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 아침편지 고도원의
고도원 지음 / 해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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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 그들은 언제나 꿈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꿈은 미래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자신이다. 꿈을 가진 자들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다. 그들에게 세상은 두려워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야할 무대일 뿐이다. 자신과 마주선 현실의 벽을 넘어설 때 꿈은 한걸음 다가온다. 우린 꿈 자체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꿈을 포기한다. 하지만 꿈을 포기한 인생을 만족하는가? 만족은 느낌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꿈을 갖는 것이며 저마다의 꿈을 통해 세상과 교류하는 것이다. 좋은 꿈은 좋은 세상을 만든다.

 

아이가 클수록 걱정이 앞선다. 혹 성적이 떨어지면 어쩌나? 고민은 곧바로 아이에게 반영된다. 현실은 경쟁을 강요한다. 상대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기보다는 같은 틀 안에서 일인자가 되는 것을 원하고 있다. 뛰어난 아이가 수학문제에 집착하는 아이는 아닐 것이다. 부모의 후회는 고민에 비례한다. 자신이 고민한 문제를 왜 아이에게 전가시키는가? 사회적 잣대에 맞추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곳은 없는 것일까? 사회는 꿈을 가진 자들의 이상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이 지배하는 사회라면 꿈은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할 것이다.

 

좋은 생각은 좋은 인생을 만든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메시지 하나, 오늘도 행복하세요. 늘 듣는 말이지만 오늘따라 더욱 선명하다. 같은 말이라도 감정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니 좋은 말을 반복하는 것도 좋은 생각일 것이다. 아침편지가 10년을 훌쩍 넘었다. 이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아니 온 국민의 휴식과 치유를 책임지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아침편지가 운영하는 깊은 산속 옹달샘은 마음의 쉼터를 찾는 명상센터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침편지를 배달하는 고도원씨가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번엔 에 관한 이야기다.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작은 씨앗이 절로 나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해선 좋은 토양과 물 그리고 따뜻한 햇볕이 있어야한다. 꿈도 마찬가지다. 좋은 꿈은 좋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누군가 첫발을 내디디면 길이 만들어지듯이 마음을 나누고 희망을 노래하는 이들이 길을 만들면 꿈길이 될 것이다. 그런데 꿈은 젊은 시절에만 필요한 것일까? 나무는 늙어도 열매를 맺는다. 꿈은 마음이 성장하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꿈을 꾸는 이들은 늙지 않는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나무의 가지처럼 죽죽 뻗어갈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에겐 특별한 이유가 있다. 우린 누구나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누구든 처음부터 원하는 일을 선택하기 어렵다. 사회는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처음부터 큰일 할 사람은 없다. 큰일은 자신의 현재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하는 일에 어떤 열정을 가지고 있는가?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일을 맡게 된다면 이를 기회로 생각해야한다. 작은일, 궂은일을 마다하면서 큰일을 한다는 것은 기초도 없이 건물을 짓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회생활의 가장 어려운 점이 인간관계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가 한명만 있더라도 좋을텐테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면 자신의 행동을 고려해보아야 한다. 누구나 좋은 사람을 만나길 원하지만 자신이 좋은 사람인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당신은 고민하는 이에게 먼저 어깨를 빌려주고 있는가? 눈빛만으로 상대의 의중을 읽고 어깨를 빌려주는 이들, 진정한 소울메이트 한명이라도 나와 함께 있다면 결코 외롭거나 힘들지 않을 것이다. ,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허락된 것은 아니다. 지금 나는 꿈을 꾸고 있을까? 눈을 감고 펼쳐질 미래를 상상해본다. 가슴 벅차. 꿈은 우리의 마음을 춤추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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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 김별아, 공감과 치유의 산행 에세이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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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새벽 3시에 출발해 도착했는데 비라니, 하지만 평생 한 번 올지도 모르는 기회라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고 우의를 구입했다. 땅은 이미 축축하다. 험하기 이를 데 없는 지리산, 그것도 우중 산행이라니, 사실 몇 달 전부터 아이와 지리산을 종주하기로 약속했다. 지리산은 산장 잡기가 무척 어렵다. 당일로 다녀오기도 쉽지 않아 결국 23일 종주를 선택했는데 도착하자마자 비가 쏟아진다.

