와 나는 변함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 P127

스프링클러의 목적은 불을 끄는게 아니라 불을 제어해 대피할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세방은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때 용수량과 면적을 계산했지만 그수식에 ‘불운‘을 넣을 순 없었다. - P200

세방이 엄마를 사랑했기에, 엄마는 그 사랑을 불쏘시개 삼아 그의 가슴에 불을 놓은 것이다. 세방도 똑같이 해주고 싶었다. 아버지의 비겁함과 어머니의 횡포에 불을 지르고싶었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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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8
앙리 드 몽테를랑 지음, 유정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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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문학 열심히 읽어보려 했는데, 이 책은 퀴어문학이 가진 심리선들이 없다. 가령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일탈의 감정이나 대담함, 짜릿함이 없다. 거기다 재미도 없다. 문학이 ‘프랑스 문학적(?)이다‘로만 규정될 것 같다.

"지나친 건 모두 대수롭지 않다" - P282

"죽음보다 더 무서운 건 삶의 유혹이었다." - P441

사람들은 어떤 집념으로만 움직인다. 집념이 없는 사제들은 습관에 짓눌린다. - 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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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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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가 이해한대로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과거는 면역학적 시대였다. 안과 밖이 확실하게 구분이 되었고 외부의 것이 침투해 오면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것이 행동 본질이었다. 간단히 설명하면 ‘낯선 것은 무조건 막’았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는 낯선 것에 대하여 차이를 인식하여 ‘낯선 것은 이국적’인 것으로 점철된다. 이질성이 실종되어 낯선 것을 받아들이다 우리 사고는 긍정성의 과잉 상태가 되어 거부반응이 나타난다.
과거는 ‘~해선 안된다’로 인간은 복종적 주체였는데, 현대사회는 ‘~해야 한다’로 인간을 성과 주체로 승격(?)시켰다. 이런 강제하는 자유는 인간 스스로 과다노동을 하고 자기 착취를 하는 등의 행위로 귀결된다. ‘자유의 변증법’이라고, 현대인은 자유에서 발생한 새로운 강제에 억압받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활동적인 삶보다는 관조적인 삶을 권장하며, 이를 우위에 두고 있다. 힘에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긍정적인 힘과 하지 않을 수 있는 부정적인 힘이 있다. 긍정적 힘만 계속된다면 밀려드는 자극에 의해 무력감을 느끼게 되므로, 하지 않을 수 있는 ‘무위’를 중시해야 한다. ‘무위’는 사실 극도로 능동적인 행동이며, ‘참선’의 경지는 자기 안에서 가장 긍정적인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피로사회로부터 도피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저자가 ‘멀티테스킹’에 대해 평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다각도의 신경 분산은 ‘넓지만 평면적인 주의구조’일 뿐, 진지한 ‘사유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또 ‘성과사회’에서 우리는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성능 없는 성과를 만들어내며 이를 도핑사회라고 규정하는 점도 흥미롭다.

에랭베르가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탈갈등화는 사회의 전반적인 긍정화와 이를 수반하는 사회의 탈이념화라는맥락에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정치적 사건은 더 이상 이념들 사이의 분쟁이나 계급 간 분쟁으로 규정될 수 없다. 그런 것은 이제 거의 흘러간 옛 노래처럼 들릴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사회의 긍정화가 폭력을 철폐하는 것은 아니다.
폭력은 분쟁이나 갈등의 부정성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동의의 긍정성도 폭력의 원천이 된다. 모든 것을 흡수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본의 전일적 지배는 현재로서는 합의적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투쟁이 집단, 이데올로기, 계급 사이에서가아니라 개인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은 에랭베르의 생각과는 달리 성과주체의 위기에 그렇게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문제는 개인 사이의 경쟁 자체가 아니고 경쟁의 자기 관계적 성격이다. 그로 인해 경쟁은 절대적 경쟁으로 첨예화된다. 즉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면서 끝없이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추월해야 한다는 파괴적 강박 속에 빠지는 것이다. 자유를 가장한 이러한자기 강요는 파국으로 끝날 뿐이다. - P101

오직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명령이 우울증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에게 우울증은 자기 자신이 되지못한 후기근대적 인간의 좌절에 대한 병리학적 표현이다. 그러나 우울증을 초래하는 요인 가운데는 사회의 원자화와 파편화로 인한 인간적 유대의 결핍도 있다. 우울증의 이러한 측면은 에랭베르의 논의에서 빠져 있다. 그는 성과사회에 내재하는 시스템의 폭력을 간과하고 이러한 폭력이 심리적 경색을야기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오직 자기 자신이 되어야한다는 명령이 아니라 성과를 향한 압박이 탈진 우울증을 초래한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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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맥베스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강승현 옮김 / 모모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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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이야기를 덧붙여 분량을 채운 듯한 소설….

