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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퍼즐 - 비즈니스 스쿨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제이 B. 바니 & 트리시 고먼 클리포드 지음, 홍지수 옮김 / 부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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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카고로 가는 비행기 안, 저스틴은 자꾸만 속이 거북해지는 것을 느낀다. 난생 처음 컨설팅을 하러가는 중이다. 이미 켄을 비롯한 팀원들은 시카고에 도착해 HGS 컨설팅을 서두르고 있을 것이다. 저스틴은 과거의 일을 떠올린다. 몇 번의 이직이 그에게 새로운 도전을 일깨워주었고 그는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명문MBA를 이수했다. 좋은 조건의 투자은행이 아깝기는 했지만 저스틴은 컨설팅 업무를 선택했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기업이 있다는 것만큼 경영학도로 느끼는 행복함이 있을까? 그런데 그의 거북함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HGS 본사에 만난 팀원들은 겉으론 반기는듯했으나 저스틴은 못내 불편하기만 하다. 마치 이제 막 졸업한 신입사원에게 뭘 기대하겠냐는 모습들이다. 저스틴 역시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더욱이 경영진 회의가 끝나자 켄은 HGS 본사 경영진들의 권력구도에 대해 더욱 자세히 조사해볼 것을 요구한다. 저스틴은 상당히 혼란스럽다. 기업의 컨설팅과 권력구도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단지 그들이 요구한 플라스티웨어의 활용방안만 컨설팅해주면 되지 않겠는가?

 

저스틴은 부사장과의 만남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다. 그의 논지와 주장에 쉽게 빠져들어 컨설턴트로서의 중립을 잃어버린 것이다. 켄이 저스틴에게 화를 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저스틴은 자신이 배운 MBA과정을 줄기차게 외쳤지만 이곳에선 아무런 효과도 결과도 얻을 수 없었다. 그런데 더욱 불쾌한 것은 비벡을 비롯한 팀원들 모두 이러한 사실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마음을 다잡고 켄의 말에 주목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이 일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닌가 고민에 빠진다. 그렇다고 일이 저스틴을 기다려줄리 없다.

 

저스틴의 상담 실력은 빠르게 성장한다. 특히 일의 초점이 누구이며 상대에 따라 어떤 대화를 이끌어나가야 하는지, 켄이 왜 권력구도에 주목하라고 하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저스틴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이토록 시간이 빠르게 변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컨설턴트로서의 하루는 그야말로 시간과의 전쟁이었다. 결국 저스틴을 비롯한 팀원들은 의견은 하나로 통합되었고 리비아는 멋진 연설로 HGS 사업파트너로서의 컨설팅을 마무리 짓는다.

 

하지만 반전은 어디든 있게 마련이다. 저스틴과 팀원들이 그토록 열정을 받친 기획안이 이미 실행중인 전략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결국 온 몸에 힘이 빠진 것을 느낀 저스틴은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또 하나의 반전은 새로운 컨설팅의 시작이다. 저스틴은 일주일 사이에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또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직접적으로 체험한 것이다.

 

