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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쿨 - 세계를 사로잡은 대중문화 강국 ‘코리아’ 탄생기
유니 홍 지음, 정미현 옮김 / 원더박스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제목인 ‘코리안 쿨 Korean Cool’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그다지 친숙하게 와닿지 않는 것은 솔직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코리안’이라는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한국의 인상은 1990년대 이후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빈민국 혹은 제3세계 국가의 낙후된 이미지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어글리 코리안’과 같은 단어가 보다 생생하게 기억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멋지다!’는 의미로 ‘코리안 쿨’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기 보다는 솔직히 낯설고 당혹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더 일반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오랫동안 우리 머리속에 고정되다시피한 인식 때문에 10여년 전부터 일본과 아시아를 넘어 중동과 유럽, 남미, 미국까지 맹렬하게 기세를 떨치고 있다는 ‘한류 Korean Wave’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나라 문화가 다른나라에 붐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과 소문 자체가 선뜻 믿기지 않는 이상한 인지부조화 현상을 일으키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한류’라는 현상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거나 미미한 것을 언론이 과장되게 부풀린 것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것일까요? 미국 아마존의 한국 관련 서적 베스트셀러에 오른 유니 홍의 책 <코리안 쿨>은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한류의 외양과 그 내면을 국외자의 눈을 통해 진솔하게, 때로는 신랄하게 보여줍니다.
저자인 유니 홍은 재미교포 2세로 미국 시카고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후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예일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에 6년 간 거주한 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파이낸셜 타임스>를 비롯해 <뉴욕 타임스>, <워싱턴포스터> 등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 중인 저널리스트입니다.
저자가 한국계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한류에 대해 무조건적인 애정과 자부심을 바탕에 깔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 될 것입니다.
저자가 시카고를 떠나 한국에 온 1985년 당시 한국은 아직 개발도상국 단계에 머물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세계 1위라고는 교통사고 사망률과 음주량 밖에 없었던, 세계적으로는 여전히 한국전쟁의 참화로만 기억되고 있던 시절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아버지가 무상으로 제공받은 당시 대한민국의 최고 부촌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도 툭하면 엘리베이터가 고장나고 절전과 단수가 일상사였던 ‘제3세계의 집단주거촌’이었고, 각종 사회적 규제와 통제, 권위주의와 억압, 체벌과 폭력, 그리고 계층간 빈부격차와 그에 따른 차별의식과 계급화가 넘쳐나던 ‘저개발 국가의 전형’이었습니다. 저자의 학교생활 역시 부당한 차별과 체벌, 폭력과 뇌물의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고요. 그러니 저자가 단지 한국계라는 이유만으로 고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나 과장되게 부풀릴 가능성은 애시당초 없는 것이지요.
저자는 이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여 자신이 유년시절에 한국에서 겪었던 ‘저개발의 기억들’을 직설적으로 털어놓고 불만을 터트립니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현재 40대 이상인 독자들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을 ‘멀지않은 추억’입니다. 너무나 생생한, 불과 20여년 전의 기억이기에 부정할 수도 없는 기억이지요.
저자는 자신이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에 한국에서 자라고 학교를 다니면서 겪었던 생생한 기억들과 자라면서 공부한 한국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인 한과 샤머니즘, 유교, 일본에 대한 적개심, 북한에 대한 공포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며 이야기의 토대를 엮어갑니다. 즉, ‘한국적인 것’의 뿌리에는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여있다는 분석이지요.
그러던 ‘제3세계 국가’였던 한국이 저자가 미국으로 돌아간 2000년대 이후 갑자기 전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산업성장국이자 문화강국으로 떠올랐습니다. 저자는 깜짝 놀랐고, ‘믿을 수가 없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경제성장이야 국가가 전략을 잘 짜고 국민들이 일치단결하면 어느 수준까지는 발전할 수 있지만, 사실 전형적인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취하던 중공업 중심 국가가 반도체와 IT, 휴대전화와 고급 가전 같은 하이테크 분야에서 전세계 부동의 최첨단이던 일본과 미국을 제치고 압도적인 전세계 1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믿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사실 저자와 동일하게 198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40대 이상들은 불과 30년 전에 세계 최고로 동경의 대상이었던 SONY와 GE를 삼성과 LG가 멀찌감치 제쳐버린 현재의 상황이 여전히 선뜻 믿기지 않을 정도이기는 마찬가지이니까요.