 

평상시보다 몇 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쏟아지는 비속에서 고민에 빠진다. 올라가야하나 내려가야 하나, 올라온 것을 생각하면 아깝기도 하지만 다시 내려가는 등산객들을 보노라면 마음이 흔들린다. 산은 공평하다. 누구에게나 같은 기회를 주지만 아무에게나 자신의 등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 걸음 옮길수록 숨은 자태가 드러난다. 산과의 만남을 인간의 만남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사고일까? 오르긴 힘들어도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운치는 모든 고통을 한방에 씻어버린다. 부풀어 오른 발, 밑창이 터진 신발, 갑작스러운 산행덕분에 온몸이 쑤시지만 산등성이를 타고 내리는 운무의 장엄한 관경 앞에선 지나간 시간이 한줌의 먼지같이 느껴진다.

 

왜 우린 그토록 힘든 산을 타는 것일까? 산악인들은 산은 인생과 닮았다는 말을 한다. 무턱대고 오르면 쉽게 포기하듯이 인생 역시 산을 타는 것과 같은 기분으로 계획을 해야 한다. 오르기 힘든 산은 인생의 고난과 고통을 연상시킨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산행이지만 끝이 없는 산은 없다. 우리네 삶 역시 필연적인 결과가 있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정상이든 아니든 산을 오르기 위해선 온전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해야한다는 사실이다.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미실, 채홍으로 현란한 글 솜씨와 탁월한 구성이 인상적이었던 김별아님의 특별한 산행에세이다. 말이 쉽지 백두대간을 종단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일이 아니다. 저자는 자신만의 특별한 임무(?)를 수행해가며 한국 산의 멋진 운치와 빼어난 정경을 치유와 공감의 언어로 탈바꿈한다. 교만한 인간의 마음이 겸손해지는 건 거대한 자연 앞에서 무릎을 꿇을 때뿐이다. 자연을 거부한 인간, 자연과 멀어질수록 인간의 몸과 마음은 조금씩 그러나 빠르게 퇴보해갔다. 과거엔 볼 수 없었던 질병들이 창궐한다. 약물 중독은 세계적인 질병으로 확산중이다. 자연에서 태어났기에 자연과 어울릴 때 가장 건강할 수 있음에도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은 산과 함께 갈 때 행복하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 때문에 믿음이 돈독해진다. 누군가 말을 걸지 않더라도 상대의 의중을 꿰뚫을 수 있다. 놀라운 것은 그 많던 고민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자신의 무게를 느낀다.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무게, 무게를 줄일수록 마음을 비울수록 산행이 가벼워진다. 모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기에 꼭 필요한 것만을 준비해야한다. 우리의 삶에 우리의 인생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 배낭에 들어있는 무게만큼 삶은 힘이들고 가쁘다. 산은 이 모든 것을 겸손하게 느끼게 만든다.

 

김별아님은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백두대간이 허락한 남부능선을 20개월간에 걸쳐 종주했다. 산이라고 같은 산은 아니다. 산행은 항상 새로운 도전이다. 문득 거대한 산이 눈앞에 다가온다면 한 번의 경험은 두려움을 줄지 모르지만 여러 번의 경험은 겸손과 준비의 미덕을 가르쳐준다. 무엇보다 걷는 내내 산행에 주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같은 산이 없기에 같은 나무도 계곡도 없다. 태초부터 존재해왔던 수많은 언어들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파고든다. 자연은 자체로 치유의 존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혼란스러운 마음을 내려놓고 거대한 자연 앞에 놓인 조그만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뿐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하지만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위해선 자신의 마음을 허락해야한다. 감칠 나고 맛깔스러운 하지만 인생의 내공이 듬뿍 담긴 김별아님의 특별한 산행일기, 치유와 공감의 메시지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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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 우리 시대 멘토 17인, 삶의 원칙을 말하다
이태형 지음 / 좋은생각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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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산자락을 뒤로하고 널찍이 자리한 사찰, 오랜만에 찾아온 정경이 새롭다. 온 세상, 덕이 아닌 것이 없는데 굳이 초파일날 덕을 찾으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매일 짓는 죄를 조금이라도 씻기 위함은 아닐지, 평소엔 스쳐가던 사람들도 오늘만큼은 미소가 가득하다. 고해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자신을 벗어난 자신을 바로 보는 시간은 인생의 깊이만큼 여운을 더해준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우린 무엇을 위해 이토록 발버둥 치고 있는가?

