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프랜 리보위츠
프랜 리보위츠 지음, 우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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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식이 과해서 벌어진 참사
뉴욕을 선망하다 자의식이 이탈한 자들이 내놓는 찬사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책이 인문서가 아닌 수필로 다뤄진다는 점, 그냥 하나의 의견이라고 사람들에게 소개된다는 것이다.

즉 작가가 문제가 아니라 주변의 반응이 책의 본질을 망친다.

신이 만드신 아이라고 모두 아름답진 않다. 어디 내보일 만한 신의아이는 정말 몇 명 없다. 외모와 관련하여 가장 흔히들 하는 실수는모습에 집착하지 말고 영혼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밖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믿음이다. 만약 당신의 몸에 이런 게 가능한 부위가 있다면, 그건매력 발산이 아니라 그냥 새는 구멍이다. - P26

상속녀가 되고 싶으시다고요?
이 분야는 출생이라는 우연에 크게 좌우된다. 이 문제는 혼처를 잘고르기 그리고/또는 나이든 남성을 무척 행복하게 해주기로 극복할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도 결코 쉽지만은 않으니 게으른 사람이라면다른 직업을 찾는 편이 나을 것이다. - P31

채소는 흥미로운 재료이지만 양질의 고기와 함께 나오지 않을 경우그 목적을 잃는다. - P161

예술이라는 주제를 두고 하는 가장 맥빠지는 말은, 아마 삶이 예술을모방한다는 말일 것이다. 좀더 일관되게 현실에 들어맞았더라면 분명의지가 되는 문장이었으리라. 삶의 예술성은, 가장 필요로 하지 않을때 절정에 달한다는 걸 파헤쳐보면 금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삶이란 대개 기교를 모방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네 삶이 마크라메 화분걸이보다 쇠라"의 작품과 더 닮아 있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예술에 관해서라면, 삶은 무엇보다 그 틀을 모방하는 데 발군이다. - P170

‘겨냥하는 여성‘으로 알려진 페미니스트 단체가 남성 재현예술가들을 인질로 잡고 왜 여성을 그릴 때 가슴을 그렸는지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남자들은 여성에겐 가슴이 있으니 가슴 있는 여성을 그렸다고 답하면서 틀에 박히길 두려워한다고 페미니스트들을 비난했다. 타당성을 즉시 간파한 여성들은 심심한 사과를 전하며 청색 시기라 깊은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고 해명했다. - P197

절대 저녁식사 자리에서 이름을 던지며 인맥을 과시하지 마라. 파리들어간 수프보다 나쁜 게 연예인 들어간 수프다. - P255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단어를 만든 시대라면 머지않아 ‘생각 스타일‘이라는 개념 또한 고안해내리란 건 안 봐도 뻔하다.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라이프‘와 ‘스타일‘ 둘 다 갖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이 표현에는 총량이 일부의 합보다 적은 완벽한 예시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생각 스타일을 정의하는 최상의 방법일 것이다.
생각 스타일도 이와 마찬가지니, 우리는 생각이 그리 풍성하지 않은시대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나마 꽤 괜찮은 개념 두어 개쯤 가질 수 있다면 최고라고 여길 만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 뿐. 이런 궁금증을 품을 수도 있겠다. 생각과 개념의 차이란 과연 무엇인가? 물론장 주요한 차이로는 개념은 팔 수 있지만 생각은 줘버릴 수조차 없다는 점이다. -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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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칸트의 말 초역 시리즈
임마누엘 칸트 지음, 하야마 나카바 엮음, 김치영 옮김 / 삼호미디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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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선하기 위해 스스로 엄격했던 사람.
남을 비방하는데 써먹기 보다는 자아성찰을 위함이다.