그 어떤 혐오스러운 상황에도 인간은 적응을 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보잘것없는 기쁨이라도 추구하게 마련이다. - P93

나는 돔나 플라토노브나가 이 일을 사업 삼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그녀는 페테르스부르크식으로 여자가 궁핍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 타락하는 것 외에 어쩔도리가 없다고, 그것이 거스를 수 없는 법이라고 간주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돔나 플라토노브나, 당신의 정체는 무엇인가? 도대체 누가 당신에게 이 모든 것을 알려 주었고, 이러한 길로 들어서게 했는가?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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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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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페이지도 안 봤는데 눈물을 자극하면 남은 300페이지를 어떻게 완독하라고 이런 소설을 썼을까.

소설 중 증조부가 하는 짓이 꼭 우리 아빠를 빼닮아서 그런지 작품에 너무 쉽게 나 자신이 투영됐다.

그리고 그냥… 다 읽고 나니 기분이 좋다.

지우는 개새끼라는 말은 개의 새끼라는 뜻이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 개는 가짜라는 뜻이라고, 그러니까 정상 가족‘이라는 테두리 밖의 ‘가짜‘ 자식을 뜻하는 멸칭이라고 했다. 지우는 거기까지 설명하더니나쁜 말이네, 라고 말하고는 앞으로는 그 단어를 쓰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러더니 개새끼, 미친놈, 씨발놈 어느 것 하나 쓸 만한 말이 없다면서, 인간은 왜 이렇게 치졸하냐고, 왜 꼭 약한 사람을 짓밟는 식으로밖에 욕을 못 만드느냐고 했다.
"참신한 욕이 필요해. 분이 풀리는 욕이 필요해."
그것이 지우의 결론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개새끼라는 단어를 종이에 펜으로 써보았다. 개새끼. 어원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로그 말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강아지를 떠올렸다. 자기에게 관심도 없는 사람의 바짓자락에 붙어서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왜 개새끼라고 하나. 개가 사람한테 너무 잘해줘서 그런 거 아닌가. 아무 조건도 없이 잘해주니까, 때려도 피하지 않고 꼬리를 흔드니까, 복종하니까, 좋아하니까 그걸 도리어 우습게 보고 경멸하는 게 아닐까. 그런 게 사람 아닐까. 나는 그 생각을 하며 개새끼라는 단어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 자신이 개새끼 같았다. - P13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 P14

사람들은 나를 부정 탄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런 식으로, 일어난 일을 평가하지 말고 저항하지 말고 그대로아들이라고 했다. 그게 사는 법이라고.
그녀는 댓돌에 앉은 채 엄마가 알려준 방법으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아픈 엄마를 버렸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엄마를 땅에 묻어주지 못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개성 사람들은 내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래, 그런 일이 있다. 그건 항상 그랬던 일이다.
엄마의 말대로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그런 식의 생각은 오히려 그녀를 더 화나게 할 뿐이었다. 그녀에게는 그런 재능이 있었다. 어떤경우에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재능, 부당한 일은 부당한 일로, 슬픈일은 슬픈 일로, 외로운 마음은 외로운 마음으로 느끼는 재능.
그래, 개성 사람들은 내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그녀는 두 눈을 꼭 감고 주먹을 쥐었다. - P55

허영심의 힘이 얼마나 센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순교자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사람이었다. 가진 모든 것을, 목숨까지도 버려 천주에 대한 사랑을 지키려 했던 그들의 이야기에 감화를 받았다. 그는 증조모를 알게 되면서, 그녀가 사는 모습을 보고서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준비를 했다. 너를 구하기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결과로 그는 평생을 억울함과 울화와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자기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부모를 떠날 때만 해도몰랐던 것이다. 아니, 그는 평생을 몰랐다. 자기가 얼마나 작은 손해에도 예민하고 속이 좁은 사람인지. 자신은 부모를 떠날 만큼 용기가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저 충동일 뿐이었다. 떠나고 싶은 충동, 그는 그가 누릴 수 있는 인생을 그녀가 빼앗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개성으로 오고 나서 그는 향수병에 시달렸다. 형과 누나들도 보고싶고 엄마 아버지도 보고 싶고 두고 온 벗들도 생각났다. 건너 들었을땐 꿈처럼 느껴지던 개성의 거리도 온통 시끄럽고 번잡스러울 뿐 마음을 둘 장소가 아니었다. 겨우 얻은 셋방도 가축우리처럼 느껴졌다.
버젓한 마당과 우물이 있는 고향집이 그리워 자다가도 몇 번이나 했다. 부모가 정해준 여자와 결혼했다면 여전히 그 집에서 그 좋은 것들을 누리며 살았을 텐데. 자신이 잃은 그만큼을 아내는 보상해야 했다. 그런데 아내는 자신의 기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감사하는 마음은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무슨 여자가 저렇게 뻣뻣하지? 그는 생각했다.
아내에 대한 애정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사실 그는 자신과 달리 당당하고 강인한 그녀를 동경하면서도 두려워했다. 남편으로서의 일말의 권위마저 빼앗길 것이라고 예감했고, 아내가 속으로 자신을 비웃고 있지는 않을까 염려했다. 나는 너를 돕기 위해 모든 걸 버렸는데,
왜 그만큼의 대접을 안 해주고 내 기분을 맞춰주지 않는 거지? - P61