 

인간은 다르다. 같은 옷을 입지만 다르다. 가끔씩은 다른 옷을 입었지만 같은 사람을 만난다. 생각이 같은 이들이다. 그들이 일상에 던져주는 메시지는 놀랍도록 뜨겁다. 어떤 인생이 우리에게 환희와 열정 그리고 행복을 전해주는가? 누구나 자신만의 삶을 살다가길 원하지만 스스로 대해선 고민하지 않는다. 무엇이 당신의 인생을 지탱하고 있는가? 가벼울수록 멀리 뛰고 비울수록 채울 수 있다.

 

한비야,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다. 그녀의 삶은 분명 대중이 생각하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그녀가 끼친 영향력은 어느 공인보다 뛰어나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자신이 이런 삶을 살았다고 어필하지 않는다. 그녀는 온전한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다. 대중이 부러워하는 것은 그녀의 삶인가 외적인 조건인가? 한 곳에 몰입하면 어떠한 것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그녀만의 삶의 철학을 바라보면, 너무 많은 곳에 관심을 갖고 상대와 비교하는 자신이 비견된다. 모두 같은 길은 없듯이 하나의 옳은 길도 없다. 그녀는 마음속의 숯불에 바람을 불어넣으라고 말한다. 그 숯불이 타는 순간이 나의 정확한 때. 세상에 태어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태우고 갈사람 한비야, 그녀만큼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현재의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소중하다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다. 그리고 소중한 나를 만나는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할 것이다. 혜민스님의 일언은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수려한 외모만큼이나 뛰어난 언변, 하지만 그를 빛나게 하는 것은 그만이 지닌 삶의 철학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 결정권을 누구에게도 넘기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 어떠한 성스러움도 자신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더욱 자신을 사랑해야한다.

 

어떤 삶이 잘 사는 삶일까?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고 다툼 끝에 헤어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누구도 처음부터 잘못된 인생을 설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생은 혼자서도 어렵지만 더불어 살아가기에 더욱 어렵다. 인생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인생 자체를 올바로 보지 못해서가 아닐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인생을 다르게 보는 이들이 주변에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타인에 의존한 삶을 거부하고 온전한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다. 우린 가지지 못해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지니지 못해 안타까워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삶의 원칙을 배우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에 대한 17분의 메시지는 뜨겁다. 그들은 자세와 태도는 한결 같다. 때를 기다리는 사람, 인생은 언젠가 찾아오는 기회를 만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시간이다. 먼저 만나고 나중에 만나는 차이만 있을 뿐. 하지만 온전한 자신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좋은 기회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사랑에 대해, 그리고 공부에 대해 17분이 간직한 깊은 인생철학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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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로피 2.0 - 이성의 칼 끝으로 최고의 나를 창조하라
한지훈 지음 / 행복에너지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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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모든 물질엔 열이 있다. 열이 에너지의 한 형태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에너지는 두 가지의 물리적 법칙이 적용되는데 에너지 총량은 보존된다는 열역학 제1법칙과 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열역학 제2의 법칙이다. 이는 물리학을 배웠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물리적 법칙으로 에너지의 변화 방향 즉, 엔트로피를 설명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어려운 물리학적인 용어인 엔트로피가 튀어나왔을까?