다만 결과보다는 동기라니…
마음 편하려는 이기심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무조건 추종하기 전에
‘멈춰 서서 잠시 생각해 보는 용기‘를 가져라.
여러 가지 규칙과 제도에 익숙해지면
머리를 쓰지 않게 된다. - P15

이성을 작동시키는 대신 책에 의존하고,
양심을 작동시키는 대신 종교에 의존한다.
스스로 식사를 절제하는 대신
의사에게 식이요법을 처방받는다.
‘생각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돈만 지불하면
모두 다른 사람이 맡아서 해 준다.
인간이란 얼마나 게으른 존재인가! - P17

순수이성에 깃든 선한 의지는
우리의 이성 중
가장 뛰어난 능력이다. - P27

인간이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칸트는 많은말을 통해 우리에게 그 비결을 알려주고 있다. 그는 ‘책임‘을 갖고 ‘의무‘를 실행하는 것이 이성적인 인간의 바람직한 자세라고 말한다. - P50

사물에는 가치가 있지만
인간은 존엄성을 갖고 있다.
인간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 P69

단순히 병명을 붙이는 것만으로
환자에게 엄청난 도움이 된다고 착각하는
의사가 있다. - P98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마치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가하면서도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자신을 속이고 있다. - P101

여성스러움이란 약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성질이야말로
남성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무기이다. - P125

거만한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기대한다.
한편으로는 상대방을 업신여기고 멸시한다.
그는 모순된 자신의 태도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 P157

독재자에게 지배받는,
자유 없는 사회는 불행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질서정연해진다. - P195

인간은 편하게 살고 싶어 하지만
자연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가로이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노고와 노동을 이겨 내기 위한
지혜를 짜내도록 만들고, 성장시키기 위해
인간을 시련 속으로 던져 넣는다. - P46

선한 행위는 선한 의지에서 생겨나며,
선한 의지는 의무에서 생겨난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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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죽음 -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에 대하여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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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강조하지만, 자살을 바라보는 데 있어 역사성의관점은 피해야 한다. 살아가며 겪는 모든 시절은, 그러니까 실제에 있어 인생의 모든 순간은 저마다 나름의 논리를 가진다.
그에 알맞은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 시간을 통해 성숙한다는것은 동시에 죽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보자. 우리의불쌍한 가정부 처녀는 창문에서 뛰어내릴 당시와 똑같은 진정성을 나중에 결코 보여줄 수 없다. 그래서 그놈의 사랑 때문에무슨 덕이라도 보았느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녀는 오로지자신의 사랑을 충실히 채웠을 따름이다. 비록 대답 없는사랑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존재에 강력한 밀도를 불어넣었다.
이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나중에 착한 남자를 만나서 아이들을낳고, 그들에게 둘러싸였어도 결코 누릴 수 없는 밀도가 아닐까. 극단적인 선택이기는 했지만 자살을 택함으로써 그녀는 뛰어내리는 바로 그 순간에 가장 진솔한 인생을 살았다. - P36

다시 말해서 자살이라는 문제는 심리학적인 접근으로 풀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생명 법칙이라는 게 깨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심리학도 무너지고 만다. 생명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마당에 심리학이 다 무엇인가. 잠시 함께숨을 고르고 ‘생명 법칙‘이라는 전혀 간단하지 않은 개념을 좀더 깊이 생각해보자. 심리학의 상위개념을 이루는 이 ‘생명 법칙‘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이런 개념이 필요한 이유는, 자기보존이나 번식 본능이라는 사실에만 의존해서는 생명 욕구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그런 법칙의토대가 무엇인지 하는 문제를 놓고 수많은 연구가 이뤄져 왔다.
또 그 연구 방법도 제각각이어서 서로 넘볼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보기에는 한 가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을확인해주고 있다. 다름이 아니라 법칙이라는 논리적 판단은 공허하다는 것이 그 사실이다. 이런 판단들은 그 본질상 동어반복(Tautology)"이다. - P48

에피쿠로스(Epicouros)의 말에 이런 게 있다. "죽음은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없으며, 죽음이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 P49

우리 문화에서 자살은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몹쓸 병에라도 걸렸던 것처럼 고개를 숙이며, 심지어 가난보다도 더 창피한 것처럼 얼굴을 붉힌다. 그는 말한다. "그저 평안을얻고 싶었소. 그냥 편안하게 쉬고 싶었소." 마치 죽음이 삶의 한순간인 것처럼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 없음이 아니라, 존재범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표현한다. - P52

하지만 오늘날 철저한 권리 의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이 주인일 뿐이다. 스스로 살 것인지 죽을 것인지 결정한다. 신의 권능과 권위가 끼어들 틈을 조금도 주지 않는다. - P54