What I didn't learn in Business school로 출간된 ‘전략퍼즐’은 말 그대로 학교에선 배울 수 없었던 전쟁터와 같은 기업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본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경영전략을 딱딱한 이론서가 아닌 소설로 작업했다는 것이다. 저스틴이라는 MBA학도를 내세워 그가 배운 수업과목이 기업의 현실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매 단원이 끝날 때마다 핵심 안을 내세우는 전략퍼즐이 이채롭다. 사실, 경영학에 관심이 없다면 그리 쉬운 책은 아니나 기업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특히 기업구도내의 파워게임의 향방이 기업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결론을 내려준다. 컨설팅은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기업내부에 가장 치밀하게 접근하면서 객관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무엇보다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론 결코 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는 교훈이 전략퍼즐의 핵심이다. 플라스티웨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컨설팅 그룹과 HGS회사간의 치밀한 파워게임, 전략퍼즐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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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나를 위로한다
김선희 지음 / 예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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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성장하며 일생을 이루기까지, 나,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를 알기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던 선지자들의 철학적 견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라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선 최소한 몇 가지의 생각은 해보았을 것이다. 나는 육체적적인 허물을 벗어나는 순간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둘과의 상관관계를 통해 나를 인정하는 것일까? 모두들 나에 대한 관심을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지만 정작 나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나를 알지 못하기에 삶의 중심을 타인에 맞추는 것은 아닐까? 그럼으로써 최소한 나라는 존재를 타인과 동일시는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살기위해서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인간은 스스로에게 높은 자존감을 부여한다. 인간이 모든 만물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도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을 끝없이 되풀이 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에게 의무를 부여한다. 생각하는 인간, 사유하는 인간, 그리고 도덕이나 윤리, 정의를 만들었다. 나라는 존재를 인정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끝없는 존재론적 이기심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그 최종적인 선택은 무엇이 될까?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나를 아끼고 사랑할수록 외롭고 고독하다는 것이다. 최종적인 목적이 나의 행복이었는데 모두들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나라는 존재인식은 분명 어디서부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가진 것이 많아졌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다.

 

사회는 수많은 다양함과 변수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자신이 원하는 일일지라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특이 다양한 개인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살아가는 조직에선 이러한 상황들이 더욱 빈번하게 일어난다. 최근에 급격하게 증가하는 이혼, 삶의 욕구충족에 대한 갈망, 가족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쉽게 빠져드는 중독성 강한 게임, 허망한 욕망,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대부분의 유혹들이 ‘나’라는 강한 존재 의식에서부터 비롯된다. 진실한 나인지, 허상의 나인지, 불분명한 나는 항상 혼란과 지독한 이기심 속에서 갈등하고 갈망한다. 외로운 나. 그런 나를 위로해주고 배려하며 존중해줄 수 있는 보호막은 없는 것일까?

 

사랑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철학이다. 어떤 사랑을 하느냐는 사랑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로 귀결될 것이다. 그만큼 사랑에 대한 고대 철학자들의 풍부한 지식과 경험은 현대인들이 처한 위기의 사랑을 구해내는데 특별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플라톤은 사랑을 합일이자 완성으로 보았다. 두 개로 갈라진 원이 다시 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의 사랑관념은 영혼의 반쪽, 소울메이트라는 낭만적인 이야기와는 달리 불완전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 에로스는 격정적이고 파괴적인 사랑의 힘이다. 그리고 충분히 충동적이며 충족에 대한 갈망을 요구한다. 에로스는 자아도취적이고 결여되고 부족한 자신의 사랑에 집착한다. 에로스가 만들어낸 사랑은 탐식과 탐미다. 모든 것을 흡수하고 내 안에 있을 때 완성될 수 있는 사랑, 결국 불완전한 둘이 만나 하나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는 종속되고 하나는 충족한다. 흡수된 사랑의 결말은 내안의 타자를 영원히 가두거나 그가 사라질 때까지 충족을 멈추지 않는 것뿐이다. 저자는 플라톤의 에로스적인 사랑을 인류가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사랑으로 인식하며 우리가 아는 사랑의 문제가 결국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가 찾는 철학자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개인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철학자 ‘루소’다.

 

‘성형을 권장하는 사회’ 외모지상주의가 만들어낸 성형 이론은 나를 부정하는 가장 적극적인 사회현상이다. 나 이외의 나에 대해 사회와 타인의 평가를 기대하는 사회, 자신의 의지보단 외모가 경쟁이 되고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되는 사회, 이러한 사회에서 나라는 존재는 한없이 나약하고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고대소설 ‘박 씨 부인’의 박명을 예로 들며 이미 우리사회는 선조들로부터 외모를 중시하는 풍토를 가지고 있었다고 비판한다. 저자가 주목하는 인물은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다. 그녀는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라는 작품을 통해 감옥과 같은 감시체제와 권력의 발생을 현대인들의 성형중독과 사회의 성형권장에 비유한다. 우리 사회엔 얼굴없는 시선들이 가득하다. 그들은 감시라는 권력을 통해 사회를 다루기 쉬운 방향으로 유도한다. 마치 모든 이들이 자신의 의지라 여기고 있지만 결국 주체를 인정하지 않은 채 떠다니는 조각배와 같다.