저자가 경제보다도 더 놀란 것은 바로 ‘한류’ 현상이었습니다. 경제와는 달리 문화는 돈이 많다고 덩달아 파급력이 생기거나 인위적으로 퍼트릴 수 있는 유형의 물건이 아니고 보다 정신적인 영향력을 주고받는 무형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제발전에 모든 국력을 기울이다보면 오히려 소홀하거나 일률화될 수 있는 것이 문화이기 때문에, 한류가 모든 면에서 아시아의 맹주였던 일본 문화를 제치고 일본을 점령하고 중국과 아시아를 넘어 중동과 남미, 유럽과 미국까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퍼져나가는 현재와 같은 현상은 한국어 가사의 <강남스타일>이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장기간 2위에 머물렀던 현상 못지않은 충격이자 놀라움이었습니다.
저자가 발견해 낸 ‘한류 붐’의 뿌리는 뜻밖의 시간, 의외의 장소에 찾아집니다. 1997년 IMF 경제 위기 이후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은 붕괴된 국가 경제의 재건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와중인 1998년 2월에 국제적인 홍보전문가인 GSA의 이태하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들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IMF 채무 위기로 국제적으로 바닥으로 떨어진 대한민국의 신인도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한 전방위적인 국가 홍보 전략을 이태하 대표에게 의뢰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세계무대에 다시 알리기 위한 두 가지 핵심 전략이 고안됩니다. 그것이 바로 대중문화와 IT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중문화 수출 산업을 구축한다는 야심찬 목표 아래 ‘문화부’를 설립하고, 정보통신기술 분야를 중점 육성사업으로 지정하여 초고속 인터넷망을 전국에 가설하고 IT 산업에 집중적인 지원을 합니다. 사실 중공업 위주의 수출 드라이브 국가에서, 그것도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국가 정책의 방향성을 기존의 중공업이 아닌 새로운 분야로 옮겨 찾고, 그중 하나가 돈과는 거리가 먼 문화라는 선택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김대중 대통령의 탁월한 혜안이 있었고, 그 결과가 바로 오늘날과 같은 IT 강국, 문화강국의 토대를 구축한 것입니다.
저자는 김대중 정부 시절에 국가가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문화 정책을 시행했다는 가장 흥미로운 예로 1992년에 서울과 홍콩 사이에 오갔던 외교 행랑에 들어있던 드라마 테입 이야기를 합니다. 한국정부의 해외공보관은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비디오 테입을 외교 행랑에 담아 홍콩 한국영사관으로 보냅니다. 이들의 임무는 이 드라마를 홍콩 텔레비전에 방영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한국 드라마는 아시아에서 전혀 수요가 없었기 때문에 공보관은 홍콩 내 한국 회사들이 해당 방영 시간대의 광고 시간을 사도록 설득하고, 광둥어 더빙에 정부 기금을 사용하는 등의 공을 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 드라마가 홍콩에서 방영되어 히트를 치면서 중국 본토에도 방영되어 한류의 씨를 뿌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한국과 전혀 국교가 없던 쿠바에서 90%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올렸던 드라마 <내조의 여왕>의 스페인어 더빙에는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의 공적 자금이 지원되었다는 뒷이야기도 저자는 풀어놓습니다.
저자는 한류의 선두인 드라마와 케이팝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 후, 드라마와 케이팝의 영향으로 현재의 미국과 유럽, 아시아 젊은이와 트랜드세터들에게 대한민국의 오늘날의 이미지는 ‘남자들은 멋잇고 여자들은 예쁘며, 꿈꾸던 하이테크 기술이 일상화되어 있는 쿨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일반화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한국은 쿨하다’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한류의 성공에 대한 단순한 감격이 아닙니다. 자신이 어린 시절 직접 겪었던 ‘제3 세계의 전형’이었던 한국이 김대중 대통령의 혜안에 힘입어 올바른 방향을 발견한 후 각 분야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과 노하우를 이야기하고, 그러한 성공이 앞으로 게임과 영화 등을 통해 확산되고 발전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한때 아시아 문화의 맹주였던 일본 문화가 한류에 밀려 소멸된 사실을 지적하며, 한류가 안고있는 위험성도 경고합니다. 그것은 저자가 말하듯이 ‘문화를 억압하던 독재자’였던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인데, 불행히도 현재의 대통령이 바로 그 계보를 직접적으로 잇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저자는 일말의 불안감을 토로합니다.
ha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