"나는 죽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나는 죽는다. 고로 지금까지 끊임없이 나에게 어떤 판단을강요하던 인생은 이제 없다." 아니,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해보자.
"나는 죽는다, 고로 나는 최소한 뛰어내리기 직전의 순간에서만큼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어리석게도 그토록 갈망했던 나 자신을 있을 수 없었던 상황을 현실로 이루어냈다." 현실이 그토록 나에게 허락하지 않던 바로 그것을! 뛰어내리기 직전, - P63

‘자연‘이라는 말을 원인과 결과가 맞물려 돌아가는 인과관계 전체로 이해한다면, 어쨌거나 죽음은 ‘자연적‘이다. 다시 말해서 인과관계로서의 외부 세계가 우리의 존재를좌지우지하는 주인으로서 우리의 자아를 지배하고 있다면, 죽음은 자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의 자아(심리적이고 정신적인 현상, 나라면 ‘감각의 묶음‘에 불과하다고 표현하리라)에게 있어 신장, 위장, 심장 등은 모두 외부 세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가 그토록 좋아하는 뜨거운 심장이라는것도 따지고 보면 근육 덩어리일 뿐이지 않은가. 반면, 개념으로 쓰기에 깔끔하지 않기는 하지만, 우리 인생을 담아내는 사회적 네트워크이자 소통 수단으로서의 일상 언어는 엄밀함을 중시하는 언어철학이 깎아내리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영리하다. - P78

학교 교육 덕분에 이제 인간은 죽음이 하나의 생명이 시작될 때부터 이미 들어선 어떤 과정의 종착점일뿐이라는 것을 안다. 세포들의 자기 재생 능력이 그 사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죽음이다. - P85

자유죽음을 행하는 자는 인생 논리를 긍정하는 인격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결과적으로 부정함으로써 인생 논리를 부정한다. 인생 논리라는 사슬을 박차고 나오면서도,
여전히 그 사슬에 묶여 있다. 그는 천수를 다하는 자연적인 죽음을 기다리려 하지 않는다. ‘에크‘의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은 반자연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적인 죽음, 곧 자신의존엄성을 지키려는 죽음을 그는 택한다. 어릿광대의 옷을 입은것만 같던 인생을 버리기로 한다. 이런 유혹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다. - P105

다행스럽게도 이미 상당한 발전을 이룬 모든 사회에서는 성적 취향에 있어 소수파가 무슨 범죄 집단이거나 환자 집단으로 취급받지 않는다. 여자든 남자든 동성애 취향을 가졌다고 해서 ‘다나을 때까지 검역소에 가두어 두지는 않는다. 마찬가지 이유에서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은 왜 자살을 했거나 시도하는 사람들은끝끝내 사회의 마지막 남은 별종 취급을 받아야 할까 하는 물음이다. 물론 자살이라는 행위가 동성애라는 성적 취향보다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동성애자는 후손을낳아야 한다는 논리를 거부하는 것일 뿐,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살 시도에 성공한 사람은 매몰차게 잊어버리고, 자살 시도에 실패한 사람은 정신병자 취급하는게 인간적인 태도일까? - P107

"과거는 치욕적이며, 현재는 고통스럽고,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콜로나(L. Colonna)가 《자살과 정신 질환 분류학(Suicideet nosographie psychiatrique)》에서 한 말이다.] 환자로 내몰린 끝에 자신의 인생을 견딜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은 언젠가 자살을 시도한다. 그의 과거가 정말 치욕적이었을까? 그의 느낌 안에서는 분명 그랬으리라. ‘에셰크‘의 감정 안에서 그는 자신이 살아오며 겪은 모든 것을 실패로 여기며 헤아려본다. 참을 수 없는중압감이 그의 가슴을 짓누른다. 그렇지만 다른 편에서 보면 그가 당한 모든 굴욕, 사람들에게 받은 모욕, 껍질만 남아버린 희망 등이 곧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 이런 것들을 자신에게서 떼어내기가 무척 어렵다. 프로이트는 이를 두고 "떨어짐의고통"이라는 표현을 썼다. "떨어짐의 고통은 아프기만 하다. 예견하는 미래는 새로운 아픔으로만 다가올 뿐이다. 도망치기로한다. 곧장 달려 숨겨진 비존재로 뛰어든다. 죽음이라는 이름의 유일한 탈출구를 찾는다. 그는 이른바 ‘자연적인 죽음‘을 기다릴 여유가 없으며 그럴 기분도 아니다. 오로지 아는 것이라고는 단말마의 고통에 시달리는 육신이 아무런 희망이 없는 무의미한 저항만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일 따름이다. - P112