 

‘철학이 나를 위로한다.’ 는 사회를 짓누르는 다양한 문제들의 원인에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고찰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철학자들의 혜안을 제시한다. 저자 특유의 가슴을 후비는 문장은 나의 존재의미에 대한 신랄한 일깨움으로 가득하다. 나라는 존재의미에 대한 인식이 철학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또한 우리들이 삶의 과정을 통해 깊이 깨달아야하는 나는 누구인지 저자가 전하는 특별한 메시지가 마음에 울려온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자신을 포기한다면 후회에 대한 결과는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다. 우린 철학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기계문명이 빠르게 우리의 사고를 접수하고 우리들에게 필요치 않은 수많은 과정과 결과들이 우리의 삶을 잠식한다. 그 어느 때보다 자신에 대한 의지와 발견이 필요한 때임에도 우리의 시선이 오직 한 곳만을 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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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 그들이 말하지 않는 소비의 진실
마틴 린드스트롬 지음, 박세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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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행동을 추적, 분석하고, 이를 다시 분류하고 종합하고 그리고 그렇게 만든 정보를 가지고 소비자를 설득하고, 물건을 사도록 자극하는 전략을 수립하는 전 과정을 ‘데이터 마이닝’이라고 한다. 흔히 업계에선 ‘지식의 발견’ 혹은 ‘소비자의 이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보는 입장의 차이가 이토록 극명한데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한마디로 데이터 마이닝은 당신을 스캔하는 것이다. 당신이 매일 사용하는 소비패턴뿐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행동을 추적하는 시스템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토록 교묘한 상술을 사용하면서 정작 관련된 누구도 소비자들에 대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들은 교묘하게 꾸며진 ‘동의서’나 ‘카드’를 끌어 모으며 오직 ‘돈벌이’에만 몰입한다. 이미 우린 기업의 마케터들의 표적이 되었지만 이들의 사정거리를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무분별한 소비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는 가난한 이들의 하소연에 불과하다. 여전히 고가명품브랜드들은 없어서 못팔정도의 상종가를 달리고 있다. 그들의 마케팅을 비아냥거릴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경기침체기에 이들이 추종하는 탁월한(?) 마케팅 방법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도 과소비를 부추기는 주요한 요인이다. 뭔가 다르다는 광고는 분명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설령 내용물이 형편없더라도 브랜드 이름이 새겨진 쇼핑백은 그의 품위마저 높인다. ‘브랜드’, 우린 브랜드라는 시장의 틈바구니에서 살고 있다. 이젠 어디를 가든 브랜드에 둘러싸여 마치 세상이 이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 같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자신의 주머니 사정이 어찌되었든 대책 없는 소비는 누군가에겐 피해를 주게 된다. 자본주의에 대한 몰이해가 정당한 소비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한없이 나약한 욕구와 욕망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기업들의 상술이 날로 진보해 가는데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문제는 자신의 선택이다. 하지만 선택이란 문제에 우리 아이들이 처한 상황이 그리 녹록해보이진 않는다. 최상의 마케터로 세계를 누비며 자신의 진가를 발휘해온 마틴 린드스프롬은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마케팅 시장의 희한한 거래와 교묘한 상술, 특히 급진전하는 과학기술을 이용한 소비자의 패턴분석방법을 그만의 방식대로 서술한다. 기업을 위해 소비자의 뇌를 분석했던 마케터가 도리어 마케터들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굳이 인간의 내면적인 속내를 들추어내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의 상황이 마케터들에 의해 점령당했다고 선언한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들은 무궁무진하게 넘친다. 최근 마케터들은 아직 신생아 티를 벗어나지 못한 유아들을 집중한다. 아이들이 처음 말을 땔 때 나오는 첫 마디가 ‘맥도날드라’니 할 말이 없지 않은가? 그들의 심오한(?) 마케팅은 임산부로부터 시작되어 태어의 뇌에 기억할만한 광고를 심어놓는다. 저자의 말대로 ‘믿거나 말거나’ 일 수 있지만 이미 태아교육은 상당부분 사실로 알려져 있다.