자식은 엄마가 전시할 기념품이 아니야. - P136

엄마는 나를 보며 무안한 듯 웃어 보였다. 그런 엄마가 예전처럼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보는 엄마의 표정에서 엄마 또한 내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예전처럼 며칠씩 서로 말도 붙이지 않을 정도로 신경전을 벌일 만한 일이 우리에게는 더이상없었다. 큰불이 나기 전에 꺼버렸고, 상대에게 작은 불씨를 던졌다는것에 문득 무안해지기도 하는 사이가 된 것이었다. 그건 우리가 그만큼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가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우리는 눈빛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더이상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정말 끝이 날까봐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우리는 싱거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을 내려왔다. - P137

하지만 할머니는 그날 그 자리에서 불안을 느꼈다. 경계하지 않을때, 긴장하지 않을 때,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할 때, 비관적인 생각에서 자유로울 때, 어떤 순간을 즐길 때 다시 어려운 일이 닥치리라는 불안이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전긍긍할 때는 별다른 일이 없다가도 조금이라도 안심하면 뒤통수를치는 것이 삶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했다. 불행은 그런 환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겨우 한숨 돌렸을 때, 이제는 좀 살아볼 만한가보다 생각할 때.
그런 생각은 증조모로부터 온 것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좋다, 행복하다, 만족스럽다, 같은 표현을 하면 증조모는 부정 탄다고 경고했다. 자식이 예쁠수록 못났다고 말하고, 행복할수록 행복하다는 말을 삼가야 악귀가 질투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돌이켜보면살면서 후회되는 일은 늘 그런 것이었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함께 웃고 즐거워하고 따뜻함을 나누는 시간을 그대로 누리지 못하고 불안에 떨었던 것 말이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있었으니까. 아무리 불안에 떤다고 해도, 좋은 순간을 그대로 누리지 않으려해도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으니까. - P199

그는 세상 사람들이 덜 고통받고 더 잘사는세상을 꿈꾼다는 말을 하면서도 할머니의 발이 얼마나 부어 있는지, 가끔씩 배가 뭉칠 때마다 할머니가 얼마나 큰 두려움을 느끼는지에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말하면서 할머니가 벌어온 돈은 아무렇지 않게 앗아갔다. 그런 그를 볼 때면 할머니의 마음깊숙한 곳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분노가 서린 웃음이었다.
스무 살 이후의 할머니를 만난 이들은 할머니를 냉소적인 사람이라고 평했다.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기보다는 비웃거나 차갑게 평가했으니까. 그 냉소적인 가면 뒤에상처받고 싶지 않고, 더는 울고 싶지 않은 할머니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 없었다. - P221

할머니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때만 해도 세상이 그랬어. 딸 가진 죄인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아니었다. 시댁에 책잡혀서 좋을 게 뭐가 있니. 아버지 문제로 이미책잡힌 딸이 나 때문에 공연히 더 난감해지는 걸 바라지 않았지. 지는게 이기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면 된다고 생각했지. 그게 미선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어."
‘맞서다 두 대, 세 대 맞을 거, 이기지도 못할 거, 그냥 한 대 맞고 끝내면 되는 거야. 나는 그 말을 하던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는게 이기는 거다. 너를 괴롭힌다고 똑같이 굴면 너도 똑같은 사람 되는 거야.‘ ‘그냥 너 하나 죽이고 살면 돼.‘ 패배감에 젖은 그 말들, 어차피 맞서 싸워봤자 승산도 없을 거라고 미리 접어버리는 마음. 나는그런 마음을 얼마나 경멸했었나. 그런 마음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발버둥쳐야 했었나. 그런 생각을 강요하는 엄마가 나는 미웠다.
그런 식의 굴욕적인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저항했다. 하지만 왜 분노의 방향은 늘 엄마를 향해 있었을까. 엄마가 그런 굴종을 선택하도록만든 사람들에게로는 왜 향하지 않았을까. 내가 엄마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나는 정말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내 생각처럼 당당할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의 자리에 나를 놓아봤고 그 질문에 분명히 답할 수 없었다.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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