프랑스 왕 루이 필리프(Louis-Philippe) 아래서 수상을 지낸 사람은여덟 살 먹은 아이가 공장에서 하루에 열에서 열한 시간 동안일하는 것이 건강에 아주 좋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시간이 남아돌아 못된 장난을 일삼는다. 우리의 개념으로 보자면 이 남자는 악당이거나 정신병자가 틀림없다. 그러나그와 동시대를 산사람들에게 그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이성적인 인간이었다. 더없이 인간적인 남자로 보기도 했으리라. - P113

이를테면 늙고 병들어 죽은 자연죽음이 반드시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손발을 묶어두고 자연 죽음만 기다리라고 하는 게 반자연적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자유죽음을 택하려는 사람은 자연 죽음이 가지는 반자연성을 미리 감지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살을 시도했거나 하려는 사람이 자유롭게 택한 죽음의 자연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 P117

이제 자살은 가난과 질병과 마찬가지로 치욕이 아니다. 자살은 더 이상 침울해진 정서를 가진 사람이 저지르는 비행이 아니다(중세에는 심지어 악마에게 사로잡힌 영혼이라는 표현을 썼다).
어디까지나 자살은 존재를 몰아붙이는 도전에 맞서 그에 응전하는 일종의 대답이다. 세월이라는 흐름에 휩쓸려 떠내려가다가 익사하기 직전, 지르는 단말마적 고통의 비명이 자살이다. - P118

의심할 여지가 없이 허무라는 원리는 희망이라는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내밀하고 강렬하게 품었던 희망, 돌이켜 반성하면서 보듬었던 희망, 이로써 인생의 모든 가능성을 끌어안았던 희망을 깨는 게 허무라는 원리다. 허무는 공허하기만 한 게 아니다. - P147

둘째, 이른바 ‘회색 지대‘라는 것이 존재한다. 회색 지대에서 자살을 결심한사람들은 생명 논리와 종족 보존에 혈안이 된사회에 속내를 드러낼 수 없는 나머지 마치 그런 결심을 하지않은 것처럼 서성댈 따름이다. - P153

그래서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물음의 답은 꼭 찾아야 한다. 인간은 누구에게 속하는 존재인가? - P172

하지만 차라리 나는 자유죽음이라는 인간적인 존엄을 무시하고 그저 자신을 제물로 바친 헛된 죽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더러 군홧발이나 불구덩이에 희생당하라고 하면서,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사랑과 지혜"라며 그리스도의 신을 들먹이는 그의 말이야말로 내가 보기에는 진짜 신성 모독이다. - P175

사회든 종교든 인간에게 자신의 소유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결정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사회와종교는 인간에게 결정의 자유를 포기하도록 요구한다. - P176

결국 인간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책임질 수 있는존재다. 이를 두고 사회가 할 말은 없다. - P177

오늘날 공공질서의 수호자로 임명받은 사회학, 정신분석학, 심리학 등의 행태를 보라. 자유죽음을 무슨 몹쓸 병처럼 취급하지 않는가. 자살을 다루는 사회의모든 이론은 한결같은 목소리를 낸다. 이들은 잠재적인 ‘자살자‘가 그 뜻을 자유죽음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을 막으려 혈안이된다. 이들은 말한다. 생명은 유일한 자산이라고! 어떻게든 지켜야만 하는 것이라고! 그런데 내세워지는 이유는 아리송하기만 하다. 신이 허락해준 생명이기에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 인생이라는 사회적 현상에 무슨 대단한 형이상학적인 가치라도부여했기 때문인가? 그러나 이런 물음에 돌아오는 답은 아무것도 없다. 그 형이상학적인 가치라는 것도 알고 보면 생물학에지나지 않는다. 매일같이 그리고 어디서나 늘 새롭게 생성(늘태어난다)되며, 또 취소(죽어 없어진다)되는 게 생명일 따름이다. - P178

타인은, 우리가 알고 있듯, ‘지옥‘이다. 타인의 자유는 나의 자유와 엇갈린다. 타인이 품은 뜻은 나의 뜻을 가로막는다. 타인의 주관은 나의 주관을 파괴한다. 나를 바라보며 반드시 이러저러하게만 살라고 심판하는 타인의 시선은 일종의 살인이다. - P192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사랑하며, 증오한다는 것은 언제나 중간 매개, 즉 다른 사람의 눈길을 필요로 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당신을 이렇게 보고 있소!" 하고말해주거나 기호로 전달해줄 때만 우리의 자아는 자신을 사랑하거나 증오한다. - P206