 

우리사회를 짓누르는 왕따의 현실 역시 이러한 소비패턴을 교묘히 따르고 있다. 브랜드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아이들의 자존감 놀이, 저자는 자존감이 나약할수록 외부적인 브랜드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한다. 속이 비어있기에 자신을 대체할 브랜드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러한 브랜드들이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도한 소비도 문제지만 이를 역이용하는 상술은 더욱 치명적이다. ‘충분하다’ 는 말이 사라진지 오래다. 불편한 인간의 진실은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많이 그리고 더욱 집요하게 물건을 쌓아놓는다. 무엇이 자신에게 이로운지를 생각하기도 전에 자신의 욕망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마케터들은 이러한 인간의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저자는 결국 모든 것을 배제한 체 혼자 살기 전에는 브랜드를 거부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요지는 ‘어떻게’ 자신만의 브랜드로 선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만족’에 대한 생각이 같을 수는 없지만 이를 인식하는 사회구성원들의 원칙이 존재한다면 소비 또한 최소한에서 멈추지 않을까? 하지만 성장이라는 화두아래 친 기업적인 정책을 펼치는 정부의 역할 또한 소비의 주원인으로 손꼽힌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자원은 미래의 가치를 담보로 하고 있다. 몰락에 대한 지름길을 알고 있다면 분명 현재와 같은 시스템이 지속되는 방법일 것이다. 소비는 미덕이 아니다. 현명한 소비가 미덕이고 자신의 삶을 보장해줄 뿐이다. 소비에 관한 불편한 진실, 당신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지갑을 열고 있는가?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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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쏘다 우리시대의 논리 12
서형 지음 / 후마니타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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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엔 권력과 비권력이 있다. 비권력은 말 그대로 국민이다. 그런데 헌법엔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을 선포한다. 권력에 대한 이해가 올바르지 않다면 권력은 영원히 비권력자를 권력의 울타리에 가두려 할 것이다. 권력은 참으로 용의주도하다. 한번 움켜쥐면 절대로 놓지 않으려하기에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권력을 보호한다. 결국 권력에 대한 비애는 권력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러한 권력의 주체들 중의 하나가 대법원이다. 워낙 난잡스러운 정치와 교묘한 기업의 행태에 대중의 눈과 귀가 가려있을뿐이지 법원이 추구하는 권력유지의 방법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즉, 그들에겐 스스로의 권위와 존중 그리고 존경을 받을 당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법 앞에 그리고 자신의 양심 앞에 정당했을 때 가능한 부분이다.

최근 사회는 불편한 진실에 관한 에피소드(?)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이해 당사자들에겐 그리 좋지 않은 소식이지만 그동안 눈과 귀가 가린 국민들에겐 가치관의 변화마저 가져올 수 있는 주요한 소식들이다. 개인이 거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건다면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될까? 잘못에 대한 판단을 떠나 대부분의 개인들은 스스로 소송을 포기할 것이다. 물론 이길 확률도 거의 없다. 마찬가지로 개인이 거대 권력기관을 상대로 홀로 외롭게 사투(?)를 벌인다면 이를 받아줄 기관은 몇이나 될까? 그들 역시 기관이라는 옷을 벗으면 일개 개인에 불과하지만 결국 기관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기에 개인의 선택은 발악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로 세간의 화제를 끌고 있는 대법원과 한 수학교수간의 처절한 사투(?)도 그것이다.