 

엔트로피는 인간 역시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엔트로피는 마치 케오스를 연상시킨다. 규칙보다는 불규칙적이고 통합보다는 분리, 가늠하기 어려운 분자의 이동은 인간의 무질서한 본능을 너무도 닮았다. 우린 스스로를 이성적이라 생각하지만 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쉽게 본능적이 된다. 엔트로피는 무질서다. 방향을 종잡을 수 없고 어디로 튈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우린 엔트로피를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이 한 행동을 곧잘 후회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엔트로피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우리가 행동을 변화시키는 엔트로피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열심히 일하지만 변한 것이 없다. 자신은 최선을 다하지만 상대는 알아주지 않는다. 문득 너무도 당연시 되었던 환경들이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우린 서로간의 무관심 속에서 상대의 허상만을 바라보며 스스로에 자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은 항상 공허하고 허무하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조차 헷갈릴 때가 많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생각은 꼬리를 물고 더욱 자극적이고 탐미적인 엔트로피적 요소를 찾아 헤맨다. 엔트로피는 스스로를 침몰시킨다. 자극은 더욱 강한 자극을 원하고 허무는 더욱 집요한 허무를 의지한다.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있다. 정작 중요한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조그만 이익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소탐대실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고의 전환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목적이 불분명할수록 누구나 눈앞의 이익에 집착한다. 조그만 이익일지라도 그것이 자신을 이롭게 한다면 애당초 품었던 목적은 관심에서 멀어진다. 문제는 조그만 이익에 집착하다보면 작은 일에 쉽게 감정이입 되어 실패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자자는 이를 바이러스처럼 다가오는 사소한 고민이라 부르며 현실의 부정적이고 불편한 사실을 멀리할 것을 강조한다.

 

온갖 부정적 감정, 불편함, 심심함, 공허함, 불안과 긴장, 좌절, 열등감, 그리고 우릴 괴롭히는 수많은 고통들이 엔트로피적 상황이다. 엔트로피는 거부하기 어려운 자연적인 변화이므로 스스로의 인식 없이는 극복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를 네거티브 엔트로피, 즉 네트로피라 정하고 무질서한 엔트로피적 환경에 질서를 부여한다. 네트로피는 마음의 질서다. 네트로피로 전환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자신의 현재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한다. 무엇 때문에 일을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해야한다.

 

놀아라자신의 돈을 쓰고 시간을 낭비하면서까지 놀이에 집중해서 즐거움을 찾아라. 놀이에 대한 우리의 사고는 휴식의 일부분일 뿐이다. 하지만 놀이의 진정한 목적이 자아 발견이라는 것을 깨닫는 다면 저자의 말대로 노는 사람은 대단한 인재가 될 가능성이 많다. 이를 위해 저자는 두 가지의 인생 업그레이드 계획을 추천하는데 하루30분 걷기와 지금껏 자신이 일해 왔던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강의를 하루 30분씩 듣기를 추천한다. 걷다보면 스스로에 질문을 하게 되고 삶의 방향에 대한 진지한 의문의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바뀌는 것이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엔트로피와의 싸움에서 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를 해결할 네트로피 2.0 단단한 뇌에 태클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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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거짓말
이유리.임승수 지음 / 레드박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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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나치 선전당원 괴벨스는 거짓말에 대한 유명한 격언을 남겼다.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다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괴벨스의 선전 문구는 가혹한 유럽의 처사에 불만을 품은 독일 국민들을 완벽하게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당시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던 수많은 독일인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떠한 가책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이유도 괴벨스를 비롯한 나치당의 지속적인 거짓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괴벨스는 누구보다 언론의 효용성을 알고 있었다. 독일을 통제한 나치가 언론을 사유화한 것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전쟁과 관련된 모든 소식은 사전검열을 받아야했고 나치의 입맛에 맞게 조작되었다. 결국 독일국민들은 거짓말로 포장된 방송을 통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유대인들은 공공의 적이자 사라져야할 악이었다. 괴벨스는 그의 예언을 성실히 수행했다. 전쟁이 끝난 후 서방국가들은 독일의 잔인함에 놀랐고 소수의 광기가 어떻게 대중을 다루는지에 대해 두 번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국가를 사칭한 권력가들의 거짓말이 비단 유럽을 초토화시키고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당만의 전유물이었을까?