‘헤비어스 코퍼스(Habeas corpus)", 발언의 자유, 선거의 자유. 이런 자유는 내가 누리고 있을 때는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이런 자유들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그만큼 갈망이 커진다. - P219

가 있다. 흔히 ‘무엇에로의 자유‘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쪽에서는 강제가 우리에게 금지한 어떤 것을 행하기 위한 해방이, 다른 한쪽에는 우리를 괴롭히거나 방해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이 서로 대비된다. 사실이 두 가지는 하나다. 내가 가슴의 중압감으로부터 자유롭기 원한다고 말한다면, 이 말은 중압감이 없는 상태에서 비몽사몽간에 세월이나 허송하는 상태를 바란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 P222

"삶의 이야기는, 그삶이 어떤 것이든 간에, 실패의 이야기다(L‘histoire d‘une vie, quellequ‘elle soit, est Thistoire d‘un échec)."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 P225

어쨌든과학적 인식은 우리가 모색하는 자유의 땅이 텅 빈 곳, 아무것도 아닌 곳이라고 말한다. 자유의 땅은 탐스러운 과일로 가득한에덴의 정원이 아니다. 시원한 그늘을 마련해주는 나무 밑 잔디 - P251

인식론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진리 (여기서는 진정성이라는 것과 일치한다)라는 개념은 그 정당성을갖지 못한다는 것을 쉽게 증명해낼 수 있다. 잘못이고 거짓인줄 알면서도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품어야 하는헛된 희망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지나온 나날을 돌이켜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리라. 이런 것을 알자고 무슨 거창한론으로 자기 분석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뭔가 끓어오르는것만큼은 분명하다. 인간이 자유죽음을 결심하는 것이야말로매듭을 짓는 기획이다. 최종 프로젝트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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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사연들 - 내가 모르는 단어는 내가 모르는 세계다
백우진 지음 / 웨일북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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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가히 충격적인 사실들도 많다. 가령 ‘날씨’라던지…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중국과 우리나라언중은 ‘파랗다(靑)‘라는 단어로 녹색과 청색을 둘 다 표현했음을깨닫게 됐다. ‘청천(靑天)‘과 ‘청산(靑山)‘이라는 두 단어에서도 보이듯, 하늘도 청(靑)이라고 하고 산도 청(靑)이라고 한 것이다. - P29

고유어의 뿌리도 한자에서 찾으려고 하는 시도는 조선 지식인의 중화 중심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민족 문화의 특성을열심히 탐색한 홍만종조차 저서 《순오지(旬五志)>에서 이두와 언문을 부끄러워했다. 그는 "이 두 가지 문자는 중국에는 없는 것으로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것"이라며 "비록 우리말을 통하고 이사事)를 이해하는 데에는 매우 종요롭다 하지만, 만일 중화 사람들이이것을 본다면 문자가 같지 않다는 기록을 면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 P121

우리말도 길지 않은 세월을 거치며 달라진다. 외국에서 들어온단어는 해당국에서와 다른 형태와 뜻으로 쓰이기 일쑤다. 어떻게생각하면 원래 형태와 뜻으로 활용하자고 하는 건 뜻은 순수하되욕심이 지나친 일이다. 다만 국제화 시대인 만큼 일상생활에서 자주 등장하는 외래어의 오류는 차츰 바로잡았으면 한다. 예컨대 백미러(back mirror)는 리어뷰미러(rearview mirror)라고 부르면 좋겠다. 백미러는 통신학 용어로 반사경을 뜻한다. - P137

우리 고유어와 한자어를 구분해 우리 고유어를 더 살려서 쓰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유어를 발라내 더 많이 쓰자는 주장의 방향은 옳다. 그러나 한국어는 이미 고유어보다 더 많은 외래어를 포함하고 있다. 《국어국문학자료사전》이 인용한 통계를 보면한글학회 <큰사전》을 기준으로 할 때, 순수 국어가 7만4,612개 항목, 한자어가 8만5,527개 항목, 외래어가 3,986개 항목이다. 한자어가 52%에 달하고 다른 외래 요소가 2% 남짓으로, 도합 54% 이상이 외국에서 들어와 우리말에 자리를 잡았다. - P189