 

‘부러진 화살’은 이미 대중화되었지만 대법원의 불편함과 묵묵부답만이 무거운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본 책은 사건 당사자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김명호 교수가 쓴 책은 아니다.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기관에서 일인시위를 취재하던 서형기자가 우연한 기회에 ‘석궁사건’ 을 접하면서 한국사회의 권력과 개인의 대결을 구도적으로 묘사한 책이다. 기자는 그간 언론에서 볼 수 없었던 김 교수와 판사들 간의 논쟁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기자의 입장은 중립적이다. 김명호 교수는 이미 실형을 살다 나왔고 판결이 끝난 상황이기에 이들의 논쟁이 얼마나 재 확대할 수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가 주장하는 것은 한국 권력, 그것도 대법원의 권력이 어떻게 한 개인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지를 철저히 파헤친다.

 

법 앞에 선 개인은 어떤 존재일까? 한없는 두려움과 공포, 그동안 자신이 행했던 수많은 과오들을 반성할 수 있는 시간으로 인정할까? 아니면 끝없는 두려움과 싸우면서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해야하는 난제의 시간을 보내야할까? 어떤 상황이든 법원에 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법을 매일 접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에게 법은 어떤 효용성을 지니며 그들이 바라보는 국민은 어떤 존재여야만 할까? 사건을 바라본 기자는 김 교수의 타협할 줄 모르는 고집과 편견을 비판한다. 만약 그가 처음부터 잘못을 시인하고 갔다면 최소한 4년형은 살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이 대세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법 앞엔 법, 오직 법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고집을 내세웠다. 법원의 판결문 역시 그의 사회부적응을 꼬집는다. 하지만 문제는 김 교수의 현란한 언변과 해박한 법률적 지식, 그리고 대중성을 이끌어내는 과감한 행동이 아니었다.

 

수많은 오류와 증거불충분이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법원을 상대했다는 이유만으로 김 교수가 입은 상처는 너무도 컸다. 결국 권력은 그것이 잘못되었든 잘못되지 않았든 건드린다는 것 자체만으로 법 위에 군림하는 것인가? 그래서 권력에 대한 대중의 논리는 참으로 무섭다. 그들이 권력과의 거리를 두려는 이유도, 무섭거나 두려워서가 아니라 정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판결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들의 생각과 행동까지 변화될 수 있는 주요한 문제다. 하지만 권력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다. 두렵다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한정된다. 자신이 올바르다면 두려울 이유는 협박이나 공갈밖에 없을 것이다. ‘부러진 화살’은 사회에 만연된 불편한 진실을 그대로 재현한다.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해 판사의 집에 석궁을 들고 간 김 교수를 옹호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공정성과 정당성에 대한 평가다. 법은 강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약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법이 존재하는 목적이 이분법적인 사회현상을 암묵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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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일할 수 있는 즐거움 - 최고령 프로페셔널 15인의 행복하게 일하는 법
도쿠마서점 취재팀 지음, 양영철 옮김 / 상상너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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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운영하는 커피숍에 자주 들린다. 1년간의 방황을 멈추고 시작한 커피숍, 유난히도 무더웠던 지난여름, 가뜩이나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이곳저곳을 탐문(?)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을 당시에 비하면 지금 그의 모습에선 여유마저 넘친다. 그가 만든 커피는 강하게 입맛을 자극한다. 칭찬할라치면 기호에 맞을 뿐이라며 다른 숍의 커피도 맛볼 것을 권한다. 한결 여유 있다. 그는 이제 자신이 가야할 길을 선택한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커피를 마시러 갈 때마다 그의 행동과 여유가 점점 부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작지만 자신만의 가게를 운영한다는 묘미는 분명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직장생활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서 평생 일하는 즐거움을 발견했다면 지나친 오만일까?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이미 고전이 되었다. 40대가 되면 퇴직을 준비해야하는 시대에 평생직장이란 개념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나마 전문직이라면 은퇴시기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퇴직과 동시에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하는가? 노후에 대한 사회적 대비가 철저하게 이루어진 사회라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미 한국은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사회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노인을 위한 시대가 아니라 노인 자체가 문제가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우리가 알던 삶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필요로 한다. 중년 취업인구의 증가, 그들은 부자가 되려는 목표보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고 있이다. 그나마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해야한다.