 

인간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상대를 위한답시고 하는 선의의 거짓말도 결국은 자기변명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개인이 행하는 거짓말이 국가의 거짓말보다는 훨씬 피해규모가 작다는 것이다. 거짓말에 익숙한 개인은 사회적 비난과 고통을 감수해야한다. 하지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국가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국가를 비난하는 것은 곧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가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다. 괴벨스의 대중선전학도 이러한 대중의 믿음을 기초로 한 것에 가깝다. 비록 그것이 거짓말일지라도 지속적이고 반복적이면 누구든 믿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의 횡포와 같지만 거대조직을 상대로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하지만 국가는 자신의 거짓말이 상대에게 어떤 공포를 만들어내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또한 그들의 거짓말로 피폐된 삶의 일부를 보상받기위한 처절한 몸부림조차 쉽게 외면한다.

 

북한에 대한 생각은 개인마다 너무 뚜렷하고 선이 분명해 쉽게 다가서기 어렵다. 분단 이후세대가 전쟁의 참상을 알 리 없으며 전쟁이 남긴 상처를 이해할 수 없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이 50년이 훌쩍 지난 현재에도 결코 변하지 않고 있다면 우린 사상이나 이념에 대해 지독한 세뇌를 당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인지 의문을 해봐야한다. 그러한 의문들 중의 하나가 북파간첩에 대한 사실이다. 북파간첩이 공론화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전란 후 50년간 남북은 끊임없이 간첩을 보냈지만 남측은 북파간첩의 존재를 항상 부정해 왔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가 사후관리를 잘 못한 탓인지 특수임무 수행자들이 보상을 요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피킷을 들고 데모하는 그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고 언론에 부각되었다. 결국 정부는 수십 년간 베일에 싸였던 북파간첩의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특수임무수행자들은 목숨을 바쳤지만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조국에 배신을 당한 것이다. 국가는 필요에 의해서만 국민을 이용하고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삶마저 버릴 수 있는 것인가? 온갖 감언이설로 떠들어대는 그들의 애국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국가의 거짓말은 소수 조직원의 가슴에 피멍을 만들고 대중을 호도한다.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 여론을 타파하기위한 수지김 간첩사건은 국가가 어떻게 한 개인의 죽음마저 철저하게 유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기억된다. 사건은 오랜 기간 미궁에 묻혔고 살인자는 내로라하는 사업가로 변신했지만 국가의 거짓말은 상당기간 지속되었다. 본 책 ‘국가의 거짓말’은 근현대사를 통틀어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믿기 힘든 국가의 거짓말을 다루고 있다. 특히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대학등록금과 4대강, 그리고 부자 감세및 부동산 문제등 현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을 거짓말로 규정하고 전면적으로 비판한다. 가장 눈에 띄는 주제가 ‘전쟁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미개한 원주민을 교육시킨다는 미명아래 혼혈 아이들을 강탈해 노예로 부린 호주 백인들, 무려 40년 동안 매독생체 실험의 대상이 되었던 미국 흑인들, 명분 없는 이라크전쟁을 일으킨 미국 정부 등 전쟁은 패권국과 열강들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언론의 공정성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언론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 그들 역시 권력과 다름없는 생존에 대한 애착이 가장 강한 집단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언론에 노출된 정보들에 대한 신빙성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어른들의 말씀은 강자의 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약자의 논리일 뿐이다. 괴벨스의 논리대로 우린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언론의 거짓말을 진실이라 믿어왔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자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최고 권력기관인 국가가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국가의 거짓말은 너무도 당당하고 치밀해서 여간해선 거짓말이라 생각하기조차 쉽지 않다. 더욱 문제는 국가의 거짓말에 침묵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이든 간에 결국 그들 역시 거짓된 세상에 살기는 원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자식들에게 거짓된 세상을 물려주기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두 저자가 펼쳐내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그 진실한 내막을 파헤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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