청소년기에 내가 읽은 책에 아들이 푹 빠져든다. 그 책을 나도 다시 뒤적이면서 등장인물을 화제 삼아 아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런시간을 꿈꿨다. 실천이 의욕에 미치지 못해 아쉽다. 아들과 함께 다시 읽은 책 중 하나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다. 새로웠다. 과연 내가 읽긴 읽었나 싶을 정도였다. 기억이 세월에 씻겨나간탓이다. 내용을 기억한다고 하더라도 세월이 흐른 뒤의 독서는 이전 독서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쌓인 경험의토대 위에서, 또 이전과 달라진 시각과 안목에서 읽어서 그렇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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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의 빛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리커버)
마크 스트랜드 지음, 박상미 옮김 / 한길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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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의 그림은 고독과 우울, 그러면서 평안한 분위기가 주는 위로와 안식이었다. 그런 감상에 더해 기하학적인 요소에 눈 뜨게 해준 책이었다.

우리는 원인도 결과도 알 수 없는 어떤 현상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그늘 속에서 보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림과 우리 사이에 놓인 무언의 장벽을 바라보며 숙고하는 일뿐이다. - P53

내면으로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그림의 주된 방향과 엇갈리고 있어서, 기차간의 갇힌 속성에서 자유로워 보이는지도 모른다. 안에서밖으로 나갈 수 없는 동시에 밖에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듯한느낌은 「나이트호크」에서 경험했던 그 느낌,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다가는 머무르게 하는 느낌과 유사하다. 이것은 호퍼의 그림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양식으로, 서사성의 의도에 회화적인 기하학적 요소가 반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 P71

호퍼의 빈 공간
호퍼의 그림은 짧고 고립된 순간의 표현이다. 이 순간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위기를 전달하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암시한다. 내용보다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증거보다는 실마리를 제시한다. 호퍼의 그림은 암시로 가득 차 있다. 그림이 연극적일수록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지고, 그림이 현실에 가까울수록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여행에 대한 생각이 마음속에서떠나지 않을 때, 그림은 우리를 더욱 끌어들인다. 어차피 우리는 캔버스를 향해 다가가거나, 아니면 거기서 멀어지는 존재가 아닌가.
우리는 그의 그림을 볼 때 우리 자신을 자각하고 있다면 그림이 드러내는 연속성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호퍼의 그림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사건들로 채워질 장소로서의 빈 공간vacancy이 아니다. 즉 실제의 삶을 그린 것이 아닌 삶의 전과 후의 시간을 그린 빈 공간이다. 그 위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그 어두움은 우리가 그림을 보며 생각해낸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요점을 벗어나 있다고 말해준다. - P50

나는 앞에서 호퍼의 빛은 이상하게도 공기를 채우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대신 그의 빛은 벽이나 물건에 달라붙어 있는 듯하다. 마치 그곳에서 조심스럽게 잉태되어 고른 색조로 우러나오는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여기서 색조란 명암을 포함한 색의 효과를 의미한다). 화가인 내 친구 베일리William Bailey가 언젠가 호퍼의 형태는 빛의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난 그 말에 동감한다. 호퍼의 그림에서 빛은 형태에 드리워지지 않는다. 그보다 그의그림은 형태를 가장한 빛으로 구성된다. 그의 빛, 특히 실내의 빛은그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신빙성이 있다. 모네의 빛과는 정반대다. 모네의 빛은 사방으로 맹렬하게 퍼지면서 모든 것을 비물질적으로 만든다. 그의 그림 속에서 루앙 성당의 장엄한 파사드는 웨딩 케이크처럼 부서질 듯하고, 견고한 석교인 워털루 다리는 푸르스름한보라빛의 안개 같은지 생각해보면 된다. - P58

호퍼의 그림은 즉흥적이라기보다는 조심스럽고 꼼꼼하게 계획된 것이고, 그의 빛은 축하의 빛이라기보다는 기념의 빛이다. 그의빛이 기하학적인 견고성을 갖추게 된 것은 빛이 흩어지지 않도록빛에 어떤 생명을 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빛은오히려 빛이 저항하고 있는 대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에게 빚은 결국 어둠이라는 더욱 강한 세력의 휴지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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