 

‘평생 일할 수 있는 즐거움’ 노년을 안식의 시간으로만 생각하던 이들에겐 무슨 당치도 않는 소리냐는 비아냥거림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년 취업인구의 증가를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어쩔 수 없이 나서는 일이라면 고역일 수밖에 없다. 일의 수준도 낮지만 그들을 평가하는 사회적 잣대도 냉혹하다. 노후를 준비하는 이들에겐 불안한 미래이자 두려움이 아닐 수 없다. 이젠 일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사회변화를 받아들여야한다. 그런데 이를 효과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이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평생하면 되는 것이다. 직장에 다닌다면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시작해 일의 연속성을 유지하면 된다. 결국 일은 돈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대한 지루한 대답이 될 것이다.

 

기타하나 만드는데 2,3년이 걸인다면, 이러한 기타는 누가 만들고 누가 사용하는 것일까? 78세인 야이리씨는 명품기타를 만드는데 인생을 건 기타장인이다. 그의 지론은 오래될수록 가치가 더해지는 진짜를 만들어야한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근근이 삶을 유지하던 야이리씨의 인생이 획기적으로 변화하게 된 계기는 미국의 기타공장을 방문하면서부터다. 그는 스스로에게 가치있는 기타를 만들고 싶었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기타 산업 역시 성장했지만 그의 기타에 대한 집념은 대중성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일본 유일의 주문 제작 기타를 생산한다. 그가 만든 기타는 폴 매카트니를 비롯한 내로라하는 팝 가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애장품이 되었다. 기타 박물관을 만들어 누구나 최고급 기타를 쳐보게끔 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그의 기타인생은 너무도 자신감 있고 행복해 보인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다. 아무리 좋은 직업도 구린내가 나면 천한직업이 되듯이 좋지 않게 보이는 직업도 어떤 사람이 맡느냐에 따라 최고의 직업으로 변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가 인식하는 직업은 극히 타인 의존적이다 보니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직업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먹고살기 위해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일본 최고의 양조 기술자로 인정을 받은 츠구에다 유이치씨, 그는 죽도록 일이 힘들면 ‘딱 이틀만 다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다시 고삐를 잡았다고 한다. 숙성될수록 좋은 맛을 내는 양조는 그의 인생철학과 너무도 닮았다. 몰아보지 않은 비행기가 없다는 다카하기 준씨는 88세의 현역 파일럿이다. 놀라운 것은 그의 뛰어난 몸 관리다. 그는 비행을 하기위한 까다로운 신체검사를 지금까지 통과하며 수많은 젊은이들의 멋진 교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96세의 베리스타, 세키구치 이치로씨, 호빵맨을 만든 야나세 다카시씨는 91세로 여전히 만화를 그리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이렇게 나이를 먹은 줄 몰랐다고 말한다. 또한 최악의 순간에서 최고의 순간으로 역전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 ‘시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하게 인식한 사람들이다. 인생의 여유시간에 자신을 위해 노력하다보니 세상이 알아주더라는 것이다. 모든 상황을 외부적 요인으로만 돌리며 주어진 것을 쉽게 포기하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놓는 소리다. 일은 즐거워야 한다. 즐겁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일도 타인의 일이 되고 만다. 21세기는 평생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항상 사회적 변화라는 외부적 변수를 인정해야할 것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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